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어떻게 되찾은 우리 가족인데, 조금이라도 불행하게 둘 수 없어.”
오빠의 말에 담긴 진심.
나는 그 말에 안도를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이 언제나 건재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작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응. 그래도 이 일은 계속할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기부를 멈출 마음은 없었다.
아까 말했듯, 오빠의 또 다른 이름으로 규명된 ‘선’이 널리-널리 퍼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혹여나 이 세상에 진짜로 신이 있다면 그가 오빠를 벌하지 않도록, 내 마음이 신에게 닿을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사람을 돕고 싶다.
어찌 됐든 나는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아이돌이 되고 싶었고, 나는 그런 일들을 아주 좋아하니까.
누군가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이 나의 일이니까.
“그래. 그게 너와 어울리긴 하지. 착해빠져선.”
오빠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어린 시절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가슴에 퍼져오는 따스함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다만 그 시절과 지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오빠는 더 이상 나를 밀어내지 않고 꼭 안아준다는 점이다.
가족이 아닌 연인으로서, 오빠와 동생이 아닌 남자와 여자로서 나를 대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행복을 느낀다.
다시 한번 끓어오르는 사랑을 느낀다.
“저... 오빠.”
조심스레 오빠를 부르자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오빠.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 하, 한 번 더... 할래?”
오빠는 입꼬리를 올렸다.
EP.276 (외전) 파견단
최근, 이하영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구(舊) 도원걸의 3자매와 신(新) 도원걸의 3자매를 포함한 정성민의 모든 여자들이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최근, 백하윤 마저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엘레나를 시작으로 이희연, 안지연, 백하윤이 차례대로 임신을 했고, 엘레나는 벌써 예쁜 딸을 낳았고, 이희연은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하여 도원걸의 단톡방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얘기로 항상 떠들썩했다.
오늘도 엘레나는 딸의 사진을 올리며 염장질을 시작했다.
-까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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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썅년들(6) 三
[코쟁이년]
[사진]
[사진]
[사진]
[코쟁이년]
[어쩜~ 누굴 닮아 이렇게 이쁠까. ㅋ]
[엄마아빠가 모두 미남 미녀니 이렇게 특출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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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출산한 이후, 완전히 팔불출이 되어버린 엘레나.
확실히 눈 코 입이 또렷한 아이의 얼굴은 이하영이 보기에도 무척 예뻤다.
불그스레한 두 볼과,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는 천진난만함과 귀여움.
그 어떤 엄마라도 이런 딸의 모습을 보면 자랑하고 싶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문제는, 이 딸이 주인님의 자식이라는 것.
전체적으로 엘레나를 닮았으나, 군데군데 주인님의 얼굴 또한 보인다는 점.
그것이 이하영의 속을 뒤틀리게 했다.
특히나 자신 빼고는 모든 주인님의 여자가 임신한 상태에서는 말이다.
“크윽...”
정예린.
주인님의 성을 하사받은, 이 사랑스러운 여아의 이름.
듣기로 이 아이의 이름은 엘레나가 지어줬다고 한다.
자신의 애칭인 ‘엘렌’, 혹은 ‘엘린’과 비슷하게 들리는 한글 이름을 찾다가 ‘예린’을 고른 것이라고.
자신의 사랑스러운 분신을 자신의 애칭을 부르듯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그런 바람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카톡에 수십 번, 과장을 보태서 수백 번은 말해대서 알고 잘 있었다.
“부러워!!”
얼마나 부러운지, 이하영은 육성으로 부럽다는 말을 내뱉었다.
자신에게도 주인님을 닮은 사랑스러운 자식이 있었으면.
주인님의 씨를 잉태해 배가 불러왔으면.
완벽하게 이어졌다는 그 증거를 품고,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면.
그 아이에게 행복과 사랑을 줬으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까톡.
그러한 망상을 하던 도중 다시 한번 까톡이 도착했다.
이번엔 정성민이 환하게 웃으며 정예린과 놀아주고 있는 사진이었다.
“.....”
독기가 완전히 싹 빠진 채 해맑게 웃고 있는 주인님의 모습.
확실히 엘레나가 출산을 한 이후, 주인님은 딸바보가 되어버렸다.
틈만 나면 딸의 얼굴을 보러 가고, 아르르~ 까꿍~ 같은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말도 자주 하고, 엘레나를 전보다 더욱 소중히 아껴주고 있었다.
그렇게 부성애가 물씬 오른 모습을 보니 더욱 아이에 대한 염원이 강해지는 요즘이었다.
-까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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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썅년들(6) 三
[코쟁이년]
[사진]
[딸바보 주인님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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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계속해서 단란한 가정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염장질을 하는 엘레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이하영.
다만, 이하영을 제외한 정성민의 다른 여인들은 엘레나의 팔불출 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자신들도 1년 내에 맞이할 미래이기 때문에, 그들은 각자 아들 바보, 딸바보가 된 정성민의 모습을 상상할 뿐이었다.
“.....”
그러니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은 이하영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주인님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은 주인님의 완전한 여인이 되었다는 보증 같은 것인데, 자신만 그런 것이 없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저들은 같은 ‘노예’ 출신으로서, 동기나 다름없지 않은가.
서로의 목적을 위해 도원결의도 하고, 여러 작전도 세우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참 많은 일이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현재를 돌아보면, 결국 자신만 제자리에 남은 채 다른 동기들은 한발 먼저 앞서가고 있었다.
임신을 한 이상 곧 결혼식이 시작될 것이고, 주인님의 ‘부인’으로서 보장된 지위와 안락한 일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완벽한 행복의 단계에 접어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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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영님께서 채팅방을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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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하영은 이들 사이에 섞일 수 없었다.
만약 미스터 최만 아니었더라면 온전히 자신만이 차지할 수 있었던 모든 행복들을, 야금야금 그녀들에게 빼앗기는 것 같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이제는 자신이 계획했던 마지막 한 수, ‘탈주’를 본격적으로 준비할 때가 되었다.
최대 1년 정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자신의 공백을 주인님께서 느끼게 하는 것.
자신의 가치에 대해 돌아볼 시간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이 이하영의 계획이었고, 또는 바람이었다.
자신을 다시 생각해줬으면 하는, 그녀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이게 옳은 걸까...’
다만, 이 방법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어머님의 경우는 굉장히 특수한 경우이기도 하고, 때래야 땔 수 없는 가족이기도 하고.
한낱 전 여자친구였던 자신과는 관계의 깊이가 다르지 않은가.
‘그래도 이 방법밖에 없어.’
하지만, 결국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참 많은 시도를 했었고, 모두 실패하지 않았던가.
사업적 성과를 이뤄도, 매출을 끌어올려도, 성공적으로 양지에 진출해도,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 방안을 내놔도 주인님은 좀처럼 반응하지 않았고, 주인님을 먼저 찾아가도, 그냥 솔직하게 최근 쌓인 게 많다고 토로를 해봐도 주인님의 반응은 뚱할 뿐이었다.
웬만해선 자신을 잘 안아주지 않으셨다.
‘만약 이 방법마저 실패하면 난...’
이하영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결국 자신만 혼자 버려진 채 일만 하는 기계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하영은 자신에게 행복한 상황을 망상을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자신을 주인님께서 미소로 맞이하고, 오랫동안 널 기다려왔다는 달콤한 말을 속삭여주고, 격정적으로 키스를 나누는.
서로의 귓속에 사랑한다는 말을 퍼붓는, 그런 망상을 했다.
어린 소녀들이나 할 법한 유치한 망상이지만 그것이 유일한 이하영의 안식 거리였다.
점점 마음이 죽어가고 있는 요즘, 자신을 붙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ㅡ.
-까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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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썅년들(6) 三
[엘레나님이 이하영님을 채팅방에 초대하였습니다.]
[코쟁이년]
[언니 왜 나가 ㅋㅋㅋㅋ]
[사진]
[우리 가족 사진 보고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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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고, 끝까지 가슴에 불을 지피는 엘레나였다.
이는 다른 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까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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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썅년들(6) 三
[과거따까리년 희연]
[사진]
[우리 아들 초음파 사진 보여?ㅠㅠ]
[꼬물꼬물 어찌나 이렇게 귀여운지ㅠㅠㅠ]
[보지벌크업년 지연]
[뭐, 우리 아들은 세계 챔피언 확정이네요 ㅋ]
[발차기가 보통이 아니에요 ㅋㅋ]
[상폐줌마 하윤 언니]
[사진]
[뭐... 알고 있겠지만... 두줄ㅋ]
[그렇게 됐다. ㅋ]
[이하영님께서 채팅방을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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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뒤, 엘레나가 출산 후유증 회복과 재활을 모두 마쳤을 때쯤, 정성민과 엘레나는 러시아에서 올릴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둘의 결혼은 단순히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운명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뒷세계와 러시아의 뒷세계가 더욱 단단한 혈맹을 맺게 되는 ‘의식’에 가까운 것이기에,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때문에 정성민은 정예 중 정예로 추린 150인의 파견단을 꾸리기로 했다.
이들은 모두 정성민의 결혼식에 신랑 측 하객이 될 인물들로, 성격, 성향, 사상, 충성도 등을 따져 엄선되어야 할 이들이었다.
“파견단에 지원하고자 하는 팀장들은 모두 거수하도록.”
하여 현재 정성민은, 대회의를 열어, ‘파견단 접수’를 받고 있었다.
이에 정성민에게 눈도장을 찍히고픈 야망이 있는 팀장들이 모두 거수를 하기 시작했다.
정성민은 가장 먼저 거수를 한 ‘촬영팀’에게 먼저 발언할 기회를 주었다.
그가 손으로 촬영팀장을 가리키자 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먼저 발언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님. 우선, 저희 팀이 꼭 가야 하는 이유는, 주인님의 영광스러운 모든 순간을 화면에 담기 위해섭니다. 물론 엘레나 여사님 측에서도 훌륭한 웨딩 촬영팀이 있겠지만, 저희는 ‘인체를 아름답게 찍는데’ 타고난 베테랑들이 아닙니까. 부디 주인님과 엘레나 여사님의 눈부신 피사체를 저희가 담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정성민은 고개를 끄덕이곤 옆자리에 앉은 엘레나를 보았다.
그녀의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엘레나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킹정하는 부분이에요...♥ 저희 예쁘게 찍어주는 거 맞죠?”
“네! 여사님!”
아직 인터넷체가 빠지지 않았지만, 상당히 능숙해진 엘레나의 한국어 실력.
어쨌든 그녀의 허락에 촬영팀장은 미소를 지었다.
만약 이번 웨딩 촬영만 잘 해낼 수 있다면, 두둑한 보너스를 받는 것은 물론 연봉인상, 주인님께 확실한 눈도장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험난한 뒷세계의 사내 정치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질 수 있는 것이다.
“좋다. 신청 인원을 말해라.”
“저를 포함한 30명의 인원이 필요합니다.”
“...흠.”
촬영팀 30명.
정성민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다른 팀들도 많은데 촬영 팀에만 1/5를 배정하기엔 너무 그 수가 많았다.
“반으로 줄여 15명까지만 허용하겠다.”
“예! 최대한 추리고 추려서 줄여보겠습니다.”
정성민의 명령에 별다른 토를 다지 않고 즉각 수용하는 촬영팀장.
이윽고 정성민이 ‘다른 팀은?’이라고 말하자, 우르르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손을 거수했다.
거의 동시에 거수하는 바람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어서, 정성민은 꽤 고민을 이어가야 했다.
“음?”
그때, 정성민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가 있었다.
최근, ‘성민교’의 통합 지부장으로 승격한 박우혁이었다.
저 새끼가 왜 저기서 손을 들고 있지?
정성민은 박우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너 여기서 뭐 해. 네가 왜 여기 있어?”
지방에 퍼진 자신의 사이비교를 잘 관리하라고 통합 지부장으로 승격시켜줬는데, 그런 그가 팀장만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의’에 참석해 있었다.
당연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저도 팀장이기 때문입니다.”
“엉?”
박우혁이 팀장이라고?
정성민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박우혁이 설명했다.
“아. 그게... 이희연 총괄팀장이 ‘종교팀’을 설립하여, 저를 팀장으로 승격시켜줬습니다.”
정성민은 이마를 짚었다.
설마 자신에게 보고도 안 하고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뭐, 그래도 보고를 안 한 이유는 알만했다.
자신이 거절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기다려봐.”
그래도 사실 확인은 필요했다.
자신을 진짜 ‘신’이라고 믿는 저 박우혁 또라이가 막무가내로 이곳에 온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여 정성민은 배가 잔뜩 불러 안정을 취하고 있는 이희연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