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7화 (227/303)

그리고 이제 그 대여정의 마무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영 언니의 쿠테타를 시작으로 뒷세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인 것이다.

“성아야~♥ 아직도 씻고 있니?”

그때, 귓속을 파고드는 음탕한 목소리.

민세라로 타락해버린 이신아의 음성이었다.

“끝났어♥ 왜~?”

다만 정성아는 표정과 목소리 톤을 바꾸며 태연한 척 답을 한다.

감정을 죽이고 연기를 하는 건 그녀의 일상과도 같았다.

“재밌는 거 보여주고 싶어서♥ 우리 도현이가 숙녀가 다 됐지 뭐야? 크흐흐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숙녀’가 되었다는 전 남자친구.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도현 오빠가 이미 망가졌다는 것이다.

자신을 그 비참한 모습을 보며 또 깔깔거려야 하는 것이고.

‘아...아아.... 구해줘. 구해줘 오빠...’

내가 태연하게 웃을 수 있을까.

망가진 전 남자친구를 보며, 그를 비웃고 조롱하며 쾌락을 탐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언제까지 이 미친 짓을...

“그러니까 빨리 나와♥ 근질거려서 못 참겠네♥”

다만 자신을 재촉하는 이신아의 명령을 거스를 순 없었다.

이제 이신아는 순위를 매기는 게 무의미한, 완벽한 이 조직의 안주인이었으니까.

“응♥ 기대된다. 크흐흐흐...♥”

하여 정성아는 이번에도 연기를 충실히 해낸다.

표정은 딱딱하게 굳고, 눈을 새카맣게 죽은 눈이나, 목소리 만큼은 교활하고 음탕한 목소리를 낸다.

“그럼 나는 먼저 놀고 있을 게♥”

용건을 마치고 곧바로 돌아가는 이신아.

정성아는 샤워기를 끄고 밖으로 나와 물기를 닦아냈다.

그리고 옷에 따로 숨겨둔 약물을 꺼내, 곧바로 복용했다.

흥분과 쾌락이 올라왔다.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었다.

약물의 힘을 빌려 웃는 연습을 한다.

“히히...히...히히히...”

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으나, 웃는 연습을 하는 정성아.

사랑했던 사람의 파멸을 보며 비웃으러 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

정성아는 그런 말을 자꾸만 되뇌었다.

나는 크게 벌을 받아야 한다고.

오빠에게 더 가혹한 벌을 받았어야 했다고.

-또각...또각...또각...

이후, 정성아는 중요 부위가 노출된 음란한 복장에 하이힐을 신은 채 ‘무대’로 나아갔다. 으리으리한 2인용 쇼파에 발걸음을 옮겨, 이신아 바로 옆에 착석을 했다.

이신아는 정성아의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야릇하게 미소를 지으며 전방의 어떤 곳을 손으로 가리킨다.

그곳엔 타락해버린 전 남자친구, 남도현이 있었다.

“흣...흐웃....크흫...♥”

몰라보게 달라진 남도현의 모습.

여성호르몬을 꾸준히 맞아 몸의 골격이 완전히 바뀐 모습.

좁아진 어깨에 아담한 몸통, 봉긋 솟은 가슴.

이제는 누가 봐도 여자라 할 만큼 완벽하게 달라진 그였다.

다만 정성아는 그 모습을 보며 천박한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반응을 기대하는 이신아의 눈빛 때문이었다.

“푸흐흐... 아직 거기는 제거하지 못 했나봐? 크흐흐...♥ 숙녀라며~♥”

하여 정성아는 위태로운 연기를 이어갔다.

이신아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래서 오늘 제거하려고♥ 성아 네가 직접 없애주면 짜릿하지 않겠니?”

청천벽력 같은 이신아의 말.

그의 마지막 남성성을 자신이 제거하라는 말.

정성아는 최대한 태연하게 거절의사를 밝혔다.

“으윽... 징그러워. 막 피 나고 그럴 거 아냐? 게다가 한심하게 저거 달고 다니는 게, 저 한심한 녀석에겐 더 어울리지 않겠어? 저 모기좆만 한 것을 달고 다녀야, 저 녀석의 정체성이 돋보이는 거지♥”

다행히 약물의 힘을 빌려 표정 한번 변하지 않고 이따위 말을 모두 내뱉을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신아도 설득된 듯했고.

“으응~♥ 그렇네. 우리 도현이의 귀여운 좆♥ 뭔가 떼 내기 아쉽기도 하고♥”

정성아는 와인을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동시에 이신아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눈치를 봤다.

그녀는 여전히 남도현을 어떻게 괴롭힐지 고민하는 듯, 남도현을 빤히 보고 있었다.

“아!”

그때, 뭔가 재밌는 게 생각난 듯, 교활한 미소를 짓는 이신아.

도대체 무엇을 떠올렸는지, 이신아는 한참이나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 광기 어린 모습에 이제 ‘엄마’는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실감하는 정성아였다.

이윽고 이신아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 도현이가 한때는 남사위였잖아? 그런데 그런 남사위에게, 장인어른 될 사람을 소개해주지 못했잖니?”

남도현을 정현재에게 소개해준다.

그 말에 정성아의 마음은 완전히 죽어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아, 고성을 지르며 이신아에게 덤벼들고 싶었다.

“재, 재밌...겠네♥”

“후후...♥ 분명 재밌을 거야. 둘의 하모니가 아름답지 않겠니? 당장 하자♥”

이신아는 중얼거린 뒤 부하들을 불러 남도현을 이곳에 오도록 시켰다.

이윽고 부하들은 남도현의 주인에게 이신아의 말을 전했고,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남도현을 내주었다.

“읏...♥ 주인님...”

“크하하하하. 걱정말거라. 여느 때처럼 네 보지를 봉사해주고 오면 돼.”

“...네♥”

일부러인지는 모르겠으나, 목소리도 여자처럼 내는 남도현이었다.

그렇게 남도현은 이신아와 정성아가 있는 바로 앞까지 왔다.

이제는 완전히 여자로 변해버린 그는, 이신아와 정성아를 보자마자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눈물까지 와락 쏟아냈다.

그가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렇게 만나 봬서... 너무, 너무 반갑습니다. 저의 영원한 여주인님...♥”

먼저 이신아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는 남도현.

이신아는 그런 남도현에게 다가가 그의 유방을 움켜쥐었다.

그리곤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한 다음, 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상처 많이 받았지? 날 많이 원망했을 거야.”

“흐윽...아, 아녜요... 여주인님과 제 새로운 주인님 덕분에... 이렇게 저의 완전한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는 걸요♥”

“후후. 그 모습이 마음에 드니?”

“물론이죠♥ 전 애초에, 주인님의 여자가 되도록 태어났던 거였어요. 그분의 교육으로 마침내 깨닫게 되었죠♥”

광기 어린 동태눈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남도현.

그 말을 내뱉는 그의 작은 자지는 불끈 솟아올라 있었다.

이신아가 그의 자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축하해♥ 네 정체성을 찾았다니...♥ 그럼 이제 완전히 암컷이 되었으니, 오랜만에 나한테 안겨볼래? 물론 성아에게도♥”

자신을 언급하자 흠칫 어깨를 떠는 성아.

남도현의 눈이 이신아 옆에 있는 정성아에게 향했다.

그가 말했다.

“성아님은... 기쁘지 않은 건가요? 이런 제 모습이 맘에 들지 않은 건가요? 왜, 왜 그런 슬픈 눈을 하고 있죠? 네? 저, 저는 이제 이렇게 완벽해졌는데... 정말 행복한데...왜...”

동공에 잠시 머물렀던 정성아의 슬픔.

그리고 그것을 보자마자,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남도현.

이때, 정성아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에겐 그를 조금도 동정할 자격이 없는 것임을.

오히려 이런 값싼 동정이 그를 더욱 괴롭게 만드는 것임을.

“씨발, 뭔 좆같은 소리야.”

그러니, 연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슬픔을 쑤셔 넣고 남도현의 모습을 칭찬해주어야 한다.

‘일단은’ 그렇게 하는 것이 남도현도, 자신도 살 길이다.

“정신이 처 나갔나. 뭐? 슬픈 눈으로 봐?”

하여 정성아는 슬픔을 싹 걷어내어 싸늘한 표정으로 남도현을 보았다.

이에 남도현은 잔뜩 움츠러들어,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

“어머. 성아야♥ 왜 그렇게 화를 내? 우리 아름다워진 도현이를 보고, 질투한 거니?”

그때,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농담을 건넨 이신아.

정성아가 답했다.

“뭐? 질투?.... 풉.”

비웃음이 가득한 정성아의 표정.

자신의 발기한 자지를 보며 잔뜩 움츠러드는 남도현.

이윽고 두 모녀는 미친 듯이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정성아가 배를 붙잡으며 말했다.

“푸하하하하하!! 지, 질투...! 마, 맞아...푸히히히... 어, 어쩜 나보다...나보다 더 예뻐졌대! 크히히히히!”

인지부조화.

사람은 인지부조화를 느꼈을 때,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너무나 큰 절망 또한 인지부조화를 일으켜, 역설적인 웃음을 터트리게 하곤 한다.

가령 예를 들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났으나, 그 꼴을 비웃어야 하는 정성아처럼 말이다.

“크히히히히... 푸하하하...”

눈물이 고일 만큼 포복절도를 하는 정성아.

이 웃음은 마냥 연기를 하기 위해 터트리는 웃음이 아니었다.

이 웃음은 어리석었던 자신에게 보내는 조소였다.

사랑했던 사람을 기만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보내는 비웃음이었다.

또한, 동경했던 백하윤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자신에 대한 조롱이었다.

그렇게나 길을 엇나갔던 백하윤을 증오했는데, 그렇게나 타락한 백하윤을 보며 실망을 했던 자신인데, 언니가 했던 짓을 자신 또한 반복하고 있었다.

“그럼 성아야♥ 사위와 장인의 교미 섹스♥ 같이 감상할까?”

이곳은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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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 쿠테타를 앞둔 지금, 정성민과 이희연은 차도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녀를 관찰한 결과, 별다른 이변은 없어 보였다.

그녀는 예상대로 구원자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데 집중하는 듯했다.

또한 자신의 언니를 되찾는 데 여념이 없는 그녀였기에, 다른 곳에 신경 쓸 틈은 없었다. 차도연의 언니 차지연은 차도연의 가장 큰 애착이기에 모든 일에 앞선 1순위였다.

“차지연을 잘만 이용하면 차도연도 쉽게 타락시킬 수 있을 거 같군. 아직 창고에 방치하고 있나?”

“네. 주인님. 저는 주인님의 아내인 만큼, 일처리도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데리고 와. 전쟁이 끝나면 정부군이 골칫거리다. 전쟁 중에도 전쟁 양상을 바꾸려 수없이 개입하려 할 테고. 차도연을 내 쪽으로 끌어들여야 해.”

“네 주인님. 주인님의 아내인 만큼, 최선을 다해 임하겠습니다.”

“.....”

저번에 ‘결혼’을 약속한 이후로, 말끝마다 ‘주인님의 아내인 만큼’을 붙이는 이희연.

그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자신의 왼손 약지를 들어 올리며 말하는 게 왠지 모르게 이상했다.

마치 빠큐를 하는 듯한...분명 중지가 아니라 약지를 드는 것이긴 한데... 아무튼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불편했다.

“그럼, 주인님의 아내가 될 저 이희연은 이만 물러나, 주인님의 아내가 될 수 없는 미천한 차지연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이희연은 그 말을 남기고 도도한 걸음걸이로 또각또각 걸어갔다.

***

차지연.

요 며칠 약물에 중독되어 있던 그녀는, 해독제를 맞고 약물의 쾌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만 전신을 달구었던 그 미칠듯한 쾌락에서 해방되고 나니, 미칠듯한 공허함과 적막함이 찾아왔다.

‘아...’

문득, 미스터 최에게 강간을 당했던 엣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그런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는 데도, 흥분을 느꼈던 자신에 대한 분노.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그 쾌락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자신.

그리고 그런 분노와 기다림이 기이한 형태로 뒤섞여, 남자에 대한 증오로 점철되었던 자신의 삶.

그러한 삶의 세월이 벌써 22년이었다.

자신은 22년 동안 남자를 멀리하며, 스스로를 가두는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

“도, 도연아... 도연아...”

차지연이 본인의 불행을 잊는 방법은 하나였다.

복수심에 불타는 도연이를 키우며, 그녀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자신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쑤셔 박았던 남자들을 응징하는 여동생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차지연의 유일한 구원이자 행복이었다.

실형을 선고받고 절규를 하는 성범죄자의 모습은 언제 봐도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주곤 했었다.

그리고 차도연을 그런 사이다 결말을 수십 차례나 선사해줬던 유능한 검사이고 말이다.

“흐으윽... 도연아...”

때문에 차지연에겐 차도연이 필요했고, 차도연에겐 차지연이 필요했다.

복수귀로 살아온 차도연과, 공허한 삶을 살아왔던 차지연은 서로에게 있어 꼭 필요한 존재였다.

-또각.

그때, 차지연의 고막을 자극하는 하이힐 소리.

요근래 이곳을 방문했던 것들은 전부 짐승 같은 남자뿐이었다.

때문에 오랜만에 듣는 이 하이힐 소리에 차지연은 환하게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동생이 나를 찾은 걸까?

“아.....”

그러나, 모르는 얼굴이었다.

아름다운 얼굴이라 시선을 확 사로잡긴 하나, 차지연의 취향엔 동생이 더 이뻤다.

어쨌든 이런 허름한 폐공장의 밀실을 찾아온 여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차지연은 도도한 공작새처럼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여자를 향해 정체를 물었다.

“... 누구시죠? 혹시 정부 소속....인가요?”

희망을 담아 물어본 질문.

허나 공작새 같은 여자는 비릿하게 조소를 흘릴 뿐이다.

그녀는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입술을 씨룩이며, 자신의 부하가 세팅한 의자에 착석했다.

그리고 비서처럼 보이는 부하에게 도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지시한 것, 다 외웠겠지? 내가 누군지 설명해줘라.”

이희연의 지시에 고개를 깍듯하게 숙이는 그녀의 비서.

이윽고 비서는 목을 큼큼 가다듬고, 지대하고 장엄한 목소리로 이희연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뒷세계의 주인을 각성시킨 자, 그의 가장 가까운 비서가 된 자, 가장 친한 친우에서 여자로 인정받은 자, 최초로 반지를 하사받은 자. 그리고 성민교의 창시자이자 뒷세계의 제왕, 정성민의 청혼을 승낙하여 그의 아내로 군림하게 될 이희연. 이 이름이 당신 앞에 있는 분의 성함이십니다.“

비서가 설명을 끝내자 이희연은 왼손의 약지만 들어 올려 반지를 보였다.

다만 장엄하게 소개를 끝낸 뒤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펴는 이희연과 비서였지만, 차지연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미친년들인가?’

그녀가 보기에, 이희연은 단순히 미친년에 불과한 것이었다.

***

”그럼 주인님의 아내인 저 이희연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어쨌든 이희연은 차지연을 정성민 앞에 데려다 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정성민은 골룸처럼 하루종일 약혼반지를 만지작거리는 이희연의 모습에서, ‘마이 프레셔스’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후우. 차지연이라고 했나.“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차도연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모르는 지금, 차지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부하들의 무례는 사과하겠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 방치할 생각은 없었는데, 실례를 저질러버렸군.“

하여 정성민은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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