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303)

나는 여자를 볼 때 얼굴이나 몸매를 중점적으로 보지 않는다.

나와 정서적으로 얼마나 잘 맞는지, 그것을 중점적으로 본다.

완벽한 예로 내 여자친구가 있다.

함께 있으며 즐겁고,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같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난 그런 여자친구를 좋아한다.

한마디로, 내 여자친구가 내 이상형이란 말이다.

아,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가 더 남아있다.

난 상냥하고 따뜻한 여자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런 상냥한 여자친구 덕분에 지금의 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꿈.

막연히 여자친구와 결혼하고 싶다, 그런 꿈은 아니다.

물론 그런 꿈도 어느정도 있긴 하지만, 내가 꾸는 꿈이란 일류 쉐프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조리 관련 자격증도 많이 따놨고, 각종 요리대회에 참가하여 우승도 차지했다.

23살 치고는 요리에 뜻이 있는 남들보다 꽤 많이 앞서나간 셈.

평범한 내가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다 여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취미로 시작한 요리를 정말 맛있게 먹어주고, 그 반응에 신이나 점점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은 욕망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것이다.

그녀는 그런 재능이 있다.

남을 북돋아 주고, 장점을 이끌어 내주고, 자꾸 뭔갈 해주고 싶게 만드는.

그런 그녀의 매력을 오롯이 나만 알고 있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야. 수업 끝났는데 뭘 멍때리고 있어. 매점 고?"

떠들썩한 강의실.

고개를 드니 안상민이 있었다.

중딩 때부터 친구이자 롤 좆밥.

한마디로 베프.

"됐어. 점심 아까 먹어서 배부름."

"이 새끼 이거 너 또 여친이랑 같이 먹으려고 쿠키 처만들었지?"

"알면 눈치껏 빠져라"

"아- 존나 기만자 새끼. 너 그럼 오늘 피방 안 갈 거냐? 여친이랑 데이트?"

"어. 그리고 나 대회준비해야 되는데. 당분간 못 갈 듯?"

"오키. 상금 타면 치킨이나 쏴라."

"머 치킨 정도야 사줄 수 있지."

"엉. 야 근데 요즘에-"

무슨 얘기를 꺼내려는 지, 뜸을 들이는 녀석.

"요즘에 뭐."

"니 여친한테 무슨 일 있나?"

"뭔 일?"

"아니, 뭐. 엄청 이뻐졌잖아. 원래 수수하게 입고 다니던 앤데"

원래 수수하게 입고 다녀?

이 새끼가 돌았나.

"그런 거에 관심이 생겼나 보지. 왜. 배 아프냐?"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요즘 따라 이미지가 확확 바뀌니까-"

"바뀔 수도 있는 거지. 한창 그럴 때인데. 그게 이상한 거냐."

"아니 이 새끼는 여친 얘기만 꺼내면 진지 빠네. 아니, 그게 아니고 끝까지 들어봐바"

"뭔데"

"애들이 니 눈치 봐서 말 안 하는 거 같은데, 니 여친 좀 소문이 이상하게 돌아."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

이 새끼는 대체 뭔 헛소리를 하려는 건지.

하지만 한편으론, 이놈이 눈치가 없는 놈도 아니고.

나 기분 나쁠 거 알면서 이런 얘기를 꺼낸 거면 괜히 꺼낸 말이 아닐 텐데.

"일단 말해봐. 뭔 소문이 돌아?"

"하아. 일단 화내지 마라? 그. 좀 안 좋은 소문이야."

"걍 빨리 말해. 짜증나게 하지 말고."

"하아. 씨바. 그, 원조교제. 그런 거 한다고..."

"씨발. 어떤 새끼가 그랬는데?"

조용해진 강의실.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게 쏠린 과 친구들의 시선.

날 보자마자 시선을 피하는 몇몇 놈들.

기억해뒀다.

"야야. 목소리 낮춰. 일단 나가자. 씨바 여기선 애들 다 들을 듯"

-드르륵.

"그래, 일단 나가."

"어. 아이스크림이나 빨래?"

***

우린 운동장 옆, 식수대 계단으로 왔다.

각자에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

머리를 식히는 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제 말해봐. 어떤 새끼가 그랬는데?"

"어. 그전에 그 새끼한테 지랄하지마라. 혹시 지랄하려거든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말고. 오키?"

"어"

"그, 댄스 동아리에 기훈이한테 들었어."

"기훈이?"

"어. 그 새끼 니 여친이랑 같은 동아리잖아."

"어. 그래서."

"그러니까 어케 된 거냐면, 기훈이 걔가 시내에서 돌아다니다 봤다는 거임"

"봤다니 뭘?"

"그니까 피방 가는데, 니 여친이랑 그 옆에 어떤 아저씨가 같이 있는걸 본 거지."

"..... 아빠일 수도 있잖아."

"아니, 분위기가 존나 이상했대. 막 팔짱끼고 있고... 그리고 모텔 들어가는 것도 봤다잖아."

"모텔? 씨발 확실한 거야?"

"거기. 와우피시방 옆에 있는데. 라임모텔인가 거기. 기훈이 걔가 와우피시방 가는 길에 본 거라서 확실하다는데"

"하... 씨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기분.

하영이가 그럴 리가 없다.

걔처럼 반듯한 애가 왜 그런 데를.

"나도 처음엔 지랄하지마라 그랬지. 걔가 원교라니 씨발 말이 안 되지. 그런데 요즘 도는 소문이 이상하니까."

"뭔 소문? 또 뭔데?"

"하아. 이건 목격자가 좀 있어서. 근데 완전 백프로 확실한 건 아니고, 아닐 수도 있으니-"

"씨발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뭔데."

"그, 씨발... 담배 핀다고 하더라."

"담배? 누가?"

"걔... 하영이가."

하영이가.

담배를?

말도 안 된다.

하영이가 담배라니.

하영이가 어떻게 담배를 펴.

걔가 간접흡연 그런 걸 얼마나 극혐하는데.

"야. 괜찮나? 하... 씨발 나도 이거 말해야 할지 말지 존나 고민했는데, 그래도 니는 알고 있어야 할 거 같아서"

"담배는. 누가. 머 누가 그러는 건데? 어떤 새끼가?"

"일단, 종학이가 봤다고 했고."

종학이?

후배한테 꼰대 놀이하는 그 병신새끼?

이러면 조금 안심이다.

"그러고 4반에 민재아나?"

"민재? 걔, 과탑?"

"어. 걔도 그랬고."

"....."

"그리고... 희연이가..."

씨발.

희연이라면, 하영이 베프인데.

"희연이가 봤다는 건 아닌데. 희연이도 요새 하영이가 이상하다고 하더라고. 요즘 정수아 걔랑 어울리는 거 같다고 그런데."

정수아라면 좋지 않다.

골빈년으로 유명한 년인데.

걸레라는 소문도 있고.

씨발, 돌겠다.

"일단 잘 얘기해봐라. 걍 헛소문일 수도 있고. 이런 거 원래 소문만 돌다 끝나잖아."

"..... 일단 알았어. 알았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하지.

씨발 말도 안 되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어떻게 하영이가...

미친놈들이 별 좆같은 소문을 만들어서 씨발 하영이가 부러우니까 좆같은 놈들이.

"야. 야!! 괜찮나?"

"하. 씨발 말이 안 되는데? 아니 그런 낌새가 있으면 내가 눈치를 채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일단 진정하고. 쉬는 시간 끝났으니까 들어가자. 아님 걍 수업 쨀래? 내가 잘 말해줌"

"..... 됐어. 들어가. 일단 강의실이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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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 듣는지 귀로 듣는지 모를 수업이 끝난 뒤.

쉬는 시간이 찾아갔다.

그동안 맨탈을 조금이나마 추스린 나는 하영이가 있는 강의실로 찾아갔다.

"하영이 불러달라고? 잠시-. 아 저기 있네."

하영이가 있다는 말에 고개를 빼꼼 내밀어 확인했다.

하영이는 비닐봉지에서 무언갈 꺼내 오물오물 먹고 있었다.

검은 비닐봉지에 뭘 싸 온 거지?

"하영아-. 너 남친."

친구에 부름에 고개를 돌린 뒤,

나를 확인하자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내 여자친구.

그래. 이게 하영이지.

내가 알던 그대로의 모습이다.

-오물오물오물.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 화장이 좀 진해졌다는 것과.

검은 비닐봉지에서 뭔갈 꺼내어 먹고 있다는 점.

얼핏 봐서는 젤리 같은데.

가까이 다가오는 하영이를 보아하니, 젤리가 맞았다.

"성민아! 왜 왔어!"

가까이 다가와 내 손을 덥석 잡는 하영이.

단지 그것만으로도 좀전의 의심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어. 그냥 보려고 왔지."

"큭큭. 이따 데이트할 건데."

"그래도- 걍 뭐... 그런데 뭐 먹어? 젤리?"

"아... 젤리, 맞지."

뉘앙스가 엇나간듯한 대답.

괜히 더 궁금해졌다.

"근데 왜 검은 비닐에 꺼내먹어? 나도 하나 먹어보자."

"아. 다 먹었어. 집에 남은 거 싸 온 거야."

"진짜? 아직 더 있는 거 같은데."

"뭐야. 내 말 못 믿는 거야? 다 먹었다니까?"

묘하게 짜증이 뭍은 목소리.

평소 하영이라면 이럴 리가 없는데.

"아니, 그냥. 궁금해서. 다음에 같이 먹어보자. 이런 거 맨날 나눠 먹었으니까...."

"다 먹었어. 그냥 집에 남은 거 싸 들고 온 거야."

"뭐, 알았어. 이따 마치고 같이 갈 거지? 너 알바 가기 전에 공원이나 돌자. 쿠키도 만들어왔어."

"헤헤. 그래. 알았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여자친구.

그렇게 쉬는 시간이 끝나 난 강의실로 돌아왔고, 지겨운 수업 몇 번을 끝내니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난 여자친구와 30분 정도 데이트를 했다.

여자친구는 곧 알바 가야 해서 오래 데이트를 할 순 없었다.

그렇게 30분 내내 친구놈에게 들었던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고민만 하다가, 데이트는 그냥 끝나버렸다.

"그럼 쿠키 잘 먹을게! 땡큐~!"

그렇게 여자친구는 쿠키를 들고 가버렸다.

원래 공원을 돌면서 수다 좀 떨다가, 벤치에 앉아서 쿠키를 같이 먹곤 했는데 요새는 저렇게 쿠키를 들고 가버린다.

나중에 과제 하면서 디저트로 먹고 싶다나.

그렇게 말하니 쿠키를 통째로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까톡 해킹하는 방법]

집으로 돌아온 나는 구글에 위와 같은 검색어를 입력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인터넷 창을 닫아버렸다.

아직은 여자친구를 믿어보고 싶다.

그딴 미친 소문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

다음 날.

여자친구 강의실에 찾아갔다.

그런데 어제 보았던 검은 비닐봉지에서 젤리를 꺼내먹는 하영이를 또 보고 말았다.

분명 이제 다 먹고 없다면서?

여태껏 나에게 거짓말 한 번 하지 않던 애인데.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

난 따지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여친의 강의실에서 떨어져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어제 검색했던 문장을 그대로 입력하여 검색한 뒤, 내용을 훑어보았다.

이제는 계획을 세울 차례이다.

***

일주일 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끝낸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 폰에 깔린 여자친구의 까톡 파일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

가슴이 조이는 듯한 깊은 죄책감.

하지만 그러한 죄책감은 지금 느껴지는 이 불안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서 이 불안감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까톡을 실행해 여자친구의 까톡내역을 훑어본 다음, 아무 죄가 없는 것을 발견하면 당장 파일을 다 지우리라.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해킹한 여자친구의 까톡을 실행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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