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눈엔 그 어떤 거짓이나 기만도 없었다.
차도연은 쓸쓸한 눈빛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을지 알아. 내가 그들에게 ‘조교’를 받아 이상해진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겠지.”
“......”
“우선 네가 궁금해할 거 같으니, 누군지 밝힐게. 음. 난 정성민을 만났어. 여태까지 정성민의 스튜디오에 있었고. 그와 몸을 섞은 것도 사실이야.”
점점 벌어지는 차도연의 입.
그녀는 가쁜 호흡을 내뱉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자신의 심정을 전하는 언니를 마주하니, 점점 언니가 멀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절대 강제된 것이 아니었어. 자발적으로 내가 원한 거지. 그냥... 그냥 나는 깨달아버리고 만 거야. 내가 애써 외면해왔었던 진실을 말이야.”
궁금증이 일었다.
언니가 외면했던 진실이란 무엇일까.
“도연아. 나... 벌써 마흔둘이야. 미스터 최 그 개자식에게 강간당한 이후로, 22년간을 이 암흑 속에 갇혀 지냈어... 남자를 증오하고... 남자를 멀리하고... 혼자 이렇게 집에 처박혀서...”
차도연은 울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언니를 바라봤다.
남자를 증오할 수밖에 없었던 언니의 불행은 자신도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였다.
그 때문에 자신도 남자를 멀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도연아. 나 사실... 계속, 끊임없이... 계속 그 개자식의 물건이 떠올랐다? 그 황홀한 순간을 잊을 수 없어서... 계속 괴로웠어. 그리고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지. 차라리 나를 완전히 가질 것이지. 이렇게 버리지 말고, 나를 완전히 가질 것이지.”
“.....뭐?”
언니의 입에서 전해 들은 충격적인 진실.
차도연은 빛 한점 들지 않은 침울한 눈으로 언니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내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믿을 수 없었다.
그 개새끼의 물건이 그리웠다니?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그래. 난 너의 그 표정이 두려웠던 거야.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남자를 증오하고, 혐오하고..... 하하. 그런 짓을 22년이나 한 거지. 그러다 보니 남자를 증오한다는 마음이... 진심이라고 착각해왔던 거야. 사실은 언제나 그들의 품을 그리워했으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더 이상 언니의 말을 듣기 싫었다.
차도연은 몸을 일으킨 다음 머리를 부여잡은 채 주위를 서성거렸다.
“거짓말....거짓말... 거짓말이지..? 응? 하하... 그럴 리가 없잖아? 거짓말 하지마.”
차도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그러면 여태까지 미스터 최에게 복수하려고 달려온 자신의 인생은, 대체 무엇인지.
“언니... 언니가 그러면 안 되지. 그게, 그게 모두 언니의 연극이면... 난 대체 뭐가 되는 건데... 내가 언니를 위해서 얼마나 개같이 노력했는데... 내가, 내가 언니를 위해서... 난 진짜...”
차도연은 그렇게 중얼거리다 어느 순간 딱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스스로 납득할 만한 결론을 내렸다.
“아! 정성민! 정성민 그 개자식이 시킨 거지? 그치?”
차도연은 그렇게 말하며 차지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자신의 결론이 정답임을 확인받고 싶은 듯, 차지연의 어깨를 계속 흔들며 같은 말을 내뱉었다.
“맞지? 그치? 그런 거지? 날 흔들어 놓으려고, 다 그 자식이 시킨 거지?”
차도연은 연신 눈물을 쏟으며 계속 그렇게 질문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은 언니의 눈빛에서, 그 모든 말이 진실이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도연아. 이제 그만 우리를 옭아매던 저주에서 해방되자. 나는 날 위해 노력하는 널 위해 남자를 증오하는 연기를 계속 해야하고... 너는 그런 나를 보며 더욱 노력해야 하는... 이 끊임없는 악순환의 저주에서 말이야.”
“.....그, 그만해. 더 이상 말하지 마. 제발 그만...”
“나도 사실 행복한 여자이고 싶었어. 좋은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그런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어.”
“그, 그만... 이제....이제 그만...”
“황홀하더라. 22년 만에 맛보는 남자의 맛은. 왜 바보같이 이걸 거부하고 거짓된 삶을 살았나 모르겠어. 진작에... 진작에 네게 솔직해야 했었는데. 그럼 우린 이렇게 불행하지 않은 채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차도연은 언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아무리 사랑하는 언니라지만, 지금은 저 입을 꿰매어 버리고 싶었다.
“도연아. 우리가 살아온 지난 22년은, 저주였던 거야. 서로가 서로에게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저주를 내린 거야.”
콰르르르르.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불쌍한 언니를 위해... 남자를 사랑할 수 없게 된 언니를 위해... 죽기 살기로 공부해 사법연수에 합격했던 지난 날... 단 한 번의 쉴 틈도 없이 공부 지옥에 갇혀 살아야 했던 날... 광적으로 일에 집착하며 성범죄자를 깜방으로 쑤셔 처넣었던 지난날의 풍경이 와장창 깨지기 시작했다.
“저주....저주라고....?”
자신의 그 모든 노력이 저주라고 말하는 언니.
피 터지게 공부하며 개같이 노력해 간신히 이룩한 이 결과물들을, 저주라고 멸칭하는 언니.
“씨발, 저주라고? 저주라고?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다시 말해봐! 그 모든 게 저주라고?”
“.....응.”
허나, 지체없이 자신의 입장을 내뱉는 언니.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확신을 담아 내뱉는 말.
“그럼. 그럼 난 대체 뭘 한 건데....?”
“미안해. 너도, 너도 내 저주에... 내 저주의 희생양이 된 것뿐이야....”
차도연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언니의 얼굴을 퀭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5분이면 이곳에 구출팀이 도착할 것이다.
‘미친 게 분명해. 저건 언니가 아니야. 정성민 그 개새끼한테 세뇌당한 거야. 언니가 그럴 리 없어. 언니가 남자 새끼들을 좋아할 리 없잖아.’
“도연아.”
그때, 자신을 부르는 언니의 목소리.
차도연은 남은 5분의 시간을 생각하며 차지연을 바라보았다.
차지연이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이렇게 하자.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 원흉... 미스터 최에게 복수는 하는 거야. 애초에 그게 목적이었고.”
“.....”
“그리고 뒷세계는... 그냥 정성민에게 맡기자. 응? 정성민도 우리와 같은 피해자야.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면 뒷세계의 힘이 필요해. 그 세력을 유지해야 돼.”
차도연은 자신의 언니를 싸늘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역시 정성민 그 개새끼한테 세뇌당한 게 맞네’라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상처를 준 언니를 노려보았다.
“언니. 괜찮아. 다시 언니를 원래대로 돌려줄게. 언니는 죽을 때까지. 평생. 남자를 증오하며 살아야 돼. 그게 내가 아는 언니야. 절대 변하지 않게 해줄게. 내가 꼭 치료해줄게. 지금 언니 제정신이 아니야.”
“.....너.”
“그렇게 볼 거 없어. 어차피 언니 지금, 제정신 아니니까.”
“너...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평생 남자를 증오하며 살라고? 죽을 때까지 이렇게 쓸쓸하게 늙어 죽으란 말이야? 그게 나한테 하는 소리야?”
원래 차도연의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
그녀도 사실은 언니가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여생을 보내길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미스터 최와 뒷세계를 모두 일망타진한 뒤에 벌어져야 하는 일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결말을 맺고, 그제야 비로소 행복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어. 평생. 평생!”
하지만 지금의 차도연은 흥분 상태였다.
자신이 한 모든 일이 ‘저주’에 불과하다는 언니의 말을 듣고, 감정이 격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너! 방금 내 얘기를 다 들어놓고도! 그게 나한테 할 소리야? 너 때문에 22년을 썩은 나한테 할 소리냐고!”
“....뭐?”
“충분하잖아! 나 마흔두살이야! 그런데 여기서 더 썩으라고? 평생 남자를 만나지 말라고? 행복하지 말라고?”
“아니...나 때문에... 22년을 썩었다고? 나 때문에?”
“그래. 너 때문에. 네가 아득바득 공부하며 자꾸 남자를 증오하도록 날 부추기니까, 너 때문에 22년을 썩어야 했어.”
“씨발! 다시 말해봐! 나 때문이라고? 지금 언니가, 그게 나한테 할 소리야? 나 때문이라고?”
“말 가려가며 해. 언니한테 씨발이 뭐니.”
“말 가려야 할 건 언니지!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둘의 감정은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
차도연은 수십년 간 숨겨온 차지연의 진실을 감당할 수 없었고, 차지연은 더 이상 진실을 숨긴 채 살아갈 수 없었다.
그 간극이 두 자매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다투도록 만들었다.
“씨발, 괜히 왔어! 언니 일이라면 다 제쳐두고 오는 나인데! 겨우 이런 개 좆같은 말을 하려고 날 부른 거야?”
“그럼 오지마! 이제 네가 나한테 집착하는 거, 너무 부담스러워. 역겨울 지경이야. 나도 내 인생을 살고 싶어. 그러니까 제발 그만 집착해”
“하. 집착? 씨발... 집착이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다 해줬더니, 집착이라고? 막말로...하. 언니가 고생이라는 걸 해봤어? 지 혼자만 비련의 여주인공이야? 씨발...!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랐는데!”
“그러니까 꺼지라고. 너 필요 없으니까.”
꺼지라는 차지연의 말에 몸을 부들부들 떠는 차도연.
그녀가 오열하듯 울며 말했다.
“내가...내가 여기에 어떤.... 어떤 심정으로 왔는데....꺼지라고? 흐어어...내가, 내가 어떻게....내가 어떤 마음으로 여길.....흐으으...”
“못 들어주겠군.”
그때, 차도연과 차지연의 귓속을 파고드는 중저음의 목소리.
이윽고 정성민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걸어왔다.
그는 차지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말했다.
“차지연. 너무 흥분했어. 그런 식으로 말해선 차도연을 설득할 수 없잖아.”
“.....미안.”
정성민은 눈물범벅인 차도연을 힐끗 바라봤다.
차도연은 정성민을 보자마자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정성민! 이 개새끼! 네가 여기 있을 줄 알았지.”
차도연은 다시 주머니에 있는 폰을 힐끗 봤다.
벌써 30분이 지났으니 이제 곧 이곳에 특수팀이 오리라.
“큭큭큭... 차도연. 혹시 비상호출 같은 걸 했나?”
하지만 그때, 자신의 의도를 간파한 것처럼 입을 여는 정성민.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정성민을 보자,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 건물 안의 전파는 다 차단됐어. 네가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
“역시 차지연만으로 널 설득하기는 무리인가. 장소를 옮겨서 얘기하지.”
정성민은 그렇게 말하며 차도연을 지나쳐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차도연은 유유히 이곳을 떠나는 정성민을 멍하니 바라보다, 뒷목에 무언가 푹- 꽂히는 감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자신에게 주사를 찔러넣은 언니가 있었다.
“어, 언......”
마취 주사를 맞은 차도연은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이후 그녀가 눈을 떴을 땐, 정성민의 스튜디오 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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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정신 속에서 깨어난 차도연은 낯선 천장을 보았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언니에게 마취 주사를 맞은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언니...?”
넓은 공간.
새하얀 방안엔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만 덩그러니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이 공백의 공간에 묘한 공포감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벌컥.
그때,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검은 정장 차림의 정성민이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정성민...!”
차도연은 정성민을 노려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멀쩡하던 언니를 미치게 만든 것도, 그 때문에 언니와 심하게 다툰 것도 모두 저 개자식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차도연. 일단 진정하지.”
하지만 놀랍게도 그가 진정하라고 말하자,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가슴 안에서 끓어올랐던 열이 스위치가 꺼지듯 툭- 하고 꺼졌다.
‘.....?’
자신의 몸에 생긴 이변.
그 이변의 이유를 알아채기도 전에 정성민이 자신의 앞에 우뚝 섰다.
차도연은 순식간에 자신의 지척에 선 그를 보며 몸을 움찔 떨었다.
“무, 무슨...!”
“당황스럽나?”
그의 말대로 조절되는 감정.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순식간에 자신 바로 앞에 온 정성민.
차도연은 뒷걸음질을 하며 말했다.
“대체 무슨. 어떻게 한 거야? 뭐지?”
“여긴 현실이 아니야. 너의 의식 세계지.”
“...뭐, 뭐? 의식 세계?”
“그래. 약물의 힘을 빌려 이 공간을 만들었어. 물론 최면도 함께 들어갔지.”
차도연은 여전히 믿기지 않은 눈으로 정성민을 보았다.
그러자 정성민은 큭큭 웃으며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네 의식 세계 맞다니까. 그 증거로 봐. 네 집을 떠올리면 이 공간은 그에 맞게 바뀔거야. 도심의 풍경이 보이는 뷰에 파란 커튼, 오래된 쇼파. 50인치 티비. 언니는 언제나처럼 과자를 먹으며 tv를 보고 있겠지. 안 그래?”
정성민의 말대로 이 새하얀 공백의 공간이 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차도연은 놀란 입을 가린 채 그를 보며 말했다.
“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여러 노력이 들어간 결과지. 이 단계에 오르기 위해 몇 년을 최면/심리술에 미쳐 살았으니까. 물론 약물의 도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정성민은 그렇게 말하며 차도연의 거실 내부를 돌아다녔다.
이윽고 거실 쇼파에 앉은 그는 차도연을 보며 말했다.
“얼마 전에 구원자를 만났던 일 기억하나?”
정성민의 말에 차도연은 그 기묘한 일을 떠올렸다.
분명 얼마 전 구원자는 이하영의 쿠테타에 대해 다 알고 있는 듯이 말하며 자신을 강간했는데, 그걸 알면서도 허망하게 이하영에게 당하지 않았던가.
“그거 설마 당신이...!”
“그래. 내가 꾸민 일이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런 최면/약물로 자신의 기억을 조작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건 그야말로 신의 영역이 아니던가?
“대체 당신은... 기억까지 조작할 수 있다고?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해?”
“조건은 간단해. 상황을 짜 맞추고 암시만 걸려들면 그 뒤는 쉽거든. 다만 내가 너와 나누고 싶은 얘기는, ‘어떻게’ 그것을 해낼 수 있느냐가 아니야. ‘왜’ 내가 그 사실을 네게 알려주냐는 거지.”
“.....”
차도연은 생각했다.
그의 말대로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번에도 자신의 기억을 조작해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
굳이 그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는 자신이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일까.
“...왜지? 왜 내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거야.”
“그야, 너한테는 솔직하고 싶었거든. 말로 해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테니까.”
“... 나를 설득해?”
“그래. 결국 우리는 같은 처지라는 걸 말이야.”
정성민의 말에 차도연은 헛웃음을 흘렸다.
복수를 위해 남의 인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망가뜨리는 그와, 정의와 법을 지키며 복수를 하려는 자신은 그 근본부터 달랐다.
“웃기지마. 당신 같은 흉악범죄자와 내가 같다고? 당신의 방법은 잘못됐어! 그렇게 하는 게 미스터 최, 그 개자식과 다를 게 뭐야?”
차도연의 말에 정성민은 같잖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를 보며 말했다.
“이봐. 법이란 것도 결국 이용해먹기 나름이야. 몇백억 규모의 사기죄를 저질러도 힘이 있으면 집행유예에서 그칠 수 있지만, 그 피해자는 삶을 잃어버리지. 오히려 자신의 전 재산을 갈취한 사기꾼을 폭행하면 피해자가 폭행범으로 실형을 받게 돼.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 이곳 대한민국이야.”
“.....”
차도연은 입을 꾹 다문 채 정성민을 노려봤다.
검사로서 오랜 생활을 해온 그녀인 만큼, 법의 빈틈을 파고들어 이익을 챙겨 먹는 족속들이 널리고 널렸다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사기는 남는 장사다’라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니까.
“차도연. 네가 정말 청렴결백한 검사라고 생각하나? 네가 처넣은 성범죄자 중에 무고한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해?”
정성민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감옥에 처넣었던 성범죄자의 이름 중 2명의 이름을 댔다.
차도연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가슴이 저릿해지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알면서도 처넣은 거지? 너는 죄를 입증해야 하는 검사고, 넌 승진을 계속해야 하니까. 그 사람들이 무고한 피해자라는 것을 알아도, 반드시 승리해야 했을 거야. 안 그래?”
차도연은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설마 정성민이 자신의 숨기고 싶은 과거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네가 무고하게 처넣은 그 사람 때문에, 지금 그 가족들은 어떻게 살고있는 줄 아나? 아들은 성범죄자 교사를 뒀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다가 자살했어. 3개월 전의 일이지. 뭐, 너는 나와 미스터 최를 조지기 위해 바빴을 테니 몰랐겠군.”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가 목숨까지 잃었다고 하니, 머리가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