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160/303)

이제 내게 남은 마지막 두려움을 제거해야 할 때다.

나는 칼자루를 꽉 쥐어 녀석에게 돌진했다.

-파앗! 팟! 팟!

그리고 역시, 녀석의 힘은 상당했다.

내가 녀석을 존경하고 두려워했던 만큼, 녀석의 가감 없이 내 망상의 힘을 발휘했다.

-푸욱!

허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내가 스스로 일어선 그때부터.

뒷세계의 정점을 목표로 움직일 때부터.

녀석에게 복수를 다짐한 그 순간부터.

내 안의 두려움은 거의 희석되어 있었다.

나는 녀석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럴 자격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주인님...]

그렇게 녀석까지 처치하자, 아련한 이희연이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날 애타게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 이희연.”

그렇게 난, 악몽에서 깨어나 현실의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걱정 한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절대, 절대 전 주인님을 배신하지 않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꼭 쥐었다.

좀전의 악몽이 한순간에 달아날 만큼 그녀의 온기는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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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희연과 저녁을 먹으며 생각해봤다.

내가 왜 그런 악몽을 꾼 것인지.

그 결과, 이렇게 한가하게 데이트하는 것에 죄의식, 혹은 두려움을 느낀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주인님과의 결전을 앞두고 이렇게 한가하게 시간을 보냈다간 악몽 속 같은 결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마 난 그런 두려움 때문에 그와 같은 악몽을 꾼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련하기도 하군.’

허나 그런 악몽이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오히려 꿈속에서나마 내 두려움의 자아를 극복할 수 있어, 한결 후련한 마음이었다.

나는 주인님을 이기기 위해 충분해 노력했고, 그에 합당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심을 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조바심을 내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지금은 내가 가진 것을 굳건히 하며 중심을 잡아야 할 때이다.

그저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랫것들을 독려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군.”

“네?”

적막한 밤길.

내 중얼거림에 이희연이 우뚝 멈춰섰다.

난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 꿨던 악몽 말이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지.”

“아... 아녜요.”

“아니긴. 너 눈물까지 흘렸잖아.”

“.....”

뭔가 대답하려 입을 벌리다 이내 침묵으로 답하는 그녀.

난 다시 앞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오늘이 마지막일 거다.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은.”

악몽을 꾸며 비참한 혼잣말을 중얼거렸던 나.

그 때문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무너졌던 이희연의 마음.

난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그렇게 말했다.

이에 이희연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후후. 주인님의 약한 모습을 저만 독점한 거네요.”

“나름 횡재한 셈이지.”

“프흐흐”

기분이 좋아진 듯 웃음을 터트리며 앞장서는 그녀.

난 그녀를 따라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호텔을 들렀다.

우린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서로를 탐하며 혀를 섞었고, 곧바로 침대로 돌진해 섹스를 시작했다.

“하응! 하앙! 흐앙!”

축축히 젖은 질 내부.

난 그녀의 질 안에 자지를 삽입한 다음 부드럽게 허리를 움직였다.

날 바라보며 헐떡이는 그녀의 얼굴을 잡고 진득한 키스를 나눈 뒤, 허리를 움직여 찰싹 달라붙은 질주름을 고스란히 느꼈다.

“우움...후움...우움...♥”

내 목을 끌어안은 두 팔.

내 허리를 조인 두 다리.

격정적으로 섞이는 혀.

날 바라보는 애타는 눈빛.

그 모든 행위 속에서 그녀의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대학생 정성민부터 주인님이 되기까지 변함없이 날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이 와닿았다. 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피 터지게 노력하던 그녀의 일상 하나하나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사랑해요...사랑해요 주인님...♥”

온 진심을 다해 내게 사랑을 속삭이는 이희연.

문득 지금 바로 이 순간, 그 날이 떠올랐다.

이하영이 구원자에게 팔려간 뒤, 이희연이 내 성처리 담당으로 온 날.

자신을 사랑하라고 강요하며 내게 욕설을 퍼붓고 구타를 하던 그 날.

‘말해! 말하란 말이야! 날 여주인님이라고 인정해!’

그 당시 난 완전히 정신이 무너져 이하영을 여주인님이라 모시며 복종하고 있었고, 이희연은 이하영의 빈자리를 탐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희연은 자신을 새로운 여주인님으로 모시라고. 그러면 자신이 책임지고 나를 돌봐주겠다고 말했다.

허나 이희연에게 전혀 마음이 없었던 나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에 그녀는 악을 쓰며 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하영 그년만 버리면 돼! 내게 여주인님이라고 말해! 말하라고!’

‘.....’

‘씨발! 말해! 말하라니까! 그럼 내가 널 지켜준다니까!’

‘.....’

‘사랑해! 사랑한다고 이 개새끼야! 사랑한다니까?’

‘퍼억! 퍼억! 퍼억! 퍼억!’

악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날 구타하며 사랑을 강요하는 그녀.

지금 생각해보니, 그 모습은 상처받은 그녀의 발악이었다.

날 구하려다 끝내 미스터 최에게 타락한 그녀가 내게 외치는 절규였다.

이 꼴로 전락해버렸는데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나에 대한 분노였다.

‘사랑해... 오래 전부터 널 좋아해왔어... 사랑해...’

그녀는 언제나 내게 진심으로 부딪혀왔다.

그리고 오직 나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하영과 날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을 때도, 새로운 여주인님을 자처하며 내게 사랑을 강요할 때도, 끊임없이 내게 거절당해 좌절했을 때도, 그리고 끝내 내 사랑을 얻지 못해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데이트를 구걸했을 때도.

그녀는 항상 나를 원하고 있었다.

날 갈구하며 내 사랑을 애원했다.

“이희연.”

그리고 그녀는 지금껏 노력해오고 있었다.

내 칭찬을 받기 위해, 내게 인정받기 위해, 내 사랑을 받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와닿지 않을 수 없었다.

“네게 한 가지 약속하지.”

난 그녀를 끌어안았다.

질 깊숙이 자지를 밀어 넣어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

그리고 친구에서 노예로. 또 노예에서 비서로, 그리고 마침내 내 여자가 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난 그녀를 인정할 준비가 되었다.

“내 숙원을 모두 이루고 나면, 내 씨를 품게 해주겠다.”

“.....!!!”

크게 확대되는 그녀의 동공.

천천히 벌어지는 입.

“공식적인 내 짝 중 하나가 되는 거다. 너라면 자격이 있지.”

날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한 그녀.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내 오른팔이나 마찬가지인 그녀.

난 그런 그녀에게 미래를 약속하기로 했다.

이제 난 그녀를 친구도, 노예도, 비서도 아닌 여자로서 대우해주기로 했다.

“주, 주인님.....”

그녀가 울먹였다.

그저 친구로서 먼발치에서 날 바라만 봐야 했던 그녀가 내 품에 안겨 울먹였다.

끄윽, 끄윽 올라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어느새 눈물범벅이 된 그녀가 숨죽여 울었다.

-스으윽.

난 말 없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허리를 움직여 그녀의 자궁을 찔러 쾌락을 주입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만 지금은 널 잠시 떠나있어야 한다.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지.”

“.....러시아로 떠나실 건가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묻는 그녀.

역시 예상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래.”

“.....”

내 답에 떠나는 이유를 물어보듯 날 응시하는 그녀.

난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 조금 생각을 해봤어. 내가 이곳에 있는 게 맞는 건지. 내가 진정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

“그렇게 고민해 보니 확실해지더라고. 이곳은 나와 안 어울려. 집무실에 앉아 사인만 하는 거,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고 있는 거. 난 이런 일에 어울리지 않아. 이걸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너지. 난 그저 방향성만 제시했을 뿐, 스트리밍 사업을 키운 건 모두 네 노력 덕분이었어.”

퉁퉁 부은 눈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난 피식 웃으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 하는 건, 부수고 망가뜨리고 엉망으로 만들어서, 빼앗아오는 거야.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총동원해서 지배하는 거지.”

내가 가장 잘하는 것. 그것은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이희연은 그 사실을 인정하듯 ‘주인님은 지배자시니까요’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니, 이곳 일은 네게 맡길게. 내 빈자리를 네가 맡아줬으면 해.”

이희연은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 빨리 돌아오셔야 해요. 저, 전... 주인님의 여자잖아요...”

뒷말이 쑥스러운 듯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녀.

난 피식 웃으며 이희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의 두 볼에 고인 눈물을 닦고 가볍게 키스해주었다.

“어차피 빨리 와야 해. 러시아 쪽 일 말고도 처리해야 할 게 많으니까.”

“네...”

“좋아. 그러면 기분 잡치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쑤욱!

“흐아아앗!!♥”

“하던 거나 마저 하지.”

“.....♥”

이윽고 우린 격정적으로 섹스를 하기 시작했다.

내 체력이 다 할 때까지, 또 이희연이 실신하기 직전까지 서로의 육신을 탐하고 또 탐했다.

그렇게 나는 늦은 새벽까지 그녀를 범했고, 농축된 대량의 정액을 그녀의 질 내부에 쏟아부었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그녀의 질내에 사정한 다음 한동안 서로를 안은 채 그대로 있었다. 그렇게 나와 이희연은, 서로를 안은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번에는 악몽 따위 꾸는 일 없이 편이 잠들 수 있었다.

***

다음 날 늦은 오후.

정성민은 자신을 호위할 최정예 요원 아홉과 살상용 무기를 챙겨 모스크바로 떠나는 밀항선에 몸을 실었다.

이희연은 선박이 작은 점이 되어 아득히 멀어질 때까지 정성민을 배웅한 뒤, 정성민이 인수인계한 일을 처리하러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스슥. 스스슥-.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보고서.

앞으로 처리해야 할 수많은 이슈.

이희연은 어깨에 짊어진 책임감을 느끼며 정성민의 도장을 들었다.

그의 표식이 새겨진 도장을 쾅- 쾅- 찍으며 주인님의 정식 대리인이 됐다는 것을 실감했다.

책임감이 저절로 솟아올랐다.

“후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

허나 미소가 절로 새어 나왔다.

마침내 주인님의 사랑을 얻은 그녀는,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다.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일하다 죽어도 상관없었다.

“나도 사랑받고 있어...”

먼발치에서 바라봐야만 했던 친구의 연인.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이하영을 바라보던 주인님의 눈빛.

그런데 이제는 주인님이 그런 눈빛으로 나를 봐주신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또 온몸으로 내게 사랑을 주신다.

마음이 너무 벅차올라 1분 1초가 행복하고 삶의 보람을 느낀다.

나는 주인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살아오고 있었구나.

‘이하영...’

그리고 비로소, 이희연은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이하영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이러한 사랑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던 그녀가, 이것을 남에게 야금야금 빼앗길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썩어 문드러져 가는지를.

‘후회하겠지. 죽도록 후회하고 있을 거야.’

문득 그때의 사건이 이해되었다.

이하영이 자신의 죽음으로 사랑을 증명하려 했던 그 날.

뒤늦게 밀려온 죄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기꺼이 목을 매달았던 그 날.

아마 이하영은 자신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목을 매달아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주인님을 배신한 자신을 자책하고 원망했을 것이다.

‘그래도 사랑받고 싶은 거구나. 뻔뻔하지만 이해할 수 있어.’

그럼 에도, 이하영은 사랑받길 원하고 있었다.

그토록 큰 죄악을 저질러 놓고도 주인님의 여자친구를 자처하고 있었다.

허나 이희연은 이하영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에 대한 원망과 자책. 그리고 후회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주인님의 용서만을 바라보고 살아갈 그녀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그리고 나처럼 주인님의 ‘진정한’ 용서를 받을 수만 있다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멍청한 년. 무리하기는...”

마피아 3대 후계세력 중 하나인 세르게이를 지원해 동맹을 결성하는 것.

이것은 모두 이하영의 머리에서 나온 계획이었다.

딱히 주인님의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스스로 나서 마피아 세력을 얻어내겠다는 그녀였다.

죽을지도 모르는 일에 뛰어들어 명을 재촉하는 멍청이였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주인님의 진정한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주인님의 씨를 품을 수 있는, 찬란한 미래를 약속받을 수 있을까.

그녀가 지은 죄가 그토록 큰데, 주인님의 그녀를 품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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