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5화 (145/303)

“원한다면 연장을 써도 괜찮아. 한번 담기고 나면 이상하게 실력이 존나 늘어서 말이야.”

“.....”

“자- 여기”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 안에 단도를 꺼내 던졌다.

깡그르르...날카로운 단도가 발밑까지 미끄러져 왔다.

“특색있는 스파링이 되겠어. 이 짓도 오랜만이군.”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풀었다.

안지연은 바닥에 있는 단도를 뚫어지게 노려보다, 이내 고개를 들어 사내에게 말했다.

“스파링? 당신 선수 출신인가?”

“선수? 그런 건 아니지만, 격투는 좀 배웠지.”

“... 정체가 뭐야?”

“그런 게 중요한가. 중요한 건 네가 나한테 지면, 네 애인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거지.”

분하지만 맞다.

중요한 건 하나를 구출해 가는 것.

안지연은 단도를 집어 들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냥은 못 이겨. 격투를 배운 놈이라면, 더더욱.’

-탓! 탓! 탓! 탓! 탓! 탓!

‘그러니 속전속결로 끝낸다! 어디든 찌르기만 하면 놈을 제압할 수 있을 거야!’

안지연은 곧바로 사내에게 돌진해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중간중간 발차기나 주먹을 섞어 페이크를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로 그녀의 공격은 좀 전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후웅! 후웅! 훅!

그럼 에도 사내는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여 맞을 건 맞고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피했다. 그리고 오히려-

-짜악!

사내의 싸대기질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안지연이었다.

아무리 UFC 유망주라곤 하지만 상대가 극도로 단련된 남자라면 상대하기 버거운 게 현실이었다.

-짜악! 짜악! 짜악!

분했다.

그간 웬만한 남자는 쉽게 때려눕혔는데, 이 남자는 달랐다.

이번 일로 수컷과 암컷의 선천적 차이를 결정적으로 느끼는 그녀였다.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자신을 단련해왔는데도.

-퍼억!

짙은 절망을 느낄 새도 없이, 사내의 발에 걷어차이는 안지연.

동체시력, 반사신경, 타고난 내구도.

어느 하나 사내를 이길 수 없었다.

사내는 거의 선수로 봐도 무방할 정도의 베테랑이었다.

“이봐. 무기 버리고 해봐. 무기를 드니까 공격이 오히려 뻔해져서 재미없잖아. 원래 실력의 반도 못 끌어올리는 거 같은데.”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쉴 시간을 주었다.

여전히 분함을 느끼는 그녀였지만, 생각해보니 사내의 말이 맞았다.

무기를 드니 오히려 그것만을 의식해 공격이 뻔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덤벼봐. 여자친구를 되찾고 싶다면”

안지연은 다시 심기일전하여 사내에게 덤벼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의 여성성을 버려오며 키웠던 신체적 강인함과 격투 기술을 사내에게 모두 쏟아부었다.

-퍼억! 퍼억! 퍽!

그 결과 몇 번의 주먹질을 유효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에 사내는 즐겁다는 듯 홍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크크크크큭 역시 선수는 다르군!”

타격을 허용하는 데도 즐거워하는 사내.

허나 그럴 만도 한 게, 안지연은 강철을 때리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단단해질 정도로 몸을 단련한 것인지, 아니면 축복받은 육체 탓인지 모르겠으나, 사내의 내구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퍼억!

“크하악!”

하여 승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급소는 때릴 수 없고, 장기전도 답이 없다.

게다가 방금 진심이 담긴 사내의 발길질을 맞아보니 알 수 있었다.

사내는 여태껏 자신을 봐주고 있었다는 것을.

“아쉽게 됐어. 여자라 그런지 파워가 너무 약해. 네가 남자였으면 내가 졌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수도 없이 사내의 몸을 가격했으나, 힘이 모자라 유효타가 되지 않는 상황.

안지연은 수컷과 암컷의 신체적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며 울분 섞인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자신을 불태우며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는데, 결국 여자이기 때문에 질 수밖에 없다니.

“얘들아. 정리해라.”

그렇게 통탄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사내가 부하들을 불렀다.

그러자 폐건물 밖에서 대기 중이던 그의 부하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지연은 그들을 보며 깊은 절망을 느꼈다.

‘아.... 이건, 이건 안 돼....’

척 봐도 알 수 있는 부하들의 강인함.

자신이 쓰러뜨렸던 일곱은 피라미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제 나와 하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집단으로 강간이라도 당하는 것일까.

“.....?”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정중하게 하나에게 옷을 입혀주는 부하들.

쓰러져 있는 자신에게도 딱히 해코지하지 않았다.

그저 어수선한 현장을 정리할 뿐이었다.

“놀란 모양이군.”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며 당황하고 있는 사이,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안지연은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사내를 돌아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뭘 하려는 거야.“

”다른 게 아니고, 기회를 주려고.“

”기회?“

”그래. 여자친구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 말이야.“

”..... 어차피 나한테 선택권은 없잖아. 말해.“

”큭큭. 눈치가 빨라서 좋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넌 앞으로 5번 날 만나야 해. 그동안 네가 할 일은, 날 가르치는 거지.“

가르친다?

내가 이 남자를?

”뭘 가르치면 되는데.“

”아무거나. 저 녀석을 이길 때까지.“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부하 중 한 녀석을 가리켰다.

집채만 한 몸을 한 게 골리앗을 보는 기분이었다.

저런 녀석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 그러니까, 네가 저 녀석을 이길 때까지... 내가 널 단련시켜주면 된다고?“

”그래. 기술 자체만 놓고 보면 네가 나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왜 이런 걸 하는 거지?“

”그냥. 재밌잖아.“

”.....“

”대신 그냥 가르치기만 하는 건 재미없고, 내가 패한다면 그때마다 네가 날 위로해줬으면 좋겠어.“

”뭐? 위로?“

”그래. 위로. 섹스말이야.“

”....!!“

”그러니까 최선을 다 해 가르쳐야겠지? 나와 몸을 섞기 싫다면.“

”무, 무슨...“

”싫으면 말고. 네 여친이 약에 중독돼 폐인처럼 살아도 괜찮다면.“

”..... 개자식.“

”큭큭. 그러면 다음에 연락하지. 그동안 네 여친은 약에 해방될 수 있도록 재활시켜 줄 테니 걱정말고.“

사내는 그 말을 남기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부상을 입을 김재혁과, 흐리멍텅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이하나, 그리고 쓰러진 부하 일곱을 데리고 사라졌다.

‘저 개자식을 가르쳐야 된다고...’

홀로 남은 안지연은 이 어이없는 상황을 곱씹고 또 곱씹어 보았다.

하지만 이 상황을 해결할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사내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해보자.... 방법이 없어.’

어차피 자신에겐 선택권이 없는 상황.

허나 이런 강요받는 방식은 그녀에게 익숙한 방식이었다.

남자로 살길 강요받고, 격투기 선수로 살도록 강요받은 것도 묵묵히 견딘 그녀였다.

그녀는 이 또한 견딜 수 있으리라 다짐하며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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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세계.

주인님과 구원자가 양분하고 있는, 폭력과 불법이 난무하는 세계.

현재 난 이곳에서 ‘의장’이라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주인님의 후계자이자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이 세계의 2인자가 바로 나다.

허나 이 자리는 주인님의 변덕으로 물려받은 자리인 만큼, 난 꽤 오랫동안 ‘반쪽짜리’라는 말을 들어왔다.

혹자는 날 ‘낙하산’, ‘비즈니스맨’, ‘주인님의 장난감’이라 멸칭을 붙이며 날 조롱하곤 했었다.

하지만 난 그런 멸칭에 대해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곳 뒷세계는 근본적으로 폭력으로 쌓아 올린 세계이고, 난 주먹 한번 쓰지 않고 주인님의 후계자라는 막대한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다.

하여 난 이 간극을 메꾸고자 지극히도 노력해왔다.

매일 아침 일어나 강도 높은 유산소 운동을 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2~3시간씩 근력운동을 병행하며 몸을 키워왔다.

뿐만 아니라 격투기 선수 출신을 불러 1:1로 코칭을 받기도 하고, 더 나아가 흉기를 잘 쓰는 부하들을 불러 실전과 같은 대결을 해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난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폭력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돈이나 지위, 명성 따위로 상대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 오직 내가 가진 주먹으로 아랫것을 짓누르고 지배할 수 있는, 이 세계에 가장 적합한 힘을 말이다.

“네가 보기엔 어때?”

허나 난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현재 난 주인님과의 결전을 앞두고 있고, 내가 살아남고 승리하기 위해서 더욱 몸을 단련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 체급 차이가 너무 커.”

하여 난 재미반 진심반으로 안지연에게 코치를 맡겨보았다.

비록 내가 섭외한 전문가엔 못 미칠지 모르나, 여성 파이터의 시각으로 보면 새로운 의견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말이다.

“흐음.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이나?”

“글쎄... 운이 잘 따라주지 않는 이상...”

모니터를 보며 표정을 굳히는 안지연.

나와 ‘거산’의 대결을 보고 있는 그녀의 표정에서 ‘거산’을 이길 수 있는 확률이 희박함을 엿볼 수 있었다.

여기서 ‘거산’이란, 몸무게 117kg에 키 2m 3cm인 내 부하를 뜻한다.

녀석은 내가 보유한 최정예 싸움꾼이다.

“.....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싸움이야. 단순히 체급 차만 나는 게 아니라, 속도나 전투두뇌도 상당한 수준이라 기술로도 이기기 힘들어. 왜 굳이 이런 사람과 싸우겠다는 거야?”

“뭐,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어. 이런 놈과 싸울지도 모르니까. 대비는 해둬야지.”

“.....이런 싸움은 피하는 게 상책이야.”

“반드시 싸워야 하는 순간도 있는 법이지. 그건 너도 잘 알잖아?”

바로 어제 불가항력으로 나와 싸워야 했던 안지연.

그녀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답했다.

“시간이 필요해. 체급을 더 올리거나 장기간 훈련을 받아야 돼.”

“아니, 내일 바로 붙을 거야. 다른 일로도 바빠서 말이야.”

“내일? 단 하루 만에 뭘 어떻게 하라고! 하루 가지곤 안돼!”

“되게 만들어.”

단호한 내 태도에 안지연은 분하다는 듯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저 사람. 격투기 배워봤어?”

“아니. 그냥 싸움꾼 출신.”

“그럼 그라운드 기술이나 파훼법은 잘 모르겠네.”

“그렇지.”

“그럼 그쪽으로 파보자. 대응법을 잘 모른다면 관절기술이 그나마 가능성이 높아.”

“뭐, 좋아”

그녀가 제안한 방식은 타격이 아닌 관절기술.

설명을 들어보니 이 방법도 썩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난 그녀의 코칭을 따라 하루를 꼬박 투자해 그라운드 기술을 연마했다.

-퍼억!

하지만 다음 날.

내 테이크다운 시도는 ‘거산’에게 족족 막혀버렸다.

애초에 처음 시도 때 넘어뜨렸어야 했는데,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하자 테이크다운을 의식한 녀석이 내 접근 자체를 의식한 것이다.

결국 난 녀석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KO패를 당하게 되었다.

“주, 주인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거산은 이번에도 도게자를 하며 내게 용서를 빌었다.

그저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됐어. 잘 싸워줬어. 다음에도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이렇게만 해.”

“.....”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린 채 입술을 짓씹는 녀석.

난 녀석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곤 곧바로 치료실로 향했다.

안지연은 표정을 굳힌 채 치료실로 향하는 날 뒤따라 왔다.

“그러게 하루 가지곤 부족하다고 했잖아. 기술을 써보지도 못하고...”

치료용 침대에 누운 날 보며 툴툴거리는 안지연.

난 피식 웃으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

“아직 기회가 4번 더 남았어. 이번에는 기간을 넉넉하게 주지.”

“... 얼마나?”

“일주일?”

지금부터 꼬박 7일.

내 대답을 듣자마자 안지연은 다시 한번 표정을 굳혔다.

“장난해? 치료하는 데만 며칠은 걸릴 텐데, 일주일이라고?”

“어쩔 수 없어. 난 할 일이 많거든.”

“이건 불공평해! 이렇게 되면 그냥 무조건 당신과 몸을 섞으라는 거잖아!”

“그럼 이기게 만들면 되지. 게다가 봐. 상처도 그렇게 깊지 않아.”

현재 내 부상은 스파링 강도에 비해 미미한 수준.

그도 그럴 게, 거산과 난 큰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특수제작된 글러브를 착용했었다.

또한 헤드기어에 몸통 보호대까지 착용하고 있었으니, 부상이 있다 한들 3일이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

“.....그럼 회복하는 데 3일. 연습하는데 4일 쓸 수 있다는 말이야?”

“그런 셈이지.”

“그래도 3일을 허투루 날릴 순 없어. 이미지트레이닝이라도 해야겠으니까.”

“뭐, 좋아.”

이제 훈련일정까지 조율했으니 남은 것은 그녀에게 ‘위로’를 받을 차례.

다만 지금은 회복이 우선이니 내일 ‘위로’를 받기로 했다.

같이 침대에 누워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며 느긋하게 즐겨볼 생각이다.

***

한편, 스트리밍 스튜디오의 최고급 주방.

지금 이곳엔 이희연이 홀로 남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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