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3화 (253/303)

산발 머리에 거뭇거뭇하게 수염을 기른 정성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들을 보았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서, 성민아....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응? 네 엄마... 네 엄마 어디 있어.”

“.....”

“오빠....나랑 아빠는.... 엄마, 엄마 용서하기로 했어. 다, 다 기억났어. 그러니까...우리 엄마 찾아오자. 응?”

정성민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현재와 정성아를 보았다.

“뭐지? 어떻게 풀린 거야?”

“성민아. 네 엄마... 네 엄마 어찌했냐. 어디에 있느냔 말이다.”

“분명 제대로 먹혀들었는데... 어떻게 당신까지. 그리고 성아도...”

정성민은 혼란스러웠다.

이신아에게 건 암시라면 모를까, 정현재와 정성아에게 건 암시는 풀려선 안 된다.

애초에 풀리지 않도록 설계한 암시였고, 평생 풀리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성민아! 어서 말해! 네 엄마 어딨냐! 우, 우린.... 우리는.... 요, 용서할 수 있으니까...그러니까...”

“죽었어.”

무심하게 내뱉은 정성민의 말.

그 말에 정현재와 정성아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폐인이 된 정성민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마, 말도 안 돼.... 엄마가 왜 죽어. 응? 그때....그때 오빠가 약속했잖아....엄마도 되찾아 온다고...우리 가족...모두 되찾아오겠다며....”

“.....”

침묵하는 정성민.

정현재가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가 정성민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말했다.

“이 자식! 바른대로 말해! 네 엄마! 내... 내 아내...시, 신아....신아 어딨는지.... 말....”

정성민을 쿵- 쿵- 치며 뒷말을 흐리기 시작하는 정현재.

그의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미안해. 모두 내 탓이야.”

정성민이 할 말은 미안하다는 말밖에 없었다.

그 말 말고는, 모두 변명에 불과했다.

자신이 이신아의 행복을 위해 한 설계라든지, 왜 정현재와 정성아의 기억을 조작했는지, 그런 것들은 어차피..... 이신아가 죽은 이상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거짓말이지? 응....? 거짓말이잖아. 오빠가 그럴 리 없잖아. 오빠만... 오빠만 믿고 있었는데....응? 거짓말이라고 말해...”

“.....”

정성민은 침묵했다.

정현재가 그의 몸을 흔드는 그대로 자신의 몸을 놔두고, 오열하는 성아를 묵묵히 바라봤다.

“왜.... 왜 그랬어.... 대체 왜! 왜!.....”

모든 게 박살 났다.

새 삶을 찾아야 할 이신아는 자살해버렸고, 아무것도 모른 채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할 가족 또한 진실을 알아버렸다.

게다가 이렇게 암시가 풀린 이상, 같은 암시와 세뇌가 다시 통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평생 이런 쓰라린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신아야......신아야.....으아아...아아아아....신아야......아아아아아....”

정현재와 정성아는 오래도록 오열했다.

때론 정성민을 원망하기도 하고, 때론 자신을 탓하기도 하면서, 둘은 오랜 시간 오열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슬픔을 비워내고, 겨우 감정을 추슬렀을 때, 정현재가 말했다.

“어디에... 어디에 묻었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신아의 시신이 어디에 묻혔는지 묻는 그.

정성민은 그 위치를 알려주었다.

정현재는 정성아를 데리고 곧바로 등을 돌렸다.

그러면서 정성민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우린... 이 집을 나가겠다. 더 이상...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어.”

그렇게 정현재와 정성아가 떠났다.

정성민은 홀로 남겨졌다.

***

2일 뒤, 정성민이 드디어 자신의 방에 누군가를 호출했다.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이하영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담담한 얼굴로 호출에 응한 이하영.

정성민의 야윈 얼굴이 그녀를 향했다.

그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왜 그랬지?”

떠보는 게 아니었다.

어떤 확신이 담긴 음성.

이하영은 올 게 왔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눈치채셨군요.”

“.....말해. 네가 섭외한 김미진... 그년과 무슨 일을 꾸민 거야. 왜 정현재와 정성아의 세뇌를 푼 거야. 그리고 왜....”

정성민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하영을 죽일 듯 노려 보며 말했다.

“왜 내게 이신아의 영상을 보낸 거야. 말해.”

이하영은 눈을 감았다.

이제 마지막 단계가 온 것이다.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퀭한 눈으로 한 손에 나이프를 들고 있는 정성민에게 말했다.

“그야, 어머님께서 살아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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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들은 게 아닐까.

정성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반문했다.

“뭐...?”

이하영이 담담히 내뱉었던 충격적인 말.

아직 이신아가 살아있다는 말.

정성민은 잔뜩 확대된 동공으로 담담한 표정의 이하영을 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제가 아버님과 성아의 세뇌를 푼 것, 어머님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

스르르- 정성민의 손에서 빠져나오는 나이프.

팅-팅- 팅그르르... 나이프가 지면에 부딪히며,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

서로를 마주 보는 정성민과 이하영.

금방이라도 울 듯한 정성민과, 담담한 표정의 이하영.

다만, 일순간 반전되는 정성민의 표정.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노기가 서린 얼굴.

그가 말했다.

“하지만, 분명 확인하지 않았나...? 엄마가... 이신아가 죽은 걸 분명히 내 두 눈으로...”

이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정성민은 이신아의 시신을 봤었다.

그 시신은 누가 뭐래도 이신아의 모습이었다.

다만, 흔히 그런 걸 ‘감쪽같다’-라고 표현한다.

본인인지 타인인지 구분을 할 수 없는 것을.

“주인님. 저는 이 일을 오랫동안 준비해왔어요. 주인님께서 어머님에게 내릴 벌을 정하는 순간부터요.”

이하영이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정성민의 시선이 그녀를 쫓았다.

“어머님을 버린다는 주인님의 계획을 들었을 때, 전 납득할 수 없었어요. 그 방법은 결코 주인님이 행복해질 수 없는 방법이거든요.”

정성민은 항상 그러했다.

자신이 모든 걸 다 짊어지고, 모든 걸 다 책임지려 했었다.

분명 그러한 점은 그를 강하게 만들고, 결국 뒷세계의 왕이 되게 만들었다.

다만, 그것은 리더로서 보여야 할 모습이었다.

제시하고, 나아가고, 이끌고, 싸우고, 승리하는.

쟁취하는 삶을 살아가는 지배자의 방식이었다.

뒷세계의 제왕에 어울리는 폭군의 방식이었다.

때문에 전리품으로 얻은 나머지 여인들은 군말 없이 그의 방식을 따랐다.

그의 모든 판단이 진리이고, 그의 모든 명령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이희연과 백하윤. 그리고 안지연과 엘레나의 정체성은 그에게 정복당한 여성이자, 그를 떠받드는 조력자였다.

“그래서 생각했어요. 주인님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결말이 무엇인지.”

하지만.

하지만 이하영은 아니었다.

그녀는 전리품으로서 사랑을 받은 게 아니었다.

그와 시선을 같이 하는 연인으로서, 사랑을 함께 키워나갈 동반자로서 정성민을 사랑한 게 이하영의 정체성이었다.

때문에 끝없이 그 위치를 되찾고자 노력했고, 절망했으며, 결국 그 지위를 포기해버렸다.

그의 노예라도 되지 않으면 그에게 다가갈 수 없기에, 이희연의 조언을 받아 동등한 연인의 관계를 포기하고 그의 전리품 중 하나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관계엔 관성이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중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여자친구로서의 정체성이었다.

“그래서 일을 꾸몄어요. 주인님의 방법엔 동의할 수 없었거든요.”

정성민은 방을 천천히 배회하는 이하영을 보았다.

지금 그의 눈은 의문과 불안과 분노로 가득했지만, 단 한 줄기 빛나는 희망이 있었다. 이하영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말이다.

그래서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김미진을 제가 직접 섭외한 거예요. 주인님의 계획에 따르는 척하며, 제 말을 잘 들을 꼭두각시를 만든 거죠.”

정성민은 꿀꺽 침을 삼켰다.

여기까지는 그도 예상하고 있는 얘기였다.

가족들의 세뇌가 풀려버린 것.

김미진이 수를 쓴 게 아니라면, 절대 풀릴 리 없는 세뇌 강도였으니까.

“그리고 제가 두 번째로 준비한 것은, 김연주의 죽음이었어요.”

김연주의 죽음.

그 말에 정성민의 심장이 철렁였지만, 이내 침착을 되찾았다.

이하영은 김연주를 죽일 걸 계획했다고 했지, 이신아를 죽인다고 하지 않았다.

“사실... 딱히 준비할 것도 없었어요. 저는 알았거든요. 이신아의 이름을 버린 김연주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이하영은 이신아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이는 그녀의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암시와 세뇌를 건들, 바뀌지 않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랬으니까.

미스터 최가 극도로 정신을 망가뜨려도, 구원자가 공포로 자신을 지배해도 정성민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바꿀 수 없었다.

“그래서 기다렸어요. 어머님의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밖에 나갈 땐 미행까지 붙이면서, 쭉 지켜봤죠.”

그렇게 이하영은 기다렸다.

이신아가 결단을 하는 날을.

그러면서도 철저히 준비했다.

이신아가 죽음을 감행할 시, 그녀를 대신할 대역을.

“그리고 마침내, 어머님께서 목을 매달려 하더군요. 옆집에 거주하고 있던 제 부하들이 곧바로 막으러 갔죠.”

이하영은 그렇게 말하며 해당 영상을 폰으로 보여주었다.

정성민은 4명의 남자가 이신아의 집으로 들어간 뒤 컥컥대고 있는 그녀를 구출해주는 광경을 보았다.

다만, 아직 의문이 풀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럼 그 시체는.....?”

시체.

제일 의문인 것이 시체였다.

이하영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까 말했었죠. 저는 이 일을 오랫동안 준비해왔다고. 시체는 어떻게 된 거냐면...”

시체의 전말은 이러했다.

이하영은 이신아의 죽음을 꾸미기 위해 시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브로커를 통해 이신아와 최대한 닮은 여자의 시신을 구해달라고 했었다.

이후 브로커들은 불치병에 걸린 40대 중반의 여인을 찾기 시작했다.

중국에 있는 브로커를 통해서 말이다.

다행히 중국엔 가족의 시신에 돈을 받고 팔아먹는 막장 인생들이 많았다.

그 수많은 인구 중에 이신아를 닮은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이하영은 이신아와 닮으면서도 방금 죽은 따뜻한 특S급 시신을 7억을 주고 구입한 뒤, 그것도 모자라 방부처리까지 했다.

안에서 썩기 전에 내장을 모두 빼고 특수 방부처리를 다 한 것이다.

이하영의 꼼꼼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시신의 얼굴을 성형수술까지 시켰다.

이신아의 얼굴과 99%일치 하도록, 그 누가 봐도 이신아라고 생각하도록 얼굴을 뜯어 고친 것이다.

거기에 더해 발에 불을 지져 화상 자국을 만들고, 여러 가지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다.

특히 목을 맨 흔적을 남기기 위해 목에 자국까지 선명히 남기지 않았던가.

“경찰 조사는... 혹시 매수했나?”

“네.”

이제 마지막 단계는 하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무사히 속아 넘기는 것.

다만 이하영은 뇌물을 먹여둔 경찰이 있었다.

그것도 반장급 인물로.

게다가 다른 경찰들도 딱히 의심하진 않았다.

그 현장은 누가 봐도 목을 매어 자살한 현장이니까.

유언장까지 있는 마당에 더 조사할 필요는 없었다.

사건은 그대로 종결되었다.

“그 외에 여러 방법을 다 준비해놨죠. 실패에 대비해서 말이죠. 하지만 역시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었어요.”

명실상부 뒷세계의 여왕이 된 이하영.

그녀는 미스터 최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구원자의 세력을 전부 집어삼켰고, 그녀 특유의 운영 감각으로 매일 매출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럼... 이신아는, 어디에 있지?”

완전히 빛이 돌아온 정성민의 눈빛.

하지만 이하영의 답은 의외였다.

“그건 알려줄 수 없어요.”

“.....”

어안이 벙벙한 정성민의 표정.

그가 악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쳤나? 제정신이 아니군. 이하영. 내가 너를 살려두는 이유는ㅡ”

“죽여요.”

“.....”

“죽이라고요. 죽을 각오로 벌인 일이니까.”

정성민은 조용히 이하영을 노려보았다.

이하영도 정성민을 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지금 어머님을 만나면, 어떻게 하려고요. 또 똑같은 일을 하려고요? 또 주인님 혼자 모든 걸 짊어지고, 혼자 모든 걸 감당하려고요?”

정성민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았다.

그가 말했다.

“선택은 내가 해.”

“아뇨! 주인님의 방법을 틀렸어요!”

이하영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정성민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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