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303)

그녀의 말대로 도청장치는 없었다.

“죽일 거야아!! 죽여!! 내가 넌 반드시!!”

뭐 그러시던가.

난 그녀의 허리띠로 두 팔을 묶은 다음 내 앞에 앉혔다.

그리고 난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고 보지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혹시나 도청장치가 있지 않을까,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읏! 크읏! 씨바알....개...새...끄읏!”

그리고 예상대로, 그녀의 보지 속에도 도청장치는 없었다.

영화 같은 거 보면 보지 속에도 뭘 숨겨놓던데.

아무래도 헛다리를 짚은 모양이군.

“없군. 도청장치가 없는 건 인정하지.”

난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풀어주었다.

그녀는 황급히 팬티를 올리고 정장 바지를 입은 다음,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리고 다짜고짜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후욱!

제법 매섭게 궤도를 그리는 주먹.

아마 평범한 성인 남자였다면 그녀의 주먹질에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정확히 내 턱만 노리고 들어오는 저 주먹에 단 한 대라도 맞았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파앗!

하여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녀를 제압했다.

주먹을 막은 다음 팔을 낚아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허나 그녀는 여전히 날 죽일 듯 노려 보며 악담을 퍼부을 뿐이었다.

“이, 개새끼! 넌, 넌 반드시 내가ㅡ!”

“흠. 난 철저히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당신 계획에 가담할 테니 이제 화 풀어.”

“웃기지 마! 누가 너 따위랑!”

“그럼 당신도 똑같이 해. 당신도 내 똥꼬 확인하면 되잖아?”

“이 씨바아아알! 이 미친놈이!”

이해할 수가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차도연도 나한테 똑같이 수치를 주면 되는 일 아닌가?

나도 처음 보는 여자한테 똥꼬를 보여주는 건 부끄럽다.

“너는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해줄게! 선처고 뭐고 너 같은 미친놈은-!”

“그러면 주인님에게 복수할 수 없을 텐데?”

내 말에 곧바로 표정을 굳히는 차도연.

대충 어림짐작으로 찍어본 거였는데, 역시나 맞았다.

차도연은, 주인님에게 원한이 있었다.

“...복수? 당신 헛짚었어. 난 그저 암흑가 소탕을 명받았을 뿐이고, 그걸 이루는 데 당신이 쓸만해 보였을 뿐이야.”

흠. 이미 다 걸렸는데, 그래도 발뺌해보시겠다.

웃기지도 않는다.

“그렇다기엔 당신 말에 모순이 너무 많은데. 고작 진급을 위해 이런 위험한 일에 뛰어든다고? 당신, 충분히 직급도 높으면서. 그렇게 젊은 나이에 말이야.”

“.....”

“그리고 당신. 날 엮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너무 티가 났어. 나 말고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테이저건을 달라고 했을 때 뒤돌아섰어야지. 아니면 몸을 더듬을 때 거절하던가. 결국 주인님을 조지려면 내가 필요하니까 참은 거 아냐?”

“.....”

분한 듯 아랫입술을 짓씹는 차도연.

나는 뒤로 꺾은 그녀의 팔을 서서히 놓아주며 말했다.

“당신에게 다른 대안은 없어. 처음부터 나와 손을 잡을 생각이었지. 하지만 걱정마. 주인님에 대한 복수. 내가 반드시 이뤄줄 테니까.”

난 그렇게 말하며 쓰러진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차도연은 내 손을 거칠게 밀치고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리고 그녀는 분하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걸 보니 자신이 당한 수모를 어떻게든 되갚아주고 싶은 듯했다.

“..... 그럼 당신도 항문, 하-아 씨발.”

허나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은 모양이다.

“보여줄까?”

“됐어, 씨발.”

괜히 성질을 내며 머리를 박박 긁는 그녀.

이윽고 차도연이 진정된 듯한 얼굴로 말했다.

“하아. 그러면 당신, 우리와 손잡는 건가.”

“어. 대신 모든 일이 끝나고 날 터치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 그건 불가능한데.”

“대신 주인님의 세력은 확실하게 소멸할 거야. 잘 되면 구원자까지도.”

구원자까지 엮을 수 있다는 나의 말.

차도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 조건이라면 맞춰줄 수 있어. 하지만 네깟 게 그럴 여력까진 안 될 텐데.”

“두고 보면 알겠지. 네가 날 잘 도와주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어?”

“..... 일단 알았어. 그럼 3일 뒤, 이곳에서 같은 시간에 보기로 하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서 걸어갔다.

속보로 전투하듯 걸어가는 걸 보니 상당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희연에게 전화를 건 다음, 명령을 내렸다.

“감시할 눈이 필요해. 우선 검사 차도연부터 찾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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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최의 핵심사업 중 하나인 마약 공장.

그곳의 가장 심층부에는 박종필의 집무실이 있다.

현재 박종필의 집무실엔 정장 차림의 남자 7명이 ‘ㄷ’자 테이블의 좌우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고, ‘ㄷ’자 테이블의 끝엔 박종필이 앉아 그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설명은 여기까지다. 대비 철저히 하고 애들 관리 잘 해둬.”

야심한 밤.

박종필은 휘하에 거느린 조직폭력배의 두목 일곱을 불러 모아 작전을 설명했었다.

그 작전이란 만약 주인님이 정성민을 치기로 결정하면, 그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어떤 루트로 어떻게 쳐들어가야 할지 설명하는 것이었다.

“”예! 형님!“”

우렁찬 사내들의 목소리.

각자 한 조직의 두목을 하고 있는 그들이 박종필의 명령을 받들어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러면 일봐라. 난 좀 쉴 테니”

박종필의 축객령에 일곱의 두목이 일어나 다시 한번 인사를 올린 뒤 퇴장했다.

박종필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인님께서 주신 최고급 와인을 가져온 다음, 유리잔 안에 붓고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정성민을 생각했다.

‘그놈. 그놈은 위험하다. 놈은 언젠가 주인님을 배신할 놈이야’

놈의 공격적인 투자와 폭발적인 성장, 그리고 이하영과의 접촉.

아직 정확한 물증은 없지만, 녀석이 야심을 품고 있다는 것쯤은 쉽사리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채 2년도 안 되는 시간에 자신의 마약공장과 주인님의 도박장을 추월하여 뒷세계 곳곳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분명 녀석에겐 이 뒷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야심이 있었다.

‘녀석은 아직 깨닫지 못한 거야. 그래서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거지.’

또한 녀석은 주인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려는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진심으로 충성하는 듯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녀석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직 녀석의 눈은 자신처럼 굴복한 자의 눈이 아닌, 도전하는 자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놈. 이신아도, 정성아도. 그리고 정현재도. 주인님의 보살핌을 받고 있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왜 굳이 그 행복을 앗아가려는 거냐.’

어리석게도 녀석은, 이신아와 정성아가 주인님의 곁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고 해도 기어코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기 위해 그 행복을 깨트리려 할 것이다. 녀석은 그런 놈이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주인님을 위해서. 그리고 하윤이를 위해서라도.’

백하윤.

나의 업보이자, 나의 빛. 나의 이정표.

박종필에게 백하윤은 자신의 모든 것과 같은 여인이다.

그는 백하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맹세했으며,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 그 어떤 것이든 바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꿈과 욕망을 모두 버리고 주인님에게 모든 것을 바치기로 했다.

오직 그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망가트린 주인님을 모시며 멀리서나마 하윤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 삶을 살아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하윤이에겐 주인님이 필요해.’

백하윤에겐 주인님이 필요하다.

그녀가 가장 원하는 사람.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그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 그 모든 사람이 바로 주인님이다.

정성민도, 자신도 아닌. 오로지 주인님뿐이다.

“젠장...”

새벽이라 감상적이게 된 탓일까.

박종필은 와인을 삼키며 쓰라린 마음을 달래보려 했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녀와의 추억을 잊어보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와인을 가득 채운 뒤 쭈욱 들이켜 마셨다.

허나 한번 터져 나온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와인을 들이키면 들이킬수록, 또 술에 취하면 취할수록 그때의 향수가 더욱 진해질 뿐이었다.....

***

기억의 시작은 18살 봄이었다.

그 시절 그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반쯤 미쳐 사는 아이였다.

집을 나간 엄마와 매일 술을 마시는 아버지.

가난에 찌들어 반지하에 살아가는 하루하루.

그때의 박종필은 이 세상 모든 것이 미웠다.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린 엄마도 미웠고, 매일 술을 처마시고 자신을 두들겨 패는 아버지도 증오스러웠다.

밝게 웃고 떠드는 반 친구들도 역겨웠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훈계질을 처하는 선생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날. 그 분노는 폭발하고 만다.

수업시간에 잠만 잔다고 핀잔을 준 선생을 두들겨 패버린 것이다.

그 사건으로 그 선생은 전치 8주가 나왔고, 박종필은 퇴학처분을 받고 말았다.

“씨이발! 나도 나가면 될 거 아니야! 이 개좆같은 집! 나도 더 이상 못 있겠으니까! 개-씨발!”

소속될 곳을 잃어버린 박종필은 더욱 겉돌기 시작했다.

특히 학교에서 퇴학당한 것이 들켜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을 땐,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과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에게 주먹질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배를 걷어찬 다음, 온갖 욕설과 악담을 퍼붓곤 집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가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을 땐, 자신을 동물 구경하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길가에 집이 위치하는 바람에 싸우는 소리가 바깥까지 다 들려 사람이 몰려든 탓이었다.

“씨발 뭘 봐? 뭘 쳐다봐 이 씨-발 새끼들아?”

자신의 불행을 동물원 동물 구경하듯 바라보는 대중들.

박종필은 그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대부분이 눈을 피하며 자리를 피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떤 50대 아저씨가 혀를 쯧쯧 차며 해선 안 될 말을 중얼거린 것이다.

“쯧쯧... 어린 것이 벌써부터.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한데”

툭 던지듯 생각 없이 내뱉은 중얼거림.

그 말에 박종필의 이성이 툭- 하고 끊어졌다.

그는 그 말을 중얼거린 50대 남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50대 남자는 저항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박종필의 주먹질을 맞아야만 했다.

“씨발! 씨발! 씨-발 새끼가! 다시 지껄여봐! 개-씨발! 씨-발놈아!”

잔뜩 웅크린 50대에게 거침없이 주먹을 퍼붓는 박종필.

그때, 등 뒤에서 어떤 충격이 느껴졌다.

뒤돌아 바라보니, 어떤 여학생이 자신에게 책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이 양아치 새끼야.”

여학생은 그렇게 말하곤 책가방에서 필통을 꺼내 집어 던졌다.

박종필은 날아오는 필통을 툭 쳐낸 다음,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여학생은 물러서지 않고 코앞까지 다가온 박종필을 노려보았다.

“다시 말해봐. 이 씨발년아.”

“다시 말해줘? 그만하라고 했어, 이 양아치 새끼야.”

“썅년이!”

-짜악!

박종필은 그대로 여학생의 싸대기를 후려갈겼다.

어찌나 세게 휘둘렀는지, 여학생은 뺨을 맞자마자 바닥에 쓰러졌다.

“씨발년이 주제도 모르고!”

-퍼억!

박종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여학생의 복부를 걷어찼다.

여학생은 배를 움켜잡고 컥컥거리다가, 다시 자신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주제도 모르는 건... 너야. 이 양아치 새끼야.”

보통 이쯤 되면 알아서 기게 마련인데, 여학생은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박종필은 자신을 노려보는 이 여학생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이 썅년의 대가리를 깨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그는 여학생의 머리를 내려찍으려 발을 들어 올렸다.

“멈춰 이 새끼야!”

하지만 그때, 경찰이 다가오며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박종필과 50대 아저씨. 그리고 여학생은 그대로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박종필은 수갑을 찬 채 폭행 사실을 그대로 진술했다.

“저 씨발 새끼랑 저 썅년. 제가 존나게 팬 거 맞고. 죽이고 싶었는데 못 죽여서 아쉽네요. 특히 저 새끼는 진짜 죽이고 싶었는데.”

“이 자식이 어른한테 그렇게-.”

“그러니까 경찰 아저씨. 저 그냥 사형시켜주면 안 됩니까? 안되면 제가 나중에 저 새끼 죽이고 사형당할 거니까.”

“하아..... 뭐 이런 또라이가 걸렸어.”

박종필은 이 세상이 싫었다.

어른이랍시고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어른들도 싫었고, 자신을 무서워하는 또래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이 세상 모든 게 다 싫었다.

다 망해버리고 죽었으면 좋겠다.

“사장님. 그냥 용서해줘요. 네?”

그런데 그때, 자신이 두들겨 팼던 여학생의 목소리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용서해주자니, 뭘 용서해주자는 말일까.

“하아. 너 내 얼굴 이렇게 된 거 안 보이냐? 합의금을 받든! 깜방에 집어처넣든! 결판을 내야지!”

“사장님이 먼저 자극해서 그런 거잖아요.”

“아니 무슨! 그게 이렇게 두들겨 맞을 이유가 되냐?”

“그게 아니더라도. 쟤 하는 말 못 들었어요? 사장님 죽인다잖아요. 출소하고 나서 죽이려고 찾아오면 어쩌려구요? 쟤 백퍼 진심이에요 사장님.”

“아, 아니... 설마.”

50대 남성은 그렇게 말하며 박종필을 힐끗 쳐다봤다.

그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박종필을 보자마자 황급히 얼굴을 돌렸다.

“보, 보고 있잖아!”

속삭이듯 말하는 남자.

여학생이 말했다.

“그러니까 그냥 용서해줘요. 합의금을 받든, 깜방에 집어넣든. 사장님한테 보복할지도 모르니까.”

“아이씨. 그래도...”

“사장님. 제 말 들어서 한 번도 손해 본 적 없잖아요. 그쵸?”

“아니, 그래도 이건...”

“용서해줘요. 네? 다음 달부터 사장님 가게 봐 줄 테니까.”

“응? 정말이냐? 정말 와 줄 수 있어?”

“그럼요. 안 그래도 돈이 필요해서요.”

“그래그래. 네가 나와준다면 나야 고맙지. 크흠. 그래도 치료비는...”

“제가 어떻게든 구해볼게요.”

“네가? 네가 왜? 설마 대신 내주게?”

“기다려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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