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조금은 측은한 마음이 드는 사연이었다.
하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비릿한 조소를 흘리고 있는 하빈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야기는 잘 들었어.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하영의 말에 윤하빈은 조금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반응이 밋밋하네? 너도 전 남친 괴롭히는 걸 즐기지 않던가?”
“... 즐기고 있지. 지금도 괴롭히고 싶어.”
“후후.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해준 거야. 우리는 동류니까. 아마 제법 통하는 게 많을 걸? 그래서 그냥 내 이야기를 들여준 거야.”
“.....”
“어쨌든 거기서 지켜봐. 내가 저 녀석을 어떻게 괴롭히는지. 분명 재밌을 거야.”
하빈은 그렇게 말하곤 ‘아버지’에게 도게자 자세를 취했다.
그녀는 D급 노예 권민수의 조교를 시작하겠다고 아버지에게 보고를 올린 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대로 몸을 일으켜 민수의 머리채를 잡으며 말했다.
“발 받침대로 쓸 거니까, 엎드려.”
발 받침대로 쓰겠다.
그 말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민수가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가 현민 앞에 엎드린 자세를 취했고, 윤하빈이 민수의 등을 밟고 올라섰다.
“후후. 자기이~♥”
아담한 키의 소악마, 윤하빈.
그런 그녀가 민수의 등을 밟고 올라서자, 현민과 얼추 비슷한 키가 되었다.
둘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진한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움...♥ 츄우웁...♥ 우웅....♥
-덜덜덜덜...
반면, 민수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압도적인 굴욕감을 느끼며 두 눈은 충혈된 채, 주먹을 꽉 쥐곤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다만 그의 자지는, 정조대 안에 갇혀 괴롭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의 몸보다 정조대의 떨림이 더 커 보였다.
“오움....쯉...♥”
어느새 키스를 마친 현민과 하빈.
하빈은 민수의 등에서 내려온 뒤, 근처에 있는 재떨이를 민수의 등에 올려놓았다.
하빈과 현민은 나란히 담배를 피우며 현민의 등을 재떨이로 사용하며 어떤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아흥! 으흥! 우웅! 으으응! 흐응♥]
영상의 내용은 하빈과 현민이 섹스를 하는 내용이었다.
현민과 하빈은 서로 손을 잡은 채 그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민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정조대에 갇힌 자지를 떨고 있었다.
“스-읍. 후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 하빈.
그녀가 담뱃재를 털어내려 재떨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허나 민수의 몸이 덜덜 떨리며 재떨이의 위치가 불안정하게 흔들리자, 그녀는 인상을 팍 구기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재떨이 떨어질 거 같잖아. 좀 가만히 있어 봐.“
”으, 응...“
무겁게 가라앉은 하빈이의 목소리.
민수는 자신이 D급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하며,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노력해보았다.
이에 현민도 민수의 등에 있는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어내며 말했다.
”킥킥. 이번엔 편집이 좀 괜찮게 된 거 같은데? 동영상 만드느라 수고했다.“
하빈과 현민이 섹스를 하고 있는 영상.
그 영상을 편집한 것은 다름 아닌 민수였다.
민수는 이제 그들의 커플 섹스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해줄 정도로, 하빈에게 잘 길들어진 상태였다.
”야. 근데 권민수. 왜 또 BGM 안 깔았어? 좀 로맨틱하게 연출해보라니까?“
-치지직.
”카흐악!♥“
민수의 엉덩이에 담뱃불을 지지며 체벌하는 윤하빈.
민수는 항문을 움찔움찔 떨어대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답했다.
”미, 미안! 영상에 제대로 집중을 할 수 없어서... 다음엔 진짜 넣을 게...“
운명의 짝이 원수와 진득한 교미를 나누고 있는 모습.
민수는 그 모습을 일일이 확인하며 영상을 편집했다.
탁 막히는 가슴을 툭- 툭- 치고, 연신 쏟아지는 눈물을 옷소매로 훔치며 힘겹게 영상을 편집했다.
때문에 하빈의 요청사항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킥킥킥. 그래도 저 정도면 저번보다는 낫잖아?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지겠지~“
”우웅~♥ 우리 현민이는 너무 착하다니까~“
다시 한번 진득한 키스를 나누는 둘.
하영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다, 이내 민수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자신의 노예인, 정성민을 떠올려보았다.
녀석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우움...쯉♥ 자지 빨아줄 게♥ 저기 앉아봐.“
그렇게 하영이 잠시 상념에 빠진 사이, 현민과 하빈은 키스를 마무리하고 다음 체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현민은 그 특유의 비열한 웃음소리를 내며 엎드려 있는 정성민의 등에 앉았다.
”....!“
동공이 번쩍 뜨이는 민수.
그는 혐오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그의 등엔 축축한 원수의 부랄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 감촉이 너무도 역겹고 혐오스러워서, 맨정신으론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흐흐~ 기다려요~♥“
민수의 등에 앉은 채 자지를 까닥- 까닥- 세우는 현민.
하빈은 현민에게 네발로 기어가, 그의 자지를 합- 하고 물었다.
이윽고 하빈의 혀가 현민의 자지에 휘감기며, 질척질척하고 찐득한 펠라 소리가 방 곳곳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크읏....크으으읏....”
민수는 수치심과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한 배덕감을 느끼며, 덜덜 떨리는 정조대 사이로 쿠퍼액이 질질 새어 나오기도 했다.
-짜악!
“흐엇!”
그때, 갑작스럽게 민수의 엉덩이를 때리는 현민.
현민이 모멸적인 어투로 민수에게 명령했다.
“야. 이 친구야. 좀 가만히 좀 있어 봐. 하빈이가 빨기 힘들어하잖아.”
“.....”
“대답 안 해?”
“어.... 알았어.”
“이 새끼 말 놓는 거봐라? 너 D급인 거 잊었냐? 요즘 잘 대해주니까 편하지?”
“.... 죄송합니다.”
“쯧. 알아들었으면 가만히 있어.”
“... 네.”
고개를 푹 숙이며 아랫입술을 짓씹는 민수.
하영은 그런 민수를 바라보며 자신과 정성민을 지금 상황에 대입해 보았다.
주인님이 정성민의 등위에 앉아 자지를 까닥까닥 흔들고, 그에 맞춰 자신이 네발로 기어가 주인님의 자지에 봉사를 하는, 그 황홀한 광경을 떠올려보았다.
주륵, 애액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크큭. 맘에 드느냐?”
그때, 구원자가 하영의 가랑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하영은 열띤 숨결을 내뱉으며 답했다.
“흥분되긴 하네요. 나중에 저런 플레이를 꼭 해보고 싶어요.”
“그래. 여건이 되면 네 남친도 ‘그 녀석’에게서 빼내 주마.”
... 그 녀석.
주인님에 대한 아버지의 멸칭.
하영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다. 생각보다 네 반응이 미적지근하구나. 하빈이를 보면 이것보다 더 흥분할 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물음에 이하영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이내 고개를 올리며 그의 물음에 답하기 시작했다.
“엇비슷하긴 한데, 쟤랑 저는 근본적으로 달라요.”
“호오. 뭐가 다르다는 거지? 어차피 학대를 통해 쾌감을 얻는 건 똑같지 않나.”
“쟤한테는 사랑이 없어요. 오직 복수심만 있을 뿐이죠.”
“흐음. 그렇다면 너는?”
“전 여전히 제 남자친구를 사랑하고 있어요.”
“크크큭. 재밌구나. 네가 네 남자친구에게 했던 짓들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구원자의 말에 하영은 미소를 머금었다.
아마 자신과 정성민의 뒤틀린 사랑은, 당사자가 아니고선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이해하기 쉽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전 그래요. 사랑하니까 더 망가졌으면 좋겠고, 사랑하니까 더 고통스러워했으면 좋겠고, 사랑하니까 더 울었으면 좋겠어요. 가끔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성민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정말... 정말 미칠 거 같을 때도 있어요. 너무 가슴이 아픈데, 또 너무 흥분되고. 그래서 더 괴로워했으면 좋겠고. 말로 표현하긴 힘든 감정이에요.”
이하영의 진심 어린 독백.
구원자는 그런 하영이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친구인 정성민을 떠올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눈가에 눈물까지 맺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의자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톡- 톡- 두들겼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만약 네 남자친구가 너를 버리고 떠나면 어떨 거 같나.”
이하영을 포기하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정성민.
하영은 그런 정성민을 떠올리자마자,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안돼요. 걔는 제 거에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안 놔줄 거에요.”
완강한 거부 의사를 보이며 정성민에게 집착하는 이하영.
구원자는 진득한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 안의 폰을 꺼냈다.
그리고 주소록에 있는 ‘미스터 최’의 연락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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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7kg이나 빠졌다.
사실 요즘 더 이상 살고 싶은 욕망도, 희망도 없는 탓이다.
여주인님이 없는 삶은 이토록 공허할 뿐이었다.
-위이이잉....
다만 나는 오늘도 일과를 시작한다.
주인님과 희연이의 섹스로 엉망이 된 침대를 치운다.
침대 시트를 걷어 통째로 원통에 넣고, 바닥에 널브러진 음모를 청소기로 빨아들인다. 곳곳에 흩뿌려진 애액과 정액도 닦아준다.
“후우...”
이것으로 방 청소는 끝.
이제 침대 시트를 세탁기에 넣기만 하면-.
“......”
하지만 내 몸은 그대로 굳어버린다.
방문 앞에서 날 바라보고 있는 희연이의 싸늘한 표정 때문이다.
“... 희연아.”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그녀.
그녀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한참을 노려보다 마침내 내뱉은 말 또한 한기가 시렸다.
“내일이야. 알지?”
내일.
희연이가 주인님에게 완전히 넘어가는 날.
만약 내가 희연이를 받아들인다면, 내가 그녀와 이어진다면, 희연은 어느 정도 제정신을 유지한 채 살아갈 수 있다.
허나 나는 침묵할 뿐이다.
“정말, 날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구나.”
허나 그녀의 결론처럼, 내 결론은 같다.
난 희연이를 사랑하지 않는다.
안 되는 걸 억지로 되게는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내가 이대로 주인님한테 넘어가도 좋은 거야? 네 인생은 어떡하고?”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무슨 말을 꺼내든 전부 변명에 불과하다.
“..... 그럼, 성민아.”
허나 일순간, 봄이 찾아온 듯 다정해진 그녀의 목소리.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주륵,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 에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모든 걸 체념한 듯한 그녀의 표정.
일순간, 가슴이 너무나도 아려왔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가슴에 담으며, 난 심장이 찢기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오늘 하루만, 내 남자친구가 되어줘.”
***
이런 감정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다.
맑은 햇살과 선선한 바람.
웃고 떠드는 일상의 소음.
그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걷는 나.
그리고 우리.
“야. 오랜만에 저기 가보자. 저자리 기억나지?”
희연이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
‘보니앤클라우드’ 카페의 우리 지정석.
맨날 밤샘과제를 하던 곳.
“크큭. 오랜만이네 저기도. 맨날 너 때문에 밤샘했었지.”
장난기 어린 내 말에 희연이의 볼이 부풀려졌다.
그녀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너는 자료조사니까 그렇지! PPT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좀 도와주던가!”
“그러게 왜 복불복에서 지냐~. 네가 하자고 한 복불복이다만?”
“개썩었어 진짜.”
“큭큭큭. 그럼 이번에 복수해야지. 커피값 쏘기 콜?”
“... 콜.”
시내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는 우리는, 순식간에 예전으로 돌아왔다.
아니, 어쩌면 마지막이 될 옛 추억의 모습을 필사적으로 연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종목은 뭐로 할래?”
어쨌든 우리는 과제, 야식, 심부름, 뒷정리 등등 모든 것을 복불복으로 해왔었다.
우린 자주 애용했던 종목 중 하나인 ‘악이이빨 누르기’를 하기로 했다.
이 게임의 룰은, 20개의 악어 이빨을 눌러 ‘꽝’이 걸리면 지는 것.
-툭~타다닥~ 투다닥~ 탁탁~♬
악어 이빨 어플을 실행하자 나오는 BGM.
이 BGM만 들으면 항상 오금이 저려온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마른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탁!
나는 민첩하게 악어이빨을 눌렀다.
이번에 누른 악어이빨만 벌써 17번째.
다행히 난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악어 이빨의 수는 단 3개.
“으아아아악!”
순식간에 1/3으로 줄어든 확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