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장갑이 끼워진 것은 미스터 최도 마찬가지였다.
”자~ 이번에도 ‘고통 전가’ 스위치가 있으니까, 한번 잘 버텨보라고.“
정성민은 그렇게 말하며 기계장갑을 작동시키는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기계장갑 손가락 넣는 부분 끝에 달린 침이 위이잉 회전하며 진격하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으아...으아아아...!“
손톱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침.
이윽고 침이 손톱 사이로 들어가 어마어마한 고통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신아는 곧바로 비명을 지르며 왼손에 들린 고통전가 스위치를 미친 듯이 눌러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러자 미스터 최의 장갑에 달린 침이 2배 빠른 속도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미스터 최는 미친 듯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다가 결국,
-삑.
자신의 손에 들린, 고통 전가 스위치를 누르게 되었다.
이때부터가 진정한 지옥의 시작이었다.
***
육체 고문을 시작한 지 5일째.
정성민은 그동안 수많은 종류의 고문을 행해왔다.
미스터 최와 이신아의 얼굴에 투명 박스를 씌운 뒤 물을 가득 채우기도 했고,
나무판자가 아니라 쇠판자에 몸을 묶어 다리미의 열을 올리듯 쇠판자를 고온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삑! 삑! 삑! 삑! 삑! 삑!
-삑! 삑! 삑! 삑! 삑! 삑!
서로를 향한 사랑이고 자시고, 그들은 서로에게 고통을 전가하기 위해 미친 듯이 스위치를 누르게 되었다.
거의 뺨까지 내려오는 다크서클을 한 퀭한 눈으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내고자 상대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행위를 반복했다.
이제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가 오 가지 않았다.
”흐음. 이거 너무 시시한데? 겨우 그 정도였어? 아니지. 이것들 전략적으로 하는 거 아닌가? 서로의 고통을 똑같이 분담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랑이야?“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무언가를 답할 체력조차, 의지조차 남지 않았다.
그저 하루 빨리 이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민세라.“
그때, 이신아를 부르는 정성민의 목소리.
이신아가 반쯤 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정성민은 이신아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그녀의 턱을 쥔 다음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겨우...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 겨우 이 정도의 사랑으로, 우리 가족을 배신했던 거야? 당신만을 사랑했던 남편을 배신한 거냐고....?“
정성민은 그렇게 말하며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미스터 최 쪽에서만 화염이 방사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미스터 최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 전가 스위치를 마구 눌러댔다.
그러자 이신아의 발밑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흐으으으으...으으으으....“
정성민은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이신아를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겨우 이 정도였던 거야. 당신이 모든 걸 내팽개치고 택한 사랑이, 고작 이 정도라고.“
정성민은 그렇게 말하며 스위치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짓씹는 듯한 말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정현재라면 어떻게 했을 거 같아? 응? 그 바보병신 같은 인간이, 어떻게 했을 거 같냐고.“
”흐...흐으으으....흐으으으으으...으으으....“
”그 사람이라면 바보같이 모든 걸 버텼어. 설령 고통을 견디다 목숨이 끊어지더라도,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견디다 쇼크사로 죽을지라도, 그는 분명히 버텼어.“
”흐으...흐아아....아아아....아아아...“
정현재는 분명 고통 전가를 하지 않았을 거란 정성민의 말.
이신아는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만큼 자신밖에 모르는 바보였고, 오직 자신만을 사랑했으니까.
그런 바보 멍청이였기에 재벌가를 버리고 그를 택한 거니까.
-삑
정성민은 눈물을 줄줄 흘리는 이신아를 보며 어떤 장치를 눌렀다.
그러자 뒤쪽에 있는 문이 개방되며, 어리둥절한 표정의 정현재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성민아...여기로는 왜.....?“
그때, 뒷말을 흐리는 정현재.
그는 고문으로 엉망진창이 된 이신아를 보며, 몸을 덜덜 떨었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그녀를 향해 다가가며 눈물을 왈칵 쏟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여, 여보... 왜, 왜....“
정현재는 끄윽 끄윽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신아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몸 곳곳을 둘러보며 목 매인 소리를 냈다.
그리고 정성민에게 말했다.
”서, 성민아.... 네, 네 엄마 꼴이 왜 이러냐....엄마가....네 엄마가... 내, 아내가 왜 이런 꼴로....“
정현재는 그렇게 말하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119를 누르고 통화를 하려 했으나, 정성민의 손에 가로막혔다.
”.....?“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민을 바라보는 정현재.
정성민이 말했다.
”내가 그랬어. 아직 더 해야 하니까 비켜.”
“.....뭐?”
“죗값을 받아야지. 말했잖아. 이 여자가 당신에게 한 짓을.”
정현재는 손을 덜덜 떨며 이신아를 돌아봤다.
그리고 다시 정성민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 거짓말을 어떻게 믿어! 그럴 리가 없잖아! 네가 네 엄마를 얼마나 안다고! 이놈의 자식이!”
정현재를 그렇게 말하며 정성민의 가슴을 쿵- 쿵- 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범벅이었다.
“이놈아! 네, 네 엄마다...! 당장 풀어줘! 지금 당장 풀어줘! 당장 풀란 말이야!!”
“.....”
침묵으로 일관하는 정성민.
정현재가 절규하듯 외쳤다.
“아무도, 아무도 내 여자는 못 건드려...! 야, 약속했단 말이다... 시, 신아는 내가, 내가 꼭 지켜주기로....”
그의 힘없는 주먹질은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정성민이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정현재는 아예 정성민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
“여보...! 빨리 도망쳐! 성민이는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 볼 테니까! 얘가 지금...흐으으...으으으...얘, 얘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서, 얘가 지금...!”
정현재가 휘두르는 주먹 하나하나를 피하지 않고 가만히 맞아주는 정성민.
정현재는 그런 정성민을 놔두고 이신아에게 달려갔다.
이신아는 그런 정현재를 보며 오열하고 있었다.
‘내, 내가... 내가 대체... 내가 대체 이 사람을 두고 무슨 짓을....’
저 약한 몸뚱아리로 온몸을 불사 지르는 그의 모습을 보자 떠올랐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고, 얼마나 아꼈는지를.
자신에게 있어 그가 얼마나 찬란하게 빛나던 사람이었는지를.
왜 그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그런데, 그런데 나는.... 나는....’
“여, 여보!! 내, 내가, 내가 구해줄 테니까....성민이는 내가...으읍...!!”
그때, 정성민이 정현재의 입을 틀어막고 마취주사를 주입했다.
정현재의 몸이 스르르 힘이 풀리며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정성민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말했다.
“방으로 모셔.”
“”예!““
이내 들것을 가져와 정현재를 실어가는 부하들.
정성민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이신아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이제 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 이제 정현재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될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이란 존재를 지워낸 다음, 다른 여자로 대체시킬 거야. 그럼 그는 그 사람을 당신이라 생각하며 행복할 수 있겠지.“
”흐으으으...흐아아아......서, 성민아....성민아....내, 내가....내가 잘못했어....내가....내가 정말....그, 그것만은.... 혀, 현재씨는. 내 남편은....“
”... 무슨 소리야? 당신 남편은 옆에 있잖아.“
”...아........“
정성민은 고개를 떨구는 이신아를 보며 ‘당신의 육체 고문은 여기서 끝이야’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곤 옆에 있는 미스터 최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죽을 때까지 평생 고문을 해주겠다고 약속할게. 어디 한번 잘 버텨봐.“
”으으...으으으으으....“
강도 높은 고문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학습한 미스터 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원초적인 감정이 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런 생활을 평생 할 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민세라. 육체 고문이 끝났다고 편해질 거라 생각하지마. 당신의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정성민은 그 말을 남기고 뒤돌아 고문실을 빠져나왔다.
이신아의 머릿속엔 정성민이 남긴 마지막 말이 맴돌고 있었다.
‘당신의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이 고통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설마 이보다 더한 고통이 있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로 그러했다.
이신아가 견뎌야 할 고통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화 보기
이하영는 바빴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루 24시간을 시간으로, 분으로, 초로 쪼개어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야 그녀는 향락소 본점의 수장이 되었고, 구원자의 세력을 모두 흡수했으며, 뒷세계의 진정한 여왕이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러한 업무적인 일로만 바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향락소를 운영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머리가 비상하고, 이해득실에 관한 계산이 밝고,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여 선동/조작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향락소의 운영 따위, 어려울 것 없었다.
다만 구원자 이 돼지새끼를 어떻게 괴롭혀줘야 할까.
이 새끼를 어떻게 고문해야, 정말 잘 괴롭혔다고 소문이 날까.
그러한 고민과 고민 끝에 나온 해답의 실현이 그녀를 바쁘게 했다.
동시에 미스터 최, 이 개자식도 괴롭혀야 해서, 정말 너무너무 바빴다.
투트랙 걸레의 이력이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다.
다만 투트랙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이하영이었다.
오늘은 저 돼지 새끼를 고문하고, 내일은 도태남 미스터 최를 고문하고.
아아. 정말 즐거운 나날이지 않은가.
이하영은 그런 상념을 하며 구원자가 있는 밀실로 또각또각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빛 한점 들어오지 않은 구원자의 밀실에 ‘먹이’를 집어넣었다.
어디 돼지새끼 사료 처먹는 꼴을 감상해볼까.
“흐오옷!!”
역겨운 돼지 새끼.
‘먹이’가 들어오자마자 허겁지겁 배식구로 후다닥 다가간다.
이하영은 열화상 카메라로 구원자의 추태를 보며 킥- 조소를 흘렸다.
이번에는 어떤 먹이를 선택하려나.
“후ㅡ욱... 후ㅡ욱... 후ㅡ욱...”
구원자의 먹이.
이는 양자택일이 문제였다.
즉, 두 개의 플라스틱 통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 복불복인 것이다.
그 이유는 둘 중 하나는 썩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구원자는 이 정상 음식과 썩은 음식 중 하나를 냄새를 맡지도, 생김새를 보지도 못한 채 그저 감으로 골라야 했고, 이 선택의 순간은 그를 매번 괴롭게 만들었다.
그는 매번 썩은 음식을 골랐으니 말이다.
“이...이번...! 아, 아니. 일번? 아, 그냥 이번으로 하겠습니다!”
1번 음식과 2번 음식.
구원자는 바퀴벌레가 들어있는 이번 음식을 선택했다.
이하영은 그 광경을 보며 포복절도를 하며 박수를 보냈다.
“맛있게 먹어♥”
구원자의 건강을 생각해 강제 1일 1식 다이어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하영.
다만 매번 썩은 음식을 고르는 그라서, 이거 건강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자신의 고문을 견뎌내야 할 텐데.
“나사랑 돌도 들어있으니 조심해야 할 거야♥”
식탐이 많은 구원자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버릇이 있었다.
특히 1일 1식으로 제한되어 허기진 구원자는 손에 잡히는 것은 다 처먹고 보는 역겨운 버릇이 생기게 되었다.
따라서 저번엔 단단한 돌을 씹어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틀 전에도 나사를 씹다가 입천장을 찔려서 의무반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번엔 바퀴벌레도 조심해야지♥’
그런데 오늘은 작은 돌, 나사, 바퀴벌레, 썩은 음식 4종 세트였다.
과연 저 돼지 새끼는 무사히 처먹을 수 있을까.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그때, 입안에 기어다니는 바퀴벌레를 느낀 구원자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하영은 어깨를 들썩이며 열화상 카메라로 그 꼴을 보았다.
“병신”
홍조가 가득한 얼굴로 해벌쭉 미소를 짓는 이하영.
그도 그럴 게, 애초에 두 음식 중 정상음식은 없었다.
존나 썩은 것과 덜 썩은 것 정도의 구분만 있을 뿐이지, 둘 다 썩은 음식이었다.
그런데 구원자는 둘 중 하나가 정상이라고 철썩 같이 믿은 채 매일매일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뭐, 일주일에 한번은 정상 음식을 주니까. 그걸로 만족해야지.”
다만 구원자는 오래도록 괴롭혀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영양식을 주되, 더럽게 맛없는 것으로 줄 생각이다.
그것도 아주 개같은 식감의 형태로 말이다.
딱딱하든, 질기든, 뭐든.
“그럼 미스터 최도 조지러 가볼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 가는지도 모른 채 오열하는 구원자를 바라보던 이하영은, 발걸음을 돌려 자신의 애마에 탔다.
그리고 곧바로 시동을 걸어, 정성민이 있는 ‘스튜디오’로 전력질주했다.
오늘은 백하윤, 이희연, 자신으로 이뤄진 구(舊) 도원결의 맴버가 모여 미스터 최를 조지기로 한 날인 만큼, 자신이 빠질 순 없었다.
-부오아아아아아앙!!!
이하영의 슈퍼카가 질주했다.
***
육체 고문이 끝난 이후, 이신아는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이 치료는 앞으로 감당할 고통을 견디기 위해 해주는 치료일 뿐이지, 그 어떠한 호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
“흐으으...으으...흐으으으으으....”
이신아는 치료를 받으면서도 울었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누구보다 자랑스러웠던 자신의 아들이 했던 말.
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남편의 마음에서 나를 완전히 지워내고, 다른 사람으로 채울 것이라고.
‘왜, 왜 나는....’
후회해봤자 늦었지만, 이신아는 자신이 왜 이 꼴이 되었는지 돌아보았다.
나는 왜 민세라가 되고 싶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