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3)

‘너는 왜 내게 그리 말하는 거지?’

‘그대, 살아라. 살아서 피 흘리고 죽어간 나를 지켜본 불명예를 씻어라.’

‘나는,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침통함이 절절히 드러나는 목소리로 답할 뿐이었다.

‘어째서?’

아직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째서 그가 죽기 직전에 그런 말을 남겼는지. 어째서 저를 원망하긴커녕 입술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저를 바라보았는지.

“헉, 허억.”

그는 그저 봄날의 훈풍 같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고, 그렇게 답은 미궁 속에 갇혀 버렸다. 아케론은 그의 도움 없이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케론은 그의 유언을 따라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그에게 마지막 남은 알량한 양심이었으므로. 양어깨에 내려앉은 죄의 무게에 짓눌려 그는 사내의 유언만큼은 이루고자 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따르는 지금 이 순간 아케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저 자신마저 태우려 드는 자기파멸적인 불꽃에 휩싸여 그는 이를 악물고 형형한 눈으로 눈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분노는 말을 하고 있다.

돌아서, 당장 저 자리로 가 불명예를 씻어!

네가 방관한 그 모든 수치스러운 일을 목숨으로 씻어내. 네 도망이 불러일으킬 네 영혼의 훼손을 두려워해라. 너는 로마의 게르마니쿠스다……. 결코 겁쟁이의 마음으로 평생을 살지 않아 왔다.

그건 게르마니쿠스가 살아왔던 방식이다.

허나 귓가에 들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는 종용하고 있었다.

‘살아라, 게르마니쿠스.’

뿌드득,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제기랄!’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

일그러진 아케론의 얼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격정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혈통으로 계승 받은 숙명을 따르며 살았다. 로마인으로서의 책무를 뼈에 새기곤 명예로운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죽음을 피해 도망치는 그 순간, 불명예스러운 도주의 길을 걷는 자리에서 아케론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너는 내게 이토록 잔인한 말을 했던가?

“후욱, 큭.”

피가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고 아케론이 나무뿌리에 미끄러졌다. 휘청거리는 몸이 진흙탕에 처박히고 아케론이 숨을 헐떡거렸다.

그리고 깨닫게 된 현실.

‘이게 네 보복이었나?’

명예를 저버린 자가 편안한 삶을 살 수는 없는 법이지!

웃음소리가 흘렀다.

달빛이 사내의 피로 물든 몸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클라데스 바이아나, 절망의 숲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절하고 비통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상처투성이인 몸에 진흙이 닿아 쓰라리다. 고통을 삼키며 아케론은 무너진 몸을 바로 일으키려 했으나 미끄러지는 신발에 진창에 잠시간 허우적거려야만 했다. 결국 신발을 버리고 굳은살 박인 맨발로 풀을 밟은 아케론이 숨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새하얀 달이, 믿을 수 없을 만치 커다란 보름달이 환상처럼 우미(優美)한 빛을 흘리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달래듯 부드러운 빛을 뿜는 달을 바라보며, 아케론이 허탈하게 웃었다.

저 달은 희망의 징표인가 아니면 파멸의 계시인가?

*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숙명을 타고나지.”

다시금 과거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 목소리였다.

속삭이듯이 하는 말에 아케론은 감던 눈을 스륵 열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팔을 베고 누운 루키우스가 구름이 걷힌 화사한 달같이 빛나는 얼굴로 느릿하게 말을 잇고 있었다.

“개개인의 운명도 운명이지만, 조금 더 깊은 단계가 있다. 살면서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의무 말이다……. 사람들은 그걸 숙명이라 부르더군.”

달싹거리며 움직이는 분홍색 입술을, 그 사이 가지런한 새하얀 이에서 아케론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루키우스는 아케론의 단단한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색색 숨을 내뱉고 있었다. 아케론은 문득 그 깨끗한 숨결을 빨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달콤한 목소리는….

“로마인의 숙명은, 칼처럼 강건해지는 것이다.”

저를 향해 반짝거리는 보라색 눈을 바라보며 아케론이 느릿하게 숨을 내뱉었다.

부드러운 금발이 강인한 팔 위에 흐트러지는 때. 아직 겨울이 되기엔 한참의 시간이 남았음에도, 청년은 한겨울 삭막한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처럼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잇고 있다.

“부강한 나라를 위한 철과 같은 사내. 로마는 강인한 육신과 명석한 지혜를 지닌 철인을 원하지.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아케론…… 나는 그럴 수가 없었어, 불운하게도. 나는 병신 같은 몸을 지니고 태어나 버렸으니까. 그래서 어머니랑 아버지를 실망시키고야 말았다.”

어찌하여, 이 철없는 어린것은 일흔이 넘은 노인처럼 노회해 보이는가.

건조해지는 입 안에 마른침을 삼키고 아케론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흘끗 바라보았다. 해안에서는 새하얀 달이 다른 곳보다 더욱 크게 보였다. 흔들리는 사과나무 가지 위에 걸린 달을 노려보던 아케론이 다시 고개를 돌려 제 겨드랑이 사이를 강아지처럼 파고드는 금발의 미청년을 응시했다.

“당신의 병약함과 방탕한 행동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리고 침묵 끝에 아케론은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는 저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할 만큼 날카롭게 예민하게 굴고 있었다. 루키우스를 노려보는 눈은 무감정했고, 또 적대적이었다.

“내 부모는 숙명을 아는 자였다, 아케론.”

루키우스는 얕은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약한 로마인 따위, 내 어머니는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어.”

아케론의 입술 끝이 딱딱하게 굳어져 가고 있었다.

“내가 일곱 살 때, 어머니는 병약한 나를 죽이려 절벽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고, 나의 형제는 그를 방관했지.”

루키우스는 고개를 살짝 돌려 아케론을 바라보았다. 아케론은 가까이에 흐르는 그의 깨끗하고 따스한 숨결에 미간을 찌푸리고야 말았다.

사람을 홀리는 자안을 경계한 것이다. 그는 루키우스의 두 눈과 마주할 때 가끔 그것을 뽑고 싶다는 욕망을 강렬히 느꼈다.

느릿한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날 절벽에서 천운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로마인답게 전장에서 승전보를 알리고 돌아온 어느 장군 때문이었지. 절벽 위에서 나를 던지려던 어머니는 13년 만에 열린 개선식을 목격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뛰쳐나갔으니까.”

그 순간 사내의 얼굴이 돌연 굳어졌다.

루키우스의 앳된 얼굴에 평소에 그답지 않은 서늘한 냉소가 흘렀다.

“무슨 상관이냐고?”

루키우스의 입술 밖으로 흐른 맑은 웃음을 들으며 아케론은 그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몸에는 근육이 도드라져 있었다. 숨은 거칠어져 있었고.

루키우스는 아케론의 팔뚝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두 눈을 푸르게 빛냈다.

“나는, 그런 숙명을 안고 사는, 로마인을 증오할 뿐이다!”

그 말을 내뱉을 때, 루키우스의 얼굴엔 서슬 퍼런 기세가 서려 있었다.

“더럽힐 거야.”

또렷한 목소리에 아케론이 몸을 굳힌다.

“아케론, 아케론…… 나는 다리를 벌리고 남근을 받으며 절벽에서 날 떨어트리려 한 어머니를 더럽힐 거다. 네 입술을 빨며 자비를 간청하며 날 경멸한 아버지를 더럽힐 거다. 노예의 거친 발등에 입을 맞추며 날 배제한 형제를 더럽힐 거야…….”

루키우스는 어느 순간 아케론마저 무시 못 할 악력으로 팔뚝을 쥐고 있었다. 두 눈에 시퍼런 불길을 품은 채 루키우스가 아케론을 향해 희디흰 미소를 짓는다. 굳은 사내의 얼굴을 노려보며 그가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은 말을 연이어 흩뿌렸다.

“그렇게 어머니의 로마를, 아버지의 로마를, 형의 로마를 망가트릴 거다. 로마인이 가장 혐오하는 존재가 되어, 아버지의 명예로운 씨족과 어머니의 영광스러운 가문을 더럽힐 오명이 되어서 말이지.”

루키우스의 얼굴은 감정이 거세되고, 목소리는 차갑게 변해 있었다.

“그렇게 나를 증오하는 로마를 증오하며 내 숙명을 벗어던지고, 지극히 명예롭지 않은 방식으로 죽어 버리리라!”

신탁을 내뱉듯 장엄한 목소리로 내뱉은 말에 아케론이 숨을 멈추고야 만다.

‘이자….’

적막이 흘렀다.

말을 마친 루키우스가 아케론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뺐다. 힘없이 늘어지는 그의 손을 아케론은 일그러진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은 차가웠으며, 또 무거웠다.

루키우스는 거짓말처럼 다시 권태로운 얼굴을 되찾고 아케론의 가슴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이게 내 다짐이고, 각오다. 영광스러운 가문의 오점으로 남을 나의 숙명 말이야.”

“…….”

“어때? 아케론. 네가 원하던…… 내 진심을, 나는 거짓 없이 말했다.”

“…….”

“이제 네 소감을 말해줄 차례구나, 아케론.”

맑은 웃음이 귓가를 어지럽혔다.

루키우스는 그의 입술 위에서 리라를 켜듯 손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검지를 입술 위로 문지르며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루키우스를 아케론이 음울한 눈으로 응시했다.

“내게 말을 해 줘……. 아케론, 내 각오가 어떤지 내게 말을 해다오. 네 입술로, 내게 품평을 해봐.”

힘주어 눌러진 손가락이 아케론의 입을 슬쩍 벌린 순간 부드러운 웃음이 흘렀다. 그 순간 별처럼 빛나는 루키우스의 눈을 바라보며 아케론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어떤지, 네 입으로 말을 해다오.”

이 어둠은 내가 가늠할 수 없을 만치 깊겠구나.

순수함을 가장한 웃음에 서린 처연한 빛을, 그 희미하게 묻어 나오는 슬픔을 읽었다.

그의 깊은 두 눈 속 보이는 암울함을 응시하며 아케론이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추악하군.”

“…….”

“…믿기 힘들 만치.”

“…….”

“추악합니다.”

별처럼 반짝이는 빛이 가득한 보라색 자안, 고요한 바다같이 넓고 푸른 눈을 응시하고 있다. 아케론은 제가 그를 연민했다는 사실을 무뚝뚝한 얼굴로 숨기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치고 있었다.

그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흘렀다.

“당신은 로마와 어울리지 않아.”

그 말에 루키우스는 한 치의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맑은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우습구나. 아케론…… 추악함은 로마인의 미덕인 것을.”

그러곤 그는 몸을 들어 올려 아케론의 입술 위에 꾹 입술을 눌렀다.

서툴게 입술을 빠는 몸짓은 단조로웠으나 그렇기에 더욱 흥분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 엉성한 키스를 받던 아케론이 어느 순간 루키우스의 어깨를 퍽 밀치고 그의 위를 덮치듯 올라탔다.

루키우스는 가냘픈 교성을 흘렸고, 어김없이 아케론은 그에 빠져들고야 말았다.

*

아케론은 저택에서의 날들에 익숙해져 갔다.

루키우스의 몸을 끌어안고 밤을 지새우곤, 그가 주는 달콤한 설탕 과자를 받아먹곤, 추위에 떠는 그의 몸에 망토를 걸쳐 주곤, 하품을 하는 그에게 어깨를 빌려주면서 그의 연약함에 눈길을 주는 날들에.

어느덧 1년 중 가장 더울 때인 8월이 지나고 있었다.

초가을의 쌀쌀한 바람이 불고, 한창의 더위가 가실 때가 되어서야 아케론은 시간의 흐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발코니에 서 절벽 아래 해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케론은 휘몰아치는 파도, 흐트러지는 새하얀 포말에서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선 채 발코니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참을.

*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구름이 없는 맑은 날의 일이었다.

“오늘은 편히 쉬시랍니다.”

“…….”

그날 루키우스는 아케론을 부르지 않았다.

노예의 말에 아케론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그가 사라지고, 아케론은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적고, 잠시간 창밖을 바라보다가 별채 밖으로 나섰다.

그러곤 그는 시원한 바람이 감도는 내원을 걸었다. 홀로 별을 헤며 사상에 잠기는 철학가를 흉내 낼 생각은 없었으나, 저택의 전경은 몹시 아름다워 보는 이의 마음을 진정시키기엔 충분했다.

인공적인 느낌보다는 자연스럽고 시원한 느낌이 강한 뜰이다. 아케론은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내원을 걷곤 했었다. 그리고 그날 아케론은 문득 바다를 보고 싶다는 마음에 발코니로 향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밤의 발코니는 바다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케론은 귓전을 울리는 시원한 파도 소리에 취해 한참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움직이지 못했다.

난간을 쥔 손이 추위로 얼어붙을 때까지 바람을 맞던 아케론은, 이윽고 몸을 돌려 별채로 향했다.

그날은 유독 추운 날인지라 아케론은 회랑을 밟지 않았다. 그곳은 바람이 유독 세게 몰아쳐 밤이면 외풍이 불었으므로. 별채 뒤쪽으로 이어진 식당으로 향하는 길을 밟아 그는 찬바람을 피하려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

별채의 뒤편, 으슥한 그늘이 진 구석 자리의 수풀을 밟던 아케론이 몸을 멈칫한다. 코너를 꺾으려던 중에 문득 발밑에 드리운 불그림자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든 아케론은 순간 무언가를 발견하고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그 은은한 호박색 불빛은 달빛도 별빛도 아닌 바로 등불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이 시간에 등불이라고?

아케론의 얼굴이 미묘해진다.

등불을 태우는 기름은 귀하다. 부엌에서 쓰는 것과 달리 악취가 나지 않는 고급품을 쓰기에, 등불은 기름이 많은 해안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고급품이었다. 아케론이 일전에 제 방에 있던 등불에 놀라움을 드러냈던 것도 그러한 맥락이었다.

그리고 저택에서 그것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뿐이다.

‘루키우스.’

아케론의 군청색 눈이 침착하게 가라앉는다.

불빛이 퍼져나오는 곳은, 별채를 조금 더 지난 샛길 방들이 나열된 외채의 벽이 있는 장소였다. 바로 루키우스가 사용하는 방 앞.

그리고 그를 깨달을 순간 아케론은 불빛에 홀린 부나방처럼 그 빛을 따라가고야 말았다.

마치 마법에 홀린 사람처럼, 아케론은 발걸음을 옮기고 불빛이 흘러나오는 창문 앞에 우뚝 서고야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루키우스의 방이었다. 아케론은 저도 모르게 기척을 죽이며 창문을 향해 다가가고야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창문 앞에서 멈추어 선 순간 아케론은 숨을 멈추고야 말았다. 몸이 얼어붙고, 두 눈이 크게 떠지고야 만다.

창문에 반쯤 처진 휘장 사이로 은밀하게 보이는 황금색의 금발을 발견한 것이었다.

잠시간 깊은 적막이 흘렀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주황색 등불을 받아 따뜻한 색으로 빛나는 금발이 눈에 띄고 있었다. 아케론은 그 순간 멍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루키우스.

그의 주인은 아케론이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짙푸른 색 휘장으로 가리어진 탓에 그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그가 무얼 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루키우스는 장부를 정리하는 듯 깃펜을 들고 무언가를 끼적거리는 중이었다.

펜을 움직이는 그의 얼굴에는 진중함이 가득했다.

세상일에 무관심한 듯 권태로운 얼굴도, 밤에는 두 뺨에 장밋빛 홍조를 띤 음란한 얼굴도 아닌, 한 부유한 저택의 가장다운 진중함을 드러내는 그 얼굴이 낯설다.

그 순간 아케론은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루키우스가 저런 얼굴도 할 줄 알았나?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혹은 환상을 보는 듯했고.

루키우스의 아래로 내리깔린 자안은 침착하고, 또 신비로웠다.

앳된 기가 남아 있던 얼굴에 드러나는 성숙함.

호박색 불꽃이 드리워진 얼굴은 사상에 몰두하는 철학가의 것같이 강한 집념이 묻어 나왔고, 또한 성스러운 불꽃에 예배를 드리는 신녀와 같이 경건했다.

묵상하는 사람처럼 그 어느 생각에 사로잡힌 얼굴에서 아케론은 한참을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니까 루키우스의 얼굴은, 그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종류의 매력을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둠을 은은히 밝히는 등불처럼 마음속에 퍼져나가는 기이한 마음. 그에 아케론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아케론은 그의 이질적인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했고, 그리하여 그 모습을 훑어보느라 시간을 맥없이 흘려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순간의 일이었다.

돌연 발코니 쪽에서 바람이 불어 왔다. 팔리움이 흐트러져 내리고, 옷이 살갗에 스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리고야 만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아케론이 발목을 스치는 나뭇잎을 확인하고 다시 시선을 창가로 돌렸다. 그리고 그는 순간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린 루키우스와 눈을 마주한 것이었다.

입술 밖으로 자그마한 신음이 흐른 순간 담아한 자안이 휘장 사이로 빛나고 있었다.

별빛을 담은 두 눈과 마주하고 있다.

아케론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순간을 견딜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강렬한 느낌에 휩싸여 아케론이 숨을 멈췄다. 눈은 별보라처럼 휘날려 그의 몸을 휘감았고, 아케론은 영혼이 빼앗기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시간은 길게, 아니 사실은 찰나 간 흘렀고, 그리하여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케론은 순간 겁쟁이의 방법을 택하고야 말았다.

그것은 바로 도주였다.

몸을 부르르 떤 아케론이 창백한 얼굴로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빠져나왔다. 아니 그는 거의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숨이 헐떡거리고, 창백한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성큼거리는 걸음걸이의 보폭은 몹시 넓었다.

샛길에서 별채로 돌아오는 그 짧은 거리가 왜 이리도 길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 부수듯 별채의 문을 열어젖히며 우당탕 안으로 들어선 아케론이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격정에 휘말린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무너트려 의자에 걸터앉곤, 아케론은 등받이에 몸을 기댄 자세 그대로 한참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두 눈은 영혼이 빠져나간 공허한 것과 같았다.

아니 사실 아케론의 영혼은 그가 도주한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시간이 흐르고 난 후의 일이었다.

허억!

아케론이 막힌 숨을 토해 낸다.

불안정한 사내의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빈자리 그 어느 곳을 노려보는 군청색 눈에 혼란함이 스며들다가 사라지고, 공허한 웃음이 허공을 울렸다.

그날 아케론은 결국 새벽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밤을 새우고야 말았다.

*

짹짹.

맑은 새소리가 들렸다.

‘……제길.’

평소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 자연 이부자리를 정리했을 아케론은, 그날 눈을 내리쬐는 햇볕에 눈을 뜨고도 한참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손바닥으로 눈을 꾹꾹 누르던 그는 꽤나 시간이 흘러서야 저가 어제 밤을 설쳤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미간을 찡그린 아케론이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고 숨을 멈추고야 말았다.

오후다.

‘이런, 미친…!’

그 순간 그의 얼굴에 핏기가 빠르게 가시고 있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아케론이 침대 아래를 밟고 빠르게 튜니카를 걸쳐 입었다.

“젠장, 젠장.”

욕설을 입 안에 연신 중얼거리는 그의 얼굴은 어느 순간부터 와그작 일그러진 상태였다.

루키우스의 잠자리를 데우는 침실 노예라, 사실상 하는 일이 없었음에도 그는 늦잠을 잔 적이 없었다. 성인이 된 이후, 아니 그 전에도 이렇게 태만한 적이 없었다. 로마인 중에서도 특히나 준엄한 성격이었던 아버지는 군대의 엄격함을 가정에도 적용하곤 했으니까.

그리하여 아케론은 말을 탈 수 있는 나이부터 자비 없는 매질을 당하지 않으려 규칙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아케론의 등에는 일곱 살 때 늦잠을 자고 아비에게 매질 당한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러니 아케론은 해가 머리 위에 뜬 시간에 눈을 뜬 저 자신에 당황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어째서 노예는 제게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 알리지 않았지?

저택에 온 후로 항상 루키우스와 식사를 같이했다. 아무리 제가 늦게 일어난다 해도 노예가 시간을 알리러 왔을 터인데….

아케론의 미간이 좁혀진다.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깨진 루틴에 졸음은 가시지 않았다. 비몽사몽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아케론은 황급히 옷을 껴입고 아트리움으로 나섰다.

“조심해서 들여라.”

외원으로 향하니 새까만 머리카락에 새하얀 새치가 드문드문하게 보이는 저택의 집사가 눈에 보였다. 그는 거실 한가운데 자리한 항아리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끼적이고 있었다. 장부를 정리하고 있는 듯한 집사, 솔론을 향해 아케론이 목소리를 높여 말을 걸었다.

“주인님은 어디 계시나?”

“방 안에 계십….”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케론은 빠르게 익숙한 장소로 향했다.

다급한 몸짓에 장부를 정리하던 집사가 ‘응?’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는 헐레벌떡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아케론의 뒷모습을 마주하곤 고개를 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주인님, 단단히 화가 나신 것 같던데.’

입술 밖으로 톡 튀어나오는 말을 쑤셔 넣고 집사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장부를 정리하는 일에 힘을 썼다. 솔론은 저택을 총괄했으나, 그것만큼은 그가 관장하는 영역이 아니었으므로.

그런 그를 뒤로하고 아케론은 나열된 방 중 가장 높은 단상 위에 자리한 방 안에 들어서고 있었다.

‘루키우스.’

초조함이 드러나는 얼굴로 아케론이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의 방은 이제는 눈을 감아도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아케론은 빠르게 그의 방 코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남푸른색 천막을 걷자 적당히 부드러운 달콤한 냄새가 흐른다. 코끝을 스치는 향기에 아케론이 굳은 얼굴을 조금은 풀고 느릿하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들려온 자그마한 목소리였다.

“내게 허락은 받아야지?”

샌들이 방바닥을 밟기 전에 목소리.

그 순간 방 안에 들어서던 발걸음을 멈추며 아케론이 몸을 우뚝 세운다. 침묵 끝에 머뭇거리는 말이 흘렀다.

“…들어가겠습니다.”

그러곤 그는 천막을 걷어 젖히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을 들어서니 먼저 간단한 새하얀 침상이 보였다. 무화과나무가 흔들리는 풍경이 보이는 창문 또한 눈에 들어왔다. 방 안에는 아무도 자리하지 않았으나 아케론은 귓가에 사각대는 소리에 루키우스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아케론이 방 바로 오른편, 옅은 하늘색 베일에 가려진 또 다른 쪽방을 흘끗 바라보았다.

반투명한 베일 너머로, 책상 앞에 자리한 주홍빛 금발의 청년이 엿보였다.

루키우스는 햇볕이 내리쬐는 탁상 앞에 앉아 갈잎 펜을 손에 들고 양피지 위에 무언가 글자를 끼적거리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모습이다.

하늘하늘한 베일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그 사이로 슬그머니 드러난 루키우스의 얼굴에 아케론은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고야 말았다. 밤중에 경건하고 엄숙했던 루키우스의 모습은 태양 볕이 부스러지는 한낮에는 사뭇 달랐다.

그는 찬란히 빛나는 것만 같았다.

햇볕은 금발과 투명한 피부를 마치 빛이 나는 것만 같이 보이게 했고, 아케론은 그에게서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보일 듯 안 보일 듯한 그의 모습에 안달이 난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청년의 얼굴을 아케론은 그저 홀린 듯 바라볼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정신을 차린 그가 발걸음을 다시 떼려 할 그 순간이었다.

“이리로 오지는 마.”

갑작스럽게 들려온 말에 아케론은 몸을 우뚝 세우고야 말았다. 잠시간 침묵 끝에 그는 머뭇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휘장 안에서 옅은 웃음이 흘렀다.

“그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아케론이 무뚝뚝한 얼굴로 휘장 안을 바라보았다. 루키우스는 그 순간에도 아케론을 돌아보지 않은 채 그 어느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펜을 움직이는 손은 아케론의 등장에도 멈추지 않았고, 아케론은 그를 향해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윽고 나직한 말이 내려앉았다.

“난 네가 죽은 줄 알았어.”

아케론의 눈썹을 꺾게 한 말이었다.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주 푹 자더군. 네 이름을 불러도 듣지를 않던데?”

아케론은 그에 잠시간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밤을 새운 거냐? 업어 가도 모르겠더구나.”

말의 어감이 이상하다.

아케론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직접…… 별채에 오셨습니까?”

루키우스는 그 말을 수긍했다.

“니코가 곤란해하길래 내가 가서 확인했지.”

‘아, 이런….’

낭패한 기색이 역력한 아케론의 귓가로 즐거운 마음이 묻어 나오는 혹은 그를 놀리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하인들이 너를 무서워하는 것 아나? 인상 좀 풀고 다녀.”

노래를 부르는 듯 선율을 띠고 아케론의 귓가로 내려앉은 말이었다.

“너는 숨이 막히도록 잘생겼지만 그닥 선량한 인상은 아니잖나. 그러니까 오해를…….”

그리고 그 대목에 이르러 춤을 추듯 움직이던 갈잎 펜은 잠시간 멈추었다.

그 순간 잠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무섭게 얼어붙는 방 안의 기류에 아케론이 순간 미간을 좁히고야 만다.

아케론이 들어왔을 때도 손을 멈추지 않던 루키우스는 그 순간 몸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소한 행동은 아케론을 압박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뒤늦게 아케론은 루키우스가 지금 제게 일정 부분 거리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쩐지……. 입 안에 침이 마른다.

아케론이 긴장이 희미하게 묻어 나오는 얼굴로 휘장 너머를 바라보고, 장시간 침묵이 흘렀다. 루키우스는 꽤나 시간이 흘러서야 멈추었던 말을 이었다.

“…살 수도 있지.”

휘장 너머로 들려오는 여운이 남는 목소리.

그를 듣는 아케론의 얼굴이 굳어져 가고 있었다.

뭔가 묘하다.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피곤해하길래 아침은 그냥 내가 먼저 챙겨 먹었다. 식당에 네가 먹을 음식을 따로 남겨 놓았어.”

루키우스는 펜을 다시 놀렸다.

“가서 얼른 식사를 해. 늦게라도 끼니는 챙겨 먹어야지.”

하늘하늘한 바람이 불 때 베일 사이로 부드러운 몰약 향기가 흘렀다. 적당하고 은은한 향기는 그의 사근사근한 목소리와 어울리는 것이었다. 아케론은 깃털로 귀를 간지럽히는 듯한 목소리에 이지를 흐트러트리고야 말았다.

“오늘은 원래 너와 함께 레몬 셔벗을 먹으려 했어. 이제 곧 추워질 텐데, 마지막으로 차가운 디저트는 즐겨야지. 원한다면 이도시우스가 얼음을 내어 줄 거다.”

루키우스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데 재능이 있었다.

“질 좋은 팔레르눔 와인도 왔지. 하지만 많이는 먹지 마. 저녁에 나는 너와 돼지 유방 요리를 먹을 테니까. 팔레르눔 와인은 기름진 고기에 잘 어울릴 거다. 아케론……. 넌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지?”

아케론은 대답하지 않았고, 그에 기다리던 루키우스는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대답.”

목소리는 단호했으나, 웃음기가 섞여 있어 그다지 고압적이게 들리진 않았다. 잠시간 망설이던 아케론이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어제는….”

그리고였다.

유려하게 움직이던 루키우스의 손이 다시금 멈춘 것은.

“방을 훔쳐볼….”

“웬만하면.”

방을 훔쳐보려던 의도가 아니었다, 라 내뱉으려던 말이 끊기고야 만다.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고압적이었다. 아케론이 순간 당황하여 휘장 안 루키우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았을 때 휘장 너머 그의 신형은 아까 전 말을 멈출 때와 같이 우두커니 멈추어서 있었다.

침묵 끝에, 얼어붙은 사내의 귓가로 물 흐르는 듯한 말이 떨어져 내렸다.

“웬만하면……, 내가 명령하지 않으면 밤중에는 아트리움 쪽으론 오지 말도록.”

바람이 불어 휘장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아트리움이 가장의 온전한 공간인 것은 알고 있겠지?”

“…….”

“네가 필요하면 노예를 통해, 널 부르겠다.”

귓가에 떨어지는 덤덤한 말을 들으며 아케론이 그 순간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앞으로는 어제와 같은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루키우스의 말이 끝나고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아케론이 뜨겁고 버석한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입술 끝을 딱딱하게 굳혔다.

하고 싶은 말은 굴뚝과 같았고, 마음에 퍼지는 감정은 컸다.

복잡한 마음에 휘말려 말을 잇지 못하던 아케론이 숨을 멈추고 어둑한 눈으로 휘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위치를 자각시키고 있었다.

그 순간 아케론은 잊었던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는 내가 건방지기를 방관하는 관대한 주인에 불과하다고.

-공금&갠소—

주석

1) 프로보카토르: 로마 중보병 차림을 흉내 낸 검투사의 한 종류.

2) 빅토리아: 승리를 관장하는 로마의 여신.

3) 빅토리우스: 빅토리아의 남성형.

4) 글라디우스: 끝이 뾰족하고 검봉이 둥근 로마식 검.

5) 레티아리: 그물을 무기로 쓰는 검투사의 한 종류.

6) 삼니테: 삼니움족 차림을 흉내 낸 검투사의 한 종류.

7) 트라케스: 끝이 구부러진 곡도를 무기로 쓰는 검투사의 한 종류.

8) 이카루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한 인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이용하여 하늘을 날던 중 태양볕에 날개가 녹아 추락사했다.

9) 시켈리아: 현재 시칠리아.

10) 네아폴리스: 현재 나폴리.

11) 넵튠이 아닌 포세이돈을 모셨다: 넵튠은 로마의 바다신이고 포세이돈은 그리스의 바다신이다. 동일 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12) 루디스: 황제가 검투사에게 수여하는 자유의 목검. 노예 출신 검투사는 루디스를 수여 받아 해방노예가 된다.

13) 나는 당신에게 보리가 아닌 플라밍고의 혀를 줄 수 있어요: 당시 검투사는 몸집을 불리기 위해 보리를 먹었고, 로마에서 보리는 가축이 먹는 음식이었다. 플라밍고의 혀는 로마의 황제들이 대대로 즐겨 먹었던 음식 재료로 호화스러운 음식의 대명사였다.

14) 전통적으로 우리 그리스인은 잘생긴 사내를 가리지 않고 사랑했다고: 그리스인은 동성애를 즐겼다. 그들은 소년이 지식, 용맹, 심지어 정액을 혼자의 힘으로 생산할 수 없다 보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 성인 남성과 짝을 지어 성적인 종류를 포함한 교육을 받게 했다. 로마에서도 동성애는 유행했으나,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과 다르게 보수적이라 ‘로마인 남성은 절대 삽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설정했다. 또한 동성애가 ‘이민족의 문란한 풍습’이라 평하며 좋게 보지 않았다.

15) 카이사르: 로마 황제의 속칭.

16) 아트리움: 거실. 로마 저택의 구조는 바깥채와 안채를 구분한 ‘ㅁㅁ’ 모양으로 형성이 되어 있고, 이중 아트리움은 현관과 이어진 바깥채에 자리한다. 아트리움은 천장이 뚫려 있고, 그 아래 비 받는 연못을 둔 거실로, 조각이나 도자기와 같은 사치품으로 장식하였다. 아트리움 양옆에는 빈방이 자리하고 있고, 현관 반대편 안채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조상의 업적을 기리는 공간이 자리한다. 요약하자면 아트리움은 바깥채에 자리한 거실로 손님을 맞이하거나 가장이 활동하는 응접실의 역할을 한다.

17) 이스카리쿠스: 로마의 장군에게는 대승할 때 원로원의 인가를 얻고 빅토리 네임이 주어지는데 대부분 이민족의 이름+쿠스를 붙였다. 빅토리 네임은 자식에게도 계승이 가능한 매우 명예로운 이름이었기에 비꼬는 의미로도 자주 쓰였다. 이스카리쿠스는 이스카리아 섬을 정복한 자라는 뜻.

18) 빌라: 농장과 시외에 위치한 귀족 소유의 저택. 단, 거주하는 이는 농장의 관리자와 같은 평민이었다.

19) 도무스: 귀족의 저택. ‘ㅁㅁ’ 자 모양으로 안채와 바깥채를 구분했다.

20) 페리스타일: ‘ㅁ’ 자 모양의 안뜰, 내원.

21) 튜니카: 로마인의 평상복. 남자는 무릎 근처까지 오는 길이의 흰색 튜니카를 입었다.

22) 팔리움: 망토.

23) Ignoramus et Ignorabimus: 우리는 모르고 모를 것이다.(라틴어)

24) 포티코: 기둥이 늘어선 현관(주랑 현관). 흔히들 생각하는 기둥이 늘어선 신전의 앞부분이 바로 이 포티코의 일종이다.

25) 프라이노멘: 귀족의 이름. 로마인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프라이노멘(이름)+노멘(성)+코그노멘(분파)으로 형성된다. 성 뒤에 별명이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

26) 트리클리니움: 로마 귀족들이 식사용으로 쓰는 긴 의자. 당시 서민들은 앉아서 식사를 하고, 귀족들은 누워서 식사를 하곤 했다.

27) 구토제는 상상도 못 하지: 로마인은 미식을 즐기려 혹은 건강상의 이유로 구토제로 위장을 비우곤 했다.

28) 베스타를 모시는 신녀: 베스타를 모시는 신녀는 나이를 먹어 은퇴할 때까지 순결을 지켰다. 순결 서약을 어긴 신녀는 생매장을 당했다.

29) 성인식: 로마인은 소년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경험을 쌓았다. 아버지는 자식의 경험이 무르익었다 생각되면 자식에게 성인식을 치러줘 자식을 성인 사내로 인정했다.

30) 튜니카를 입은 모습: 튜니카는 서민이 입는 복식, 귀족의 평상복 혹은 잠옷 혹은 미성년자가 입는 옷이다. 이와 다르게 발목까지 가리는 토가는 귀족, 공직자, 시민 계급이 입을 수 있는 옷이었는데 귀족의 자식이더라도 성인식을 치르지 못할 시에 원칙적으로는 토가를 입지 못했다.

31) 베누스의 마차: 금성.

32) 포도주에 물을 탄 게 아닌, 물에 포도주를 탄 것처럼: 로마의 주류 문화는 뜨겁게 덥힌 포도주에 물을 타 식혀 마시는 것이다.

33) 헤타이라: 고급 창부.

34) 디아나의 달: 초승달.

35 이제는 보라색을 보노라면 아케론은 존귀함은커녕 천박함만을 느끼고야 말았다: 로마에서 보라색 토가는 황제만이 입을 수 있는 옷. 보라색은 만들기 어려워 존귀한 색으로 여겨졌다.

36) 케나: 네 시부터 시작되는 이른 저녁 식사. 로마인들은 이 케나와 후술하는 코미사티오를 후하게 먹었다.

37) 코미사티오: 밤에 벌어지는 향연, 파티. 가끔 케나와 이어질 때도 있었다.

38) 로마인들에게 가장의 권위가 어떤지: 로마는 극단적인 가부장제 사회로 가장이 자식과 아내, 노예, 가솔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특히 자식과 가솔은 매매가 가능했고 가장의 마음대로 처벌할 수 있었다. 가장은 가솔을 때리거나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다. 단 로마 사회는 평판을 대단히 중요시해 실제로 가장이 도덕관념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지는 못했다.

39) 클리엔테스: 당여, 피후원자. 클리엔테스와 후원자의 관계는 로마에서 부자 관계와 동일한, 절대적이고 끈끈한 관계로 받아들여졌다. 클리엔테스는 후원자에게 보호를 받고, 도움을 받았으며 대가로 후원자의 당파, 지지자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40) 요리사: 로마 귀족들은 노예가 아닌 자유인 출신 전문 요리사를 고용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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