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금 자신의 꼴이 어떠한가.
외간 남자의 자지를 몸 깊숙이 받아들인 채 분수 같은 애액을 뿜어대지 않았는가.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두 다리는 그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개구리처럼 찰싹 달라붙어서는 그의 정액을 내어달라고 조르던 자신이 있지 않았나.
‘사랑해요....’
그뿐만이 아니다.
섹스에 완전히 미쳐서는, 진심을 담아 그에게 사랑을 속삭이던 적도 있었다.
지금도 그에게 남편 못지않은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가.
“흐...흐으.....흐으윽....”
이신아는 흐느껴 울었다.
이제 와 남편의 잘잘못을 따지려 드는 자신의 모습에 혐오감이 느껴졌다.
이미 자신은, 남편을 의심할 자격조차 없지 않은가.
“내가 어떻게..... 어떻게 해야....”
남편에 대한 불신.
남편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남편에 대한 사랑.
그 모든 감정이 폭발하며, 이신아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렇게 이신아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참을 고통스러워하다, 돌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정장 바지에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든 곳엔, 자신을 바라보며 당황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
정현재는 팔짱을 낀 채 생각해보았다.
최근, 아내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혼자 멍하게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자신을 치장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었다.
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묘하게 싸늘해졌고, 자꾸 대화를 피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만 해도 대화 도중 차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았던가.
-스윽.
정현재는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리모컨을 눌러 차 문을 잠갔다.
그리고 오랫동안 앉아있어 구겨졌던 정장 바지를 편 뒤, 아내가 사라진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분명 아내의 눈빛이나 반응을 봐선 말하기 힘든 고민이 있는 것인데, 더 이상 모른 척 방치할 순 없었다.
항상 아내를 믿고 기다리는 그이지만, 때로는 남자답게 앞으로 나서 이끌어줄 수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정현재는 그렇게 생각하며, 잰걸음으로 아내가 사라진 곳으로 걸어갔다.
***
“이제 좀 진정되십니까?”
미스터 최의 사무실.
이신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홍차를 홀짝였다.
미스터 최는 그런 이신아를 보며 의자에 등을 파묻었다.
‘설마 이신아를 거기서 마주치게 될 줄이야. 하늘이 돕는 건가.’
미스터 최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미소를 지었다.
우연히 지하 주차장에서 이신아를 발견하고 그녀의 자초지종을 들어본 결과, 자신의 ‘조교’가 실패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발견할 수 있어서 다행이군.’
이신아는 흔들리고 있었다.
남편에 대한 믿음이 다시 피어나며, 자신의 외도에 강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신아를 여기서 만난 것은, 하늘이 자신을 도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신아를 그대로 방치했으면 그녀는 남편에게 돌아갔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3일 뒤에 있을 ‘온천 여행’의 피날레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재조교가 필요해 보이는군. 손이 많이 가는 년이야.’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쌓아 올린 부부로서의 정, 그들의 신뢰, 유대관계.
그것은 생각보다 튼튼한 외벽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껏 어느 여자든 함락시켜온 자신의 전적에 유일한 패를 안겨줄 수도 있는 견고한 성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로써 그것도 끝이다.
좀 이르긴 하지만 온천 여행의 마지막 날 꺼내려고 했던 비장의 수를 여기서 꺼낸다면, 남편에 대한 이신아의 희망도 덧없이 부서질 것이다.
그렇게 미스터 최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준비한 USB를 꺼냈다.
“사모님. 아무래도... 이걸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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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최가 건네준 USB.
이신아는 불안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설명을 요구하는 그녀의 눈빛에 미스터 최가 입을 열었다.
“..... 죄송합니다. 최대한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네?...”
“충격이 크실 겁니다.”
“이 안에 뭐가 들었는데요?”
“.....”
“이 안에, 뭐가, 들었냐구요?”
“동영상입니다.”
“... 무슨 동영... 잠시만요.”
하아-. 하아-. 가쁜 호흡을 내쉬는 이신아.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USB를 바라보았다.
USB를 잡고있는 그녀의 손이 덜덜덜 떨렸다.
“이, 이게... 제가 생각하는... 그런 동영상인가요?”
“... 예.”
“남편이 외도 장면을 찍은... 그런 거라구요?”
“예. 맞습니다.”
“그걸... 그걸 왜 선생님이 들고 있는데요? 어떻게 구했어요?”
“... 아시겠지만 사모님. 저는 지금 뒷세계에 몸담고 있습니다. 사모님의 의뢰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뒷세계의 힘을 빌리는 건 제게 일도 아닙니다.”
“... 도촬을 시켰다는...말인가요?”
“예. 사모님이 남편분의 불륜 사실을 폭로하고 난 후부터, 남편분에 사람을 붙이며 얻게 된 동영상 파일입니다.”
“.....”
멍한 표정의 이신아.
그녀가 소곤거리듯 중얼거렸다.
“왜.... 왜 이걸 저한테 보여주는 건데요.”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면....그건 변명이겠죠. 사실 이 모든 것을 덮어놓고 사모님과 남편분이 재결합하는 게 의뢰완수를 하는 쉬운 길이니까요. 그냥 이건, 제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그렇습니다.”
“욕망...? 무슨 욕망이요?”
“사모님을 가지고 싶다는 제 욕망 말입니다. 사모님이 상처받더라도 혹은 망가지더라도, 결국 내 품에서 망가졌으면 좋겠다는, 그런 못된 욕심 말입니다.”
입을 꾹 다문 채 미스터 최를 지긋이 바라보는 이신아의 눈.
이윽고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손에 들린 USB로 떨어졌다.
그녀는 공허한 눈으로 USB를 컴퓨터에 연결한 뒤, ‘정현재 외도 증거’라고 적힌 USB
폴더명을 바라보았다.
단지 ‘정현재 외도 증거’라는 적힌 글자만으로도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흘렀다.
-달칵.
이신아는 폴더를 더블클릭했다.
그곳엔 동영상 파일이 하나 있었고, 동영상의 썸네일엔 나체로 뒷치기를 하고있는 한쌍의 남녀가 있었다.
이신아는 썸네일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아으으....으으.....끄흐으윽...”
이신아는 눈을 감았다.
자꾸만 쏟아지는 눈물을 옷소매로 훔치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비참한 현실을 마주했다.
“.....”
뒷치기 자세를 하고있는 남자와 여자.
남자의 얼굴은 자신의 남편인 정현재.
박히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이하영.
이신아는 그 음탕하고 난잡한 성행위를 두 눈 가득히 담았다.
그러다 문득, 자신과 미스터 최의 끈적한 성교가 영상의 썸네일에 오버랩되었다.
‘그래. 나 또한 당신과 바를 바없는 여자야. 당신도 똑같은 남자였을 뿐이고.’
이신아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동영상을 더블클릭했다.
그러자 멈춰져 있던 썸네일이 음탕한 움직임을 해대기 시작했다.
여자의 끈적한 교성이 고요한 방안 곳곳에 울려 퍼졌다.
“흐응! 으응! 아앙! 하앙! 앙! 하윽! 흐응! 아, 아저씨...!”
자지를 박을 때마다 출렁이는 이하영의 가슴.
두 사람의 몸을 타고 흐르는 땀.
섹스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
이미 각오했던 일인데도, 동영상이 전해주는 현장감은 가슴을 저리게 했다.
“크으윽...”
물 만난 물고기처럼 발딱 선 남편의 자지.
순간, 분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이신아는 자꾸만 차올라 시야를 뿌옇게 하는 눈물을 연신 닦아대며, 마지막으로 하나만 확인하고자 했다.
그렇게 그녀는 뿌연 시야를 걷어내고, 두 눈을 떠 남편의 목덜미에 집중했다.
뒷머리가 끝나는 곳과 목이 이어지는 언저리에 있을 큰 점을 찾아보려, 시선에 힘을 줘 남편의 목덜미를 노려봤다.
그리고 이윽고-.
“하....하하....”
이신아는 발견하고야 말았다.
동영상 속 남자의 목덜미에 붙어있는, 큼지막한 점을.
-달칵.
이신아는 그대로 동영상을 꺼버렸다.
그리고 한참을 멍한 눈으로 바닥을 응시하기만 했다.
미스터 최는 그런 이신아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걸려들 수밖에 없겠지. 그만큼 철저히 준비했으니까.’
자신이 보여줬던 USB에 있는 파일.
그것은 사실 영상조작 전문가를 고용해서 만들어낸 가짜 동영상이었다.
‘딥페이크’라는 기술을 이용해 만든 눈속임에 불과한 영상이라는 말이다.
그럼 에도 이신아가 이 가짜 동영상에 속아 넘어간 것은, 그만큼 진짜와 가짜가 구분이 안 될 만큼 얼굴합성이 잘 됐기 때문이고, ‘정성민’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놈이 넘겨준 파일이 아주 큰 결정타가 됐군.’
정성민의 긴밀한 협조.
그것은 정성민이 건네준 디지털 앨범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동안 정성민의 가족이 찍은 사진과, 수많은 동영상들.
정성민이 협조해준 것은 단지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자료 덕분에 미스터 최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 딥페이크 동영상 파일을 만들 수 있었고, 그의 신체특징을 똑 닮은 배우를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이하영은 대역을 쓰지 않고 본인 그대로 출연시켰다.
그년이야 자신이 명령만 내리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쓰레기 같은 노예년으로 전락했으니까.
어쨌든 미스터 최는 정성민이 보내준 파일과 영상 조작 전문가를 고용해서 이런 가짜 동영상을 만들었고, 이신아는 그것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 정신이 붕괴된 상태이다.
그리고 정신이 붕괴된 여자만큼 사냥하기 쉬운 여자도 없는 법.
미스터 최는 혀를 날름거리며 멍한 표정의 이신아에게 다가갔다.
이신아는 미스터 최의 인기척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동공엔 생기가 없었다.
“선생님.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신아의 영혼 없는 물음.
그 물음에 미스터 최가 답했다.
“제게 기대시면 됩니다.”
“.....”
깊은 밤.
자신을 욕망하는 그의 눈빛.
어두운 방안에 등대처럼 빛나는 그의 눈빛.
이신아가 입을 열었다.
“저를... 저를 가지고 싶어서요?”
..... 침묵.
허나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는 그의 대답.
하지만 이신아는 끝끝내 그에게 답을 요구했다.
그가 답하기만 한다면, 거기에 기꺼이 응해줄 것이기에.
“... 예. 맞습니다.”
그에게서 받아낸 확답.
이신아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자신을 욕망하는 그의 눈동자를 조용히 응시했다.
보기만 해도 몸이 달아오르는 그의 시선.
자신을 탐하고 있는 포식자의 시선이자,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은 절대자의 시선.
이제는 이 시선을 거부할 이유가 없어졌다.
자신을 아슬아슬하게 지탱해주고 있던 기둥이 무너졌으니,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이젠 그냥 그가 주는 쾌락을 마음껏 받아들이더라도 죄책감을 느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정당한 명분을 얻었으니, 이제 매일 밤 자신을 부덕한 여자라고 괴로워하던 날들도 오늘로써 안녕일 것이다.
‘이제 어찌 되든 좋아.’
참아왔다.
그동안 수없이 그에게 매달리고 안기고 싶었지만, 가슴 한편에 남아있는 죄책감 때문에 최대한 자신을 절제했었다.
그렇게 절제하고 절제했는데도 그에게 그렇게나 안겼었다.
그런데 이제 이 잠금장치를 완전히 개방하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아마 오늘 밤, 자신의 끝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신아는 달뜬 호흡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집으로 가요. 당신의 품에서 망가지고 싶어요.”
***
1시간 뒤.
정현재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렇게 아내를 보내고 뒤늦게 그녀의 뒤를 쫓았지만, 결국 그녀를 발견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하영’의 얘기를 꺼냈을 때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걸렸다.
‘반응이 이상했어. 뭔갈 알고 있는 거 같기도 했고...’
-뚜루루.... 뚜루루.... 뚜루루...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는 통화음.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고 있는 아내.
정현재는 자기도 모르게 왼쪽 약지에 낀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촉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불안감이 그의 목덜미를 엄습했다.
-달칵.
“여보세요...”
통화가 연결되며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정현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수화기에 대고 답했다.
***
“그렇게 사라져서 걱정했잖아. 지금 어디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남편의 목소리.
이신아는 침대 시트를 꽉 움켜잡고 있었다.
자신의 질내에 꽉 찬 미스터최의 자지를 견디면서 통화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으...으응....지, 지금... 운동 중이야.”
“운동 중이라고? 갑자기?”
당황한 목소리의 남편.
그럴만했다.
갑자기 사라진 것도 이상한데, 돌연 운동 중이라는 변명을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