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9화 (249/303)

그리고 오빠 돈을 삥뜯으려는 딸.

나는 이 기분 좋은 아침의 풍경을 보며 계란후라이를 했다.

그리고 완성되는 족족 각자의 밥 위에 올려주었다.

“땡큐 엄마”

“나도 떙큐”

“당신도 앉아서 먹어”

다만 나의 기분은 다소 언짢다.

아들이 중요한 대회를 나가는데, 고기반찬이라도 먹여야 했었는데.

왜 늦잠을 자버렸을까.

바보같이.

“아~ 오랜만에 집밥 먹으니까 좋다. 소속사 돌아가기 싫다아아~~”

연습생 신분으로 있는 성아는 잠깐 집에 내려와 쉬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소속사에서 공사를 한다고 강제 휴가가 내려진 상황.

손 갈 일이 많아졌지만 오랜만에 딸의 얼굴을 보니 좋다.

“영원히 공사했으면 좋겠다아아아~”

매 분기 평가 1위를 할만큼 혹독하게 노력해서 그런 걸까.

아무래도 연습생 생활이 힘들긴 힘든 모양이네.

이렇게 투정을 부리는 걸 보면.

그래. 집이니까 이렇게 투정 부릴 수 있는 거지.

맘 편히 있다가 푹 쉬고 올라가야지.

“어이구.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때, 시계를 확인하더니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는 남편.

세상에 밥 남긴 거 좀 봐.

“한 숟가락만 더 먹어! 든든하게 먹어야지!”

“하하. 가야 돼~”

“자-”

남편의 숟가락을 쥐고 한 숟갈 크게 떴다.

후-우. 후-우. 김을 날리고, 남편의 입에 넣어주었다.

준다고 또 받아먹는다.

귀엽기는.

“우움...우움...됐지? 그럼 간다!”

서둘러 현관문으로 가는 남편을 따라갔다.

양말이 헤진 것과, 조금 더러워진 구두가 눈에 보인다.

넥타이도 삐뚤 한 게 여간 신경 쓰인다.

“으이그 좀. 잠시만!”

이런 거 두고 못 본다.

누가 흉이라도 보면 어떡해

내조도 못 한다고 욕먹을라.

“음... 됐다.”

멀뚱히 서 있는 남편의 옷깃과 넥타이를 정리해줬다.

황급히 솔을 꺼내 구두를 문질러주었다.

양말에 해진 부분을 접어 가려주었다.

“그럼 다녀와.”

“응”

결혼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남편은 여전하다.

홍조가 가득한 얼굴로 무언갈 바라는 얼굴로 날 바라본다.

“크흠. 크흠.”

혹시 성민이랑 성아가 보는 건 아니겠지?

고개를 빼꼼 내밀어 확인하니 지들끼리 다투기 바쁘다.

하여간 만나면 싸운다니까.

다만 난 이 틈을 타 남편에게 쪽 뽀뽀를 해주었다.

그리고 귓속에 ‘사랑해. 힘내’라고 속삭여주었다.

“...하하. 잘 다녀올게.”

이 사람은 어떻게 몇십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을까.

눈을 보면 날 사랑하는 게 눈에 보인다.

때론 어리숙하지만, 정말 사랑스러운 남편이다.

내가 진짜 결혼은 끝내주게 잘 했다니까.

-삐리리릭~

이윽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남편.

그런데 현관문이 열리자, 그 너머의 풍경이 이상하다.

남편은 온통 흰색으로 가득한 드넓은 공간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당연히 보여야 할 여러 골목길과 다른 건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온통 새하얀 무(無)만이 가득한 곳을 걸어갈 뿐이다.

‘여, 여보!’

덜컥 겁이 났다.

저런 위험한 곳을 막 가고 있다니.

막아야 해.

“여보! 위, 위험해! 집으로 와!”

소리쳐 불러보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는 남편.

아. 어떡하지.

저런 이상한 곳으로 가면 안 되는데.

-쾅!

하는 수없이 현관문을 뛰쳐나와 남편에게 뛰어갔다.

아무것도 없는 순백의 공간을 뛰어 남편의 등을 툭 쳤다.

하지만 뒤돌아본 남편의 얼굴은.

【왜 그랬어?】

눈알이 파진 채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헉!”

오후 2시. 이신아는 눈을 떴다.

정성민의 연옥으로 일상을 체험한 그녀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의 개인실이었다.

“.....”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새벽 2시부터 다음날 오후 2시까지 아들의 연옥으로 과거를 체험하고, 그것을 그대로 기억했다가 미진씨에게 전수하는 게 말이다.

마치 이중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미안해. 여보.”

이신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눈을 뜨면 자신이 망쳐버린 가족이 선명히 떠오른다.

한없이 행복한 꿈을 꾸었다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에 빠진다.

이 괴리감과 지독한 죄책감에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스윽.

이신아는 안방에서 가져온 정현재의 베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한 시간이 넘도록, 방에 불도 켜지 않은 채 허공을 올려다봤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감정을 죽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오늘은 남편을 배웅해줬을 때 매일 키스를 하고 사랑을 속삭여줬던 것을 전수해야겠다.

-주륵....

다만 흘러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이 감정이 빨리 지나가도록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3시간 뒤에 교육을 해야 하니, 그 시간 안에 감정을 비워내고 추슬러야 한다.

“.....”

그렇게 이신아는 허공을 보았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보며 꿈의 내용을 상기했다.

동시에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떠올리며 그 모든 것을 후회했다.

“후우...”

그렇게 시간이 다 됐다.

이신아는 세수를 하고 잔여 감정을 털어낸 뒤 방긋 웃는 연습을 했다.

남편을 행복하게 해줄 자신의 분신을 만드는 일이니, 슬퍼하거나 소홀히 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렇게 이신아는 오늘도 과거의 자신을 가르치러 김미진을 만나러 갔다.

***

중간 평가 날이 되었다.

김미진을 가르친 지 2달째.

이신아는 김미진이 얼마나 과거의 자신을 닮아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하여 이신아는 김미진이 녹화한 일상 기록물을 보았다.

약 3일 치의 일상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이신아는 아침부터 밤까지 김미진의 일과와 가족들의 반응을 꼼꼼히 체크해보았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성아야....”

하지만 영상을 확인하는 것도 잠시, 이신아는 무너지고 말았다.

영상 속의 성아가 쇼파에서 잠든 미진씨에게 이불을 덮어줬기 때문이다.

이신아는 틱틱대면서도 상냥했던 딸을 떠올리며 화면 속에 비친 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엄마가....엄마가 미안해....엄마가 잘못했어....엄마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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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엄마가 미안해....엄마가 잘못했어....엄마가 미안해....”

그녀는 오열하며 그러한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그리고 민세라가 되었을 때 성아에게 했던 말, 성아에게 했던 짓을 떠올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차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웨에에엑!! 우에엑!!”

결국 이신아는 화장실 변기에 속에 있는 모든 걸 비워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토를 하던 그녀는, 속이 진정되자 다시 영상을 재생해 미진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는 진짜 자신의 과거 모습을 보는 듯했다.

[사랑해. 힘내.]

[...하하. 잘 다녀올게]

현관에서 남편을 배웅해 주는 모습.

씩씩한 발걸음으로 출근을 하는 남편.

이제 드디어 출근할 정도로 건강해졌구나.

이신아는 연신 눈물을 쏟으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건강해진 남편의 모습을 보니 행복했다.

“.....”

그렇게 얼마나 영상을 봤을까.

이신아는 남은 영상을 보는 동안 5번 더 오열했고, 6번 모니터 속의 가족들을 쓰다듬었다.

어느새 모니터는 그녀의 침과 눈물자국으로 번들번들해져 있었다.

-스윽.

이신아는 자신의 비니를 벗었다.

어느새 머리가 꽤 자라 있었다.

다시 밀 때가 되었다.

-위이이이잉...

이신아는 바리깡으로 자신의 자란 머리를 모두 밀어버렸다.

새하얀 속살이 모두 보일 정도로, 아주 짧게 모두 밀어버렸다.

이제 자신은 개성을 표현하면 안 된다.

이신아라는 존재를 완전히 죽여야 한다.

“이제 머지않았네....”

영상을 다 확인한 결과, 미진씨는 아주 잘 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보는 거 같았다. 그러니까 과거의 자신 말이다.

활달하고, 온화하고, 강인했던...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그때 그 모습.

다만 아직 교정해야 할 부분이 조금 남아있었다.

앞으로 한 달 정도면 모두 끝날까.

이신아는 슬슬 작별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진씨를 전부 가르치고 나면, 정성민이 얻어준 원룸에서 여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다만 그곳에서의 활동은 자유롭다.

취미 생활을 해도 되고, 직장을 잡아도 되고, 남자를 만나도 괜찮다.

심지어 새로 가정을 꾸려도 된다.

이제 미진씨만 잘 가르치면 자신은 완전히 가족에서 추방되는 것이고, 그러면 이제 남남이니 남은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하면 된다.

새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한 달.”

이신아는 각오를 다지며 주먹을 쥐었다.

아들이 마련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

그 길로 가기 위해, 이신아는 마음을 다잡았다.

***

한 달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지나버렸으니 말이다.

이신아는 이제 완벽하게 자신을 흉내 내는 김미진을 이신아라 불러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은 김연주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족은 보고 가. 전부... 집으로 불러올 테니까.”

정성민은 이신아가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가족을 보게 해준다고 했다.

이신아는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연습했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가는 길, 우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기로 했다.

“자.”

아들이 건네는 얼굴 가죽.

즉, 인피면구였다.

이신아는 인피면구를 써 가정부로 위장한 뒤, 정성민의 대저택으로 들어갔다.

“엄마~ 한 그릇 더 줘!”

그렇게 저녁 시간.

이신아는 거실을 청소하며 화목하게 밥을 먹고 있는 성아와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

정성민은 무뚝뚝한 얼굴로 밥을 깨작거리고 있을 뿐이었지만, 이신아에겐 그 모습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다.

이제 이들을 실제로 보는 것은 마지막이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수고 많으세용~ 이것도 부탁해요.”

밥 빈 그릇을 자신에게 건네는 성아.

이신아는 싱긋 웃으며 그릇을 받은 뒤,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곁눈질로 가족들의 모습을 힐끔힐끔 보았다.

-솨아아아아....

그러나, 갑자기 흐르는 눈물.

이신아는 수돗물 틀은 채 다 씻은 밥그릇을 계속 씻었다.

꾸역꾸역 슬픔을 집어넣으며 뽀드득 소리가 나는 밥그릇을 계속 닦았다.

“후우...”

그렇게 그릇 하나를 얼마나 씻어댔을까.

겨우 진정한 그녀는 나머지도 식기도 설거지를 끝마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식사를 마친 가족들은 저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가씨. 잠시 방 정리해드려도 괜찮을까요?”

하여 이신아는 방 정리를 핑계로 각자의 방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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