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9/13)

<국가의 영광>

“당장 맹세해라, 퀸투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쾅!

여린 무릎이 대리석 바닥과 부딪쳤다.

로마 사내의 거친 손이 어깨를 짓눌렀다.

퀸투스 발레리우스가 고개를 들어 마르스 신의 석상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아비가 핏발 선 눈으로 울부짖었다.

“게르마니아에 빼앗긴 독수리 깃발을 찾아오겠노라고!”

- 게르마니쿠스의 탄생

국가의 영광.

SPQR의 깃발을 흔들어라!

가지 마라, 아퀼라.2)

쓰러지지 마라, 아퀼리페르.3)

바루스여, 내 군단을 돌려다오!4)

국가의 영광.

라인강을 넘어 엘베강까지!

무너지지 않는 무적의 로마.

인빅타! 로마 인빅타!

다시 일어나라. 불멸의 조국이여!

국가의 영광.

마르스, 레아 실비아, 베누스의 자손5)이 행진한다.

세계의 중심! 로마의 사내여.

바루스의 치욕6)을 피로 씻으라!

*

제정 로마 초기.

푸블리우스 큉크틸리우스 바루스가 17, 18, 19군단을 이끌고 토이토부르크 숲을 향했다.

사령관 바루스의 부관 아르미니우스가 로마를 배신하고 그들을 습격했다.

17, 18, 19군단이 전멸하다.

아우구스투스가 소식을 듣고 기둥에 머리를 찧고 울부짖었다.

로마 전역이 패닉에 휩싸였다.

로마의 팽창이 저지되고, 상게르마니아와 엘베강 너머의 유역이 영구 소실되다.

훗날 바루스의 재앙7)이라 불리우는 그 전투로부터 약 백 년 후.

게르마니쿠스가 탄생하다.

결번이었던 17, 18, 19군단이 부활하다.

게르마니쿠스가 군단을 이끌고 클라데스 바리아나 너머의 영역을 되찾다.

국가의 영광을 되찾은 명장의 이름은 퀸투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영광스러운 게르마니쿠스였다.

“비바! 비바 게르마니쿠스!”

*

소년이 아비의 손에 이끌려 마르스 신에게 복수를 맹세한 지 20년 후, 사내가 된 그는 약속을 지켰다.

상게르마니아의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땅이 불에 타올랐다.

“꺄아아악!”

여인의 비명이 울린 그 순간 날카로운 글라디우스가 뱃가죽을 갈랐다.

“끄르륵….”

살육이 벌어지는 그 순간 웅장한 목소리가 군가처럼 쩌렁쩌렁 울렸다.

“국가의 영광을 세워라!”

척척척, 열과 오를 맞추어 걷는 병사들의 등 너머로 사기가 넘실거렸다.

“게르마니쿠스 막시무스 장군의 이름으로.”

우렁찬 목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17, 18, 19군단의 복수를 하라!”

“아퀼라! 아퀼라를 찾아라.”

그들을 바라보는 건조한 푸른 눈이 있었다.

바로 약속의 주인공.

나직한 목소리가 흐른다.

“이게 무슨 소용이 있지?”

묵묵히 학살을 지켜보던 사내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곁에 서 있던 흑발의 사내가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사내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아르카디우스 풀케르의 혈통을 증명하는 하늘색 눈. 그것이 불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사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자격을 의심하는군.’

사내, 게르마니쿠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효용성에 대해서 말을 하는 거다.”

게르마니쿠스의 부관은 의심을 풀지 않았다.

“그들은 문명인이 아닙니다, 각하.”

부관, 포스투무스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효용성에 대해서 논할 만한 족속들이 아닙니다. 게다가 약탈이 아니면 병사들의 불만과 분노를 어찌 잠재울 생각입니까.”

게르마니쿠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갑옷 위 붉은 팔루다멘툼8)을 휘날리며 그가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포스투무스가 그의 등을 노려보았다.

근처에 있던 장교 하나가 포스투무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게르마니쿠스는 의외군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인 말에 포스투무스의 굵은 눈썹이 꺾였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의외, 의외지.’

포스투무스가 말없이 그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게르마니쿠스다.

복잡한 얼굴로 그가 손에 쥔 글라디우스를 만지작거렸다. 장교는 포스투무스의 마음을 몰랐다.

“로마의 사내답지 않….”

“닥쳐!”

포스투무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황한 장교의 어깨를 밀치며 그가 으름장을 흘렸다.

“그는 막시무스(Maximus)9)다. 막시무스 게르마니쿠스!”

게르만을 정복한 자.

원로원이 붙여 준 영광스러운 이름.

자손 대대로 물려받을 그 이름, 게르마니쿠스.

그 이름의 주인은 결코 로마를 배신하지 않는다.

“그를 의심하지 마라.”

으르렁거리는 포스투무스에 당황한 장교가 말을 얼버무렸다.

같은 시각, 게르마니쿠스가 마을 근교의 숲을 걸었다.

사내의 굳은 얼굴에는 영광이 없었다.

혼란에 휩싸여 그는 의문했다.

‘이게 아니야.’

고개를 들어 불의 열기에 물든 하늘을 보았다.

코끝에 스치는 매캐한 연기의 냄새를 맡았다.

등 너머로 비명이 감돌았다.

게르만을 정복한 자가 혼란에 빠져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이건 내가 원하던 게….’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수풀을 밟는다.

포스투무스의 앞에서 보이지 못했던 나약함, 불명예, 동정심.

그래, 동정심!

그를 드러내며 게르마니쿠스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하관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그가 곤혹스러움을 드러냈다.

‘이게 어떻게 국가의 영광이라는 거지? 이게 어떻게 로마의 위대함이란 거지?’

흔들리는 푸른 눈은 그가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숨겼던 나약한 퀸투스 발레리우스의 모습이었다.

‘지금 로마의 상황으로는 엘베 강 너머를 사수하기도 힘들어. 하다못해 이 지역이 로마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이익도 없는데 여기서 더 위로 나간다고?’

게르마니쿠스가 신음을 흘렸다.

‘이건 그저 복수일 뿐….’

고개를 돌려 등 너머를 바라보았다.

보지 않으려 했던 참혹함을 마주했다.

타오르는 불길이 새파란 두 눈에 비쳤다.

그의 눈은 들끓는 불꽃처럼 보이고 있었다.

게르마니쿠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멈춰야.’

부르르 몸을 떨던 그가 몸에 힘을 빼내곤 힘없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내가 뭘 어쩔 수 있지?”

그때 들려온 목소리였다.

“노력을 할 수는 있지.”

게르마니쿠스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게르마니쿠스의 날카로운 시선에 수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긴 흑발의 사내가 있었다. 그의 눈은 깊고 푸르렀고, 몸의 살결은 새하얬다.

‘게르만족?’

그러나 그는 어쩐지 그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다.

이민족의 복장을 한 사내가 당황한 그의 앞에서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게르마니쿠스.”

손에 든 글라디우스를 내리지 않은 채 게르마니쿠스는 나직이 말을 내뱉었다.

“이름을 말하라.”

사내는 그 말에 조용히 속삭였다.

“군나르.”

반짝 빛나는 푸른 눈과 마주하고 아케론은 홀린 듯 손에 든 검을 땅에 늘어트리고야 말았다

“그대의 언어로 군디카리우스라 합니다.”

- 포스투무스의 고뇌

“동정하지 말거라.”

소년은 신음을 흘렸다.

“어머니.”

율리아는 머리를 절레 저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마의 사내로 살아.”

색색 가쁜 숨을 내뱉는 금발 아이의 손을 부여잡아 당기며 율리아는 뒷산으로 향했다.

검은 머리 소년이 허망한 눈으로 금발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린 아이와 눈을 마주하곤 소년, 포스투무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 보지 마! 나는 너를 구해 줄 수 없어. 그건 네 운명이었어. 네 운명….’

그날로부터 6년 후.

“허억!”

포스투무스가 신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친 숨을 토해 내며 그가 공황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 채 심장을 움켜쥐었다.

‘제길….’

동공이 점이 되어 홉떠진 눈.

“허억, 허억….”

포스투무스가 잘생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이를 아득 물었다.

‘제기랄…!’

악몽이 된 기억을 떠올리며 속으로 절규를 터뜨렸다.

‘그러려던 게 아니야. 그러려던 게….’

변명을 거듭하던 사내는 그러나 결국 무너지고야 말았다.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리며 그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울음을 터뜨렸다.

‘루키우스, 미안해! 나는 그래선 안 됐어. 그때 널 방관해서는 안 됐어. 루키우스! 루키우스….’

*

포스투무스 아르카디우스 풀케르.

씨족의 자랑.

젊은 나이에 게르마니쿠스의 부관이 되었고, 그를 따라 상게르마니아 전선에 나서다.

전설을 써 내리고 있는 사내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보좌하다.

그리고 고뇌하다.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지?’

존경하던 사내의 배반을 겪고 갈등을 했다.

“아르카디우스 장군. 외람되오나 이제는 결단을 내리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게르마니쿠스는 로마를 배신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지켜보자….”

신음과 함께 갈라진 목소리를 흘렸다.

눈을 감고 포스투무스가 몸을 잘게 떨었다.

‘당신이 그러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게르마니쿠스.’

*

‘하지만 당신은 결국 믿음을 져버리셨지요.’

침대에 웅크렸던 사내가 입술에서 타액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며 몸을 세우는 그의 눈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장군!”

곱슬머리의 사내, 코르넬리우스가 문을 박차고 방 안에 들어왔다. 포스투무스가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고 입술을 열었다.

“괜찮다.”

분노를 품은 야수와 같은 눈이 백부장 코르넬리우스를 응시했다.

“나는 괜찮아.”

숨을 들이켜곤 포스투무스가 다시 말했다.

“왜 온 거야?”

코르넬리우스는 그늘진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게르마니쿠스 장군이 또 ‘그’와 밀회를 가졌습니다.”

포스투무스의 입술 끝이 딱딱하게 굳어진 순간이었다. 그는 차갑고 건조한 눈으로 코르넬리우스를 응시했다.

“정확히 말해!”

으름장이 흘렀다.

“밀회야, 회동이야!”

코르넬리우스는 바로 반박했다.

“왜 이러십니까, 장군.”

흑요석같이 반질거리는 검은 눈이 포스투무스를 향했다. 포스투무스는 그 눈을 버티지 못했다. 굳어지는 얼굴을 마주하며 백부장 코르넬리우스가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두 개를 분간할 수 있습니까?”

포스투무스가 그를 노려보았다. 조용히 읊조렸다.

“아니.”

코르넬리우스가 턱을 세운 채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절도 있는 자세. 흠잡을 군데 없는 로마의 군인.

“아니지.”

포스투무스가 차게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

“나가 봐라.”

갈라지고 쉬어빠진 목소리가 이내 흘렀다.

“나는…… 결단할 거다.”

코르넬리우스가 답했다.

“예, 장군.”

나가는 코르넬리우스의 등을 포스투무스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

포스투무스가 소년이던 시절에 동생이 죽음을 맞이할 뻔했다.

루키우스.

꿀빛 금발의 연약한 아이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뒷산으로 향했다. 포스투무스는 그를 말렸으나, 어머니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넌 아르카디우스 풀케르의 자랑이다.”

그리 조용히 읊조리는 부친의 고요한 눈에 경도되어 포스투무스는 루키우스를 부여잡지 못했다.

그리고 마음에 새겨진 후회!

‘그래선 안 됐어.’

포스투무스는 그날의 일을 짐처럼 얹고 살아왔다.

살아 돌아온 루키우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포스투무스를 대했으나, 포스투무스는 아무렇지 않게 그를 대할 수 없었다.

부모와 루키우스처럼 그것을 없던 일로 할 수 없었다.

‘네게 그래선 안 됐었어.’

고뇌하고 또 고뇌했다.

‘어떻게 하면 이 죄책감을 덜지?’

그날의 아이의 평온한 눈을 기억한다.

그의 어미는 루키우스가 아무것도 모른다 말을 했으나, 아니 포스투무스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 애는 죽음을 알고 있었다!

고작 일곱 살의 나이에, 그 어린 나이에 체념을 알았어….

그리하여 되새긴 각오.

‘어떻게 너한테 속죄할 수 있지?’

어떻게 네게 사과를 할 수 있을까?

포스투무스가 이를 악물었다.

‘나는 너의 로마를 지킬 거야.’

개선식이 루키우스를 살렸다.

로마의 영광이 루키우스의 목숨을 붙잡았다.

그렇다면 모든 길이 그곳에 있지 않을까?

영광스러운 아버지는 그에게 말했다!

“로마와 씨족의 명예를 드높여라.”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은 그에 순종적으로 답했다.

“예, 아버지.”

그렇게 세운 인생의 길.

‘개선식을 올려야겠다.’

명예를 드높이자!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자.

한순간 신이 되는 그 자리에 올라.

그래서 루키우스 아르카디우스 풀케르.

슬픈 내 소년에게 영광을 바치는 거야.

‘개선식을, 반드시 개선식을….’

그 애에게 생명을 준 개선식을, 반드시 내 손으로….

그러나 포스투무스의 다짐은 장애물을 맞이했다.

“그만! 포스투무스. 이 전쟁은 무용해.”

*

포스투무스는 게르마니쿠스의 보좌가 된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전설을 써 내려가는 자의 옆을 지키는 것을 영광스러워했고, 또 개선식을 치를 수 있길 기대했다.

‘그럴 리 없어.’

그러나 그의 기대는 엘베 강 원정이 시작되고 산산조각이 났다.

‘그가 그럴 리가 없어.’

게르마니쿠스는 나약한 자였다.

온정이 많고, 또 결단력이 없었다.

‘그가 그럴 리가 없다!’

엘베 강 이서를 정복해라!

그곳을 완충지대로 삼고 엘베 강을 로마의 국경으로 삼아 직접 통치한다.

그것이 엘베 강 원정의 최종 목표였다.

‘그가 그럴 리가….’

그러나 게르마니쿠스는 그에 반대했다.

그는 지금까지 정복했던 땅을 야만족들에게 돌려주고 그들의 족장을 클리엔테스로 삼아 간접 통치하는 게 맞다 평했다.

‘……제기랄.’

포스투무스는 안다!

그것은 겁쟁이의 말이다.

만약 게르마니쿠스가 엘베 강 유역의 땅을 피와 불로 뒤덮는다면 그곳은 로마의 영토가 될 수 있다.

만약 로마 세 개 군단의 출혈을 각오하고 게르만족을 멸족시킨다면 그곳은 로마의 영토가 될 수 있다.

만약 그가 피를 감수한다면 그곳은 충분히, 충분히 로마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건 불후의 전공이리라.

개선식은 당연히 게르마니쿠스의 것이리라.

‘그런데 어째서?’

그러나 게르마니쿠스는 그를 감수하지 않았다!

그것이 로마 라티움의 사람들에게 겁쟁이의 행각으로 보일 수 있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리하지 않았다.

게르마니쿠스는 엘베 강 너머를 침공하길 망설이고 있었다.

그건 국가의 불명예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포스투무스가 손을 떨었다.

게르마니쿠스에게 불만을 가진 백부장들이 있었다.

그들은 포스투무스에게 ‘정당한 제안’을 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지….’

만약에, 만약에 정말 게르마니쿠스가 엘베 강 유역을 포기한다면.

그건 정치적으로 큰 타격이리라.

게르마니쿠스는 몰락하리라.

사람들은 생각보다 감성적이다.

로마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을 할 것이다.

영토를 포기한 게르마니쿠스와 그들의 비겁한 세 개의 군단.

‘루키우스, 내게 말해 줘.’

그런 불명예를 지고 살아가야 하나?

포스투무스가 그때 걸음을 멈추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옳은 거지?”

신음을 흘리며 포스투무스가 얼굴을 감쌌다.

‘아, 로마! 영광스러운 나의 조국….’

그리고 그때 들려온 목소리였다.

“장군.”

포스투무스가 눈을 번쩍 떴다.

고개를 돌린 그가 뒤늦게 제가 사령관의 막사에 이른 것을 깨닫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병사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령관께서 부르십니다.”

포스투무스의 얼굴에 긴장이 퍼져 나갔다.

*

독수리가 그려진 군단기, 벡실라리움10)이 펄럭거렸다.

낮게 울리는 사내의 목소리가 천막 안에 퍼져 나갔다.

“진격을 포기한다.”

포스투무스가 절규했다.

“임페라토르!”11)

게르마니쿠스의 푸른 눈이 어두운 막사 안에서 번뜩거렸다

“정신 차려!”

그는 저를 향해 성큼거리며 다가온 포스투무스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글거리는 눈이 맹수와 같다. 포스투무스는 숨을 떨며 그를 노려보았다.

시선이 허공에 맞부딪쳐 불꽃을 튀긴다.

게르마니쿠스의 입술 밖으로 그르렁대는 목소리가 흘렀다.

“현실적으로 엘베 강 이서를 차지할 방법이 없어! 경계선을 무너트려도 그들은 탈환할 거다. 어떻게 저곳을 지키려 그러는 거지?”

그는 손아귀에 쥔 포스투무스의 멱살을 냉정하게 털어내곤 차갑게 말했다.

“쓸데없는 피를 흘리지 않아.”

포스투무스가 숨을 헐떡거렸다.

“게르마니쿠스.”

게르마니쿠스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이글거리는 눈이 그를 향했다.

“당신은 로마를 배반했습니다!”

- 군디카리우스의 추락

“아무리 오래되고 뿌리 깊은 나무라 한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법.”

드루이드 효르디스가 지문과 주름이 구분이 되지 않는 쪼글쪼글한 손바닥을 보여주며 담담히 말했다.

“우리 또한 그러하다, 군나르.”

군나르가 조용히 말했다.

“극복할 방도를 알려 주십시오.”

효르디스가 답했다.

“극복할 방도는 없다.”

군나르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효르디스!”

“너는 썩어 문드러져 가는 갈대를 다시 푸르게 만들 수 있느냐? 너는 땅에 떨어진 잎사귀를 가지에 다시 붙일 수 있느냐? 이 잿더미를 다시 붉게 만들 수 있겠느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군나르가 효르디스 앞에 있는 모닥불을 향해 다가갔다. 회색 잿더미 위에 손을 놓고 칼로 손바닥을 그었다.

피가 떨어져 회백색 가루를 붉게 물들였다.

담담한 말이 이어졌다.

“노력하고, 노력할 뿐입니다.”

불꽃이 그 사내의 눈에 있었다.

효르디스가 탄식을 흘렸다.

“아, 군나르!”

*

마르코마니족의 왕, 군나르.

현명하고, 담대하며, 강인하고, 신중하다.

타고나길, 지도자의 자질이었던 사내는 불운하게도 시기를 잘못 만났다.

그 사내는 민족의 몰락을 두고 봐야 했다.

일족의 정신적 지도자는 군나르에게만 몰래 그들의 미래를 알려 주었다.

“언젠가 우리는 로마에 멸망할 거다.”

그것은 종교적인 예언이었고, 정치적인 예견이었다

“일족과 함께 화려하게, 또 아름답게 불타올라라.”

그리하여 그녀는 군나르에게 몰락을 준비하라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군나르는 그 말에 고개를 절레 저었다.

“아니요, 효르디스. 나는 막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생을 싸워왔다!

분열된 게르만족.

로마에 매수된 민족의 배반자와 싸워 왔고, 왕위를 쟁탈하기 위한 싸움에 끼어들었다.

돈과 권력을 움켜쥐었다.

결전을 위해.

로마와의 투쟁을 위해.

군나르는 일대의 게르만족을 통합했고 그들의 왕이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벌어진 전투에서, 군나르는 견뎠다.

몰락 직전의 마르코마니족과 게르마니아의 수많은 부족들은 멸망을 유예받았다.

부족의 전사들은 그에 기뻐했으나 군나르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이제야 숨을 돌릴 수 있겠군.’

그것이 감상의 전부였다.

군나르는 그것이 로마의 저력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돌파구를 고뇌했다.

단기간의 평화를 넘어선 결과를 바랐다.

그리하여 그들의 임페라토르를 설득하기로 했다.

적의 점령지로 홀로 찾아가는 무모한 일.

그것은 사실 오랫동안 창과 검을 맞댄 적수에 대한 신용에 의한 결정이었다.

“그들의 사령관은 멍청하지 않습니다. 엘베 강 유역을 사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지 않고 있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느냐.”

“그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원로의 의문을 군나르는 담담한 말로 풀어주었다.

“그는 엘베 강을 넘어 우리를 쫓아내고 땅을 불태우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망설이고 있는 겁니다. 그 방법으로도 영토를 지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엘베 강 이서 지역은 사수하기 어려운 지형입니다. 그는 타협을 원합니다.”

“너는 책임질 수 있느냐? 나는 차라리 그를 암살하길 원한다. 그것이야말로 확실한 길이 아니냐.”

“그를 암살한다면 로마는 토이토부르크 전투 이상으로 분노하여 보복할 것입니다. 내게 맡기십시오. 만일 실패한다면 죽음으로 사죄하겠습니다.”

때로는 말보다 검이 더욱 큰 말을 할 때가 있다.

게르마니쿠스는 군나르의 맞수였다.

그들은 로마와 게르마니아 양측에서 함께 이름이 거론되며 서로를 맞수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전투.

그곳에서 두 사람은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그 대신 군나르는 그를 알아갔다.

평생을 전장에 몸을 담은 일족의 우두머리는 직접 상대한 적에게서 현명함을 읽었다.

그리고 숭고함 또한.

그리하여 게르마니쿠스를 홀로 찾아갔다.

게르마니쿠스는 기꺼이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의 말에 공감했다.

“만약 그대가 나의 클리엔테스가 된다면, 그 말을 받아들이겠소.”

게르마니쿠스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대에게 결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오. 파트로누스와 클리엔테스의 관계는 결코 주인과 노예가 아니오.12) 당신들이 어떤 오해를 하는지 알고 있지. 오해를 풀기를 바라오.”

“그대들의 문화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신중한 사내의 태도에 군나르는 정중히 묵례를 하여 답변을 했다.

“그대가 임페라토르라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게르마니쿠스.”

그는 군나르의 생각과 같은 사내였다.

신중하고, 현명하고, 명예로웠다.

결코 무모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와 같은 사내를 일전에 군나르는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적이 아니었다면 친구가 되었을 텐데.’

아쉬움을 삼킨 군나르가 회상에서 깨어났다.

똑같이 넋을 잃고 있던 게르마니쿠스의 어깨를 부여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게르마니쿠스.”

고동색 짧은 머리카락. 군인다운 사내의 바위처럼 단단한 얼굴이 군나르를 향했다. 군나르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무슨 생각을 했지?”

게르마니쿠스가 어깨를 쥔 손을 흘끗 바라보았다. 군나르는 그럼에도 어깨를 쥔 손을 떼지 않았다. 게르마니쿠스가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네가 올 때를.”

그는 어쩐지 꿈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말을 했다.

게르마니쿠스는 그를 잠시간 바라보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무슨 까닭으로 혈혈단신으로 로마군을 찾았던 거지?”

군나르가 웃었다.

‘무슨 까닭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질문은 군나르에게 있어서 정말로 어리석은 말이었으니까.

잠시 후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사투.”

짤막한 두 마디의 말이 그의 모든 인생을 축약했다.

무모하게 로마군의 점령지로 숨어 들어간 일을 설명했다. 군나르가 조용한 눈으로 게르마니쿠스를 바라보았다. 감정을 읽기 힘든 사내의 단단한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의 추락은 예견된 것이다.’

허나 포기할 수 없는 목표가 있다.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사수하라.’

그것은 군나르의 숙명이었다….

게르마니쿠스는 어깨를 움켜쥔 사내의 손을 부여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내 부관이 나를 보고 배신자라고 하더군.”

시린 불꽃 같은 눈이 그를 담았다.

군나르가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네 말에 현혹되어 로마인의 기치를 잃어버렸다 했어.”

게르마니쿠스의 무표정한 얼굴을 군나르는 지그시 바라보았다.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그것이 평범한 로마인의 반응일지 모르겠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르카디우스의 말이 옳을지도 몰라.”

현명한 게르마니쿠스 또한 그리 생각하는 듯했다.

“어쩌면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지. 내가 네 말에 홀려 매국을 하는지도 모르겠군.”

군나르가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당장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이 길이야.”

군나르는 제 손을 조이는 거센 손의 악력을 느꼈다. 그 순간 뜨거운 눈이 불타고 있었다.

“그럼 망설이지 않는다.”

군나르가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내는 불꽃같구나.’

게르마니쿠스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불필요한 학살이 지속되지. 그러면서도 영토를 지킬 수 없다. 엘베 강 이서 지역의 원정은 무용한 것이다. 나는 가지 않아. 지금 점령한 영토를 내 클리엔테스인 네게 내어 주고 이곳을 완충지로 삼는다. 그게 내 전략이야. 만일 이 판단이 틀렸다고 한다면 책임은 임페라토르인 내가 진다. 병사들이 지게 하지 않아.”

숨을 들이켜고 그는 말을 내뱉었다.

“그들의 피를 대가로 삼지 않는다.”

군나르가 조용히 말했다.

“그대는 훌륭한 지휘관입니다.”

그건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만약에 우리가 같은 민족이었다면 나는 그대를 따랐을 겁니다.”

게르마니쿠스는 그 말에 군나르를 잠시간 바라보다가 말을 내뱉었다.

“아니, 나는 네가 나를 따르길 원하지 않아.”

군나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그때 게르마니쿠스가 군나르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놀란 그가 눈을 크게 뜰 때였다.

“그것보다는 나는 그대와 교분을 쌓고 싶군. 괜찮다면 그대를 친구라 불러도 되겠나?”

그 순간 군나르의 숨이 멈췄다.

크게 떠진 그의 눈을 게르마니쿠스가 자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군나르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무얼 더 고민하겠는가?

군나르가 웃으며 게르마니쿠스의 손을 부여잡았다.

“그것은 나의 영광입니다!”

- 국가의 불명예

임페리움의 주인13)이 마르코마니의 왕과 협정을 체결했다.

라인 강과 엘베 강 사이의 지역을 완충지대로.

로마로부터 봉토를 하사받은 마르코마니의 왕이 클리엔테스가 되어라.

그렇다면 라인 강을 경계로 로마의 국경을 확정 짓겠노라.

협상이 끝나고 포스투무스가 말했다.

“이것은 국가의 불명예입니다.”

그러자 게르마니쿠스가 답했다.

“국가가 아니라 너와 나의, 우리의 불명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된 불명예다. 우리는 불명예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상관할 필요는 없다.”

포스투무스가 말했다.

“궤변입니다.”

게르마니쿠스가 물었다.

“무얼 원하지, 포스투무스? 군인에게는 국가보다 중요한 게 없다. 나는 조국을 위했고, 나의 군단병을 위했다. 더 필요한 게 있더냐?”

포스트무스가 답했다.

“위대함! 조국의 영광.”

그러자 게르마니쿠스가 비웃었다.

“너는 공명을 원하는군! 엘베 강 유역을 사수할 수는 없다. 찰나 간 빛나고 스러져 버릴 영광을 위해 조국을 위태롭게 만들고 싶더냐?”

포스투무스는 분노하여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나약함을 현란한 말솜씨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게르마니쿠스가 그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 나에겐 현란한 말솜씨가 없다. 네가 다른 것을 원하는 거겠지.”

포스투무스가 격렬히 소리쳤다.

“저는 다른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당신을 보좌하여 로마의 역사를 써 내려갈 뿐입니다!”

게르마니쿠스가 윽박질렀다.

“아니, 너는 개선식을 원하고 있어!”

포스투무스가 그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 저는 조국의 영광을 원할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행동의 근원은 오로지 로마입니다.”

게르마니쿠스가 냉소를 흘렸다.

“너 자신을 속이지 마라. 너는 이미 엘베 강 이서 지역이 사수 못 할 곳이란 걸 알고 있다.”

포스투무스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땅을 불태우고 사람을 죽이십시오! 당신이 당신의 나약함에 의해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내십시오.”

게르마니쿠스가 격노하여 소리쳤다.

“나약함이 아닌 양심이다! 동정이다! 온정이다! 사람으로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이다.”

포스투무스가 그를 조롱했다.

“군인의 나약함을 그리 칭하지 마십시오.”

게르마니쿠스가 폭발하여 그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그럼 네 강인함이 어떤지 내게 말해 봐라. 사방이 트인 엘베 강 이서 지역을 불태우고 난 후에 네가 어떻게 그 지역을 사수할 수 있을지 말하라. 사방에서 쏟아져 오는 게르만족들을 어떻게 막을 거냐? 요새가 없는 그곳에서 어떻게 견딜 수가 있을 거냐? 도로가 없는 그곳에서, 보급이 안정치 않은 그 야만의 땅에서 네가 어떻게 엘베 강을 사수할 수 있을 거냐. 네가, 네 로마가 불굴의 강인함으로 그것을 사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포스투무스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빼앗기면 다시 찾으면 됩니다! 다시 죽고, 죽이고, 죽여서….”

“완전히 미쳤군!”

“아뇨, 저는 국가에 충성할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반역자입니다!”

게르마니쿠스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말해 봐.”

포스투무스가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반역자!”

게르마니쿠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까드득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렸다. 청년은 두려워하지 않고 게르마니쿠스를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았다.

게르마니쿠스가 들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포스투무스 아르카디우스 풀케르.”

두 눈에는 화염이 들끓고 있었다.

“네 말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다른 사람들이 필히 두려워할 사내의 시선을 포스투무스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받았다.

“당신이 보유한 그 임페리움14)으로 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다 하더라도 말을 물리지 않을 겁니다.”

포스투무스가 언성을 높였다.

“유피테르에 맹세코 당신을 고발할 겁니다. 마르스에 맹세코 국가의 불명예를 막을 겁니다.”

게르마니쿠스가 날카롭게 웃었다.

그는 포스투무스의 어깨를 밀치곤 윽박질렀다.

“그렇게 해 봐.”

비웃음이 섞인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네가 뭘 할 수 있지? 임페라토르는 나다!”

저를 조롱하는 사내를 포스투무스는 불타는 눈으로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곤 힘주어 말을 내뱉었다.

“막을 겁니다, 국가의 불명예를.”

게르마니쿠스가 코웃음을 치며 자리를 떠났다.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은 사내가 빈 공간에 홀로 남아 중얼거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허한 두 눈이 허공을 배회했다.

포스투무스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아! 루키우스. 나는 옳고 그름을 신중히 판단할 수 없구나. 그저 옳다고 판단한 길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너는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니?’

힘없는 말이 사람들이 모두 떠난 협상장을 울렸다.

“내 개선식이 네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을까?”

타오르는 얼음과도 같은 눈을 지닌 사내가 차가운 얼굴로 걸음을 이어 나갔다.

‘국가의 불명예.’

불쾌한 말을 곱씹던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걸 불명예라 칭하나?’

그것은 부당하다!

온당치 않다.

다시금 본래의 얼굴을 되찾은 사내가 묵묵히 숲길을 걸었다. 어둠 속으로 사라져 혼란한 마음을 다스렸다.

‘로마, 나의 조국이여!’

같은 시각, 협상장.

“아르카디우스 장군.”

코르넬리우스가 말을 내뱉었다.

포스투무스 아르카디우스 풀케르가 눈을 감았다.

“어쩔 수 없구나.”

모든 것은 조국을 위해.

눈을 뜨고 포스투무스가 말을 내뱉었다.

“가자, 국가의 불명예를 막자!”

두 눈에는 화염이 불타올랐다.

- 국가의 영광

어느 날이었다.

“제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포스투무스가 한 팔을 앞에 들고 군례를 했다. 게르마니쿠스가 무뚝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임페리움의 주인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하였습니다.”

그날은 연회가 있는 날이었다. 게르마니쿠스는 로마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마르코마니의 왕성에 초대를 받았다. 그들의 연회에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속죄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런 게르마니쿠스가 그들의 영지로 떠나기 직전 포스투무스가 다가와 그에게 말을 내뱉었던 것이다.

“장군을 호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대로는 불안합니다.”

포스투무스의 단단한 얼굴을 잠시간 바라보던 게르마니쿠스가 입술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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