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2화 (172/303)

그녀는 그곳에서 라이터 하나를 산 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공터로 온 다음, 가슴팍에 있는 사진을 꺼냈다.

“.....”

그녀가 꺼낸 사진은 정성민과 1주년 때 찍었던 커플 사진.

이 사진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커플 사진으로, 내내 지갑이나 품에 넣고 다닐 만큼 아끼는 사진이었다.

“...하하.”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그 사진을 보자 진한 미소가 번졌다.

언제 봐도 아름답고 완벽한, 소중한 순간이 담긴 사진이었다.

허나 그런 미소도 잠시뿐, 이내 미소는 점점 부서질 듯 불안정해지더니, 흐느낌과 함께 흩어 사라져버렸다.

-화륵.

이제는 보내야 한다.

이하영은 라이터를 켠 뒤 사진 끄트머리에 불을 붙였다.

사진에 불이 붙자, 마음도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듯했다.

“미안해... 이렇게 보내서 미안해.”

이하영은 혼자 하는 이별을 했다.

타들어 가는 사진을 보며, 주인님이 아닌 정성민에게 하고 싶은 말을 고백했다.

“마... 많이.. 많이 힘들었지...내가, 내가 못 나서... 고작, 이런 여자라서....”

-화르르륵....

“넌. 넌 내게 모든 걸....모든 걸 주었는데...흐으..하으으으...그런데 난....”

이하영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입을 크게 벌린 채 꺽- 꺽- 목 매인 울음을 터트렸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고, 콧물이 분비되고, 침이 질질 흐를 만큼 미친 듯이 울었다.

이별의 과정은 이토록 괴로운 것이었다.

“평생... 평생 잊지 않을 게... 네가 준 사랑.... 영원히 간직하고 있을 게...”

사진은 어느덧 거의 다 타고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의 얼굴만 남았을 뿐, 그 밑은 새카만 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영원히 잊지 않을 게... 내가 너한테 저질렀던 짓들... 평생....평생 속죄하며....그, 그렇게...살아갈 게....”

이하영은 완전히 연소 되어 재가 된 사진을 두 손으로 모았다.

그리고 그것을 꼭 쥔 다음, 가슴에 안았다.

그렇게 그녀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잘가.... 이젠 진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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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헉!”

정확히 왼쪽 가슴에 꽂힌 적의 탄환.

안지연은 그 총격에 쓰러지고 말았다.

허나 이대로 쓰러져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곧 적의 탄환이 빗발칠 게 뻔하다.

-투다다다!!

안지연은 재빨리 몸을 던져 삼면을 보호할 수 있는 엄폐물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호흡을 고른 뒤, 탄환이 맞은 곳을 확인해보았다.

“크윽...”

시퍼렇게 멍이 든 왼쪽 가슴.

그나마 방탄복을 입었기에 여기에 그칠 수 없었다.

만약 최고 등급 방탄복을 입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양쪽으로 에워싸였어. 이대로라면...’

허나 지금은 이깟 상처 따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정전되었던 불이 생각보다 빠르게 복구되어 어둠을 이용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압도적이로 유리했던 전장의 이점이 한순간에 증발되어 버린 상황.

거기에 더해 적의 증원병력도 다섯이나 추가되어 수적으로도 불리해졌다.

-후욱.

안지연은 야투경을 벗은 뒤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권총에 단 소음기도 뺀 뒤, 여분으로 들고 온 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상황을 지켜보았다.

앞뒤 양쪽으로 적이 조여 오고 있었다.

‘..... 여기까지인가.’

어둠을 이용할 수도 없고, 퇴로도 막혔다.

적의 증원병력으로 인해 사방으로 포위된 상태이다.

엄폐물에서 일어서면 즉각 벌집이 될 게 뻔하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승산은 없었다.

‘주인님.....’

안지연은 눈을 감고 마지막으로 주인님을 떠올려보았다.

그분과 하나가 되어 여자로서 인정받은 그 날을, 일평생 여성성을 버리고 살아왔던 자신에게 ‘주인님의 여자’로서의 새 삶을 부여받은 영광스러운 순간을 마지막으로 떠올려보았다.

“후우-.”

마음의 준비는 끝났다.

이젠 최선을 다해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야 할 때.

안지연은 허리춤에 찬 ‘구조요청’ 버튼을 누른 다음 탄창을 갈아 끼웠다.

소형 카메라가 비추는 적의 상황을 주시하며 기습 타이밍을 노렸다.

-휘융-! 퍽!

그렇게 엄폐물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공기 가르는 소리와 함께 포위망을 좁혀오던 적의 증원병력 중 하나가 쓰러졌다.

“.....?”

-휘융-! 퍽!

이번에도 마찬가지.

탄환이 공기를 가르는 그 특유의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더니 다른 한놈의 머리가 터지며 툭 쓰러졌다.

정확히 관자놀이를 관통한, 솜씨 좋은 저격이었다.

“Блядь! где ты!”

고래고래 고성을 지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적의 전투원들.

공포를 느낀 그들은 잔뜩 흥분하여 사방에 총기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허나 그런다고 해서 저격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휘융-! 퍽!

어느새 세 번째 저격.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관자놀이를 꿰뚫는 어마어마한 실력자.

심지어 정체불명의 저격수는 움직이는 대상도ㅡ

-휘융-! 퍽!

정확하게 맞추어 죽였고, 엄폐물에 몸을 숨긴 적 또한ㅡ

-휘융-! 퍽!

어떻게든 사각을 찾아내어, 정확히 관자놀이를 꿰뚫어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총알 하나에 한 놈씩 이곳에 있던 일곱의 전투원이 모두 사망했다.

“.....”

안지연은 이 모든 상황을 숨죽여 관망했다.

그녀는 정체불명의 저격수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며 그의 위치를 찾아보았다.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우우웅~

그때였다.

돌연 휴대폰이 울리더니, 메시지 하나가 도착하는 게 아닌가.

안지연은 이 뜬금없는 타이밍에 도착한 메시지를 보았다.

[나다.]

나다.

발신인은 안지연의 주인인 정성민.

메시지의 내용은 그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으로 끝.

“아아.....”

허나 안지연에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단지 존재를 알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고, 가슴이 벅차오르고, 희망이 샘솟았다.

주인님께서 자신을 구하러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너무 큰 감동이자 은혜였다.

“주인님.....”

다시는 주인님을 못 보는 줄 알았다.

그분의 소중한 사랑을 다시는 못 받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주인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자, 눈물이 차올랐다.

‘역시 주인님이야. 주인님은 위대해.’

완벽한 은신.

총알 한 발에 한 놈.

도주를 허용하지 않는 위치선정.

모든 게 완벽한 저격이었다.

막무가내로 이곳에 쳐들어온 자신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진정한 실력자였다.

-후우웅!

그때, 안지연은 정성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위쪽 4층 난간에서 밧줄 하나가 떨어지더니, 검은색 잠입복을 입고 아래로 하강하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딱 봐도 그녀의 주인님이었다.

-우우웅! 탁! 우우웅! 탁!

피아식별을 위해 인면피구를 제거한 정성민.

그는 마치 특공대원처럼 능숙하게 밧줄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이윽고 지상에 착지한 정성민은 엄폐물에 있는 안지연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에 안지연 또한 엄폐물에서 나와 자신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오고 있는 정성민을 마중 나갔다.

“이쪽으로 와라.”

허나 정성민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합류하더라도 몸을 숨길만 한 안전한 곳에서 합류를 했다.

-와락!

그렇게 안전 장소를 확보하자, 안지연은 곧장 정성민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아무런 보고 없이 단독행동을 한 자신의 불경을 사죄하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주인님. 저 때문에 이런 위험한 곳에....”

울먹이며 뒷말을 흐리는 안지연.

허나 정성민은 그녀를 다정하게 안으며 말했다.

“무사했으면 됐다. 하지만 다음부턴 꼭 보고하고 움직여.”

“네... 반드시 그럴게요.”

***

안지연을 끌어안은 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켜주었다.

내게 보고조차 하지 않고 이런 위험한 곳에 몸을 던진 것은 화가 나지만, 아무렴 안지연은 내가 인정한 내 여자다.

다시는 이런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다.

“겁먹었나? 몸이 떨리는군.”

다만, 오들오들 떨리고 있는 그녀의 어깨.

심리 상태가 불안하면 탈출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주, 주인님을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괜찮다. 이제 내가 왔으니. 네가 죽을 일은 없어.”

자기 확신이 가득한 목소리로 내뱉은 말.

내가 왔으니, 네가 죽을 일은 없다.

“네.”

그 말 하나로 안지연의 떨림이 멎게 되었다.

그녀는 마치 신을 영접하는 듯한 눈으로 날 보며 말했다.

“주인님이시니까요. 주인님은 절대적이니까요.”

음, 역시 세뇌가 완벽하게 된 그녀.

그녀는 실제로 나를 신처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엔 믿음과 사랑이 가득했다.

“좋다. 그러면 이왕 온 김에 교육이나 하지.”

“... 교육이요?”

“그래. 잠입은 처음이잖아. 어설픈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아... 죄송해요...”

뒷말을 흐리며 얼굴을 붉히는 그녀.

다만 이런 잠행, 암습을 한달 밖에 교육받지 못했으니 어설플 만하다.

그 점을 고려해봤을 때 이 정도 했으면 꽤 잘한 편이긴 하나, 칭찬은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간에 쫓기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퇴로확보가 우선이야. 네가 위험에 처한 것도 뒤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지.”

“네.”

“...적어도 진입로가 될 만한 곳엔 무슨 장치든 해둬야 한다. 아니면 뒤를 잡힐 수 있거든. 방금 네가 그랬듯이”

난 그렇게 말하며 적의 지원병력이 왔던 곳에 버튼형 폭발물을 설치해두었다.

그리고 적의 시신이 입고 있는 옷을 벗긴 뒤 한 벌을 안지연에게 던져주었다.

“상황에 맞는 변장은 필수야. 1초라도 적을 헷갈리게, 또는 망설이게 만들 수 있다면, 그 1초 때문에 목숨을 구할 수도 있어.”

난 그렇게 말하며 내 덩치에 맞는 복장을 입었다.

물론 안지연 또한 그녀에게 맞는 복장을 입었다.

“그리고 적이 다수 포진된 곳엔 저격 후 진입이 기본이다. 아마 스승님한테 배웠을 텐데, 왜 저격하질 않았지?”

“.....그, 아, 아직... 총기류는... 권총 밖에 못 다뤄서요...”

“하. 잘도 그런 실력으로 여길 기어 들어왔군.”

“죄송해요...”

어쩐지, 뭔가 엉성하다 싶었다.

암살의 기본은 저격인데, 저격 없이 요인을 암살하려 하다니.

스승님께 전해 듣기로 안지연의 재능이 출중하다 듣긴 했으나, 역시 한 달 만에 저격까지 마스터하는 건 무리였나.

애초에 그녀는 총기류를 다뤄본 적도 없고.

“... 본국으로 귀환하면 스승님부터 찾아가라. 넌 아직 더 준비가 필요해.”

“네.”

실전 경험을 쌓게 하고 싶어 러시아에 투입시켰는데,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안지연. 그녀는 아직 더 배워야 한다. 나도 이렇게 되는 데까지 많은 노력을 들였고, 많은 시간을 썼으니까.

“그럼 작전 속행하지. 이왕 온 김에 작전은 성공시켜야지.”

난 그렇게 말하며 드미트리의 집무실을 가리켰다.

정보에 따르면 드미트리는 비상시 집무실의 비밀방에 몸을 숨긴다 했으니, 그곳에 진입하여 놈을 처리하면 될 것이다.

“네, 주인님.”

***

이후, 정성민은 속전속결로 드미트리를 암살할 수 있었다.

이미 드미트리의 경호원들이 대부분 처리된 상황이기에, 집무실을 뚫고 그가 있는 비밀방을 찾는 데까진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수면 가스를 쓴다.”

다만, 드미트리의 비밀방에 진을 치고 있는 정예병력이 까다로웠다.

하여 정성민은 수면 가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쉬이이이익...

강력한 수면 성분이 포함된 특제 수면 가스.

정성민은 정확히 3분을 기다린 뒤, 방독면을 쓰고 비밀방 안으로 침투했다.

그곳엔 드미트리와 그의 부하 다섯. 그리고 마피아 초대 회장의 딸인 이반 엘리나가 잠들어 있었다.

“엘레나만 놔두고 다 죽여라.”

“예.”

주인의 명령에 따라 잠든 드미트리와 조직원들의 목을 따는 안지연.

그 사이 정성민은 고이 잠들어 있는 이반 엘레나를 보았다.

굴곡진 몸과 찰랑이는 금발이 매력적인 미인이었다.

“주인님. 전부 처리했습니다.”

그사이, 고이 잠든 드미트리와 그 일당을 영면시킨 안지연.

정확히 급소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을 확인한 정성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가 뒤돌아서며 말했다.

“임무 완료됐군. 퇴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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