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12/13)

아케론이 툭 제 앞에 떨어져 내리는 양피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받으라고!”

움직이지 않는 아케론에 황제가 성화를 부리고 아케론은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떨어진 두루마기를 주워 들었다. 두루마기를 든 채 멀뚱히 저를 바라보는 아케론을 향해 황제는 또다시 짜증을 부렸다. 아케론은 한숨을 내뱉으며 양피지를 열었다.

그러곤 몸을 멈칫했다.

“이건?”

미간을 찌푸린 아케론이 고개를 들어 올려 황제를 노려본다.

황제는 준엄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아이깁토스24) 령이 황제 직할령에서 넘어갔지. 눈 가리고 아웅 격으로 장관을 보냈는데25) 다른 속주처럼 총독을 보내라 말이 많더군.”

아케론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겁니까?”

그에 황제는 가벼운 말로 답변을 했다.

“네가 총독이다.”

황제는 씩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

“아이깁토스로 가라.”

아케론은 말없이 두루마리를 접었다. 제 책상 위에 두루마리를 고이 꽂아 넣는 아케론에 황제가 얼굴을 와락 구기며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야!”

속주 총독. 그것도 부유한 아이깁토스의 총독이라면 따로 찰 수 있는 돈주머니가 크다. 의원들이 입에 침을 줄줄 흘리며 탐내는 자리였으니.

“싫습니다.”

그러나 아케론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그 자리를 내팽개쳤던 것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심드렁히 말을 내뱉은 아케론은 행여나 저를 잡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빠르게 방 안을 빠져나갔다. 황제를 분노케 한 일이었다.

“너 이 새끼!”

등 너머로 들려온 고함 소리를 아랑곳 않고 아케론이 보폭이 넓은 발걸음을 옮겼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빠르게 황궁을 도망쳐 나온 아케론은 그러나 저택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황제를 찾았다.

“가겠습니다!”

“뭐, 뭐…?”

“아이깁토스…! 알렉산드리아로! 당장! 빨리 날 보내달라고!”

도착한 저택에 편지가 당도해 있던 것이다.

[안녕, 아케론!]

사랑스럽고도 무정한 연인으로부터의 것이었다.

*

안녕, 아케론!

아니지 게르마니쿠스인가? 아니면 퀸투스? 아니면 장군이라 불러야 하나.

하여간, 내 사랑.

잘 지냈나?

나는 잘 지내지 못했다.

네가 너무 보고 싶었거든.

꿈에서도 나오고 낮에도 불쑥불쑥 생각이 나고, 정말로 그리워했어.

네게 해 줄 말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할 말이 없구나.

잘생긴 네 얼굴이 그립다.

네 얼굴을 쓰다듬고 싶군, 아케론.

내가 그럴 수 있게 해 주겠느냐?

나는 지금 아이깁토스, 알렉산드리아에 있다.

이곳으로 오거라.

공무는 걱정하지 말고.

친애하는 내 외사촌 형이 널 내 품에 안겨 준다 했거든.

*

마지막 글자를 읽어 내린 순간 와그작, 편지가 구겨졌다.

동시에 분노 어린 노성이 터져 나갔다.

“카-이- 사-르!”

“흐하하!”

잘생긴 얼굴은 구겨진 편지처럼 와락 일그러져 있었다. 카이사르는 무엇이 즐거운지 뒤로 넘어가게 웃고 있었고.

아케론을 분노를 금치 못했다.

“내게 장난을 쳤습니까? 내가 그렇게 고통스러워한 걸 알면서 이런 짓을 합니까!”

격분한 아케론이 그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날 보고 결혼이니 뭐니 그런 게 이것 때문이었어!”

완전히 속았던 것이다!

황제는 루키우스로부터 연락을 받고 아케론을 아이깁스토스의 총독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결혼이니 뭐니 떠든 것은 그냥 시험하는 말이었다.

아니, 사실 아케론은 황제가 장난을 쳤다는 사실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이미 아케론은 그의 성격을 알고 있었고, 그에 더욱 격분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날 떠봤습니까? 이런 일로 시험을 해요?!”

결혼이니 뭐니 이상한 말로 마음을 완전히 어지럽혀 놓고선 루키우스의 말은 벙긋도 하지 않고, 이렇게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아?

“이게 제 헌신에 돌아온 대가입니까!”

아케론은 완전히 분노한 채로 그를 윽박질렀고, 그에 황제는 더더욱 뒤집어졌다.

“으하하!”

낄낄대며 그의 분노를 즐기던 황제는 마지막에 이르러선 항의하는 아케론의 어깨를 턱턱 두드리며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소리치기를.

“그래! 가라, 가. 아이깁토스로!”

그렇게 로마의 영웅 게르마니쿠스, 아케론은 홍해를 가로지르는 배에 올라탄 것이다.

*

휘이잉, 짠 바람이 몰아쳤다.

오랜만에 지중해의 바닷바람을 맡으며 아케론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두꺼운 살가죽에 따끔한 느낌을 안길 만치 날카로운 바람에도 그는 뱃전 위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나무로 된 난간을 잡은 채 그가 묵묵히 바다 너머를 바라보았다.

‘알렉산드리아.’

심장이 빠르게 뛴다.

피가 뜨거워진다.

귓가에 이명이 울리고 얼굴이 뜨끈해진다.

아케론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난간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창백한 얼굴에는 감정이 물결치고 있었다.

‘루키우스.’

지중해의 푸른 바다 위에 물결치는 금파가 꼭 그의 달콤한 금발처럼 보인다. 알렉산드리아가 서서히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아케론는 조급함과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안절부절못하여 뱃전을 떠나지 못하던 상태였다.

‘왜 나를 버렸어?’

떨리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사내는 결국 죽이지 못한 원망을 토해 냈다.

‘왜 내게 말도 없이 떠나간 거야! 왜 날 버렸어.’

충혈된 눈으로 사내는 지중해의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항해가 길어질수록 마음의 물결은 더욱 거세져 가고 있었다.

‘너를 만나면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아. 물어볼 것도 많아.’

그 순간 아케론이 눈을 감았다.

그간 폐인처럼 살아왔다. 겉은 멀쩡해도 속은 완전히 곯아, 사람이 아닌 무언가로서 그저 숨만을 연명한 채 살았다. 루키우스의 말이 그를 지탱하는 유일한 것이었다. 아케론은 하루에 한두 시간도 채 자지 못했고, 그마저도 술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검을 잡지 못한 지 반년이 넘었다. 검을 수련하고 난 후에 몸이 자연스럽게 상했기 때문이었다. 하도 험하게 몸을 놀려 팔다리 중 하나가 금이 가거나 그에 비견되는 일을 겪었다.

루키우스의 기억이 그를 완전히 뒤덮어 버려, 정상이 아닌 삶을 살았다.

그건 끔찍한 기억이었다.

실로 끔찍한 기억.

‘다시는 그런 날들을 경험하고 싶지 않아.’

아케론이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 올렸다.

‘네가 만약 내 마음을 걱정해서 알렉산드리아로 간 거라면 오산인 거야. 네가 제 죽음을 보이지 않으려는 짐승처럼 내 눈앞에서 사라진 거라면, 그건 네 잘못인 거라고. 나는 네가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더 고통을 느껴. 심장을 비수로 찌르고 후벼 파는 고통을 느낀다고. 공허는 견딜 수 없어. 차라리 네가 내 눈앞에서 죽기를 바라. 네 곁을 지킬 자격을 박탈하지 마. 네 곁에서 겪는 고통이라면 나는 견딜 수 있어. 끔찍하게 아프겠지만, 그래도 나는 견딜 수 있다고. 그때는 적어도 삶도 죽음도 함께할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에게 있을 테니까.’

떨리는 숨이 입술 밖으로 흘러나왔다.

아케론의 눈이 흔들거렸다. 입술을 달싹거리며 무어라 말을 내뱉으려던 그는 그러나 이내 몸을 멈칫하곤 침묵했다. 아케론의 얼굴이 서서히 풀렸다. 긴장되었던 그의 얼굴 근육에 힘이 풀리고 있었다. 난간에 기댄 몸을 축 늘어트린 채 그가 눈을 감았다.

‘그래.’

아득한 한숨이 흘렀다.

‘그래, 됐어.’

사내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이걸로 됐어. 살아 있으면 됐어. 네가 살아 있으면 된 거야.’

이걸로 끝난 거야.

이걸로 네 모든 걸 용서해 줄 수 있어.

아케론이 느릿한 한숨을 내뱉었다. 하관을 손으로 감싸고 더듬으며 그가 상체를 살짝 숙여 푸르른 지중해를 바라보았다. 금빛 햇살이 물결치는 에메랄드빛 바다였다.

멍하니 얼굴을 쓰다듬던 아케론이 정신을 차린 것은 꽤나 시간이 흘러서였다.

광대를 검지로 쓸던 순간이었다.

문득 몸을 멈칫한 아케론이 미묘한 기분에 휩싸여 눈살을 찌푸렸다.

꺼슬꺼슬한 살결이 느껴진 것이다.

‘얼굴이 왜 이래?’

아케론이 뻣뻣한 손길로 제 얼굴을 더듬거렸다. 뺨은 움푹 파여 있었고, 살갗이 거칠다. 그 순간 아케론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뒤늦게 제 얼굴이 많이 상한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검투사로서 활약을 했을 때도 멀쩡하던 얼굴이 살갗은 거칠어지고 얼굴 살은 빠져 쪼그라진 노인 같았다. 사실 아케론의 마른 모습은 오히려 뚜렷한 이목구비에 그림자가 더욱 짙게 드리워 우수해 보였으나, 당사자는 미묘한 차이가 너무나도 신경이 쓰였다.

루키우스와의 나이 차이를 가늠하고 아케론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굳은 얼굴로 하관을 만지작거리던 아케론이 슬쩍 펄럭거리는 돛을 바라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바닷바람이 이제야 신경이 쓰인다. 잠시간 그것을 바라보던 아케론은 결국 난간을 움켜쥔 손에 힘을 풀고 몸을 돌리고야 말았다.

다급히 자리를 벗어나가는 그의 등 뒤, 저 바다 너머로 검은 깃발을 펄럭거리는 배가 유유히 총독의 항해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바닷바람을 피하기 위해 뱃전 아래의 방으로 내려간 아케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은 바로 지중해의 단골손님, 해적선이었다.

“당장 내 돈줄을 사로잡아! 하나도 빠짐없이 저놈들을 포박해라.”

*

‘미쳤군!’

아케론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얼굴을 와그작 일그러트리고 속으로 분노 어린 욕설을 퍼부었다.

운명이여, 이건 너무하잖습니까!

“당장 이리로 와!”

거친 손길이 아케론의 팔을 움켜쥐어 질질 끌었다.

눈이 안대에 가려진 채 그는 비적거리며 걸음을 옮겨야 했다. 거구의 사내가 혹여 반항을 하지 않도록 해적들은 그의 몸을 야무지게 포박해 놓았다. 거의 밧줄과 한 몸이 된 수준으로 칭칭 얽힌 아케론이 이를 악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다.

무려 로마 원로원 의원이자 전쟁 영웅이자 아이깁토스의 총독인 게르마니쿠스가 해적에게 나포가 된 것이었다

게르마니쿠스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쾅쾅 소리가 나서 밖을 나가니 활을 든 해적들이 계단의 입구를 빙 둘러싼 채 포위하고 있었다. 아무리 헤라클레스의 화신이라 칭송받는 몸이라 한들, 백 개의 화살을 막을 성이 있던가?

아케론은 항복을 했고 그렇게 손발이 친친 묶이고야 만 것이다.

‘루키우스.’

만약에 그가 루키우스의 소식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를 만날 희망을 품지 않았더라면 항복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높은 자존심은 검투사, 노예였을 때도 꺾이지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였지 더 이상 제 운명의 고삐를 남의 손에 들려 주지 않았으리라. 로마 시민에게 있어서 자유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으니. 게다가 아케론에게 그것은 소중한 사람이 목숨을 바쳐서 선물한 것이었다. 결코 빼앗길 수 없는 보물이었던 것이었다.

‘아, 제길…!’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아케론은 희망의 맛을 보았다.

루키우스가 살아 있고 그를 찾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끔찍이 그리워했던, 꿈에서도 보기를 갈망했던 연인과 재회할 꿈을 꾸고 있었는데 어떻게 목숨을 걸 수 있단 말인가?

자유가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기랄…! 제기랄!’

그리하여 그는 죽음을 생각지도 않았다. 간절히 생존을 갈망했다.

그런 그의 간절한 마음과 사정을 모르는 해적들은 거친 손길로 그를 저들의 배로 옮겨 나갔다. 아케론은 안대에 눈이 가려져 제가 어디로 운반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해적들은 그를 창고와 비슷한 곳에 처박아 놓았고 거의 반나절을 항해하여 아프리카인지 로마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 땅에 내려놓았다.

아케론은 제 수행원들과 호위와 떨어진 채 그들의 손에 이끌려 나갈 뿐이었다. 운명의 여신을 격렬히 비난하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체념하여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빌어먹을 운명이군.’

거친 손길에 이끌려 터벅터벅 걸어가던 아케론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긴?’

어느 순간부터 그의 귓가가 몹시 조용해졌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누군가가 그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너 운이 좋은 줄 알아라. 허드렛일을 하거나 노잡이 노예가 되는 불운은 피했으니.”

아케론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굳은 얼굴이 경련을 일으켰다. 서른 중반. 이제는 세상을 제법 경험한 나이다. 해적들의 말이 결코 호의적인 뜻이 아니란 걸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아케론은 마침내 상황이 흘러가는 방향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야, 네 얼굴이 잘생긴 걸 감사하게 여겨!”

‘뭐라고?’

킬킬대며 웃는 이들의 말에 아케론이 공황에 빠졌다.

“마님께 순종하는 편이 좋을 거다.”

아케론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상처받은 짐승이나 야수처럼 울부짖었다. 순순히 해적을 따랐던 그는 해적들의 말을 듣고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이놈이 왜 이래?!”

“어, 어? 야! 저거 잡아! 야! 다리 눌러.”

그러나 결박된 몸으로 하는 반항은 용이하지 못했다.

그는 결국 해적들의 손에 질질 이끌려 가 어느 장소에 내던지고야 말았다. 대리석 바닥과 코끝을 훅 찌르는 황홀한 몰약 냄새로 제가 도착한 장소를 짐작한 아케론이 입술 밖으로 그르렁 소리를 흘렸다. 안대에 가려진 두 눈은 짐승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자식이! 조용히 안 해?”

당황한 해적이 손을 높게 들던 그 시점이었다.

“그만두시오.”

문득 들려온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아케론이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의 얼굴에 절망과 굴욕감, 분노가 스치고 있었다. 이윽고 여인의 목소리가 연이어 내려앉았다.

“마님께서는 그가 사나운 짐승이라 하십니다.”

아케론이 흉흉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해적들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마음에 드시지 않으십니까?”

“아니요. 마님께서는 보기 드문 상품이라며 기개가 넘치는 점이 마음에 든다 하십니다.”

아케론은 상황이 흘러가는 꼴을 이제 확신했다.

제가 처한 상황을 인지했다.

“좋은 값을 치르겠습니다.”

루키우스 때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 것이다.

“훌륭한 밤 상대가 되겠군요.”

바로 성적인 요구를 받는 것이다.

아케론의 눈이 질끈 감겼다. 포박되어 뒤로 묶인 손이 핏줄이 도드라질 만치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는 절망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동시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또다시 이런 상황에 처하는가?

그러나 루키우스 때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절망이 그를 덮쳤다.

아케론에게는 인생의 연인이 있었고, 지금 그는 그를 만나러 알렉산드리아로 가고 있었다.

헌데 바로 그 땅을 눈앞에 두고 이런 일이 생기다니?

“다만 그의 의사를 여쭙고 싶다 하십니다. 이런 일에는 적극성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아케론은 지금 제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남의 일인 것처럼 대하며 자포자기한 것이다. 그는 손을 늘어트렸고, 눈을 감은 채 몸에 힘을 뺐다.

“마님께서 물으십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나?”

아케론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그는 살고 싶었다.

살아서 루키우스를 보고 싶었다.

“마님께서 말하십니다. 너는 길들여지지 않은 늑대나 사자와 같구나.”

아케론은 침묵을 지켰다.

운명의 여신의 이름을 붙인 고양이를 가지고 놀던 금발의 꼬맹이를 생각했다.

“마님께서 말하십니다. 나는 너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케론은 침묵을 지켰다.

이슈타르의 눈. 사람의 혼을 홀리는 사랑스러운 이국의 여신의 눈을 떠올렸다.

“마님께서 말하십니다. 만약 네가 나를 따르도록 한다면 네가 노예가 되지 않게 막아 주마.”

아케론은 침묵을 지켰다.

몰약 냄새가 코끝을 후욱 찔렀다. 안대에 가려져 눈이 보이지 않았으나 아케론은 제게 제안을 하는 저 귀부인이 정말로 대단한 위치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해적들은 숨을 죽이며 그들의 대담에 끼어들지 않았고, 공손히 굴었다.

만약 저 귀부인과 밤을 보낸다면 정말로 고난은 겪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첨언을 하자면, 마님께서는 알렉산드리아 제일의 미인이십니다. 꿀빛 금발과 치즈가 엉긴 듯한 살갗이 아름다운, 허리가 낭창한 최고의 미인입니다. 죽은 남편의 재산을 물려받은 거부이기도 하고요. 뿐만 아니라 학회에도 가입이 되어 있는 데다가 영명함으로 연회에도 자주 초청을 받는 이지적인 인사입니다.”

그런데 그게 뭔 상관인가?

“마님께서 물으십니다. 너는 나와 밤을 보내겠느냐?”

안대 속 아케론의 눈이 뜨였다. 그의 눈은 사냥 직전의 짐승과 같았다.

“마님께서 말하십니다. 내게 묶여 있으란 말이 아니다. 나는 모든 것에 쉬이 질리곤 한다. 너 또한 한번 취하면 오래가지는 않을 거다. 그저 한 번의 밤을 내어 준다 생각하거라.”

“마님께서 말하십니다. 네가 만약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겪을 고난을 아느냐? 너는 해적들의 노잡이 노예가 될 거다. 십중팔구가 3년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 고된 직업이다. 항상 물에 담그고 다니는 다리는 썩어 문드러지고, 전염병을 피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좋으십니까?”

“마님께서 물으십니다. 정말로 그분의 사랑을 거부하실 거냐고.”

아케론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니 그건 웃음이 아니었다. 당장에 그 말을 지껄인 이의 목덜미에 그 이를 박아 넣고 살점을 뜯을 것만 같은 짐승의 원초적인 위협이었다.

“마님께서….”

“꺼져라.”

안대 안의 눈에 시퍼런 흉광이 서렸다.

아케론은 목울대에서 그르렁 쏟아져 나오는 목소리를 흘리고 얼굴에 미소를 지웠다. 방 안의 분위기가 빠르게 식고 냉엄한 살기가 감돈다.

아케론의 무표정한 얼굴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시녀의 숨이 잘게 떨리고 정적이 이어진다.

그때였다.

“주인님.”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박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고양이가 바닥을 밟는 듯한 우아한 발걸음 소리가 이어졌다. 아케론이 멈칫한 순간이었다.

“위험합니다.”

시녀의 말이 알리는 바가 있었다. 아니 시녀의 말이 아니어도 아케론은 점막에 달라붙는 달콤한 냄새로 주인이 제게 다가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케론을 결박한 쇠사슬이 철컹거린다. 아케론이 그 순간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안대 속 눈이 차갑게 빛났다.

쇠사슬에 친친 감겨진 몸에 근육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관자놀이에 핏대가 서고 입술 밖으로는 떨리는 숨결이 흘렀다.

긴장이 고조에 다다를 무렵에 녹을 듯이 부드러운 손이 아케론의 얼굴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의 몸이 굳은 그 순간에 손길은 얼굴을 누비며 불손한 욕망을 채웠다. 아케론의 굵은 팔뚝에 핏줄이 서고, 숨이 굳은 그 순간의 일이었다.

“좋군.”

그것은 분수대에 흐르는 물과 같은 청명하고, 또 사근사근한 목소리였다.

아케론의 몸이 멈칫하고야 만다. 그는 순간 머리에 차가운 물벼락이 끼얹어지는 느낌을 받고 얼어붙었다. 그런 그의 날카로운 콧대와 진한 이목구비를 구석구석 쓰다듬으며, 손의 주인은 달콤한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좋아.”

손은 아케론의 움푹 파인 눈이 자리할 안대 위를 쓸었다. 다른 손은 아케론의 꿇려진 무릎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고.

아케론이 몸을 굳혔다.

“다시 묻겠어.”

그는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내 사랑을 정말로 거부할 거야?”

상냥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

비록 게으른 나귀처럼 끝을 늘어트리는 말버릇은 사라졌으나 그 사랑스러움을 지울 수는 없다. 아케론의 호흡이 가빠졌다.

여린 풀의 잎사귀 같은 손이 느릿하게 안대를 제거했다.

동시에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말로, 아케론?”

안대가 사라지고 드러난 아케론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눈물길이 거친 뺨을 가로질렀다.

아케론은 눈을 깜빡거리지 않으며, 눈물을 흘린 채로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청년을 바라보았다. 금발을 머리에 닿게 기른 설탕으로 만든 과자 같은 미인.

창백한 안색을 조금은 가려 주는 금발은, 햇볕에 찬란하게 빛나 구불거린다. 그 금빛 물결은 보드라운 우유색 살과 어우러져 루키우스를 핥으면 단맛이 날 것만 같은 달콤한 외모로 보이게 만들었다. 로마인에게 보기 드문 선명한 보라색 두 눈 또한 보석 같았다. 그 붉은색이 섞인 자안은 정교하게 커팅 된 보석처럼 보였으니, 햇볕 아래서는 사람을 홀리는 묘한 빛을 띠며 빛나고 그늘이 자리할 때는 밤중 달빛을 맞는 제비꽃처럼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루키우스.”

그것은 아케론의 진정한 주인의 이름이었다.

“왜 그랬어….”

결국 아케론은 흐느끼고야 말았다.

“왜 내게 그랬어. 왜….”

*

다른 사람보다 머리 두 개는 클 법한 거한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철커덕, 쇠사슬이 풀리고 아케론이 대리석 바닥에 몸을 미끄러트렸다. 향유와 몰약의 냄새가 가득한 방에서 그는 머리를 손으로 움켜쥔 채 바닥을 구르며 처절히 울부짖었다. 눈물을 흘리며 꺽꺽댔다.

“미안, 미안해.”

루키우스가 그의 몸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굵은 허리를 팔로 두르고 아케론의 등에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자그마한 몸으로 거구에 달라붙어 필사적으로 그를 달래려 들었다.

“내가….”

그러던 와중 무어라 말을 내뱉으려던 루키우스는 그러나 그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너!!”

아케론이 제 몸에 달라붙은 루키우스를 떨어트리곤 말을 내뱉었다.

“너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두 눈에 형형한 빛이 번뜩거렸다.

아케론은 상처받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내 마음을 알면서 어떻게 떠날 수 있어!”

루키우스는 그를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왜 날 떠난 거야! 왜 그렇게 잔인하게 군 거야!”

거구의 사내가 위협적으로 소리치는 모습에 주변에 늘어선 해적들, 아니 해적으로 가장한 카이사르의 병사들이 몸을 움츠렸으나 막상 루키우스는 그에 겁을 먹지 않았다.

“왜 날….”

분노를 한 몸에 받는 루키우스는 그저 울부짖는 그를 연민했을 뿐이었다.

“…살리고 죽이려 들었어.”

쉬어빠진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흐려졌다. 바늘을 토해 내듯이 말을 내뱉던 아케론이 머리를 움켜줬다. 무릎을 꿇은 사내는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넋을 잃은 채 허공을 바라보았다.

“미안.”

그는 마치 불사른 자리에 남은 새하얀 재와 같았다. 루키우스는 허망함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아케론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움켜쥐었다.

“널 봤어.”

그러곤 말을 내뱉었다.

“네가 승리를 거둘 때, 나 사실 카이사르의 옆에서 널 지켜보고 있었다.”

아케론이 가는 숨을 떤다. 그가 고개를 들어 루키우스를 응시했다. 영혼이 빠져나간 습한 눈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루키우스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널 축하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별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어. 네 마음도 내 마음도 모두 편안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어. 나도, 나도 그랬다.”

아케론은 루키우스의 자색 눈에 고인 눈물을 발견하고 몸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그러지 못했구나. 갑자기 쓰러졌거든. 다행히 승리하는 널 봤지만 나 그날 쓰러져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지. 카이사르는 그런 나를 위해 상황을 수습하려 하신 거다.”

결국 루키우스는 눈에 고인 눈물을 주룩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너도 알잖느냐. 너는 그때 로마를 떠날 수 없었어.”

마음이 먹먹하며 그는 입을 다물었다. 루키우스에게는 버릇이 있었다. 감정의 편린이 드러날 때 말을 멈추는 것이었다.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한 루키우스가 평온한 얼굴로 아케론을 바라보고, 그에 아케론은 그 순간 턱을 잘게 떨고야 말았다.

“미안해.”

아케론은 웃는 얼굴과 마주하고 더 이상 말을 내뱉지 못했다.

“미안해, 내 사랑.”

조용히 웃는 루키우스의 마음을 아케론은 잘 알고 있었다. 루키우스 그 자신보다 어쩌면 더.

“미안해. 미안….”

그리하여 그는 제 품에 얼굴을 묻는 루키우스를 더 이상 원망하지 못하고 묵묵히 그의 등을 쓰다듬었던 것이다. 떨리는 숨결을 내뱉으며 아케론이 눈을 감았다. 루키우스는 두근대는 심장 소리를, 그의 불꽃의 온기를 느꼈다.

*

루키우스의 말을 전했던 시녀가 자리를 벗어났다.

해적들이 그 뒤를 따랐다.

시녀는 루키우스의 개인 노예였고, 해적들은 사실 카이사르의 병사들이었다. 그를 깨달은 아케론은 카이사르에 대한 분노를 또다시 터뜨려야만 했다. 이 웃기지도 않은 연극의 설계자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반대했어.”

아케론이 으득 이를 악물었다.

“그럼 왜 이런 웃기지도 않은 짓거리를 했지?”

짙은 시선이 루키우스를 향했다. 억울함과 원망을 품은 얼굴을 마주하곤 루키우스는 한숨을 내뱉었다.

“나도 이러긴 싫었지.”

흉흉한 시선 앞에서 그가 변명했다.

“그런데 이렇게 안 하면 널 안 보내 주겠다 하셨는걸.”

이어진 말에 아케론은 입술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카이사르가 네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셨어. 너는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카이사르는 널 사윗감으로 지목하고 있더구나.”

“뭐?”

뭔 사르?

“그분은 널 다음 대 카이사르로 고려하고 있었어, 아케론.”

할 말을 잃은 아케론의 아랫입술을 톡톡 건드리며 루키우스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케론이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와락 구겨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루키우스가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카이사르가 되지 못한 게 아쉬워?”

그리 말하며 루키우스는 나른한 눈을 깜빡거렸다. 아케론은 그런 그의 얼굴을 들끓는 시선으로 노려보다가 이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고개를 뒤로 꺾은 아케론이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그러곤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딴 거 필요 없어!”

루키우스는 키득거리며 아케론의 얼굴을 주물럭거렸다.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 아케론은 한참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카이사르?

카이사르 같은 소리를!

코웃음을 치며 아케론이 제 몸 위에 올라탄 루키우스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응? 소리를 내는 루키우스를 허리에 대롱대롱 매달고 아케론이 침대로 향했다.

루키우스가 아케론의 팔을 꼬옥 붙잡고 그를 말똥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케론은 그를 품에 안고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지금껏 어디에 있었어?”

시간이 흘러 그가 조용히 속삭였다.

아케론은 품 안에 담긴 것을 소중하게 껴안은 채 말했다. 화사한 금발에 얼굴을 묻고, 마치 지금껏 떨어져 있던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이 깊게 숨을 들이쉬고 뺨을 비볐다. 루키우스의 체취에 제 냄새를 묻혔다. 루키우스는 두꺼운 사내의 품에 안겨 그 손길을 기꺼이 받았다.

쉬어빠진 목소리로 아케론이 속삭였다.

“어디서 뭘 하고 지낸 거야.”

떨리는 목소리에 애틋함이 있었다.

루키우스는 조용히 속삭였다.

“로도스 섬.”

아케론은 그 말에 더 묻지 않았다. 루키우스의 저택에는 간간이 로도스 섬에서 온 사람들이 출입하곤 했다. 밀교의 옷차림을 한 그들은 누가 보아도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케론은 그들이 루키우스의 병을 돌보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루키우스가 무엇을 준비하는 것도.

‘이런 일일 줄은 몰랐지만.’

아케론이 아득한 한숨을 내뱉었다. 장밋빛으로 반짝거리는 루키우스의 뺨을 검지로 쓸며 그가 조용히 속삭였다.

“건강해진 거야?”

루키우스는 자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기쁨이 은은하게 드러나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래.”

그러곤 그는 아케론의 너른 가슴에 풀썩 몸을 쓰러트렸다. 색색 숨결이 그의 살갗에 스쳤다. 아케론은 루키우스의 뺨을 조몰락거리고 있었다. 물에 닿으면 녹을 듯한 달콤한 외모의 미청년이 눈을 휘며 속삭였다.

“이제 내 안에 종양은 없어, 게르마니쿠스.”

아케론은 한숨을 내뱉으며 루키우스의 달콤한 살갗에 입술을 문질렀다. 마치 제 체취를 남기려는 짐승처럼 구는 아케론을 루키우스는 말똥한 눈을 깜빡거리며 방관했다.

문득 나직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나를 게르마니쿠스라 부르지 마.”

아케론의 입술에 목덜미가 문질러지며 루키우스는 종달새처럼 조잘거렸다.

“그럼 뭐라 불러?”

아케론은 답변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하기 버거워했다. 그의 손이 루키우스의 찬란한 금발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렇게 적막이 이어졌다.

평안한 적막이었다.

숨결이 섞이고 온기가 나뉘는 시간은 두 사람에게 서서히 졸음을 안겨 주었다. 마치 물에 잠긴 듯한 나른한 감각에 취해 두 사람은 몸의 근육을 축 늘어트리며 편안함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루키우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아케론이 문득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 부르냐고?’

그가 잠시간 상념에 잠겼다.

게르마니쿠스. 그리 불리던 날들을 떠올렸다.

게르만을 정복한 자. 자자손손 대대로 물려받을 위대한 이름을 원로원에서 부여받았다. 그것은 라인 강 전선에서 그가 세운 공으로 인해 수여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아케론은 그 이름으로 불릴 때 껄끄러움을 느꼈다.

가이우스 황자의 주검을 수습해서 로마로 돌아왔을 때 중년의 황제의 눈에서 반짝거리는 눈물을 마주한 순간 느꼈던 것이 있다. 슬픔에 우짖는 로마가 복수를 부르짖을 때부터 무언가 잘못되어 감을 느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생각하지 않았지.’

아케론이 눈을 감았다.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못한 군인은 그리고 그 대가를 치렀다.

그러니까 그 이름은 아니야.

침묵 끝에 말이 흘렀다.

“퀸투스.”

그건 그의 프라이노멘이었다.

아케론이 눈을 뜨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렇게는 한 번도 불린 적 없었지.”26)

그의 아버지는 아케론을 씨족의 이름으로 불렀다. 어머니는 일찍 여의어 없었고, 아케론은 씨족의 영광으로 살아왔다.

루키우스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아케론이 루키우스의 금발을 손에서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그냥 아케론도 나쁘지 않군.”

슬픔과 비통의 강의 이름에는 사랑스러운 추억이 덧씌워졌으니까. 아케론은 끝이 늘어진 사랑스러운 발음을 기억했다. 추억에 심취한 사내가 루키우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꿈만 같았다.

아케론의 말에 멈칫하던 루키우스는 이윽고 눈을 부드럽게 휘며 말을 내뱉었다.

“그거 좋네.”

한 번도 불린 적이 없는 프라이노멘.

개인으로서의 이름.

그걸 처음으로 부르는 사람이 저라 하면 이건 정말 사랑스러운 일이다.

루키우스가 느릿하게 속눈썹을 깜빡거렸다.

숙명을 위해 살아왔다.

로마인이 강건함으로 조국을 위해 이바지하는 숙명을 지닌 채 태어났으므로. 루키우스 또한 로마인으로서의 숙명을 수행하고자 했다.

그렇게 스스로의 존재를 입증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에 성공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뭘까?

루키우스가 조용한 미소를 머금었다.

로마인으로서의 네체시타스를 이행했다.

그럼 이제 개인의 네체시타스를 찾아보자!

보석 같은 자색 눈동자가 휘어졌다.

살랑거리는 바람 같은 목소리가 연이어 흘렀다.

“그래서, 퀸투스?”

아케론이 고개를 살짝 틀었다. 이목구비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는 사내다운 얼굴을 루키우스는 꿈에 젖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사랑스러운 사내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가 작게 속삭였다.

“내게 할 말이 있지 않나.”

루키우스는 아팠을 때의 말투처럼 단어의 끝을 늘이며 말을 이었다.

“해야 할 말이 있잖아. 응?”

아케론은 입술을 작게 벌린 채 잠시간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루키우스는 그의 몸의 떨림을 느끼고 있었다. 루키우스의 허리에 둘러진 아케론의 팔뚝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흘렀다.

“내 자유를 네게 줄게.”

루키우스가 잠시 웃다가 답했다.

“그럼 나는 널 자유롭게 해 줄 거다.”

그러곤 그는 아케론의 뺨을 와락 움켜쥐었다. 뺨이 눌린 사내가 불만이 가득 찬 눈으로 루키우스를 바라보았다. 금붕어처럼 톡 튀어나온 입에 쪽쪽 키스를 퍼부은 루키우스가 깜짝 놀란 그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퀸투스! 알렉산드리아에 온 걸 환영해. 그런데 네가 할 말은 그게 끝인가?”

아케론은 멍하게 눈을 깜빡거리며 루키우스를 바라보았다.

활짝 핀 꽃처럼 루키우스는 싱그러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미소가 번지는 얼굴을 얼이 나가 바라보던 아케론이 문득 홀린 듯 입술을 열었다.

“사랑해.”

<외전: 아이깁토스의 평화로운 날>

아이깁토스의 건축 양식과 로마 건축 양식을 섞어 만든 이국적인 저택이었다. 석회암으로 만든 새하얀 벽돌로 지어졌다는 점과 복도를 주축으로 방이 나열되었다는 점에서는 아이깁토스를, 바닥을 대리석으로 깔고 집 안에 분수대와 정원을 들였다는 점에서 로마를 연상시키는 이 저택은 아이깁토스의 총독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 연유로 저택은 몹시 커다랗고 화려했는데 방 하나하나가 성의 있게 꾸며져 있었다.

황금이 돌처럼 차이는 부유한 나라의 저택은 어딜 보아도 번쩍번쩍한 광채를 흘리는 순금으로 가득하다. 금빛으로 물결치는 방에는 라피스 라줄리로 만든 스카라베, 순금으로 만든 독수리상, 세레스에서 넘어온 도자기 또한 있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저택의 주인이 선물 받은 것들이었다.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한 저택에서도 손꼽히게 아름다운 곳이 몇몇 군데가 있다.

물줄기가 시원하게 뿜어 나오는 분수대를 옆에 둔 연회장, 황금빛으로 가득한 웅장한 응접실, 새하얀 대리석을 통째로 깎아서 만들었다는 아이깁토스 양식의 침실.

그리고 분수대에 시원하게 물이 흐르고 푸릇푸릇한 야자수가 그림자를 드리운 야외 정원이 아름답기로 손에 꼽히는 장소였다.

특히 이 야외 정원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말이 많은 곳이었다. 정원을 지은 유명한 건축가가 총독의 야외 정원이 세미라미스 여왕의 공중 정원보다 아름답다 장담한 말이 널리 퍼진 까닭이었다. 그는 이 저택의 샘물에서는 맑은 물이 퐁퐁 솟고, 종달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난다 했다. 세상의 모든 꽃이 풍성하게 피고 대추야자 나무에서 꿀을 농축한 듯 달콤한 열매가 열린다 했다.

푸르름이 가득하다는 총독의 정원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막상 이 정원을 직접 본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총독이 이 공간을 개인적으로 사용하여 사람들의 출입을 막은 탓이었다. 소문을 부채질한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총독이 신들이 내려준 아름다움을 독점한다 비난했고, 어떤 사람들은 총독이 그의 정원을 여는 것을 특별한 정치적인 제스처로 이용하려 한다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총독이 그저 허영심을 부리는 거라 말을 했다.

모두가 틀린 말이었다.

“으응, 아케론.”

애초에 그 아름다운 정원은 단 한 사람을 위해 지어진 것이었으니까.

“나 졸려….”

“더 자.”

*

쏴아아. 시원한 물이 흐른다.

야자수가 드리워진 정원 한가운데. 대리석으로 만든 정자에서 두 사람이 아이깁토스의 뜨거운 여름 햇살을 피하고 있었다. 공작 깃털로 부채질을 해 주는 하인이 없어도 정원에서 그들은 더위는 피할 수 있었다. 정원이 특별한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후덥지근한 느낌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그들은 정무를 처리할 때 집무실만큼 정원을 애용하곤 했다. 급하지 않은 문서들을 의자 위에 뒹굴뒹굴 구르면서 처리했던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쏴아아.

게으름을 피우며, 여유롭게 잔업을 처리하는 시간.

‘으음.’

아름다운 금발의 청년, 루키우스 아르카디우스 풀케르가 길고 새하얀 검지를 빨며 포도색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달아….’

물에 닿으면 녹을 듯한 달콤한 외모의 청년은 비단으로 감싼 오리 깃털 베개가 폭신하게 깔린 긴 의자에 누워 꿀에 절인 대추야자를 먹는 중이었다. 혀가 아릿한 단맛을 즐기며 그가 꿀에 끈적하게 젖은 분홍색 입술을 오물거렸다. 꿀에 절인 건과일이 이에 달라붙는 쩍쩍 소리가 났다. 다른 이가 했더라면 더럽다 여겨졌을 소리는 설탕을 그대로 녹여 뭉친 듯 아름다운 외모 탓에 야릇한 느낌을 주었다.

새빨간 혀가 꿀이 끈적하게 달라붙은 손가락을 낼름 핥았다.

한숨을 길게 내뱉은 루키우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맞은편에 자리한 사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쨍한 햇살이 내려앉아 자기주장이 강한 이목구비의 그림자가 짙었다. 칼날 같은 눈매와 먹으로 그린 듯한 짙은 눈썹이 사내다운, 누가 보아도 군인이라 주장하는 듯한 잘생긴 용모의 사내의 이름은 퀸투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게르마니쿠스’.

“아케론?”

그리고 루키우스의 아케론이었다.

루키우스가 눈알을 데구루루 굴렸다. 다물린 속눈썹의 그림자가 짙다. 의자의 팔걸이에 댄 베개에 머리를 베고 사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자?”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루키우스가 흐음 소리를 흘렸다. 꿀에 젖은 손가락을 쪽쪽 빨며 루키우스가 가늘게 눈을 떴다. 강건한 용모의 사내가 무방비하게 의자에 늘어져 잠을 자고 있다. 루키우스는 체리색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겨야만 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조심성이 없는 사내를 어떻게 벌을 줄까.

문득 루키우스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의자 위에 굽혀진 채 올려진 아케론의 다리가 슬쩍 벌어진 것이었다. 집 안에서 입는 짧은 튜니카 사이로 터질 듯한 굵은 허벅지가 보였다. 바위같이 단단한 허벅지는 햇볕을 받아 불그스름했다.

푸른 핏줄이 보인다.

루키우스의 입술 끝이 살짝 꺾였다. 그의 눈은 자그마한 미소가 머무른 채 휘어져 있었다.

좋은 생각이 났다.

루키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케론의 의자로 향했다. 대리석 바닥에 루키우스가 모로 앉았다. 그러곤 그는 의자 밖으로 살짝 나온 나무 밑동같이 단단한 다리에 뺨을 대며, 아케론을 올려다보았다.

요즘 들어 과로에 지친 탓인지 아케론은 완전히 뻗어 있었다. 나비같이 나풀거리는 속눈썹을 깜빡거리던 루키우스가 아케론의 깊은 잠을 확신하고 기댔던 뺨을 뗐다.

그러곤 그는 손을 뻗어 아케론의 튜니카를 슬쩍 걷어 올렸다.

“으음.”

루키우스는 입술을 오므리며 검지를 그 위에 대고야 말았다. 터질 듯한 허벅지가 완전히 드러난 것이었다. 빛을 받지 못한 샅이 허옇다. 잘 그을린 아케론의 몸답지 않게 대리석같이 흰 부위였다.

그리고 그 위에 까슬하고 무성한 음모가 자리하고 있었다.

루키우스가 마른침을 삼켰다. 검지를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는 허벅지 위에 얹어진 묵직하고 커다란 물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살색의 몽둥이 같은 그것은 발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위용을 자랑했다. 끝이 뭉툭하고, 퍼런 핏줄이 솟은, 흉기 같은 성기.

꿀에 젖은 입술을 고양이 혀처럼 자그마한 혀가 핥았다. 루키우스는 튜니카를 좀 더 걷어 올려 핏줄이 얼기설기 쳐진 아랫배와 장골을 눈에 담았다. 부드러운 손길이 장골을 쓸었다. 아케론은 몸을 뒤척거리며 미간을 좁혔다.

루키우스는 아케론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며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커다란 몽둥이를 손에 쥐었다. 그 대단한 물건을 호기심 어린 얼굴로 쓰다듬던 루키우스가 어느 순간 묘한 긴장감을 느끼고 몸을 멈칫하고야 말았다.

‘아….’

루키우스의 얼굴이 발긋하게 물들었다. 그는 손에 쥔 성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멍한 눈으로 그는 제 안에서 크기를 키워 나가는 흉기를 바라보았다. 살아 있는 뱀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루키우스가 꼴깍 침을 삼켰다.

그는 결국 충동을 참지 못해 그것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야 말았다.

쪽, 처음은 가벼운 입맞춤으로 시작한 키스였다. 그러나 그것은 길게 이어지면서 조금씩 진득하게 변하고야 말았다. 루키우스는 키스를 한 후에 입술을 떼지 않고 맑은 액이 흐르는 입구에 그것을 비볐다. 날름거리며 짭조름한 맛이 나는 투명한 선액을 핥아먹었다.

그러다가 결국 혓바닥으로 부들부들한 귀두의 표피를 핥았고 성기에 거미줄처럼 불거진 핏줄을 빨았다.

“음.”

그렇게 타액으로 성기를 적시다가, 음모의 끄트머리로 입술이 향했다. 묵직한 고환이 늘어져 있었다. 루키우스는 새하얀 손으로 그것을 간지럽히듯 쓰다듬다가 그 위에 키스를 했다. 우뚝 서 위용을 드러내는 성기를 한 손으로 애무한 채로. 루키우스는 고환을 주무르며 그것을 핥다가 그것을 입술에 밀어 넣었다.

고환은 딱 그의 입 안을 채울 정도의 크기였다. 조금의 버거움을 느꼈으나 루키우스는 그것을 입에 넣고 우물거릴 수 있었다. 심을 품은 물컹거리는 살덩어리를 입 안에서 신나게 굴린 루키우스가 시간이 흘러 그것을 입 안에서 뱉어 내었다.

주룩 덩어리진 타액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루키우스는 가쁜 숨을 할딱거리며 멍하니 아케론을 올려보았다.

그는 이마에 주름이 지게 얼굴을 찌푸리며 여태 잠에 취해 있었다.

‘귀여워.’

누가 들으면 기함을 토할 생각을 하며 루키우스는 살포시 웃음을 흘렸다. 꿀에 질척였던 입술은 타액으로 인해 끈적거림이 덜해져 있었다. 루키우스는 곧추선 성기를 잠시간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작은 입술을 앙 벌려 그것의 끝을 물었다.

홍조 띤 얼굴에 기쁨이 물들어 있었다. 색색 가쁜 숨을 흘리며 루키우스는 입 안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물건을 최대한 깊이 먹어 해치우려 했다.

그 과정이 제법 오래 걸렸다. 천천히, 느릿하게 흉기 같은 물건이 자그마한 입술을 파고들었다. 루키우스의 입술 밖으로 웁웁 소리가 흘렀다. 고통에 얼굴을 찡그린 루키우스는, 그러나 입 안에 그것을 채우는 행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타액이 줄줄 흘러 루키우스의 손등 위로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성기의 반이 들어와 그의 목젖을 건드렸을 때 루키우스의 눈은 혼탁해져 있었다.

그때 루키우스는 압박감을 참지 못해 몸을 우뚝 세웠다. 후욱, 숨을 흘리며 그는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선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곤란함에 빠져 잠시간 망설이던 루키우스가 결국 그것을 입술 밖으로 뱉어냈다. 푸합 소리가 흐르고 타액이 뚝뚝 흘러내려 손등에 떨어졌다.

루키우스가 숨을 할딱거리며 고개를 뒤로 꺾었다. 눈앞이 어지러웠다. 햇볕 때문이 아니라 이루마티오로 숨이 막힌 까닭이었다. 고개를 뒤로 젖혀 숨통을 튼 루키우스가 하악하악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흐릿했던 시야가 돌아오고, 루키우스는 꺾였던 목을 다시 바로 한 채 손아귀에 쥔 물건을 주물렀다.

앙 입술을 벌려 다시 그 맛있는 물건을 먹어치우려던 때였다.

“아.”

루키우스는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번쩍 뜨인 군청색 눈과 눈을 마주한 탓이었다.

‘들켰네….’

루키우스가 아쉬움을 느끼며 입맛을 다셨다. 아랫입술을 검지로 누르며 잠시간 고민하는 루키우스를 아케론은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짙은 시선을 마주하곤 루키우스는 결국 펠라티오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입술을 다문 그가 손에 쥔 것을 부드럽게 주무르며 말을 내뱉었다.

“안녕.”

당연하게도 아케론은 그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케론이 느릿하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루키우스는 순진한 얼굴로 답변하지 않았다. 아케론은 그런 루키우스의 얼굴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잠시간 고민하던 루키우스가 이윽고 애처로운 목소리를 흘렸다.

“먹으면… 안 되는 건가.”

보랏빛 눈으로. 루키우스의 어깨를 부여잡던 아케론의 손이 우뚝 굳었다. 아케론은 뒤늦게 루키우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홍조가 띠어져 있었다. 얼굴은 선액 범벅이 되어 있었고 머리카락은 산발로 흐트러져 있었다. 누가 보아도 낭패를 당한 모습. 음란한 얼굴로 루키우스는 가는 손가락에 묻은 투명한 액체를 쪽쪽 빨며 아케론을 처연히 바라보았다.

아케론이 순간 숨을 멈췄다. 그의 턱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가 폭발한 것은 루키우스가 보드라운 허벅지를 비비고 있는 것을 발견한 때였다.

아케론의 눈이 돌았다. 그는 다리를 비비며 욕망을 삼키는 루키우스의 모습을 참지 못했다. 그의 음란함에 충동을 느꼈다.

“그래.”

잠긴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루키우스는 뜻밖의 아케론의 말에 몸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안 된다고?’

당황한 루키우스는 그리고 이어진 아케론의 행동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야 말았다. 아케론이 손을 뻗어 루키우스의 허리를 잡아, 그를 번쩍 든 것이다.

아케론이 의자에 기댄 몸을 일으켜 루키우스의 몸을 깔아뭉갰다. 철퍽 몸이 뒤집혀 의자에 엎드려진 루키우스가 훤한 아랫도리의 감각을 느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저를 반쪽으로 가를 묵중한 흉기를 기대하며 두려움과 기대를 삼켰으나, 일은 그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루키우스는 돌연 제 엉덩이에 느껴지는 통증에 깜짝 놀라 다리를 버둥거리고야 말았다. 황급히 고개를 돌린 루키우스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케론!”

아케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드러운 엉덩이에 이를 박아 넣었다.

루키우스는 당연히 비명을 내지르며 입질을 피하려 들었으나, 무자비한 아케론은 불패의 검투사의 두꺼운 손으로 여린 몸을 잡아 누른 뒤 복숭아 위에 마구잡이로 흠집을 만들어 냈다.

“그만, 그만!”

“시끄러.”

“항복이라고.”

루키우스는 결국 의자를 손으로 탁탁 치며 아케론에게 무릎을 꿇었다.

제 몸의 반도 되지 않고 저보다 열 살이 넘게 어린 연인을 힘으로 눌러 승리를 쟁취해 낸 사내가 여유로운 얼굴로 도톰한 엉덩이에서 얼굴을 뗐다.

“엉덩이가 엉망이 됐어.”

루키우스는 잇자국이 가득한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울상을 지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아케론은 루키우스의 보드라운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며 답했다.

“네가 한 것과 비슷한 짓.”

발끈한 루키우스가 항의했다.

“내가 언제 널 깨물었어?”

아케론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루키우스는 그런 아케론을 가늘게 뜬 눈으로 노려보았으나 아케론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는 조금 당황했다.

“그럼 나도 널 깨물게 해 줄 건가?”

루키우스가 아케론의 팔뚝을 만지작거리며 그리 속삭인 것이었다.

“그게 공평하지 않겠느냐.”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불그스름한 살갗을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루키우스의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아케론은 또다시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루키우스는 무섭게 굳어진 얼굴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란 걸 안다. 루키우스는 아케론의 딱딱한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것을 귀엽게 바라보았고, 결국 아케론은 한숨을 내뱉고야 말았다.

“날 놀리지 마.”

아케론이 결국 자포자기하곤 몸을 축 늘어트렸다. 그들의 두 발은 완전히 얽혀 있었고 루키우스의 금발은 흐드러져 있었다. 제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 아케론의 뻣뻣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루키우스가 중얼거렸다.

“죽은 듯이 자더구나.”

아케론이 몸을 멈칫했다. 그가 불안이 스며든 얼굴로 중얼거렸다.

“몇 시지?”

루키우스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아케론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 이런 제길.”

의자 아래에 떨어진 문서들을 그가 황급히 주워 들었다.

잔업이 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늘 안에 해결해야 할 것들이었는데…. 이렇게 깜빡 잠이 들어 버렸으니. 아케론이 몸을 부들 떨었다.

루키우스는 키득거리며 문서를 뒤적거리는 아케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깁토스 총독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어 마치 전장에서 패배한 장수처럼 보였다.

“총독. 열심히 일해야지.”

루키우스가 나른히 말을 내뱉었다.

아케론이 눈썹을 꺾으면서 말했다.

“너는 너무 여유로운 거 아닌가?”

저를 쏘아보는 눈빛에 루키우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케론이 그를 노려보았다. 루키우스는 뜻을 모르는 웃음을 빙글 흘리며 그 눈빛을 마주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입술을 내뱉었다.

“넌 아직도 나를 모르는구나.”

아케론의 얼굴이 문득 구겨졌다.

루키우스는 나른하게 속눈썹을 깜빡거리다가 하품을 했다. 폭 제 가슴 위에 엎어져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는 루키우스를 아케론은 허망한 얼굴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새하얗게 불탄 재와 같은 아케론이 이윽고 축 몸을 늘어트렸다.

젠장, 자그마한 욕설이 흘렀다.

*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로마의 명예를 빛낸 ‘우티스’ 루키우스 아르카디우스 풀케르를 재무관으로 임명해 아이깁토스 속주령으로 파견한다… 이게 뭔 말이지?”

아케론의 굵은 검미가 꿈틀거렸다.

카이사르의 장난으로 루키우스의 저택에 끌려갔던 아케론은 총독저로 돌아오고 난 후에 루키우스로부터 파피루스를 전달받았다. 그건 실로 그의 뒷머리를 정으로 내리치는 말이었으므로. 아케론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사냥감이 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아케론이 지그시 루키우스를 바라보았다.

루키우스는 튜니카가 아닌 토가를 입은 채 그의 앞에 있었다. 품이 넉넉한 토가를 손에 움켜쥐며 루키우스가 조용히 속삭였다.

“나도 명예로운 경력27)을 밟아야지.”

아케론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고?”

미간을 슬쩍 찡그리는 그의 앞에서 루키우스가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목표는 집정관이다. 지금은 널 보좌하는 걸로 경력을 다지려 한다.”

아케론은 얼이 나가 물었다.

“명예로운 경력?”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현실감을 찾기 힘들었다. 아케론은 혼란에 빠져야만 했다.

절 보좌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명예로운 경력을 정말 다진다는 건가? 집정관까지 노린다고.

아니, 생각을 해보니 루키우스가 지금 재무관으로 온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재무관은 고위직이 아니던가?

임기가 끝나고 나면 종신직인 원로원 의원의 석을 보장받는 주요 관직이었다. 보통 파트리키 집안의 특출한 정치인이 민회에서 선출되거나 황제의 심복이 특별히 임명되는 자리.

그런데 루키우스가 그런 자리에 앉다니.

게다가 루키우스는 로마 사내라면 해야 하는 군무를 거치지 않았는데.

‘그런데 명예로운 경력을 밟을 수 있다고?’

아케론의 얼굴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졌다. 루키우스는 그런 그를 그저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아이깁토스의 총독은 심각한 생각에 빠져 고민하고 있었다.

이게 그에게 과연 좋은 일인가?

감이 잡히지 않아 망설였던 것이다.

“내가 널 보좌하는 게 싫은 거야?”

심각하게 변한 아케론의 얼굴에 루키우스가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멈칫한 아케론은 이윽고 고개를 절레 저으며 무거운 목소리를 흘렸다.

“아니,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군.”

루키우스가 그를 보좌하는 일이 싫을 리가 없다. 그저 루키우스를 걱정할 뿐이었지.

아케론이 루키우스를 바라보았다. 천진난만한 얼굴을 마주하며 그가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공직에 나선다고?”

루키우스는 게으른 나귀처럼 느긋이 말을 했다.

“그래.”

아케론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어떻게?”

루키우스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이런, 아케론. 나는 우티스다.”

그 말에 아케론은 입술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널 살렸고, 로마에 공을 세웠는데 우티스의 일이 명예로운 경력보다 못하다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허나 아케론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루키우스가 우티스의 일을 숨겼던 것을 떠올린 까닭이었다.

“그때는 내 건강이 좋지 않아 밝히지 못한 거야. 내 명예는 당연히 찾아야지.”

그리고 루키우스는 아케론의 의문을 빠르게 풀어 주었다. 보석처럼 영롱한 눈이 느릿하게 깜빡거렸다.

아케론은 루키우스의 태연자약한, 게으른 얼굴을 잠시간 바라보다가 말을 내뱉었다.

“넌 한 번도 공무에 나선 적 없지.”

아무래도 그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루키우스가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 하더라도 공직자로서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루키우스는 한 번도 공직에 나선 적이 없었고, 아케론은 그에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그가 만약에 공직자로서 실패한다면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건 아케론도 카이사르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과연 그가 잘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복잡한 얼굴로 아케론이 루키우스를 바라보았다.

“힘이 들 거야.”

이스카리아 섬에서 항상 여유롭고 한가하게 지냈길래 그가 계속 그런 유복한 삶을 누릴 줄 알았다. 그렇게 역사학자로서 명성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겼는데, 공직이라니.

“도움이 필요하면 말을 해.”

심란한 마음에 아케론은 잠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던 것이다.

그러나 루키우스는 그의 그런 호의를 고맙게 여기지 않았다. 자색 눈동자가 느릿하게 깜빡거리며 아케론을 빤히 응시했다. 아케론은 마치 저를 갸륵하게 여기는 듯한 시선에 불편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릴 그 때였다.

“오만한 게르마니쿠스.”

루키우스가 한숨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너는 정말 나를 모르는구나.”

아케론이 미간을 꿈틀거리며 그를 응시했다.

“뭐라고?”

“오히려 네가 내 도움이 필요할걸?”

아케론은 그 말의 뜻을 깨우치지 못했다. 저를 잠자코 바라보는 그의 앞에서 루키우스가 여유롭게 말을 내뱉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지식의 보고지…. 내가 그곳을 모를 리가 없잖나. 바보 같은 퀸투스야.”

그의 말대로였다.

*

푸릇푸릇한 야자수가 드리운 정원을 앞에 둔 침실.

보송한 린넨 이불 위를 뒹굴거리며 루키우스가 가는 다리를 까닥까닥 놀리고 있었다. 새하얀 고양이 포르투나가 냐옹거리며 그의 새하얀 손을 핑크빛 발로 툭툭 쳤다.

몹시도 평화롭고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꿀빛 금발의 미인과 눈처럼 새하얀 우아한 고양이가 노는 모습은.

그리고 그런 아름다운 장면과 정반대의 우중충한 그림이 그들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침실 한편의 작은 서재에서 아케론이 침음을 흘리고 있었다.

“카이킬리우스….”

그것은 아케론 선대의 총독, 아니 선대의 장관의 이름이었다. 바로 아케론에게 어마어마한 잔업을 남기고 사라진 인물.

포르투나의 솜방망이를 콱 움켜쥐며 루키우스가 중얼거렸다.

“불쌍한 퀸투스.”

아케론은 저를 가련하게 여기는 그의 말을 듣고 울컥했으나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고 우중충히 갈잎펜만을 놀릴 뿐이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토호들에게 관용적으로 내려졌던 불검문 혜택을 손보는 중이었다. 무수히 많은 나라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알렉산드리아의 토호들이 보증을 서고 지식인들이 유입되는 구조는 몹시 편했지만 밀수에 취약하다는 단점을 안고 있었다.

아케론의 전임 총독은 미처 그 과제를 끝내지 못하고 아케론에게 인수인계를 해 주었다. 토호들과 얽힌 복잡한 일에 아케론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생을 하고 있었다.

루키우스가 길게 하품을 했다.

폭 침대 위에 작은 몸을 쓰러트린 루키우스가 게으름을 피웠으나, 그 방만한 태도에 아케론은 무어라 말을 하지 못했다. 루키우스가 제 할 일을 완벽하게 다 해낸 후였으므로. 하던 일을 끝내지 못한 총독은 그저 입술을 꾹 다물기만 할 뿐이었던 것이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모든 건 루키우스의 말대로였다.

그는 확실히 유능한 인재였다. 특히 총독부가 자리한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는 아케론이 상상하던 것 이상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건 그의 이전 행적의 덕이었다.

루키우스는 네체시타스를 완성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을 자주 들렀었는데, 그러면서 알렉산드리아의 지식인들과 교류했고, 친분을 쌓았다. 모름지기 지식이란 가진 자의 것. 즉 루키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권력 구조에 익숙했던 것이다.

지중해에서 명성을 날리는 학자인 루키우스에게 지식을 숭배하는 그리스인 학자들이 많은 알렉산드리아는 그야말로 제2의 고향. 아케론이 서서히 적응 기간을 거쳐 가는 반면에 루키우스는 제 집안일을 처리하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갈잎펜을 휘갈겼다.

그런 연유로, 이런 상황은 반복되었다.

아이깁토스라는 로마의 곡창지의 총독이 된 아케론은 과로에 시달려 잔업에 매달렸고, 비교적 업무가 적은 데다가 알렉산드리아에 눈이 밝은 루키우스는 그런 그를 놀리며 게으름을 피웠다.

“도와줄까?”

포르투나를 꼭 품에 안은 채 루키우스가 속삭였다. 아케론은 흘끗 그를 바라보다가 몸을 멈칫하고야 말았다. 베일로 만든 동방식 잠옷, 그 베일로 만든 옷 위로 비치는 옅은 분홍색 몸을 발견한 것이었다.

아케론은 슬프게도 조금 고민하고야 말았다.

제가 비굴한 생각을 했음을 깨달은 아케론이 정신을 차리고 잠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됐어.”

루키우스가 포르투나의 코를 밀며 중얼거렸다.

“그럼 오늘도 밤을 새울 거야?”

아케론은 묵묵히 갈잎펜을 놀릴 뿐이었다. 루키우스가 게으른 나귀처럼 말을 했다.

“나를 독수공방하게 또 놔둘 거냐 물었어, 퀸투스.”

다행히도 아케론은 오늘 그러지 않았다.

“죽겠군.”

한숨을 쉬며 갈잎펜을 내려놓은 아케론이 침대를 향해 비적거리며 다가갔다. 루키우스는 포르투나의 복실한 꼬리를 입에 문 채 꾸벅 졸고 있었다. 발긋한 장밋빛 뺨에 반짝거리는 금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케론이 침대에 걸터앉을 때 루키우스는 잠긴 눈을 뜨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케론은 그에게서 한참을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잠에서 깬 루키우스가 아케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케론은 순순히 고개를 숙여 주었다. 루키우스는 마치 원숭이가 나무에 오르듯 아케론의 목을 손으로 감쌌다. 그러곤 그의 말랑한 뺨에 키스를 하고, 기분 좋게 웃었다. 아케론은 그의 청량한 미소에 피로에 젖었던 얼굴을 부드럽게 풀고야 말았다.

어른스럽고 성숙했던 루키우스는 요즘 들어 이렇게 웃음이 많아졌고, 아케론에게 장난을 쳤다.

그게 아케론은 몹시 기분이 좋았다.

이스카리아 섬에서의 모습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루키우스는 생기가 넘친다.

그 사실이 새삼 행복을 안겨 아케론은 넘치는 애정을 참지 못해 몸을 움직였다. 사내의 코끝이 루키우스의 곧은 목을 비볐다. 으응 소리를 흘리는 달콤한 미청년의 얼굴 구석구석에 체취를 묻힌 아케론은 곧 루키우스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술을 맞추곤 그의 시원한 이마를 손으로 쓸어 주었다.

뜨거운 입술이 벌어져 자그마한 입술을 덮었다. 루키우스는 분홍색 입술 사이로 깨끗한 숨결을 흘리며 부드러운 살덩어리를 받아들였다.

달콤한 입맞춤이었다. 아케론이 눈을 깔며 루키우스의 얇은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을 주었다. 루키우스는 그의 팔뚝을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리를 움직였다.

아케론은 제 허리를 다리로 감은 루키우스를 침대 위로 넘어트렸다.

루키우스는 키득거리며, 아케론의 목을 감싼 팔에 힘을 주었다. 아케론은 루키우스의 동근 이마에 이마를 가져다 대며 그를 바라보았다.

“좋군.”

루키우스는 반짝거리는 눈을 빛내며 그리 말했다.

숨결이 섞이는 거리에서, 몸을 서로 얽은 채,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

“그래, 좋아.”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아케론이 그리 속삭였다. 그러곤 입을 벌려 루키우스의 말랑말랑한 뺨을 깨물었다. 루키우스가 악 소리를 흘렸다. 아케론은 잇자국이 난 뺨을 핥으며 그를 달래 주었다.

“아파….”

“미안.”

“미안한데 왜 또 깨물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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