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엘레나는, 바닥에 쓰러진 이하영을 부축했다.
이하영은 계획이 엇나간 것에 분노한 듯했지만, 이내 침착을 되찾고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문부터 막아! 문을 사수해야 해!”
이곳 대강당에 들어올 수 있는 출입구는 정문과 방송실을 통한 옆문밖에 없었다.
다만 옆문은 백하윤의 침투부대가 이미 봉쇄를 했을 테니, 남은 출입구는 정문 밖에 없었다.
-탓! 탓! 탓! 탓! 탓!
다행히 자신의 외침을 들은 것인지, 몇몇 인원이 빠져나와 정문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체인과 자물쇠, 쇠파이프를 한가득 들고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정문을 걸어 잠그기 위한 용도였다.
-철크덕! 철컥!
이윽고 그들은 정문을 사수하는 경비 병력을 처치한 뒤, 쇠파이프를 정문 손잡이에 끼우고 쇠사슬로 빙빙 감아 입구를 틀어막기 시작했다.
이하영은 가슴을 졸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고, 이내 정문은 완전히 봉쇄되었다.
-투다다다다닥!!
“씨발! 안에서 잠가놨어!”
그리고 정문을 봉쇄하기 무섭게, 문이 쿵쿵 울리며 성난 소리가 반대편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벌써 구원자의 지원병력이 이곳까지 당도한 것이다.
“전기톱 가져와!”
장비를 동원해 정문을 뚫으려는 이들.
이하영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침투부대와 파견단의 전황을 보았다.
맹렬히 싸우고 있긴 하나 구원자는 아직 무사했다.
‘생각보다 늦어지고 있어. 원래라면 저 돼지 새끼부터 죽이고 지휘 체계가 무너진 이곳을 쓸어버려야 했었는데...’
조명이라는 변수 때문에 일이 전부 틀어지고 말았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구원자의 목을 방송으로 보여주어 구원자 측근에 공포감을 심어준 뒤, 구원자의 만행을 알려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이곳의 지배자가 되겠다고 선포했어야 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야! 지금 할 수 있는 걸 생각하자.’
허나 이미 틀어진 일을 아쉬워해야 소용없는 상황.
이하영은 이 와중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이하영은 표정을 굳히며 몸을 일으켰다.
“방송부터 먼저 한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지휘 체계를 상실하지 않은 구원자의 경비 병력은 분전하고 있었고, 백하윤의 침투부대와 엘레나의 파견단은 그들의 방어를 쉽사리 뚫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구원자를 처치하기 전에 정문이 뚫려 자신들의 세력이 전멸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여 이하영은 방송을 통해 ‘승리 선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군 요청’을 하기로 했다.
그것이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너, 너. 따라와.”
이하영은 입구를 지키는 백하윤의 침투부대 둘을 데리고 방송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꺼져 있던 방송 장비를 세팅한 뒤, 꽃 속에 숨겨두었던 USB를 꺼내 컴퓨터에 연결했다.
이윽고 모든 세팅을 마친 이하영은 심호흡을 한번 한 뒤, 마이크를 톡톡 두드리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향락소 제2지부의 관리자 이하영입니다. 여러분들에겐 ‘성녀’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겠네요.”
대대적으로 방송되고 있는 이하영의 음성.
이곳 구원자의 ‘파라다이스’ 곳곳엔 이하영의 음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온갖 편의시설이 모인 부대시설도, 정원도, 대강당도, 회의실도, 향락소도, 노예들의 숙소도. 이하영의 목소리가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지금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여러분들은 많이 혼란스러울 겁니다. 지금쯤 아버지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어야 할 저 이하영이,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호소하고 있으니까요.”
정원에서 화단을 가꾸는 D급과 C급 노예들, 향락소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D급과 C급 노예들,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D급과 C급 노예들, 식당에서 뷔페 음식을 만들고 있는 D급과 C급노예들이 이하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현재 대강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제가 할 말은 결혼식 따위보다 훨씬 중대한 일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미래와, 여러분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요.”
이곳 파라다이스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D급과 C급의 귀가 솔깃했다.
그들은 이하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 가까운 곳에 TV가 있다면, TV를 틀어주십시오. 정원에 있다면 방송용 전광판을 봐주시고, 숙소에 있다면 TV를 틀어주십시오. 조리실에 있다면 홀로 나가 TV를 틀어주십시오. 곧 여러분들이 볼 화면으로, 이곳의 진실을 송출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결국 어떤 말로를 맞게 될지, 진실을 마주하기 바랍니다.”
엄중하고 호소력 짙은 이하영의 목소리에 노예들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TV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의 TV, 혹은 공용으로 보는 TV를 튼 뒤, 그곳에 시선을 모았다.
이윽고 이하영이 USB에 넣은 파일을 재생하자 장기가 적출되는 나체의 남자가 화면에 드러났다.
“지금 장기가 적출되는 이 사람은, 한때 이곳에서 13년간 충실히 일했던 C급 노예 김덕출씨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뼈 빠지게 일해 이곳에 충성을 바친 결과는, 이처럼 흔적도 남지 않은 죽음입니다. 나이가 들거나 몸이 노쇠해져 더 이상 써먹지 못하면, 이렇게 장기가 적출되어 버려지는 것이죠.”
이하영은 그다음 영상으로 넘겼다.
영상은 주요 장기가 빠진 김덕배의 시신이 기계에 갈리는 영상이었다.
그 영상을 본 D급과 C급 노예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졸업’을 시켜준다며, 이곳에서 일한 대가로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금을 준다는 말을 전부 거짓입니다. 나윤경이 모집하여 데려간 졸업생은 전부 장기가 적출되어 명예롭지 못한 죽음을 맞이했고, 여러분도 언젠가 쓸모없어지거나 노쇠해지면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이하영은 영상을 잠시 멈춘 뒤 사진 한 장을 띄웠다.
사진은 김덕출의 웃는 사진이 있는 사진이었다.
“지금 당장 내게 닥친 일이 아니니 상관없다구요? 이분이 누군지 모르겠다구요? 그러면 잘 보세요. 앞으로 지나가는 얼굴 중에, 여러분이 모르는 얼굴이 있는지.”
이하영은 그렇게 말하며 ‘→’ 키를 연타했다.
그러자 ‘졸업생’ 사진이 한 장 한 장 빠르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탁. 탁. 탁. 탁. 탁. 탁. 탁. 탁. 탁.
“전부. 전부 졸업생입니다. 이 분도. 이 분도. 이 분도. 이 분도.”
이제 이하영은 ‘→’키를 꾹 눌렀다.
그러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화면이 넘어갔다.
이하영은 여전히 →키를 누른 채 입을 열었다.
“이러한 졸업생의 사진이 수백 장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여러분의 얼굴이 이들 틈에 끼게 되는 순간이 오겠죠.”
D급과 C급 노예들은 TV를 보며 어깨를 떨었다.
이하영은 그런 그들의 반응을 볼 수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못된 선택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여색을 탐해서, 도박을 해서, 돈을 갚지 못해서.”
이하영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의 경우, 벼랑 끝에 몰려 이곳에 왔을 겁니다. 가정에서 내쫓긴 가출 청소년들. 경제력을 잃고 길바닥에 내앉은 가장들. 가난의 되물림을 벗어나지 못한 빈민촌의 부랑자들.”
이하영의 말을 듣는 D급과 C급의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의 지난 과오와 서러웠던 날들을 떠올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노예의 삶을 강요할 순 없는 겁니다. 끝까지 이용당하다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할 정당성은 없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그저, 한때는 어리석었고, 한때는 약했을 뿐입니다.”
이하영은 숨을 잠시 골랐다.
여기까지 얘기를 했으니, 이제 본론을 꺼낼 때였다.
“저도 여러분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 또한 언젠가 쓰임을 다 하면 버려지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분노하였고, 오늘 이곳에서 혁명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지막 불꽃은 지금 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 이들을 무너뜨리기엔 역부족입니다.”
이하영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분노하십시오. 그동안 착취당했던 삶에 대해, 그동안 기만당했던 것들에 대해, 잃어버렸던 존엄에 대해, 상실해버렸던 자아에 대해. 그 모든 것에 대해 분노하십시오.”
분위기가 과열되었다.
이하영의 방송을 보는 이들의 눈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하영은 자신의 얼굴이 보이게 카메라를 맞춘 뒤, 방송으로 자신의 얼굴을 송출했다.
그리고 더없이 장엄한 표정으로, 더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이 방송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의 분노가 향할 곳은, 대강당입니다. 그곳에 여러분의 삶을 잡아먹어 살찌운 돼지가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하영은 방송을 끝마친 뒤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호소력 짙은 연설엔 언제나 짙은 감정이 필요한 법이고, 그 감정이 흘러넘쳐 잠시 눈물이 흘렀었다.
하지만 이제는 울 때가 아니라 싸울 때다.
“가자. 나도 싸우겠어.”
이하영은 데리고 온 부하 둘을 데리고 다시 스테이지로 뛰어갔다.
***
“허억... 허억... 허억...”
패색이 짙었다.
입구를 막았던 바리게이트는 뚫려버렸고, 그곳에서 구원자의 친위대와 안보팀장의 군대가 쏟아지고 있었다.
백하윤의 침투부대와 엘레나의 파견단은 고군분투하며 그들을 막아섰지만, 결국 압도적인 물량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 그들은 방송실로 모두 대피하여, 작은 문을 두고 힘겨운 사투를 이어오고 있었다.
“온뉘, 좆된 거 같은뒈.”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엘레나가 이하영을 보며 말했다.
이하영은 피투성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머리에 줄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다만 여전히 그녀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기다려. 곧 원군이 올 거야.”
“..... 정말 그 노예둘이 올꽈?”
“...응. 확실해. 그들은 올 거야.”
이하영의 확고한 대답에 엘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어디서 이런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걸까.
“그걸 어떠퀘 알아?”
엘레나의 순수한 물음에 이하영은 정성민을 생각했다.
자신을 생각하고, 백하윤을 생각했다.
그녀는 엘레나를 보며 말했다.
“분노만큼 사람을 극적으로 바꾸는 감정은 없거든.”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때, 밖에서 들리는 거대한 함성 소리.
이하영은 군중의 분노가 뒤섞인 함성을 들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주위에 있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나가자. 결판을 지을 때야.”
***
축복받은 결혼식이 열렸어야 할 대강당엔, 수많은 시체가 있었다.
구원자의 안보팀장의 시체, 각종 관리자들의 시체, 합창단들의 시체, 나윤경을 포함한 3대 성녀들의 시체도 있었다.
“가, 가, 감히... 감히 이것들이... 시, 신의 아들인 내게! 어, 어서 물러나지... 물러나지 못할까!!!”
다만 그 시체의 산 속에서도 아직 목숨을 연명하는 돼지, 구원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성난 군중들을 향해 온갖 말을 쏟아부으며 이 상황을 모면하려 해보았다.
“나, 나를 지키는 자에게! A급 합창단원이 되게 해주겠다! 아, 아니! 특별 등급을 만들어 수많은 여자들을 취하게 해주겠다! 셀 수 없이 많은 돈도 주지! 워, 원하는 게 있으면 말만 하거라!”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각자의 손에 몽둥이나 쇠파이프를 쥔 채 서서히 구원자에게 다가갈 뿐이다.
“내... 내 가장 친한 친구였어. 그런데 그 녀석을... 그 착한 녀석을 기계에 갈아 죽이다니...”
“당신이 우릴 속였어.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면, 졸업만 하면 나도 제대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각자의 사연을 쏟아내며 구원자에게 다가가는 이들.
그때, 피로 물들일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걸어왔다.
군중들은 여인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존경을 표한 뒤 길을 터주었다.
이하영은 바닥에 나자빠진 구원자 앞에 우뚝 섰다.
“이하영...이 은혜도 모르는 씨발년이! 이 좆같은, 개씨발년이!”
이하영을 보자마자 욕설을 퍼붓는 구원자.
다만 이하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구원자가 서둘러 표정을 지우며 말했다.
“아, 아니다. 하영아. 아까는 내가 흥분해서... 다, 다시 시작해보자. 응? 내가 뭘 섭섭하게 했는데? 난 다 줬잖니? 응? 우리 정말 사랑했었잖아? 안 그래? 옛 정을 봐서라도ㅡ.”
“돼지새끼.”
서늘한 이하영의 음성.
딱딱하게 굳는 구원자의 표정.
이하영이 말했다.
“이 순간을 되게 꿈꿨는데, 막상 그 순간이 오니 할 말이 없네. 당신이 이렇게 시시한 인간이었을 줄이야. 내 시간이 아까워.”
“하, 하영아!”
“당신에게 세뇌당해 내 젊음을 허비했던 세월. 따지고 보면 얼마 되진 않아. 이 사람들에 비하면”
이하영을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주위에 있는 군중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구원자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 당신을 벌해야 할 권리는 나보단 이 사람들에게 있는 거겠지. 당신의 처분은 이 사람들에게 맡길게.”
이하영은 그렇게 말한 뒤 군중의 리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끌어안은 뒤, 그의 귀에 속삭였다.
“당신의 분노에 저자를 맡길게요.”
“.....네. 성녀님.”
군중의 리더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하영은 유유히 걸음을 옮겨 대강당의 정문을 빠져나왔다.
대강당엔 구원자의 비명 소리가 끓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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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수고했다. 바로 복귀하도록 해.”
정성민은 안지연에게 그렇게 말을 전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이하영이 쿠테타에 성공하여 구원자를 포획했다는 소식을 들은 정성민의 입꼬리는 귀에 걸린 듯 올라와 있었다.
‘결국 그 돼지 새끼를 쓰러트렸나.’
뒷세계의 거목 중 하나가 이하영의 손에 의해 쓰러졌다.
이로써 자신에게 구원자의 세력이 편입되니, 앞으로의 전쟁에 더욱 승률이 올라간 것이다.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단하군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다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안지연과 장태건을 배치해뒀었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이하영이라도, 언제 어디서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구원자 같이 수백 수천의 세력을 보유한 권력자라면 작은 변수 하나에도 쿠테타가 실패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하고도 성공하다니. 대단하군.’
그런데 그런 변수가 실제로 발생했다.
원래라면 구원자의 목을 찌르며 그를 죽이는 것으로 순식간에 지휘권을 통제해야 하는데, 나이프가 빛에 반사되며 구원자를 바로 죽이지 못했다.
첫 단추부터 완전 엇나가는 최악의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을 선동과 날조로 뒤집었어.’
이하영의 주특기.
그녀는 집단과 집단의 이해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었고, 잡단의 욕망을 파악하여 그것을 이용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그 능력을 이용해 러시아 마피아에 빠르게 줄을 댔고, 결국 세르게이의 든든한 동업자가 되더니 종국엔 그를 마피아의 회장 자리에 앉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능력을 이용하여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D급과 C급을 선동해 구원자의 지휘부를 아예 몰살시켜버렸다.
실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단한 한 수였다.
‘존나 따먹어주지.’
정성민은 오랜만에 성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여자를,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여자를 정복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었다.
때문에 이번 이하영의 활약상을 들으니, 성욕이 치솟아 오를 수밖에 없다.
원래 그녀에 대한 평가는 등급으로 매기자면 A+정도에 불과했으니, 이번 일을 해냄으로써 SS+로 크게 상향했기 때문이다.
“주인님!”
그때, 다짜고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희연.
정성민은 다급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항상 침착을 잃지 않는 이희연이 저런 표정을 짓다니.
“무슨 일이지?”
“주, 주인님께서 모아놓은 ‘연합군’이... 미스터최의 세력에 넘어갔다고 합니다.”
“.....뭐?”
충격적인 소식.
아무리 정성민이라도 해도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뇌물과 돈을 먹이며 키운 ‘연합군’이 넘어갔다는 소식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중국, 일본, 동남아 각 나라에서 모은 용병들로, 미스터 최와 전쟁을 치르기 위해 모아두었던 비장의 한 수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째서 그 세력이 미스터 최에게 넘어간 거지?
“이유는 알고 있겠지.”
“네. 아무래도 배신자가 나온 것 같습니다. 그, 연합군을 관리하는 강승재가 무소식이라고 합니다.”
“.....”
강승재.
정성민이 처음으로 키운 조교사이자 핵심 간부.
자신처럼 바닥에서 빌빌 기던 놈을 주워 알파남으로 각성시킨 놈인 데다 자신의 최초의 제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마음을 주고 있었는데, 그 녀석이 배신했다는 소식에 정성민은 쓰라린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확실하나? 강승재가 배신을 한 것이?”
“.....거의 기정사실인 거 같습니다. 그의 가족에게 연락을 취해보니, 연락을 받질 않습니다. 집을 찾아가니 이미 거주지를 옮겼더군요. 가족까지 전부 내뺀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