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2화 (262/303)

-쾅!

책상을 내리찍은 차도연.

그녀가 차지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정성민이 아무 꿍꿍이 없이 그런 제안을 한다고?”

흥분한 차도연과는 달리 미소를 머금은 채 커피를 홀짝이는 차지연.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꿍꿍이야 있겠지. 주인님은 널 가지고 싶어하니까.”

...날 가지고 싶다.

그 말에 차도연의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

그때, 차지연이 다음 말을 덧붙였다.

“다만 무슨 꿍꿍이든, 1박 2일만 버티면 되는 거야. 그러면 너는 평생 느껴야 할 그 욱신거림을 해결할 수 있는 거라고.”

“.....”

“강요는 아니야. 어디까지나 선택은 네 몫이지. 2주 줄게.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만약 2주 뒤에 연락이 없거나 그 전에 거절하면 더 이상 널 건드리지 않을게. 어차피 주인님의 노예가 되고 싶은 노예는 많으니까.”

차도연은 완전히 변절해버린 언니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감방에 처넣으려 했던 악의 축 중 하나인 정성민을 거리낌 없이 ‘주인님’이라고 하다니.

“그런데, 난 개인적으로 너도 주인님의 노예가 됐으면 좋겠어. 그러면 우리 예전처럼 사이 좋게ㅡ”

“닥쳐.”

“.....”

허나, 단호한 차도연의 입장.

아직 긍지를 잃고 싶지 않은 그녀.

차지연은 씁쓸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차도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마음 정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난 존중할 거야. 다만 네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을 하길 바라는 거지.”

차지연은 그 말을 남기곤 카페를 빠져나갔다.

차도연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이윽고 그녀 또한 몸을 일으켜 카페를 빠져나왔다.

***

정성민과 하룻밤을 보내면 끓어오르는 성욕을 해결해주겠다는 제안.

이제 그 제한의 답변기일이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차도연은 답변을 미루고 있는 중이다.

극한의 욕정에 시달리면서.

‘연락하면 안 돼. 버텨야 해. 끝까지 버텨야 해.’

차도연은 정성민과 했던 그 날밤을 기억하고 있다.

그날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이 무너졌고, 그로 인해 얼마나 사고가 뒤틀리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다.

단 하룻밤만 내어줘도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욱신거림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거야? 진짜 미칠 거 같은데.’

다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이 욕정을 안고 살아야 하는지.

이 달아오르는 몸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할지.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런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니, 이제는 그 두려움이 정성민을 만남으로써 얻는 리스크보다 더욱 커지고 있었다.

그녀의 고민은 깊어졌다.

‘연락하면 안 돼. 참아야 해.’

‘아냐. 단 하룻밤이잖아 하룻밤만 버티면’

‘아니! 절대 못 버텨! 당해봐서 알잖아!’

‘그러면 평생 이런 애타는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그의 노예가 되는 것보단 나아!’

‘버티기만 하면 되잖아. 이제 시간도 없어. 오늘 연락 안 하면 평생 이딴 기분을 느낌 살아가야 한다고.’

차도연은 연신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방안을 서성였다.

그러다가 머리를 감싸 쥐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답답한 가슴을 쿵- 쿵- 치기도 했다.

욕망이 올라올 때면 스스로 자해까지 하며 욕망을 끓어내려 애써보았다.

하지만 고통이 가시면 기다렸다는 듯이 욕망이 끓어 올라와 자해로도 한계가 있었다.

-달칵.

그렇게 밤 11시 20분.

오늘이 끝나기까지 40분을 남겨둔 이때, 차도연은 휴대폰을 들었다.

그녀는 광기에 찬 눈, 귀까지 찢어진 미소를 지은 채 차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

차지연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차도연은 다시 애액으로 흥건한 음부를 비비며 차지연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연락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

-삑.

뭐지.

왜 전화를 받지 않는 거지?

날짜를 착각했나?

벌써 지난 건가?

차도연은 서둘러 자신의 폰을 확인해 보았다.

차지연과 만난 날을 계산하기 위해서다.

그녀와 만난 지 2주가 지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날짜를 세어보았다.

“서, 서, 설마...”

애매했다.

자신이 이해한 건 차지연을 만날 날을 포함하지 않은 2주였다.

그 날 이후의 14일이었다.

하지만 그날도 포함한다면, 날짜를 지난 셈이다.

어제 전화를 하지 않은 시점에서 기한을 놓친 것이었다.

“크웃...!”

초조해졌다.

차도연은 다시 전화를 해보았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다시 해보았다.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다시, 다시, 다시, 다시 해보았다.

계속해서 받지 않았다.

차도연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으으으!! 으아아아! 아아아!!! 아아아악!!!”

-쿵! 쿵! 쿵! 쿵!

분노가 끓어 올라왔다.

세상이 자신을 농락하는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날까.

감정이 주체 되지 않았다.

“으아아!! 왜! 왜! 왜!”

다시 통화를 시도해 보았다.

받지 않았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받지 않았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받지 않았다.

“으으...으으으으...”

기회를 놓쳤다.

저번에 언니가 말한 대로, 정성민의 노예가 되고 싶은 여자는 많았고, 자신은 그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지에 사랑받을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았다.

이제는 이런 좆같은 욱씬거림을 매일 느끼며 살아야 한다.

해소할 수 없는 욕망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만약 누군가 평생 소변을 참고 살라고 하면, 그걸 참을 수 있을까?

배설할 수 없는 욕망이 얼마나 개좆같은지, 얼마나 근질거리고, 얼마나 애가 타고, 얼마나 짜증이 나고, 얼마나 애달픈지 알 수 있을까.

이걸 민찬기가 이해할 수 있을까?

“정성민...이, 이 개새끼가!!! 이 개새끼가!!”

모든 게 다 정성민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런 몸이 되어버렸고, 그 때문에 이 욕망을 배설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결코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받아!!!!! 전화 받아아아아아아!!!!!!!!!!!!”

차도연은 수신음이 울리는 전화기에 대고 고성을 질렀다.

받아! 받아! 받아! 받아! 계속해서 고성을 질러댔다.

이성을 잃은 그녀의 모습은 이제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냉철하면서도 자제력이 뛰어나고,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냉미인의 면모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저 성욕에 미친 암컷이 미친 암컷이 한 마리 있었다.

“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거야?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제는 미련이었다.

이미 기회를 잃었다는 것을 알지만,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고, 전화를 받지 않고.

전화를 걸고, 전화를 받지 않고.

전화를 걸고, 전화를 받지 않고.

전화를 걸고, 전화를 받지 않고.

같은 작업을 반복, 또 반복하였다.

“하........... 하하...”

그러다 마침내, 차도연은 절망했다.

손에 들려있던 폰이 스르르 미끄러져 바닥에 툭 떨어졌다.

허망한 표정의 차도연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퀭한 눈으로 허공의 한 지점을 응시했다.

저 먼 어둠 속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비참했다.

“내가...내가 어쩌다 이런 인간이...”

왜 이렇게 한심해졌을까.

어쩌다 이렇게 초라한 인간이 되어버렸을까.

난 빛나는 사람이었는데.

복수를 향해 미래를 설계하고, 언제나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앞으로 나아가던 사람이었는데.

나는 이렇게ㅡ

띵ㅡ동.

“.....?”

사고가 경직됐다.

지금은 밤 11시 55분.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를 만한 시간이 아니었다.

도대체 누가 이 시간에 초인종을 누른 거지?

...아.

찬기가 온 거구나.

집에 돌아가서 전화를 안 하니, 걱정돼서... 그래서 찾아온 거겠지

“하아.”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하필 이럴 때, 엉망인 모습일 때.

애써 괜찮은 척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더 지치게 하는 법이 있다.

-벌컥.

다만 차도연은 표정을 정리하고 문을 열었다.

애써 미소를 지으며 문 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

하지만, 문 앞의 남자는 민찬기가 아니었다.

문 앞의 남자는 바로 저주하고, 증오하고, 미워했던,

“오랜만이군, 차도연.”

하지만 끝끝내 잊을 수 없었던, 그래서 너무나 그리웠던, 정성민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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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민.

새로운 뒷세계의 제왕이자, 한국의 거악.

방송계와 연예계, 여러 재벌과 인맥을 쌓고, 정부 주요 인사들과도 커넥션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지배자의 지배자.

그런 그를 바라보는 차도연의 눈은 잔뜩 확대되었다.

은은한 달빛을 받아 역광으로 빛나는 그의 모습은 사뭇 비현실적인 듯하다.

하지만 몇 번이나 눈을 깜빡여도,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보아도, 그는 자신의 앞에 서 있었고, 실재하고 있었다.

정성민이 자신의 집에 몸소 찾아온 것이다.

“어, 어떻게...”

“나를 원한 거 아니었나?”

그 한마디에 말문이 막히는 차도연.

그녀가 얼어붙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정성민이 피식 웃으며 몸을 밀고 들어왔다.

차도연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며 정성민을 집안으로 들이고 말았다.

“...흐음.”

그렇게 집안으로 들어온 정성민은 거실을 둘러보았다.

곳곳에 물건이 널브러져 있고 설거지는 돼 있지 않으며 오랫동안 공기가 정체한 듯 한 냄새가 났다.

“대충 어떤 상태인지는 알겠군.”

그야말로 엉멍진창인 집안.

집 꼬라지만 봐도 차도연이 얼마나 피폐한 시간을 보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정성민은 입꼬리를 올렸다.

“.....”

다만, 차도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멍한 얼굴로 정성민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완벽한 넓은 어깨부터, 역삼각형으로 떨어지는 허리라인, 탄력 있는 엉덩이, 길쭉하게 뻗은 다리.

그 뒷모습조차 완벽한 모습이었다.

“차도연.”

그때, 정성민이 뒤돌아서며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차도연은 정성민의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걸 느꼈다.

“내 제안은 아직 유효해. 아직 열두시까지 2분 남았거든.”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목시계를 톡톡 두드리는 정성민.

그가 말했다.

“이제 선택해. 여기서도 거절하면, 더 이상 네게 손대지 않겠다.”

...꿀꺽. 침을 삼키는 차도연.

숨결에 배인 열기, 달아오르는 몸, 쿡쿡 쑤시는 아랫배.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만 그녀에게 필요한 건 각오뿐이었다.

“하, 하겠어. 하루만... 버티면 되는 거지?”

“그래.”

차분한 표정으로 답하는 정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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