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303)

희연이가 괴성을 내지르곤 손톱을 까득 깨문다.

이윽고 그녀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뒤, 자신의 누를 악어이빨을 정한 듯 숨을 크게 들이킨다.

“흐아아아앗!!”

그렇게 요상한 기합을 넣으며 악어이빨을 누르는 그녀.

걸려라!

-뽀옥.

허나 운 좋게도, 악어이빨은 무사히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 이때쯤 희연이가 져줘야 정상인데.

이번에는 꽤 질기군.

“후우....”

이제 확률은 1/2.

다시 내가 할 차례이다.

다만 악어이빨을 누르기 전에, 난 희연이를 바라보며 씩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야. 커피에 케이크도 얹어서, 콜?”

“케, 케이크도?”

“어. 케이크도.”

“... 콜. 까짓거 달려보자.”

난 다시 악어이빨로 시선을 돌렸다.

확률은 반반.

윗이빨을 택할 것이냐, 아랫이빨을 택할 것이냐.

마법의 주문을 한 번 써볼까.

‘.... 척.척.박.사.님.께. 물.어.봅.시.다 딩.동.댕....동!’

그렇게 모든 염원을 담아 누른 악어 이빨.

뽀옥-! 깔끔하게 안으로 접혀 들어가는 소리.

나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푸-하하하하! 크히히히힛!”

남은 이빨은 하나.

굳이 눌러보지 않아도 승패의 결과는 자명했다.

나의 승리이다.

“희연아. 뭐해? 어서 눌러야지?”

나는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희연이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곤 그녀의 귀에다 ‘안 누르고 뭐해?’, ‘네 차례잖아?’, ‘혹시 안 걸릴지도?’ 따위의 말을 내뱉으며 그녀를 조롱했다.

“아오! 진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녀가 성큼성큼 카페로 걸어갔다.

나는 그사이, 마지막 하나 남은 이빨을 꾸욱 눌렀다.

뿌왕~ 뿌왕~ 뿌왕~ 뿌왕~ 하는 탈락 BGM이 흘러나왔다.

“앗. 이런. 꽝이었구나.”

나를 휙 돌아보는 희연.

그녀는 도끼눈을 한 채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아! 빨리 와!”

“네~ 갑니다 가요.”

다시 휙 몸을 돌려 카페로 걸어가는 희연.

나는 오랜만에 활기찬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에는 셋이서 자주 어울렸었는데.

“후우...”

허나 난 재빨리 상념을 털어냈다.

오늘 하루만큼은 희연이에게 충실 하자고 하지 않았나.

난 그녀의 뒤를 따라가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

어느새 붉은 빛으로 물드는 도시.

황혼이 지며, 하루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와 희연이는 벤치에 앉아 서로의 스티커 사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프흐흐. 이게 뭐야. 포샵이 너무 과하게 됐는데?”

내 얼굴을 짚으며 킥킥대고 있는 희연이의 모습.

난 그런 희연이를 바라보았다.

노을로 물드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도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게. 무슨 성괴 커플 같은데? 크큭.”

커플이란 말을 내뱉자 살짝 굳는 희연이의 얼굴.

허나 그녀는 다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스티커 사진을 찍어도 뭘 이런 걸 찍었냐.”

“그러게. 다음엔 좀 제대로 찍어보자.”

또다시, ‘다음에’라는 나의 말에 흔들리는 희연이의 눈동자.

그녀가 나를 조심스레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눈에 깃든 희망의 싹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숙였다.

“..... 응. 다음에, 다시 찍었으면 좋겠네.”

다만 그녀는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릴 뿐이다.

나는 그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좀 걸을래? 강이 이쁘다.”

붉은 황혼을 머금은 한강의 표면.

그 반짝임이 희연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그녀는 이내 살짝 미소를 짓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 또한 그녀를 따라 몸을 세운 뒤, 허공을 맴도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니, 손을 고쳐잡아 깍지를 끼었다.

그녀가 나를 보며 웃었다.

“헤-. 이제 좀 남친 같네.”

“쭉 남친 컨셉이었는데? 친구 같은 연애 몰라?”

“.... 진짜 뒤통수 한 대만 때리고 싶다.”

“에이~ 왜 그래. 좀 걷자.”

나는 희연의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지만, 이내 내 걸음에 보폭을 맞췄다.

“그런데 희연아.”

“응.”

“너 노래 실력 많이 죽었더라.”

“너도 죽고 싶니.”

“크큭. 농담이고. 오랜만에 들으니까 좋더라. 네 목소리.”

“...이제 와서 수습해봤자 소용없어.”

코인 노래방에 들렸던 우리.

희연이는 노래를 잘 한다.

정말 타고난 음색이라 해야 할까.

매번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면, 나와 하영이가 도대체 언제 데뷔하냐며 호들갑을 떨었던 시절이 있었다.

“뭐, 그나저나. 저녁은 뭐 먹을래? 간단하게 술이라도 한잔할까?”

내 질문에 잠시 고민을 이어가는 그녀.

이윽고 그녀는 뭔가 떠올랐는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레스토랑 가자! 고급 레스토랑!”

“음. 난 소주 조지고 싶었는데.”

“아니, 할 게 있어서 그래. 오늘 하루는... 내 소원이잖아.”

“어... 그래. 뭔데.”

“이벤트 같은 거 받아보고 싶어서. 레스토랑에서, 프, 프러포즈 같은 거.”

“프러포즈? 반지도 없는데?”

“지금 사러 가야지! 목걸이도!”

살짝 들떠 보이는 듯한 희연이의 모습.

난 피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그 어떤 일이든 희연이에게 맞춰주기로 했으니까.

“좋아. 그러면 난 레스토랑 예약해놓을게.”

난 근처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을 검색한 뒤, 그곳에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이동해 백화점에 들렀다.

우린 지금 백화점의 쥬얼리 코너에 있다.

“음... 이거 괜찮은 거 같은데?”

“아니, 그건 너무 밋밋하잖아. 차라리 저건 어때?”

“음... 보석이 너무 큰데? 너 좀 엄마들 취향? 진주 박힌 거 사줘?”

“뭐래. 저게 무슨 엄마들 취향. 괜찮기만 한데.”

큼지막한 보석이 희연이의 취향이었던가.

저건 좀 아니지.

나는 고개를 들어 직원에게 제일 많이 나가는 반지가 뭔지 물어봤다.

직원은 어떤 용도의 반지냐고 물어봤고, 난 결혼반지라고 답했다.

희연이의 몸이 움찔 떨렸다.

“아~ 예비 부부시면~ 이쪽을 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반지를 둘러보기 시작한 우리.

이내 우린 적당한 반지를 골라 계산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엎드려서 절 받기 구만 엎드려서 절받기.”

고급 레스토랑의 스위트룸.

무심코 뱉은 말이 희연이의 귀로 흘러 들어가자, 그녀가 찌릿, 하고 나를 노려봤다.

스테이크를 썰던 그녀의 나이프가 예리하게 빛나는 건 기분 탓일까.

“어쩔 수 없잖아. 시간은 없고. 밥 먹으면서 프러포즈 받을 곳도 여기뿐이고.”

“뭐, 그건 인정이지.”

나는 스테이크를 썰며 그렇게 답했다.

우린 동시에 스테이크를 한 점 먹은 뒤, 와인을 머금었다.

떫었다.

“아-으. 이런 게 무슨 이렇게 비싸대.”

“그러니까 소주나 조지자니까.”

“소주 마시면서 프러포즈는 좀 아니지.”

“음. 그건 인정.”

“.....”

다시 각자의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하는 우리.

이윽고, 저 멀리서 카트 하나가 오는 게 보였다.

나는 희연이에게 몸을 가까이하며 속삭이듯 말했다.

“야. 온다. 저거야 저거.”

“아우씨. 뭔 프러포즈가 이렇게 본격적이래.”

“어쩔 수 없잖아. 어? 다 왔다.”

똑- 똑- 유리문을 두드리고 정중하게 입장하는 레스토랑 직원.

우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그 사이 레스토랑 직원이 식탁에 촛불을 올리고, 조명을 조절해주고, 풍선을 달아주는 등 한껏 프러포즈 분위기를 내주었다.

이곳은 예약된 룸이라, 이렇게 프러포즈 전용으로 꾸미는 것이 가능했다.

“.....?”

다만 우리는 레스토랑 직원의 요상한 시선을 견뎌야 했다.

이렇게 프러포즈를 하기 좋게끔 방을 꾸며주고 있는데, 둘 다 아무 반응 없이 스테이크나 썰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방을 잘못 찾아왔나 방문까지 확인하는 직원.

이윽고 그녀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 듯, 목걸이와 반지가 들어있는 상자함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어떡해. 싸웠나 봐’라고 수군거리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크흠.”

난 반지가 들어있는 상자를 바라보며 헛기침을 했다.

그동안 친구 사이로 지내오다가, 갑자기 프러포즈라니 영 어색했다.

“저... 그냥 하지 말까?”

그때, 희연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가 그녀를 주눅 들게 만든 탓이다.

하여 난 몸을 일으킨 뒤, 상자함을 집었다.

그녀의 뒤로 돌아가, 상자함에 있는 목걸이를 꺼냈다.

“저기, 잠시 머리 좀.”

그녀의 긴 머리를 한데 끌어모으며 말했다.

내 뜻을 알아차린 희연이가 자신의 머리를 한 손으로 고정했다.

새하얀 그녀의 뒷목이 드러났다.

-스으윽.

난 그대로 목걸이를 그녀의 목에 두른 뒤, 후크를 채워주었다.

그리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목걸이를 찬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뺨이 붉었다.

“예쁘네. 잘 어울린다.”

진심이었다.

그동안 그녀를 친구라고만 생각해서 그렇지, 희연이는 미인이다.

충분히 대접받고 살아야 하는 그런 사람이다.

“... 바, 반지는.”

부끄러운 듯 화제를 돌리는 그녀.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상자함을 집었다.

그녀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녀에게 무릎 꿇어 마땅하다.

-탓.

상자함을 열었다.

그리고 안에 있는 반지를 꺼낸 다음, 그녀의 여리한 약지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가장 내 감정에 충실한 말을 내뱉기로 했다.

“사랑해.”

연인이 아닌 친구로서.

나는 이희연을 사랑한다.

그녀 또한 그걸 아는 듯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그녀의 입에 걸린 미소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거 같았다.

“으음. 그럼 마저 먹을까? 스테이크 되게 비싼 건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이후, 우린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지만, 이상하게 고기가 질겼다.

잘 썰리지도 않고,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하루가 끝나가고 있기 때문일까.

“저기, 성민아.”

그때, 날 부르는 그녀.

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두 눈은 조금 충혈되어 있었다.

“우리... 자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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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솨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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