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303)

그때마다 저 기도문만 외운다고 맹세하면, ‘구원자’의 사랑을 받으며 이 저택에서 쾌적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위대하신 아버지에게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허나 이하영은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여전히 그녀에게 영원한 사랑은 오직 주인님이며,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 하는 존재 또한 주인님뿐이었다.

그녀는 독방에 갇혀 5일이 지나가는 동안에도 ‘기도문’을 읊기를 거부하며 주인님을 만날 날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위대하신 아버지에게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허나 이제는 그것도 한계였다.

주인님에 대한 사랑이나 충성심은 여전히 굳건했지만, 이곳에 더 갇혀 있다간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잘 훈련된 군인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폐쇄된 독방에서 3일 이상 버티는 게 쉽지 않은 데, 평범한 일반인인 자신이 이곳에서 5일 이상 버틴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벌컥.

그때였다.

전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던 문이 열리며, 눈을 찌르는 듯한 빛이 들어왔다.

이하영은 5일 만에 보는 빛에 눈을 잔뜩 찡그리며 눈을 가렸다.

동시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러 무리의 발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대략 5명 정도로 추정되는 불규칙한 발소리.

이윽고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을 환하게 비추던 빛이 사라졌다.

이하영은 다시 눈을 뜬 다음 주위를 둘러보았다.

“.....”

허나 빛이 사라진 이곳은 다시 칠흑의 방이 되었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이 누군지 보려고 한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이곳에 들어온 이들이 누구이며, 성별과 키, 나이, 체형 등등 그 어떠한 정보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자. 기도 시작합시다.”

그때, 동년배로 추정되는 여성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하영은 자기 주위를 둘러싸는 이들의 인기척을 느끼며, 벽으로 사사삭 몸을 붙였다.

이들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와 퇴로를 완전히 차단한 다음, 털썩 앉더니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위대하신 아버지에게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신 아버지에게 이 몸과 영혼을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 오직 아버지만이 나의 사랑이며, 아버지를 위해 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음을 맹세합니다.]

미칠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온종일 스피커에서 나오는 그 ‘기도문’ 때문에 정신이 파괴될 것만 같은데, 이제는 직접 이방에 여러 명이 쳐들어와서 합창하듯 기도를 읊고 있으니, 이제는 참는 것도 한계였다.

이하영은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그만! 그만! 제발 그만!”

허나 그들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아무리 울부짖고 소리쳐도, 그들은 절대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발악하면 발악할수록, 이들은 더욱 악랄하게 굴 뿐이었다.

자신이 이들에게 달려들면 발길질을 하고, 그만하라고 소리치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위대하신 아버지에게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신 아버지에게.....”

***

다시 3일이 지났다.

‘합창단’은 매일 특정 시간에 이 방으로 들어와, 대략 6~8시간 정도 기도문을 외우고 방을 나갔다.

하지만 4일이 지났을 때, 매일 자신을 괴롭히던 그들의 합창도 뚝 끊기게 되었다.

심지어 24시간 내내 스피커에서 들리던 기도문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제 이 독방엔 적막한 침묵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으으...으으으으...”

허나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전보다 불안증세가 훨씬 더 심해질 뿐이었다.

그나마 하루의 사이클을 가늠케 해주었던 ‘합창단’의 방문도 없고, 온종일 청각을 자극하던 기도문도 더 이상 들리지 않으니, 이하영이 할 것이라곤 끊임없이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리며 망상 따위를 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망상을 해대는 것도 고작 몇 시간이 한계였다.

온종일 어둠뿐인 이곳에 갇혀 지내다 보니 의식은 피폐해지고, 컨디션은 날이 갈수록 최악이 되어, 의식의 흐름도 뚝뚝 끊길 수밖에 없었다.

-덜덜덜덜...

언제까지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일까.

적막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정신이 닳고 닳은 이하영은, ‘주인님이 자신을 버리진 않았을까’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하영은 모두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덜덜덜덜...

두려움을 느끼니 몸에 오한이 돌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이제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하영은 지금, 이곳에서 썩어 문드러진 자신의 시체를 상상하고 있었다.

구원자와 주인님, 그리고 자신의 노예인 정성민에게까지 버려져, 홀로 이곳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흐으으으...하으으으...”

마치 경기를 일으키듯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하는 몸.

허나 이하영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주인님의 약속을 떠올렸다.

반드시 자신의 품에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주인님의 말을 기억하며, 주먹을 꼭 쥐어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칠흑의 어둠 속에서 자신의 시체형상을 하고 있는 헛것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자, 그마저도 힘들어졌다.

【넌버려졌어넌버려졌어넌버려졌어넌버려졌어넌버려졌어넌버려졌어】

【여기서죽는다여기서죽는다여기서죽는다여기서죽는다여기서죽는다】

“흐으으-! 흐으윽! 으으!”

한계였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제발, 누구라도-.

-파앗!

그때였다.

돌연 문이 열리며, 거대한 몸집을 한 사내의 형상과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이 보였다.

마치 거룩한 신의 강림을 보는 것만 같았다.

“널 보는 내 맘이 아프구나. 이렇게 정신을 혹사하는 데, 아직까지 그 남자를 놓질 못 하다니.”

-저벅 저벅 저벅.

거대한 몸집의 사내가 걸어들어왔다.

이하영은 멍한 얼굴로 그의 몸짓 하나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자신을 안아 들었다.

“가자. 하루만이라도, 널 쉬게 해주고 싶구나.”

몸을 일으키는 사내.

공중을 붕 뜨는 부유감.

그는 자신을 안아 들고 빛의 세상으로 걸어나갔다.

이하영은 9일 만에 맞이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빛에 눈을 감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버지! 안됩니다! 아직 교육 기간 중인데 이렇게 밖으로 빼내시면!”

그때, 익히 들었던 맑은 음색의 목소리가 이하영의 귀를 자극했다.

이 목소리는 분명, 매일 자신의 독방에 찾아와 기도를 읊던 사람 중 하나였다.

“예! 더 혹사시켜야 합니다! 정신이 완전히 무너지도록 두어야 합니다!”

이 사람도 합창단.

이렇게 제대로 된 말을 할 줄도 아는구나.

“다시 안으로 들여보내야 합니다! 이대로 폐인이 되도록 놔둬야 해요!”

이 사람 또한 합창단.

이 사람들은 왜 날 망가뜨리려는 거지?

왜 날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아버지! 다시 안으로!”

“아버지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면 받아들여선 안 됩니다!”

“맞습니다! 일단 굴복시켜야 합니다!”

“예! 한 일주일만 더 가두면 분명 굴복할 겁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먼저 꼬리를 굽힐 때까지는 절대 안 됩니다!”

도대체 몇 명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합창단이 이하영의 석방을 반대했다.

허나 이하영을 안아 든 사내는, 그들의 의견을 단 한마디로 일축시켰다.

“감히 나의 결정에 토를 달겠다는 것이냐.”

“.....”

일동 침묵.

하지만 반발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만입니다. 저 애는 정신을 좀 차려야 해요. 저 애에게 씐 악마의 세뇌를 풀려면, 전기고문과 물고문, 신체 일부를 훼손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만.”

“.....”

“오늘 하루만 쉬게 해주고, 다시 안으로 들여보낼 테니 걱정마라. 그 뒤는 너희들에게 맡기마.”

“.....예.”

“허나, 오늘만큼은 이 이상 토 다는 걸 용서치 않을 것이다. 오늘은 내 직접 이 아이를 돌볼 것이니, 이만 물러가라.”

“... 따르겠습니다.”

남자의 불호령에 합창단들은 절도있게 고개를 숙인 뒤 물러났다.

이제 어느 정도 빛에 적응한 이하영은, 실눈을 뜬 채 뒤돌아 물러나는 합창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대한 적개심이 불쑥 솟아올랐다.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어서 이동해야겠어.”

그때, 자신을 안아 든 구원자의 따스한 음색이 이하영이 귀를 간질였다.

이에 그녀는 물끄러미 구원자를 올려다보며,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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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포근해지는 이 느낌.

이런 느낌을 도대체 얼마 만에 느끼는 것일까.

이하영은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이 포근함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봤다.

그러다 일순간, 어린 시절 아버지의 품에 안겼던 그때의 그 감각이 지금의 그것과 동일한 종류의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하영은 마치 아버지의 품 같은 구원자의 가슴에 더욱 얼굴을 깊이 파묻었다.

-솨아아아아...

그렇게 2분가량 구원자의 품에 안겨있었을까.

시원한 폭포수 소리에 하영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았다.

“.....”

넋을 놓은 채 멍하니 소리의 근원을 바라보고 있는 이하영.

지금 그녀의 시야엔, 거대한 암석 사이로 온천수가 콸콸 쏟아져나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마치 동양화를 실내에 옮겨놓은 듯, 풀과 나무 그리고 암석 같은 자연 그대로의 것과 인공구조물이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온천 목욕탕이었다.

“우선 몸을 씻어야겠구나.”

그때, 구원자는 그렇게 말하며 온천탕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자신을 안은 그의 거대한 몸집이 온천탕 안으로 진입하자, 물이 솨아아아 밀리며 출렁이기 시작했다.

하영은 따뜻한 온천수가 자신의 온몸을 감싸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신음을 흘렸다.

“흐-아...”

9일간 차가운 바닥에 있다가 맛보는 따뜻한 온수.

지금 하영의 눈엔 이곳이 천국으로 보였다.

온도, 습기, 냄새, 분위기.

그 모든 것이 지옥 같던 독방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곳이었다.

-문질문질....

그리고 부드럽게 자신을 어루만지는 구원자의 손길.

그 손길 또한 어머니의 손길 같은 따스함이 느껴졌다.

지난 9일간 자신에게 주먹이나 휘두르던 합창단과는 달리, 그의 손길은 부드럽고 기분이 좋게 해주는 무언가 있었다.

“자아-. 거품칠도 해야지.”

어느새 그의 손에 들려있는 바디워시볼.

그는 그것을 들고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문질러주었다.

그렇게 9일간 들러붙어 있던 온갖 더러운 것들이 씻겨 내려가며, 깨끗한 피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한시도 쉬지 않고 정성껏 자신의 몸을 씻겨주었다.

“안쪽도 씻겨주마.”

가슴 배 허벅지 종아리 등.

겉으로 보이는 피부는 떼가 다 벗겨져 건강한 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자신의 보지나 항문 같은 은밀한 안쪽을 씻어야 할 때였다.

“으흠....”

절로 터져 나오는 신음.

그의 손가락이 자신의 음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질 구석구석을 손가락 및 바디워시 볼로 훑으며, 오줌과 애액으로 더러워진 자신의 안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흣...♥”

뿐만 아니라, 자신의 항문 또한 바디워시 볼 및 손가락으로 문질러주어 깨끗하게 해주었다.

“자. 양치도 해야지.”

치약이 올려져 있는 칫솔.

구원자가 그것을 자신에게 내밀었다.

하영은 칫솔을 받은 뒤 입안 구석구석을 정성스레 닦기 시작했다.

톡 쏘는 듯한 시원한 솔잎 향이 입안 곳곳에 퍼져나갔다.

“자. 헹궈내라.”

이윽고 어느 정도 양치가 되자, 구원자가 내미는 컵.

컵 안엔 입을 헹굴 수 있는 깨끗한 물이 담겨있었다.

하영은 그가 내민 컵을 들고 입을 가볍게 가글한 다음, 욕탕 밖으로 뱉어냈다.

그간 입안에 쌓여있던 세균 덩어리가 물과 뒤섞여 주르륵 흘러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흠. 머리를 안 감았구나. 있어봐라.”

이제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을 차례.

구원자는 샴푸통에서 샴푸를 두어번 짜낸 뒤, 자신의 머리에 문질러주었다.

순식간에 거품이 일어나며 향긋한 샴푸의 향이 자신의 코를 간질였다.

“흐으으음....”

스르륵- 스르륵- 머리를 감겨주기 시작하는 구원자.

그의 손길은 이번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단순히 머리를 감겨줄 뿐만 아니라, 혈도가 위치하는 특정 지점을 그의 굵은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주기 시작했다.

하영은 그의 전문적인 머리 마사지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연신 신음을 터트려댔다.

“하아아...하아...으읏...♥”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짜릿한 전류.

그가 머리를 꾹꾹 눌러줄 때마다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특히 뒷목과 관자놀이 꾹꾹 눌러줄 때면 눈이 흐리멍텅하게 풀리며 나른한 감각이 전신을 휘감고는 했다.

“자. 헹궈주겠다. 눈을 감아라.”

그렇게 기분 좋은 샴푸질이 끝나고, 구원자는 자신의 머리를 헹궈주었다.

머리에 가득했던 각종 더러운 부산물들이 구정물의 형태로 씻겨 내려갔다.

“자-. 이제 좀 쉬고 있어라. 눈을 좀 붙여도 좋고.”

따뜻한 온수, 사근사근한 목소리, 쾌적해진 몸.

슬슬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구원자는 자신의 가슴과 엉덩이를 기분 좋게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하영은 그의 품에 자신의 몸을 맡긴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영아.”

“... 하영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에 하영은 눈을 떴다.

여전히 폭포수 소리가 들리는 거로 봐선, 이곳은 아직 욕탕.

하영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안아주고 있는 구원자를 바라보았다.

“... 제가 얼마나 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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