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몸에 문제는 없어 보인다.
팔다리, 손과 발, 손가락과 발가락. 모두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목은 어때? 통증이 있을 텐데.”
이하영은 내 말을 듣고 목을 움직이려 했다.
허나 금세 인상을 찌푸리며 않는 소리를 낸다.
“... 무리가 올 만하지. 몸의 무게가 목에 다 쏠렸는데.”
“... 참을 만해.”
“참기는. 기다려 봐.”
난 곧바로 폰을 들어 이희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에 이하영이 흠칫 놀라며 바로 반응했지만, 난 손을 앞으로 내밀어 이하영을 제지시켰다.
“돌팔이 하나 불러와. 입단속 할 수 있는 놈으로.”
“... 무슨 일 생긴 건가요?”
“불러오기나 해.”
“.....네. 나중에 설명해주셔야 해요.”
난 곧바로 통화를 끊었다.
돌팔이는 불법 의술을 하고 있는 의사로, 뒷세계의 일을 하며 안면을 터놓은 돌팔이 몇몇이 있었다.
이희연 또한 내 조수 역할을 하며 그 녀석들을 잘 알고 있었고.
“돌팔이면... 불법 시술하는 의사를 말하는 거야?”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하영이의 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득 솟아오르는 궁금증을 불쑥 내뱉었다.
“근데. 너 진짜 죽으려고 했던 거야? 진짜로?”
“.....”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하영.
다음 질문을 했다.
“이해가 안 돼. 분명 네가 구원자에게 넘어가는 걸 똑똑히 봤는데.”
영상으로 분명히 봤었다.
구원자의 광신도가 되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허나 이하영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가 문득 꺼낸 말은 의외였다.
“.....솔직히 말하면, 흑심은 있었지.”
... 흑심이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속내를 숨긴 채 그냥 죽으려 했던 걸까.
난 이어지는 이하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아버지의 대저택에 너를 데리고 올 작정이었어. 아버지에게 부탁해 네 가족부터 원래대로 되돌리고, 그렇게 네게 용서를 받으면 너를 아버지의 성으로 데리고 와 A급 합창단원으로 만들 계획이었어. 그렇게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하는 거지.”
... 결국 나를 구원자의 노예로 만들려고 했다는 말이군.
의도는 괘씸하지만 그만큼 나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말이니,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왜 그냥 죽으려고 한 거야.”
“...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여서. 네가 날 그토록 증오하는 줄은 몰랐어...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네가 해줄 줄 알았어...”
자신을 그토록 증오하는지 몰랐다고 하는 이하영.
왜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생각해보니, 이하영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나의 모습은 그녀의 노예로 전락한 형편없던 모습이었다.
그녀에게 학대당하고 매도당하는 것에 기뻐하며 고개를 조아렸던, 그런 한심한 모습이 이하영이 기억하는 내 마지막 모습이었다.
난 그 치욕의 순간을 머리 속에서 지우며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그때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라고 답하려던 찰나.
난 스스로 뱉으려던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라는 말은, 이하영이 내게 수차례 변명했던 말과 똑같은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변명을 믿지 않았던 내가, 똑같은 변명을 하려 하다니.
“하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분명 이하영은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자신을 믿어달라 수도 없이 말했지만, 난 그것을 믿지 않았다.
내가 이하영의 노예에서 주인님의 수제자로 180도 변한 것처럼, 이하영도 그렇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
이하영은 의문이 담긴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돌연 하던 말을 멈추고 이상한 웃음을 흘리고 있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그냥 좀 웃겨서. 서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게.”
이하영은 내가 자신을 따라올 거라 믿고 있었고, 나는 이하영이 거짓말을 할 거라 믿고 있었다.
처음부터 우린 서로를 오해한 상태로 만난 것이다.
... 허나, 빙빙 돌아와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되었다.
이하영은, 분명 내게 마음이 남아있었다.
“일단 네 생각은 알았어.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믿어줄게. 목숨까지 내던질 정도니.”
이하영은 날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려고 했었다.
물론 그런 결심의 계기가 온전한 사랑이 아닌 나를 망쳐버렸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아무리 죄책감이 크다 한들 목숨까지 바칠 수 있을까.
분명 커다란 사랑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네 계획에는 동참할 수 없어. 구원자의 노예가 되어서 영원히 함께 하는 거라니. 내 쪽에서 사양이야.”
“.....”
“그래서 물어볼게. 만약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구원자를 배신하는 거라면, 그래도 할 수 있겠어?”
이하영은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우선순위는 어느 정도일까.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하영이의 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어려운 질문이네. 내가 아버지에게 느끼는 감정. 그걸 사랑이라 해야 할진 잘 모르겠지만, 그분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건 진심이야. 그분을 위해서라면 너를 제외한 그 어떤 것이든 내어줄 수 있어.”
... 나를 제외한 그 어떤 것이든.
역시 구원자의 재세뇌는 완벽하게 먹혀든 건가.
“그래도 답해줬으면 좋겠어. 좀 더 극단적으로, 둘 중 하나를 죽여야 한다면?”
“..... 안돼. 어느 쪽도 포기 못 해.”
“그래도 해야 한다면.”
난 좀 더 강한 어조로 말하며 이하영을 압박했다.
그러자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며 불안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난 그녀가 환자인 것을 상기하며 눈을 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됐어. 그냥 나중에 대답해줘.”
“응...”
질문을 마친 나는 현재 내 근황을 하영이에게 전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썩은 표정 지을 거 없어. 지금 생활도 나름 만족하고 있으니까.”
위로하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적어도 지금의 내겐 목표가 있었다.
언젠가 이신아와 정성아도 나의 것으로 만들어 발아래 두겠다는 목표가.
그런데 오늘 이하영과 대화를 나눠보니, 그녀도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시간을 공들여 천천히 작업하면, 어떻게든 길이 보이지 않을까.
“이하영.”
하여 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손을 잡으며, 예전 그녀를 바라보던 눈빛을 연기했다.
그녀의 동공이 큼지막하게 확대된다.
“당분간은 이렇게 만나는 게 어때. 적당히 날짜를 정해서, 이렇게 가끔 둘이 만나는 거야.”
“..... 날, 용서해주는 거야?”
“뭐, 노력해보려고. 네가 정말 죽도록 미웠는데, 역시 진짜 죽는 걸 바란 건 아니더라.”
“... 응. 만나자. 우리 계속 만났으면 좋겠어.”
난 그녀의 손을 잡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인 뒤, 돌팔이가 언제쯤 오는지 확인해보겠다며 폰을 들었다.
나는 노예들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계획이 바뀌었어. 이따 돌팔이 들어올 때 너희도 함께 들어와. 그리고 이희연 너는 이하영의 시선을 끌어주고, 그때 박하린은 이하영의 폰에 프로그램을 깔아놔]
애초에 내 계획은 이하영의 폰에 해킹 프로그램을 심어 구원자의 정보를 빼내는 것이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전개에 작전이 많이 지연되어 버렸지만, 어쨌든 작전은 그대로 속행하기로 했다.
이하영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들려면, 구원자가 어떤 놈인지 면밀히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
[네, 주인님. 3분 뒤에 도착입니다.]
난 답장을 확인하고 폰을 껐다.
그리고 3분 뒤, 돌팔이와 이희연, 박하린이 함께 들어왔다.
바깥은 건달 놈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잘 지냈어?♥”
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이하영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희연.
이하영은 다시 대역죄인이 된 표정으로 이희연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돌팔이는 이하영의 목을 고정할 수 있도록 응급조치를 하고 있었고, 박하린은 그 틈을 타 이하영의 폰에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됐어. 그렇게 사과할 필요 없어. 난 이렇게 주인님과 이어졌는걸?”
그때, 이희연이 이하영의 사과를 잘라내며 내 팔을 끌어안았다.
이하영은 나를 ‘주인님’이라 칭하는 이희연의 모습에 당황하는 듯했고, 이희연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이하영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끊어내기 위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오늘은 시간이 다 된 거 같네. 너무 오래 소식이 없으면 주인님이나 구원자가 의심할 거야. 나 먼저 나갈 테니까, 적당히 때를 봐서 나중에 나와. 조심해서 가고.”
“... 응. 그러면 우리 언제 만나.”
“다음 주 같은 요일에 만나자. 무슨 일 있으면 우리 비밀 계정에 글 남길게.”
“응. 다음 주 같은 요일에.”
난 이하영의 대답을 듣고 뒤돌아섰다.
그리고 모텔 밖을 나서며, 이하영을 되찾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어둠이 짙게 깔린 방.
정성아는 나체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지금 그녀는 두 눈이 안대에 가려진 채, 다리는 M자로 활짝 벌려 각각의 발이 팔과 맞닿아 테이프에 묶여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항문과 음부는 자지를 박아넣기 좋게끔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후우우....후우우우....”
정성아는 열락의 숨을 몰아쉬며 애액을 질질 흘려댔다.
주인님이 성물이 자신의 안으로 들어오길 간절히 바라며, 이 애타고 애타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 주인니임...”
정성아는 주인님을 떠올렸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모습부터, 찬찬히 주인님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주인님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처음엔 분명 혐오스러운 중년 아저씨였다.
의외로 신사적인 면이 있나 싶었지만, 결국 주인님은 자신의 몸을 탐하기만 하는 쓰레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인님과 몸을 섞으면 섞을수록, 주인님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자신은 주인님에게 빠져들어갔다.
왜 그렇게 주인님을 혐오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현재 자신은 주인님을 너무도 사랑하고 있었다.
문득 정성아는 주인님에게 저질렀던 자신의 무례를 떠올리며 피식 조소를 흘렸다.
‘멍청한 년’
예전의 자신.
그 멍청한 년은 주인님을 끝까지 거부했었다.
당신을 저주한다고, 당신 같은 부류를 가장 혐오한다고. 당신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악담을 퍼부었었다.
그때의 주인님은, 자신이 얼마나 하찮게 보였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흑역사였다.
‘주인님...주인님...주인님주인님주인님...주인님....♥’
과거, 빛나는 아이돌이 되겠다는 유치한 꿈을 품고 있었던 자신.
정성아는 그런 어린아이 같은 꿈에서 벗어나게 해준 주인님에게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주인님께선 그런 시시한 꿈은 집어치우고 황제에게 몸을 팔아 황후가 되라 하셨고, 황제와 그의 아들을 죽여 여제가 되라고 하셨다.
끊임없이 권력 있는 남자를 잡아먹어, 한국 방송가의 정점에 오르라고 말씀해주셨다.
‘될게요옷...♥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남자라도 밟고 올라갈 수 있어요...♥’
정성아는 후욱- 후욱- 열띤 호흡을 내뱉으며 그런 잔인무도한 여자가 되고자 마음먹었다.
이제 정성아는 무대 위에서 빛나는 아이돌이 목표가 아니라, 권력을 얻기 위해 어느 남자건 가랑이를 벌릴 수 있는 주도면밀하고 계산적인 여자를 목표로 두기로 했다.
“큭큭. 오래 기다렸나.”
그렇게 자신의 다짐을 재확인하던 와중.
기다리고 기다렸던 주인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성아는 항문과 보지를 벌름거리며 주인님의 등장을 반겼다.
“처, 천박하고 추악하게 타락한 아이돌, 아리아의 보지가 여기 있어요오...♥ 어서 들어와주세요.”
걸그룹 ‘아인’의 메인보컬이자 리드댄서인 ‘아리아’.
독보적인 비주얼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차세대 아이돌의 리더로 주목받은 ‘아리아’.
그렇게 대중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는 아이돌 아리아는, 이렇게 흠뻑 음부를 적신 채 주인님의 자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에겐 팬들의 사랑이나 지지 따윈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오직 자신 앞에 있는 한 남자만이 중요했다.
“큭큭. 이번이 11번째 만남인가. 아주 잘 조교되었어. 그렇게 건방졌던 년이었는데 말이야.”
“으응~♥ 그땐 제가 어리석었어요...♥ 어서 혼내주세요. 저의 천박한 자궁, 주인님의 성물로 찌부러뜨려 주세요...♥”
“큭큭. 마음에 드는군. 그럼 간다!”
-쑤욱!
핑크빛 균열을 파고드는 흉포한 자지.
정성아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조수가 뿜어져 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질내를 꽉 채우는 주인님의 성물을 느끼며, 주인님을 향한 절절한 마음을 속으로 외쳤다.
‘위대한 주인님의 자지잇...대단해...좋아해요 주인님...좋아해...너무 좋아해요...사랑해.... 사랑해요 주인님...사랑해요...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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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영과 접선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난 이하영의 폰에 심어놓은 도청 파일을 듣고 있었다.
구원자의 측근이 된 이하영은 내게 많은 정보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제 일을 맡길 때도 됐지. 너만한 인재를 썩혀두는 것도 자원낭비야.]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할게요♥]
구원자는 이하영에게 새로 신설하는 사업을 맡겼다.
그 사업이란 제2의 ‘천국’을 만드는 것이었다.
여기서 ‘천국’이란, 구원자가 구축해놓은 노예의 계급제 시스템과 향락소를 의미한다.
즉, 구원자는 자신의 왕국을 프렌차이즈 식으로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강원도라.”
새로운 지부를 건설하는 곳은 강원도.
강원도에 지어지는 새로운 천국은 카지노와 연계될 계획이라고 한단다.
만약 이곳의 최고 책임자를 이하영이 맡게 된다면, 그녀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다.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
지금의 이하영은 그야말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카드이다.
지난 두 달간 이하영의 폰을 통해 그녀를 도청하고 감시했던 나는, 아직 그녀가 내게 강한 집착이 남아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주인님에게 빠졌던 이희연을 내 것으로 만든 것처럼, 구원자에게 빠진 이하영을 내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일발 역전을 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자살 소동이 큰 수확으로 다가올 줄이야.’
지난 두 달간 난 이하영을 7번 정도 만났었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을 가지며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이하영의 기억에 조금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
그러니까 이하영이 자살 소동을 일으킨 그 날.
이하영은 경동맥을 압박받아 졸도했었다.
그 이유는 목이 졸리며 뇌로 가는 산소가 일시적으로 차단되었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뇌에 손상이 온 모양이다.
하여 이하영은 구원자에게 조교 받은 일부 기억을 상실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