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1화 (191/303)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노인.

바닥에 쓰러진 채 게거품을 물고 있는 저 초라한 모습이, 아빠의 마지막 모습.

“카하학! 캬학! 카흐윽!”

허나 그 마지막 모습이 어딘가 기이하다.

곧 죽을 것처럼 컥컥대던 그가, 두 눈과 입으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온몸의 관절이 뚜둑- 뚜둑- 꺾이면서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지 않은가.

“캬학! 크햐아악!”

땡볕의 생크림케익처럼 흐물흐물 녹고 있는 이반 벨린의 피부.

머리가 벗겨지고, 이가 빠지면서도,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는 그의 충혈된 눈동자.

엘레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공포로 몸이 굳어버렸다.

“캬하하하학!!”

이제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관절이 제멋대로 꺾이고 온몸의 피부가 녹아내려 괴물처럼 변한 그는, 마치 거미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려 기이한 형태로 관절이 꺾인 두 팔과 다리로 지면을 받치고 있었다.

-사사사사사사삭!!

캬하하학-! 괴성을 지르며 엘레나에게 기어가기 시작하는 이반 벨린.

이에 엘레나는 곧바로 그로부터 달아나기 시작했다.

11살 ‘그 사건’ 이후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공포에 사로잡혀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정도로 뛰고 또 뛰었다.

-사사사사사사삭!!

하지만 저 괴물의 기이한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건지, 그렇게나 관절이 뒤틀렸으면서도 전력 질주하는 자신보다 더 빠른 괴물이었다.

“흐으으으...”

엘레나는 겁먹은 얼굴로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두둑- 두둑- 목이 꺾이며 빠른 속도로 자신을 추격하고 있는 이반 벨린이 있었다.

“캬햐아아아아악!”

그때, 턱관절이 아래로 쭈욱- 찢기며, 크게 아가리를 벌린 괴물.

괴물의 이가 빠진 곳엔 날카로운 짐승의 이빨이 새로 솟아나 있었다.

놈은 그대로 점프하여 엘레나에게 접근한 뒤, 그대로 그녀의 얼굴을 뜯어 삼켜버렸다.

***

“엘레나... 엘레나...!”

몽롱한 의식 속, 자신을 부르고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

엘레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윽고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 시절의 이반 벨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아빠...”

“걱정했다. 악몽이라도 꾼 거니?”

엘레나는 몸을 일으키며 이마를 짚었다.

괴물로 변해버린 이반 벨린의 모습이 잔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으윽...!”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무슨 꿈을 꿨는지 잊어버리게 되었다.

분명 끔찍한 악몽을 꾼 것 같았는데,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괜찮다. 겁먹을 거 없어. 네겐 내가 있지 않느냐.”

에반 벨린은 그렇게 말하며 식은땀으로 가득한 엘레나를 안아주었다.

엘레나는 근육질로 가득한 이반 벨린의 나체에 안겨 마음의 안정을 느꼈다.

“아빠...”

그의 품에 안기자, 불안했던 마음이 씻겨 내려가고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엘레나는 젊은 시절의 잘 생긴 이반 벨린을 보며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우움....후우움....♥”

이윽고 키스를 나누기 시작하는 둘.

엘레나는 거대한 이반 벨린의 자지를 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그와 체액을 섞었다. 그녀는 그의 것을 받아들일 생각에 허벅지를 비비며 애액을 분비하기 시작했다.

“.....어?”

하지만 일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서늘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엘레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곤 현 상황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 내가 아버지와 이런 사이...였나? 나는 분명... 아버지를....’

ㅡ죽였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자신을 안고 있는 이반 벨린의 모습이 급격하게 노화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는 병원복 차림을 한 채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엘레나, 왜 나를 죽였지?”

등골을 타고 오르는 소름 돋는 감각.

이윽고 엘레나는 잊고 있었던 모든 기억을 기억해내게 되었다.

그녀는 이반 벨린이 괴물로 변하기 전에 서둘러 달아나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허억...”

엘레나는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문을 박차고 나온 곳엔 긴 복도가 있었는데, 복도에 끝에 다다르자 문이 하나 보였다. 엘레나는 곧바로 문을 활짝 열었다. 그곳엔 아까 지나간 곳과 똑같은 구조의 복도가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하지만 이곳의 구조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엘레나는 곧바로 복도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괴물로 변한 이반 벨린이 쫓아오기 전에, 어서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

-벌컥!

그렇게 복도 끝에 도착하여, 문을 열었다. 그곳엔 또 하나의 복도가 있었다.

-벌컥!

이번에도 복도 끝에 도착하여, 문을 열었다. 그곳엔 또 하나의 복도가 있었다.

-벌컥!

역시 이번에도 복도가 있었다. 이와 같은 구조는 계속해서 반복, 반복, 또 반복되었다.

-벌컥!

이번에는 다른 곳이 나올까.

엘레나는 그런 희망을 품으며 21번째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곳엔ㅡ.

“카흑...캬흐흑....쿠욱....키욱....”

괴물로 변하고 있는, 이반 벨린이 있었다.

이곳은 처음 이반 벨린과 있었던 고모네 집의 안방이었다.

“아...아아...으으으...”

엘레나는 좌절했다.

그렇게 이 괴물에게 벗어나려 달렸는데, 결국 다시 이곳에 오게 되다니.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엘레나는 다시 문을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탓. 탓. 탓. 탓. 탓. 탓.

모든 복도의 문을 열어뒀기에 다시 문을 열 필요는 없었다.

엘레나는 한 줄로 이어진 복도를 뛰고 또 뛰었다.

혹시라도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문이 있길 기대하며, 계속해서 복도를 달렸다.

-사사사사사사삭!!

그때, 자신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는 괴물의 발소리.

엘레나는 엉엉 흐느끼며 더욱 뜀박질에 박차를 가했다.

그녀는 괴물이 자신을 쫓아오지 못하도록 통과한 복도의 문을 잠그고 뛰었다.

“.....하으으.”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뛰어온 곳엔, 처음 이반 벨린과 함께 있었던 그 방이 그대로 있었다. 지금 그녀의 눈엔 6번째 복도쯤에 괴물로 변한 이반 벨린이 자신이 잠근 복도 문을 쾅-쾅-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캬-학!?”

그때, 자신의 흐느낌을 듣고 뒤를 돌아보는 괴물.

괴물은 엘레나를 발견하자마자 괴성을 내질렀다.

이윽고 괴물은 다시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엘레나에게 다가갔다.

-사사사사사삭!!

빠른 속도로 네발로 기어오고 있는 괴물.

엘레나는 재빨리 앞으로 뛰어가 괴물이 방으로 들어오기 전 문을 잠갔다.

곧이어 쾅! 쾅! 쾅! 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하으으...으으으으...”

엘레나는 바닥에 쓰러져 흐느껴 울었다.

자신에게 닥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엘레나”

자신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엘레나는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

목소리의 주인을 보자 침묵하는 엘레나.

엘레나는 또각- 또각- 구두굽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정성민을 보았다.

말끔한 정장 차림의 그는 쓰려져 있는 그녀에게 다가간 뒤,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엘레나와 시선을 맞췄다.

“어때. 악몽 속에 갇힌 기분은.”

“.....”

악몽 속에 갇힌 자신.

엘레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정성민을 노려보며 짓씹는 듯한 음성을 내뱉기 시작했다.

“전부 네 짓이야? 아빠를 저런 괴물로 만든 게?”

자신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리는 정성민.

그가 말했다.

“아니. 저 괴물은 네가 만든 거야. 아버지에 대한 네 죄책감이, 저런 괴물을 탄생시킨 거지”

-쾅! 쾅! 쾅! 쾅!

방 전체를 울리는 소음 속, 침묵하는 엘레나.

그녀는 정성민이 말한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생각해보았다.

이내 생각을 마친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난 죄책감 같은 거 없어. 나는... 아빠를 명예롭게 해줬을 뿐이야. 그런 별 볼일 없는 여자에게...”

“엘레나.“

그때, 엘레나의 말을 끊으며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얹은 정성민.

그가 말했다.

”네가 한 짓은 살인이야. 명예를 지키니 뭐니, 다 개소리지.“

”.....다, 닥쳐... 나는... 나는 아빠를....“

”알고 보면 참 초라해. 네가 살아온 인생이. 넌 결국 이반 벨린의 딸로서도 사랑받지 못했고, 여자로도 인정받지도 못했어. 그에게 너는 그저 괴물이었지.“

”.....“

”그래서 저 괴물이 탄생한 거야. 그에 대한 네 애정이, 그에 대한 네 증오가, 그에 대한 네 죄책감이 저런 괴물을 탄생시킨 거지.“

”.....“

정성민은 그렇게 할 말을 끝마치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혼란스러워하는 엘레나를 내려보며 다음 말을 이었다.

”엘레나. 저 괴물이 네 마음속에 있는 한 너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어. 한평생 이반 벨린에게 사랑받지 못한 너는, 네가 사랑한 모든 남자를 의심하게 되겠지. 이미 그렇게 죽은 네 애인만 여럿이고.“

”나, 나는... 나는.......“

”시간은 충분히 줄 게. 저 괴물을 네가 감당할 수 있을지, 한번 두고 보자고.“

정성민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딱-튕겼다.

그러자 문이 뜯겨나가며 괴물이 엘레나를 덮쳤다.

엘레나의 의식은 다시 암전되었다.

***

“엘레나, 왜 나를 죽였지?”

엘레나의 악몽은 반복되었다.

그녀는 괴물에게 죽고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공포가 점점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하여 그녀가 괴물에게 65번째 살해당한 뒤에는, 더 이상 괴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카흑! 캬흐으읏! 쿠훅!”

그녀는 더 이상 도망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제 그녀는 추악하게 괴물로 변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두 눈에 담담히 담았다. 그러자 괴물은 더 이상 엘레나를 좇아오지 않았고, 그저 자신의 변형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였다.

“크르르...크르르륵...”

괴물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온몸의 관절이 꺾이고 살점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견디며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중 괴물은 새로운 변형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괴물의 몸통 한 곳에 부글부글 세포가 끓기 시작하더니, 축구공만 한 무엇이 푸확 치솟아 올랐다.

“.....”

돌연 괴물의 몸속에서 솟아오른 축구공만 한 살덩어리. 이윽고 그것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형태를 다듬기 시작했다.

마치 세포가 분열을 일으켜 생명체가 되듯, 살덩어리는 분열을 반복하여 어떤 사람의 얼굴을 갖추게 되었다.

“... 엘레나.”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는 자신의 얼굴이었다.

-부글부글부글

괴물의 변형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괴물의 몸에서 엄마의 얼굴이 솟아올랐다.

세 가족은 한 몸에 뒤엉킨 채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너는... 나였구나.”

엘레나는 변형을 마친 괴물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처럼 보였던 괴물은 최종적으로 변형을 끝마쳐 자신의 얼굴을 중심으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괴물은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이 절망 어린 얼굴은 끝끝내 딸로서도, 여자로서도 사랑받지 못한 내면의 얼굴이었다.

-끼긱. 끼기긱...

그때, 이반 벨린의 얼굴이 기괴하게 꺾이더니 자신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악귀 같은 얼굴은 한 채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였다.

“엘레나, 왜 나를 죽였지?”

자신이 아빠를 죽인 이유.

엘레나는 이제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잖아요..... 난 당신에게 내 인생 전체를 부정당했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반 벨린을 죽이는 데 망설인 그녀.

하지만 그녀가 링겔에 약물을 주입한 건, 자신을 괴물이라 부르는 아빠의 확언 때문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 공포에 가득한 눈 때문이었다.

“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못 하는 건데..... 난 원래 그런 사람이란 말이야....”

엘레나는 엉엉 울부짖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원래부터 영악했고, 원래부터 눈치가 빨랐으며, 원래부터 감정을 속이는 데 능한 아이였다. 엘레나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예전처럼 ‘똑똑한 공주님’이라며 사랑해주길 바랐을 뿐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때, 귓속을 파고드는 누군가의 걸음 소리.

고개를 돌리니 이곳으로 오고 있는 정성민이 보였다.

그는 어느새 자신의 옆에 선 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괴물을 보고 있었다.

“네 마음의 실체를 보니 어때. 받아들일 수 있겠어?”

괴물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하는 정성민.

엘레나가 답했다.

“... 아니. 내 마음을 마주하고 있기가 너무 괴로워....”

“그럼 어떻게 하고 싶어.”

“... 다시 시작하고 싶어. 나도 사랑받고 싶어.”

정성민은 엘레나의 답을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가락을 딱 튕겨,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곳은 커다란 침대가 놓인 하얀 방이었다.

“네 현실은 악몽이야. 그러니, 꿈속에서 행복한 여자로 살아.”

정성민은 그렇게 말하며 침대 위에 올라왔다.

어느새 그의 몸은 나체가 되어있었고, 엘레나 또한 나체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를 받아들여. 네 인생을 내게 맡기면, 넌 누구보다 행복한 여자가 될 수 있을 거야. 비록 거짓된 기억 속이지만 말이야.”

정성민이 꾸며낸 거짓으로 가득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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