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0화 (300/303)

“.....”

어설프지만 직접 행동하고 싶다는 건가.

그래. 아이들의 도전을 내가 막을 권리는 없지.

다치고 깨지더라도 스스로 성장하게 두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니.

“그럼 그렇게 해라. 네 뜻을 존중하마.”

“고마워요 아빠. 만약 예린이가 제 말을 듣지 않으면, 그때 말해줄게요.”

“그래. 그러도록 해라.”

“... 제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요. 나중에... 아빠한테 꼭 보답할게요.”

“크큭. 네 어미 속이나 썩이지 않으면 된다. 들어가 봐라.”

“네 아빠.”

스스로 뭔갈 이루겠다며 뒤돌아 나가는 녀석.

다만 시우의 일은 시우의 일이고, 나에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사랑 예린이를 그 지경으로 만든 니콜라이를 처리하는 것.

-삑.

[호출하셨습니까 주인님.]

“그래. 부탁할 게 있다.”

[하문하시는 말씀, 받들겠습니다.]

“예린이에게 남자친구가 있는데, 니콜라이라는 놈이다. 그놈의 번호를 알아내라.”

[예. 주인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삑.

니콜라이 네 이놈.

감히 내 소중한 작은 새를 망쳐놨겠다.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

한편, 1시간 뒤, 러시아.

니콜라이는 친구들과 같이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띠리리리리-♬

난데없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 것이 아닌가.

다만 니콜라이는 별 대수롭지 않게 수화기를 들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살기가 가득 베인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러시아어를 까먹었군.]

“.....?”

뭐지.

‘러시아’라는 언급이 있는 걸 봐선, 거기 러시아 맞아요? 이런 건가?

니콜라이는 수화기에 대고 유창한 러시아어로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래도 기본적인 영어는 할 수 있겠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 같은 말이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런 억양의 언어는 예린이가 있는 한국...

[I know who you are. your name is nikolai(네 정체가 뭔지 안다. 네 이름은 니콜라이.)]

“.....Да?(예?)”

[If you let my daughter go even now, I will spare you.(만약 지금이라도 내 딸을 놓아준다면, 널 살려줄 것이다.)]

“Извините?(뭐라고요?)”

[But if you don't let my daughter go...(하지만 내 딸을 놓아주지 않는다면...)]

“.....Да?(예?)”

[I will find you and I will kill you]

-뚜. 뚜. 뚜. 뚜. 뚜.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니콜라이.

그런 니콜라이를 보며 친구들이 물었다.

“무슨 전환데? 뭐라는 거야?”

“...몰라. 날 죽이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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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를 전달한 나는 통화를 끊은 다음 러시아에 파견 중인 부하를 호출했다.

난 녀석에게 니콜라이의 위치를 찾도록 한 다음 녀석의 행동을 감시하라고 했고, 만약 내 경고를 무시하고 또 흉계를 꾸미면 적당히 손봐주라고 일러두었다.

[본부대로 하겠습니다. 주인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 명령을 받는 파견팀장.

녀석이라면 나와 전장을 함께 누빈 동지라 할 수 있으니, 제대로 일처리를 해 줄 것이다.

“어쨌든 니콜라이 건은 처리했고, 그 다음은...”

이제 다음은 예린이에 관한 것.

아무리 철부지 딸이라곤 하지만,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못하는 아이인 줄 몰랐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엇나간 것일까.

예린이의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엘레나의 교육 방식이 잘못됐을까?

아니, 결단코 아니다.

비록 엘레나의 한국어가 어눌해 멍청해 보일 순 있으나, 그녀는 분명 똑똑하다.

그녀는 비록 현망하지 않아도 영악하며, 뚜렷한 교육철학이 없을지라도 득과 실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관철시킬 줄은 안다.

그녀 또한 뒷세계의 여왕 중 한 명이며, 마피아의 권력을 틀어지고 있는 군주다.

내 옆을 당당히 차지할 만한, 우수한 여자란 뜻이다.

그런 그녀가 엘레나를 잘못 가르칠 리가.

“후우... 우선 예린이의 말을 먼저 들어보고, 엘레나와 상담해야겠군.”

하여 예린이가 엇나간 것에는, 엘레나보단 예린이에게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로 떠나며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역시 곁에 두고 지켜봐야 했었는데.

-똑. 똑.

그때, 내 상념을 깨트리는 노크 소리.

고개를 드니 노크의 주인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아빠. 저 시우예요.”

“그래. 들어와라.”

-벌컥.

문을 연 뒤, 터덜터덜... 내게 다가오는 녀석.

축 처진 어깨를 보아하니, 역시 녀석의 고백은 실패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는 고백을 했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할 수 있나.’

다만 시우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다.

이복남매끼리 마음이 통하다니, 그래선 안 되지.

내 자식들은 좀 더 평범하게, 굴곡 없는 사랑을 나눴으면 좋겠다.

“아빠.”

그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문을 여는 녀석.

녀석의 축 처진 어깨가 오늘따라 더욱 처량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비록 시우의 고백이 실패하길 바랐지만, 녀석의 표정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저, 고백 성공했어요.”

“그래... 안타까운 일이지만... 잠깐, 뭐라고?”

“고백, 성공했다구요. 오늘부터 1일이에요.”

“.....”

뭐지.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남자친구도 있는 예린이가, 시우의 고백을 받아줬다고?

“그게... 사실 저도 믿기진 않는데, 예린이가 받아주더라구요. 오히려 울면서... 예전부터 절 좋아해 왔다고... 근데 러시아에 있는 동안 서로 멀어진 거 같아서...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그러더라구요....헤헤.”

“.....”

이게 대체 무슨.

너무 당황스러워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남자친구도 있는 예린이가, 어떻게 시우의 고백을 받아들일 수 있지?

“...시우야. 그 니콜라이인지 뭔지... 예린이에겐 남자친구가 있지 않니.”

“아. 그게 사실은...”

예린과 니콜라이의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녀석.

나는 녀석의 설명을 모두 들은 뒤,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이 모든 게 예린이의 자작극이었을 줄이야.

“방금 니콜라이랑 통화해서 인사 나누고 오던 참이에요. 축하한다고, 나중에 예린이와 같이 러시아 놀러 오라고 하더라구요.”

“.....”

“아빠. 이제 진짜 저희 사고 안 칠게요. 만나게만 해주세요. 예린이만 만나게 해주면, 이제 공부도 열심히 할 거고... 하인들도 괴롭히지 않을게요. 저 믿어주세요!”

“.....”

“아빠!”

“...아무래도, 회의가 필요할 거 같군. 네 엄마와 엘레나를 불러 얘기를 나눠봐야겠다. 네 엄마와 엘레나도 동의한다면, 그때 허락해주겠다.”

그래.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엄마 찬스’다.

희연이와 엘레나를 불러 적당히 구슬린다면, 시우와 예린이도 뭐라 말 못 하겠지.

“아빠가... 꼭 설득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저 진짜, 예린이 없으면 안 돼요.”

“노력은 해보마.”

***

내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역시 엘레나와 희연이를 부르니 둘 다 결사반대를 했다.

아무래도 시우와 예린이가 함께있을 때 그다지 좋은 꼴을 보지 못했고, 자신의 자식을 망치는 원흉이 서로의 자식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라 엘레나는 시우를, 희연이는 예린이를 좋게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됐다. 그러니 예린이는 러시아에서 1년을 더...”

“시, 싫어요!!! 아, 안돼요...! 시우랑 다시 떨어질 바에, 그냥 죽을 거예요. 빈말하는 거 아니에요. 시우랑 떨어질 바에, 차라리 죽을 거예요.”

하지만 둘의 마음이 통하니, 그 누구도 둘을 막을 순 없었다.

오히려 반대가 거셀수록 시우와 예린이는 서로를 더욱 갈망할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딱 3년만 한국에 있는 거다. 예린이 너는 마피아의 일원이기도 하니, 3년 뒤에는 러시아에 가서 수업을 받아야 해.”

3년만 둘의 연애를 허락하기로 했다.

비록 이복남매의 연애일지라도, 결국 이별로 귀결되는 연애라면 나와 부인들은 받아들일 수 있다.

“네... 그렇게 할게요.”

또한 시우와 예린이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나와 부인들의 마지막 마지노선이니.

“그럼 아빠. 저는 예린이랑 첫 데이트 하러 가볼게요.”

“...그래.”

그렇게 시우와 예린이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이때 까지만 해도 난 이 연애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한편, 정현재와 이신아는 자신들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를 마감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2시간 더 늦게 마감을 해야 하지만, 오늘은 둘이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서 일찍 마감하기로 했다.

“여보~ 이쪽은 다 끝났어.”

“응. 나도 끝. 하하. 이제 퇴근할까?”

서로를 보며 다정하게 웃는 두 사람.

오랜 갈등과 불화를 이겨내고, 안정기에 들어간 둘의 모습.

이렇듯 이신아는 정현재의 소중함을 깨달은 뒤, 그와 함께 애틋한 사랑을 키워오고 있다.

이제 그녀의 1순위는 단연 남편이며, 자신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준 그에게 남은 생을 모두 보답하고자 한다.

“식당 예약해놨어. 일단 밥 먹고 영화 보러 가자.”

“응~”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팔짱을 끼는 이신아.

이를 보고 흐뭇하게 웃는 정현재.

이제 둘은 완전히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니, 오히려 그전보다 더욱 좋아졌다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정현재가 이신아를 더 아끼고 좋아했다면, 지금은 이신아도 정현재만큼 그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으니.

-띵~ 띠리리 띵띵~♬

그때.

이신아의 폰에서 울리는 벨소리.

이신아는 폰을 꺼내 발신인을 확인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이름이었다.

“응. 아들.”

아들.

‘뒤틀린 여성성’에서 해방된 이신아는, 더 이상 정성민에게 욕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의 엄마이고, 그는 자신의 아들인 이 관계가 무엇보다 소중한 그녀였다.

[어. 엄마. 통화되지?]

“응.”

[다른 게 아니라, 내일 하민이 보러 갈 건데 같이 갈까 싶어서.]

“그럼! 하민이 보러 가는 거면 당연히 같이 가야지! 여보도 갈 거지?”

“하하. 그걸 말이라고. 우리 손주 보러 가는 건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아. 아빠도 같이 있나 보네?]

“응. 데이트하려고 이제 나왔어.”

[크큭. 내가 방해한 건가.]

“후후. 방해는 무슨. 이제 막 가게 문 닫은 참이야.”

[크큭. 그래. 그러면 두 분 데이트 잘 하시고, 난 들어가 볼게. 그, 내일 하민이네는 11시에 출발할 건데, 괜찮지?]

“응~ 그럼 내일 봐.”

[엉~]

-삑.

통화를 끓은 뒤에도, 아직 흐뭇한 미소를 짓는 이신아.

그녀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 행복했다.

남편과 함께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퇴근 후에는 소소한 데이트를 즐기고.

주말엔 이렇게 손주를 보러 가고.

특히나 ‘하민이’는 이신아가 더 마음에 두고 있는 손주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보이는 모습이나, 그 천재성에 취해 우쭐대는 모습이나 영락없이 자신의 어린 모습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다시 보는 기분이라 할까.

‘나도 그땐 내가 최고인 줄 알았지.’

하민이만큼은 아니었지만, 자신 또한 ‘신동’이나 ‘천재’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별다른 교육을 받지 않아도 중1 때 대학생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추지 않았던가.

하지만 자신은 그 재능을 꽃피울 환경이 되지 못했다.

가부장적이고 폭압적인 그녀의 아버지는 ‘계집에겐 중요한 일을 맡겨선 안 된다’라는 신념이 있었고, 이신아를 그저 ‘자신의 재벌 그룹을 배 불리게 하기 위한 패’로서 키우고자 했다.

그 결과 자신의 야망과 뜻을 실현하지 못한 이신아는 ‘궁극의 알파남’을 통해 억압받은 자신의 욕망을 보답 받고자 했고, 결국 미스터 최에 의해 그 욕망이 완전히 뒤틀려 ‘민세라’라는 최악의 악녀가 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민이는 아니야.’

하지만 정하민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천재성을 보이고 있는 그 아이는, 언제 어디서든 재능을 꽃피울 환경이 갖춰져 있었다.

오히려 그 재능을 더욱 개화할 수 있도록 부모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지 않는가.

‘기대되네. 그 아이가 어떻게 자라날지.’

***

시우와 예린이 때문에 상당히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오늘은. 하민이를 보러 가는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부모님을 모시고 하민이를 보러 가는 날.

하민이는 부모님에게 잠시 맡겨놓고, 하영이와 미뤄두었던 데이트를 할 것이다.

애초에 그녀를 내 대저택에 두지 않고 외부에 둔 이유도 ‘우리가 원래 꿈꾸었던 일들을’ 이뤄가기 위해서지 않았던가.

비록 내가 뒷세계의 가장 심층부에 몸담고 있긴 하나, 하영이와 만나는 순간만큼은 평범한 일반인이 되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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