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등만 마저 하고 올게.”
약의 힘을 빌리긴 했으나,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정현재의 몸.
체육관에 가면 항상 안지연이 그를 맞이해준다.
항상 같은 톤의 목소리로 오셨습니까 아버님. 오늘은 등을 조지겠습니다.
같은 말로 그를 트레이닝 시켜준다.
“미스터 최. 무게 50으로 맞춰.”
미스터 최는 정성민 가족의 노예가 되었다.
그는 혼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정현재의 수중을 들고 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의 심기를 거슬렸다간 또다시 고문실에 끌려갈지 모른다.
“다, 다 했습니다. 헤헤...”
오랜 고문으로 완전히 자신을 상실한 그.
이제 그의 외형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키도 조금 줄어들고, 근육은 완전히 빠져 빼빼 마른 몸이 되고, 손 하나는 없었다.
부랄도 한쪽이 파열되었고, 자지 크기도 몰라보게 수축되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발기를 할 수도 없었다.
“네 역겨운 얼굴을 보니 기분이 안 좋아졌어. 구석으로 꺼져있어.”
정현재의 차가운 음성.
미스터 최는 고개를 조아리며 헬스장의 구석으로 걸어갔다.
이젠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 다리를 절뚝이는 그는 고문실에 끌려가지 않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
한편, 정성민은 그동안 새로운 사업을 하느라 바쁜 나날을 지냈다.
검찰청장과 손을 잡은 그는 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여러 복지사업과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번 달 사회 진출 희망자는 몇이지?”
“3명입니다.”
하여 정성민은 자신의 노예 중 사회로 나가고자 하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다.
다시 일반인의 삶을 회복하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정신교정 및 직업교육도 시켜주는 그였다.
다만 그의 노예 대부분은 정선민이 제공하는 쾌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도덕적, 윤리적인 삶은 파괴되었으나, 그들은 정성민이 새로 부여한 이 관계와 쾌락을 원했다.
다시는 사회로 돌아가길 원하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매달 사회 진출 희망자는 5명 이하 밖에 나오지 않았다.
“오늘도 민간 부분 치유가 많겠군.”
“아무래도 그렇죠.”
정성민의 최측근이자 그의 오른팔인 이희연.
그녀는 정성민이 키운 조교사를 ‘심리 치료사’로 전향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정성민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심리치료’ 프로젝트가 실시되었는데, 이게 아주 톡톡한 효과를 보고 있었다.
그들의 치유방식은 자연스러운 치료가 아니라 나는 존나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쑤셔 박아 넣는 것이기 때문에, 효과가 즉각적이고 인기도 많았다.
다소 방법이 과격할진 모르나 효과 하나만큼은 확실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연옥의 사용법도 정성민에게 어느정도 배웠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극복하거나 무너진 자존감,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일에도 성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희연은 이 ‘심리치료’를 핵심으로 정성민에게 사업을 제안했다.
바로 뒷세계의 정성민이 양지로 나갈 사업 말이다.
“훌륭하군. 추진해봐.”
“자금은 어디를 끌어쓸까요. 아시다시피 후원사를 얻을 수는 없어서.”
“조금씩 다 뜯어내. 하영이와 백하윤의 향락소 지부, 엘레나의 마피아한테도 후원받으면 되겠네. 적당히 지분 나눠 가져서 공동으로 운영해봐.”
이희연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 정성민이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말했다.
“근데 희연아. 정말 이게 좋은 거야? 편하게 해도 되는데.”
“...좀 더 천천히요. 제게 주인님은 주인님이세요. 그리고...”
이희연은 정성민이 준 약혼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결혼하면, 그때 천천히 시작해봐요. 그리고 여긴 직장이잖아요♥”
정성민은 싱긋 웃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희연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양지로 진출할 재활센터 설립을 위해, 이하영, 백하윤, 안지연, 엘레나를 불러모았다.
그녀들이 공동으로 운영할 주식회사를 만들기 위해.
***
각자의 관할에서 각자 할 일을 하느라 바빴던 그녀들이, 마침내 한자리에 모였다.
향락소의 주인 이하영, 방송가와 향락소 제2지부의 주인 백하윤, 스튜디오의 총괄팀장 이희연, 뒷세계 군대의 총통 안지연, 마피아의 여왕 엘레나.
이렇듯 각자 거하게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사업안을 구상하고 있었다.
각자의 관할에서 무엇을 지원해줄 수 있는지, 또 어떤 연계사업이 가능한지, 돈세탁은 확실히 할 수 있는지 꼼꼼히 검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화제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엘레나. 너 이제 한국말 되게 잘하네?”
지난 1년간 일취월장한 엘레나의 한국어 실력.
엘레나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후후. 왜요? 위기감 느껴져요?”
위기감?
백하윤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엘레나가 말했다.
“우선 저, 가장 예쁜 거 인정하는 부분이죠? 가장 영하고요. 무엇보다 처녀였어요. 주인님에게 아다를 따이기 전까지는.”
엘레나의 갑작스러운 자신감 방출에 미간이 꿈틀거리는 나머지 여인들.
안지연이 먼저 나섰다.
“하. 그런 거라면 나도 처녀였어. 주인님에게 내 처음을 줬지.”
“아닐걸요? 언니 무려 레즈였잖아요? 보빔야스했던 기억은 왜 빼실까?”
“...큿!”
“게다가 언니는 근육이 너무 많아요. 좀 크리피한 부분? 여자로서의 매력이ㅡ”
“하지만 넌 가장 쓸모없지.”
그때, 반격을 시작하는 안지연.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난 주인님과 수많은 전장을 함께 했어. 게다가 마지막엔 동반자살하려는 미스터 최와 어머님을 막는 큰 공적을 세웠지. 만약 그 둘이 자살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무시할 수 없는 안지연의 절대 공적.
엘레나가 칫- 소리를 내며 그녀를 노려봤다.
이하영이 나선 건 그때였다.
“하. 고작 그런 거로 자랑하는 거야?”
당당한 표정의 이하영.
그녀가 일어섰다.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모두가, 최악으로 가는 주인님의 계획을 방관했어. 그걸 막아선 사람은 오직 나야. 주인님의 여자친구이자 정실감인, 이하영이라고.”
분명 인정하기는 하나, 어이없다는 표정의 모두들.
백하윤이 말했다.
“어머. 말하는 거 봐. 못 본 새에 많이 싸가지가 없어졌구나.”
“언니는 못 본 새에 더 늙었네요.”
“후후. 그래도 네가 투트랙인 건 변하지 않아. 정성민을 지옥에 밀어넣은 것도 너란 걸 잊지 말라는 거지.”
“으음. 언니의 업보도 만만치 않은 데요?”
“적어도 난 정성민에게 피해 준 건 없어. 오히려 미스터 최의 핵심 인사 중인 내가 그의 것이 됨으로써, 자신감을 심어줬달까. 아마 그때부터 정성민이 최면과 세뇌쪽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이하영과 백하윤.
그때, 그들 모두가 같잖다는 듯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는 사람이 있었다.
이희연이었다.
“이거 어떡하지? 정실은 나인데.”
갑작스러운 정실선언에 무거워지는 공기.
모두가 그녀를 바라봤다.
이희연이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보이며 말했다.
“보여? 이것이 바로 정실의 증거야. 주인님께서 결혼을 약속하고 준 선물이지.”
꿈틀, 핏대가 서는 모두의 이마.
저렇게 물증으로 들이미니 화가 났다.
빼박 증거가 아니던가.
“하, 하지만 온뉘는 미스터 췌에게 벌리고 다녔자나욧!”
당황하니 원래의 말투가 나오는 엘레나.
엘레나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당황하여 헙- 입을 다물었고, 이희연은 입꼬리를 올렸다.
“뭐, 조금 그러긴 했지. 하지만 난 스포츠였다고 생각해.”
.....스포츠?
모두가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자 이희연이 말했다.
“사랑이 없었잖아 사랑이. 하영이에 비하면 스포츠로 쳐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손을 부들부들 떠는 이하영.
확실히, 따일 거 다 따인 이하영에 비하면.... 이희연이 선녀이긴 하다.
아니, 하지만 애초에 그런 비교가 말이 되는가?
보다 못한 엘레나가 나섰다.
“흥. 다 걸레들이야. 언니 보지들, 헐렁헐렁하다고. 내가 완전무결한 처녀지.”
“...나도!”
“지연 언니는 딜도에 따였잖아. 보빔야스 할 때.”
“큭!”
은근슬쩍 처녀 반열에 들어가려 했지만 가위치기 및 딜도 연결로 할 거 다 한 안지연.
그녀가 주먹을 부들부들 떠는 사이, 백하윤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나저나 엘레나야. 어디서 그런 좆같은 말투를 배운 거니?”
아주 천박한 단어를 구사하고 있는 엘레나의 말투.
그것에 대해 지적하자 엘레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좆같기는. 이건 친근한 말투야.”
“그래서 어디서 배웠니. 정성민이 그런 말투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백하윤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여인들.
당황한 엘레나가 말했다.
“어...이, 인터넷에서...? 인터넷에서 쓰는 말... 되게 친근한 부분, 아닌가?”
조용히 눈을 감은 여인들.
한국어 패치가 됐으나, 급식체가 섞인 엘레나의 말투.
오염된 한국어를 배워버렸다.
“뭐, 조만간 알게 될 거야. 누가 주인님의 정실이 될 수 있는지.”
그때, 다시 한번 반지를 내보이며 입꼬리를 올리는 이희연.
그런데 그때 엘레나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뭐, 언니들 주장. 어느 정도 모두 킹정하는 부분이에요. 근데, 정실의 기준이 뭔데요?”
정실의 기준.
그 모호함에 여인들은 각자의 기준을 떠올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이희연이었다.
“처음으로 맺어지는 사람이지. 그러니까 결혼 상대로 택하는 사람.”
극비리 정보이지만,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정성민과 이희연은 1개월 뒤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드디어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정실의 위치에 오르는 것이다.
“나는, 첫사랑이라고 생각해.”
그때, 옆에서 끼어드는 이하영.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남자의 첫사랑은 영원하다고 하잖아? 그러니까ㅡ”
“하지만 그 첫사랑이 투트랙 허벌보지면 어떨까.”
“야!”
티격태격 싸우고 있는 이희연과 이하영.
이를 지켜보던 백하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결국 현재 정성민의 마음이 향하는 사람이 아닐까? 예를 들면 최근 정성민과 계속 몸을 섞은 사람이라던지.”
가장 최근 정성민과 몸을 섞은 사람.
방송가를 장악한 덕분에 그의 여자로 인정받고, 그래서 요 2주간 뜨겁게 사랑을 나눴던, 정성민의 포상을 듬뿍 받았던 백하윤.
그녀가 홍조를 피우며 그렇게 말하자, 안지연이 끼어들었다.
“언니들은 다 틀렸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정실이지.”
안지연이 생각하는 정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
바로 자신이었다.
“흐음... 그래요?”
언니들의 의견을 모두 들은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언니들을 힐끗 올려봤다.
그리고 이들 앞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저는 말이죠, 이렇게 생각해요. 주인님의 씨를 가장 먼저 품은 사람이, 정실이 아닐까.”
“.....?”
“뭐?”
“어머. 씨발.”
“구라 아니니?”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며 엘레나를 추궁하는 여인들.
그녀는 승리의 임신 테스트기를 꺼내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모두가 그녀의 임신을 축하해주지 않았다.
“마, 말도 안 돼!”
“도대체 언제!”
“빠, 빨리 결혼을...!”
“주인님 아이가 맞니?”
엘레나는 생각했다.
당황하는 꼴을 보아하니 이게 크긴 크구나.
그녀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 완전히 한국에 정착하여, 주인님의 아이를 키우고 사는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행복해졌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
2주 뒤, 정성민과 이희연의 결혼식이 열렸다.
이희연이 울고불고 난리 치며 온갖 땡깡을 부린 결과, 결혼을 2주 앞당기게 된 것이다.
“와. 그게 허세가 아니었네.”
성대하게 열린 결혼식.
귀빈석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이하영은 아름다운 희연이와 찬란하게 빛나는 정성민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어찌 보면 당연히 예상하던 결과였다.
‘그래. 결혼은 네가 먼저 해라.’
첫 아이는 엘레나가, 첫 결혼은 이희연이.
자꾸 무언가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지만, 이하영은 상관하지 않았다.
정성민은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뒷세계의 왕이기도 하니까.
자신의 여인을 모두 품으려 할 테니까.
다만 이희연이 가장 먼저 결혼을 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는 것은, 주인님이 가장 힘든 시절, 그녀가 옆에 있어 줬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초라할 때, 가장 세력이 미미할 때 항상 그를 믿고 지지하며 응원하며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게 노력했기 때문이다.
‘네가 있어 지금의 주인님이 있을 수 있던 거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희연의 공로와 그녀의 헌신은 주인님의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다.
이는 백하윤과 안지연, 엘레나 또한 동감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이희연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하지만, 먼저 결혼한다고 해서 정실인 것은 아니지.’
허나 이들에겐 각자 정실의 기준이 달랐다.
최후엔 자신이 웃게 되리라 믿는 그녀들이었다.
어디 네깟 년이 정실이라고! 라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사는 여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