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303)

”여보세요?“

”정성아예요. 방금 면접 보고 나갔던.“

”아~! 그렇게 갑자기 나가버려서 걱정했습니다. 하하. 다시 한번-.“

”아까 얘기했던 그 술접대 그거 말인데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정성아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이런 말을 꺼내고 있는 자신이 너무 서러워, 수화기를 내려버렸다.

수화기 너머로 LTN 엔터 사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성아양? 제 말 들리시나요? 아아. 성아양?“

-삑.

정성아는 그대로 통화를 끓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비정상적인 요구를 하는 엔터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우웅~

그때,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LTN 엔터 사장이 문자 메세지를 보낸 것이었다.

[성아씨. LTN 대표입니다. 아까 성아씨가 갑자기 나가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설명을 못 했는데, 그 술자리 접대는 성아씨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접대가 아닙니다. 성아씨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신체적 접촉이나, 자존감을 훼손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아요. 그저 높으신 분과 술을 마시면서, 어떤 제안을 받는 게 답니다.]

-우웅~

[오히려 이건 기회예요. 얼마나 많은 연습생이 이 기회를 거머쥐려고 노력을 하는 데요.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놓치면 분명 후회할 거에요.]

신체적 접촉이나 자존감을 훼손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 대목이 정상아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그녀는 손톱을 몇 번 까득 깨물다, 이내 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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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골드선 비즈니스룸 302호]

정성아는 문자 안의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건물을 바라봤다.

건물의 외관에 고급스럽게 새겨진 ‘GOLDSUN’이 눈에 들어왔다.

“후우...”

정성아는 심호흡을 하며 옷차림을 정리했다.

하이힐부터 드레스, 어깨에 걸친 외투까지 이상한 점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 어디 선보러 가는 거 같네.’

화장이나 옷차림이나 잔뜩 힘을 준 자신의 모습.

아무리 겸손하게 보려 해도 자신은 아름다웠다.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남자들의 시선이 끊이질 않았다.

간혹 ‘와’ ‘개쩐다’ ‘봤냐’ 같은 우스운 소리도 들렸다.

-또각 또각 또각.

평소 같았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자신을 탐하는 시선과 말들.

하지만 오늘만큼은, 유독 저들의 탐욕이 신경이 쓰였다.

결국 자신을 노리고 있는 ‘어떤 분’ 때문에 이렇게 팔려가는 신세가 되지 않았나.

“호텔 골드선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성아님 되십니까?”

그때, 호텔입구에 다다르자 자신을 알아보며 다가오는 안내인.

정성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답했다.

“네. 그런데요?”

“VIP의 안내를 부탁받아서요. 따라오시면 됩니다.”

“저... 그냥 비즈니스룸에 제가 찾아가면 되는 건데.”

“아. 그것은 명목상의 예약이고, 방은 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

호텔 내부에 준비해둔 은밀한 방.

덜컥 소름이 끼쳤다.

혹시라도 어떤 해코지라도 당하지 않을까,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성아님?”

허나 다시 한번 자신을 부르는 안내인의 말에, 정성아는 그를 뒤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곳에 온 이상, 더 이상을 발을 내뺄 순 없었다.

아니, 꿈을 이루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정성아는 안내인을 따라 호텔 안으로 이동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들어오시지요.”

관계자 외 출입금지 문을 열며 자신을 안으로 들이는 안내인.

안으로 들어오자, 길게 늘어선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안내인은 그곳을 따라 안으로 걸어갔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렇게 둘은 복도의 끝에 도착했다.

하지만 정성아의 예상과는 달리, 복도의 끝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꽉 막힌 벽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꽉 막힌 외벽에서 어떤 AI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관리자 신원 확인했습니다. 문을 개방합니다.]

-지이이잉...

그리곤, 벽이 스르륵 움직이며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벽 너머엔 거대한 홀이 있었다.

“들어오시지요.”

“.....”

-또각 또각 또각.

정성아는 안내인을 따라 안으로 진입했다.

내부는 마치 거대한 클럽처럼 어둡고 화려했다.

건물 곳곳엔 음향장비와 무대장치, 그리고 칵테일바가 있었다.

“이곳입니다.”

그렇게 안내인을 따라가며 클럽 내부를 둘러보던 중, 어느새 정성아는 VIP가 있는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꿀꺽, 목대가 울렁거렸다.

“그럼, 즐거운 시간되십시오.”

자리를 물러나는 안내인.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잠시 망설이다, 똑똑 문을 두드렸다.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오지.”

“후우....”

-벌컥.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그 풍경에 제법 어울리는 중년 남성이 쇼파에 앉아있었다.

남자는 자신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태블릿 PC를 보고 있었다.

“.....”

정성아는 꽉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무 말 없이 테블릿 PC만 쳐다보고 있는 그의 태도에서, 자신과 그의 위치를 단번에 체감할 수 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듯 업무만 보고 있었다.

“아이돌을 뭐라고 생각하나”

그때, 맥락 없는 그의 질문에 정성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는 마치 언제 질문했냐는 듯 여전히 테블릿PC를 들여다보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헛것을 들은 게 아니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답을 못하겠나.

허나, 그는 분명히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었다.

자신이 꿈꾸는 직업에 대한 본질적인 답을 요구했다.

정성아가 답했다.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귀여운 답이군.”

자신의 직업관을 귀엽다고 말하는 그.

무시라고 받아들이기엔 그의 말투가 미묘했다.

자신을 하찮게 생각하기보단, 선배가 후배의 행동을 귀여워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우선 앉지.”

클래시한 느낌을 자아내는 그의 몸짓.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온몸에서 품위를 발하는 그의 아우라.

정성아는 또각또각 걸어가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완벽한 핏의 정장 차림의 그를 보며, 예상했던 거완 달리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보다 정중한 사람이네. 초면부터 반말인 거만 빼면.’

말투나 몸짓, 행동이 범상치 않았다.

과연 LTN엔터 사상이 언질한 대로, 상류사회의 격식을 갖춘 남자였다.

그가 말했다.

“정성아라고 했나. 네 답이 틀린 건 아니다. 아이돌은 분명,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라 할 수 있지.”

테블릿 PC의 전원을 끄며 화두를 던지는 그.

그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았다.

정면으로 마주 본 그의 얼굴은 고압적이었다.

“하지만 아이돌은 본질적으로 상품이다. 대중에게 팔릴만한 어떤 것을 제공해줄 수 있는, 기획상품이라 볼 수 있지.”

아이돌은 상품이다.

그의 답에 정성아는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소 거부감이 드는, 불편한 관점이었다.

정정해주고 싶었다.

“... 회사입장에선 그렇겠죠. 아니면 사장님 같은 자본가에게도요. 하지만 제 본분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거라 생각해요. 팬들이 기뻐하면 저도 기쁘고, 팬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고. 그게 제 역할이라 생각해요. 상품으로 잘 포장하는 건 회사의 몫이고요.”

정성아의 말에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인정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지. 직업관이 뚜렷해서 마음에 드는군.”

“.....”

“식사는 했나”

“네?”

“이제 곧 식사시간이잖나.”

“아. 아뇨. 아직...”

“밥 먹으면서 얘기하지. 출출할 텐데.”

“아-. 네.”

“종류는 뭐로. 양식? 한식?”

“어... 글쎄요. 뭐든 좋아해서.”

“그럼 떡볶이나 먹지.”

“예, 예??”

“떡볶이 싫어하나.”

“아, 아뇨! 엄청 좋아해요. 연습생하면서... 몰래 많이 먹죠.”

“그럼 떡볶이에 소주 한잔 어떻나.”

“아, 괜찮은 거 같아요.”

정성아는 전혀 생각지 못한 메뉴에 당황해버렸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의 분위기나 그의 차림새로 봤을 때, 스테이크나 썰면서 와인이나 마실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떡볶이라니.

최고급 궁중 떡볶이, 이런 걸 먹나?

“거기 매콤 떡볶이 맞습니까.”

하지만 그는 예상과는 달리, 전화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치즈떡볶이와 여러 튀김 종류, 순대까지 주문하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수화기를 가리곤 자신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매운 거 잘 먹나? 맵기는 어느 정도.”

“어... 보, 보통 매운맛 정도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곤 주문을 이어나갔다.

“보통 매운맛으로 하고, 로제떡볶이 1인분 추가하겠습니다. 예. 그럼 수고하십시오.”

-삑

통화를 끝내고 다시 쇼파에 몸을 파묻는 그.

정성아가 말했다.

“저... 원래 떡볶이 자주 먹나요?”

“흠. 원래는 치킨을 더 자주 먹는 편이지.”

“치킨이요?”

“그래.”

“아... 보통 사장님 같은 분은... 스테이크를 자주 썰 거 같아서.”

“흐음.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우리도 치킨 떡볶이 자주 시켜 먹어.”

“아. 넵. 죄송합니다...”

“뭐, 그럴 거까진 없고. 소주는 어떤 거로 할까. 선호하는 브랜드라도?”

“그냥 시원하면 돼요. 아무거나.”

“그래.”

남자는 호출벨을 눌러 안내인을 부른 다음, 소주 심부름을 시켰다.

최대한 차갑게 해서 가져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럼 얘기나 마저 할까.”

“넵.”

의외로 서민적인 그의 모습에 정성아의 경계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별다른 이상한 질문은 하지 않고, 연습생 생활이 어떤지, 또 자신 있는 분야와 분기평가마다 어떻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정성아는 그의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이 답했고, 자신의 얘기를 하다 보니 조금씩 감정이 섞이며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정성아는 어느새 자신의 최근 일까지 그에게 토로했다.

“그래서 너무 화가 나요. 당연히 데뷔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그럴만하군. 성적도 제일 우수했는데 말이야.”

“... 하지만 회장님 결정이라 어쩔 수 없었어요. 중국 진출을 하려면 중국인 맴버를 쓰는 게 유리해서, 제가 빠질 수밖에 없대요.”

“그렇다 해도 자네를 뺀 건 오판이야. 차라리 다른 맴버를 뺐어야지.”

다른 맴버를 뺐어야 했다.

정성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소속사 연습생이라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지만, 항상 마음속으로 해오던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걸 콕 집어 말해주니, 뭔가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느낌이었다.

속 시원했다.

“자네는 우수해. 그래서 눈 여겨 본 거고, 자네를 여기로 불렀지.”

“..... 원하는 게 뭔가요.”

-똑 똑.

그때였다.

노크 소리가 두 번 울리고, 남자가 입장을 허락하자 안내인이 배달음식을 들고 왔다.

안내인은 포장해놓은 배달 음식을 하나하나 뜯어 세팅한 뒤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남자는 음식을 권하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일단 들지.”

“...네.”

둘은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튀김을 국물에 묻혀 먹기도 하고, 소주도 한 잔씩 마셨다.

정성아는 생각보다 복스럽게 먹는 남자의 모습에 웃음이 터질뻔했다.

저런 정장 차림에 떡볶이라니.

“흐음.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고?”

그때, 다시 이어지는 남자의 말에 정성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안 남아있는 떡볶이를 급하게 꿀꺽 삼킨 뒤, ‘네’라고 대답했다.

“원하는 거라. 일단 내 제안을 수락하면, 자네가 얻을 거에 대해 알려주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테블릿PC를 켰다.

그리고 어떤 자료를 띄우더니, 그것을 슥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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