Chapter. 13 잘못한 거 없어
“태권도?”
“그래, 학원가기 전에 잠깐 시간 되지? 엄만 당분간 병원 일로 바쁘니까. 당분간 기욱이 네가 잘 좀 데려와.”
“아, 박하연 있잖아. 귀찮아.”
“얘는 누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하연이 공부하느라 바쁜 거 몰라? 갔다 와.”
대학? 부모님이 없을 때면 남친 불러서 집에서 섹스나 하는 누나가 대학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더 신기한 건 그렇게 놀고 전교에서 10위 안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다시 병원에 가야 한다며 집을 나왔다.
영어 학원에서 수학 학원으로 이동하는 사이 엄마가 말한 태권도 학원이 보였다. 이미 6시가 넘어 있었다. 수업이 생각보다 늦게 끝난 탓이었다. 6시 전에 수업이 끝난다고 했으니 시헌이 혼자 집에 가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수업까지는 공백이 있어서 그런지 불이 켜진 체육관은 조용했다. 시헌에게 전화를 걸어 볼까? 휴대폰을 꺼낸 순간 매트가 깔린 체육관 안쪽 구석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체육관 매트 바닥에 앉아 떠들고 있는 시헌, 그리고― 우성이었다. 또래에 비해 약간 체구가 작은 시헌은 우성의 무릎 위에 앉아 고개를 올린 채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 엄마랑 병원에 갔는데. 엄마가 급하게 수술 들어가야 한다 그런 거야. 교통사고라 그랬던 것 같은데 나도 잘은 몰라. 결국, 있지? 누나가 데리러 왔어. 사실 내가 병원에서 길을 잃어서 헤맸거든.”
“하하, 고생이 많았겠구나. 그래서 오늘은 누나가 데리러 오는 거야?”
“아냐, 아침에 엄마가 형이 온댔어.”
“형도 있어?”
“응. 그리고 남동생도 있어. 가끔 내가 유치원에서 데리러 간 적도 있다? 요즘은 아니지만.”
“우리 시헌이 장하네.”
우성의 손이 시헌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시헌은 하지 말라며 손을 흔들었으나 그 표정이며 손짓이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이에 비해 과묵하고, 낯가림이 있는 시헌이 누군가를 따르며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한우성, 학교에서 같이 다닌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우린 한 번도 저렇게 많은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내가 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복도와 체육관 안쪽은 거리가 있었으니 그럴 수 있었다. 시헌에게 다가갈 수 있었지만, 뜻밖의 장면이 나를 멈추게 하였다. 우성이 시헌을 괴롭히는 데 재미가 붙은 모양인지 몸 이곳저곳을 간지럽혔다.
“흐흐, 하하하… 흐으… 하지 마, 하지 마라니까!”
“큭큭, 푸읍… 하하하하하! 애구나! 진짜! 여기? 간지러?”
“하하… 흐… 형, 그만… 악, 그만! 그만. 하하, 하하… 배 아파!”
웃음소리가 텅 빈 체육관을 울렸다. 시헌과 우성이 체육관 바닥을 구르다시피 했다. 툭, 하고 손에 들린 휴대폰이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웃음소리가 멎으며 복도로 시선이 닿았다. 시헌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와 우성의 눈이 가장 먼저 맞았다. 나는 신발을 벗고 체육관 매트 위로 올라왔다. 다가갈수록 두 사람의 모습이 선명했다.
닮았다. 장난을 치다 보니 일어난 현상이라고는 하나 양팔을 바닥에 짚고 시헌을 밑에 깔고 있는 우성의 모습은 그날 방과 후 복도에서 나와 우성에게 일어났던 현장과 닮아 있었다.
시헌이 뒤늦게 숨이 막힌다며 비켜 달라고 했다. 아직 어린 시헌에게 고등학생인 우성의 몸은 너무나 컸다. 우성 때문에 내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성은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우성을 밀어내는 데 포기한 시헌이 삐죽 얼굴을 내밀었다. 그제야 나를 발견한 모양인지 말을 했다.
“기욱이 형.”
“어, 그래.”
“읏, 형아. 나 진짜 무거워. 비켜 줘.”
“아, 미안.”
뒤늦게 우성이 일어났다. 시헌은 엉망이 된 옷과 머리를 다듬으며 내 앞으로 왔다. 시헌이 옷자락을 붙잡아 당겼다.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왜?”
“나 가방 가져올게.”
복도 뒤쪽에 있는 사무실을 힐끗거렸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헌이 종종거리며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시헌이 가방을 가지러 사무실로 가자 체육관 안이 한기가 돈 것처럼 싸늘해졌다. 우성이 또한 몸을 일으켜 머리와 옷들을 정리했다.
신경질적으로 뒷목을 긁적인 우성이 주머니에 한쪽 손을 넣었다. 선배의 고백, 그 후 나와 우성은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했던 대화들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이었다. 몇 번인가 말을 걸어 보려 했으나 그럴 때면 우성은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등을 돌렸다. 그사이 고백을 받은 선배에게 몇 번이나 더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일주일.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동생 있는 줄 몰랐어.”
“태권도 해?”
“어.”
짧은 대답에 할 말은 없었다. 나는 그날, 우성에게 맞은 배를 만지작거렸다.
“어쩐지 정말 아프더라.”
“나 원래 사람 안 때려.”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몇 번인가 우성의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몸이 아프다며 엎드려 있었으나 옆자리에 앉은 내가 울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선배 때문이었다. 어떤 위로도,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가방을 챙긴다던 시헌이 조금 늦었다.
뭘 하는 건가 싶어 가 보려던 찰나 사무실 문이 열리며 시헌이 나왔다. 낑낑거리며 무거운 가방 하나를 더 들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우성이 먼저 뛰어나가 시헌의 손에 들린 가방을 낚아채 갔다. 우성의 가방이었다. 시헌이 아픈 팔을 만지작거렸다.
“무거웠어.”
“정말이지, 내 가방인 줄은 또 어떻게 안 거야?”
“저번에 봤어. 형도 학원 간다며? 같이 내려가자.”
우성이 내 눈치를 살피더니 한숨을 쉬었다. 이내 알겠다며 시헌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이번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시헌의 표정이 약간 붉어져 있었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남동생, 이래저래 시끄러운 운오와 달리 시헌의 어린 모습은 나와 닮았다. 친척들도 늘 시헌을 보면 어렸을 때 너랑 똑같네, 하는 말을 내뱉고는 했다. 정작 나는 시헌을 그렇게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9살, 키며 외모, 학교며 취미, 관심사, 대화 주제나 모든 것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동생을 두고 닮았다고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순간 지금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닮았다. 그래, 그걸 굳이 말로서 표현해야 한다면 취향이었다. 우성을 좋아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다른 남자 또래 애들과 비교하면 마음에 든다는 감정이 있었다.
체육 시간, 비록 말 한마디 없는 짝이었지만 나 외에 다른 사람과 짝을 한다는 건 용서할 수 없었다. 또래 학생들에게는 관심도 없는 시헌이 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제 발로 뛰어가 가방을 가져온 순간부터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시헌은 우성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하나의 두려움으로 작용했다. 10살, 하지만 언젠가 나와 비슷한 나이가 된다면? 짜증이 났다. 시헌이 빨리 내려오라며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그 모습이 나이에 맞는 어린애였지만, 어린애 같은 모습이 나를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시헌은 수업이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기분 좋게 뛰어나갈 애는 아니었다. 체육관을 나왔다. 옆 건물 골목에 담배꽁초들이 쌓여 있었다. 나와 우성은 거의 본능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 더미를 보고 있었다. 건너편에 슈퍼가 있었다. 지갑을 꺼낸 뒤 시헌을 불렀다.
“시헌아. 마실 것 좀 사 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고.”
“나 목 안 마른……. 알았어. 형은?”
“주스. 아무거나.”
우성을 힐끗 본 시헌이 고개를 끄덕이며 건너편 슈퍼로 들어갔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우, 벽에 기댄 채 서로의 담배 연기가 허공을 올라가는 걸 바라봤다. 내가 담배를 껐다. 그 모습에 우성이 내 쪽을 의식했다.
“미안.”
“…….”
“그 뭐냐. 그땐 그러니까 술을 좀 마셨거든. 술기운에 그랬다고 해야 하나……. 진짜 미안하다.”
“…….”
“고백은 거절했어. 넌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역시 난 여자가 더 좋더라.”
―거절할 예정이지만.
남자와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최근 생각 중이지만. 거짓말을 했다. 우성이 짧게 타들어 가는 담배를 껐다. 우성은 끝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슈퍼를 다녀온 시헌이 다가왔다. 까만 봉투를 열심히 뒤지더니 뭔가를 꺼냈다.
오렌지 주스, 게토레이,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린이용 음료수였다. 시헌이 음료수를 하나씩 건넸다. 당연히 오렌지 주스와 게토레이가 나와 우성의 것일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자. 형 거. 오렌지 주스 좋아한다 그랬잖아.”
“이야, 시헌이 똑똑한데?”
우성의 손이 오렌지 주스 옆에 있는 게토레이에 닿았다. 아마 나에게 건네주려 했던 모양이다. 시헌이 우성의 손을 피해 게토레이를 품에 안았다.
“이건 내 거야.”
그리고는 다른 음료수를 내밀었다. 어린이용 음료수였다. 아무거나 사 오라고 했지만 정말 이런 걸 줄 줄이야. 마지못해 음료수를 받아 마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캐릭터가 그려진 음료수답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맛이 났다. 설탕에 물을 섞어도 이것보다는 맛이 있을 것 같았다. 시헌은 담담하게 캔으로 된 게토레이를 마시고 있었다. 풉, 옆에 있던 우성이 이내 미소를 지었다. 우성이 먼저 말을 걸었다.
“학원 간다며?”
“어, 응.”
“어디로 가냐?”
“형, 나 집에 갔다가.”
시헌이 끼어들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우성과의 대화가 끊길 정도는 아니었다. 서로 같은 학원 같은 선생님과 시간대라는 걸 알았다. 시헌을 집에 데려다주고 학원으로 가는 길, 나는 어쩌면 우성과 잘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착각이었다.
선배의 고백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역시 남자는 아닌 것 같다며.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선배는 그래도 종종 연락하고, 술을 마시자고 했다. 표면적인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으나 그 뒤로 선배와 패팅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선배와 있을 때면 늘 술기운이 붉어질 무렵 여자와 함께 나갔다. 그편이 마음이 더 편했기 때문이었다.
나와 우성의 관계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좀 불편하긴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도 그런대로 익숙해졌다. 적어도 예전처럼 말을 걸면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단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선배와 우성과의 관계였다. 선배는 매달리는 우성을 질려 하고 있었다.
늘 선배와 선배가 포함된 무리와 밥을 먹었던 우성이 며칠 동안 급식실에 내려가지 않았다. 차였다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한순간이지만 ‘선배와 사귀면 자신에게도 우성과 사귈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쪽팔렸다. 선배에게 우성이 차이는 전제를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는 엎드려 있는 우성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몇 번인가 무반응이던 우성이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씨발, 박기욱 뭐 하자는…!”
“밥 먹으러 가자.”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시계를 손가락질했다. 우성은 텅 빈 교실을 둘러보더니 뒷목을 긁적였다.
“너 같이 먹는 애들 있잖아.”
“상관없어.”
그 뒤 나와 우성은 밥을 같이 먹기 시작했다. 어느 날 급식실에서 선배들 무리를 마주쳤다. 같은 급식실에서 밥을 먹기에 언젠가 한 번은 마주칠 거란 예상은 했다. 우성과 학교에서 밥을 먹기 시작한 뒤로 나는 한 번도 선배가 부르는 술자리에 나간 적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가만히 바라봤다.
“기욱아….”
“선배….”
선배가 나를, 우성이 선배를 불렀다. 주변 눈치를 살피느라 목소리가 크지 않았고, 제대로 들은 사람은 나 외에 없었다. 나는 우성의 팔을 잡아당겨 배식구 쪽으로 갔다.
“야, 박기욱. 안 놔?”
“됐고. 가자고.”
내 손에 이끌려 가는 우성은 끝내 선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날, 우성과 선배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우성을 선배와 떨어트려야만 한다는 생각만으로 머리가 가득 찼던 나는 알지 못했다.
나에게 고백한 선배, 우성이 좋아하는―혹은 사귀었을지도 모르는 선배. 그런 선배에 관한 얘기는, 나와 우성의 대화에 있어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그 누구도 먼저 얘기를 꺼내려 하지도 않았고, 꺼내지도 않았다.
우성과 가까워지면 질수록, 잠시나마 선배와 패팅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남자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이 짙어져만 갔다. 집에 아무도 없는 저녁이었다. 가족 회식이 있는 날이었는데, 학원이 늦게 끝나 가지 못했다. 엄마는 늦게라도 오라고 했으나 그냥 집에 있겠다고 했다. 방문을 닫고 인터넷을 뒤적였다.
불법 사이트를 뒤지길 한참 간신히 동영상 하나를 찾았다. 친구들과 야동을 몇 번인가 본 적은 있었으나 이런 건 본 적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영상을 당겨 살폈다. 뭔가 하는 것 같은 장면에서 마우스를 뗐다. 하앙, 응, 낯선 신음에 이어폰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깜박하고 깜짝 놀라 방 안을 둘러봤다. 뒤늦게 이어폰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상을 중지하고 방문을 잠근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남자, 조금 예쁘장하게 생기긴 했으나 영상 속에 등장하는 사람은 누가 봐도 남자였다. 안는 쪽은 물론이거니와 당하는 쪽도 마찬가지였다. 영상 속 남자가 상대 남자의 페니스를 입안에 머금었다. 몇 번인가 선배가 해 준 적이 있는 행위였다. 남자가 상대의 페니스를 만지자 그날 술에 취해 선배가 내 페니스를 만지던 손길이 기억났다.
거칠지만 기분이 좋은 느낌이었다. 영상 속 안기는 남자의 체형이 미묘하게 우성과 닮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머리스타일도 좀 닮은 것 같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우성을 생각하며 자위를 하고 있었다. 남자의 페니스가 꼿꼿하게 설 무렵 나의 페니스 역시 금방이라도 올라올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영상 속 남자의 손가락이 상대의 엉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한 개, 두 개 개수가 늘어날수록 남자의 허리가 점점 휘었다. 하응, 응. 남자의 신음 소리가 커질 무렵 나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자위를 하던 손을 멈추며 영상에 집중했다. 주변에서 들은 말이 아주 없지는 않았으나 설마 진짜로 하겠어, 하는 의심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대 남자의 페니스는 큰 편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안에 넣기에 작은 편 또한 아니었다. 영상 속 남자의 페니스가 상대의 엉덩이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하앙, 앙. 페니스를 삼킨 남자는 목 끝까지 올라오는 신음을 내뱉었다.
조금은 불편한 신음, 그 순간 우성이 떠올랐다. 선배에게 안겨 신음을 내지르던 우성의 목소리가 영상 속 남자의 목소리와 섞여 들렸다. 넣는 곳이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면 남자끼리의 섹스는 여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긴 뭘 하든 섹스가 어디 가겠냐마는. 영상 속 행위가 거칠어질수록 내 손 또한 빠르게 움직였다.
“하으… 읏…!”
영상보다 조금 일찍 사정했다. 나른한 느낌에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내 영상 속 남자 또한, 사정했다. 몇 번인가 움찔거리더니 안에 그대로 싸는 것이 보였다. 남자의 페니스가 빠지자 안에서 흘러나온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책상 안쪽에 있는 휴지로 손을 닦아 버린 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한 번의 사정만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다.
이어폰을 바로 끼고 영상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영상을 보면 볼수록 우성을 떠올렸다. 입술을 맞추고 황홀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여 페니스를 핥는 그―우성을 보고 싶었다.
갈 때는 어떤 표정으로 갈까? 선배처럼 가슴을 느끼긴 할까? 뒤로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았다. 울까? 아니면 좋아할까? 별의별 생각들이 다 들었다.
시간을 보자 가족이 돌아올 시간이 다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영상을 끄고 노트북을 덮은 뒤 의자에 몸을 눕듯이 기댔다. 뒤늦게 에어컨을 틀지 않아 방이 덥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에어컨을 틀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하, 헛웃음과 함께 목표가 생겼다. 사실 남자라면 누구와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건, 울리고 싶은 건 다른 남자가 아닌 우성이었다.
한우성. 그를 가지고 싶었다. 미친 듯이 울리고, 또 범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선배 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 * *
평범한 날이었다. 전날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등교할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내가 교실에 들어선 순간 교실이 싸늘해졌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알았다. 내가 중학교 시절 사고를 치고 교무실에 불려갔다가 교실에 돌아왔을 때와 비슷한 순간이었다.
교무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눈빛, 대놓고 물어볼 수 없어 입을 다물고 있는. 하지만 장담컨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그렇다 할 싸움을 하거나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고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할 만한 일들이 없었다.
요 몇 주간 술을 마시거나 누군가와 문제가 될 만한 잠자리를 한 적도 없었다. 책상에 가방을 놓고 아침 조회를 했다. 분명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아침 조회였지만 묘하게 느껴지는 이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우성과 나의 눈이 맞았다. 우성이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안개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불안감은 수업 시간이 지나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교실에서뿐만이 아니었다. 급식실에서도 동급생 남학생들 여럿이 우리 둘을 은근슬쩍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대부분 고개를 돌리며 모르는 척했다. 북적거리는 급식실 안에서 나와 우성이 앉은 테이블만 휑하니 비어 있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왠지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의 옆으로 선배와 선배의 무리가 앉았다. 우성의 시선이 선배에게 닿자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밥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반찬들이 그대로였지만 상관없었다.
“가자.”
“벌써?”
나는 우성의 다 먹은 식판을 툭툭 건드렸다. 마른 체형 탓인지 우성은 밥을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다. 건너편 학생들의 시선을 눈치챈 우성이 마지못해 일어났다. 급식실을 나오는 내내 우성의 시선은 선배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밥을 많이 먹지 못해 배가 고팠다. 오랜만에 매점에 내려갔다. 매점 입구 한쪽에서 같이 밥을 먹었던 다른 남학생 무리를 발견했다. 남학생 무리 중 한 명이 눈치를 보더니 나를 불렀다. 나에게 할 말이 있어 보였다.
“갔다 와.”
우성이 신경 쓰지 말라며 등을 밀었다. 남학생들에게로 다가갔다. 멋대로 같이 밥을 먹지 않았으니 미안한 감도 있었다. 우성이 올라가고, 매점을 나와 학교 뒤편으로 갔다. 선생님들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이곳은 학생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CCTV 사각지대에 자리한 뒤 남학생 하나가 담배를 물었다. 서로 눈치를 살피며 얘기하기를 꺼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국,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끈 남학생이 한숨을 쉬며 뭔가를 보여 줬다.
동영상. 단순히 친구들끼리 휴대폰으로 돌려 보는 야동은 아니었다. 영상이 흔들려 잘 알아볼 수는 없었으나 나는 얼마 가지 않아 그것의 정체를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건 그러니까 그날 내가 집에서 본 것과 닮아 있었다. 주변을 의식해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영상의 마지막 장면을 본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영상 속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우성이었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영상이었지만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휴대폰을 열었다. 친구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영상을 보낸 것이었다.
“너 말야. 우리랑 밥 안 먹는 건 상관없는데, 한우성이랑은 다니지 마라. 영상 돌고, 걔 요즘 선배들이 벼른다고 말도 많더라.”
“…….”
“하, 솔직히 소문인 줄 알았는데. 게이 새끼 진짜. 너 여자 친구도 있잖아. 괜히 같이 다니다가 이상한 소문나지 말고. 야, 진짜 애들끼리 이거 너한테 보여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많이 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집에 가서 몇 번이나 그 영상을 다시 봤다. 힉교에서는 틀지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신음과 함께 사정하는 우성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허나 그게 다였다.
최악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고 있었다. 같은 반 남학생 중, 질이 나쁜 몇몇 남학생들이 우성을 건드렸다. 하지 말라고 다가가려 하자 다른 무리에 있는 남학생이 먼저 내 팔을 당겼다. 같이 밥을 먹던 다른 반 남학생과 친한 친구였다. 친구에게서 내 신경 좀 써 달라고 한 소리 들은 모양이었다.
“야, 박기욱. 둬.”
자리가 바뀌었다. 여태껏 여러 번 자리가 바뀌었지만, 위치만 바뀔 뿐 서로 짝이 아닌 적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우성은 질린다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일부러 짝이 된 사람과 자리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우성이 모를 리는 없었다.
우성의 짝이 된 사람을 한참이나 찾았다. 어째서인지 우성의 짝이 된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우성의 자리와 나의 자리는 극과 극으로 멀어져 있었다. 왠지 여기서 더 멀어지면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한 명씩 번호표를 물으려 하자 친구들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서로 번호표를 비교하더니 짝이라며 빨리 오라고 했다. 친구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저도 모르게 자리에 앉고 말았다. 우성의 짝은 우성을 괴롭히던 남학생의 옆이었다.
게이 새끼.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장난의 수위가 점점 높아져 갔다. 다가가려 했지만, 근처에 있는 친구들이 하지 말라며 말렸다. 점심시간, 이동 수업 시간이나 체육 시간에도 우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건 그러니까 이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런 건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학원이 끝날 무렵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전화를 받았다. 술을 마시자고 전화가 오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전화를 받는 순간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 나와.
‘나올래? 관심 있으면 와.’ 가 아닌 일방적인 명령이었다.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적으로 짐작했다. 집에 들렀다가 간다는 말을 남기고, 선배가 불러 준 곳으로 가는 내내 뭘 잘못했나, 무슨 일이 있었나를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지난번 고백을 거절한 일로 보복하는 건가. 그리고 그 불길한 직감은 선배가 나를 데리러 오라고 시킨 남학생을 만나는 순간 사실이 됨을 확신했다. 남학생을 따라간 곳은 제법 한적한 골목이었다. 재개발한다고 집 대부분이 비어 있었고, 그런 집들은 대게 불량 청소년들의 아지트나 노숙자들의 숙소를 겸하고 있었다.
대문이 뜯겨 나가고 군데군데 술병과 담배들이 굴러다니는 집이었다. 현관문이 스산하게 뜯겨 있었다. 낮은 천장, 전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으며, 벽지는 이곳저곳 뜯겨 그 흔적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한 건지 알 수는 없었으나 유일하게 남은 전등이 좁은 지하방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등을 떠밀리듯 안으로 들어가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자욱한 담배 연기와 술 냄새가 났다. 거실에 거의 반쯤 뜯기다시피 한, 누군가가 버렸다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의 낡은 가죽 소파 하나가 비뚤게 늘어져 있었다.
교복을 입은, 누가 봐도 중학생 같은 아이들도 몇몇 있었다. 소파에 자리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선배와 선배의 친구들이었다.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소파 옆으로 낯이 익은 남학생들을 발견했다.
같은 반, 최근 들어 우성을 괴롭히기 시작한 무리였다. 남학생 무리도 나를 보고 살짝 당황하고 있었다. 다리를 꼬며 담배를 피우던 선배가 담배를 끈 뒤 남학생 무리를 향해 손을 까닥였다. 눈치를 보더니 우성의 옆에 앉은 남학생 하나가 선배의 앞으로 다가갔다.
“야, 너네 같은 반이라며.”
“아, 네.”
남학생의 표정이 구겨졌다. 사실 남학생과 나는 같은 반이긴 하나 친하진 않았다.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좋은 것 또한 아니었다. 경계. 그 표현이 맞았다. 선배가 다시 담배를 물며 나를 바라봤다. 선배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다.
“기욱이 내가 좋아하는 동생이다. 괜히 괴롭히지 말고 친하게 지내.”
“네.”
남학생이 몰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힐끗 바라봤다. 좋아하는. 남학생은 단순히 선배가 나를 아낀다는 표현 정도로 말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표현이 어딘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선배가 뭘 하려는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야, 그 새끼 데려와.”
선배가 안쪽 방을 향해 손을 까닥였다. 그러고 보니 안쪽에도 인기척이 느껴지긴 했었다. 워낙 사람이 많은 데다 정신이 없어서 신경을 못 썼지만. 유일하게 있는 방 안쪽으로 큭큭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뭐지, 싶어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남학생. 같은 반 무리의 남학생들 또한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었다. 다른 남학생에게 반쯤 머리채가 잡혀 끌려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우성이었다. 이미 많이 맞은 모양인지 얼굴이며 옷이 엉망이었다. 선배가 옆에 있던 친구를 밀어내며 나를 불렀다. 소파 발밑에 있는 편의점 봉투를 뒤지더니 새 맥주를 뜯어 내밀었다.
“기욱아. 한잔할래?”
“크큭, 씨발 새끼. 이거 완전 제정신 아닌데? 야? 뒤졌냐?”
맥주를 권하는 선배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우성의 뺨을 치며 떠드는 남학생들의 대화가 정신없이 머릿속을 울렸다. 우성은 아무런 미동을 하지 않았다. 주먹을 쥐었다.
나, 사람 안 때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시헌의 말에 의하면 꽤 오랫동안 태권도를 해 왔다고 했다.
여러 남학생과 싸움을 해 왔지만, 복도에서 엎어치기를 하는 우성을 이길 수 없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상대할 수는 없을지언정 반항 정도는 해 보는 게 맞았다. 우성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좆같은 년! 뭘 꼬나보고 지랄이야?”
남학생 하나가 배를 향해 발길질했다. 우성이 앓는 신음을 내며 바닥을 굴렀다. 미친 존나 웃기네.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던 여학생 한 명이 친구와 웃으며 떠들었다. 신경질적으로 여학생을 노려봤다. 이건 아닌 것 같다. 좁은 방 안을 둘러봤다.
소파에 앉아 떠드는 선배, 이 상황을 중재할 수 있는 건 선배밖에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선배는 나에게 건네던 맥주를 다시 마시고 있었다. 맥주를 반쯤 마시던 선배와 나의 눈이 다시 맞았다.
“선배, 그만해요.”
“야, 좀 멈춰라.”
선배가 근처에 있는 남학생을 시켰다. 남학생 한 명이 다가가 그만하라고 하는데요, 하고 다시 말을 전달했다. 왜? 우성을 때리던 남학생들이 선배를 보더니 발길질을 멈췄다. 우성이 선배에게 차였다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문제는 차인 상대를 이렇게까지 때릴 필요가 있냐는 말이었다. 멈추라는 선배의 말에 조금은 상황이 나아질 줄 알았다. 그 역시 착각이었다. 약간 술에 취한 목소리로 선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기욱아.”
“…….”
“너도 맞을래?”
“아뇨.”
“그럼 신경 꺼.”
주변을 둘러봤다. 나보다 체격이 작은 애들도 있었지만, 아니거나 비슷한 애들도 여럿 있었다. 싸움이 난다 해도 일방적으로 당할 거라는 사실은 눈에 보였다. 아무도 없는 빈 개인 주택 반지하방에 있는 학생 중 누구도 내 편은 없었다.
복수, 그건 복수였다. 그 복수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복수인지 알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더 걸렸다.
* * *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였다. 우성의 왕따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너도 맞을래?”
선배의 그 말 한마디에 나도 우성과 똑같은 꼴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어른인 척했지만 결국은 17살 어린애에 지나지 않았다.
우성은 이제는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나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를 대신해 시헌을 데리러 나가는 것도 자연스럽게 그만뒀다. 시헌 또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우성이 태권도를 계속 나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또한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무리해서 학원 시간표를 바꾸면서까지 저녁반을 하겠다고 우겼던 시헌이 방과 후로 시간대를 옮겼기 때문이었다. 나와 우성이 같은 학교라는 걸 알고 있으면 나에게 물어라도 볼 법한데. 시헌은 끝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선배는, 우성을 때리는 날이 있을 때면 나를 불렀다. 술 마실 건데 마시고 싶으면 와, 그렇게 말하며 적당히 거절해도 눈 하나 끔벅하지 않는 선배였지만 그날만큼은 틀렸다.
“나와.”
그 명령을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내가 왜 여기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반강제적으로 우성이 맞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 경험은 몇 번을 해도 불편했다. 그날도 그랬다. 학원 끝나자마자 오라는 선배의 말을 듣고 마지못해 갔다.
골목에서 우성을 때리며 노는 학생들을 보며 구석에서 연신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평소에는 적당히 하던 것이 오늘따라 유독 정도가 심했다. 말리려던 찰나 골목 사이로 뜻밖의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시헌이었다.
나는 건물을 올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 시헌의 영어 학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가방을 멘 시헌이 우성을 알아봤다. 이내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고개를 돌리며 도망쳤다. 몇몇 남학생이 뭐냐며 저들끼리 떠들었다. 타들어 가는 담배에 손이 뜨거웠다. 나는, 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방학이 되어도 선배는 종종 우성을 불러냈다. 우성은 선배가 부르면 나왔다. 맞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오는 우성을 나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맞으며 선배를 바라보는 우성의 모습에 나는 욕정했다. 셔츠가 뜯어지며 엉망이 된 얼굴로 바닥을 기는 우성을 보며 범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느꼈다.
여자, 여자를 만났다. 친구들이 보고 적당히 하라고 할 정도였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섹스를 할 때마다 우성을 생각했다.
오랜만에 선배와 술을 마셨다. 우성은 없었지만, 그날 이후 선배가 불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평소처럼 술자리를 제안하는 선배를 두고 계속해서 거절하기도 힘들어 나간 자리였다. 오랜만이라는 선배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술기운이 어느 정도 올라왔을 무렵 자연스럽게 자리가 몇 번인가 바뀌었다. 선배가 내 옆에 앉았다. 다들 술에 취해 자기들끼리 떠드느라 바빴다.
“기욱아. 한잔 더 해.”
“저 내일 학교 가야 돼서……. 슬슬 일어나야 돼요.”
“그래? 같이 갈까? 택시 타고 가자. 어때?”
선배가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나에게 따라 주려던 술을 본인이 직접 마셨다. 테이블 밑으로 선배의 손이 기어들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선배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선배의 바지 사이에 내 손이 올라왔다. 살짝 발기된 선배의 물건을 느낄 수 있었다. 당혹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퍽, 소리가 나며 테이블과 부딪혀 술잔과 음식들이 흔들렸다. 시선이 순식간에 집중되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 왔다.
“저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집에 오자마자 욕실에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선배의 손길이 잊히지 않았다. 기분이 나쁜 건지 좋은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문 너머로 인기척이 들렸다. 옷을 대충 입고 욕실 문을 열었다. 배꼽이 다 보이는 흰 반소매 티에 반바지 차림, 앞머리를 까고 팩을 잔뜩 바른 누나였다.
“아! 놀랐잖아.”
누나가 한숨을 쉬며 욕실 바닥에 늘어진 옷가지들을 발끝으로 밀어냈다.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 저런 망나니 같은 여자의 어디가 좋다고 따라다니는 건지. 심지어 얼굴도 화장발인 주제에. 키 큰 거 빼고 가슴이 크길 해 뭐가 성격이 좋기를 해? 누나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야, 너 돈 안 내나?”
“돈? 무슨 돈?”
“야! 박기욱, 너 내 카드 가져갔잖아. 돈 내놔, 썅년아.”
그 말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엔가 한 번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가야 하는데 지갑이 보이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지갑을 찾기도 귀찮아 누나 카드를 대충 빼 왔던 기억이 있었다. 결국, 다음 날 지갑은 침대 밑에서 찾았다. 갚는다니까 진짜 말 많네.
“급해서 그랬어. 그리고 나 지금 현금 없다고.”
“나가서 뽑아 와.”
“하, 지금? 지금 몇 신 줄 알고? 안 가. 귀찮아. 나 술 마셨어. 잘 거야.”
“박기욱.”
“뭐, 왜?”
“동생들 보는 앞에서 처맞기 싫으면 닥치고 나가라.”
1층 방문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운오가 있었다. 거실 쪽으로 물을 마시고 있는 시헌도 보였다. 운오는 나를 보고 있었지만, 정작 시헌은 아무래도 좋은 듯 한숨을 쉬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 알았다고.”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들을 챙겨 방으로 돌아왔다. 아, 씨발. 뒤늦게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 박기욱! 빨리 안 나가?”
누나의 재촉이 들려왔다. 마지못해 잠바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 가게로 가 봐야 하나. 아직도 있으려나? 어쩔 수 없이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가 전화를 받았다. 지갑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가게에 있냐고 물어봤다. 선배가 가지고 있다고 했다.
― 기욱아. 너 어디냐?
― 집 앞인데요. 나왔어요.
― 나도 집이다. 읏, 우리 집으로 와.
묘한 소리가 귀를 거슬리게 했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선배의 집이 있는 건너편 동으로 몸을 돌렸다. 벨을 눌렀으나 반응이 없었다. 문고리를 잡자 문이 열렸다. 잠겨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뭐지? 조심스럽게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는 아무도 없는 모양인지 거실이 휑했다.
거실 소파 앞 테이블에 익숙한 지갑이 놓여 있었다. 내 지갑이었다. 일단 지갑을 챙겼다. 그래도 말은 하고 가야 할 것 같아 집 안을 둘러봤다. 1층 가장 안쪽 방에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선배, 지갑 가지고…….”
“하읏, 으응… 응. 으응….”
어디선가 들은 목소리에 몸이 굳은 듯 멈췄다. 이건 틀림없는 우성의 목소리였고, 옥상에서 들은 우성의 신음과 닮아 있었다.
질척한 소리가 거실까지 들렸다. 설마 하는 생각에 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면에 보이는 침대에 다리를 벌린 채 허리를 흔들고 있는 우성이 보였다. 선배의 페니스에 뒤를 뚫리며 앞을 만지는 우성의 모습은 너무나 낯설었다. 상상만 하던 그 장면이 눈앞에 있었다.
거짓말, 사정하며 쓰러지듯 몸을 기울이는 우성을 보며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걸 실감했다. 우성을 옆으로 누인 선배와 시선이 맞았다. 우성이 안달이 난 표정으로 선배를 향해 입을 내밀었다.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선배의 페니스가 다시 우성의 안을 찔렀다. 볼 수 없는 광경에 도망치듯 선배의 집을 빠져나왔다. 12시가 다 돼 가는 아파트 복도, 문을 닫고 벽에 몸을 기댔다. 얼굴이 뜨거웠다,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그 순간 선배에게 매달려 사정하는 우성의 모습을 보며 나조차 흥분하고 있었다. 젠장, 신경질적으로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전화를 걸려던 찰나 누군가에게 먼저 전화가 왔다.
씨발, 박하연 진짜.
― 박기욱! 너 돈 찍으러 갔냐? 빨리 안 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누나에게 다시 전화가 오기 전에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연상의 여자 친구였다.
― 어? 기욱아. 아직 안 잤어?
― 누나 지금 바빠요?
― 이제 집에 들어가려고. 왜?
― 만나요. 지금 당장.
대신할 뭔가가 필요했다.
* * *
방학이었다. 누나는 MT에 가고, 운오는 친척 집에 내려갔다. 부모님은 한참 시즌이라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둘이 같이 호텔을 잡았다고 했으니 일주일은 들어오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엄마의 지인 추천으로 과외를 받았다. 여선생이었다. 처음에는 장난이었으나 이내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녀가 윗옷을 벗고 침대에 눕는 순간 뒷감당이 걱정되긴 했으나 정신을 차릴 무렵 우리는 서로 엉켜 있었다.
선배, 저 좋아하세요?
쌤, 저 좋아해요?
밑에 깔린 그녀가 내 뺨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섹스 할 때면 습관적으로 상대에게 물었다. 상대는 매번 바뀌었으나 질문은 바뀌지 않았다. 모두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단 한 사람, 우성을 제외하고는 그랬다. 내가 내 밑에서 신음을 내지르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이유도 그랬다.
그녀와의 섹스에 한참 취해 있을 무렵 뒤늦게 시헌에 대해 떠올랐다. 이내 시헌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안심하기 무섭게 인기척이 들렸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시헌이라는 걸 눈치챘다.
하응, 응, 더…. 안달이 난 그녀가 허리를 흔들며 재촉했다. 그녀를 무릎 위에 올리자 그녀가 내 목 뒤로 매달렸다. 그녀를 안고 허리를 움직이던 중 책상에 놓인 낯선 문제집에 시선이 닿았다. 시헌의 영어 문제집이었다. 그러고 보니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녀가 누구 거냐며 물어 온 적이 있었다. 툭, 반쯤 닫혀 있는 방문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시헌이었다.
그녀와의 섹스를 멈출 생각은 없었다. 사정 직전에 끊는 건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움직임을 빨리했다. 그녀가 더욱 매달렸다. 그녀의 작은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사정을 했다. 콘돔을 침대 밑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녀가 키스하려 팔을 감았으나 슬쩍 밀어낸 뒤 방문을 활짝 열었다.
예상대로 시헌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 물을 마셨다. 신경질적으로 마신 물이 목 아래까지 흘러 내려왔다. 땀에 섞인 물을 닦고 등을 돌리자 계단 난간에 몸을 걸친 시헌이 보였다. 방문을 손가락질했다.
“문제집 가지고 가.”
고개를 끄덕인 시헌이 쪼르르 방 안으로 뛰어들어 가 문제집을 가지고 나왔다. 정신이 없어 보였다. 문제집을 품에 안은 시헌과 내가 부딪혔다. 시헌이 나를 슬쩍 올려다봤다. 내가 시헌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약간 불편해하는 기색이 느껴졌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녀와.”
“응.”
시헌이 신발을 챙겨 신고 집 밖으로 나갔다. 도어락 소리가 끊기고, 복도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땀이 섞인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우성이 좋아하는 선배, 선배가 좋아하는 나. 내가 좋아하는 우성, 그리고 마찬가지로 우성을 좋아하는 시헌. 이 얼마나 좆같은 관계일까.
장병욱. 동생을 가지고 싶다고 했던 어린 날의 기억들. 그리고 생긴 남동생. 시헌. 어째서일까? 고작 3살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운오는 어딘가 불편했다. 단순히 성격에 차이가 있는 것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소유욕, 동생을 가지고 싶었다. 병욱과 똑같은 남동생을. 시헌은 그랬다. 운오는 아니었다. 이젠 그래. 그러니까 한우성, 그를 원했다. 선배, 그 개자식을 어떻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선배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렇다 할 만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갈증은 더욱 심해졌고, 그럴 때마다 더 많은 여자를 만났다. 쟤 게이라며? 영상 봤어? 우성이 지나갈 때마다 떠들어 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었다.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그럴 만한 용기는 없었다. 한동안 우성과 같이 다녔던 나에게도 게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의 근원은 알 수 없으나 그 사실을 눈치챔과 동시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을 포장하기에 바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말하던가. 우성을 때리던 게 불편했던 처음과 달리 시간이 지나니 그건 그거대로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맞고 있는 우성을 보며 속으로 꼴린다는 생각을 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과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 그런 우성을 생각하며 여자와 섹스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선배가 빨리 졸업하기를 원했다. 고3인 선배가 졸업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기다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라고?”
“새끼, 뭐긴 뭐야. 한번 해 보자는 거지. 그 게이 새끼. 어차피 선배랑 존나 굴렀을 거 아냐. 그럼 한 명이든 두 명이든 뭔 상관이냐? 한우성 그 새끼. 솔직히 사내놈치곤 반반하긴 하잖아?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큭큭, 발정 난 새끼.”
“좆까. 궁금해서 그런 거야. 너도 한다며.”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들끼리 떠드는 대화를 들었다. 걸레네 대걸레, 후장에다 박으면 정말 아프지 않음? 몰라 씨발, 내가 박히는 거 아니잖아. 음란한 용어가 섞인 대화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원래부터 입이 걸레인 녀석들이었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심했다. 더 기가 막힌 건 선배 또한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듣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친 것 같았다. 친구 한 명이 가만히 있는 나를 쿡쿡 찔렀다.
“너도 할래?”
“기욱인 여자 좋아하잖아.”
선배의 대답이었다. 친구의 말을 들은 선배가 담배를 끄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호모피아냐? 뭐 어때, 하고 같이하자며 제안을 해 왔다. 애들이 떠드는 사이 선배는 말없이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선배에게 다가갔다. 담배를 막 입에 문 선배가 위아래로 나를 훑었다.
그 시선이 묘하게 야릇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할 말이 있다는 내 행동에 선배와 나는 좀 더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성년자의 섹스, 술, 담배, 주민등록증 위조, 폭력, 내 나이대 아이들이 많이 하거나 할 수 있는 불법은 대부분 저질러 본 나였지만 그래도 강간―그것도 단체로―는 아니었다.
상대가 남자라고 해서 괜찮다고? 미성년자인 여자와 섹스를 하는 건 불법이고, 미성년자인 남자와 섹스를 하는 건 합법이라는 건 대체 어떤 머리에서 나온 논리인 거지? 결코, 어느 것도 합법이 될 수 없었다. 내 꼴에 법을 논하는 것도 웃기는 처지지만 이건 그러니까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심각한 범죄 행위였다.
“선배, 하지 마세요.”
“왜?”
긴장이 잔뜩 서린 나와 달리 선배는 아무렇지 않았다. 왜? 그 한마디에는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네가 뭔데 참견하냐, 어차피 우성은 남잔데 뭔 상관이냐. 그 뜻 하나하나를 반박할 만한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불쌍하잖아요.”
한참 만의 생각한 내 대답에 선배가 피식, 하고 웃으며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선배의 목소리가 귓가를 속삭였다. 기욱아,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 속박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내 거 내가 맘대로 하겠다는데.”
신경 쓰지 않으라는 소리였다. 담배를 끈 선배의 손이 살짝 늘어진 티셔츠 사이로 들어와 가슴을 만졌다. 거친 손이 가슴 부근을 쓸어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골목의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안쪽, 떠들고 있던 무리의 목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았다. 발걸음을 뒤로하던 중 벽에 몸이 닿았다. 이제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읏, 선배의 혀가 목덜미 근처를 핥았다. 손이 금방이라도 벨트를 풀 것같이 움직이고 있었고, 다리 사이에 닿아 있는 선배의 페니스는 금방이라도 부풀어 오를 것처럼 움찔대고 있음이 느껴졌다. 눈을 살짝 아래로 깔아 선배를 내려다봤다.
후, 숨을 들이쉬며 붉게 상기된 얼굴. 입술을 내밀어 핥는 선배의 모습은 한참 흥분한 여자와 닮았다고 느껴졌다. 아니, 다를 게 없었다. 선배가 입술을 맞추려 하자 나는 손을 입 사이에 댔다. 선배의 입술이 내 입 대신 손바닥에 닿았다.
아쉽다는 표정을 짓더니 목 뒤로 손을 감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선배는 아직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니, 고백을 거절한 이후에도 선배가 보내온 시선들을 내가 일부러 무시하고 외면하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좋아한다.”
“…….”
“네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게.”
법적 성인, 누가 봐도 남자가 틀림없는 사람이 같은 남자에게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웃겼다. 나는 달라붙는 선배를 약간 밀어냈다. 과정이야 어떻든 강간은 정도가 지나쳤다. 선배는 내가 자신을 밀어낸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꼴리는 여자 같은 얼굴이나 하고 앉아서는.
“안 할 거예요?”
“당연하지.”
그럼 하지 마……. 말이 채 나오기도 전에 선배의 벨트가 풀리며 바지가 반쯤 아래로 내려갔다. 뭐라고 할 틈도 없이 부풀어 오른 선배의 드로어즈를 봐야만 했다.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이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선배의 손이 내 머리를 잡아당겼다.
반강제로 선배의 드로어즈에 입술이 닿았다. 고개를 들려 하자 머리를 누르는 힘이 느껴졌다. 선배의 팔 위로 손을 올렸다. 당장 힘 싸움만 놓고 본다면 이길 자신이 없었다. 머리 위로 기가 막힌 말이 들려왔다.
“빨아.”
“무슨…!”
“그럼 관둘게.”
선배의 손이 막무가내로 머리를 흔들려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켰다. 미친 새끼, 최근 남자도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건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같은 남자의 것을 혀로 핥아 대는 취미는 없었다. 적어도 선배와 패팅을 할 때도 이 짓은 안 했다. 선배 때문에 흐트러진 옷들을 바로 한 뒤 선배의 손을 피해 몸을 돌렸다. 이미 우성의 강간을 모의하는 선배를 말려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 가 보겠습니다.”
“기욱아, 박기욱.”
선배가 내 등을 안았다. 마치 청춘 영화 같은 한 장면이었으나 현실은 영화보다 더 독했다. 이건 청춘이니 우정이니 하는 장면이 아니었다. 엉덩이 근처로 선배의 페니스가 닿았다. 소름이 끼쳤다. 두 번의 섹스, 선배는 우성에게 박는 사람이지 박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아닐 거로 생각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자에게 안겨서 여자처럼 교성을 지른다고? 씨발, 사내새끼 자존심이 있지 그런 짓은 아니었다.
“가지 마.”
그런 선배를 밀어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도망쳤다.
* * *
일주일 후, 우성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말에 우성의 옆에 앉은 남학생이 큭큭대더니 아프다고 했다. 책상 밑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 뒤로 몇 번인가 선배가 불렀으나 선배와는 만나지 않았다. 보복이 올까 두려웠으나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친구들이 “너 왜 안 왔냐?” 하고 묻는 정도가 다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선배가 아끼는 친한 동생 정도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우성이 다니던 태권도에 갔다. 텅 빈 체육관, 시헌도 없고 우성도 없었다. 안을 둘러보는 내 모습을 본 사범님이 다가왔다. 고개를 숙였다. 몇 번인가 시헌을 데리러 오면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네, 하며 살갑게 말을 붙였다.
“시헌이 요즘 오후반인데.”
“우성인 오늘 안 나왔어요?”
“아, 한우성이. 걔 오늘 아프다고 안 나왔어. 며칠 갈 거라던데. 같은 학교지? 둘이 친해?”
“그냥 그래요…….”
싸웠어? 사범님의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럴 수도 있다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위로가 되지 않았다. 태권도를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무작정 근처를 돌았다. 병원들이 밀집한 사거리 근처에서 우성과 만났다. 저녁이었지만 우성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약 봉투를 들고 있는 우성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 사이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모르는 사람들, 선배도, 친구들도 없고, 학교도 아니었다. 눈치를 볼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도망치려 하는 우성의 팔을 붙잡았다. 소매가 말리며 손목이 묶인 자국이 선했다. 입가도 텄고, 눈도 퉁퉁 부어 있었다. 맞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지만.
“너 괜찮냐?”
질문에 대답은 발길질이었다. 무릎을 찼다. 간신히 비명이 나는 걸 막았으나 나는 한동안 무릎을 붙잡으며 고통을 호소해야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봤다. 한 여대생이 괜찮냐고 물어 왔다. 식은땀이 흐르는 걸 참으며 괜찮다고 말한 뒤 일어섰을 때 우성은 사라진 뒤였다.
친구들과 만났다. 계속해서 나오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우성은 없었지만, 우성에 대해 떠들었다. 그날, 우성을 강간한 내용이었다. 몇 번이나 그 입을 찢어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는지 몰랐다. 동영상을 찍었다며 저들끼리 웃는 순간은 내가 어떻게 서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선배는 없었다.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냐는 내 목소리에 선배는 집이라고 했다.
― 금방 갈게요.
그 말을 남기고 택시를 탔다. 친구들의 말들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한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보라며 보내 준 영상, 우성의 동영상이었다. 뒷좌석에 앉아 눈치를 보고 영상을 튼 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덮었다. 무작정 선배의 집으로 갔다.
벨을 누르자 편한 옷차림의 선배가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문을 닫고 넓은 집 안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키스했다. 씨발,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보자. 처음에는 오기. 그다음은 위치 선점이었다. 허리를 안고 선배를 천천히 애무했다.
선배 또한, 지지 않겠다며 혀를 감아 왔으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승리였다. 선배의 숨이 점점 가파르게 올라오는 게 느껴지자 입천장이며 혀 안쪽을 꼼꼼히 핥았다. 숨이 막힌 모양인지 선배가 나를 슬쩍 밀어냈다. 나는 입가에 묻은 타액을 엄지 끝으로 닦았다.
우린 자연스럽게 거실에 있는 소파 앞에 서 있었다. 선배가 소파에 앉아 다리를 벌렸다. 천천히 무릎을 꿇어 선배의 앞으로 다가갔다. 머리를 잡는 남자의 손, 적어도 여자처럼 작은 느낌은 아니었다. 선배의 허벅지를 살짝 쓸었다.
거칠한 느낌이 영 별로였으나 이 이상의 방법은 없었다. 손을 천천히 선배의 바지를 아래로 내렸다. 그날과 비슷하게 드로어즈 차림의 선배를 올려봤다. 부풀어 오른 드로어즈 앞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기욱아.”
“…….”
“할 수 있지?”
손끝이 점점 선배의 드로어즈를 내리고 있었다. 허벅지에 걸쳐짐과 동시에 발기된 선배의 페니스가 입술과 뺨 사이를 스쳤다. 영상, 선배의 집에 오르기 전 영상을 봤다. 소리는 듣지 못했으나 지난번 돌았던 영상보다 우성의 모습은 노골적으로 찍혀 있었다.
체격이 비슷한 탓인지 선배의 페니스는 생각 이상으로 컸다. 솔직히 말하면 나 외에 발기한 다른 사람의 물건을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친구끼리도 그런 짓은 잘 안 했다. 영상을 몇 번인가 보긴 했으나 불편해서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
아무리 섹스를 많이 해 본 나지만 이쪽으로는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받아 본 적은 몇 번인가 있지만. 근데 걔들은 여자잖아. 하아, 머리를 잡고 흔들던 선배가 낮게 말했다.
“완전히 넣어. 입안에. 혀 쓰고.”
“으읍…, 읍….”
“하으, 으, 그래…. 그렇게.”
점점 더 발기되는 선배의 페니스에 눈을 질끈 감았다. 숨이 막혀 왔다. 입을 빼내려던 순간 흥분한 선배가 내 머리채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빨리 사정을 하라고 생각했으나 선배는 쉽사리 사정하지 않았다. 젠장, 사람을 오나홀처럼 취급하는 선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흐읍… 읍!”
“하, 윽, …아. 기욱아… 으읏!”
사정 직전에 간신히 입을 빼냈다. 선배가 손으로 제 페니스를 만졌다. 입 근처로 정액들이 엉망으로 튀었다. 손등으로 닦았으나 이미 닿아 버린 입가에 불쾌한 느낌이 그대로 남았다.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벨트를 풀고 선배의 위로 올라탔다. 잔뜩 흥분한 선배가 입술을 맞추려 하자 선배와 내 입 사이에 손을 끼웠다. 선배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손등으로 입을 가린 채 선배를 불렀다.
“선배.”
“…….”
“저 안기는 짓은 안 합니다.”
이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양보할 수 없었다. 선배가 내 손바닥을 핥았다. 이내 발을 움직이더니 허벅지에 걸린 옷들을 소파 밑으로 완전히 털어 냈다. 손을 치우고 선배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좆같은 년, 흥분한 표정하고는. 선배의 뺨을 쓸었다.
거칠한 느낌이 났지만, 여자에게 하는 것처럼 상냥하게 만졌다. 바지 버클을 내렸다. 선배만큼은 아니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금방이라도 발기할 것 같은 느낌은 있었다. 선배의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어깨 위로 걸쳤다. 손가락을 선배의 입안에 넣었다. 남자여도 혀는 똑같은지 여자처럼 입술을 쪽쪽 빠는 느낌이 제법 꼴렸다. 다른 손으로 페니스 안쪽 엉덩이를 만지작거렸다.
“아니면 안 합니다.”
“…….”
“그래도 할 거예요?”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 마음대로 하라지. 선배의 다리를 좀 더 벌리고 안쪽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애무했다. 여자와도 몇 번인가 해 본 적이 있었다. 으응, 손가락 한 개가 선배의 안으로 들어갔다. 뭔가. 생각보다 쉽게 들어가서 놀라는 중이었다.
슬쩍 움직이자 허리를 살짝 튕기는 게 제법 볼만했다. 선배의 페니스를 만져 가며 손가락을 깊숙이 넣었다.
“하응, 응, 기욱아… 으응.”
“하, 선배. 좋아요? 씨발, 좋냐? 좋냐고.”
“흐읏, 읏, 좋, 좋아.”
말투가 약간 거칠어졌다. 손가락 사이로 침을 흘리는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새끼 존나 좋아하네. 내 첫 섹스가 이런 녀석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남자와의 첫 섹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첫 섹스를 한 여자와 결혼하라는 법도 없는데, 하물며 남자는 오죽하겠는가. 손가락의 개수를 늘리며 안쪽을 헤집었다. 움직임을 멈추자, 선배가 먼저 허리를 흔들며 움직였다. 하, 선배의 입에서 손을 빼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상대가 선배든 아니든 남자는 남자였다.
정복욕, 첫 섹스를 할 때만 한 흥분이 감돌았다. 세 번째 손가락을 넣었다. 일부러 안쪽을 강하게 찔렀다. 허리를 흔들던 선배의 움직임이 멈추며 다리가 몸에 닿았다. 본능이라고는 하나 오므려지는 다리는 꽤 거슬렸다.
“선배, 더 벌려요.”
“흐으, 읏, 으응….”
“다리 벌리라고 씨발년아.”
나는 섹스를 하면서 험한 말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흥분해 거친 섹스를 한 적은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거친 말을 내뱉지는 않는다. 본래라면 사랑하는 사이끼리 하는 행위, 상대를 사랑하진 않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사랑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맞았다. 허나 남자와의 섹스에서 굳이 그런 귀찮은 짓을 해야 할까 싶었다.
꼬면 관두던가. 막무가내식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선배는 아무렇지 않았다. 되려 흥분한 느낌이 들었다면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이쯤 되면 변태 새끼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런 놈과 섹스를 하는 나도 정상은 아니었다. 선배가 제 손으로 허벅지를 벌렸다. 허나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강제로 선배의 다리를 더 옆으로 벌렸다. 턱밑으로 선배가 묻히고 간 정액이 남아 있음을 느꼈다. 신경질적으로 정액을 닦은 뒤 가는 눈으로 선배를 내려다봤다. 한 손으로 다리를 벌리고, 다른 손으로 자신의 페니스를 흔들며 남자의 손가락을 머금고 있는 선배의 모습은 내가 만난 그 어떤 여자들보다 꼴렸다. 여자들은 페니스가 없잖아. 그래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른다. 손가락을 빼냈다.
축축하게 젖은 것이 여자와 크게 다를 게 없는 느낌이 들었다. 숨을 고른 선배가 안쪽 방 안을 힐끗거렸다. 필시 방으로 옮기자는 신호였다. 닫혀 있는 방문, 허나 그 방이 우성과 섹스를 했던 그 방이라는 걸,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배의 구멍 안을 만지작거렸다. 금방이라도 손가락을 빨아들일 것만 같이 움찔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할 건데요.”
“흐읏, 응.”
“꼬면 관둬.”
“흐, 기욱아. 아냐. 하자. 계속해.”
선배가 스스로 다리를 벌렸다. 어차피 작정하고 온 거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선배의 안에 페니스 끝을 맞췄다. 움직이려는 선배의 허벅지를 붙잡아 당겼다.
조금 두꺼운 데다 무게감이 있어 힘이 들었지만 그런대로 할 만은 했다. 순식간에 절반이 안으로 들어왔다.
“흐으읏! 읏….”
“읏, 씨발… 존나 조이네.”
남자의 안이라는 건 생각 외로 거친 면이 있었다. 힘이 부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젤이라도 쓸걸, 하고 후회가 들었다. 허나 우성을 안은 그 방에서 섹스 할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 선배의 허벅지가 움찔거리고 있었다. 옷을 들어 올려 완전히 벗겼다. 나도 벗을까 살짝 고민이 들었다.
조금 덥긴 했으나 움직이는 데 불편한 것도 아니었기에 내버려 뒀다. 여자와의 섹스였다면 거침없이 벗었을지도 모른다. 옷을 입은 채,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남자를 깐다는 희열은 제법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려는 선배 때문에 슬슬 짜증이 났다.
“한 번만 더 물러나면.”
“하으윽! 으읏….”
“섹스고 좆이고 아무것도 없는 거야.”
눈물이 고인 선배의 뺨을 툭툭 건드리며 말을 이어 갔다.
“싫지? 싫으면 해 줄 때 잘해.”
“흐으, 더… 더 깊이…… 으읏.”
거 씨발 존나 귀찮게 굴어 대네. 선배의 양팔을 잡아당긴 뒤 허리를 움직였다. 선배의 허리가 튕기며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흐, 생각보다 강한 조임에 완전히 안에 들어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선배는 숨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움직이지 않은 채 잠시 선배를 내려다봤다. 눈이 마주친 선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순간 우성이 떠올랐다. 우성과 섹스를 할 때의 선배도 이런 표정을 지을까? 박히는 건 아니니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나. 패팅을 할 때도 선배의 가는 모습을 보며 종종 우성을 생각하고는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 꽤 오래 않았지. 좀 뻑뻑하긴 했으나 일단 박으니 역시 남자나 여자나 그게 그거였다.
차이가 있다면 남자를 안는다는 쾌락과 정복감, 그리고 섹스를 할 때 조금 힘이 든다는 것 정도? 선배가 아니더라도 남자도 괜찮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한계까지 들어가 있었지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배의 조임과 이런저런 생각에 슬슬 한계였다.
“…아. 기욱아…, 아응, 으응….”
“하으, 읏, 선배… 저 좋아? 어?”
“하, 으으, 흣, 좋아. 좋아… 하앙!”
“읏…, 흐, 하읏!!”
선배의 안에 사정했다. 아 씨발, 뒤늦게 콘돔을 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안에 사정해도 되는 건가? 일단 무작정 페니스를 뺐다. 움찔거리는 선배의 구멍에서 흰 정액이 흘러나와 허벅지를 적셨다. 선배는 자기 페니스를 만지고 있었다.
사정한 모양인지 배 부근에 마찬가지로 정액이 묻어났다. 선배가 팔을 내밀어 목에 안겼다. 가벼운 키스를 한 뒤 땀에 젖은 선배의 머리를 살짝 뒤로 넘겼다. 여자와 달리 길지 않아 머리가 거의 넘어가지 않았다.
“좋아?”
“후우, 좋아. 씨발, 존나 좋아.”
선배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했다. 본인이 저리 좋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한 번 가지고는 만족이 되지 않았다. 등을 돌린 뒤 예고 없이 선배의 뒤를 박았다. 콘돔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좋아. 사랑한다. 기욱아 좋아해.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가지고 싶은 건 가져야 적성이 풀렸다. 좋아한다. 이 얼마나 쉬운 감정일까. 섹스하고, 조금만 달콤한 말을 내뱉으면 넘어온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단 한 사람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날, 선배의 집에서 미친 듯이 섹스를 했다. 얼마나 오래 했는지, 또 선배의 안을 얼마나 헤집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선배의 안에 있는 우성이라는 존재를 지워 버리고 싶었다.
한우성, 그의 이름이며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범했다. 섹스가 거의 끝나 갈 무렵 쾌락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선배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그―선배는 더는 우성의 것이 아니었다.
* * *
“선배? 무, 무슨 말을…….”
“하아, 미안했다.”
“그, 그게 아니잖아요! 나, 나 좋아한다면서……. 자, 잘할게요. 네? 선배. 왜 그래요. 흐윽… 제가 잘할 테니까…….”
“씨발, 아니. 한우성. 네가 날 어떻게 생각했는진 모르겠지만 난 너 가지고 논 거야. 그러니까 미안하다.”
“아, 알고 있어요. 그래도… 그래도 흐으윽… 선배. 선배 제발. 제발. 잘못 말했다고 해요. 네?”
선배가 우성의 손을 쳐 내며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뭐든 했다. 선배가 원하는 거, 하라는 건 뭐든 했다. 왕따를 조장하며 동영상을 뿌린 사람이 선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다. 선배만 옆에 있으면 됐다. 불과 일주일, 며칠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하루아침에 잘못했다며 사과하는 선배를 우성은 이해할 수 없었다. 텅 빈 아파트 단지 안으로 우성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흐윽, 선배. 어린아이처럼 우는 우성을 두고 선배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다.”
“흐윽… 선배, 선배, 잘못했어요.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뭐든 할 테니까……. 흐으윽….”
아파트 단지 안쪽으로 기욱이 천천히 걸어왔다. 서, 선배…. 우성이 내미는 손을 지나친 선배는 기욱을 보고 있었다. 울고 있는 우성을 슬쩍 본 기욱은 선배를 향해 말을 걸었다. 말했어요? 뒷목을 살짝 긁적이며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던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욱이 손을 살짝 까닥였다.
선배의 손이 기욱의 목을 둘렀다. 선배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린 기욱이 적당히 입술을 맞췄다. 일부러 얼굴이 더 잘 보이게끔 각도를 틀었다. 키스하며 우성의 상태를 살폈다. 기욱아. 선배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함과 동시에 우성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 * *
학교 폭력 신고가 들어갔다. 반 애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하며 형사들이 왔다 갔다 했다. 우성의 옆에 앉아 우성을 건드린 아이들이 강간에 대해 말하며 입을 맞춰야 하는 게 아니냐고 떠들었다. 선생님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설문 조사를 하는 내내 몇몇 아이들이 나를 힐끗거렸다.
나는 설문 조사지를 백지 상태로 냈다. 우성을 때린 아이들이 교무실로 불려 갔다. 나 역시 불려 갔다. 예상하지 않은 결과는 아니었다. 누나가 아닌, 학부모가 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부모님의 귀에 들어갔다. 병원에 들렀다가 조금 늦는다고 했다. 집을 나서기 전 아빠가 나를 따로 불렀다.
“때렸냐?”
“알았다. 가라.”
아빠가 손을 저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평소처럼 등교했다. 1교시, 우성은 없었다. 3교시가 지날 무렵 여학생 한 명에게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아빠는 병원 내 몇 명의 의사들과 함께 학교에 왔다. 우성의 진단서와 상처에 대한 자문이라며 데려온 그 의사들이 동네 의사들이 아님은 분명했다.
가해 학생의 부모 중에서 변호사가 있다고 했으나, 아빠가 의사들과 함께 데려온 병원 내 고문 변호사이자 유명 로펌 소속 변호사를 이길 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같은 반, 가해 학생들의 대부분이 전반을 하거나 전학을 갔다. 유일하게 나와 선배만이 아무런 처분을 받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고백한 우성이지만, 나와 선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간 사실 또한 드러나지 않았다. 반대하는 부모들과 달리 가해 학생들은 순순히 전학을 가겠다고 했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고는 하나 강간 사실이 드러나면 더 큰 파문이 일 거라는 걸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나의 무혐의 처분을 듣고 학교에서 같이 다니던 친구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안심했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그 자리에 있긴 했지만 때린 건 아니거든. 애당초 원해서 있었던 자리도 아니었고.
우성의 학교 폭력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 1학년 방학식, 어느 정도 학생들이 빠진 텅 빈 복도에서 우성을 만났다. 도망치려는 우성의 팔을 붙잡았다. 선배는 더 이상 우성을 건드리지 않는다. 우성을 괴롭히는 애들도 없다. 단, 한마디. 그 말 한마디면 모든 게 끝났다. 우성아, 한우성.
“너 나 좋아하냐?”
사랑한다는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내 주변을 한 달 동안 머뭇대며 수줍게 고백하는 여학생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헤어지자고 할 때 매달리는 그녀는 짜증이 나고 귀찮을 뿐이었다.
상대는 바뀌지만 하는 말은 같았다. 좋아한다고.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러나 이어 들려오는 말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쓰레기 같은 자식.”
“…….”
“재밌냐?”
“…….”
“사람 새끼 하나 병신 만드니까 좋냐고!!”
“…….”
“가.”
“…….”
“꺼져. 꺼지라고 씨발!!!”
―착각이었다. 꺼지라며 소리를 지르고 도망친 건 내가 아닌 우성이었다. 무슨 일이야? 지나가는 여학생들이 뒤늦게 복도로 왔으나 우성은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쟤, 박기욱. 그 있잖아. J대 병원장 아들. 대박. 분위기가 심상찮은 걸 눈치채고 여학생들이 계단을 내려갔다.
착각. 그러니까 그건 오만이었다. 여태껏 그래 왔기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태껏 만난 사람들이 모두 그래 왔기에 우성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다시 생각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그를 가질 수 있을까.
소유욕,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집착하고 싶었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으며 남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방법을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2학년, 우성과 같은 반이 되었다. 우리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새로 사귄 반 애들과 지냈으며 우성은 여전히 혼자였다. 보이지 않는 왕따, 1학년처럼 폭력적이거나 대놓고 행하는 왕따는 없어졌으나 그뿐이었다.
1학년 때와의 차이가 있다면 학교 밖, 어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행해지는 일들이었다. 2학년 때도 우성이 게이라는 소문은 여전했다. 그 소문의 주범은 나였다. 우성에게 조금이라도 접근하는 녀석이 있다면 따로 불러냈다.
몇 번인가 하고 나니 소문이 났는지 아무도 우성을 건들지 않았다.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아무에게도 주지 않는 편이 나았다. 욕을 하든, 원망하든,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 그 시선이 닿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3학년,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여전히 이어졌다. 2년, 기와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학원을 끝나고 나올 무렵 혼자 집에 가는 우성을 발견했다. 말없이 우성의 뒤를 밟았다. 나를 본 우성이 걸음을 빨리하자 나 역시 걸음을 빨리했다.
야, 얘기 좀 해. 몇 번이나 우성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육교에 올라갔다. 우성의 팔을 붙잡으려던 순간 머뭇댔다. 지난번처럼 엎어치기를 당할 것 같았다. 우성의 어깨와 몸을 붙잡아 돌렸다. 눈가가 퉁퉁 부었다. 언제, 어디서 울었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우성의 몸이 육교의 난간에 반쯤 걸쳐져 있었다.
“우성아, 한우성.”
“…….”
“좋아한다고 말해.”
서로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사실은 이게 아니었다. 우성을, 좋아했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고,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우성이 허탈하게 웃었다. 내 몸을 살짝 밀었다. 뒷걸음질 침과 동시에 우성의 몸 또한 뒤로 흔들렸다. 떨어지는 순간 한마디도 하지 않던 우성의 입술이 조그맣게 움직였다.
“나는…….”
―너를 저주해.
밑으로 요란한 클랙슨 소리가 났다. 쿵, 소리와 함께 육교를 지나던 사람들의 시선이 아래로 닿았다. 아래가 난리가 났다. 모여드는 사람들 틈 사이로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난간 쪽으로 걸어가 몸을 숙였다. 커다란 트럭 사이로 기이하게 다리가 꺾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의 우성이 있었다.
“…….”
사고였다. 워낙 오래된 데다 철거를 앞둔 육교였다. 우성이 떨어질 때 동시에 난간이 뜯겨 나갔다고 했다. 우연, 나는 그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 난간이 뜯어지지 않았더라도 그날 우성은 육교에서 뛰어내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