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303)

“네 아버지가 진 빚 1억 2000만원. 네가 대신 갚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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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버지가 진 빚 1억 2000만원. 네가 대신 갚아야겠다.”

남자의 말을 들은 박종필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아버지라는 인간이 이렇게 오래 나타나지 않을 때 뭔가 이렇게 될 거 같았다.

“그걸 왜 내가 갚아야 되는데?”

허나 납득할 수 없었다.

왜 그 인간의 역겨운 업보를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지, 박종필은 납득할 수 없었다.

“아들로서 당연한 거 아니겠냐~? 부모의 빚은 자식에게 상속되거든”

“아들? 그 인간 아버지라 여긴 적 없어. 다시는 찾아오지 마”

박종필은 자신을 가로막은 녀석을 툭 치고 지나갔다.

허나 얼마 안 가 녀석이 내뱉는 말에 걸음을 멈추고 만다.

“킥킥킥. 무슨 뜻인지 모르겠냐? 네 애비 죽었어. 우리한테 빚을 진 채 말이야.”

“.....”

“그러니까 네가 대신 갚아줘야겠다. 네가 네 애비를 아버지로 여기든 안 여기든, 법적으로 부모의 빚은 자식이 상속받게 되어있거든?”

속이 울렁거렸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아버지라는 인간이 역겨웠다.

그리고 결국 그 불행이 씨앗이 여기까지 번진 것에 열이 올라왔다.

여기는 하윤이가 있는 곳인데.

“일억이천? 못 갚아. 아니, 안 갚아. 내가 왜 그 인간의 빚을 떠안아야 되는데? 내가 왜...”

“킥킥킥. 그러면 갚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놀아주면 되지. 얘들아”

녀석의 부름에 건장한 장정 셋이 박종필을 둘러쌌다.

심상치 않은 녀석들의 기운에, 박종필은 먼저 선공을 쳤다.

-빠악!

“크흑!”

큰 키에 단련된 몸.

야생동물 같은 반사신경.

박종필은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백하윤을 만나 온순해졌지만, 그는 원래 아무나 물어뜯고 다니는 미친개 같은 인간이었다.

“씨발! 씨발 새끼들이! 씨발 새끼들!”

3대 1의 상황이었지만 박종필은 일방적으로 그들을 두들겨 팼다.

고작 열아홉밖에 되지 않은 그가 장정 셋을 압도하는 것이다.

이에 녀석들의 대장도 나서기 시작했다.

“이 새끼 좀 치네? 뭐하던 새끼야”

-퍼억!

난데없이 날아온 발길질.

박종필은 녀석의 발길질을 맞고 뒤로 물러섰다.

이제 박종필은 장정 넷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씨발! 다 덤벼!”

허나 박종필은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먼저 달려들어 그들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체력적으로 불리해졌다.

아무리 타고난 싸움꾼이라도 수적열세를 이길 순 없었다.

“밟아!”

결국 박종필은 바닥에 쓰러진 채 그들의 발길질을 받아야 했다.

이에 백하윤은 소리를 지르며 박종필에게 뛰어와 그를 감싸 안았다.

“때리지 마세요! 제발, 제발 그만해요....”

엉엉 눈물을 흘리며 박종필을 감싸 안은 백하윤

이에 조직원들이 발길질을 거두곤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너네 집 문 열어. 저 녀석 뒤지는 꼴 보기 싫으면 뭐라도 내놔야지? 안 그래?”

백하윤은 하는 수없이 집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조직폭력배들이 집안을 들이닥쳐 멋대로 헤집고는 그동안 모은 돈을 싸그리 긁어모아 강탈해갔다.

“워우-. 돈 좀 모았잖아? 자주 찾아올 테니까 이렇게 따박 따박 바쳐. 알겠어?”

한바탕 집안을 휩쓴 그들은 바닥에 침을 찍 뱉고 돌아갔다.

박종필은 떠나가는 그들에게 악을 쓰며 다시 덤벼보려 했지만, 부상이 너무 컸던지라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다.

“... 미안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게.”

그동안 모은 돈을 빼앗긴 둘.

허나 백하윤은 박종필을 원망하지 않았다.

박종필 또한 담담히 이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어, 박종필은 법적으로 상속을 거부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죽은 지 3개월이 넘은 시점이라, 상속권 포기신청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지난 상태였다.

“종필아...”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백하윤 또한 소속사에게 사기를 당했다.

3일 만에 레슨을 받으러 찾아가니, 건물 전체가 텅 비어 있던 것이다.

당황한 백하윤은 소속사 PD에게 계속 전화해봤지만, 없는 번호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나 어떡해...”

꿈을 안고 서울에 올라온 그들.

허나 그 꿈은 단 하루 만에 산산 조각나버렸다.

꿈으로 반짝거리던 그들의 눈은 퀭한 눈으로 변해있었다.

“내가, 내가 어떻게든...해볼 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었다.

박종필은 닥치는 대로 알바를 하여 월세를 마련하고 백하윤의 레슨비를 벌기로 했다.

앞으로 3개월 뒤에 있을 대형기획사의 공채 오디션에 대비해, 백하윤을 지원해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어이. 박종필이. 돈 갚아야지? 앙?”

돈이 좀 모일 만하면, 그들이 찾아와서 깽판을 쳐댔다.

주로 일하는 곳에 찾아와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고, 자신이 없는 틈에 집에 홀로 있는 백하윤을 겁박하기도 했다.

그렇게 불안한 생활이 한 달째 이어지자, 백하윤은 자기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아빠... 난데. 나 한 번만 도와줘....제발 한 번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아빠 노릇을 하고자 다짐했던 그녀의 아버지.

하지만 딸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섰던 걸까.

그는 백하윤의 떨리는 목소리에 흥분하여 과속하고 말았고, 결국 교통사고로 이어지게 되었다.

-삐이.... 삐이.... 삐이....

어두운 병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빠를 보고 있는 백하윤.

그녀의 눈동자는 공허했다.

꿈으로 반짝이던 그녀의 눈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짙은 절망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렇게 누워있으면 어떡해. 그렇게.... 그렇게 누워있으면....나보고 어떡하라고...”

백하윤은 의지할 곳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박종필도 자신을 도울 여건이 되지 않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버지 또한 이 꼴이 되어 버렸다.

거기다 아버지를 살리려면 막대한 양의 수술비와 입원비까지 지불해야 한다.

“흐어어어...으으으으.....”

박종필은 바닥에 쓰러져 대성통곡하고 있는 백하윤을 말없이 지켜봤다.

그녀를 보는 그의 몸은 분노와 슬픔으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내가 어떻게든...’

폭우가 내린 그 날 밤처럼, 서럽게 울고 있는 백하윤.

하지만 그 날처럼 그녀를 안아줄 수 없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의 자신은 그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버지의 빚 때문에 그녀를 힘들게 할 뿐이지.

하여 박종필은 그녀를 떠나 기로 결심한다.

녀석들이 제안했던 ‘작업’을 수락해, 자신의 빚과 학원 레슨비. 그리고 백하윤 아버지의 수술비를 한꺼번에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당신이 말했던 ‘작업’. 수락할게. 그러면 빚은 확실히 없애주는 거지?”

“킥킥킥킥. 당연하지. 내가 말한 타겟 둘만 잘 처리하면, 네 빚은 물론 그년 아버지의 수술비, 거기에 여윳돈까지 얹어주지. 네가 일만 잘한다면 말이야.”

“..... 약속 지켜.”

조직폭력배가 박종필에게 했던 제안.

그것은 살인이었다.

궁지에 몰린 박종필은 결국 이것을 수락하고 만다.

“여기, 활동비 천만원이다. 어떻게 쓰든 네 맘인데, 작전에 실패하면 세배로 불려서 갚아야 해. 그러니 꼭 성공해라?”

“..... 알았어.”

그 날 박종필은 집으로 돌아가 700만원과 함께 백하윤에게 편지를 남겼다.

이 700만원으로 입원비와 월세를 내며 버티고 있으면, 자신이 돌아와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편지였다.

“할 수 있어. 하윤이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어.”

박종필은 그렇게 다짐하며 부산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는 자신이 죽여야 할 타겟이 살고 있었다.

***

한편, 미스터 최는 부하에게 어떤 보고를 받게 된다.

‘타겟’을 처치할 적절한 파수꾼을 구했다는 보고였다.

“..... 상당히 앳돼 보이는데. 애새끼 아닌가.”

“예, 형님. 그렇긴 한데, 이놈 보통 놈이 아닙니다. 애가 독기도 있고, 싸움도 존나게 잘하는 놈입니다. 글쎄, 부하 놈 셋이 이놈을 못 당해내는 거 아니겠습니까?”

“장정 셋이 애새끼 하나를 못 잡았다고?”

“예. 그래서 맡긴 일만 잘 처리하고 오면,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까 생각 중입니다. 잘만 조련하면 아주 쓸만한 녀석이 될 거 같습니다.”

“흐음... 그런데 저번에 한 보고는 뭐야? 쓸만한 상품이 있다더니.”

“아- 그게. 이 녀석 여자친구가 말입니다. 완전 특등품입니다. 킥킥킥. 그래서 여자친구를 팔던, 직접 ‘작업’을 하던 둘 중 하나 선택하라고 했는데, 아쉽게도 녀석이 ‘작업’을 선택했지 말입니다.”

“사진은 있나? 이 녀석 여자친구”

“아. 예. 여기-.”

미스터 최는 부하가 건네는 백하윤의 사진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찢어지며, 입가에는 침이 흘러내렸다.

“이년과 이년 남자친구. 걔들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봐.”

***

“보고싶어... 보고싶어. 너무 보고싶어.”

벌써 한 달이 지났다.

항상 자신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박종필이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이제 백하윤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생각보다 그가 없는 빈자리는 너무 공허했고, 살아갈 의미가 없었다.

백하윤은 이제야 그깟 꿈보다 박종필이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굳이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와 함께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 옆에만 있어주면, 그걸로 괜찮은데...”

수시로 이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던 조직폭력배들.

분명 그들 때문에 힘든 것은 사실이었지만, 박종필이 옆에 있다면 아무렴 상관없었다.

허나 박종필은 자기 때문에 백하윤이 고통받는 것에 괴로워했고, 결국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며 이곳을 떠나버렸다.

-삐 삐 삐 삐

그때였다.

돌연 도어락 비번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백하윤은 혹시나 박종필이 돌아온 건 아닐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문 쪽으로 달려갔다.

허나 그곳엔 그녀가 기다리던 사람이 없었다.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미스터 최가 서 있을 뿐이었다.

“반갑군. 백하윤.”

“누, 누구세요...?”

“네 남자친구의 뒤를 봐주고 있는 사람이지.”

종필이의 뒤를 봐줘?

백하윤이 미스터최에 다가가며 말했다.

“그, 그럼... 종필이는 지금 뭐하고 있어요? 언제 돌아와요? 막 이상한 일 하는 건 아니죠? 어디 다치거나 그런 건 아니죠? 네?”

“큭큭큭.... 다치진 않았지. 아직은.”

아직은 다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일까.

“아직이요? 다, 당신 대체 무슨 일을 시킨 거예요?”

“살인.”

“.....네?”

“살인이다. 사람을 죽이는 거. 그게 네 남친이 하려는 일이다. 자신의 빚과 네 아버지의 수술비를 해결하기 위해서.”

“.....허.”

세상이 핑- 돌았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살인. 종필이가 살인을 하려 한다니.

절대 안 된다.

“그, 그만둬요! 그만두라고 해주세요! 돈은 어떻게든 마련해볼게요! 우리 둘이 열심히 일하면! 어떻게든 모을 수 있으니까!”

“큭큭큭큭...그건 불가능해. 여기 월세. 네 아버지 입원비. 우리에게 갚아야 할 이자. 그것만으로도 너희 둘이 버는 돈을 초과한다. 따라서 평범한 아르바이트론 너희 아버지 수술도 구하지 못하고, 박종필이 빚진 원금도 갚지 못해. 너희에겐 선택권이 없다.”

미스터 최가 나열한 변치 않는 사실들.

그 모든 말들이 백하윤의 가슴을 후벼팠다.

하지만 그때.

“근데 방법이 하나 있어. 네 남친이 살인을 하지 않아도, 이 모든 돈을 마련할 방법이.”

미스터 최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자리에 주저앉은 백하윤과 눈을 맞추곤,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가 내 여자가 된다면, 모든 빚을 없애주지. 거기에 네 아버지 치료비도 지원해주고, 재활치료, 생활비까지 지급해주겠다. 물론 박종필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도 해주지. 이 정도면 아주 파격적인 조건이라 생각하는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포식자의 눈빛.

백하윤은 어깨를 덜덜 떨며 시선을 떨궜다.

그리고 중얼거리는 듯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 그건.... 그건 안돼요. 저, 저는 종필이뿐이에요...”

“큭큭큭 그러면 이대로 남친이 살인을 저지르도록 둘 셈인가? 너를 위해 평생 감옥에 썩는 걸 두고 볼 셈인가?”

“그, 그, 그건.....”

“그럼 내 여자가 돼라. 그편이 너에게도, 그 녀석에게도 행복한 결말이다.”

내 옆에 사랑하는 그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을까.

절대, 절대 아니었다.

백하윤은 두 손을 싹싹 빌며 미스터 최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제발.... 제발 다른 방법을 알려주세요. 저 종필이 없으면 안 돼요. 저한테는 걔가 없으면...”

“다른 선택지는 없다. 오직 이 방법뿐이야.”

“제발. 제발이요... 저 종필이를 너무 사랑해요. 저 종필이를...”

“큭큭큭큭... 그래. 그러면 생각할 시간을 조금 주지.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오겠다.”

미스터 최는 그 말을 남기고 집에서 떠났다.

그가 떠난 뒤 백하윤은 가슴을 부여잡고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일주일이란 시간은 금방 흘렀다.

“결정했나? 어떻게 할 지.”

“..... 저, 저는. 저는 종필이가 없으면...”

퀭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백하윤.

그때 미스터 최가 폰을 들어 어떤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엔 피투성이가 된 채 의자에 묶여있는 박종필이 있었다.

“이, 이거 뭐예요! 왜 종필이가! 왜!”

“큭큭큭. ‘작업’에 실패해서 붙잡힌 모양이야. 거의 성공할 뻔했는데, 역시 애새끼라 그런지 결정적인 순간에 찌르지 못했다고 하더군. 그 때문에 이렇게 붙잡혀 버렸고 말이야.”

“아....아아....아아아....”

“어째, 이대로 죽게 놔둘까? 아니면 내 여자가 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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