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연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곳엔 정성민의 씨를 받은 태아가 자라고 있는 중이었다.
[죄, 죄송합니다...제가 주제넘었습니다. 가, 감히 주인님의 여자에게...]
-달칵.
그렇게 차도연이 두 손을 싹싹 빌며 이희연에게 사죄를 하고 있던 그때, 민찬기는 영상을 멈췄다.
더는 영상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우상과도 같은 그녀가 뒷세계의 제왕인 정성민도 아니고, 그의 아내에게 비굴하게 두 손을 비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차라리 썅년으로 남으면 썅년으로 남았지, 저런 비참하고 비굴한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됐어. 이만하면 됐어....”
완전히 넋이 나가버린 민찬기.
그렇게 반 정도의 영상을 본 민찬기는 이전에 차도연이 말했던 ‘결정.exe’ 파일을 실행했다.
그러자 1번, 2번, 3번의 선택지가 적힌 파일이 나타났다.
[1. 정성민에게 복수를 한다.]
[2. 차도연의 타락 영상을 매일 받아본다.]
[3. 30억원의 위로금을 받고 차도연을 잊은 채 새 삶을 살아간다. (원한다면 기억을 완전히 지워줄 수도 있음)]
예시로 나온 3개의 선택지.
민찬기는 자지를 잔뜩 발기시킨 채 2번을 노려봤다.
도대체 왜 있는지도 모를 최악의 선택지이지만, 묘하게 끌림이 있는 선택지였다.
이런 미칠 듯이 자극적인 영상을 매일 받아볼 수 있다니.
“지랄하지마.”
하지만 꼴림보다 분노가 더 많은 민찬기였다.
그는 1번과 3번, 둘 중 하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30억원이나 준다는 3번 선택지가 끌리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씨발...”
하지만, 결국 3번은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의미가 아닌가.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30억원이라는 돈을 받고 버리라는 것이 아닌가.
-달칵.
하여 민찬기는 1번을 눌렀다.
언젠가 3번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는 이 미칠듯한 분노를 어디로든 쏟아내고 싶었다.
정성민, 저 개새끼를 도저히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1번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Y/N)]
그렇게 나타난 확인문구.
민찬기는 곧바로 YES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강제로 폴더 안의 동영상과 메모장이 삭제되기 시작하더니,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타났다.
[다운로드 중...]
다운로드 중.
도대체 무엇을 다운받는 것일까.
이윽고 민찬기는 그 내용물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폴더 안에 다운로드 된 파일.
그것은 대한민국을 잠식하고 있는 각종 부정부패에 관련된 자료들이었다.
재벌가부터 정치인, 언론인, 대형 기획사 등등.
제대로 파기만 하면 스타 검사에 오를 수 있을 만한 굵직한 비리들이 이 자료 안에 모조리 담겨있었다.
그리고ㅡ.
“...정성민.”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정성민은 자신의 약점까지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가 보유한 기업과 그 기업이 저지른 부정부패들.
뒷세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악행과 범법적인 행위들.
민찬기는 뿌득, 이를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비록 안개 너머로 흐릿하게 형체만 볼 수 있듯 정성민은 자신의 약점을 모두 드러내지 않았지만, 집요하게 파고들고 파고들다 보면 더 깊은 비밀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후회하게 될 거야.”
민찬기는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에 뿌리내린 악을 모조리 뿌리 뽑으며, 위로 올라갈 것을.
그렇게 검찰의 최고 권력을 손에 쥐면, 정당한 공권력을 바탕으로 정성민을 압박할 것을.
최후엔 자신이 승리할 것임을.
그는 그러한 다짐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EP.270 (외전) 미스터 최의 일상
말 한마디면 모든 게 이뤄지던 시절이 있었다.
사고 싶은 것은 다 살 수 있었고, 따먹고 싶은 여자는 다 따먹을 수 있었다.
자신이 죽으라고 하면 진짜 자결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차마 죽음을 택할 수 없으면 죽는시늉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마치 신이 된 기분이었다.
하늘을 가르고, 물 위를 걷고, 이 손안에 세상을 쥔 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 미스터 최에겐 그런 시절이 있었다.
-슥 슥 슥 슥
하지만 지금은 화장실 변기를 닦고 있었다.
뒷세계의 거악이자 왕으로 군림하던 그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한쪽 손목은 잃은 채 화장실 변기를 열심히 닦고 있었다.
한때 그의 애완동물이나 다름없던 정성민의 대저택을 청소하고 있는 그였다.
“야! 밍기적거릴래? 30분 안에 끝내놓으라고 했잖아!”
“어. 죄, 죄송합니다...빠, 빨리 끝내겠습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자신을 대하지 못했다.
아니, 모두가 두려워했다.
숨 쉬는 것조차 자신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그들이었다.
허나 지금은 이렇게 최하위 노예 취급을 받고 있었다.
“쯧. 하긴, 손 하나가 없는데 제대로 일은 하겠어? 주인님께선 왜 이런 병신을 쓰는지 몰라.”
혀를 차며 등을 돌리는 감독관.
이제는 자신이 그 대단했던 뒷세계의 제왕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정성민에게 고용된 저 평범한 감독관 말이다.
이전에 썼던 감독관은 자신이 한때 ‘미스터 최’였다는 걸 알고 있어서, 제대로 자신을 굴릴 수 없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때문에 새로온 감독관의 눈에 미스터 최는 일 못 하는 노예 중 하나일 뿐이었다.
-슥삭슥삭슥삭
그렇게 미스터 최는 점점 잊혀 가고 있었다.
과거의 자신이 어떠했고, 어떤 일을 했는지.
설령 자신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해도, 현재 병신 머저리가 된 자신을 두려워 할 리 없었다.
두려워해야 할 건 또 언제 고문실에 끌려갈지 모르는 미스터 최이지, 그들이 아니었다.
“후우...”
그렇게 얼마나 청소를 했을까.
미스터 최는 땀을 이마에 가득 맺힌 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약 2시간 동안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일한 결과, 한 구역의 화장실을 모두 청소할 수 있었다.
남들은 40분이면 끝내는 걸 미스터 최는 한쪽 손이 없어서 이토록 오래걸릴 수밖에 없었다.
“쯧쯧. 이제 끝난 거냐?”
그때, 화장실 앞에서 자신을 보며 혀를 차고 있는 감독관.
미스터 최가 고개를 깎듯이 숙이며 답했다.
“예! 깨, 깨끗하게, 모두 정리했습니다. 하하.”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감독관의 눈치를 보는 미스터 최.
이에 감독관은 뒷짐을 진 채 화장실을 둘러보았다.
심술 가득한 그의 표정만큼이나 작은 흠집이라도 찾으려 눈을 가늘게 뜬 채 화장실을 둘러보는 그였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야 이 새끼야. 여기, 여기 보여?”
변기 안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언성을 높이는 감독관.
미스터 최가 서둘러 달려가 그곳을 보았다.
머리카락 하나가 변기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이거 뭐냐? 엉? 제대로 청소 한 거 맞아?”
“아. 그, 그게... 제 머리카락 같습니다. 청소하면서 빠진...”
“됐고. 다시 청소해.”
“...예?”
“다시 청소하라고.”
“아... 그, 머리카락은 바로 치우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그래도 다시 해. 분명 먼지 하나 안 나오게 청소하라고 했지?”
“...저, 그러면 밥만 먹고 하면 안 되겠습니까? 헤헤... 아직 벌써 2시인데, 아직 점심을 못 먹어서요.”
뒷머리를 긁적이며 굶주린 배를 잡는 미스터 최.
허나 감독관은 표정은 단호했다.
“이 새끼가 제대로 일도 안 해놨는데, 밥이 처 넘어가냐? 감히 밥 처먹을 생각을 해?”
“.....”
“그러니까 네가 식충이 소릴 듣는 거다. 몸이 병신이면 머리라도 좋던가. 아니면 주인님처럼 잘나게 태어나던가. 병신같은 놈.”
정성민과 미스터 최의 과거를 모르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뱉을 수 있는 말.
미스터 최는 몸을 떨며 주먹을 쥐었다.
아무리 모진 고문으로 자신을 상실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별 볼 일 없는 남자에게 인격모독을 듣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야. 씨발 이 새끼 눈 좆같이 뜨네? 야.”
그때, 미스터 최의 분위기를 읽고 표정을 험악하게 구기는 감독관.
그가 미스터 최의 이마를 툭- 툭- 건드리며 말했다.
“씨발놈이, 표정관리 안 해? 엉? 좆 같냐? 어? 좆 같아? 씨발놈이, 좆 같아?”
이번엔 뺨을 툭- 툭- 두들기는 감독관.
미스터 최는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ㅡ.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어찌 감히...”
이딴 자존심을 지키는 것보다, 고문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게 두려운 그였다.
온몸에 화염방사기가 쏘아지는 고통은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았다.
“씨발놈이, 갑자기 태세전환을 하네? 왜? 아까처럼 좆같은 표정 지어봐. 어서 해봐.”
허나 건수 하나 잡은 감독관이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역시 화가 나도 꾹 누른 채 납작 엎드려야 했었다.
미스터 최는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지고 난 뒤였다.
“하하. 이 새끼. 아무 말도 못 하네? 병신새끼.”
“...헤헤..”
“야.”
“옙.”
“엎드려뻗쳐 실시.”
“시, 실시!”
감독관의 명령에 따라 엎드려뻗쳐를 하는 미스터 최.
하지만 한쪽 손목이 날아가 균형이 맞지 않았고, 오랜 고문으로 다리 근육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 하는 그였다.
“병신이 벌도 제대로 못 받네? 넌 씨-부랄새끼야. 그 자세로 30분 못 버티면, 바로 고문실 건의할 거다. 알겠냐?”
“...네.”
미스터 최는 서러운 마음을 삼키며 대답을 했다.
괜히 화 한번 냈다가 손해만 봤다.
“요령도 못 피울 수 없을 거다. 내가 30분 동안 지켜볼 거거든. 기다려봐.”
감독관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그리고 동영상 녹화를 한 다음, 주위의 물건을 이용해 폰을 세워 미스터 최가 엎드려 뻗치고 있는 모습을 녹화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야. 병신새끼야.”
“예!”
“녹화하고 있으니까 그대로 있어라? 만약 30분 뒤에 왔는데 녹화가 제대로 안 되어 있거나, 중간에 자세를 풀면 넌 그대로 고문실 행이야. 알겠어?”
“옙!”
“병신새끼가 대답만 잘 하지. 그럼 30분 뒤에 온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리를 비우는 감독관.
미스터 최는 울분을 삼키며 좀 더 편한 자세를 찾으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손목 하나가 날아가고 없어 손목이 없는 오른팔에 유독 힘이 들어가 몸의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크헉....크허....”
다만 고문실에 끌려갈 수 없기에, 미스터 최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25분을 버텼다.
이제 5분만 더 버티면 이 미칠 거 같은 고문에서 해방될 수 있는 그였다.
하지만 그때.
“뭐야 이 새끼. 벌 받고 있네. 킥킥”
돌연 미스터 최가 담당한 화장실에 ‘일꾼’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정성민의 하급 노예 중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이들로, 주로 건물을 청소하거나 고장난 부분이 있으면 수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규율상 미스터 최의 상관이었다.
“넌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감독관님한테 또 털렸나 본데?”
“쯧쯧. 불쌍한 새끼.”
주 연령층이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까지 혈기왕성한 나이로 꾸려진 일꾼들.
그들 중 하나가 땀을 뻘뻘 흘리는 미스터 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그냥 일어나. 감독관님한테 잘 말해줄 테니까.”
“괘, 괜찮습니다! 앞으로 5분만 더 버티면 됩니다!”
“어휴. 미련한 새끼, 곧 뒤질 거 같은 표정인데? 일어서 인마.”
“정말 괜찮습니다... 5분만 있으면 됩니다.”
“하- 이 융통성 없는 새끼. 내가 잘 말해준다니까.”
감독관과 사적으로 친한 것을 과시하고 싶은 일꾼 한 명.
그는 계속해서 미스터 최에게 일어서라고 했지만, 감독의 깐깐함을 잘 아는 미스터 최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던 중 그가 미스터 최를 촬영 중이던 스마트폰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근데 이건 뭐냐? 네 거냐?”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는 일꾼.
미스터 최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아, 안됩니다! 건드리면 안 됩니다!!!”
손을 뻗다가 멈칫하는 일꾼.
그가 미스터 최를 돌아보며 말했다.
“왜?”
“그, 그거 감독관님 겁니다! 만약 30분 촬영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ㅡ”
“괜찮아 인마.”
허나 대수롭지 않은 듯, 피식 웃으며 감독관의 핸드폰을 쥔 일꾼.
미스터 최가 소리쳤다.
“안돼!!!! 건드리면 안 된다고요!”
“.....뭐?”
“촤, 촬영이 되어 있어야...! 지, 지금 저를 찍어주십시오! 빨리 촬영을...”
“하ㅡ. 이 개새끼가. 너 나한테 소리 질렀냐?”
순식간에 돌변한 분위기.
당황한 미스터 최가 답했다.
“예? 아, 아닙니다. 너무 놀라서...”
“오냐오냐해주니까 내 좆으로 보여? 존나 어이없네. 챙겨주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하- 개빡치네”
머리를 쓸어넘기며 궁시렁대는 녀석.
그리고 때마침 화장실로 들어오는 감독관.
“무슨 일이냐?”
“아. 감독관님 오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