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5화 (245/303)

이신아는 싸늘하게 식은 냄비를 안았다.

이제 정성민의 눈에선 가족의 온기라곤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더 이상 그들에게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된다.

너무 큰 죄를 지어버렸고, 이 죄를 용서받을 수도 없었다.

-스으윽.

이신아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부엌으로 이동해 또다시 요리를 했다.

쌀을 씻어 밥을 짓고, 양파와 파. 그리고 애호박을 다듬었다.

냄비를 헹군 다음 물을 받고, 멸치와 다시다를 넣어 다신물을 냈다.

그렇게 재료와 된장을 넣은 다음 다시 된장찌개를 만들었다.

-달칵. 달칵.

이신아는 그릇을 꺼냈다.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하던 식탁 위에 수저를 세팅한 다음 각 밥그릇에 밥을 한 가득 펐다.

그리고 밥 네 공기가 테이블에 세팅이 되었다.

테이블의 중앙엔 된장찌개가 놓였다.

-저벅 저벅 저벅

이신아는 안방으로 갔다.

그리고 자신의 눈물 자국이 남은 남편의 베개를 들고 테이블 의자 위에 놓았다.

정성민이 즐겨쓰던 레시피 노트를 들고 와 다른 의자에 두었다.

딸이 즐겨 입었던 잠옷을 들고와 또 다른 의자에 두었다.

“성민아. 생일 축하해.”

그녀의 축하는 공허한 집안을 맴돌았다.

허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텅 빈 그녀의 마음만큼이나 아무도 없는 이 집안을 더욱 황량하게 돋보이게 할 뿐이었다.

-달칵.

이신아는 식기를 들었다.

된장을 한 스푼 뜬 다음, 흐루룹 맛을 보았다.

자신이 항상 하던 그 맛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들은 것 같아도, 맛은 여전했다.

성민이가 참 좋아하던 그 맛인데.

“으으...우움...”

그렇게 한창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이신아는 입에 넣은 밥을 더 이상 오물거리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다만 그녀는 오열하다시피 흐느끼면서도 꾸역꾸역 밥을 넘겨 먹었다.

마지막 가기 전에 가족들과 식사를 꼭 해보고 싶었다.

“후우....”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지났을까.

밥보다 울음을 삼킨 양이 더 많았지만, 결국 이신아는 식사를 끝낼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다시 가지고 온 물건들을 원위치하며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잘 자 성아야.”

성아의 옷을 갖다 놓을 때는 딸에게 잘자라고 인사했다.

마치 정성아가 침대에서 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조심이 방문을 닫고 빠져나왔다.

“성민아. 잘자.”

아들의 레시피 노트를 책상 위에 올려둔 뒤 작별인사를 하는 이신아.

그녀는 잠시 9살 시절의 정성민을 보았다.

자신에게 도도도 뛰어와 무서운 꿈을 꿨다고 알리는 그 천진난만한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괜찮아 성민아. 이제 악몽은 모두 끝났어. 엄마가 다 해결할 테니까, 우리 성민이는 좋은 꿈만 꾸면 돼. 알겠지?”

그렇게 어린 시절의 정성민을 돌려보낸 이신아.

그녀는 마지막으로 안방에 들러 정현재의 베개를 원위치했다.

그리고 잠시 침대에 누워, 자신의 옆에 그가 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자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여보.... 그 사람이랑 행복하게 잘 지내. 나는... 나는 제발 잊어줘. 제발....”

이신아는 생각했다.

정현재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려면, 자신을 잊어야 한다고.

자신의 악행을 기억하고 있는 한 그는 행복할 수 없다고.

때문에, 정성민의 판단이 옳은 것이라고.

자신은 그 완벽한 가족들 사이에 있길 바라선 안 되고, 있어서도 안 되고, 행여나 그 기회가 오더라도 거절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행복으로 나갈 수 있는 진정한 길이었다.

“미안해...”

차마 사랑한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이제 그 말이 얼마나 염치없는 말인지,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은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조차 없었다.

-스윽.

그렇게 이신아는 모든 작별인사를 마치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종이와 펜을 챙긴 다음, 마지막 유서를 남겼다.

유서의 내용은 사죄로만 가득한 내용이었다.

자신이 한 모든 일을 후회하고 있으며, 여기에 대한 어떤 용서도 바라고 있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단지 자신이 그 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이렇게 비겁한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한 사죄만 한 줄 더 추가되어 있을 뿐이었다.

-스릉.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이 날카로운 것으로 목을 찌르면 된다.

누군가가 와서 재빨리 막기 전에, 한 방에 갈 수 있는 것이 이것이다.

이신아는 칼날의 방향이 역으로 향하게 잡은 뒤 눈을 감았다.

아름다웠던 지난 계절의 사계가 지나갔다.

연분홍빛 봄의 따스함부터 새하얀 겨울의 시림까지.

수없이 많은 행복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후욱!

미련은 없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조차 없다.

이신아는 팔을 안으로 끌어당겨 자신의 목을 찔렀다.

....아니, 찌르려고 했다.

-꽈아아아악...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강한 악력.

눈을 뜨니,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호원이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그가 짜증이 묻은 얼굴로 말했다.

“하. 씨발. 잠깐 놔두니까 사고 치려고 하네. 좆될 뻔했잖아?”

“.....”

“와 진짜 주인님한테 개털릴 뻔했네. 씨발.”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이신아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녀의 손에서 식칼이 떨어져 나왔다.

-띵...팅그르르르....

“하-아. 이래서 빼면 안 된다고 했는데. 따라와.”

경호원은 멍한 얼굴의 이신아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를 올렸다.

“주인님 오신단다. 기다려.”

통화를 끝내고 그 결론을 말하는 경호원.

다만 이신아는 아들이 온다는 소식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저 죽은 눈으로 허망히 시선을 내리깔 뿐이었다.

“죽으려고 했다고?”

이윽고, 정성민이 나타났다.

그는 쓰레기 보는 듯한 눈빛으로 이신아를 흘겨봤다.

이신아는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고 있었다.

“나오자마자 지랄하고 있네. 누가 함부로 죽어도 된다고 했지?”

“.....”

“끌고 와.”

정성민은 그렇게 중얼거린 뒤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신아나 적은 유언장을 들고 쭉 읽어보았다.

이윽고 유언장을 다 읽은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씨발년이 잘 반성하고 있네. 그런데 그냥 죽으려 했어? 죗값을 다 치르지도 않고?”

“.....미안합니다.”

“미안하다고 처 하지마. 책임을 지라고 책임을. 네 행동에 대한 책임.”

정성민은 그렇게 말한 뒤 이신아에게 고개를 조아리라고 시켰다.

이신아는 군말없이 정성민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자세를 취했다.

-콰직!

정성민은 이신아의 머리를 짓밟았다.

그리고 유언장에 라이터 불을 붙인 다음, 그 잿가루를 이신아에게 날리며 말했다.

“쌩쇼하지마. 그딴 된장을 처만드는 것도, 사죄를 하는 것도, 유언장 같은 걸 남기는 것도,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아. 그저 네년의 감성팔이용 행위일 뿐이지.”

-꾸우우욱....

짓밟은 발에 더욱 힘을 주는 정성민.

이신아는 여전히 무반응이었다.

“그리고 씨발년아. 죽기 전에 설거지는 해놔야 할 거 아냐. 밥 처먹고 설거지도 안 하고 죽으려고 했나?”

다 식은 된장찌개 하나와 밥 네 그릇.

이신아는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썅년이 존나 무책임한 년이네 이거. 너는 쉽게 못 죽어. 알겠어? 아직 니 남편도 버티고 있는데, 서로 응원해줘야지?”

정성민은 그렇게 말하며 미스터 최의 최근 사진을 폰에 띄운 다음 이신아에게 보라고시켰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봤다.

“.....”

하지만 이번에도 반응이 없었다.

그 눈빛엔 어떤 놀라움이나, 공포나, 슬픔이 없었다.

심지어 조금의 애정도 느낄 수 없는 눈이었다.

“감상이 어떻지? 네가 그토록 사랑했던 로건이다.”

멍하니 미스터 최를 바라보는 이신아.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저도 이렇게 만들어주세요.”

“.....”

의외의 대답에 생각에 잠긴 정성민.

그가 말했다.

“왜?”

“죽을 수 없다면, 죽을 만큼의 고통을 받다가 죽고 싶습니다. 부디 저도 저렇게 만들어주세요.”

앙상하게 마른 미스터 최의 몰골.

그 눈빛엔 예전의 카리스마도, 번뜩임도 없었다.

오로지 절망과 공포만이 가득한 눈이었다.

“부탁드립니다.”

다만 이신아의 뜻은 완고했다.

정성민은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입을 열었다.

“네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모양인데, 웬만한 정신력으론 저런 고문을 못 버텨. 단 5일도 고문을 버티지 못해 저 새끼한테 고통을 전가한 네가, 다시 육체고문을 당하겠다고?”

“네.”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정성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신아가 떨어뜨린 식칼을 쥔 뒤, 그녀에게 명령했다.

“어디 버틸 수 있나 보자고.”

그는 이신아게 손바닥을 펴라고 말했다.

이신아는 그의 명령대로 바닥에 손바닥을 댔다.

정성민이 칼을 아래로 찍었다.

-쿵!

엄지와 검지 사이에 박힌 식칼.

허나 이신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멍한 눈으로 허공을 볼 뿐이었다.

“.....”

정성민은 다시 식칼을 뽑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신아의 손바닥 정중앙을 칼로 내려찍었다.

이신아가 신음을 터트렸다.

“으흡...! 흐으으으윽....흣.....”

연신 앓는 소리를 내는 이신아.

다만 그것이 전부일 뿐, 다른 반응은 없었다.

정성민은 식칼을 뽑은 다음 뒤로 휙 던진 뒤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좋다. 다시 육체고문을 당하게 해주지. 하지만 호락호락하진 않을 거야.”

정성민은 그 말을 남기고 뒤돌아 걸어갔다.

이후 이신아는 손바닥 치료를 받고 정확히 한 달 뒤, 고문실로 옮겨졌다.

그녀는 미스터 최 바로 옆에 묶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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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세라....세라....”

이신아가 고문실로 옮겨진 그 날.

미스터 최는 오랜만에 보는 이신아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기억하는 그녀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완전히 목이 나간 목소리로 이신아를 부르는 그는, 요 한 달 사이 더욱 초췌한 몰골로 전락하고 말았다.

“으우....우우우우....”

앙상하게 마른 그의 몸.

우선 부랄 한 짝이 파열되어 보이지 않았다.

발기 전에도 큰 크기를 자랑했던 그의 자지가 무슨 짓을 당했는지, 초라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마치 축소 수술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쉬이이익...

“크후오옥!! 흐아아악!! 후아아악!”

그리고 그는 오줌도 제대로 싸지 못했다.

요도에 이상이 생겼는지 오줌이 질질 새며 고통 가득한 신음을 흘리는 그였다.

이신아는 그런 그를 멍한 눈으로 보았다.

“헤...헤헤....세라...세라....”

오줌을 다 싸고 난 뒤,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듯한 그는 이신아를 보며 헤벌쭉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고통전가장치’를 미친 듯이 삑 삑 삑 삑 누르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최후네.”

멍하니 그 광경을 보던 이신아는 그런 말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녀는 여전히 고통전가장치를 누르며 기뻐하는 미스터 최를 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 나는 민세라야. 이신아가 되어서는 안 되는...당신의 짝이지. 부디 지옥에서 만나.”

손바닥을 치료한 한 달 사이, 이신아는 민세라가 되기로 다짐했다.

이신아가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다면, 민세라로서 죄를 받다가 죽는 것이 그나마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커플이군. 소감이 어때.”

그때, 고문실의 문을 열고 나타나는 정성민.

이신아가 그런 그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주 제대로 조져놨어. 개 같은 새끼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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