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3화 (223/303)

하긴, 20살의 그녀가 자신이나 백하윤 같은 수완을 발휘하기에는 무리였다.

평생 왕의 딸로 살아왔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둔감한 면도 있었고.

“하지만 엘레나야. 결국 중요한 건 네가 그 세력을 장악하는 게 아니라, 오래도록 유지하는 거야. 그 기반을 쭈욱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해.”

하여 이하영은 기본을 하라고 조언해주었다.

마피아의 가장 밑바닥부터 위까지, 조직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게 불만인지 잘 이해하라고 조언해줬다.

[고마워 언니! 나중에 같이 보지 마사지 받으러 가자!]

드디어 답을 찾은 것 같은 엘레나.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화상 통화를 종료했다.

필요한 정보만 쏙 빼가고 사라져버리는, 얌체같은 년이다.

“후후...”

하지만 그런 그녀가 왠지 귀여웠다.

처음에는 원수나 다름없는 둘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정이 들어버린 건지 모르겠다.

새로운 도원결의를 하며 자매의 연을 맺어서 그런 것일까.

“후-우...”

하지만 감상에 젖을 틈은 없다.

곧 있으면 구원자와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 상황.

쿠테타에 실패하면 끝장이다.

만반의 준비를 갖춰 그 돼지 새끼를 조져야 한다.

“절대, 절대 실패하지 않아...”

계획은 완벽했다.

엘레나는 파견단을 가장한 지원군을 잘 훈련시키고 있었고, 백하윤도 상을 치르는 와중에도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하영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플랜B, 플랜C까지 준비해놓는 철저함을 보였다. 안전장치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었다.

-또각... 또각... 또각...

하여 이하영은 자신이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제2향락소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추리고 추려내어 비밀리에 키운 자신의 병력을 보며, 슬슬 작업에 착수할 것을 명령했다.

***

한편, 정성민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 앞에 있는 안지연을 보고 있었다.

벌써 여러 핑계로 그녀를 4번이나 물린 그였지만, 이번엔 쉽지 않아 보였다.

혈관이 울룩불룩 돋아난 그녀의 표정을 보니 아주 작정을 하고 온 듯싶었다.

“... 오늘은 할 기분이 아니다.”

하지만 일단 시도는 해봤다.

이전에도 써먹은 똑같은 래파토리지만, 시기가 적절했다.

마침 박종필이 죽어 백하윤이 슬퍼하고 있지 않은가.

“백하윤이 아끼던 그놈이 죽었어.... 마음이 아프겠지. 나도 이거 참, 기분이 나질 않는군...”

음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는 정성민.

그때, 안지연이 돌연 자신이 입고 있는 티를 부왁 찢어버렸다.

그리고 가지고 온 통나무를 우득- 부순 다음, 정성민을 보며 말했다.

“그럴수록 운동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주인님!! 혹독한 육체의 단련만이 잡생각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유격 훈련을 조교를 보는 듯한 모습.

그녀는 돌연 사과를 집은 다음 손에 힘을 줘 찌푸러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과가 뭉개지며 나온 즙을 한 컵에 담은 다음, 정성민에게 건네며 말했다.

“주인님답지 않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됩니다. 이 사과즙처럼 눈앞에 있는 적은 모조리 박살 낸 다음, 그 부산물을 취하시는 겁니다. 마치 내장을 뜯어먹는 사자처럼.”

도대체 자신의 스승인 장태건과 합숙훈련을 하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성민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안지연이 주는 사과즙을 들이켰다.

그리고 헐크가 되어버린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어쩔 수 없지. 내기에서 졌으니 한번은 해야 해. 차라리 지금 빨리하고 끝내자.’

도저히 성욕이 올라오지 않는 그녀의 몸이지만, 더 이상 미룰 순 없었다.

그리고 안지연이 저렇게 몸을 키운 이유도 다 자신을 도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진심을 무시할 순 없었다.

“와라! 너와 몸을 섞겠다!”

-파장창!

나무를 박살 내며 미소 짓는 안지연.

그녀는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정성민에게 쿵- 쿵- 다가갔다.

이윽고 그녀는 정성민에게 돌진하여 어깨로 그를 밀쳤다.

그녀의 일격을 맞은 정성민이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크윽!”

하지만 당황할 틈은 없었다.

안지연의 거구가 정성민에게 마운트를 한 것이다.

정성민은 두 손을 뻗어 그녀를 저지하려 했으나, 그녀의 두 손이 정성민의 손을 막으며 힘겨루기 형태가 되었다.

두 남녀는 서로의 팔뚝을 터질 듯이 부풀리며 서로를 밀어내려 애를 썼다.

“으으으으으으으!!!”

“크으으으으으윽!!”

하지만 안지연의 포지션이 유리했다.

그녀는 정성미을 아래에서 짓누르는 포지션.

정성민의 팔에 힘이 점점 빠지며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신약 부서의 각종 약물을 복용한 그녀. 속칭 ‘로이더’가 된 그녀를 정성민은 감당할 수 없었다.

-쪼옥♥

그렇게 힘에서 밀린 정성민은 그녀에게 입술을 허락하고 말았다.

이윽고 안지연의 폭력적인 애정 공세가 시작되었다.

“쪼옥... 쪼옥... 쮸우웁... 후루룹...♥”

“크아악!”

자신의 품에 안겨 사랑스럽게 울던 그녀는 어디 갔단 말인가.

안지연에게 강간당하다시피 범해지던 정성민의 울분이 폭발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장태건 개새끼를 외치며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다.

“흣! 흐우웃!”

“큿! 흐윽!”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며 그라운드 기술을 시전하는 그들.

안지연은 그 과정에서 정성민의 목을 조르거나 관절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기술적인 부분에선 정성민이 한 수 위였고, 안지연의 모든 목조르기와 관절기는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그 결과 안지연은 풀마운트 자세를 내주고 말았다.

“... 역시 주인님. 하지만 절 쉽게 범할 순 없을 겁니다!!”

안지연은 다시 자세를 뒤집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노련한 정성민은 좀처럼 틈을 보이지 않았고, 무방비 상태가 된 안지연에게 파운딩을 시도하였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정성민의 주먹을 최대한 방어하는 안지연.

하지만 정성민은 그녀의 강철같은 팔을 뚫지 못하여 얼굴을 칠 수 없었고, 안지연은 정성민이 파운딩 하는 틈을 타 이스케이프를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퍽!

마침내 정성민의 파운딩의 안지연의 왼쪽 턱에 꽂히며, 그녀의 뇌가 진동했다.

순식간에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아...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는 정성민.

이윽고 그는 이를 으득 씹으며 안지연의 옷을 전부 뜯어냈다.

그리고 자신의 자지를 삽입한 다음, 그녀를 마구 범하기 시작했다.

“...!!”

그때, 마침내 눈을 뜬 안지연.

그녀는 의식을 차리자마자 눈을 까뒤집으며 침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패배의 복종 선언을 외쳤다.

“여...역시 주인님! 순수 내츄럴이신데...온갖 약을 복용한 저를 때려눕히고 범하시다니이이잇!!! 주, 주인님은 인간의 정점입니다...♥”

다가올 전쟁에서 주인님을 지키기 위해 여성성을 내다 버리고 몸을 단련한 자신.

심지어는 각종 약물과 주사, 도핑까지 한 그녀였다.

그럼에도 주인님은 자신을 이겼다.

“흐옥! 후옷! 으옥! 호옥! 흐오옥! 주, 쥬인님...♥”

진심으로 주인님을 이길 생각으로 단련한 괴물같은 몸.

하지만 진정한 수컷 앞에서 자신은 암컷일 뿐이었다.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결국은 수컷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암컷인 것이다.

-뷰룻! 뷰룻! 뷰룻! 뷰룻! 뷰룻! 뷰룻! 뷰룻! 뷰룻!

이윽고 자신의 자궁으로 쏟아지는 그의 성액.

안지연은 오랜만에 맛보는 이 행복한 감각에 미소를 지었다.

역시... 자신은 주인님에게 안길 때가, 그의 여자로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주인님이 다가올 대전쟁에 승리할 때까지... 그때까지만 참아야 한다. 주인님의 완벽한 승리가 우선이야...’

허나 안지연은 이 행복한 감각을 끊기로 한다.

그를 위한 최강의 전사로 다시 태어나길 다짐한다.

그것이 아무 세력도, 능력도 없는 자신이 주인님을 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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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최와 이신아의 ‘재세뇌’를 받은 그 날.

정성아는 오래도록 약을 사용한 후유증을 느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의 숙소 침대에서 오래도록 신음을 흘리며, 자신의 몸을 달래야 했다.

“흐으...흐으으...흐읏...”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약을 써서 정말 다행이라고.

만약 이희연이 줬던 약을 쓰지 않았다면 당장 정신이 붕괴되어 무너졌을 것이다.

당장 후유증만 해도 이 정도인데, 그때 아무런 대비없이 맨몸으로 그런 세뇌를 받았다간 미쳐버릴 게 분명했다.

‘어쨌든 큰 위기는 넘겼어...’

그래도 이번 일로 인해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이 자신을 의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음껏 이중첩자 노릇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하지만 연기는 철저히 해야 한다.

정현재, 정성민, 백하윤을 완전히 버린 듯이 행동해야 의심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마저 정현재를 챙기지 않으면, 그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를 도와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 지금은 사려야 돼. 부하들에게... 시키는 수밖에.’

허나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 지금은 사리기로 했다.

이제 막 그들의 신임을 얻은 참이다.

경거망동했다간 또다시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다.

‘우선 제대로 된 내 세력부터 확보하랬지. 내 사람을 만들어야 해.’

백하윤이 자신에게 해준 조언.

장장 15년을 넘게 뒷세계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그녀가 쌓아온 노하우들.

정성아는 그 소중한 조언들을 생각하며, 자신의 비서를 불렀다.

이제 미스터 최의 뒷통수를 치기 위한 세력을 모을 때다.

***

“동세가 어떤 거 같나.”

지긋한 중년의 남성이 고급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그렇게 물었다.

그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은 흑발의 미녀는, 자신이 가지고 온 보고서를 테이블에 올리며 입을 열었다.

“엎치락뒤치락입니다. 힘의 균형이 간신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흠.”

미스터 최, 구원자. 그리고 신흥 강자로 떠오른 정성민.

눈썹이 짙은 강인한 인상의 검찰 총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들의 면면을 보았다.

사람 보는 눈이 좋은 그는 한눈에 봐도 그들이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흐음... 그런데 왜 팽팽하다고 생각한 거지? 네 말대로라면 미스터 최의 백하윤이 정성민에게 넘어간 건데.”

총장의 지적에 미모의 검사. 즉, 차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것은 사실이긴 하나, 백하윤은 현재 자신의 지분을 ‘정성아’에게 모두 빼앗기고 고향으로 내려간 상황입니다. 사실상 힘을 잃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군. 구원자는 별다른 변화가 없나?”

“별다른 변화는 없지만... 아마 러시아 마피아와 동맹을 맺을 것으로 보입니다. 큰 세력을 등에 업게 되는 거죠.”

“마피아가? 왜 갑자기 그 녀석들이?”

“향락소 제2지부장. 이하영이 러시아 쪽 인사와 안면이 있습니다. 특히 현재 마피아의 회장이 된 ‘세르게이’에게 오랫동안 로비를 해왔기에 제법 친분이 두터울 겁니다.”

향락소 제2지부장 이하영.

검찰 총장은 그녀의 사진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리곤 입에 꼬나문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대단하군. 상당히 젊어 보이는데. 자네가 보기에 이번 대전쟁에서 누가 승리해야 한다고 보나? 여전히 정성민을 승자로 세울 건가?”

총장의 질문에 차도연은 세 인물을 뚫어져라 보았다.

미스터 최, 정성민, 구원자. 이 셋 중 누구를 지원해야 뒷세계를 공멸시킬 수 있을까.

“.....작전을,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구원자가 승리하는 쪽으로.”

차도연의 말에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검찰 총장.

그가 말했다.

“왜지?”

“..... 정성민은 이제 슈퍼루키 수준이 아닙니다. 이미 두 거목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커버렸죠. 게다가 지금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기세로요. 미스터 최의 오랜 우방이었던 백하윤까지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죠.”

총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뒷세계의 거목들이 평생에 걸쳐 일궈온 일을, 정성민은 고작 몇 년 사이에 해낸 것이다. 그의 집념과 행동력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백하윤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들였다는 건, 다른 세뇌된 여자들도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즉, 이하영과 정성아도 정성민의 것이 됐을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차도연의 말에 충격받은 듯한 총장이 얼굴.

그는 ‘그건 너무 억측이 아닌가?’라고 이 소름 돋는 가정을 일축하려 했지만, 차도연의 표정은 냉정했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 어쩌면 저희 ‘와해 작전’은, 정성민을 얼마나 견제하느냐에 따라 성공여부가 갈릴 수도 있습니다. 만약 아까와 같은 가정이 맞다면, 정성아는 미스터 최 세력의 첩자로 숨어들어 정보를 제공해줄 것이고, 이하영은 구원자의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총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한평생 뒷세계에 대한 증오를 품고 살아왔던 그녀이니만큼, 그녀의 조언은 고려해 볼 만했다.

확실히 그녀가 말한 최악의 경우는 대비해야만 했다.

억측이라고 무시하기엔 그 내용이 무시무시했다.

“요원들을 시켜서 집중감시하라고 하도록 하지.”

“네. 그리고 정성민 세력에... 우리 쪽 요원을 더 심을 수 있을까요? 전쟁이 터지면 가장 먼저 무력화시켜야 합니다.”

“...그래. 애써 보지. 자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번 ‘와해 작전’에 모든 걸 걸었어. 실패하면 둘 다 끝장이야.”

“대신, 성공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겠죠. 총장님에게도, 저도.”

새로운 길.

차도연은 복수를 이루고 오랜 숙원을 이룰 수 있는 길.

한편으론 이름을 널리 알리고 출세의 길을 열 수 있는 길.

다만 검찰 총장에겐 더 큰 야망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길이었다.

대한민국을 좀먹고 있는 뒷세계의 세력들.

그들을 모두 일망타진한다면, 그의 이름은 대한민국에 널리 퍼질 것이다.

정계에 발을 들일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크큭... 그래. 자네만 믿지. 자네에게 모든 걸 걸어보기로 하겠네.”

오랫동안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온 차도연 검사.

그녀가 두 팔 걷고 나선 사건에 지는 일 따윈 없었다.

어떤 범죄자건 모두 깜방에 처넣는 그녀였다.

검찰 총장은 이번 또한 마찬가지가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으며,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

“.....”

3시간 뒤, 차도연의 특수팀 사무실.

그녀는 책상에 얼굴을 파묻은 채 자신의 떡진 머리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일에 몰두하며 며칠째 집에 돌아가지 않은 그녀는, 이렇게 떡진 머리를 하고 있는 것이 거의 기본값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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