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이하영이 이희연을 장난스레 부를 때 쓰는 말이었다.
‘이희연’이란 말을 빠르게 발음하다 보면 ‘이년’이 되기 때문에, 이하영은 이희연을 ‘이년’이라고 말장난식으로 부르곤 했었다.
”이년이!!“
하지만 지금은 장난 따위로 ‘이년’이라 칭하는 게 아니었다.
이는 방금 전, 이희연이 잠든 정성민의 볼에 뽀뽀를 하고 있는 사진을 보냈기 때문이다.
”씨발년!“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육성.
주인님과 동침하는 것도 모자라서, 잠든 주인님의 몸에 아무렇지도 않게 신체접촉을 하다니.
-까톡.
그리고 이번에도 도착한 까톡.
내용을 확인해보니, 주인님의 부랄을 살포시 감싸 쥔 채 V포즈를 하고 있는 이년의 사진이었다.
이하영은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으아아아악!!“
-푹.
하지만, 침대에 던졌다.
화는 나지만 분노조절이 되지 않을 정도의 화는 아니었다.
그 이유는 이희연이 주인님의 ‘여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자신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저런 사이가 된 거야...!“
과거엔 자신만이 할 수 있었던 특권.
주인님의 신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질 수 있는 행위.
그것을 지금은 이희연이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부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나도... 나도 노력해서 언젠간...!“
허나 이제 이하영은 더 이상 절망하지 않았다.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있는 그녀는, 그저 노력으로 열정을 태울 뿐이었다.
우선은 자신을 정실로 맞이하려는 돼지 새끼의 목부터 딸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힘이 필요해.“
하지만 내뱉은 말대로 자신에겐 힘이 필요했다.
현재 그녀는 향락소 제2지부의 주인이자 구원자 세력의 2인자였지만, 제2지부는 이제 막 생겨난 신생 지부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구원자에겐 3명의 딸이 있었고, 그녀들의 견제를 받는 한 자유롭게 세력을 모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른 년은 몰라도 나윤경이 가장 문제야.’
나윤경.
자신이 오기 전까진 구원자 세력의 2인자였던 인물.
현재 그녀는 이하영에게 2인자 자리를 뺏긴 뒤 이하영을 질투하고 있었다.
때문에 꼬투리를 하나라도 잡으려고 수시로 향락소 제2지부의 회계를 조사하거나 방문하는 등 철저히 이하영을 견제하고 있었다.
‘그년이 날 감시하고 있는 이상, 이곳에서 전투원을 모으긴 힘들어.’
쿠테타에 성공하려면 구원자와 그의 딸 셋, 그리고 합창단원을 제거한 뒤 경비대장까지 포섭해야 한다.
하지만 경비대장은 구원자에게 철저히 세뇌된 그의 수족이기 때문에, 그를 포섭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를 포섭할 수 없으면 그가 관리하고 있는 군대와 붙어야 하는데, 문제는 이하영에겐 이 군대와 맞붙을 군대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 새로운 동맹을 만들면 되지.“
그렇게 고민을 이어나가던 중, 머리를 스치는 하나의 아이디어.
이하영은 그 아이디어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새로운 도원걸의!“
사실상 이희연이 탈퇴하며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던 3걸레 연합.
그렇다면 새로운 자매 연합을 만들어 이를 활용하면 되지 않은가.
주인님의 ‘여자’가 되기 위한 욕망을 잘 이용한다면, 그 혜택을 자신이 톡톡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하영’님이 ‘백하윤’님을 초대하였습니다.]
[‘이하영’님이 ‘엘레나’님을 초대하였습니다.]
하여 이하영은 백하윤과 엘레나를 초대했다.
그리고 이희연이 보냈던 사진을 전송한 뒤 그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까톡.
[백하윤: 어머 씨발, 이게 뭐니?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네? 이희연 이년이 발칙하게...!]
-까톡.
[엘레나: 뭐야. 이하영. 이 사람. 나쁜 사람인 거, 알려주는 거야?]
발음이 좆같아서 그렇지, 수준급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엘레나.
이하영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메시지를 보냈다.
[이하영: 응 욕이 나오고, 발칙하고, 나쁜 년 맞아. 그래도 우리가 우러러봐야 할 ‘주인님의 여자’지.]
[백하윤: 뭐, 그렇긴 한데. 배신감이 크네. 우리만 이렇게 놔두고 자기만 저런 호사를 누리다니.]
[엘레나: 기분 나빠.]
백하윤과 엘레나의 공감대를 끌어오는 데 성공한 이하영.
여기까지 성공했으니 이제 자신의 본론을 꺼낼 때가 되었다.
[이하영: 그래서 말인데, 우리 셋이 뭉치는 게 어때. 벌써 주인님의 여자만 ‘이희연’, ‘안지연’ 두 명이 됐어. 더 이상 주인님의 여자가 생기는 건 곤란해. 그 자리엔 한계가 있을 테니까.]
주인님의 온전한 사랑을 받고, 주인님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최고의 영애, ‘주인님의 여자’. 그 자리가 한정판인 것은 백하윤도, 엘레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본디 사람의 사랑과 관심이란 무한하지 않고,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백하윤: ...그렇긴 한데, 그게 무슨 소용이겠니. 우린 안지연을 막지도 못했고, 희연이가 독주하는 것도 손 놓고 지켜봐야 했잖아.]
부정할 수 없는 백하윤의 말.
하지만 이하영에겐 다 생각이 있었다.
[이하영: 전략을 바꿔야죠.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걸 견제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주인님의 ‘여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해요.]
주인님의 여자가 되기 위한 조건.
그것은 바로 자신이 지은 죄만큼 주인님께 쓸모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이하영은 그 원리를 백하윤과 엘레나에게 설명했다.
[백하윤: 뭐, 일리 있는 말이네.]
[엘레나: 음. 하지만 난 죄 없어. 이하영, 백하윤. 둘은 대걸레 bitch. 보지 많이 썼지만, 난 오직 성민에게만 썼지. 그리고 마피아 내 꺼임. 나 존나 유능해.]
동의하는 백하윤과 달리, 어설플지언정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전하는 엘레나.
한마디로 나는 급이 다르다, 이 말이었다.
[이하영: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너 한국에 오고 나서, 주인님이 한 번이라도 안아 준 적 있어?]
하지만 이하영에겐 계획이 있었다.
그녀는 엘레나에게 부족한 것이 뭔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엘레나가 답이 없자 이하영이 메시지를 보냈다.
[이하영: 없지? 왜 안 안아줬을까? 왜 널 놔두고 이희연을 안아줬을까?]
[엘레나: ...몰라. 짜증나.]
[이하영: 그러니까 우리 동맹에 들어와. 그 이유를 알려줄 테니까. 우리 동맹에 들어오면, 네가 ‘주인님의 여자’가 되는 것을 도와줄게.]
[엘레나: ...너 같은 투트랙 대걸레 bitch의 말을, 내가 믿어도 괜찮을까?]
[이하영: 싫으면 말던가. 맘에 안 들면 채팅방에서 나가면 돼.]
이하영은 그렇게 메시지를 보낸 다음 침을 꿀꺽 삼켰다.
일단 강하게 메시지를 보내긴 했지만, 엘레나가 여기서 빠지면 곤란해진다.
[엘레나: ...믿을 게. 러시아에서, 네 활약 대단했으니까. 보지는 걸레지만, 머리는 똑똑해.]
말하는 게 좀 직설적이긴 하지만 새로운 자매 연합에 참여하기로 한 엘레나.
이하영은 씨익 웃으며 엘레나에게 답장을 했다.
[이하영: 그러면 이제부터 언니라고 불러. 무례한 말도 하지 말고. 우린 자매의 연을 맺을 거니까.]
[백하윤: 그래. 러시아에선 몰라도 한국에선 예의라는 걸 지켜야 한단다.]
‘언니’라고 부르고 ‘예의’를 지킬 것을 요구하는 이하영과 백하윤.
이 요구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동안 엘레나의 까톡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이하영과 백하윤이 숨죽여 까톡창을 지켜보는 가운데, 드디어 엘레나의 답장이 도착했다.
[엘레나: 좋아. 언니들. 아까 bitch 걸레는 취소할 게. 보지는 쓸수록 건강에 좋대.]
하지만 그녀가 답장을 늦게 한 것은 ‘걸레’인 두 언니를 어떻게 칭찬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늦게 된 것.
그 칭찬이 조금 불쾌할지라도, 새로운 자매 연합에 참여 의사를 밝힌 엘레나였다.
[이하영: ...그래. 어쨌든 환영이야. 이제는 언니 동생으로 잘 지내보자. 잘 부탁해.]
[백하윤: 후후. 뭔가 직설적이라서 귀엽네. 나도 잘 부탁해.]
그렇게 이하영, 백하윤, 엘레나의 새로운 도원결의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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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한 밤, 불이 모두 꺼진 백하윤의 집무실.
백하윤은 쇼파에 몸을 파묻은 채 은은한 스탠드 조명의 빛을 받고 있었다.
그녀의 눈두덩이엔 다크서클이 가득하고, 머리는 완전히 산발이 되어 엉망진창이었다.
볼 주위엔 마스카라가 흘러내린 자국이 가득했고, 입술을 완전히 말라붙어 생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
영락없는 폐인과 다름없는 모습.
백하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오른팔에 주사기를 꽂아 넣었다.
그리고 주사기를 꾸욱 눌러 팔뚝에 눈을 까뒤집으며 약물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신체 내부에 영양성분이 가득한 약물이 주입되었다.
“흐으읏!♥”
영양 만점 비타민 주사를 투여한 백하윤,
몸을 건강히 하라는 정성민의 명령을 오늘도 잘 수행하는 그녀였다.
다만 영양제를 투입하는 모습과 상반되게 그녀의 몰골이 이렇게 처참해진 이유는, 오늘은 ‘정성아’가 오는 날이기 때문에 망가진 자신의 모습을 연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주인님은 네가 망가진 줄 알고 있을 거다. 그 모습을 잘 연기해줘야 해.’
백하윤은 정성민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자신의 모습을 점검했다.
테이블엔 다 쓴 주사기와 약병이 가득했고, 이틀이나 밤을 새 눈두덩이엔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게다가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아 입술은 건조했고, 화장으로 위장한 피부도 엉망진창이었다. 이 정도면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보면 폐인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후-우. 술냄새 좀 풍겨야겠지?”
정성민을 만나기 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망가진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매일 술에 쩔어 살고 마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지 않았던가.
만약 그의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쯤 주인님께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자살을 기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망가진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벌컥 벌컥 벌컥 벌컥.
하여 백하윤은 소주 한 병을 통째로 원샷해버렸다.
거기에 몸에 유해하지 않은 마약도 한 알 복용했다.
취기와 기분 좋은 어지럼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 정도면 충분해... 이제 눈물만 흘리고 있으면...!’
백하윤은 샴페인을 딴 다음 화장실 변기에 반쯤 흘려 버린 뒤 물을 내렸다.
그리고 다용도 책상에 가지런히 진열된 샴페인 잔 두 개를 바닥에 내 던진 뒤, 하나는 자신의 쇼파 앞 테이블에 놔뒀다.
물론 테이블에 놔둔 잔에 입술의 립스틱을 묻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풀썩.
모든 준비를 마친 백하윤은 쇼파에 몸을 파묻은 뒤 슬픈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눈물범벅이 될 정도로 슬픈 게 떠올랐으면 좋겠는데, 뭐가 있을까.
“.....”
고민을 이어가던 중, 뇌리에 번뜩이는 생각.
만약 자신이 정성민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가정법.
그 가정법을 대입해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자, 눈물을 금세 나왔다.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자신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분명... 분명 내 인생을 한탄하며 자살했을 거야.’
‘미스터 최’에게 모든 인생을 바친 자신.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 박종필을 버리고, 꿈도, 긍지도, 여자로서의 존엄도 모두 그에게 바쳤던 미련한 여자.
그 여자에게 남은 것이라곤 잠깐 스쳐 지났던 아름다운 2년의 추억밖에 없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버린 봄처럼, 단 한 순간 꽃을 피웠던 18 - 19살의 기억 말이다.
“그 추억을 붙잡다가 죽었겠지. 한번 유서도 적어볼까.”
이왕 몰입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해보면 어떨까.
백하윤은 내친김에 종이와 팬도 가져와 그때의 자신이면 어떤 식으로 유서를 남겼을지 고민해보았다.
“....아.”
그러다 문득 박종필이 자살 기도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둘만의 신혼집을 차린 그곳에서, 텅 빈 집안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이름을 미친 듯이 부르짖던 그때의 박종필이 떠올랐다.
“아아...”
그때의 박종필은 자신이 남겨둔 돈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그런 미친 영상과 메시지를 남겨두고 사라져버렸는데, 5억이란 돈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그가 한 일이라곤 그저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텅 빈 집안을 둘러본 뒤, 목을 매달아 생을 마감하려 했을 뿐.
“....미안해...”
이제 자신은 정성민을 사랑한다.
비록 그것이 그의 조교의 결과일지라도, 자신은 그에게 구원받았다.
이제 자신의 마음은 온전히 그를 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종필에 대한 죄책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렇게 미스터 최의 조교에서 벗어나니, 자신이 그에게 한 짓이 얼마나 악질적인 짓이었는지 확 와닿았다.
“.....”
백하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박종필이 목숨을 끊기 전 추억이 가득한 둘만의 자취방을 둘러봤던 것처럼, 자신의 집무실을 빙 둘러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박종필이 그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 그때 그는 이런 심정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허무한 기분이었구나...”
백하윤의 집무실엔 고가의 물품들이 가득했다.
각종 시상식에서 받은 트로피들과 상패도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고, 드레스룸엔 수천 수억짜리의 옷들이, 책상 위에는 명품 가방이 죽 진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미스터 최에게 사랑과 마음을 바쳐서 얻을 수 있었던 것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고, 인간이길 포기하며 다른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줘서 얻은 것들이었다.
그러니 이 휘황찬란한 것들이 백하윤에겐 아무 의미가 될 수 없었다.
차라리 15년 전, 박종필이 선물로 주었던 7만원 짜리 목걸이가 이 수천 수억짜리의 명품보다 의미 있게 느껴지는 그녀였다.
‘미스터 최 밑에선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어. 그 누구도.’
정신을 망가뜨려 쾌락에 중독되게 만든 뒤, 소모품처럼 쓰다 버리는 미스터 최의 방식. 그 방식에 희생당한 완벽한 표본이 바로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알 거 같아.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백하윤은 ‘정성민과 함께하지 못하는 자신’에 더욱 몰입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에게 구원받지 못했더라면, 자신이 어떤 유언을 적을지 고민해보았다.
-사삭. 사사삭...
이윽고 고민을 마친 백하윤은 곧바로 유언을 적기 시작했다.
유언의 내용은 저주로 시작했다가 고통, 후회, 회한, 슬픔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온통 미안하다는 글로 도배된 유언장이었다.
“하아...하아....흐으윽...”
백하윤은 정성민이 없는 자신의 모습에 완전히 몰입하였다.
그녀는 연신 눈물을 쏟으며 평행 세계의 자신이 저질렀을 법한 일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퍼억! 퍼억!
그녀는 우선 트로피와 상패를 땅에 패대기쳤다.
그리곤 옆에 있는 골프채로 상패를 찍어 산산이 부숴버렸다.
“허억... 허억...”
사랑하는 팬들을 속여 거짓으로 얻어낸 트로피들.
하지만 이 트로피를 부순다 해서 자신이 지은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조금도 시원한 느낌이 들거나 통쾌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으읏...!”
그래서 백하윤은 자신을 자해하려 했다.
이 따위로 몰락한 자신이 너무나 역겨워서, 자신이 지은 죄에 너무 화가 치밀어서 자신의 얼굴을 마구 핥퀴려고 했다.
“후우... 너무 몰입했나.”
하지만 백하윤은 자신을 자해하지는 않았다.
이젠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라는 정성민의 말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에게 구원받은 자신과 구원받지 못한 자신은 엄연히 달랐다.
-또각.. 또각... 또각...
그때, 복도에서 울리는 구두굽 소리.
아마 정성아가 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