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1화 (211/303)

역시, 운동선수 출신이 만큼 승부욕이 강한 그녀.

이렇게 자극하면 수락할 거라 생각했었다.

“다만, 제가 이기면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정성민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정성민은 다시 한번 육체적인 각성을 하며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20kg짜리 바벨을 달고 한다 한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윽고 안지연이 입을 열었다.

“만약 이번 내기에서 제가 이기면....”

뒷말을 흐리며, 온몸에 힘을 팍! 주는 그녀.

그러자 몸 곳곳에 힘줄이 돋아나고, 근육이 팽창하며 상의가 전부가 찢어졌다.

안지연은 씨익 비장한 미소를 지으며 정성민에게 말했다.

“이 몸으로, 주인님을 ‘범하게’ 해주십시오.”

꿀꺽.

각성한 자신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괴물이 된 그녀의 몸.

다만 정성민은 그 또한 흔쾌히 받아들였다.

헬창 이세계에서 만랩 찍고 귀환한 마누라가 오늘 밤 너를 따먹겠다라고 선언하는 듯한 오싹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성민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럼 나부터 시작하지.”

정성민은 그렇게 말하며 허리에 로프를 연결한 다음 바벨을 매달았다.

그리고 정석적인 자세로 온몸에 힘이 다 할 때까지 턱걸이를 실시하였다.

결과는 113개였다.

“후우...”

땀을 닦으며 숨을 몰아쉬는 정성민.

등은 터질 듯이 아리지만 기분은 좋았다.

운동도 하고, 지연이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으니 말이다.

“큭큭큭큭... 그럼 제가 해보겠습니다.”

안지연의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넝마가 된 상의를 한 손으로 촤락! 찢어버렸다.

그리고 정성민과 같은 정석의 자세로 턱걸이를 하기 시작했다.

“.....”

이윽고, 입을 떡 벌린 채 안지연을 바라보는 정성민.

그녀는 무려 137개를 소화해 냈다.

여자의 몸으로 말이다.

“어, 어떻게...”

결과는 정성민의 패배.

정성민은 충격받은 얼굴로 안지연을 바라보았다.

최근에 몸의 각성을 한 자신이, 그 덕분에 섹스 스킬과 자지의 힘이 몇 단계 수직 상승한 자신이 어떻게 안지연에게 진단 말인가.

“진 이유가 궁금하세요?”

그때, 턱걸이 기구에서 내려온 안지연이 털썩 쓰러진 정성민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정성민은 땀에 흠뻑 젖은 그녀의 상체를 보며 꼴림보다는 존경심을 느끼며 그녀를 바라봤다.

“어떻게 그런 경지까지 도달한 거지?”

남자로서도 쉽지 않은데, 여자의 몸으로 극한까지 힘을 끌어올린 안지연.

정성민이 그 비결을 묻자, 안지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야, 주인님은 내츄럴이고.... 저는 로이더니까요.”

***

“언니...언니....흐으으...”

강릉으로 가는 KTX.

정성아는 그 기차에 몸을 싣고 백하윤의 메시지를 다시 읽고 있었다.

메시지의 내용은 그동안 고마웠다.

나로 인해 너무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고 인생을 망쳤다.

이제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느낄 수가 없다.

너는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뿐이었다.

사전 녹화를 준비하고 있던 정성아는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양해를 구하고 방송국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백하윤에게 메시지를 보내 어디에 있는지 계속해서 물어보았다.

[어린 시절, 내가 꿈을 꾸기 시작한 곳에서... 모든 걸 끝내려 해.]

어린 시절, 꿈을 꾸기 시작한 곳.

정성아는 단번에 그곳이 강릉임을 알 수 있었다.

백하윤의 광팬이었던 정성아는 백하윤의 작은 TMI까지 꿰차고 있었고, 그 덕분에 이렇게 KTX를 이용하여 강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좀 아리아 닮은 거 같애”

“아리아? 설마.”

“뭔가 느낌이 딱...아리아인데?”

다만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도 자신을 알아보는 팬들이 여럿 있었다.

정성아는 최대한 얼굴을 가린 채 강릉역을 빠져나와 백하윤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끝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언니....으으으...언니...”

자꾸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 간다.

아빠는 망가졌고, 오빠는 행방불명이 되어버렸고, 엄마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우상이자 애증의 대상인 백하윤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백하윤 마저 떠나가려 하고 있으니, 정성아의 가슴이 찢어질 듯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언니 제발... 제발 전화 좀 받아...”

어떻게 이곳 강릉까지 서둘러 오긴 했지만, 언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카톡도, 문자도 받지 않고,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았다.

설마 벌써 죽은 것은 아니겠지.

-삑.

그때였다.

속절없이 울리던 전화 벨소리가 드디어 멈췄다.

백하윤이 전화를 받은 것이다.

“어, 언니! 언니 지금 어디야! 지금 어딘지만 말해줘! 내가 갈 테니까... 제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판자촌이야.”

“...어?”

“내가 자랐던 곳. 그곳에 있어. 오랜만에 오니 감회가 새롭네. 여긴 그대로구나.”

“.....”

“이 주소로 와. 너한테 꼭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

이 메시지를 끝으로 백하윤이 보낸 주소.

정성아는 서둘러 택시를 탄 뒤 그 주소로 가달라고 말했다.

“여기서부턴 올라가야 해. 차가 못 들어가서.”

차가 진입하지 못할 정도로 후미진 동네.

정성아는 계산을 한 뒤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하윤이 사진으로 보내줬던 빌라를 보며 지나가는 곳곳의 빌라를 비교해보았다.

“...!!”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백하윤이 사진으로 보내줬던 것과 똑같이 생긴 빌라가 보였다.

당연 이 허름한 빌라촌 중에서도 가장 후진 빌라라 할 수 있었다.

“어, 언니...?”

이 빌라의 반지하.

그곳이 바로 백하윤이 자라온 집.

정성아는 현관문을 콩콩 두드린 뒤 백하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끼이이익....

결국 정성아는 현관문을 밀어보았다.

현관문은 잠겨있지 않아 쉽게 열 수 있었다.

“.....”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광경.

엄청나게 열악한 부엌과, 부엌 끝에 딸린 화장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방문이 하나 있었다.

정성아는 그 방문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백하윤을 보았다.

“.....?”

하지만, 너무나 멀쩡한 모습의 백하윤.

아니, 오히려 평소에 봐왔던 모습보다 훨씬 건강해보였다.

그런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백하윤은 자신이 알던 그녀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같이 온 사람 있니.”

그때, 먼저 말문을 여는 백하윤.

정성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없다고 말했다.

워낙 정신없이 이곳으로 달려오느라, 매니저를 비롯한 운전기사를 이용할 생각도 못 했다.

“잘 됐네 그럼. 너한테 꼭 소개해줄 사람이 있어. 너도 그 사람한테 구원받을 수 있을 거야.”

백하윤은 그렇게 말하며 정성아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정성아 바로 앞에 선 백하윤은 왼손에 들고 있는 간이 방독면 마스크를 입에 댄 다음, 오른손에 들린 수면가스를 정성아에게 치익- 뿌렸다.

“콜록. 콜록. 언...니....?”

순신간에 휘청이는 정성아의 몸.

백하윤은 정성아가 넘어지기 전에 그녀를 부축했다.

동시에 집안 곳곳에 숨어있던 검은 인영의 남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성아는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백하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겁낼 거 없어 성아야. 네가 나를 구하려 이곳에 달려왔듯, 나도 너를 구해주고 싶은 것뿐이야.”

온화하고 차분한 백하윤의 음성.

정성아는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에서 엄마의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던, 그때 그 시절의 엄마.

그 아련하고 그리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

“으읏...”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었다.

정성아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곳은 새하얀 백색등이 가득한 신비로운 느낌의 방이었다.

“일어났나.”

그때, 뒤에서 들리는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

정성아는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목소리의 주인뿐만 아니라, 백하윤 언니, 이희연 언니, 웬 근육괴물 여자도 함께 있었다.

“....이게 무슨...?”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우선 목소리의 주인은 왜 가면을 쓰고 있을까.

하윤 언니는 가면남 옆에 왜 자연스럽게 서 있을까.

둘이 아는 사이인가?

예전에 몇 번인가 본적 있는 희연 언니는 왜 저곳에 있는 거고?

저 우락부락한 근육 여자는 또 뭐야?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성아야.”

그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가면을 쓰고 있는 수상한 남자 입에서 말이다.

“..... 누, 누구야.”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어.”

가면 안에 울려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잘 아는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 분명...오빠의 것인...!

“저, 정성민 의장?”

오빠의 이름을 떠올리자 동명이인인 정성민 의장이 생각났다.

정성민 의장이 대외행사에 모습을 드러낼 때 딱 저런 가면을 쓰고 등장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성민 의장이.... 오빠와 비슷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래. 나야.”

가면을 쓴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가면을 벗었다.

정성아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입을 틀어막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어....”

가면 속 그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온화하고 따뜻했던 그 얼굴이, 예전보다 더욱 날카로워지고, 예전보다 더욱 차가워졌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아무리 바뀌었다고 한들, 그는 자신의 오빠였다.

단지 맑고 깨끗했던 그의 눈이 비정하게 변하고, 평범했던 그 몸이 괴물처럼 불어났을 뿐이지, 그 이목구비와 목소리, 머리스타일은 모두 그녀가 익히 알고 있던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그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성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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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정성아는 정성민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 어렴풋이 그에 대해 몇 번인가 생각해본 적은 있었다.

그래도 하나뿐인 오빠인데,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빠는 나의 가족이자 집안의 기둥이었고, 한때는....

한때는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렸던, 헤어진 첫사랑이 아니던가.

우리 남매가 저지른 죄악의 사랑.

영원히 묻어야 할 금단의 비밀.

오빠를 이성으로서 사랑했던 그 시절.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을 흉내 내던 ‘놀이’에서 비롯된 애틋한 그 감정.

하지만 오빠는 가족이라는 ‘틀’을 지키고 싶어했고, 결국 오빠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실패한 사랑.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오빠는 그때 그 시절을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덮어야 할 치부?

떠올리기도 싫은 흑역사?

인생의 오점 중에 하나?

하지만 적어도 내겐 그 시절은 추억이었다.

‘흐드러지게 피는 우리’라는 그 청춘로맨스 애니메이션처럼, 내겐 그 시절은 10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

결국 오빠는 그 시절을 없는 취급했지만.....

그래도 난 오빠를 이해하기로 했고, 오빠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

평범한 남매 사이로 돌아오는 것이, 우리 둘을 위해서도,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인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오빠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은.

그래... 오빠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은 그 영상을 봤을 때부터였다.

생방송으로 요리대회를 하던 중, 갑자기 사고를 친 그 영상말이다.

그 영상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렇게나 완벽한 오빠가... 내 환상 속의 영원한 첫사랑이 그런 추태를 보이고 말다니.

정나미가 뚝 떨어짐과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왜 오빠는 저 지경이 되어버린 걸까.

그렇게나 빛나던 사람이었는데.

이유를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인님의 여자가 되기로 맹세한 뒤, 그분의 아이돌로 길러질 때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주인님께선 오빠의 추한 과거를 내게 보여주셨다.

하영이 언니가 오빠에게 저지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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