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1화 (251/303)

현관문 앞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강지환.

이신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의 입술에 쪽 뽀뽀를 하곤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진짜 들어가~”

“응~”

강지환은 ‘전화해!’라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신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아저씨! 여기 내려주세요.”

이신아는 철물점에서 내린 뒤 그곳에 들러 단단한 밧줄을 샀다.

팡- 팡- 밧줄을 당겨보며 장력을 확인한 이신아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철물점 주인에게 값을 치렀다.

“번창하세요~”

이신아는 인사를 남긴 뒤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그리고 소주 4병과 맥주 2캔을 산 뒤 계산을 했다.

“수고하세요~”

편의점 알바생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한 그녀는 봉지 하나와 로프 하나를 양손에 든 채 집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마련한 집은 정성민이 지원해주는 원룸이 아닌 한 작은 아파트였다.

그녀는 집으로 온 뒤 냉장고에 소주와 맥주를 넣은 다음 간단하게 샤워를 했다.

-띵~ 띠리리 띵디~

그때, 강지환에게 걸려온 전화.

이신아는 싱긋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어, 자기야.”

[걱정했잖아. 전화가 늦어서. 잘 들어갔어?]

“응. 지금 씻는 중.”

[.....괜히 돌려보냈다.]

“후후. 왜에~?”

[다 알면서 그래.]

“자기는 꼭 10대 같애”

[그럼 자기는 20대네.]

“용케 알아들었구나.”

[큭큭큭큭 얼마나 씻었어?]

“거의 다? 올려구?”

[고민 중]

“오지마. 또 씻어야 하잖아.”

[내가 씻겨줄게]

“응큼하다니까”

[크흐흐. 농담이야. 얼른 씻어.]

“응~”

-삑.

통화를 끝낸 이신아는 머리를 행구고 몸을 씻은 다음 드라이기로 말렸다.

그렇게 20분이 지났을 때였다.

-띵~ 띠리리 띵딩~

다시 강지환에게 걸려온 전화.

이신아는 큭큭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아니. 누가 보면 자기가 우리 아빤 줄 알겠다.”

[20분이나 전화를 안 하니까 그렇지.]

“어휴. 거기서 더 발전하면 의처증 돼요.”

[그냥. 빨리 목소리 듣고 싶으니까 그렇지.]

“어련하시겠어.”

미소를 지으며 강지환과 대화를 나누는 이신아.

그렇게 약 1시간을 떠든 이신아는, 내꿈꿔라는 식상한 멘트와 함께 전화를 끓게 되었다.

“.....”

다만, 통화를 끊은 뒤 이신아의 눈빛은 빠른 속도로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표정을 완전히 지운 채 침대에 걸터앉아 허공을 보았다.

...그렇게 새벽 3시가 되었다.

새벽 1시부터 이러고 있었으니, 2시간이나 허공을 바라본 셈이다.

.....시간은 새벽 5시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신아는 여전히 허공을 보았다.

빛 한점 없는 퀭한 눈으로 허공의 한 지점을 응시했다.

-스윽.

그러던 그녀가 아침 6시.

이신아는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그동안 하루에 한 번씩 메일로 도착했던, 그러나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영상들을 모조리 다운받았다.

-달칵. 달칵.

이신아는 영상을 재생했다.

그리곤 냉장고에 있던 소주를 꺼내 나발째로 마시기 시작했다.

“후후...후후..흐흐흐....”

그녀는 영상을 보며 힘 빠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은은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꼬박 하루 동안 영상을 보았다.

새벽을 지나 낮이 되고 다시 밤이 될 동안에도, 이신아는 영상을 보았다.

그녀의 주위엔 빈 소주병 4병과 맥주 두 캔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흐으으으.....하으으으으.....으으으으.....”

그렇게 밤을 샌 뒤 새벽 3시.

이신아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영상 속의 화목한 웃음소리와 정반대되게, 그녀는 흐느껴 울었다.

그렇게 새벽 5시쯤이 됐을 때였다.

-스윽.

이신아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철물점에서 사온 밧줄을 위에다 묶은 뒤, 목을 걸 수 있게 고리를 만들었다.

이신아는 의자 위에 선 다음 밧줄의 고리에 자신의 목을 걸었다.

“.....”

이신아는 모니터의 화면을 보았다.

화면 속에는 정성민에게 받은 파일이 아닌, 자신이 오랫동안 간직했던 파일이 재생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정성민과 정성아. 그리고 젊은 시절의 정현재와 함께 나들이를 갔던 영상이었다.

[엄마아아아아-!]

자신에게 뛰어오고 있는 정성민과 정성아.

이신아는 그들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자신의 발을 지지하고 있는 의자를 툭- 찼다.

-끼익... 끼익.... 끼익....

이윽고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그녀의 몸은,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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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던 이신아가 자살을 했다니.

어질해지는 머리에 정성민은 몸을 휘청였다.

근처에 있던 이희연과 이하영이 황급히 정성민에게 다가가며 그를 부축했다.

“분명.... 분명 잘 지내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분명...”

그동안 부하를 시켜 이신아의 행적을 추적했었다.

그녀의 행적을 쭉 지켜본 결과 그녀는 분명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고 있었다.

자신의 설계대로 움직이고 있었단 말이다.

그도 그럴 게 정성민은 이신아에게 암시를 걸어뒀었다.

새로운 삶과 다른 행복을 찾아 나서도록 하는, 그런 암시를 말이다.

그 덕에 그녀는 독립금으로 창업을 하고 매일 열심히 일을 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지 않았던가.

여러 사람도 만나고 교류도 하며 그 과정에서 괜찮은 남자를 만나 연애도 하지 않았던가.

‘영상 때문에... 영상 때문에 그런 건가.’

가족의 일상 영상을 보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영상은 딱 2개월 치였다.

모든 건 자신의 설계대로였다.

당장 가족에게서 쫓겨나면 그녀가 가족을 그리워할 게 뻔하니, 당장은 가족의 영상을 보며 마음을 달래길 바랐다.

그 이후 서서히 영상을 보내는 주기를 뜸하게 할 생각이었다.

물론 죽을 때까지 영원히 영상을 받아봐야겠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녀가 행복하길 원하지만, 마냥 행복하기만 바라는 건 아니었다.

1년에 한 번, 나중엔 2, 3년에 한 번이라도 원래의 가족을 생각하며 하루 정도는 아파하길 원했다.

그만큼 자신의 암시는 세게 들어갔으니까.

원래의 가족을 잊고 새 행복을 찾아 떠나는 암시는 제대로 통했으니까.

“확인하러... 확인하러 가야겠다.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정성민은 몸을 일으켰다.

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엔 믿을 수 없었다.

“신분 확인됐습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정성민은 영안실에 도착했다.

그는 하얀 천이 덮어진 누군가의 시신을 보았다.

덩그러니 발만 나와 있었다.

“.....아.”

발바닥에 남은 선명한 화상자국.

고문으로 인해 화상 자국이 생긴, 하지만 끝내 완전히 흔적을 지울 수 없었던 발바닥이 있었다.

정성민은 몸을 비틀거리며 시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얼굴을 덮은 천을 아래로 내려보았다.

“.....”

맞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얼굴이, 분명히 맞다.

20여 년이 넘는 세월이 넘도록 항상 온화한 얼굴로, 때론 엄격하게, 때로는 다정하게, 자신의 인생을 응원해주었던 그 사람.

하지만 너무 큰 배신을 하여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

그 사람이 얼굴이 맞았다.

“주인님!”

정성민이 몸이 비틀거리며 쓰러지자 이하영과 이희연이 그를 부축했다.

백하윤은 손을 모은 채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일순간, 죽은 박종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성민도 그때의 자신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어떻게. 부, 분명.”

눈으로 확인했으나, 믿을 수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 삶을 출발하려는 듯 환하게 웃던 사람이, 알콩달콩 연애까지 하던 사람이.

왜.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돌아... 돌아가겠다.”

정성민에겐 어떤 강박이 있었다.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

뒷세계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 정성민은,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돌아...”

하여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자신의 어머니였던 자의 시신을, 차마 더는 볼 수 없었다.

이 이상 그녀의 몰골을 본다면,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쾅!

하여 정성민은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꾹 쑤셔 넣은 채 자신이 타고 온 차로 이동했다.

“뒷정리는 너희들에게 맡길게. 알아서....알아서 처리해.”

정성민은 일부러 비정한 말투로 명령을 내리고 자신의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의 집무실 겹 개인실에 들어온 뒤 아무도 못 들어오도록 시켰다.

“크흐....크흐흐....크흐흐흐....”

정성민은 숨죽여 울었다.

아무리 뒷세계의 정점에 오른 자신이라지만, 감정이 없는 로봇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증오했지만,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끝내는 행복을 바랐던 어머니가 죽었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쾅! 콰광! 쾅!

정성민은 날뛰기 시작했다.

남자의 느끼는 감정의 끝은 항상 분노로 향하는 법이다.

그는 슬픔의 크기만큼 분노하여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방에 있는 물건과 가구를 모두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이 넘도록 그는 고성을 지르며 분노를 폭발시켰다.

“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끄으으....끄흐흐흐흑....”

모든 걸 계획대로 이뤘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 자신의 사업을 세우고, 그 사업을 바탕으로 뒷세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뒷세계의 오래된 악들과 어깨를 나란하여, 마침내 그들을 무찌르고 왕이 되었다.

“흐...흐으으...끄흐흐흐.....아아..아아아...”

하지만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오늘 처음으로 실패를 맛봤다.

절대로 실패해선 안 되는 것을 실패하고 말았다.

바로 어머니의 행복 말이다.

***

강지환은 이리되리란 걸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김연주는 참 과거를 알 수 없는 여자였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여자였다.

참 해맑고 밝은 여자 같다가도 요물처럼 변하기도 하고, 관능적인 모습이 보일 때도 있지만 순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이었다.

가끔 먼 곳을 보며 닿을 수 없는 어떤 것을 그리워하는 눈을 할 때면, 그녀가 영영 떠나버릴까 송연한 느낌이 들곤하는 자신이었다.

그 불안과 위태로움이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어떻게든 지켜주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저 슬픔을 언젠간 모두 지워주고 싶었다.

“흐으으으으....끄흐으으으....”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는 언젠가 이신아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나 진짜 못된 년이라고.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아무래도 그 말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자신을 혼자 두고 떠나버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을 줘놓고선, 미래를 꿈꾸고 만들어놓고선 세상을 떠나버렸다.

“.....”

그녀는 도대체 어떤 과거를 살았던 걸까.

왜 그녀의 가족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걸까.

카페의 알바생과 그녀와 안면이 있던 몇몇 사람 말고는, 아무도 조문객이 찾아오지 않았다.

어떻게 한 사람의 장례식이 이렇게 초라할 수가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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