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2화 (212/303)

뒤이어 희연 언니가 오빠를 차지하고자 저질렀던 일.

그 모든 행위를 버티지 못한 오빠가 무너져버려 주인님의 종으로 떨어진 일.

난 그 모든 과정을 보며 내 첫사랑이 흩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이 파괴되어 가는 것을 보며, 흥분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배덕감이라 해야 할까.

이때 난 내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이후, 나는 주인님에게 더욱 빠져들었다.

첫사랑을 지워내고 나니 도현 오빠에 대한 애정도 빠르게 식어갔다.

다만 도태종으로 떨어진 오빠가 걱정되긴 했다.

오빠는 아빠의 아들.

두 부자는 도태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애초에 태생이 주인님과는 다른 태생인 것이다.

그래서 막연히 오빠를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 오빠를 내가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게 느껴졌었다.

어딘가에서 그 초라한 자지를 흔들며 울고 있을 오빠가 걱정됐다.

설마 벌써 죽은 것은 아니겠지.

점점 수척해지는 아빠처럼, 오빠도 어딘가에서 초라하고 열등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자살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열등한 오빠이기에, 자살할 용기조차 낼 수 없는 한심한 유전자를 물려받았기에, 어딘가에서 꾸역꾸역 그 비천한 목숨을 유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막연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 내가 언젠가 뒷세계의 여왕이 되면, 오빠는 내가 길러야지.

지금은 수치스러운 기억이지만 한때는 뭐...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니까.

애완견 대하듯이 사랑으로 보다듬어줘야지.

불행하지 않게 해줘야지.

이런 생각들 말이다.

그러던 중 ‘정성민 의장’이라는 이름이 내 귀에 들어왔다.

주인님이 오빠를 버린 뒤, 선뜻 맞이했던 자신의 후계자.

그분은 우월했다.

고귀하고, 아름답고, 우수하고, 완벽했다.

그분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항상 거듭났다.

육체, 카리스마, 장악력, 힘, 위세, 명성.

마치 젊어진 주인님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세상엔 오빠 같은 타고난 열등종이 있듯이, 저처럼 타고난 우수종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주인님과 낳을 자신의 ‘아들’이 저 사람처럼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반면에 나는, 저렇게 우수한 분과 몸을 섞어봤다는 엄마에게 질투를 느꼈다.

주인님도 자기가 독차지하고, 그 제자분과도 몸을 섞어 봤고....

물론 나는 주인님을 가장 사랑한다.

다만 주인님의 제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할 뿐이다.

그의 자지와 여자를 다루는 기술은 얼마나 완벽할까.

한번은 그분과 몸을 섞는 상상을 하며 자위를 한 적도 있다.

아이돌로 데뷔하여 세상의 추앙을 받는 나이지만, 주인님의 꼭두각시인 나와 달리 저분은 스스로 모든 사업과 세력을 일으키신 분.

그 대단한 분의 씨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지, 감히 상상해보곤 했다.

“말도 안 돼.”

그러니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오빠는... 오빠는 분명 열등 종자인데... 도태종인데... 언젠가 내가 구해야 할 애완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텐데... 왜 가면을 벗으니 오빠가....

“.....”

하지만, 나를 잡아먹을 듯한 저 눈빛.

내 목을 물어뜯어 삼켜버리고 말겠다는 듯한... 저 포식자의 눈빛.

주인님 같은 타고난 지배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저 눈빛을... 오빠가 하고 있다.

분명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는데... 동시에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었다.

“정성아 특임 기획 실장.”

특임 기획 실장.

주인님이 운영하시는 기업체의, 내 공식 직함.

오빠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로서 대하려니, 말귀를 알아 처먹지 못하는군. 꿇어라.”

혼란스러웠다.

오빠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행동은 완전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멀리서나마 봤던, 영상으로나마 봤던 ‘정성민 의장’의 말투와 행동을 하고 있다.

“꿇려.”

‘꿇려’라는 말과 동시에 우락부락한 덩치 둘이 내게 다가왔다.

놈들은 나를 거칠게 끌어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예를 갖춰라. 서열 4위 나부랭이가 내게 얼굴을 빳빳이 들고 있어? 엎드려.”

말문이 막혔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빠가 가, 갑자기 왜...

“대가리 박게 만들어.”

다시 한번 오빠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자 나를 내동댕이쳤던 덩치 둘이 다가와, 내 머리를 잡고 강제로 바닥에 처박았다.

“흣...으흣.....!!”

놈들의 우악스러운 손에 짓눌려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나.

그때, 의자에 앉아있던 오빠가 일어서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한쪽 발을 들어, 내 머리를 짓밟으며 믿을 수 없는 말을 했다.

“벌레 같은 년. 주제파악이 되질 않나? 백하윤에게 이제 막 직위를 물려받은 애송이 주제에, 감히 나를 앞두고 인사조차 올리지 않는다는 거냐.”

이...인사... 그래.

이 사람, 오빠가 아닌 거지?

그냥 오빠랑 닮은 사람인 거지?

오, 오빠랑 얼굴과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 맞지?

-꾸우우욱...

“끄으으으윽...!!”

내 머리를 더욱 세게 짓누르는 정성민의 의장이 발.

그래. 역시 이 사람이 오빠일 리 없다.

내가, 내가 감히 정성민 의장님을 못 알아봐서... 그래서.

“죄, 죄송합니다!”

“죄송해? 뭐가?”

“차, 착각을 하고 있었...으읏...습니다. 제, 제 오빠랑 정성민 의장님을...그만 착각해서...”

역시 그게 맞다.

이 사람은 그저 오빠와 같은 얼굴과 이름을 하고 있을 뿐, 정성민 의장님이다.

그 도태종과 여기 지배종이 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큭큭큭큭큭큭....”

그때, 낮게 깔리는 정성민 의장님의 웃음 소리.

이윽고 나를 짓누르던 그분의 발이 거둬졌다.

그분은 내 앞에 무릎 꿇곤, 내 머리채를 잡아 자신의 얼굴을 보게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묻지. 네 오빠는 어떤 놈이지? 네가 기억하는 오빠의 모습은 어떻나.”

내가 기억하는 오빠의 모습....

나는 그 모습을 정성민 의장님께 그대로 말씀드렸다.

그저 나약한 남자일 뿐이라고.

“나약한 남자... 그래. 일리 있는 말이군. 한심하게 빌빌거리던 시절도 있었으니.”

정성민 의장님은 그렇게 중얼거리시곤 나를 일으키라 명령하셨다.

덩치 둘은 나를 일으킨 다음, 강제로 어떤 의자에 앉혀 놓았다.

이윽고 정성민 의장님께서 말했다.

“아예 그 둘을 하나로 합칠 생각을 못 하는군. 재밌어. 그렇다면 의장으로서 네년에게 제안을 하나 하겠다.”

서열 2위 의장님의 제안.

나는 침을 꿀꺽 삼킨 뒤 그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의장님께서 말했다.

“미스터 최를 죽이고 내가 왕좌를 차지할 것이다. 협조해라.”

“.....예?”

“말귀를 알아 처먹질 못하나? 두 번 말하는 건 싫은데. 손 좀 봐줘라.”

손 좀 봐주라는 의장님의 말.

그 말이 끝나자 내 고개가 휙- 틀어졌다.

뒤늦게 뺨이 얼얼한 것을 느낀 나는, 뺨을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한 번에 알아 처먹어라. 두 번 말하는 거 싫어하니까. 마지막으로 다시 묻지. 미스터 최를 죽이고 내가 왕좌를 차지할 것이다. 내게 협조해라.”

그, 그러니까 의장님께서... 쿠테타를 계획 중이라고?

안돼. 어서 주인님께 알려야 해.

역시 예상대로 정성민 의장은 주인님께 칼을 꽂을....

“눈빛을 보니 답은 정해졌군. 묶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나를 묶으라고 명령하는 정성민 의장.

이윽고 나는 일자형 나무판자에 몸이 묶이게 되었다.

차렷 자세 그대로 나무판자와 함께 몸이 꽁꽁 묶여선, 정성민 의장을 똑바로 바라본 채 서게 되었다.

“내게 협조하지 않으면 죽음뿐이다. 가져와.”

정성민 의장이 무언가를 가져오라 하며 손바닥을 내밀자, 곧이어 그 손바닥 위에 소형 나이프를 올리는 이희연.

정성민 의장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나이프를 이리저리 가지고 놀았다.

그 현란한 손놀림은 오랫동안 그것을 만져본 자의 기술이었다.

“성아야.”

그때, 이전과는 다른 톤으로 나를 부르는 정성민 의장.

난 그 부드러운 목소리에 곧바로 오빠를 떠올렸다.

분명 방금 전만 해도 쿠테타를 도모하고 있는 악귀가 저기 서 있었는데, 이젠 그토록 그리웠던 오빠가 저곳에 서 있었다.

“이번엔 오빠로서 말할 테니 잘 들어. 내게 협조해. 미스터 최 그 새끼를 죽이고, 가족을 되찾을 거니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왜... 왜 정성민 오빠가... 그 오빠지?

도대체 이게 어떻게...

-훙! 훙! 훙! 훙! 파앗!

그때, 순식간에 내게 날아온 나이프.

나이프는 내 얼굴에서 10cm 정도 떨어진 곳에 꽂혔다.

난 그것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킨 뒤, 다시 오빠를 바라봤다.

“성아야. 오빠가 너 죽이 게 만들 거야? 응? 똑 부러지는 애가 왜 이렇게 말이 없어.”

오빠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그 손바닥 위에 나이프가 얹어졌다.

오빠는 그것을 장난감 가지고 놀 듯 휘리릭 돌리며 내게 말했다.

“역시 아직 애송이 나부랭이인가. 판단도 느리고, 아직도 주제 파악을 못 하고 있군.

이런 년이 어떻게 뒷세계의 여왕을 하겠다는 건지.”

이번에는 정성민 의장 같은 말투로 나를 힐난하는... 정체 모를 사람.

대체...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성아야. 아직도 못 정했어?”

-훙! 훙! 훙! 훙! 파앗!

그렇게 말하며 던진 또 하나의 나이프.

이번에 던진 나이프는 아까 던진 나이프 바로 옆에 꽂혔다.

“성아야. 너는 그 자리를 감당할 그릇이 못 돼. 이 뒷세계에서 자리 잡는 일이... 얼마나 좆같고 힘든 일인지, 너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해.”

표현이 거칠긴 하지만 이번엔 오빠의 말투.

오빠는 어느새 손에 들린 새로운 나이프를 휙-휙- 돌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기회를 줄게. 내게 투항하면, 네게 그런 버거운 일을 맡지 않게 해주지. 물론 정현재와 이신아도 되찾아주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가시 돋친 듯한 말투.

하지만 난 여전히 저 사람이 오빠인지, 정성민 의장인지 햇갈릴 뿐이었다.

저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오, 오빠가... 오빠가 정성민 의장이야?”

-훙! 훙! 훙! 훙! 파앗!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아서였을까.

이번에도 나이프가 날아와 옆에 꽂혔다.

이제 나이프는 내 바로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래. 우리 가족이 변했듯이, 나도 변했어. 그리고 나는, 미스터 최를 죽일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야. 비록 그 방법 중에 우리 가족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

결의가 가득한 오빠의 목소리.

하, 하지만 오빠는.... 주인님에게 이미 한번 굴복했었던 오빠는... 주인님을 이길 수 없을 텐데.

하, 하지만 정성민 의장이면 가능할 것 같기도....

그런데 정성민 의장은 오빠잖아.

분명 오빠는 도태종인데, 아니, 정성민 의장은...분명 우수하잖아.

성공할 수 있나?

그런데 만약 쿠테타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지?

아빠는 어떻게 되는 건데. 오빠도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냥 이대로도 좋잖아?

오빠는 정성민 의장이고, 아빠는 내가 보살피면 돼!

엄마는 주인님의 아내가 되었으니 행복할 테고, 나는 뒷세계의 여왕이 될 건데?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할 수 있잖아!

이대로도 좋은 거 아니야?

“의장...아, 아니 오빠! 이대로도 좋잖아? 응? 실패하면 어떡하려구. 우리 가족 행복할 수 있어. 주인님께서 분명 우리 가족을....”

-훙! 훙! 훙! 훙! 파앗!

나를 노려보며 나이프를 던진 오빠.

이번엔 진짜 머지않았다.

내 얼굴 바로 옆에 나이프가 꽂혔다.

조금만 더 왼쪽으로 나이프가 날아왔었으면, 난 정말 죽었을 거다.

“이 씨발년이 짜증나게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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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발년이 짜증나게 하는군.”

“.....”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오빠의 말.

동시에, 정말로 오빠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오빠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성민 의장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썅년아. 네가 대답할 말을 두 가지야. 내게 협조할래? 아니면 죽을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저런 무시무시한 말을 하면서, 다시 나이프를 건네받아 장난감 가지고 놀 듯 돌리고 있다.

오빠는... 내가 알던 그 오빠는... 이미 죽어버린 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민세라가 됐던 엄마처럼.

“흐으으...으으으...으으윽... 끄윽....”

왜.

왜 나한테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 자꾸 떠나가는 거야.

“병신년이 질질 짜기나 하고.”

내가 알던 그 오빠는 죽었다.

내 첫사랑이자, 다정다감했던 그 오빠는... 완전히 죽어버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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