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5화 (215/303)

“네, 넷!!”

일 순간 표정이 굳어졌지만, 이내 활짝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정성아.

그런 그녀를 벌레 보는 듯한 눈으로 정성민이 말했다.

“네년의 본분을 잊은 모양이군. 어떻게 쓰레기통이 쓰레기를 담지 못하고 흘리는 거지?”

진심으로 분노한 듯한 정성민의 음성.

정성아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몸을 덜덜 떨며 대답했다.

“죄, 죄송...죄송합니다! 미, 미천한 제가 감히... 이런 실례를...”

“네년이 흘린 쓰레기니 네년이 처리해라. 풀어줘.”

정성민의 명령에 정성아의 포박을 풀어주는 부하들.

정성아는 풀려나자마자 개처럼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자신이 싼 오줌을 후루룹 빨기 시작했다.

그때, 그런 정성아를 향해 정성민이 쿵- 쿵-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후룹....흐..흐으...히히히!”

그리고 그런 정성민을 보며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을 짓다가, 화들짝 웃는 정성아.

하지만 정성민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발로 짓밟아 바닥에 꾸욱 눌렀다.

정성민은 짓밟은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녀의 머리카락에 오줌을 묻혔다.

“좋은 걸레를 놔두고 왜 혓바닥을 쓰고 있나. 기장도 길어서 흡수율도 좋은데.”

입꼬리를 비틀며 정성아의 머리카락에 오줌을 잔뜩 적시는 정성민.

이제 정성아는 초점이 풀린 눈으로 허망하게 정성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서서히 삶에 대한 의지가 사라지며, 이제는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내가... 내가 왜 살아야 하지. 왜 이렇게까지...’

생각해보면 그러했다.

모성애를 잃은 엄마.

남성성을 거세당한 아빠.

악귀가 되어버린 오빠.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뭐... 주인님에 대한 사랑?

그분의 은총?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내가 아끼던 사람들이 이렇게 다 망가져 버렸는데.

나 혼자 그분의 품에 안겨 행복을 영위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게다가 이제는 주인님의 사랑을 왜 갈구했는지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내가 대체 왜... 왜 그분의 사랑을 바라게 되었지.

‘아.’

그때, 정성아의 뇌리를 스치는 한 장면.

압도적인 쾌락에 굴복하여 주인님에게 처음 도게자를 하는 그 장면.

결국 그때도 지금도 공포에 굴복한 것뿐이었다.

주인님에게는 나를 미치게 만드는 압도적인 쾌락의 공포 때문에, 지금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압도적인 죽음의 공포 때문에.

그러니 주인님에 대한 사랑은 애초에 뒤틀려 있던 것이었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형태의 굴복에 불과했다.

-스윽... 스윽.... 스윽...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오줌을 닦는 데 쓰이는 자신.

반사적으로 미소를 짓고 있던 정성아의 입가가, 서서히 무표정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정성아는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정성민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제 이만큼 가지고 놀았으면 그냥 자신을 죽여달라는 무언의 의사표시였다.

‘제발.. 제발 주인님...’

한편,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이희연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았냐고.

더 이상 자신을 학대하지 말라고.

물론 전부 주인님에게 하는 말이었다.

정성아를 저토록 거칠게 다루는 주인님의 마음이, 얼마나 타들어 갈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큭큭큭큭큭....”

하지만 정성민은 진짜로 즐기고 있었다.

그는 그저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연출, 그리고 심리 조작을 능숙하게 다룰 뿐이었다.

모든 것은 그의 계획대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고, 정성아의 반응 또한 예상 범위 내였다.

이쯤이면 정신이 망가져 모든 것을 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흠.”

힐끗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여기까지 오는 데 3시간 소요되었다.

이제 나머지 시간 동안 사랑을 주며 쾌락을 주입하면 정성아 재세뇌를 완벽히 할 수 있다.

‘조금 더 망가트리면 세뇌가 더 쉬울 테지만... 더 이상 했다간 망가지겠군.’

정신을 망가뜨리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한다.

백하윤의 경우, 미스터 최에게 15년이나 넘게 조교를 당해왔지만 워낙 정신상태가 피폐했던지라 조교가 수월한 면이 있었다.

다만 백하윤은 오랜 기간 뒷세계의 여왕으로 암약하며 쌓아온 멘탈과 강인함이 있는 반면, 정성아는 아직 풋내기 수준에 불과했다.

여기서 더 망가트렸다간 회복 불가능한 정현재의 수준에 다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애초에 정성아는 천성이 너무 착한 아이였다.

미스터 최에게 조교를 당하고도 주변을 챙기고 울음을 흘릴 만큼.

“쯧. 고약한 냄새가 나는군. 씻겨라.”

그러니 ‘오늘은’ 이쯤 하면 됐다.

이다음부터는 감당할 정도의 훈육과 고통을 주고, 그 뒤에는 쾌락과 사랑을 주어 서서히 조교해 나가면 된다.

다만 지금은 감당 불가능할 정도의 고통을 줬으니, 그에 상응하는 사랑을 줘야 수지타산에 맞았다.

극심한 마음의 고통 뒤에 따르는 달콤한 사랑엔 강렬한 쾌락이 수반되기 마련이니까.

하여 정성민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정성아를 내려다보며. 부하들에게 걸레를 빨아오라 명령을 내렸다.

정성아는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들에게 들려 샤워실로 끌려갔다.

***

-솨아아아아....

샤워기의 물줄기를 맞고 있는 정성아.

그녀는 아무런 말도, 아무런 표정도 없이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그녀이기에, 어떤 일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하윤 언니가... 하윤 언니가 이런 심정이었구나.’

다만, 완전히 망가져서 자살 시도를 하려 했던 하윤 언니의 심정에 공감할 뿐이었다.

박종필과 아버지를 잃고, 결국 주인님에게까지 버림받아 폐인이 된 그녀의 심정을...이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다, 다 소용없어. 아무 소용도 없는 거였어...’

걸그룹 ‘아인’의 메인 보컬이자 비주얼 센터.

떠오르는 대세 스타이자 화제의 아이콘인 아리아.

4세대 K-POP 아이돌의 대표주자이자, 떠오르는 아시아의 스타이자, 세계적으로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는 자신.

일명 ‘아리아’라고 부르는 또 하나의 자신.

그건 모두 거짓된 인생이었다.

가족을 잃고 사랑을 잃어 마음을 잃은 그녀에겐, 다 쓸데없는 수식어일 뿐이었다.

그런 명예와 영광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깟 트로피와 ‘1위’라는 글자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결국 ‘아리아’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은 모든 게 다 무너졌는데.

‘언니 말이 맞아. 그런 건 다 허상이었어...’

문득 그 날이 떠올랐다.

하윤 언니가 유언장을 썼던 그 날.

각종 상패와 상장이 찢어 발겨져 있고, 자신의 인생은 허무로 귀결되는 하나의 길일 뿐이었다고 적힌 유언장이 있던 그 날.

바로 그 날이 오늘의 자신과 다를 게 없었다.

‘내가... 내가 왜 아이돌을 하려 했지. 난 왜...’

오랫동안 잊고 살고 있었다.

나는 왜 아이돌을 하려 했을까.

왜 그렇게 열심히 아등바등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피터지는 연습을 했을까.

주인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뒷세계의 여왕으로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아니었다.

원래 처음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반짝이는 무대 위에서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드라마 ‘스타의 탄생’에서 하윤 언니가 보여준 그 모습처럼, 다른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연습생 생활을 하며 혹독한 트레이닝을 버틸 수 있던 것이었다.

나도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많은 사람들이 나로 인해 즐거웠으면 좋겠어.

나도 하윤 언니처럼 사람들이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무대에 서고 싶어.

“아...아아...”

모든 걸 다 잃고 나서야 처음이 그 다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타락해버렸는지, 이제야 절실히 실감되기 시작했다.

원래 나는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그것을 많은 대중에게 나눠주며 보답하고 싶었다.

매년 기부와 봉사활동을 하는 하윤 언니처럼.

“흐으으...흐으으으으...으으으...”

하지만 자신은 정반대의 사람이 되고 말았다.

주인님의 세뇌에 완전히 미쳐버려선, 고통과 절망을 뿌리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을 기만하면서 말이다.

품평회.

그곳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었던가.

타락과 절망을 부추기며, 타인의 고통을 생중계하며, 얼마나 많은 호응과 박수를 유도했던가.

“흐으으으으.....나....나는 원래....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뒤틀린 광경을 보며 쾌락을 느끼는 여자가 되어버렸고, 나중에는 어떤 광경을 보더라도 무신경해졌다.

사랑했던 남자친구가 비명을 지르며 끌려가도, 자신처럼 꿈과 희망을 품고 아이돌을 했던 아이들이 추악하게 타락해버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자신이었다.

“미...미안....미안....나, 나는...”

팬들의 진심 어린 마음을 무시했었다.

팬 사인회에 오는 모두를 병신 호구새끼 취급하며 그들을 경멸했다.

그들이 바치는 돈은 뒷세계의 여왕으로 거듭나는 자신을 위해 쓰일 뿐이고, 그러한 뒤틀린 생각을 품으며 나르시즘에 빠진 자신이었다.

-벌컥.

그때, 샤워실의 문이 열렸다.

정성아는 울먹이는 표정 그대로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이곳에 끌고 온 남자 둘이었다.

“샤워가 너무 오래 걸려 당신을 씻기라는 주인님의 명령입니다.”

“아...”

이곳에 들어와서 내내 물줄기만 맞고 있었던 자신.

정성아는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이제 자신에겐 이런 후회를 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 어쩌면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게 자신에게 딱 맞았다.

그만큼 죄를 지질렀으니, 죄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

나로 인해 망가진 사람들... 그런 그들을 보며 합리화를 했던 자신.

당신도 나처럼 망가져서 행복하지.

당신도 그렇게 타락하면 영원한 쾌락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꼭 나쁘지만은 않아. 약물과 섹스와 가학적 행위가 점철된 삶이 얼마나 행복한데.

당신도 곧 알게 될걸? 이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뒷세계의 여왕인 내가 중계하는 이곳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당신이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당신도 내게 감사하게 될 거야.

“하하....”

정성아는 과거, 자신이 했던 어리석은 생각들을 떠올리며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때는 품평회에서 다른 사람의 타락을 부추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악의 마음을 퍼트리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했었다.

-짝 짝 짝 짝 짝 짝

환청이 들렸다.

품평회의 추악한 돼지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환청이 들렸다.

왜 나는 그딴 인간들의 환호를 받으며 고양감을 느꼈을까.

왜 나는 그토록 뒤틀리고 망가진 인간이 되었을까.

“이 정도면 다 됐군요.”

그때, 자신의 머리를 감겨주고 몸에 거품칠을 해주던 남성 둘이 말했다.

그들 중 하나가 칫솔에 치약을 짠 다음 정성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양치도 하세요. 최대한 깨끗하게.”

마치 닭공장에서 닭을 세척 하듯 다뤄지고 있는 자신.

정성아는 쓰게 웃으며 양치를 시작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정성아는 후회와 번뇌 속에서 끊임없는 자기혐오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이렇게 개처럼 구르다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살을 할지 구상까지 하는 그녀였다.

‘죽어야 돼... 멍청한 년. 네가 다 망쳤어. 내 가족도, 도현 오빠도, 그 아이들도... 다른 사람들도... 내가 다 망친 거야. 나 때문에...’

정성아는 양치를 끝냈다.

이윽고 그녀는 대형 선풍기 앞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억센 남자들의 손길에 닦이기 시작했다.

마치 세차를 하듯, 남자들은 양손에 수건을 쥔 채 정성아의 몸 구석구석을 닦고, 드라이기를 들어 머리를 말려주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욕망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거쳐야 할 공정을 거치는 것뿐이었다.

닭털을 뽑고, 물로 세척 하고, 먹기 좋게 부위별로 자르듯, 그저 하나의 공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성아는 인간 취급을 받지도 않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다.

수치심도 느끼지 않았고, 굴욕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저 응당 받아야 할 자신의 ‘벌’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주인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몸을 깨끗이 하고, 물기를 제거하고, 향수까지 뿌린 뒤, 음탕한 옷을 입힌 채 으리으리한 방 앞에 놓여진 자신.

정성아는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 자신은 정성민의 육변기로 다뤄질 것이라는 것을.

그의 가학적인 취향을 충족하기 위한 재료로 소모될 뿐이라는 것을.

-벌컥.

하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그녀는 초점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문을 열 뿐이었다.

이제는 그에게 살해당해도 아무 상관이 없어진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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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온 정성아.

정성민은 그런 그녀를 보며 맥주를 홀짝였다.

그리고 냉장고를 뒤적거리다가, 맥주를 하나 꺼내 정성아에게 던져주었다.

정성아는 반사적으로 맥주를 받았다.

“맥주나 마시자. 긴 얘기가 될 테니까.”

“.....?”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지 태도.

그 목소리에 스며든 부드러움이 추억을 자극했다.

정성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가, 정성민이 고개를 돌리자 미소를 지었다. 조건반사적인 행동이었다.

“히...히히...”

“.....”

정성민은 그런 정성아를 지그시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맥주를 한 모금 삼킨 뒤,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그거 그만해. 그냥 울어도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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