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 (138/303)

원래라면 예정에 없던 일이다.

그녀들의 대화를 엿듣다 보니, 내 심정에 변덕이 생긴 탓이다.

“.....”

하여 그녀들도 내 말에 놀란 듯,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뭐, 싫으면 말고.”

“아, 아니에요! 좋죠! 주인님과 함께 하는 회식이라니!”

“나, 나도! 오늘 아니면 언제 다 같이 모여서 식사하겠어.”

“으음. 그러면 변장 좀 해야겠는데? 이래 봬도 내가 백하윤이라.”

백하윤의 말대로, 어느 정도 분장이 필요한 건 사실.

그녀뿐만 아니라 이하영도 변장이 필요하다.

아직 공식적으로 이하영은 구원자의 애첩이니.

“그럼 분장사 붙이지 뭐. 이희연.”

“네 주인님.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이희연은 곧바로 근처에 대기 중이던 분장사들을 불렀다.

분장사들은 혹시 모를 추격에 대비하여 이동할 때마다 데리고 다니는 놈들이다.

“부르셨습니까.”

그렇게 도착한 분장사.

난 백하윤과 이하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둘.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예”

이윽고 분장사의 손을 타기 시작하는 백하윤과 이하영.

둘은 단 15분 만에 다른 얼굴로 변할 수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녀들의 본모습이 보이긴 하나, 얼핏 봐서는 절대 모를 것이다.

“그럼 가지.”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끝낸 상황.

오늘만큼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회식을 한번 해두고 싶었다.

그렇게 난 그녀들을 데리고 시내의 적당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다음화 보기

감회가 새롭다는 것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것일까.

나와 이하영. 그리고 이희연은 다시 모이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다 함께 모여 술잔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그것도 탑급 연예인인 백하윤도 함께.

-스윽.

다만 예전처럼 시끌벅적하게 술게임이나 하던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잔을 올려-

-짠.

이렇게 서로 잔을 맞부딪힌 다음, 각자 술을 삼킬 뿐.

비록 짧은 기간이긴 하나, 온갖 인생의 풍파를 겪은 우린 달라져 있었다.

예전처럼 순수한 꿈을 안고 웃고 떠들던 시기는 지난 것이다.

“크흠. 그런데요 하윤 언니.”

그때, 분위기 전환을 시도해보려는 듯 화두를 꺼내는 이하영.

그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연예계 얘기 좀 해줘요. 요새 재밌는 루머가 떠돌아서 말이에요.”

연예계에 떠도는 각종 루머.

모그룹의 A양과 앵꼬 부부로 유명한 B씨가 불륜 관계라는 이야기

B엔터의 사장이 아이돌 연습생들을 성접대 시킨다는 이야기.

대세 걸그룹 A양이 숙소에 남자를 불러들인다는 이야기 등등.

이하영은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대해 진위 여부를 물었다.

“그런 거라면 내가 다 꿰고 있지.”

그리고 백하윤은 이런 소식에 빠삭한 여자였다.

뒷세계의 여왕이자 탑급 연예인인 그녀에겐 여러 정보원이 있었고, 그들을 통해 핫한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완전 동물의 왕국이네... 말세다 말세.”

그리고 백하윤의 검증을 들어본 결과, 우리가 알던 연예계의 진실은 상상 이상으로 추악했다.

뭐, 이하영과 이희연. 그리고 백하윤이 그런 말 할 처지가 아니긴 하지만.

“사업 아이템으로 쓸만한 거 같은데.”

하지만 제일 악독한 건 내가 아닐까.

이 와중에 돈벌이가 될만한 이야기를 포착하고 있으니 말이다.

“진태곤 배우의 음주운전 의혹. 그거 정말 사실인가?”

진태곤.

한국의 대표 중년 남배우 중 한 명.

굵직굵직한 영화에 출연했고, 최고의 연기력으로 찬사를 받는 배우이다.

“응. 음주운전뿐만 아니라, 뺑소니 시도까지 했어. 그 때문에 어린 아들을 제외한 일가족 모두가 사망했고.”

10년 전, 진태곤 배우의 교통사고 이슈를 모르는 국민은 없었다.

뉴스는 물론 각종 신문, 언론에서 그 사고에 대한 루머로 떠들썩했으니까.

허나 백하윤의 말을 들어본 결과, 진실은 은폐되어 있었다.

그 당시 언론에선 사망한 일가족이 신호를 무시했고, 그 때문에 추돌사고가 일어났다고 보도했었다.

진태곤의 혈중 알콜 농도는 맥주 한잔 정도로 조작한 채 말이다.

“흐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고작 배우가 덮을만한 스케일이 아닌데.”

다른 무엇도 아니고 사람이 죽었다.

게다가 혈중 알콜 농도를 조작했다니, 경찰까지 개입됐다는 말이다.

고작 배우가 저지르기엔 보통 일이 아니었다.

“라인을 잘 탄 거지. 진태곤 와이프가 유회장 사촌 딸이거든.”

“유회장? ‘태안’ 기업의 유준형 회장 말하는 건가?”

“응.”

태안 일가의 수장 유준형 회장.

그는 대한민국 재계 서열 2위에 속하는 거물 중에 거물이다.

만약 그가 진태곤의 뒤를 봐줬다면, 뺑소니 은폐와 더불어 알콜 수치 조작까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사건,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 듯하다.

“그렇게 된 거였군. 정보는 확실한 거지?”

“응. 그 당시 진태곤은 구원자의 향락소에서 나오는 길이었거든. 그때 한창 구원자와 대립각이 서고 있어서, 우리 쪽 정보원이 붙어있었어.”

“그렇단 말이지.”

진태곤의 뺑소니 사건과 일가족 사망.

그리고 그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꼬마 아이.

이건 팔릴만한 이야기다.

“그럼 뺑소니 피해자인 그 일가족 말이야. 남자아이 하나는 살아남았다며. 그 녀석의 소식은 알고 있나?”

“그 아이 소식까지는 몰라. 왜?”

“재밌는 시나리오가 생각나서 말이야. 복수극을 찍어볼까 해.”

“복수극? 설마 그 생존자 아이를...”

“그래.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서, 조교사로 키워볼 생각이야. 마침 진태곤에게 딸이 하나 있잖아.”

진태곤의 외동딸, 진아영.

그녀는 현재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우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신인이지만 유명 배우의 딸인 만큼 비중 있는 조연을 하며 얼굴을 알리는 중이다.

“으음. 흥미로운 시나리오이긴 한데, 진태곤은 유회장 라인이야. 유회장이 가만히 있을까?”

물론, 어떤 형태로든 내게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

허나 나는 재벌 일가를 잘 알고 있다.

자기 품에 있다 한들, 품는 것이 손해라면 가차 없이 버리는 것이 재벌이란 족속들이다.

또한 이기수 회장을 찾아갈 명분을 만들려면, 라이벌 관계인 태안 그룹의 약점을 쥐고 있어야 한다. 유태곤을 통해 유회장이 저지른 악행을 캐낼 것이다.

“보복이라면 걱정마. 다 계획이 있으니까.”

“응. 그러면 믿고 진행해볼게”

회식 중 우연찮게 입수한 귀중한 정보.

난 잔에 있는 술을 비운 뒤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우리 가족을 저버린 빌어먹을 이기수 회장에게, 찾아갈 명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이야기 나누고 있어.”

이기수 회장을 생각하자 머리까지 뻗쳐오는 열.

나는 떠들썩한 식당을 빠져나와 시원한 밤공기를 폐에 집어넣었다.

그래도 어째 열이 식지 않는 기분이다.

‘당신이 내 가족에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었으면, 진작에 막을 수 있었어.’

대한민국 재계 서열 2위에 위치한 이기수 회장.

그는 나의 외할아버지이자 이신아의 아버지다.

즉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인물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내 가족이 망가지는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자신의 딸이 그렇게 망가졌는데도, 심지어 손주까지 방송에서 못 볼 꼴을 보였는데도, 그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언젠가 당신도 망가뜨려 주겠어. 두고 봐.’

이기수.

그는 아버지의 자격도 없는 인간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세운 ‘백산 그룹’을 키우는 데만 혈안일 뿐, 자식의 행복 따윈 관심도 없는 인물이다.

그에게 자식이란 그저 그룹을 키우는 데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나도 당신을 도구로써 써줄게. 쓰다가 필요 없어지면 버리는, 그런 도구 말이야.’

이기수의 도구로써 키워지다 정략결혼을 거부하자 무참히 버려진 이신아.

이후 그녀의 삶은 ‘증명의 삶’이었다.

비록 가문에서 버려졌지만, 오히려 이것이 자신의 행복을 찾는 길임을 증명하는 것이 이신아의 삶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정현재를 내조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보란 듯이 자신의 삶을 증명해냈다.

‘...주인님에게 모두 망가졌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러했던 이신아의 말로는 육노예로 전락.

그녀의 삶 자체였던 가정은 무참히 부서지고 말았다.

또한 주인님의 조교에 걸려들어 고결했던 그녀의 영혼은, 추악한 형태로 타락해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니게 되었다.

“후-우.”

머리가 착잡하여 담배를 태웠다.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아른거리는 이신아의 모습을 지웠다.

지금은 오로지 내 목표에만 정신을 집중하기로 했다.

‘집중하자.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오늘 백하윤의 정보로 하나 더 할 일이 생겼다.

그러니 일의 순서를 정리해보자.

‘우선, 첫째. 진태곤의 딸 진아영을 타락시켜, 진태곤을 꾀어낸다.’

진태곤.

대한민국 탑배우에 유회장 라인인 만큼 유회장과 유착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를 통해 유회장의 약점을 알아낸다.

‘둘째. 진태곤을 통해 뺑소니 사건의 진실과 유회장의 비리를 입수한 다음, 유회장과 협상한다.’

음주운전 살인사건에 뺑소니까지 저지른 유태곤.

그리고 이를 덮으려 했던 유준형 회장.

만약 이 사건의 증거를 내가 확보할 수 있다면, 유준형 회장의 약점을 쥐게 되는 것이다.

‘셋째. 이 정보를 가지고 이기수 회장을 찾아간다. 내 계획에 동참할 것을 강요한다.’

현재 나의 가장 큰 약점은 이신아와 정성아가 주인님 밑에 있다는 것.

하여 이 둘을 자연스럽게 빼내 줄 외부인력이 필요했다.

이기수 회장이라면 문서상으로 이신아의 아버지이니, 충분히 그녀와 정성아를 부를 명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을 인질로 잡히지 않고 마음껏 주인님과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천운은 내 편이다.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고 있어.’

별 뜻 없이 단순 변덕으로 진행한 회식.

그리고 그 회식 덕분에 입수한 뺑소니 사건의 진실과, 유회장의 흑막.

우연이라기엔 절묘하다 못해 기이했다.

천운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즈-기요~?”

그런데 그때.

웬 양아치같이 생긴 녀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말을 붙였다.

팔에 잔뜩 새겨진 문신을 보아하니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한눈에 보였다.

“여기 좀. 불 좀 빌려주죠? 라이터가 없어서. 크흐흐.”

“.....”

불손한 눈빛으로 나를 흘겨보고 있는 녀석.

다만 귀찮은 것은 질색이기에, 난 대충 라이터를 한 손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녀석은 라이터를 건네받는 동시에 다짜고짜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

약 1시간 전, 떠들썩한 술집.

문신 양아치 4형제는 눈을 흘기며 여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이곳이 그렇게나 물 좋기로 유명한 술집이라는데, 솔직히 명성에 비해 여자들의 외모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었다.

“형님. 오늘 물 와 이럽니까? 쓸만한 년들이 없는데.”

“좀만 기다리보자. 아직 7시밖에 안 됐으니까. 정 없으면 쟤들이라도 노려보던가.”

4형제 중 첫째는 그렇게 말하며 우측 끝에 앉은 여인들을 쳐다봤다.

허나 동생들의 표정은 심드렁할 뿐이었다.

“쟤들은 좀... 너무 일반인 느낌 아닙니까? 자들이 팔리겄습니까?”

“아니면 걍 따묵고 버리던지. 몸매는 뭐... 나쁘지 않네.”

“그래도 이왕 나온 김에 돈 될만한 가시나도 따묵고 영상도 찍어서 팔면 좋지 않습니까.”

“그니까 좀만 기다려보자는 거 아니여? 좀 기다리봐라.”

“예. 형님”

문신 양아치 4형제.

그들은 여자를 헌팅하여 만취하게 만든 다음, 성교 영상을 찍어 판매하는 양아치들이었다.

“혀, 형님들! 저기! 저기요!”

그런데 그때, 막내가 호들갑에 형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막내는 가게의 입구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의 손끝엔 가게 입구로 들어오고 있는 정성민 일행이 있었다.

“자들 미쳤는데요? S급 아닙니까?”

“쓰-읍. 그러게. 저 씨발년들 좆되는데?”

“와 씨발 존나 맛있겠다.”

저마다 침을 꿀꺽 삼키며 이하영, 이희연, 백하윤의 몸매를 훑는 그들.

현재 그녀들은 육감적인 몸매를 부각한 옷을 입고 있었다.

정성민에게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여 잘 보이기 위함이었다.

“저 씨발년들 옷 입은 것 좀 보십쇼. 이야... 아주 그냥...”

“저 정도면 ‘조교사님’에게 넘겨도 되지 않겠습니까? 존나 뽑아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양아치 형제의 셋째와 막내는 그렇게 말하며 고간을 주물럭거렸다.

그들의 두 눈에 그녀들의 엉덩이와 가슴이 가득 들어왔다.

“흐음. 근데 말이다. 남자 하나 껴있어서 귀찮겠구만. 저 새끼를 떼어놔야 하는데.”

허나 문제는 일행 중 남자가 있다는 것.

자연스럽게 합석하려면 남자를 떼어놔야 한다.

“아으~ 그러게 말입니다. 저 좆같은 새끼 어떻게 안 되나.”

“일단 기다리보자. 니들 그동안 약이나 좀 준비하고.”

“예 형님.”

그들은 정성민 일행을 예의주시하며 수면제, 최음제, 각성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술에 약을 타서 타겟을 재우거나 흥분시킨 다음 모텔로 데리고 가는 것은 그들의 주된 수법이었다.

“쓰-읍. 근데 저 씨발새끼 존나 잘 생겼네. 둘째야. 니가 후달리는 거 같은데?”

그때, 첫째가 정성민을 노려보며 그렇게 말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