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고물
“이번에도 제 마음대로 하면 되는 거죠?”
“아니야! 아니에요! 아니라는데 왜 자꾸……!”
“벌써 젖었는데, 뭘.”
“흐으……!”
그동안의 관계가 학습이라도 된 건지, 남자에게 박힌다는 상상만으로도 젖어 버린 모양이다. 아래를 지분거리던 남자의 손이 흠뻑 젖어 있는 걸 보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춘 남자는 이전에 보았던 구멍 뚫린 벽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설마, 나더러 진짜 벽고물까지 당하라고? 간절하게 시선을 보냈으나 역시나 무시당하며 안으로 쑤셔 박혔다.
얼굴을 내민 곳은 불이 환하게 켜진 방이었는데 더욱 충격적이게도 여기에는 아직 써 보지 못한, 더욱 강한 플레이가 될 듯한 도구들이 쌓여 있었다. 한 벽면에는 말에게나 달려 있을 법한 검은색의 성기 모형이 붙어 있더라. 나 아무래도 탈출 전에 복상사로 뒤질 것 같은데…….
“으읏!”
그러다 엉덩이 사이를 파고드는 감각에 잡념에서 빠져나왔다.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마도 남자의 손가락인 듯했다. 내벽을 살살 긁다가도 느끼는 지점에 닿을 듯 말 듯 스쳤는데 그럴 때마다 발끝에 힘이 실렸다. 팔이 허리에 딱 달라붙은 채 벽에 끼어 있으니 그 손길을 제지할 수도 없고 앞으로 몸을 빼낼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조금 넉넉해 보이는 크기였으나 내 몸이 들어가자마자 딱 맞는 크기로 줄어들었다. 벽을 뚫어 놓은 것도 모자라 크기를 조절하는 장치까지 달려 있다는 건 나를 만나기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아플 거예요.”
“흐읏, 안 아프게는 왜…….”
“단번에 박아야 저도 짜릿하더라고요.”
“흐어, 억!”
쾅―!
아마 특수 효과가 있었다면 이러한 배경음이 깔렸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남자가 들어오는 기세는 강력했고, 나는 벽에 낀 것도 잊은 채로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단번에 결장을 치고 내려간 탓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갔고, 뒤이어 상대에게서 긴 신음이 들렸다. 남자는 그 쾌락이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다며 본격적으로 내 엉덩이를 부여잡은 채 박아 댔다. 그런데 내 시야로 보이는 게 말 자지였고, 남자 역시도 무식하게 컸기에 마치 저것에 박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아파요! 천천히, 네? 천천히 좀 해 줘요. 나 진짜 아프…… 히익! 읏! 아흑!”
“더 반항해 봐요, 난 이럴 때가 너무 좋아.”
“씨이발…….”
반항할 때마다 좋다고? 그게 남자의 흥분 요소라면 힘을 쭉 빼고 시체처럼 늘어지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늘어지자마자 가장 안쪽, 둥글게 튀어나온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찍어대는 탓에 결국,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며 발악을 하고 말았다. 제발 그만해 달라고, 천천히라도 해 달라며 소리를 질러 대니 이제는 목도 칼칼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하! 너무 귀엽잖아요! 죽어 가는 소리 같아요. 하아, 작가님 작품에는 시체플은 왜 없었어요? 되게 짜릿한데…… 아? 작가님 시체라 귀여운 건가 봐요!”
내가 들은 게 맞나. 가만히 있는다면 정말로 내 숨통을 끊어서라도 이 저급한 플레이를 이어 갈 것 같다.
“저는 안 기쁜…….”
“기쁘게 해 줄게요.”
멈춰 달라는 뜻이었는데 도리어 나를 기쁘게 하겠다며 불알을 쥐고 흔들었다. 성기는 여러 번 잡혀 봤지만 뒤로 박히는 와중에 내 소중한 구슬 주머니를 잡힌 적은 없었고, 나 스스로 딸 칠 때에도 건드려 본 적 없는 범위였다. 그런데 왜…… 기분이 좋냐?
“하아아! 아! 아앗!”
“우와, 작가님도 섰어요. 음 이미 아까 싸셔서 다시 선 거나 다름없지만 아무튼요. 이곳으로도 잘 느끼시네요? 온몸이 성감대야 아주, 내가 사람을 잘 봤어.”
플레이하기에 정말 좋은 몸이에요.
이제는 남자가 뭐라 중얼대는지도 모르겠다. 몸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성감대는 남자의 손을 한 번씩 거쳐 간 후였다.
드드득―.
어디선가 버튼 소리가 들리더니 벽이 조금 헐거워졌다. 빠져나갈 기회였지만 쾌락에 녹아 버린 다리와 팔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남자는 그대로 내 몸을 휙 돌려서는 다시 벽을 조였다. 말 자지에서 남자의 얼굴로 돌아왔는데, 왜인지 아까가 더 나은 상황인 듯하다. 초점 없는 눈을 번들거리며 나를 보고 있는 무서운 놈과 마주할 바에야, 감정 없이 벽에 붙어 있는 성기 모형 따위와 인사하는 게 더 낫겠지.
“예뻐요.”
나를 보고 있기는 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쉴 틈도 주지 않고 재차 안을 헤집어 버리는 흉기에 입술만 꽉 깨물어버렸다. 시간이 더 지난 후에는 수차례 쏟아진 정액이 배 위로 고여 있었다.
그것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내 몸 전체에 묻게 한 남자는 빈틈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뒤로 물러났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저 남자의 체력이란, 밥을 먹은 나와는 다르게 물 한 모금조차 먹지 않고 안을 쑤셔 대는 정도니까.
“흐으응!”
방심하던 찰나, 가장 안쪽까지 꿰뚫렸다. 뒤늦게 입을 닫아 봤으나 다가온 손가락들이 아주 가볍게도 내 입을 벌렸다. 다시 다물지 못하도록 혀를 누르고 있기까지 했다.
나는 그대로 남자에게 다시 몸을 내맡긴 꼴이 되었고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넘실거리는 오르가슴을 참아 내려 다리를 버둥거렸다. 그래 봤자 남자의 고환이 엉덩이 밑으로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굵직한 알들이 때려 올 때마다 배 안쪽이 간질거려 왔는데, 신음을 참지 못하도록 혀를 누르고 있음에 수치스러운 목소리가 새어 나갔다.
“으응! 읏!”
“아아, 작가님과의 벽고물이라니 이 얼마나…….”
“아아앗!”
“황홀한지!”
“하으응, 으 ㅇ흣! 아아, 앗!”
이게 내 목소리가 맞나. 새로운 플레이가 거듭될수록 더욱 새된 소리로 변해 갔다. 나조차 소름 끼칠 정도로. 남자의 손과 성기가 합세하여 피부 위, 안쪽까지 더듬어 대니 맨정신보다 이성을 잃고 입을 벌려 댈 때가 더 많았다.
이러다가, 정말 이러다가 남자의 맛을 깨닫는다면,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던 내 아이와 부인을 행복하게 해 주기를 이루지 못한다.
“흐윽…….”
그러자 서러움이 쏟아졌다. 느끼다가도 서러워하고, 서러워하다가도 느껴 버리는 나를 미묘하게 바라보던 남자가 엉덩이를 토닥여 왔다.
“많이 아파요?”
“흐으으…… 으…….”
“아프면 그만할게요.”
“ㅇ……아파, 아파요…….”
“일단 이것만 빼고 다시 이야기해요.”
남자는 사정을 하면서도 줄어들지 않는 성기를 다시 고쳐 잡고는 구멍을 조준했다. 사냥감이 되어 버린 기분에 몸을 부르르 떨자 방해가 된다며 골반을 꽉 잡아 왔다. 그러고는 일말의 자비도 없이 다시 한번 수풀을 헤치며 안으로, 더욱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에 활짝 벌어진 입에서 침이 줄줄 흘렀다. 다가온 입술은 그마저도 모두 앗아 갔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몸을 떨어 댔으며 입을 닫지 못하여 계속 흐르는 침조차도 막아 내지 못했다.
축 늘어진 몸을 껴안은 채 짧은 허릿짓을 몇 번 이어 가던 남자가 드디어 긴 사정을 마쳤다. 아직도 욱신거리는 내벽에 손가락을 넣어 자신이 싸지른 정액을 조금만 덜어 냈다. 언젠가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내 안에 자신의 씨가 남아 있는 게 좋단다. 그래서 내가 배앓이를 하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빼는 거라고.
“몸을 좀 씻고 조금만 쉬었다가 이어 가요.”
“……얼마나 쉬는데요?”
“30분?”
“…….”
“어라, 너무 짧아서 그런가요.”
비꼬는 건가 싶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로 내게 30분이라는 시간이 짧냐고 묻는 듯하다. 체감상 세 달간 내 안을 채우고 있었던 것 같은데 고작 30분을 쉬라니. 저 남자는 대체 뭘 하는 사람이기에 도통 지치지를 않는 건지 의문이었다.
“세 시간으로 해 주세요.”
“와, 그 시간이면 딸 치면서 300번을 빼도 더 기다려야겠네요?”
“……당신 체력이 너무 좋은 거잖아요. 나는…… 지금도 얼얼하고, 가슴도 뜯겨서 쓰라리고, 여, 여기 안에도 아직 뭐가 차 있는 것처럼 아프…….”
“한 시간.”
“…….”
“그 이상은 나도 양보 못 해요.”
탁―.
대뜸 내 몸을 방 안에 밀어 넣고 문을 닫아 버린 남자. 덜그럭거리는 불안한 소리에 황급히 문고리를 당겨 봤으나 조금의 틈조차 벌어지지 않았다.
“이 미친놈아!”
쾅―!
차라리 욱해서 다시 열려라. 저 화분을 머리에 맞춰서라도 도망쳐 볼 테니까. 잠깐의 독기로는 뭐든 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었는데 영악한 남자는 그걸 알고는 열어 주지 않았다. 평소라면 대드는 나를 잡아 보겠다며 억지로 벌리고 들어왔을 텐데 이렇게 무시한다는 건 뻔했다.
절망감에 움직이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다가 벽에 달린 시계를 확인하니 20분이 지나 있었다. 남은 시간은 40분인데 탈출을 꿈꾸더라도 체력을 회복하면서 하는 게 이득일 터. 덩그러니 놓인 침대로 향해 가다가 방 안쪽에 문 하나가 더 있음을 알게 됐다. 저건 뭐지? 비상용 출구라도 되나. 스스럼없이 문고리를 당겨 봤다.
끼익―.
“아.”
사실은 내게 뇌가 없는 건가. 가둬 놓은 사람이 비상구를 만들어 뒀을 리가 없지. 회색빛 타일로 뒤덮인 욕실로 들어가니 방광으로 자극이 오기에 변기 커버를 젖혔다. 평소라면 힘을 줘서 세기를 가늠했겠지만 지금 그랬다가는 허리가 울려서 쓰러질 것이다.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최대한 힘을 빼고 변기에 가까이 붙었다.
쪼르르르…….
“…….”
이대로 혀라도 깨물까.
보는 이 하나 없는데도 수치스러움에 기절을 하고 싶어졌다. 비웃듯이 콸콸 내려가는 변기를 노려보다가 샤워기를 집었다. 온몸이 끈적거리고 남자의 체향이 가득 배어 있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준비되어 있는 샤워젤을 제품을 구석구석 발라 가며 본래의 살 냄새를 되찾고, 떡 진 머리도 시원하게 감았더니 서서히 눈이 감겨 왔다. 납치되어 강간을 당했는데도 태연하게 졸려하는 나도 제정신은 아닌 듯하다. 이제는 밖을 나가게 되더라도 신고는커녕, 남자에게 돌아와 박아 달라며 울어 대지는 않을지 걱정이었다.
“아니야!”
발작처럼 몸을 털고 욕실을 벗어난 나는 수건으로 머리만 대충 털어 낸 뒤 벽에 기대어 섰다.
이대로 미쳐 가면 안 돼. 뭐라도 하자. 보통은 납치범을 어떻게 처치하더라? 음……. 아, 날카로운 거나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을 찾아보면 답이 나올 듯하다.
우선은 제일 먼저 눈에 띄던 화분을 챙겨 들었고, 두 번째로는 바닥에 놓인 철사를 챙겨 들었다. 작은 힘에도 구부러지는 철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는 의문이었지만 뭐라도 쥐고 있는 게 나았다.
그 후로도 방을 더 돌아다니다가 시간을 확인하니 20분도 채 남지 않았다. 문 옆에 바짝 붙어 잠복할지, 침대에서 자는 척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가까이 오면 머리를 깨 버릴지. 어떤 게 더 확실한 탈출법일지를 고민해 보고 있는데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20분이나 남았는데?
이유는 몰라도 내게 오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았기에 두 번째 플랜대로 침대에 뛰어들었다. 다행히 이불을 뒤집어쓴 후에야 문이 열렸다.
“작가님.”
“…….”
“머리 안 말리면 감기 걸려요.”
숨죽이고 누워 있으면 잠을 자는 거라고 생각할 텐데 남자는 꿋꿋하게 말을 걸어온다. 어, 잠깐만. 머리 안 말린 걸 아네……?
스륵―.
“헤헤, 찾았다.”
두꺼운 솜이불이 단번에 날아갔다. 남자는 나와 숨바꼭질을 하자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심지어 내 손에 들려 있던 철사를 이리저리 구경하며 놀고 있었다.
“하하하…….”
최대한 의심받지 않게 따라 웃으며 침대에서 내려섰다. 그대로 날렵하게 몸을 숙여 꽃병을 잡아들었다고 생각했지만.
“헤헤, 이것도 찾았다.”
남자가 더 활짝 웃으며 꽃병을 뺏어 들었다. 이 새끼 나를 놀리는 중이구나. 뒤늦게 천장을 둘러보니 구석진 곳에서 빨간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미안해요…….”
동정표라도 얻자.
지쳐 버린 탓에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일 수 없어서 되는 대로 뱉어 봤으나 동정하기는커녕, 도리어 활짝 웃는 얼굴로 더욱 다가왔다.
“더 빨리 놀고 싶어서 그런 거죠?”
……음?
“바로 들어가요, 청게물 스토리.”
“네? 아니, 아니요! 저 잠시 준비를……!”
“믿었던 친구에게 뒤를 따먹히는 스토리 기억하세요? 그 당시 작가님께서 떡밥을 찾는 사람들에게 고가의 선물을 보내는 이벤트를 하셨는데, 사실 그건 제게 프러포즈하신 거라는 걸 알아요.”
“……그, 선물을 당신도 받았……. 거짓말하지 말아요. 당신 아이디는 내가 알고 있는데…….”
내 명품 선물이 이런 놈에게 갈 줄 알았다면, 그로 인해 더 착각하게 될 줄 알았다면 이벤트 따위 하지 않았을 텐데.
“댓글용은 여러 개가 있어요. 너무 하나로만 하면 다른 이들이 같은 사람인 줄 알고 저와 작가님 사이를 질투할 테니까요.”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이 사람은 그냥 스토커가 아니라 병적일 정도로 내게 집착해 오는 이였다. 알면 알수록 탈출에 대한 희망이 짓밟히는 기분에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언제 다른 곳으로 옮겨진 건지 난 기다란 소파에 남자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내 시야에는 TV 화면이 보였고 등 뒤로 단단한 남자의 몸이 느껴졌다. 뒤에서부터 뻗어 나온 두 손은 내 가슴과 턱을 매만지고 있었다.
“저는 작가님이 어떤 행동을 하셔도 화나지 않아요. 다 보듬어 드리면 되니까……하지만.”
“…….”
“상황극을 깨는 건 용서 못 해요.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깨 버리는 거니까요.”
“저는 그런 걸 바라지…….”
“도영아, 우리 집에 와 줘서 고마워.”
이제는 어느 부분부터 욕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