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0화 (250/303)

먼저 성아의 방에 들어온 그녀는 커튼에 방향제를 뿌리고, 초에 불을 붙였다.

그러면서 힐끔힐끔 폰을 하고 있는 성아의 모습을 보았다.

“.....아가씨.”

이신아는 목 메는 소리로 성아를 불렀다.

성아가 자신을 돌아보자, 그녀가 말했다.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할 거예요.”

처음 보는 가정부가 내뱉는, 묘한 말.

정성아가 부담스럽다는 듯 이신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네... 하하. 고맙습니다.”

“.....”

이신아는 웃음으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방을 나왔다.

다만 아주 천천히 방문을 담으며, 조금이라도 더 딸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정현재의 방으로 향했다.

“사장님. 방 정리 도와드려도 괜찮을까요?”

“크흠. 들어오세요~”

손수 문을 열어주는 정현재.

이신아는 그 친절함에 몸이 흠칫 굳었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에도 방향제를 뿌리고 괜히 이것저것 건드리며 정현재를 힐끗힐끗 봤다.

“하실 말 있으세요?”

다만 자신의 시선을 눈치챈 정현재.

당황한 이신아가 말했다.

“아. 그, 그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음. 할 말 있으신 거 같은데. 편하게 말씀하세요. 하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는 정현재.

이신아는 무슨 말을 꺼낼까 고민하다, 적당한 말을 찾아 입을 열었다.

“그, 그냥...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오늘 그만둬서.”

“아... 그래요? 으음... 제가 출근할 때 일하셨나 봐요?”

이신아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정현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제가 모르는 동안 힘써준 분이셨네요.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이신아의 입술.

이신아는 간신히 꾸역꾸역 올라오는 슬픔을 집어넣고, 싱긋 웃었다.

이날을 위해 얼마나 웃는 연습을 오래 해왔던가.

“네. 저도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잘 있다 가요.”

묘하게 핀트가 어긋난 이신아의 답.

정현재가 점잖게 웃으며 말했다.

“직장이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몇십 년 일하다 가시는 것처럼 말하는 걸 보니.”

“.....네. 여기만 한 곳이... 없겠죠. 이젠.”

“하하. 일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오세요. 아들한테 말해두겠습니다.”

“.....이제, 다른 직종으로 해서요. 이쪽 일은 아마... 다시 안 할 거 같아요.”

“아아. 음. 하시는 일 잘 될 겁니다. 건투를 빌어요.”

적당히 할 말을 찾다 상투적인 말로 대화를 마무리하는 정현재.

이신아는 싱긋 웃으며 고맙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또다시 문을 아주 천천히 닫으며, 정현재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았다.

‘잘 있어... 여보. 당신은 내게 너무 과분한 사람이었어...’

정현재까지 작별인사를 끝낸 이신아.

이제 그녀는 정성민의 방으로 향했다.

그는 이신아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의자에 앉아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두 모자.

이윽고 이신아가 말했다.

“성민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

정성민은 침묵했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신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신아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떨궜다.

“그래.”

그때, 포옹을 허용하는 정성민의 답.

이신아는 화들짝 놀라 정성민을 다시 보았다.

표정은 아까와 변함이 없으나, 분명 그는 포옹을 허락했었다.

“안아도.... 안아도 괜찮아? 제, 제대로 들은 거 맞지?”

“.....”

침묵한 채 고개만 작게 끄덕인 정성민.

다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이신아는 천천히 정성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살포시 그를 끌어안았다.

마지막 그의 체온을 느끼며,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을 되뇌었다.

‘아들..... 엄마가 미안해. 행복해야 돼. 알겠지?’

그렇게 마음속으로 작별인사를 한 그녀는, 정성민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방문을 빠져나와, 곧장 정성민의 대저택을 빠져나왔다.

“인피면구는 반납하시면 됩니다.”

밖으로 나오니 자신을 마중나온 정성민의 부하가 있었다.

이신아는 가발과 인피면구를 벗어 부하에게 건넨 뒤, 자신의 민머리를 가리는 비니를 썼다.

“정문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지막 작별인사.

이신아는 고개를 꾸벅인 뒤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에 도착하니 경비원들이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곤 문을 열어주었다.

이신아는 정문을 빠져나온 뒤, 뒤를 돌아보았다.

정문의 문이 쿵- 닫힘과 동시에 황량한 바람이 불어왔다.

-휘오오오오....

이신아는 멍하니 정문과 그 너머의 풍경을 보았다.

마치 정승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30분이 넘도록 저택의 정문을 보았다.

-저벅... 저벅... 저벅...

그러다 마침내, 몸을 돌렸다.

이제 그녀는 자신만의 인생을 살기 위한 반대편의 길을 홀로 걸어갔다.

하지만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서러움은 차마 참기가 힘들었다.

“하으으...아으.........흐으으으.............하으으으으.......으으으으....”

정문에서 멀어지자마자,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걷고 걷고 또 걸으면서,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아아아....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으아아....”

이날, 이신아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대저택을 빠져나와 도로에 나올 때도, 그곳에서 택시를 잡을 때도, 택시를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할 때도,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탈 때도.

그녀는 하염없이 울었다.

이신아로서 마지막을 고해야 하는 이날, 그녀는 김연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울고 또 울었다.

이제 더 이상 이신아로써 있을 곳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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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 이신아는 김연주가 되었다.

그녀는 다시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은 모습으로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상훈아. 내일 좀 나와줘~ 응?”

“아... 사장니이이임~”

“부탁할게에에에에~”

떼쓰는 이신아의 모습에 홍조가 가득해진 박상훈.

대학교 3학년인 그는, 40대임에도 아름다운 이신아를 보며 크흠 헛기침을 했다.

어머니 뻘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떼쓰는 이신아의 모습은 귀여웠다.

“아, 알았어요. 진짜... 진짜 내일만이에요?”

“후후. 역시 우리 상후이 밖에 없어~”

“아으. 뭐, 어쩔 수 없죠. 동생 사고 났다는데, 가 봐야죠 머.”

박상훈이 어쩔 수 없이 내일 알바 땜빵을 수락한 이유.

그것은 내일 알바로 나올 애가, 갑작스러운 동생의 사고로 지방에 내려갔기 때문이다.

사장님의 애교가 귀여운 건 덤이었고.

“그래. 그러면 오늘은 마감 빨리할까? 어차피 이따 약속도 있고 해서.”

오. 빨리 마감을 할 수 있다? 박상훈의 입이 귀까지 걸렸다.

그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감을 재촉했다.

“그러면 내일 출근해도 불만 없죠! 바로 마감하시죠 싸장님!”

파이팅 넘치는 박상훈의 모습.

이신아는 큭큭 웃으며 마감을 하자고 했다.

그렇게 둘은 테이블을 닦고 바닥을 쓸고 기계들을 정리했다.

작은 카페였기 때문에 둘이서 마감해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럼 상훈아 내일 봐~ 수고했어.”

“네 싸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박상훈.

이신아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약속장소로 이동했다.

와인바였다.

“어머. 일찍 오셨네요?”

이신아는 정장 차림의 남자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정장 차림의 남자는 이신아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본 뒤,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그는 올드한 스타일임에도 멋들어진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연주씨가 빨리 보고 싶어서 말이죠.”

“후후. 능구렁이 같기는~”

이신아는 몸매 좋은 남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이 마실 양주를 하나 시켰다.

“그래서, 왜 보자고 했어요?”

이신아의 질문에 정장차림의 남자는 턱을 괸 채 지그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곤 유리잔에 있는 양주를 홀짝이곤 입을 열었다.

“사실, 2시간 전에 여기 왔어요. 좀 용기가 필요할 거 같아서, 술의 힘을 빌린 거죠.”

“흐응~ 무슨 용기가 필요한 걸까나?”

“큭큭... 언제까지 모른 척할 겁니까? 알 거 다 아는 나이끼리.”

“으음~ 술이 아직 덜 들어갔나 보네요. 빙빙 돌려 말하는 걸 보면.”

이신아의 말에 정장 차림의 남자는 유리잔에 있는 술을 원샷했다.

그리고 유리잔을 탁! 내려놓고, 홍조가 가득한 얼굴로 이신아를 보며 말했다.

“정식으로 만나요. 우리.”

“.....”

훅 치고 들어오는 멘트.

이신아가 턱을 괜 채 그를 빤히 보며 말했다.

“후회할 말 하지마요~ 우리 나이차가 몇인데.”

“신경 안 씁니다.”

“나 욕 먹어. 열 살 차야 열 살차. 그것도 내가 연상!”

“신경 안 씁니다. 연주씨만 좋으면, 상관없어요.”

저돌적으로 자신에게 대쉬하는 남자.

그가 말했다.

“가끔... 연주씨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가 있어요. 어딘가 먼 곳으로 영영 떠나버릴 것 같은 표정을... 근데, 그럴 때마다 무섭더라고요. 진짜 무섭더라고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나 혼자 남겨지면 어떡하나.”

남자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신아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알게 되는 겁니다. 제가 얼마나 연주씨를 바라고 있는지.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이신아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가 말했다.

“행복하게 해줄게요. 당신이 그런 표정 짓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그러니까 한번 만나봐요.”

이신아는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양주를 홀짝였다.

그리고 그를 보며 말했다.

“나 되게 나쁜 년인데. 진짜 못됐어요 나.”

“상관없어요”

“후후. 나 만난 사람 중에 상처 안 받은 사람 없는데.”

“저는 다를 겁니다.”

이신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유리잔 안의 술을 털어 넣은 다음,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래요. 만나봐요. 나도 이번엔... 나쁜 년 안되려고 노력해볼게요.”

***

10살의 연하남, 강지환과 연애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 6개월 동안 둘은 10대 못지않게 애틋하고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각자 일을 마치고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축구를 보거나 드라마, 영화를 보기도 했다.

기념일이면 먼 곳으로 여행을 가 사진을 찍기도 하고, 맛집 탐방을 다니며 식도락 여행을 즐기기도 했다.

“하으응...으응....하아...하아...으응....♥”

물론 둘은 몸도 섞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서로의 체액이 끈적하고 녹진해질 때까지 침과 침을 교환하고 체액과 채액을 나눴다.

“임신해...임신해애앳...!!”

강지환은 이신아를 열렬히 원했다.

그녀와 함께하는 미래를 진지하게 꿈꿀 정도로, 그녀를 정말로 사랑했다.

그래서 되도록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아이를 만들고 싶었다.

확 사고를 쳐버려서 자신에게 완전히 속박되도록, 그렇게 영원히 품고 싶었다.

“으읏....♥ 잔뜩 들어왔네...♥”

이신아의 질내에 가득 찬 자신의 정액.

강지환은 자지는 순식간에 부활했다.

간혹 요물같은 모습을 보이는 이신아를 볼 때면, 성욕이 미친 듯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움...츄웁...우우움...우움....♥”

이윽고 섹스가 끝난 뒤, 진한 키스를 나누는 둘.

강지환은 키스를 끝낸 뒤 이신아의 머리를 쓰다듬곤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 내 거인 거 알지. 절대로 안 놔줘. 어디로도 못 보내.”

“...응.”

“맹세해. 영원히 내 곁에 있겠다고. 어디든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네 곁에 있을게.”

“...사랑해.”

“...나도.”

이신아의 답을 듣고 미소를 짓는 강지환.

그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따뜻함을 느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강지환은 이신아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

“조심히 들어가고. 내일 봐~”

“응~”

“그럼 뽀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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