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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각자의 길 (9/83)

Chapter. 8 각자의 길

아침, 학교에 가려고 일어난 시헌과 기욱이 마주쳤다. 시헌은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게 가방을 메고 기욱을 지나쳐 갔다. 현관에 앉아 신발 끈을 매는데 기욱이 시헌을 불렀다. 7시 20분, 시간을 확인한 시헌이 무슨 일이냐며 몸을 돌렸다. 기욱은 새로 탄 커피를 홀짝이며 몸을 살짝 벽에 기댔다.

“학원.”

“빠졌다고 전화 왔더라.”

시헌은 잠시 생각했다. 엄마와도 얘기했다. 시헌은 요 근래 학원을 빠진 기억이 없었다. 아, 한군데 있었군. 시헌은 개강 이후 한 번도 나가지 않은 학원이 딱 한 군데 있었다. 방과 후 수업과 시간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신발을 다시 벗은 시헌은 방으로 돌아가 책상을 뒤졌다. 책상 서랍 안쪽에서 2학기 기말고사 성적표가 나왔다. 시헌이 기욱에게 성적표를 내밀었다.

‘1/324’라는 숫자가 눈에 띄었다. 기욱은 성적표를 접어 테이블 위로 곱게 올렸다. 슬슬 나가야 할 시간이 된 시헌은 다시 신발 끈을 맸다. 성적만 잘 나오면 입을 다물어 주겠다는 말이 틀리진 않았는지 기욱은 별다른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거기 그만둘 거야.”

“바꿔 줄까?”

“필요 없어.”

시헌은 집을 나왔다. 방과 후 수업 시간. 아니나 다를까 네 사람은 방과 후 수업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다. 열심히 수업을 듣는 서진과 은소, 그 뒤로 이어폰을 끼며 중간중간 칠판을 힐끗거리는 시헌. 현정은 아예 수업도 듣지 않은 채 엎드려 자고 있었다.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현정과 시헌이 왜 이 수업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헌은 이어폰을 귀마개 대신 끼고 학원 숙제를 하고 있었다. 노래가 들리지 않는 이어폰 너머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시헌은 쉬는 시간이 된 줄도 몰랐다. 앞자리에 앉은 서진과 은소가 몸을 돌렸다. 서진이 시헌의 책상에 있는 문제집을 멋대로 훑었다. 선생님이 사 오라고 했던 문제집과는 전혀 다른 문제집이었다.

“수업 듣는 줄 알았더니 다른 거 푸냐?”

서진은 시헌이 살짝 못마땅했다. 시헌의 문제집을 빼앗아 좀 더 자세히 훑었다. 아무리 봐도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책 표지를 보자 고등학교 2학년용이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어이가 없었다. 서진은 시헌이 시험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요 며칠 피곤해하는 이유를 눈치챘다.

“학원 거야?”

“응.”

서진이 들고 있던 문제집을 시헌에게 돌려줬다.

“수업 안 들을 거면 굳이 여기 있을 필요 없잖아.”

시헌은 서진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시헌은 제가 왜 여기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시헌은 서진이 건네준 문제집을 살짝 덮은 뒤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던 선생님의 프린트물을 꺼냈다. 문제집을 가져오지 않았다니까 선생님이 복사해 준 것이었다. 시헌은 프린트물과 앞자리에 앉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하아, 너네 말야. 진짜 과고 갈 거야?”

뜻밖의 질문이었다. 은소와 서진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대답을 미뤘다. 서진이 뺨을 살짝 긁적이며 대답했다.

“뭐, 일단은?”

가고 싶지 않았으면 신청하지도 않았을 거고. 서진이 말을 덧붙였다. 시헌은 휴대폰으로 날짜를 확인했다. 12일.

“이번 주 주말 형 없어. 8시까지 집으로 와.”

“야, 갑자기 뭐야?”

서진이 영문을 알 수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헌이 한쪽 이어폰을 끼며 교탁에 선 선생님을 살짝 손가락질했다.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겠다며 말을 꺼냈다. 두 사람은 결국 시헌에게서 등을 돌렸다.

* * *

3학년이 되었다. 시헌과 현정, 서진과 은소가 같은 반이 되었다. 다행히도 서진의 반은 바로 옆 반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누군가가 놀러 왔으며, 서진을 보지 못하는 수업 시간이 조금 지루해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3학년 생활은 2학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차피 학교 수업은 처음부터 듣지 않았다. 시헌은 학원을 늘렸고,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날 무렵에는 얼마 남지 않은 과고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며칠 전 학원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모의면접과 시험을 봤다. 학원 선생님은 충분히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하굣길, 현정이 길을 걸으며 단어장을 보고 있는 시헌의 등을 툭― 하고 건드렸다. 시헌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서진과 은소는 다른 방과 후 수업이 있어서 남았다. 시헌은 두 사람이 참여하는 다른 방과 후 수업도 하고 싶었으나 그것만큼은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았다.

“울 시헌이. 요즘 열심이더라?”

시헌이 단어장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내가 해 줄게.”

“뭘?”

“졸업.”

현정이 한발 늦게 시헌의 말뜻을 깨달았다. 현정의 유학 준비는 거의 끝나 간다고 했다. 중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미국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할 예정이었다. 현정과의 약속대로 시헌은 서진과 은소에게 현정의 유학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큭큭, 뭐야. 신경 쓰고 있었어?”

“진심이야.”

현정이 볼 근처로 손가락을 올리며 고민했다. 학원을 여럿 다니는 시헌뿐만이 아니었다. 서진과 은소 또한 열심이었다. 서진이야 원래부터 착실하게 공부를 잘해 왔고, 전학 올 때 그저 그런 성적이었던 은소는 최근 들어 성적이 많이 올랐다.

“뭐, 울 시헌이가 떨어질 것 같지는 않고. 은소랑 서진이도 괜찮으려나? 그보다 네가 너무 대단한 거라고.”

현정이 시헌을 살짝 띄워 줬다. 유학을 가기로 되어 있는 현정은 오히려 학원을 하나씩 줄였다. 이제는 취미로 가고 있는 피아노 학원과 유학 준비를 위한 영어 학원밖에 남지 않았다. 반면 시헌은 있는 학원도 부족하다는 소리가 나왔다. 집에 들어오면 11시가 넘었고, 학원 숙제를 하며 날밤을 새우는 경우도 허다했다. 예전처럼 단순히 수업이 지루해서 잠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잠을 자지 않으면 체력이 못 버텼다. 현정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시헌이 현정을 잘 아는 만큼 현정도 시헌을 잘 알았다. 시헌이 하루아침에 과고니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현정은 모든 게 자신을 위한 거라는 시헌의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고마워.”

“별거 아냐.”

현정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 * *

시험이 일주일이 조금 안 남았다.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난 뒤였다. 교무회의로 과고 반, 방과 후 수업이 중단된 그날은 모처럼 세 사람이 함께 집에 가는 날이었다. 현정은 유학 준비로 오전 수업만 하고 집에 갔다. 며칠 전 현정의 엄마가 학교에 다녀갔다. 유학 문제 때문이었다.

현정의 엄마가 학교에 다녀간 것도, 현정이 오전 수업만 하고 조퇴했다는 사실도 서진과 은소는 알지 못했다. 점심밥을 먹을 때 현정이 어디 갔냐는 서진의 말에 시헌은 몸이 아파서 조퇴했다고 했다. 서진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방과 후 수업이 없으니 끝나고 같이 가자며 오후 수업을 들었다. 종례가 끝난 후 가방을 챙긴 시헌은 뒷문으로 나왔다. 앞문에서 나오는 서진과 마주쳤다. 은소는 없었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청소하는 은소가 있었다. 당번이라고 했다. 하교하는 아이들이 복도를 가득 메웠다. 시헌이 복도 한쪽 창가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날따라 서진은 이상하리만큼 초조해 보였다. 시헌은 분명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느꼈다. 시헌의 앞에 선 서진이 한숨을 쉬며 머뭇거렸다. 시헌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은소가 대걸레를 가지고 복도로 나왔다.

“천천히 해.”

그 말이 은소에게 들렸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은소는 얼굴이 빨개지며 복도 안쪽 화장실로 들어갔다. 시간이 남으니 영어 단어라도 봐야 하나? 가방을 뒤적이고 있던 시헌의 손이 멈췄다. 고개를 숙인 시헌에게 서진이 다가왔다.

“시헌아.”

“어?”

“나 못할 것 같아.”

시헌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영어 단어장은 보이지 않았다. 시헌은 가방 지퍼를 잠근 채 서진을 바라봤다.

“무슨 소리야?”

“저번에 모의면접 할 때 말야. 선생님이랑 상담했는데, 학비가 생각보다 비싸더라고. 누나 일도 이제 막 안정됐는데 솔직히 부담 주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하나…….”

“장학금 받으면 되잖아.”

“그게……. 그렇게…….”

서진이 시헌의 눈을 피했다.

“아까 상담했는데. 그냥 시험 안 보기로 했어.”

시헌은 어이가 없었다. 준비하게 된 과정이야 어떻든 1년을 내리 준비했다. 불과 어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서진이 하루아침에 누나 핑계를 대며 그만둔다고 하는 것조차 황당했다. 누나 핑계를 대려면 좀 더 일찍 대야 했다.

“그……. 미안.”

평소 시헌의 앞에서 늘 당당하던 서진의 어깨가 그날따라 축 처져 있었다. 이래서는 마치 시헌이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청소하는 학생들을 제외하고 복도는 두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시헌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충격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쪽이 맞았다. 입술을 깨문 시헌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포기하겠다는……!”

서진이 시헌의 말을 잘랐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하하, 미안해. 그리고 나 오늘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

“야! 강서, 진!”

서진이 몸을 돌렸다. 시헌이 뒤늦게 서진을 붙잡았으나 서진이 시헌을 지나쳐 가는 속도가 조금 더 빨랐다. 서진은 순식간에 가장 가까운 계단을 내려갔다. 서진이 내려간 계단은 정문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었다. 청소를 마친 은소가 가방을 메고 복도로 나왔다. 시헌은 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될 리 없었다. 시헌은 수화음만 가는 휴대폰을 붙잡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씨발, 시헌이 낮게 욕을 지껄였다. 눈치를 본 은소는 시헌의 휴대폰에 뜬 서진의 이름을 확인했다.

“서진이가 왜?”

은소가 알기로 서진은 오늘 일이 있어서 먼저 간다고 했다. 대걸레를 가지러 화장실을 갈 때 서진과 시헌이 대화를 한 모습을 보긴 했으나 특별히 이상하다고 느낄 건 없었다. 일이라니. 시헌이 아는 서진은 어떤 일이 있던 이런 식으로 일방적인 통보를 하는 녀석이 아니었다.

“강서진.”

“…….”

“무슨 일인지 알아?”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은소 또한 갑작스럽게 통보받기는 시헌과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서진이 내려간 계단 반대 복도를 향해 걸었다. 은소가 가방에서 초코파이를 꺼내 시헌에게 내밀었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지만, 시헌은 말없이 초코파이를 받았다.

초코. 파이. 눈에 익은 글자를 본 시헌은 그 자리에서 봉지를 뜯어 한입 베어 물었다. 조금 녹아 눅눅해지긴 했으나 먹을 만은 했다. 빵맛보다 코팅이 된 초콜릿이 시헌의 입가를 간지럽혔다. 순식간에 초코파이를 다 먹은 시헌이 입가에 묻은 초콜릿을 손끝으로 닦아 핥았다.

“이번 주 주말에 집에 가도 되지?”

시헌이 3학년이 되고 난 후, 기욱은 병원 인턴으로 들어갔다. 빠른년생으로 입학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날고 긴다 하는 기욱이지만, 병원의 살인적인 스케줄만큼은 피해 갈 수 없었다.

3학년이 된 이후 기욱의 얼굴을 본 날은 거의 드물었다. 심한 날은 한 달에 한 번 얼굴을 마주한 적도 있었다. 사실상 시헌 혼자 사는 거나 다름없었다. 사실 혼자 산다고 하는 것보다 기욱의 만행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더욱 마음이 편했다.

2학년 2학기, 선행 과고 반에 처음 들어간 이후 시헌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서진과 은소에게 공부를 알려 줬다. 은소는 마지막으로 이것저것 정리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 서진이 입시를 포기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은 시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해.”

* * *

커다란 책상 대신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좌식 책상을 꺼내 시헌과 은소는 마주 앉았다. 과고 입시에 맞춘 학원 스케줄은 거의 정리가 된 상태였다. 그날 이후 서진과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쉬는 시간에도 몇 번인가 서진의 반을 찾았지만, 서진은 입시에 대한 말은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좁은 책상을 공유하며 시헌과 은소는 각자의 공부를 했다. 공부를 알려 준다고 해도 대단한 건 없었다. 방 안으로 펜이 종이에 닿는 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나지 않았다. 시헌은 습관적으로 펜 끝을 입으로 물며 고민하고 있었다. 3번이냐, 4번이냐. 고민이었다. 은소가 고개를 들었다.

“있잖아. 시헌아.”

시헌은 결국 3번에 체크를 했다. 문제집을 뒤집은 후 재빨리 답을 확인했다. 젠장. 4번이군. 시헌은 신경질적으로 볼펜을 문제집 위에 올렸다. 은소가 말을 이어 갔다.

“시험 끝나면. 할 말이 있어.”

“…….”

“그……. 시간 좀 내줬으면 좋겠는데. 괜찮을까?”

은소가 시헌의 눈치를 살폈다. 시헌은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시헌은 은소의 모습이 마치 작년에 처음 만났을 때와 달라진 게 없다고 느꼈다. 하루 이틀 얼굴을 본 사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긴장을 하는지 시헌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은소의 행동이 최근 답답하면서도 살짝 짜증이 날 때가 있었다.

“알았어.”

시헌이 은소의 문제집을 힐끗거렸다. 펜을 들고 자신의 문제집 대신 은소의 문제를 툭툭 건드렸다.

“여기 틀렸다.”

“어? 정말이네?”

몰랐던 모양이다. 시헌은 풀고 있던 문제집을 무릎 밑으로 내려놓은 뒤 펜을 고쳐 잡았다. 알려 줄 테니까 줘 봐. 은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10시가 조금 넘었다.

“집에 안 가도 돼?”

“11시까지는 괜찮을 것 같아.”

은소는 다리가 저린 모양인지 방에서 일어났다.

“물 좀 마시고 올게.”

은소를 올려다본 시헌은 상관없다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은소는 거실로 나왔다. 새로 지은 고급 오피스텔. 가족이 살기에는 좁을지 모르지만 한두 사람이 살기에 결코 좁은 집은 아니었다.

물을 마신 은소는 2층 계단 위에 있는 방문을 힐끗거렸다.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은소가 알기로 시헌은 형과 같이 산다고 했다. 그러나 1년 동안 서진과 함께 시헌의 집을 들락날락한 은소는 단 한 번도 시헌의 형을 본 적이 없었다.

시헌의 형은 대체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시헌은 평소 가족에 대해 말을 하는 편이 아니었다. 시헌에게 형과 누나가 있고, 밑으로 남동생이 있다는 사실도 불과 최근에 안 사실이었다.

“근데 형은 언제 들어와?”

“몰라. 요즘 안 들어온 지 좀 됐어.”

“의대 다닌다고 했나?”

“졸업했어. 지금 인턴.”

“아아. 그렇구나.”

집에 들어오지 않는 사실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이어지는 시헌의 대답이 은소를 조금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형한테.”

“…….”

“관심 가져서 좋을 거 없어.”

시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은소는 끝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시헌도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방에서 마실 물을 따르고 막 들어가려고 할 무렵 도어락의 비밀번호가 풀렸다. 시헌은 안쪽 방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기욱이었다. 물을 들고 있는 은소와 기욱의 눈이 맞았다.

일교차가 심한 가을, 그렇다고 해서 겨울 잠바를 입고 다닐 만한 추위는 아니었다. 기욱이 입고 있던 두꺼운 잠바를 급하게 벗었다. 잠바 안에는 파란색 병원 진료복이 그대로 있었다.

기욱이 반쯤 열린 시헌의 방 안을 힐끗거렸다. 공부를 하고 있는 시헌의 등이 보였다. 시헌은 기욱이 돌아왔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병원복. 집에 멋대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 은소는 그가 시헌의 형이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손에 들린 물 잔의 물이 흔들려 테이블 유리 위로 튀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기욱이 은소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건 은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 늘어난 진료복 사이로 보이는 어른스러운 몸매와 카리스마 있어 보이는 눈매. 적당히 그을린 피부와 적당한 높이의 콧대. 비록 피곤함에 찌들어 머리가 엉망이었지만 남자가 보기에도 상당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은소와 기욱의 눈이 마주쳤다. 은소의 어깨가 움츠러들였다. 기욱의 카리스마는 시헌과는 조금 달랐다. 기욱이 테이블 위에 놓인 휴지를 뜯어 유리에 튄 물을 닦았다. 은소는 뒤늦게 물이 튄 사실을 알았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죄, 죄송합니다.”

기욱이 입을 살짝 가리며 웃었다. 기욱의 웃음에 은소는 긴장이 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생각보다 나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방에서 나와 기욱을 본 시헌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 기욱이 집에 온다는 말은 없었다. 시헌은 기욱이 병원 옷을 그대로 입고 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잠깐 들른 거군. 성큼성큼 기욱의 뒤에 있는 은소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 왜?”

“잠깐 방에 들어가 있어.”

시헌이 나왔던 방을 손가락질했다. 은소는 알겠다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둘이 싸웠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지만 은소는 아무런 질문도 할 수 없었다. 시헌은 은소가 들어간 방문을 닫았다. 별로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 짧은 사이 기욱은 통화했다.

― 아뇨. 지금 가지고 가겠습니다. 네. 바로 출발할 겁니다.

말투로 보아 병원 관계자임이 틀림없었다. 하아, 전화를 끊은 기욱이 한숨을 쉬었다. 안 봐도 병원에서 고생 좀 했네. 늘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데 익숙한 기욱이지만 그것도 거기까지였다. 날고 기는 의사들이 있는 병원에서 기욱은 기껏해야 집안만 좋을 뿐인 일개 인턴에 지나지 않았다.

시헌은 며칠 만에 보는 기욱의 힘든 모습에 잘됐다며 비웃었다. 방에 들어간 기욱이 급하게 서랍을 뒤졌다. 서랍 안쪽에서 손가락 크기의 USB를 찾았다. 고작 이거 하나 때문에 무슨 고생인가 싶었다. 기욱이 다시 잠바를 입었다.

창문 틈 사이로 기욱의 차가 보였다. 벽에 기대 팔짱을 낀 시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기욱은 시헌의 모습에 실소를 터트렸다. 누굴 닮아서 저러는 건지 원. 집을 나서기 전 날짜를 확인한 기욱은 시헌의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병원에 있으니 날짜 감각이 사라졌다. 정말 답지 않은 짓이었다. 잠바 주머니에 있는 USB를 만지작거린 기욱이 몸을 돌렸다.

“시험 잘 봐라.”

“…….”

“지난번처럼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기욱이 문을 닫고 나갔다. 기욱이 나가기 무섭게 시헌은 벽에서 몸을 뗐다.

* * *

과고 시험 당일, 시헌은 맨 뒷좌석에 앉았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아이들과 달리 시헌은 책상에 팔을 괸 채 자리에 앉은 아이들을 감상했다. 맨 앞좌석에 은소가 앉아 있었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쳤다.

교실 안 학생들이 일제히 시험지를 뒤집었다. 종이 친 줄도 모른 시헌은 한발 늦게 시험지를 돌렸다. 시험이 시작하기 무섭게 고개를 숙여 문제를 풀기 시작한 아이들과 달리 시헌은 한동안 시험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교탁에 감독을 선 선생님은 시헌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컴퓨터용 사인펜 뚜껑으로 시험지 위를 왔다 갔다 했다. 팔 옆으로 OMR 카드가 닿았다. 서진은 결국 시험을 신청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신청하지 않은 시험이니 서진이 올 리는 없었다. 입 끝으로 사인펜 뚜껑을 열은 시헌은 뒷머리를 살짝 긁적였다. 그리고는 문제도 보지 않은 OMR을 일렬로 표기했다.

‘이상한 장난치지 말고.’

기욱의 목소리가 시헌의 양심을 찔렀다. 젠장. 결국, 시헌이 손을 들었다. 감독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며 다가왔다. 시헌은 OMR 선생님에게 내밀었다. 시헌의 OMR을 본 선생님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새 거 주세요.”

시헌은 새 OMR 카드를 받았다. 이미 시험이 시작한 지 10분이 넘었다. 시헌은 그제야 샤프를 다시 붙잡아 문제를 풀었다.

일주일 후 1차 합격 통보를 받았다. 점심시간이었다. 거기에는 은소도 있었다. 급식실에서 합격 문자를 받았을 때 서진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할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날은 엄마와 밥을 먹었다. 면접은 일주일 후였다.

다시 면접을 위한 준비로 학원에 갔다. 시헌은 맨 뒤 번호였다. 면접을 끝낸 대부분 학생이 집에 가고, 교실에 앉아 기다리는 것은 시헌 하나밖에 없었다. 번호를 기다리던 시헌은 중간부터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보다 못한 담당 선생님이 중간에 몇 번인가 깨우긴 했으나 시헌은 또다시 잠이 들었다.

아이들은 그런 시헌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시헌의 앞에 있는 아이가 면접을 들어가자 선생님이 시헌을 깨웠다. 그제야 일어난 시헌은 가방에서 면접 질문지를 꺼내 대충 훑었다. 시헌은 알고 있었다. 시헌의 앞으로 앉아 있었던 학생들이 보았던 면접 질문지나, 자신이 들고 있는 예상 질문지가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것을.

“43번 박시헌 학생.”

선생님이 시헌의 호명했다. 교실이 추웠다. 중학교 1학년 이후로 입지 않았던 마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교실 문 앞에 선 시헌이 잠시 머뭇거렸다. 이내 주머니에서 손을 뺀 뒤 문을 열었다. 시헌이 앉은 자리와 떨어진 곳에 여러 명의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마지막이라 그런지 얼굴에 지친 표정들이 가득했다. 시헌과 눈이 마주친 남자 선생님이 앞에 놓인 물을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자기소개 해 주세요.”

침묵이 흘렀다. 짧은 면접 시간치고는 제법 긴 침묵이었다. 보통이라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지만, 마지막이라 그런지 다들 그냥 기다려 주자는 것 같았다. 후우, 시헌은 숨을 살짝 들이쉬었다. 딱히 이 순간이 긴장되는 건 아니었다.

“우리 집은요. 의사 집안이거든요. 증조할아버지가 미국에서 의사를 했었대요.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된 일일지도 몰라요.”

선생님들의 시선이 시헌에게 집중되었다. 시헌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빠는 J대 병원 이사장이고, 엄마는 외과 교수구요. 누나는 K대 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과 레지던트 2년 차를 하고 있어요. 형은 올해 J대 인턴으로 들어갔거든요. 형이랑 같이 사는데 바쁜 모양인지 집에는 자주 안 와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남동생이 하나 있어요. 걔는요. 외고 준비를 한다고 학원에 다녀요. 초등학교 6학년인데요. J대 의대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는 게 꿈이래요. 우리 집은 참 화목해요.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 다 같이 밥을 먹고, 일 년에 한 번 여행을 가요. 물론, 그 여행을 끝마친 적은 한 번도 없지만요. 누구 하나는 꼭 사라지거든요.”

아빠는 가정보다 일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집안의 첫째로 태어난 아빠는 누구보다도 의사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아빠가 결혼을 늦게 한 이유도 일 때문이었다. 자상한 아빠. 그러나 그게 다인 사람이었다. 시헌은 아빠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시헌이 무슨 이야기를 하면 아빠는 늘 그래, 하고 묵묵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아빠와의 대화는 의대를 가고 나서부터였다. 첫째인 하연이 의대에 합격하고 다 같이 식사를 하는 순간 느꼈다.

당시 시헌은 고작 유치원을 막 다니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젠 밥을 먹으면 의사만 네 명이었다. 친척들이 모이는 날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 하지는 않았다.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조금이라도 없는 대화들이 오갔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대화들을 동생은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동생이지만 시헌은 그런 은오를 속으로 비웃었다.

시헌은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남의 인생을 책임지고 싶은 마음도 없거니와 거기에 사명감을 느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수술하는 의사도, 받는 환자도 결국 똑같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을 수술한다고 한다 해서 의사가 결코 특별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었다.

“학생은 어떻지?”

가장 안쪽에 있는 선생님이 물어 왔다. 모두 가족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시헌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사실 그 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집안에 대해 생각하면서 정작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건. 시헌은 작년 이맘때쯤을 회상했다.

작년. 철거가 중단된 아파트 단지에서 다 같이 했던 이야기들. 서로의 꿈에 대해서 떠들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했다.

“작년 생일 친구가 저에게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봤어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시헌은 혼자 킥킥대며 웃었다.

“사실은 홧김에 말한 거거든요. 지금도 잘은 모르겠어요.”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다른 걸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과고에 가기 위해 이날까지 공부를 한 건 운오처럼 의사가 목표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현정은 다 같이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싶다고 했다.

서진과 은소는 과고에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여기에 서진은 없다. 전부 부질없는 짓이었다. 시헌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이미 면접 종료 시간이 가까워졌다.

“저는 왜 여기 있는 걸까요?”

“학생이 지원해서 온 거 아닌가?”

선생님이 반문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도 몰랐다. 현정이 유학을 가지 않아도, 서진과 은소가 과고를 목표하지 않았어도 시헌은 이곳에 있었을지도 몰랐다. 어쩌다 운이 잘 맞은 거지 결코 자발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글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면접관 선생님들이 서로를 멍하니 바라봤다. 고생했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왔다.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의 천장은 꽤 높았다. 복도의 높은 천장에 달린 조명을 보며 시헌은 눈을 살짝 감았다. 시헌의 손에 있는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면접이 끝나고 받은 휴대폰이었다. 기욱이었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 머뭇대던 시헌이 전화를 받았다. 운동장에 있다고 했다. 창가로 나가 운동장을 보자 기욱의 차가 있었다. 시헌은 기욱의 차에 탔다. 뜻밖에 기욱은 사복 차림이었다. 꼴은 별로였지만. 별일이었다. 벌써 6시가 넘어 있었다.

“일찍 나왔네.”

“별거 없었거든.”

시헌은 어깨를 살짝 들썩였다. 일주일에 한 번 주어지는 휴식 시간이라고 했다. 몇 시간 있다가 다시 병원에 가 봐야 한다고, 아아, 힘들겠네. 시헌은 무성의하게 중얼거렸다. 차가 천천히 교문을 빠져나갔다. 시헌은 유리창에 얼굴을 기댔다. 오늘따라 유독 피곤했다.

* * *

시험이 끝났다. 기말고사가 있지만 그런 건 시헌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모처럼 책상에 앉아 그동안 보고 싶은 영화를 봤다. 몇몇 선생님이 주의를 시키긴 했으나 대부분은 그냥 넘어가 주었다. 쉬는 시간이 됐는지도 모를 무렵 한 여학생이 시헌에게 다가왔다.

몸을 건드리는 인기척에 이어폰을 빼고 무슨 일이냐며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렀다고 했다. 여학생이 갔다. 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헌은 1층 교무실로 내려갔다.

담임선생님은 서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시헌을 본 선생님은 기다리라며 자리로 갔다.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선생님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축하한다.”

선생님의 말과 함께 시헌은 종이를 살폈다. 합격 통지서. 선생님이 학교에 관해서 얘기했다.

“이번에 시험 보러 간 학생 중에서 합격한 사람은 시헌이밖에 없는 것 같아. 어쨌든 그 학교. 대학 진학률도 괜찮아.”

종이 쳤다. 학비나 기타 사항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다. 수업을 들어가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시헌은 이제는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 시헌은 자리에 앉았다.

“어! 시헌아. 학교 합격한 거 들었어! 축하해.”

시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영화를 볼 기분도 아니었다. 교과서 대신 교무실에서 받은 합격 통지서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귀하의 합격을 축하합니다.

박시헌.」

통지서를 든 시헌의 손이 떨렸다. 마지못해 시험을 본 건 기억했다. 하지만 면접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한 기억은 없다. 그건, 떨어져야 마땅한 면접이었다.

도대체 왜?

수업이 끝났다. 시헌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쉬는 시간, 여학생 대신 은소가 찾아왔다. 뻣뻣하게 교실 문을 들어선 은소의 표정이 약간 어두웠다.

“나, 떨어졌어.”

실망한 은소의 표정에 시헌은 고개를 들었다. 은소는 시헌보다 한 교시 먼저 교무실에 갔다 왔다. 뒷문 너머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시헌이 고개를 돌렸다.

“아,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다니까! 서진아!”

현정의 목소리였다. 시헌은 대각선에 있는 현정의 빈자리를 바라봤다. 이윽고 말싸움이 이어지더니 잔뜩 화가 난 서진이 교실로 들어왔다. 은소를 살짝 밀어낸 서진이 시헌의 앞에 섰다.

“박시헌 너 미쳤냐?”

“왜?”

“시헌아! 됐어. 내가 해결할게.”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갔다. 현정이 계속해서 서진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들의 시선이 네 사람에게 집중됐다. 현정은 밖에서 얘기하자며 서진을 이끌었지만, 서진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과고 입시를 관둔다고 한 이후부터 특별한 대화를 하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서진이 시헌의 책상 위로 손을 올렸다.

“너. 현정이 유학 가는 거 왜 말 안 했어?”

“아, 진짜!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단 말야.”

“그래도 그렇지 그걸…!!”

서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미국 유학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못해도 몇 달 전에는 준비해야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시헌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현정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나가서. 나가서 얘기해. 내가 다 설명할게. 응?”

아이들의 눈치를 본 서진이 결국 교실 밖으로 나갔다. 시헌이 몸을 살짝 일으켰다. 현정이 됐다며 손을 저었다.

“미안해. 나 때문에.”

현정이 자기가 얘기하겠다고 했다. 복도 안쪽에서 빨리 나오라는 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진의 저런 격앙된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활짝 열린 뒷문 너머로 두 사람이 거칠게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헌의 발밑으로 합격 서류가 떨어졌다. 은소가 바닥으로 떨어진 시헌의 서류를 주웠다. 내용을 읽은 은소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합격 축하해.”

* * *

학교가 끝난 시헌은 급하게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지금 거신 전화는 전화기가 꺼져 있어…….

시헌이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덮었다. 무작정 안내표를 보고 병동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병원 지리를 모르는 시헌은 기욱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지나가던 간호사 한 명이 병동을 맴도는 시헌을 이상하게 생각해 다가왔다.

“누구 찾는 사람 있니?”

“박기욱이요.”

간호사가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혹시 어느 과 환자인지 알 수 있을까?”

기욱을 환자로 착각한 간호사의 말에 시헌은 성급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병동 간호사가 모두 기욱을 알고 있을 거란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 시헌이 죄송하다며 사과를 한 뒤 말을 정정했다.

“인턴인데요. 아마도 외과요.”

시헌은 기욱이 어느 과를 돌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시헌의 대답에 간호사가 모르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지나가던 의사가 다가왔다. 차림새가 바뀌어 못 알아볼 뻔했지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J대학병원 외상외과 전문의. 임정혁. 시헌은 그가 응급실에서 만났던 남자라는 걸 눈치챘다. 차림새는 살짝 다르긴 했지만. 정혁은 시헌을 알아봤다.

“시헌아. 여기서 뭐 해?”

“어? 임 교수님. 아는 애예요?”

“아, 뭐.”

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기욱을 찾는 것 같은데요. 인턴이라고……. 저희 과는 아닌 것 같아요.”

여간호사가 모르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정혁은 시헌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몸을 돌렸다.

“아아, 신경 쓰지 마. 내가 데리고 갈게.”

“그럼 부탁할게요.”

책상에 앉은 간호사가 다른 일에 몰두했다. 정혁은 시헌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너네 형 지금 NS, 아니 신경외과 돌고 있을 거야. 여기 아냐.”

“고마워요.”

“뭘 우리 사이에 그 정도로.”

정혁이 시헌의 등을 살짝 건드렸다. 신경외과 병동은 정반대 방향이었다. 복도를 걸으며 지난번 상처에 관해 얘기했다. 정혁은 시헌이 괜찮다는 데도 굳이 봐 주겠다며 시헌의 팔을 걷었다. 약간의 흉터가 남긴 했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병동에 도착하자 정혁이 시헌을 대신해 간호사들에게 기욱에 관해서 물었다.

“아, 박 선생님이요? 박 선생님이라면…….”

“기욱이 걔 밥 먹으러 갔을걸.”

컴퓨터로 차트를 보고 있던 의사 하나가 멋대로 대답했다.

“박기욱 왜.”

남자가 정혁의 뒤에 있는 시헌을 보며 물었다. 남자의 말에 주변 간호사들이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딱 보니 한 성격 하는 것 같았다. 정혁이 시헌 대신 대답했다.

“박 선생 동생이래. 연락이 안 돼서 찾아온 것 같더라.”

“…….”

정혁의 반말이 달갑지 않은 남자가 마우스를 떼고 정혁에게 다가갔다. 정혁은 당당했다. 정교수가 아닐 뿐, 적어도 이제 막 병원 생활 일이 년을 뗀 전공의들에게 무시를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외상외과 전문의. 정혁의 가슴에 있는 신분증을 살짝 본 남자는 이내 고개를 약간 숙였다. 목소리가 살짝 내려가 있었다.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형 지금 어디 있나구요.”

“야! 걔가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 말을 꺼내질 말든가요.”

“아놔, 이 꼬맹이가 지금 뭐라고……!”

“진정하세요. 지금 애 상대로 뭐 하시는 겁니까?”

정혁이 끼어들었다. 정혁이 남자의 신분증을 힐끗거렸다. 신경외과 전공의. 한우민. 정혁의 시선에 우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우민은 원래부터 기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원 이사장이든, 엄마가 교수든 얼마나 대단한 집안인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인턴이면 인턴답게 굴어야지. 난데없이 동생이라고 하는 녀석이 기욱을 찾겠다고 펠로우씩이나 되는 의사를 대동하고 병동을 들쑤시고 다니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둘이 무슨 사이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형을 찾는 걸 도와주고 다닐 정도면 사적으로 친분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 형의 그 동생이라고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우민은 레지던트 2년 차였다. 아무리 과가 다르지만, 정혁에게 함부로 굴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좀 예민해서.”

우민이 이쪽을 보는 간호사들을 향해 손을 저었다. 간호사들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각자 자기 할 일을 했다. 우민의 사과에 정혁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보다 기욱인?”

“하아, 일단 찾아보겠습니다.”

남자가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정혁과 시헌은 복도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집안사람들이 다 의산데 병원에서 길을 잃으면 어떡해?”

“전 의사 안 할 건데요.”

정혁은 시헌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말하는 게 정말 기욱의 동생이구나 싶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정혁은 의자에 손을 뒤로하며 머리를 벽에 기댔다. 집안이 의사 집안이라고 해서 꼭 의사를 해야 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사람 일이라는 건 또 모르는 것이었다.

“혹시 졸업하고 병원에 오게 되면. 내 밑으로 와.”

정혁은 당돌한 시헌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시헌은 기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음이 연결되었으나 전화는 받지 않았다. 시헌은 결국 다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시헌은 정혁의 말에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

“교수부터 되고 말하세요. 펠로우 주제에.”

하, 정혁이 입을 살짝 벌렸다. 이내 시헌의 이마를 향해 딱밤을 놓았다. 퍽,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정혁도 자기가 때려 놓고 좀 강하게 때렸는지 손을 만지작거렸다. 시헌은 정혁에게 맞은 이마를 붙잡았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아팠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 미안.”

“…….”

“삐졌냐?”

“됐어요. 의사가, 사람이나 때리고.”

“야, 네가 말이 심했잖아! 펠로우라 해도 엄연히 전문의라고! 그리고! 이만하면 뭐 어때서? 젊지, 잘생겼지. 실력 좋지. 안 그러냐? TO가 없어서 그런 거지. 자리만 있었으면 내가 그냥 당장 확… 하고! 아냐? 어?”

정혁이 손을 들어 장난을 쳤다. 시헌은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본인 입으로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당장 교수가 되긴 글렀다.

“이마 좀 보자.”

정혁이 시헌의 머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빨갛게 자국이 나 있었다. 엄살은. 정혁이 시헌의 이마를 뒤로 밀었다. 시헌의 몸이 살짝 뒤로 밀리더니 오뚝이처럼 앞으로 다가왔다. 시헌이 지지 않고 대답했다.

“전 집에 못 들어가는 거 싫은데요. 특히 외상은 최악이잖아요.”

“왜 그래! 우리 과도 나름 좋은……! 보, 보람도 있고…… 아 젠장!”

정혁이 결국 졌다며 머리를 싸맸다. 안 그래도 지원하려는 의사들이 줄어드는 마당에 어린애인 시헌에게까지 그런 말을 들으니 자괴감이 들었다. 하하, 이내 허탈하게 웃었다. 벨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정혁의 휴대폰이었다. 전화를 받은 정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7층. 알았다. 금방 갈게.

자리에서 일어난 정혁이 시헌을 내려다봤다. 시헌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

“미안하다.”

“별걸요. 의사잖아요.”

정혁이 비상계단 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흐음, 시헌은 시계를 확인했다. 우민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시헌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전화 연결이 됐다.

― 여보세요? 아빠. 나 시헌인데.

* * *

본관 1층 로비에 앉았다. 밖은 어두웠고, 진료가 끝난 로비는 쌀쌀함만이 감돌았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시헌의 옆으로 커피를 내밀었다. 캔 커피였다. 고개를 살짝 들었다. 정혁이었다.

셔츠 차림에서 편한 진료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캔 커피를 받은 시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혁이 안쪽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16층,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려면 한참이 걸렸다.

“너 임마. 맘에 안 든다고 그렇게 아빠한테 이르는 거 아냐. 덕분에 나도 교수님한테 불려 가고 진짜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시헌이 아무렇지 않게 엘리베이터 안에 탔다. 기욱을 보러 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은 시헌도 몰랐다. 얼굴을 보지 못하는 병원에서 기욱을 만나기도 힘들었다. 정혁이 한숨을 쉬었다.

병원 외과 출신 이사장의 아들. 덕분에 잠깐 응급실에 내려갔다 온 사이 병원이 한바탕 뒤집혔다. 덕분에 응급실을 내려오기 전까지 시헌과 같이 있었던 정혁이 안내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커피를 입에 문 정혁은 기가 찼다. 인턴 면접 때도 안 와 본 이사장실을 이런 식으로 오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복도 안쪽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정혁의 신분증을 확인했다. 시헌에게 다가가려 하자 정혁이 손을 저었다.

“이쪽이 그 아들….”

정혁의 설명에 경비를 담당한 남자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혁은 휴대폰을 만졌다. 다시 내려가야 했다. 정혁은 굳게 닫힌 문 앞에 서 있는 시헌의 등을 살짝 밀었다. 간다. 반쯤 마신 커피를 허공으로 흔들었다. 시헌이 획, 하고 등을 돌렸다. 정혁은 시헌에게서 꽤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말이 들리지 않을 거리는 아니었다.

“만약요.”

“…….”

“진짜 그럴 일은 없는데 만약에. 병원 오게 되면 저 받아 줄 거예요?”

정혁이 가운에 손을 집어넣었다. 경비를 선, 남자들이 두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시헌의 교복을 본 정혁이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의사부터 되고 말해. 중딩 주제에.”

“저 내년에 고등학교 가거든요.”

“거 일일이 말대꾸 좀 하지 마라. 귀염성 없게.”

정혁이 가라며 손을 저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왔다. 시헌이 문을 열고 이사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소파 안쪽에 기욱이 있었다. 기욱은 시헌이 온 줄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시헌이 기욱의 앞에 앉았다. 그제야 기욱이 눈을 떴다. 자는 척했던 건지. 벽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는 이사장실은 병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헌이 주변을 둘러봤다. 아빠는 없었다. 기욱이 낮은 한숨을 쉬었다. 자길 찾겠다고 병원을 들쑤신 거로도 부족해서 아빠한테까지 전화했으니 난리가 날 법도 했다. 덕분에 시헌을 놓친 선배는 교수님에게 욕이란 욕은 다 먹고, 막 밥을 먹고 올라온 기욱은 난데없이 이사장실로 가라는 명령을 받기까지 했다.

기욱이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행동이었다. 완전히 한 방 먹었군.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기욱은 잠들기 전 마시다 만 커피를 마저 마셨다. 커피가 식었다.

“얼마 줬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커피 잔을 내려놓은 기욱이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시헌도 처음부터 이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평소라면 기욱의 연락을 기다리면 됐다. 그러나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욱을 만나야 했다. 시헌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얼마 줬냐고!”

“박시헌. 형 오늘 한 시간 반밖에 못 잤다.”

기욱이 빈 커피 잔을 손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중 삼십 분은 시헌에게 불려와 방금 잔 게 다였다. 시헌이 소리를 지를 때마다 머리끝이 울렸다.

“목소리 낮춰.”

“왜, 왜 그랬어. 대체 왜……!!”

시헌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면접은 분명 합격과는 거리가 먼 면접이었다. 기욱이 별거 아니라며 어깨를 들썩였다.

“시험 잘 봤더라.”

“그 말이 아니 잖…….”

“선생님들도 다들 그러시더라. 그 성적에 탈락은 아쉽다고.”

시헌은 입술을 깨물었다.

“다녀.”

“싫어.”

“모처럼 붙은 건데 아깝잖아.”

기욱이 선수를 쳤다. 시헌은 이 순간만큼은 기욱이 형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시헌은 가끔 기욱이 초능력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욱이 슬슬 가 봐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을 바로 입었다.

“아, 그리고. 돈 내가 준 거 아냐.”

“그럼 대체 누가…!”

기욱이 안쪽에 있는 커다란 책상을 힐끗거렸다. 기욱의 시선을 따라 아빠의 명패에 닿았다. 기욱이 가운 주머니를 뒤졌다. 가운 주머니 안에서 카드가 나왔다. 테이블 위로 카드를 올렸다.

“집에서 보자. 덕분에 좀 잤다.”

기욱이 손을 흔들며 먼저 밖으로 나갔다. 시헌이 기욱이 두고 간 카드를 집어 들었다. 시헌은 손톱을 이빨 끝으로 씹었다.

“젠장!”

짜증이 났다.

* * *

시헌의 중학교 졸업식, 부모님들 포함한 몇몇 친척들이 시헌을 찾아왔다. 졸업식이 끝나고 가볍게 사진을 찍는 다른 가족과 달리 시헌의 가족은 유달리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현정의 엄마와 시헌의 엄마가 안쪽에서 대화하고 있었다. 축하한다는 말이 오갔다.

시헌의 엄마는 기분이 좋았다. 멀리서 현정이 뛰어왔다. 현정의 엄마가 천천히 좀 다니라며 잔소리를 했다. 현정은 듣지 않았다. 시헌의 팔을 붙잡고 어딘가로 갔다. 현정의 다른 손에는 얼마 전에 엄마를 졸라서 산 폴라로이드가 있었다.

들고 있기도 힘든 시헌의 커다란 꽃다발과 달리 근처에서 산 것 같은 서진의 꽃다발이 미묘하게 비교되었다. 서윤의 옆으로 기욱이 있었다. 어딜 갔나 했더니. 시헌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현정이 서윤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줘.”

기욱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잠시 머뭇대던 현정이 기욱에게 폴라로이드를 넘겼다.

“네 장 찍어 줘요!”

꿋꿋하게 요구를 한 현정이 빨리 오라며 소리를 질렀다. 서진과 은소가 현정의 옆에 섰다. 기욱이 시헌을 힐끗거렸다.

“갈 거야.”

시헌이 서진의 옆에 섰다. 네 장의 사진을 찍는 소리가 났다. 가장 먼저 뛰어온 현정이 한 장씩 폴라로이드 사진을 건넸다. 아직 사진이 나타나지 않아서 그런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까만데. 시간이 지나면 사진이 나타난다는 것이 시헌은 사뭇 신기했다.

희미하지만 점점 사진이 그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진을 보고 있는 시헌을 두고 세 사람이 떠들었다. 서진과 마찬가지로 뒤늦게 현정의 유학 사실을 안 은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정아. 우리 나중에도 만날 수 있는 거지?”

“야, 미국 가서 평생 살 거 아니잖아. 뭘 걱정하고 그래?”

“당연하지! 하하, 금방 올 거야.”

현정은 제발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빌었다. 사진이 전부 드러나자 시헌은 고개를 들었다.

“놀러 갈게.”

시헌의 대답에 현정은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정은 마지막까지 시헌은 시헌이구나, 하고 느꼈다.

중학교 시절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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