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였다.
길쭉한 기럭지에 날렵한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와 날카로운 눈.
어떤 잘 생긴 청년이 수십 명의 사람을 거느린 채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어마어마한 미인과 백하윤.
“어?”
백하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그 백하윤이 왜 여기에 있어?
오랜 휴식기에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뭐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설마 여기로 오는 건가?
옷차림은 문상객으로 온 듯한...
-척.
그때, 제일 앞에선 잘 생긴 청년이 자신의 앞에 서더니 고개를 숙였다.
강지환 또한 정성민을 마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정성민이 말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무뚝뚝한 음성.
그러나 확실히 전해지는 그의 슬픔.
강지환은 이 정체불명의 청년에게 궁금증이 들었지만, 이내 궁금증을 접었다.
자세히 보니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분명, 그녀의 혈육이었을 것이다.
그녀와 분명 닮았다.
“.....”
그녀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던 걸까.
젊은 청년이 끌고 온 사람 중엔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게다가 저 젊은 청년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험한 냄새가 물씬 났다.
-스윽.
이윽고 연주씨를 향해 절을 하는 청년.
두 번째 절을 할 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리는 그.
이내 고개를 들었을 땐 그의 두 볼에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
이후엔 수없이 많은 근조화환이 왔다.
또 수많은 사람이 문상을 오고, 제사 관련 업체가 와 시끌벅쩍하게 이곳을 꾸몄다.
이제 이곳은 더 이상 초라한 자세가 아니게 되었다.
비록 문상을 온 사람들이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은 아닐지언정, 많은 사람이 연주씨의 넋을 위로해주고 갔다.
“.....연주씨. 복잡하게 얽힌 인연, 잘 풀다 가기 바랄게요.”
강지환은 다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방금 나간 청년과 연주씨에 얽힌 것들이 많음을.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끝맺음이 되었다는 것을.
강지환은 그녀의 넋이 이승에서의 모든 연을 정리하고 훨훨 날아가길 바랐다.
그렇게 그는 김연주를 기렸다.
***
은은한 어둠이 깔린 방.
이하영과 김미진은 서로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아있었다.
“요즘은 어때요?”
김미진에게 근황을 묻는 이하영.
이에 김미진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행복하죠. 예전 생각도 많이 나고. 음... 예전 가족과는 분명 다르긴 하죠. 그이는 현재씨처럼만큼 다정하지도 않았고, 우리 애도 투정을 더 많이 부리는 아이였으니까요. 그래도 한때... 가장 행복했던 그때를 떠올리기에...충분한 거 같아요. 우리 가족에게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아마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김미진의 말을 경청하던 이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했다.
“마음의 준비는 되셨어요?”
“후후... 언제든지요. 제겐 과분한 가족이에요. 제가 있을 자리도 아니고요.”
“그래도, 정이 들었을 거 아니에요. 그렇게... 진심으로 대했는데.”
“우리 아이를 위해서였잖아요. 그리고... 보고서를 봐서 아실 거 아니에요. 현재씨와 성아는 완전하지 않아요.”
이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테이블 위의 서류 뭉치에 시선을 잠시 뒀다 김미진을 보았다.
“이제 그럼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예요.”
다음 단계.
이신아의 장례를 치르고, 그 후폭풍을 주인님이 느껴야 할 단계.
정현재와 정성아 또한 그 후폭풍에 휩쓸려야 할 단계.
이하영이 말했다.
“암시는 잘 통하던가요.”
암시.
김미진을 이신아로 인식하는 정현재 정성아가, 어떤 트릭을 발동했을 때 진실을 보게 되는 암시.
김미진이 말했다.
“네. 말했던 대로 꾸준히 암시를 줬어요. 제가 진짜가 아니라는 암시를.”
“.....잘하셨어요. 이제 진짜 다음 단계로 갈 때네요.”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하영은 몸을 일으킨 다음 김미진에게 악수를 청했다.
김미진 또한 이하영의 손을 맞잡았다.
“그럼 마지막까지 힘내주세요.”
“물론이죠. 저도 이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김미진은 그 말을 끝으로 정성민의 대저택으로 돌아갔다.
이하영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주머니에 있는 폰을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수족에게 연락을 한 다음, 미리 언질했던 지시를 내렸다.
“실행해”
***
이신아의 장례를 치르고 3일째.
정성민은 거의 폐인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된 설계 때문인 거 같아 매일 밤 자기 혐오에 시달리는 그였다.
-꿀꺽 꿀꺽 꿀꺽
그는 소주병을 쥔 채 나발로 마셨다.
이렇게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취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물론 빈속에 술이 자꾸만 들어가 구토가 올라왔지만, 때문에 몸이 점점 상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마음이 고장 나버린 그는 자신의 몸을 돌볼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우웅~
그때,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원래라면 그냥 무시했겠지만, 이것은 자신의 개인 폰이었다.
최측근이 아니면 절대로 메시지나 전화를 하지 못 할, 뒷세계의 왕의 폰이었다.
-스윽.
하여 정성민은 폰을 들었다.
뭔가 봤더니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정성민은 문자의 내용을 확인했다.
“.....”
[메일을 확인하시오]
메일을 확인하라는 간단한 문자.
하나 정성민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뒷세계의 왕인 자신에게 이런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자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
허나, 무시할 수도 없었다.
궁금증이 일었다.
도대체 이 정체불명의 발신인이 어떤 메일을 보냈을까.
정성민은 곧바로 자신의 메일을 확인했다.
“.....아.”
새로 도착한 메일 하나.
그 안엔, 이신아의 모습이 있는 썸네일이 있었다.
정성민은 곧바로 영상을 다운받은 다음 영상을 재생했다.
“...아아....아....흐아아아...”
살아 움직이는 그녀.
김연주가 되어, 씩씩하고 활달하게 움직이는 그녀.
영상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정성민은 연신 눈물을 흘리며 그 영상을 보았다.
마치 처음 여자친구의 타락 영상에 빠져들었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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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일이 지났다.
정성민은 지난 3일 동안 억지로라도 꾸역구역 먹을 것을 먹기 시작했다.
2시간 간격으로 도착하는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대로 식음을 전폐하고 폐인처럼 있다가는 영상을 볼 여력도 남지 않게 된다.
영상을 보며 계속해서 오열하는 것도 다 체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하여 정성민은 메일이 도착하기 전엔 음식을 먹고 침대에 누워 웅크려 잠든 뒤, 메일이 도착하면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생활을 반복했다.
“흐으으...흐아아....아아아....”
이 영상을 도대체 누가 보내는 건지, 왜 보내는 건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신아가 김연주가 되어 어떤 생활을 했는지, 그리고 어쩌다가 자살을 하게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아아아...아아...”
그리고 이제, 정성민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이신아는 암시가 통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가족을 잊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암시?
자신이 오만했다.
그런 것은 통하지 않았다.
그동안 모든 암시와 세뇌가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대가 그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백하윤은 구원받길 원했고, 이희연과 이하영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으며, 안지연 또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
엘레나 또한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딸이 되고 싶었고, 그걸 바라는 마음을 이용해서 연옥을 통한 세뇌를 완성할 수 있었다.
박종필의 경우도 그렇다.
그에게 연옥을 써서 백하윤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기억을 심어줄 수 있었던 건, 그것이 그가 가장 바라고 살고 싶던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연옥을 써도, 온갖 심리술을 써도 결국 그 사람이 원하는 방향에서 살짝 꺾는 것이 가능한 것이지, 전지전능한 게 아니었다.
기억을 지우는 것 또한 그 기억이 끔찍한 기억이거나, 트라우마로 남는 기억이기 때문에 잊고 싶어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지울 수 있는 것이었다.
“으으...크흐흐흑....”
결국 이신아는 새 삶을 살아갈 수 없었다.
그저 새 삶을 살아가려 발버둥 치는 것일 뿐이었다.
이를 방증하는 게 영상에 나오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김연주로서 살아가려는 이신아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였다.
매일매일 꾸준히 운동을 하고, 땀을 흘려 일을 하고, 동호회나 모임에 나가 사람들과 관계를 쌓고, 가게 매출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꽉 채워 살아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변한다.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집에 들어와서 옷을 벗고 샤워를 한 뒤, 침대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그 모습이 정성민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러다 겨우 잠이 들면 또다시 활기찬 하루를 시작한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남들 틈에 섞여 행복해져 보려고 발버둥을 친다.
때문에 그녀의 상냥한 모습 하나하나에 절박함이 보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행복을 찾으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언제나 집에 오면 불 꺼진 방에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김연주로서 살아온 삶은 행복을 찾아 떠났지만 좌절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가게를 차리고 운영을 해보았으나, 행복하지 않았고.
자신이 뽑은 알바생과 친구처럼 지내며 웃고 떠들었지만, 행복하지 않았고.
동호회나 모임에 나가 여러 사람과 섞여 삶의 활력소를 찾으려 했지만, 행복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 진하게 연애를 해봤지만, 끝내 행복하지 않았다.
언제나. 언제나 집에 오면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본다.
닿을 수 없는 어딘가를 향해 손을 뻗는다.
빛 한점 없는 죽은 눈에 눈물이 차올라 흐른다.
그렇게 김연주가 된 이신아는 이런저런 시도를 모두 해보았으나, 모두 실패했다.
꾸준히 메일에 쌓이는 영상은 모두 외면한 채 새 삶을 향해 나아가려 했지만, 결국 사무치는 그리움을 벗어날 순 없었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정성민은 약 2주간 방에 틀어박혀 이신아의 하루가 요약된 영상을 독파했다.
그리고 마지막 영상을 보는 날, 정성민은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6개월의 연애를 한 이신아가, 자신이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한 이신아가, 드디어 생을 마감하기로 다짐한 것이다.
자신은 가족의 품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것임을, 이신아가 깨달은 것이다.
하여 그녀는 철물점에 들러 밧줄을 샀다.
편의점에 들러 소주와 맥주를 샀다.
그리곤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다, 마침내 자신이 메일로 보낸 가족들의 일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모니터 속의 가족을 보며 때론 웃기도, 때로는 씁쓸한 미소를 짓기도, 때로는 울기도 하면서 소주를 나발로 마셨다.
지금의 자신과 완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내가 어리석었어. 이런, 이런 고통에서...이런 고통에서 못 살아가. 이런 고통 속에선....’
이신아가 김연주가 된 후, 지난 1년 6개월의 하루하루가 모조리 위태로웠다.
그 살얼음판 같은 하루를 견디며 행복을 찾고자 했지만, 결국 남은 건 절망이었다.
자신은 이신아에게 그런 삶을 강요한 것이다.
[-달칵.]
그때, 이신아가 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자신이 보낸 영상이 아닌 어렸을 적 자신과 성아의 영상이었다.
이신아는 해맑게 뛰어노는 자신과 정성아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성민아. 성아야. 역시 엄마는 너희들 없으면 못 살 거 같네.]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밧줄을 위에 고정했다.
그리고 밧줄의 고리를 만든 뒤, 자신의 목을 걸었다.
그녀는 영상 속의 자신과 성아를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툭.]
그리곤 자신이 딛고 있는 의자를, 걷어 차버렸다.
영상은 이것을 마지막으로 종료되었다.
“.....”
이젠 더 이상 흘러나올 눈물도 없었다.
정성민은 멍한 얼굴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너무도 뼈아픈 상실감에 뻥 뚫린 마음으로 그저 허공만 응시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반나절이 흘러, 꼬박 하루가 지나버렸다.
그럼에도 정성민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벌컥.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자신의 방문을, 누군가가 열었다.
정현재와 정성아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