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4화 (154/303)

그리고... 불운을 불러온다는 작업반장의 말.

장민혁은 그 말을 곱씹으며 10년 전 일을 곱씹었다.

‘되던 일도 안 풀린다’는 그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문득 장민혁의 사고가 10년 전으로 되감긴다.

‘아빠! 이것 봐!’

뒷좌석에서 장난감을 자랑하는 사이, 잠깐 뒤를 돌아본 아빠.

그 직후, 콰아아아앙-! 세상이 부서지는 듯한 충격과 암전된 의식.

“나 때문이야...”

장민혁은 그 일을 떠올리며 자신을 탓했다.

역시 그때 자신도 죽었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했다고 서럽게 중얼거렸다.

“당신 때문이 아닙니다.”

그때, 웬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장민혁의 귀를 파고들었다.

장민혁은 황급히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자신을 굽어보고 있는 청년.

새카만 밤 속, 역광을 받아 후광이 일고 있는 그의 형상.

자신감 넘치는 태도, 잘생긴 얼굴.

근육질로 다져진 완벽한 몸.

“10년 전의 교통사고. 당신 탓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완벽한 그가,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

“누, 누구세요...?”

누구냐는 질문에, 남자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손을 뻗어 내밀어주었다.

장민혁은 홀린 듯이 그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10년 전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10년 전 사건의 진실?

장민혁의 동공이 크게 뜨였다.

“자세한 얘기는 차에서 할까요.”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고급 승용차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승용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민혁은 한동안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황급히 다리를 절뚝이며 그를 뒤따라 갔다.

“자, 잠깐만...! 10년 전 사건의 진실이라는 게...!”

-벌컥.

어느새 승용차에 도착한 청년은 문을 연 뒤 자신을 기다려 주었다.

장민혁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에게 뛰다시피 절뚝이며 다가갔다.

-절뚝.절뚝.절뚝.절뚝.

자신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완벽한 청년.

신의 아들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아우라.

삶의 벼랑에 다다른 장민혁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 청년이 자신의 마지막 희망이 되리라는 것을.

“타시죠.”

그렇게 필사적으로 승용차에 도착한 장민혁은 청년이 열어준 승용차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청년은 반대쪽 차문으로 빙 돌아간 뒤 나란히 옆에 몸을 실었다.

이윽고 차가 미끄러지듯 출발하였다.

“긴말 필요 없고, 이걸 보면 됩니다. 모든 진실이 이 안에 있으니”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테블릿 PC를 건네주었다.

장민혁은 테블릿 PC를 받은 뒤 안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의 숨이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하아...”

CCTV 파일, 매수된 경찰, 조작된 증거, 통제된 언론.

이 모든 것을 확인한 장민혁이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그 끔찍한 사고가 자신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왜... 왜 이걸 제게 보여주는 겁니까...”

그다음으로 느낀 감정은, 너무 복합적이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서러움.

또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 당신을 이렇게 만든 놈에게”

그리고 청년의 입에서 ‘복수’라는 단어가 나오자, 장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혼돈의 감정이, 정제되지 않은 복수심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저 같은 놈이...”

하지만 복수심보다 더 익숙한 것은 ‘패배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게 무엇이 있을까.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도 당신 같이 패배감에 쩔어 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나도 당신과 같던 시절이 있었다니.

장민혁은 청년의 말을 의심했다.

저토록 완벽한 사람이 자신과 같은 패배자의 삶을 살았을 리 없다.

“믿거나 말거나 그건 당신의 자유고, 지금부터 잘 보세요. 당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청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멈춰선 차.

그리고 다짜고짜 차에서 내리는 청년.

장민혁은 당황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뚜벅뚜벅 걸어가는 청년의 뒷모습을 보았다.

“!?”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익숙한 실루엣.

곰만 한 덩치에 근육질로 이루어진 ‘작업반장’의 실루엣.

그런 그에게 청년이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청년은 작업반장의 어깨를 톡-톡- 친 뒤 입을 열었다.

“왕태익?”

“...? 넌 뭐야?”

-퍼억!

돌연 왕태익. 그러니까 작업반장의 면상에 주먹을 꽂은 청년.

장민혁은 화들짝 놀라 청년을 말리러 절뚝거리며 뛰어갔다.

등에 용 문신을 새긴 작업반장은, 왕년에 알아주던 조폭이었다고 한다.

이대로 두면 청년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퍼억! 퍼억! 퍼억!

허나 황급히 절뚝이던 장민혁의 발걸음은 서서히 늦춰지다, 이내 멈춰섰다.

그리고 압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청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어린애 가지고 놀 듯 작업반장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격이 다르다.

그야말로 폭력의 격이 달랐다.

그 괴물 같던 작업반장이 저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주먹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저렇게 바닥을 기고 있다니.

“사, 살려주세요! 사 살려-!”

-퍼억!

청년은 사정을 두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작업반장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끄흐어어어...으으으...사, 살려...제발...”

그 염라대왕 같던 작업반장이 바닥을 기며 용서를 빌고 있었다.

청년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구걸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청년이 말했다.

“그럼 짖어.”

“.....”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콰직!

“으아아아아아!!!”

구둣발로 작업반장의 손가락을 짓밟은 청년.

청년이 다시 말했다.

“짖어.”

“...머, 멍! 멍! 머...하으...크흐으으으...머...하으으으...”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내다,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작업반장.

청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핥아.”

그리고 무자비한 명령을 내렸다.

이에 작업반장이 악에 받친 표정으로 소리쳤다.

“씨-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경찰에ㅡ!”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허나 반항은 일절 허용하지 않는 청년.

이윽고 압도적인 폭력 앞에 반장은 다시 무너졌다.

청년이 반장이 손가락 하나를 우-득 부러뜨리며 말했다.

“아홉.”

“끄-아아아아아아아!!!”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뒹굴거리는 반장.

청년이 입꼬리를 기괴하게 비틀며 말했다.

“이제 아홉 개 남았네. 더 시끄럽게 굴면 하나 더 부러뜨려줄게.”

“아-으읍...! 으읍!! 으읍!!”

하나를 더 부러뜨린다는 말에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은 반장.

그 사이 청년은 다시 침을 퉤- 뱉었다.

그리고 명령했다.

“핥아.”

“훕! 후루룹!”

이번엔 즉각적으로 바닥의 침을 핥았다.

이에 청년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똑바로 살아. 당신 같은 쓰레기 죽이는 거, 일도 아니니까.”

허세나 허풍 따위가 아니라, 진심처럼 느껴지는 청년의 말.

반장은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청년은 반장의 기대와는 다르게 손가락 하나를 더 부러뜨렸다.

-뿌득.

“으아아아아아!!!”

“이건 ‘내 사람’을 건든 값.”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장민혁에게 돌아온 다음 말했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기분이 어떻냐는 청년의 물음.

장민혁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동안 반장에게 당해온 온갖 부조리와 고통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다 산산 조각나는 걸 느꼈다.

가슴을 옥죄어오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야 제대로 숨을 쉬는 감각을 느꼈다.

청년은 그런 자신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게 바로 복수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하면 더욱 짜릿할 겁니다.”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장민혁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당신의 인생을 망친 놈들. 그놈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겠습니다. 당신이 내 손만 잡는다면.”

부모님을 죽여놓고, 그 이유를 부모님의 탓으로 돌린 진태곤.

그 자식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

이 미칠듯한 복수의 쾌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기회.

장민혁은 청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가로등 불빛을 받고 있는 청년의 얼굴을 보았다.

이 순간, 청년은 장민혁의 우상이 되었다.

***

같은 시각, 정성민의 본가.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이 집에 오랜만에 생기 넘치는 웃음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이신아와 정성아. 그리고 정성아의 남자친구가 함께 웃고 떠드는 소리였다.

“후후후. 우리 집 식량을 축내줘서 고마워요. 이 집에 남자가 없으니 재료가 남던 참이었는데.”

싱긋 웃으며 정성아의 남자친구에게 농담을 하는 이신아.

현재 그녀는 ‘어떤 목적’ 때문에 상당히 살을 뺀 상태이다.

물론 예전만큼 완벽한 슬랜더 몸매를 회복하진 못했으나, 그녀의 군살이 매력을 반감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또! 또! 엄마도 진짜. 또 말 짓궂게 한다! 이 사람 당황하잖아.”

“원래 사위 보면 놀리고 싶어져~”

사위.

이신아의 입에서 ‘사위’라는 말이 나오자, 정성아의 남자친구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인정받고 있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아, 아직 식 올리려면 좀 더 있어야 하거든? 아이돌도 계속 해야 하고...”

그리고 부끄러운 듯 볼을 긁적이는 정성아.

이신아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후... 그러니까 들키지마~? 사위도 몰래몰래 응큼한 곳에서 연애 잘 하구요~“

“엄마!”

“크크크크”

장난기 많은 엄마와 발끈하는 딸.

정성아의 남자친구 남도현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이 화목한 가족과 백년해로의 연을 맺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성아의 오빠와 아버지는 만나 뵙지 못했지만, 분명 성아의 어머니처럼 유쾌하고 자상한 분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좋은 날인데, 한잔하고 가요. 좋은 와인이 있는데.”

그때, 와인을 권하는 장모님.

정성아의 남자친구 남도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렇게 맛있는 저녁도 얻어먹는데, 와인까지-.

“후후. 내가 마시고 싶어서 그래요.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마셔~”

허나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는 장모님의 태도에 남도현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윽고 성아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같이 한잔할까? 내가 와인 가지고 올게.”

성아는 그렇게 말하며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남도현은 정성아의 뒷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띵그르르르...

그때, 쇠젓가락이 떨어지는 소리.

이어서 이신아가 남도현에게 말했다.

“어머. 좀 주워줄래요? 그쪽으로 굴러간 거 같은데”

“아, 예.“

남도현은 곧바로 식탁 아래로 몸을 숙여 젓가락이 있는 곳에 손을 뻗었다.

허나 손을 뻗는 와중, 이신아의 새하얀 허벅지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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