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나 엘레나는 캔맥을 받을 운동신경이 없었다.
-툭! 푸쉿! 콸 콸 콸 콸 콸 콸....
“.....”
“미, 뮈안....”
“됐어. 치우라고 하면 되니까. 이리 와.”
뭐, 지금은 저런 모습 하나까지 귀여워 보이니 상관없었다.
난 그녀를 옆으로 부른 다음 다시 맥주를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그리고 호출 벨을 눌러 부하를 부른 뒤 내가 뿜은 맥주와 엘레나가 받지 못해 떨어진 맥주를 치우도록 시켰다.
“뭐, 이왕 온 김에 맥주나 한잔해.”
그렇게 나는 엘레나를 의자에 앉힌 뒤 맥주캔을 내밀었다.
내 뜻을 알아들은 엘레나는 싱긋 웃으며 내가 내민 맥주캔을 탁- 부딪혓다.
-꿀꺽 꿀꺽 꿀꺽
시원한 목넘김.
어디서 배웠는지 엘레나는 캬-하! 소리를 내며 맥주캔을 내려놓았다.
그 사이, 바닥을 청소하던 하인이 청소를 끝냈다고 보고를 올렸다.
“주인님. 청소 완료했습니다.”
“수고했어. 나가봐.”
“예.”
절도있게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나가는 하인.
그러넫 그런 하인을, 엘레나가 불러세웠다.
“저, 저귀!”
다시 뒤돌아서는 하인.
엘레나가 말했다.
“취, 취킨 가져와요!”
“치킨 말입니까?”
“매, 맥쥬엔... 취킨을 먹어야 해요...!”
... 씨발년이, 그건 또 누구한테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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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을 내보내고, 나는 엘레나와 함께 치맥을 즐겼다.
‘맥주엔 치킨’이란 건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으니, 내게 관심이 생기면서 한국에 관해 이것저것 알아봤다고 한다.
그런 년이 왜 한국말이 저 지경인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이줴...쥔짜 열쉬미 공부할괴...”
다행히 그녀는 자신의 한국어 발음이 처참하다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내 거울 치료가 효과가 있던 것이겠지.
네 한국어 발음이 내 러시아어 발음과 다를 바 없다고 했을 때 그녀가 지은 표정은 충격 그 자체였으니까.
“쉉민...♥ 잘 좌♥”
1시간 뒤, 굿나잇 키스를 하며 방을 나서는 엘레나.
뭐, 그녀와의 대화는 나름 즐거웠다.
안 그래도 뭔가 기분이 꿀꿀했는데, 기분 전환하기도 딱 좋았고.
한 번씩 이렇게 감정이 절제되지 않고 튈 땐 혼자 삭히곤 했었는데, 엘레나와 얘기를 나누며 다 풀리게 되었다.
그녀에겐 천진난만한 소녀 같은 매력이 있었다.
아직 20살이라서 그런가.
“.....”
어쨌든 각설하고, 내일이면 지방에 뿌려놓은 사이비 종교를 시찰하는 날이다.
우선 가장 잘 성장했다는 대구부터 둘러볼 예정인데, 신도들 30명 정도가 완벽하게 세뇌되었고, 57명이 새로 세뇌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도 중에는 무역회사 사장의 딸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부유층을 잘 엮으면 꽤 짭짤한 돈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풀썩.
적당히 취기도 올랐겠다, 이제 자기로 했다.
내일 일정을 위해선 양질의 수면은 필수니까.
아침 운동을 위해서라도 일찍 자둬야 하고.
그렇게 난 눈을 감아 잠을 청했다.
***
“씨발...”
같은 시각, 이하영은 샤워실에서 몸을 씻고 있었다.
그녀의 몸 곳곳엔 구원자의 침과 음식물이 묻어 있었고, 음부 안엔 정액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그 모든 흔적을 물로 씻어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각오는 했잖아...’
이미 구원자가 있는 향락소 본사에 오며 각오는 했었다.
그와 역겨운 섹스를 해야 될지도 모른다고.
어찌 보면 구원자의 ‘딸’이자 향락소 제2지부의 ‘성녀’인 자신이 이토록 오래 구원자와 몸을 섞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출장이라는 핑계와, 제2향락소를 운영해야 한다는 핑계.
그 핑계가 없었으면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몸을 섞어야 하는 게 ‘딸’의 의무였다.
‘내가 미치긴 확실히 미쳤었나보다. 저런 돼지 새끼가 뭐가 좋다고...’
정성민에 의해 완벽히 세뇌가 풀린 지금, 이하영은 자신의 과거를 혐오하고 있었다.
저 미친 돼지 새끼를 ‘아버지’라 부르며 그와 함께 하는 섹스에 흥분을 느끼다니.
그의 입안에서 상스럽게 질척이는 음식물을 받아먹고, 그의 역겨운 얼굴을 핥아주는 데다, 그 돼지의 몸에 깔려선 흥분을ㅡ.
“우-웁...”
구역질이 올라오는 그의 섹스 방식.
이하영은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상상을 멈췄다.
그리곤 기억을 씻어내려는 듯 샴푸를 푹- 푹- 짜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 감았다.
분노의 양치를 하고, 샴푸볼로 몸 구석구석을 닦고, 질내를 계속 긁어내 그의 더러운 정액을 모조리 밖으로 빼냈다.
“하-아...”
샤워를 마치고 나온 이하영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여전히 육감적인 몸매에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더러워보였다.
자신의 주인인 정성민을 놔두고 저런 돼지 새끼와 몸을 섞어야 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으으...”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자신의 주인님이었으나, 과거엔 자신의 그의 여주인님을 자처하며 그에게 행했던 온갖 악행들이 머릿속을 괴롭혔다.
아마 이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은 평생 따라다니지 않을까.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
허나 이하영은 과거처럼 주저앉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그에게 사랑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하기보다는, 그에게 얼마나 더 쓸모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치익 –치익.
그러니 몸매와 외모를 꾸미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래도 운 좋게 그의 전 여자친구였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노예에 비해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 자신이 아닌가.
또 이렇게 계속 노력하다 보면 그의 ‘여자’가 될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아직은 그에게 완전히 용서받지 못하고 있지만...
-스윽... 스윽...
이하영은 러시아에서 챙겨 온 짐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방 안엔 여러 중요 서류와 생필품, 그리고 스위스에서 주문 제작한 물품 보관함이 있었다.
“흐음...”
가장 먼저 꺼낸 것은 여러 중요 서류들.
이 서류엔 마피아의 조직 체계도와 간부들의 약점 및 비밀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눈속임하기에 충분하겠지.’
진실과 거짓을 반반씩 섞어 만든 눈속임용 보고서.
마피아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자가 아니라면 절대 눈치챌 수 없는 보고서였다.
아무리 구원자의 정보력이라 해도 속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일 여길 떠나면서 이걸 선물로 주면 되겠고... 이제 다음은...’
이하영은 스위스에서 주문 제작한 물품 보관함을 꺼냈다.
이곳엔 마피아의 조직 체계도보다 훨씬 중요한 기밀이 담겨 있었는데, 특별 기밀 물품이라 이렇게 4중으로 보안이 안배된 스위스제 강철 물품 보관함에 담을 필요가 있었다.
-띠디디디디 승인완료.
거금을 들여 만든 스위스제 강철 보관함.
역시 돈을 쏟아부은 만큼 그 성능은 탁월했다.
이렇게 홍채 인식을 통해서 1단계 보안을 해제하고 나면, 곧바로 지문 인식을 해야 하는 2단계 보안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용자 정보, 확인 완료.
-철컥. 철컥.
이제 다음 단계는 실시간으로 암호코드가 바뀌는 6자리 비밀번호.
이 비밀번호를 풀기 위해선 휴대폰에 설치된 ‘실시간 코드앱’을 실행하여야 하기 때문에 휴대폰이 꼭 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었다.
-인증 완료. 다음 보안으로 넘어갑니다.
이제 3단계 ‘실시간 암호코드’를 해제하고 나면 마지막 보안이 남아 있다.
허나 이 마지막 보안은 사실 제일 별거 없는 보안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홍채인식, 지문인식, 실시간 암호코드처럼 까다로운 보안이 아니라, 그저 10자리 숫자만 입력하면 풀 수 있는 암호이기 때문이다.
-싱긋.
허나 이 암호는 이하영에게 특별했다.
그도 그럴 게 10자리 숫자의 이 암호는, 정성민이 이하영에게 결혼을 약속한 날짜이기 때문이다.
-띠딕...띠디딕... 2025.10.26. 암호확인 이상 없습니다.
치이익- 하얀 김을 내뿜으며 열리는 스위스제 강철 금고.
이하영은 2년 전, 정성민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 날은 둘이 함께 ‘반지 만들기’ 체험공방에 방문한 날이었다.
‘큭큭. 엄청 열심히네?’
‘당연하지. 우리 커플링 만드는 건데.’
반지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정성민.
그때 아직 사귄 지 100일에 불과했던 그들은 이렇다 할 커플링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커플링을 하나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냥 비싼 걸 사기보단 직접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반지 만들기 체험공방에 들린 것이었다.
‘아... 미안. 망했다.’
‘큭큭큭큭... 이게 뭐야.’
다만 너무 대작을 만들려 했던 탓일까.
정성민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거창한 계획과는 달리 초라한 반지만이 남게 되었다.
‘아. 이건 커플링으로 절대 못 써. 버리자.’
이제 곧 있으면 공방이 문을 닫는 시간.
정성민은 기대만큼 만들어지지 않은 반지를 그냥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하영이 그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도 네가 열심히 만든 건데, 좀 아깝다.’
‘에이-, 아깝기는 더 좋은 거 만들어 줄게.’
‘아냐. 줘 봐.’
이하영은 정성민의 손에 있는 반지를 가져온 다음, 자신의 왼쪽 약지에 끼워보았다.
그리곤 씨익 미소를 지으며 정성민에게 말했다.
‘그럼 이거 약혼반지 하자!’
‘약혼반지?’
‘응. 이거는 약혼반지하고. 다음에는 커플링하고.’
‘푸흡. 커플링도 안 했는데 약혼반지부터 하게?’
‘어어ㅡ? 그래서 너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큭큭. 벌써 보채는 거냐.’
‘뭐!’
‘농담. 당연히 해야지.’
‘큭큭. 언제가 좋을까? 네가 정해줘.’
‘내가?’
‘응. 나는 언제든지 청혼만 하면 받아줄 생각이 있거든.’
‘크흐흐... 나중에 거절하기만 해봐. 보자... 그러면...’
잠시 고민을 이어나가는 정성민.
이윽고 그가 말했다.
‘그럼 5년 뒤? 그때면 우리 졸업도 하고, 취업도 했을 테니까.’
‘그럼 오늘이 10월 26일 이니까.... 2025년 10월 26일이네?’
‘뭐, 일단 계획은?’
‘좋아. 적어놔야지.’
농담 삼아 얘기를 꺼냈던 약혼반지와 결혼 일자.
이하영은 반지를 안에 넣으며, 결혼 일자를 폰에 적어넣었다.
그리고 그 결혼 일자는, 이 스위스제 금고의 비밀번호가 되었다.
-쉬이이이익....
이하영은 과거의 기억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연기가 사라진 보관소의 내부를 보았다.
그곳엔 정성민의 팬티가 있었다.
“후후....♥”
주인님의 유전자 DNA가 담겨 있는 극비 물품.
이하영은 그것을 집어 들고, 스-읍 냄새를 맡아보았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마지막으로 훔쳤던 최신 팬티였기에 보존이 아주 잘 되어 있었다.
“하-아....♥”
단 한 번의 냄새만으로도 구원자의 역겨운 악취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
이하영은 몇 차례 더 스-읍 스-읍 냄새를 들이킨 뒤 물품 보관소 안에 남아 있는 ‘약혼반지’를 꺼냈다.
비록 울퉁불퉁 도금처리도 제대로 안 된 형편없는 반지이지만, 이하영에겐 그 어떤 반지보다 소중한 반지였다.
-스윽.
이하영은 그 반지를 왼손 약지에 낀 다음 싱긋 웃었다.
그리고 여러 관객의 축복을 받으며 정성민과 함께 레드카펫을 밟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의 멋진 양복차림과,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게 바로 섹스지....”
구원자와 나눴던 그 역겨운 행위?
그것은 섹스가 아니다.
섹스란 육체적 접촉을 통해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것.
비록 팬티를 매개체로 한 간접 접촉이긴 하나, 어쨌든 정서적 교감을 나누지 않았는가. 자신에겐 주인님의 팬티도 있고 주인님이 준 약혼반지도 있다.
-스읍.
그래. 이게 바로 섹스다.
이하영은 침대에 몸을 던진 뒤 정성민의 팬티를 꼬옥 껴안고 잠을 청했다.
그녀의 왼손 약지엔 마감 처리에 실패한 울퉁불퉁한 가짜 다이아가 반짝이고 있었다.
***
다음 날.
정성민은 대구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정성민과 함께 동승한 이희연은 사이비 종교 대구지점의 성과와 전도 방식을 설명해주고 있었고, 다른 차에 탑승한 엘레나는 한국어 강사로부터 한국말을 배우고 있었다.
“자-아. 주인님의 이름부터 제대로 발음해봅시다. 정.성.민”
“줭. 쉉. 민.”
“..... 그게 아니고요. 잘 들으세요. 정-성-민.”
“줭-쉉-민.”
“... 하하하. 자-아. 천천히 해볼 테니 잘 따라해보세요. 저엉-서엉-미인.”
“줘엉-숴엉-미인”
“.....”
순탄치 않은 한국어 교육.
아무래도 갈 길은 멀어 보였다.
허나 한국어 강사는 안경을 치켜 올리며 더욱 열을 올렸다.
이년의 발음 교정을 잘 해주기만 하면 수백 만원의 돈이 약속되어 있으니, 반드시 이년의 좆 같은 발음을 고쳐야 한다.
“하하하하하. 자-아. 다시 한 번.....”
그렇게 미간을 빠-득 구긴 채 강의를 이어나가는 한국어 교사.
한편, 이하영은 구원자에게 마피아의 기밀 서류를 넘긴 뒤 그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었다. 육중한 엉덩이를 기계식 의자에 깔고 앉은 그는 이하영이 건넨 서류를 슥 훑어본 뒤 씨익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