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다시 이하영이 남겼던 비밀글을 바라보았다.
문단 중간중간마다 주인님이 최우선이라고 적었던 년이 내가 연락할까 봐 이 번호를 가지고 있었다고?
난 피식 웃음을 흘리며 독기 어린 말을 짓씹듯이 내뱉었다.
“씨발년이, 내가 아직도 네 수작질에 놀아나는 좆밥으로 보이나?”
“.....”
다소 격앙된 내 말에 침묵하는 이하영.
이하영의 떨리는 숨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이것 또한 연기겠지.
“구원자가 뭘 지시했어? 이제 그놈한테 대주면서 살기로 한 건가? 뭐, 그 녀석이 좆도 물건이긴 하지.”
“.....”
“동생 놈도 빼갔던데. 그것도 구원자한테 대줘서 얻은 거래인가? 주인님 밑에서 돼지처럼 살아갈 바에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누나 노릇도 하고.”
“서, 성민아. 난...”
“닥쳐 썅년아. 개수작질인 거 다 알고 있으니까, 그 입 열지마. 역겨우니까.”
“.....나, 나는.”
“넌 내가 반드시 원래대로 돌려줄게. 돼지처럼 살을 찌워서 온몸에 털을 기른 짐승년으로, 다시 돌려줄게. 그게 네 진정한 모습이잖아?”
“.....”
“네 가족도 모두 파멸시켜줄 게. 도박과 마약은 끓기 쉽지 않다던데, 네 동생놈 조금만 구슬리면-.”
“성민아-! 안돼! 내,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우리 가족은-”
우리 가족은 안 된다?
내 가족은 어떻게 됐는데?
지랄하고 자빠졌네 씨발년이.
“킥킥킥킥킥킥. 어디 한번 발버둥쳐 봐. 네 부모, 동생 모두 제대로 파멸시켜줄테니까.”
“서, 성민...하으...성민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정말-!”
“넌 네 친한 친구도 버린 년이야. 지금 이희연이 어떻게 된 줄 알고 있어?”
“희, 희연이는...?”
“이제 걔는 내 노예년이야. 오나홀로 아주 잘 써먹고 있어.”
“..... 서, 성민아. 성민아... 내가 잘못했어. 평생 사죄하며 살아갈게... 내가, 내가 미쳤었어. 그땐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술 먹고 사람을 죽이면, 제정신이 아니라서 용서를 할 수 있나.
그럴 순 없지.
“남 인생을 조져놨으면 네 인생도 조질 각오도 해야지. 분명 네가 그랬었지. 끝까지 함께 타락하자고. 그러니까 그 약속 지켜줄게. 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옥 끝까지 끌고 들어가 줄게.”
“.....”
다시 침묵하는 이하영.
수화기 너머로 가쁜 호흡을 내뱉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는듯한 소리도 계속 들렸다.
... 저기에 속으면 안 된다.
“응. 으응. 같이 지옥으로 끌고 가줘. 모두 내 잘못이야.”
모든 걸 체념한 듯한 이하영의 대답.
난 이하영이 무슨 간교한 계략을 꾸미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거 하나 말해두고 싶어.”
간절함이 묻은 이하영의 목소리.
난 귀를 기울였다.
“..... 믿진 않겠지만, 정말.. 이제와서 염치없는 말이지만. 난 아직 널 사랑하고 있어.... 아버지에게 주인님의 흔적이 지워지면서도, 끝까지 너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더라.... 아마 아버지에게 내쳐져도 난 그럴 거 같아.”
개수작이다.
또 나를 가지고 놀려는 개수작이다.
“성민아. 다 받아들일게.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원망하지 않을 게. 그러니까 한 번만, 한 번만 얼굴 보게 해주면 안 돼?”
얼굴을 보게 해준다.
만나자는 말인가.
“... 서로 만나서 고운 말 오갈 일은 없을 텐데. 난 진심으로 널 망가트릴 거야.”
“..... 그렇구나. 그, 그러면 영상통화만이라도. 응? 그냥 영상통화만이라도...”
영상통화.
딱히 손해 볼 건 없었다.
문득 구원자의 자지에 박히면서 날 기만하는 이하영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이미 그런 배신엔 단련이 잘 되어있다.
이신아가 정현재를 농락하는 꼴을 그토록 봐왔는데, 배신에 대한 내성이 없을까.
“그럼 네가 걸어.”
난 그렇게 말하며 통화를 끓었다.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꽉 쥐었다.
이윽고 폰이 진동하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달칵.
난 마음의 준비를 한 뒤 전화를 받았다.
폰을 높게 들어, 내 화면을 꽉 채우는 이하영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눈물범벅이가 된 채 날 바라보며 슬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속으면 안 되는데, 그녀는 예전의 그 이하영을 완벽하게 연기하고 있었다.
정말 내가 그리워하고 애타게 찾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성민아....미, 미....”
이하영은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으며 입을 틀어막았다.
끄윽 끄윽 울음을 참으며 가슴을 꽉 쥐었다.
이에 나는 눈을 감고 마음을 정리해보았다.
울컥 솟아오르는 슬픔을 눌러 담아 현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려 했다.
그렇게 이하영이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 그녀가 나를 기만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주인님에게 버림받고, 이제 막 구원자에게 충성한 이하영이, 이런 행동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정녕 아무것도 없었다.
난 다시 눈을 뜬 뒤 눈물로 엉망이 된 이하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하영. 만나서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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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영과 통화를 끝낸 나는 별채로 돌아왔다.
난 별채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맞이해주는 1호 노예 이희연에게 혹시 주인님에게 받은 USB 파일이 있냐고 물었다.
“네 주인님♥ 구원자 측에서 보낸 파일이라면 있습니다.”
구원자 측에서 보낸 USB 파일.
거기에 이하영이 주인님을 포기하고 구원자에게 붙는 과정이 담겨있다.
3일 뒤 이하영과 만나기로 했으니, 그동안 이하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면 되겠다 싶었다.
“가지고 와서 재생해. 분량은 얼마나 되지?”
“으음~ 확인해봐야 할 거 같아요.”
“일단 들고 와”
“네♥”
노예년은 곧바로 USB를 들고 와 영상 길이를 확인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움. 엄청 길어요. 열네 시간이나 돼요”
열네 시간.
열네 시간이면 오히려 짧은 편이다.
이하영이 구원자에게 넘어간 두 달을 열네 시간으로 압축한 거니 짧다고 볼 수 있었다.
“재생해. 볼 시간은 많으니까”
“네.”
이하영을 만나기로 한 날짜는 3일 뒤.
14시간이면 넉넉하게 볼 수 있겠다.
드라마 하나 정주행한다고 생각하고 보면 일도 아니지.
무엇보다 한때 내가 가장 사랑했던 이하영이 다시 조교 당하는 영상이니, 의외의 포인트에서 꼴릴 수도 있고.
-파앗!
어쨌든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영상은 재생되었다.
영상의 첫 시작은 구원자와 이하영이 첫 대면을 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구원자는 새카만 피부에 뱃살과 얼굴살이 축 늘어진 이하영을 보며 혀를 쯧쯧 차며 입을 열었다.
[아주 처참하게 타락했군. 널 정화해주마.]
구원자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정화한 여자들의 영상을 이하영에게 보여주었다.
이후 이하영은 돌연 ‘합창단’이라 불리는 무리에게 끌려가 독방 안에 갇혀버렸고, 며칠 뒤 모습을 드러낸 이하영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씻지 못해 얼굴엔 땟국물이 가득했고, 눈 밑엔 큼지막한 눈곱이 박혀있었다.
머리 또한 오랫동안 감지 못해 산발에 떡이 져 있어 노숙자나 다름없는 몰골이었고, 눈 또한 퀭하게 내려앉아 완전히 영혼이 빠진 듯한 동태눈을 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그것 좀 그만 틀어. 제발....]
침을 질질 흘리며 필사적으로 ‘그걸’ 틀지 말라고 하는 이하영.
난 이때 ‘그것’이 도대체 뭘까 궁금해했었는데, 영상을 30분 정도 더 보고나니 이하영이 말하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하영이 독방에서 매일 들어야 했던 기도문이었다.
[위대하신 아버지에게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아버지에게 이 몸과 영혼을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 오직 아버지만이 나의 사랑이며, 아버지를 위해 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음을 맹세합니다.]
하루 24시간 1초도 빠짐없이 강제로 들어야 하는 기도문.
아무리 나라도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저걸 하루종일 듣고 있으면 미쳐버릴 거 같았다.
구원자는 주인님의 세뇌를 풀기 위해 강력한 정신고문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참고할 만한데.’
주인님의 세뇌를 풀어버린 구원자의 방법.
난 그 방법에 흥미를 느끼며 영상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영상 속 이하영의 시간이 일주일가량 지나자, 이하영은 구원자의 등장에 180도 바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독방 문을 열며 모습을 드러내자, 입을 멍하니 벌린 채 주인님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으로 구원자를 멍하니 응시했다.
이윽고 구원자는 ‘널 쉬게 해주고 싶다’라고 말하며 이하영을 데리고 갔고, 더러워진 이하영의 몸을 씻겨주고 따뜻한 음식을 먹게 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품에 안겨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저 때부터 시작이었군’
이하영의 마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분명 저 때부터였다.
독방의 고통에서 해방감을 맛본 이하영은 자신을 꺼내준 구원자에게 의존하기 시작했고, 다시 독방에 갇혔을 땐 구원자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오열하기까지 했다.
이윽고 독방의 갇힌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땐, 이하영은 절대로 읊지 않겠다고 했었던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구원자는 자신의 품에 안겨 기도문을 읊는 이하영을 쓰다듬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이내 이하영을 끌고 어딘가로 데려갔다.
‘파라다이스의 시스템과 비슷한 건가.’
이후 구원자가 보인 행보는 파라다이스의 시스템과 비슷했다.
그 시스템이란 어떤 행동을 했을 시 어마어마한 보상을 안겨줘, 그 행동에 중독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다만 구원자의 방식이 좀 더 파괴적이고 치밀할 뿐이었다.
[많이 먹거라. 체하지 않게 조심하고]
이하영의 눈앞에 깔린 산해진미.
독방에서 쓰레기 같은 음식만 먹어왔던 이하영은 오랜만에 먹는 맛있는 음식을 미친 듯이 탐하기 시작했다.
마치 걸신들린 거지라도 되는 마냥, 손에 잡히는 음식이란 음식은 모두 목구멍 안으로 쑤셔 넣어버렸다.
마치 전투를 치르듯 식사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절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따라와라. 이곳을 구경시켜주지.]
그렇게 식사를 마친 구원자는 자신의 왕국을 이하영에게 소개해줬다.
그가 처음으로 소개해준 곳은 그의 최대 사업장인 향락소로, 오늘 주인님이 견학시켜줬던 ‘파라다이스’와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었다.
다만 향락소는 파라다이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더욱 크고 더욱 화려했으며, 더욱 폐퇴적이고 더욱 폐쇄적이었다.
즉 향락소는 파라다이스를 도박장에서 따로 분리하여 부족한 것은 보강하고 규모를 더욱 확장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계급별로 층을 나눈 것도 흥미롭군.’
또 향락소는 층마다 출입제한을 걸어두어 계급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1층은 데스크니 제외하고, 2층은 D급만 이용할 수 있는 보급형 빡촌 같은 느낌이었고, 3층은 C급과 B급이 이용할 수 있는 테마별 빡촌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4층은 ‘합창단원’들인 A급만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A급은 D, C, B급과 차원이 다른 급으로, 그들은 향락소내에서 자신만의 독방을 이용할 수 있으며, 그곳에서 언제든 마음에 드는 아래 등급을 호출해 자신이 원하는 섹스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구원자의 왕국에서 진정한 상위포식자는 A급을 넘어서는 ‘구원자의 딸’이었다.
이해하기 쉽게 계급제 사회로 예시를 든다면 D급은 천민, C급은 평민, B급은 부유층 평민, A급은 귀족이라 한다면, ‘구원자 딸’은 왕족이라 할 수 있었다.
난 구원자가 구축해놓은 이 계급제 시스템에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확실히 괜찮은 방법이네. 계급으로 특권을 부여하고, 그걸 이용해서 욕망의 지배구조를 만드는 게.’
구원자의 시스템은 참조할 만했다.
언젠가 나만의 세력을 이루어 그곳을 관리하게 된다면, 나 또한 구원자의 시스템을 모방해 내 노예끼리 서로의 욕망을 잡아먹는 구조를 만들 것이다.
아래는 위를 올려다보고 위는 아래를 멸시하며, 끊이지 않은 욕망의 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다.
그렇게 사회와 완전히 동떨어진 가치관을 가지게 만들어 영원히 내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철저히 관리할 것이다.
[이제 마지막 층이구나. 거기서 ‘의식’을 치르도록 하겠다.]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 구원자는 이하영을 데리고 5층으로 올라갔다.
5층은 구원자와 그의 딸만 이용할 수 있는 방으로, 층 전체가 거대한 방으로 이뤄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거라.]
하지만 모든 게 휘황찬란하게 장식되어 있는 그 방에, 묘하게 이질감을 풍기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정면 벽 중앙에 붙어 있는 쇠로 된 철문이었다.
흡사 이하영이 트라우마를 겪었던 독방의 출입구와 비슷한 형태의 문이었다.
[아, 아버지. 저곳은]
[의식을 치르는 곳이다. 들어가거라.]
강압적인 구원자의 말투.
어깨를 떨고 있는 이하영.
이하영은 도축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구원자의 냉랭한 시선을 받으며, 철문 앞으로 등 떠밀리듯 걸어갔다.
그렇게 이하영은 독방의 입구를 연상케 하는 철문 앞에 우뚝 섰다.
그리고 입술을 덜덜 떨며 철문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열고, 들어가라.]
고압적인 구원자의 어투.
이하영은 아버지의 명령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문손잡이를 돌린 뒤, 철문을 열었다.
그녀의 눈앞엔 무저갱과 같은 어둠이 그녀를 집어삼킬 듯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허억....하윽....]
블랙홀 같은 칠흑의 어둠을 보자마자 호흡곤란이 오기 시작하는 이하영.
하지만 구원자는 자비가 없었다.
이하영이 독방에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있는지 알면서도, 기어이 그곳으로 들어가라 명령을 내리며 이하영을 몰아붙였다.
결국 이하영은 아버지의 명령에 못 이겨 어둠 속으로 발을 들이고 말았다.
-끼이이이익 쾅!
이하영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닫힌 철문.
이윽고 이하영이 ‘아버지!’라고 외치며 철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원자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고, 카메라는 독방 안에 갇힌 이하영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열화상 카메라로 전환된 어둠 속의 이하영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구원자가 말한 의식이 뭘까.’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도대체 구원자는 무슨 방법으로 주인님의 세뇌를 해제했던 걸까.
그가 말한 의식은 무엇이며, 이하영은 이제 어떤 재세뇌를 당하게 되는 걸까.
..... 하지만 이런 나의 기대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천천히 부식되어 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영상이 한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즉 이하영의 시간으로 3일이 지나가는 동안 구원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화 보기
이하영이 ‘의식’을 치르던 그때.
그러니까 현재 날짜에서 한 달 전.
이하영은 오들오들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자신을 이곳에 버려두고 떠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이곳에선 갇혀버린 시간을 셈할 수도 없었다.
그저 광활하고 축축한 기분 나쁜 어둠 속에서 길게 늘어선 고통의 시간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왜, 왜 아무것도 오지 않는 거지? 의식을 치른다고 했잖아. 날 딸로 받아주겠다고 했잖아.’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걸까.
구원자는 자신을 이곳에 가둬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먹을 것도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