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10/11)

#008

양호선생님이 들어오기 직전에 ‘성지훈과 윤계인을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최면을 걸었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성지훈의 옷을 다 입힌 나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성지훈을 살펴보았다. 행위가 중간에 끊겨서 그런지 잔뜩 골이 나 있었다. 더불어 유두 역시 잔뜩 골이 나 있었다. 아, 너무 괴롭혔나. 툭 튀어나온 게 눈에 훤히 보이잖아. 이걸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뜩 든 생각이 밴드였다. 밴드를 붙이면 덜 보이겠… 아니, 좀 하드한 것 같은데 내 취향이 언제부터 이렇게… 아니, 보이면 보이는 대로 문제잖아. 내 취향이 아니야. 절대 아니야. 전에도 한 번 이런 적 있었잖아. 그때는 아무 생각도 안 들었는데 왜 이제 와서 취향론을 따지고 있어!

“성지훈 잠깐만 이거 붙이자. 유두가 비쳐. 옷 올려봐.”

내 말에 성지훈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날 바라보더니 곧 옷을 올려주었다. 나는 밴드를 꺼내 성지훈에게 다가가 유두에 밴드를 짱짱하게 붙여 툭 튀어나와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유륜에 밴드가 걸쳐졌지만 이 정도면 확실히 보이지 않겠지. 뿌듯한 마음으로 옷을 다시 입게 하고 양호실 밖으로 나서려는데 목이 따끔따끔한 느낌이 났다. 아 성지훈이 깨물었지. 목을 돌릴 때마다 욱신거리는 느낌이 나 거울을 찾아 확인하니 잇자국이 시퍼렇게 난 목이 보였다. 심지어 잇자국이 한두 개도 아니었다! 이러니까 아프지. 하는 생각에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살색 파스를 꺼내 목에 붙였다. 그러자 싸한 냄새와 함께 목에 있던 잇자국들이 가려졌다.

“쯧.”

“왜.”

“됐어.”

뭔가 불만 있어 보이는 성지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깨를 톡톡 치고 올라가자 이야기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로 나와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성지훈에게 반에 들어가 착석하고 나면 최면을 풀 테니 그 뒤는 알아서 하라고 말을 남겼다. 성지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반 바로 앞에 서서 날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 역시 그런 성지훈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곧 손을 뻗어 성지훈의 뺨을 만지며 성지훈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들어가. 이따 찾아갈게.”

“…어.”

드르륵 소리를 내며 교실 문을 열은 성지훈이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는 것까지 확인한 나는 우리 반으로 돌아와 성지훈이 그랬던 것처럼 문을 드르륵 열었다. 문 여는 소리에 잠깐 이목이 집중되더니 곧 나라는 걸 보고 뭐지? 하는 반응을 보이다 결국 자기들 하던 대로 하는 것을 보고 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바로 자리에 앉아 이번 교시 책과 공책을 꺼낸 뒤 최면을 해제했다. 최면을 해제해봤자 나한테 돌아오는 시선은 없었다. 애들의 대부분은 책상에 뻗어 있었고 선생님은 혼자 지문을 읽고 계셨고 공부하는 애들은 열심히 지문에 밑줄을 치고 있었으니까. 아, 나중에 준서한테 교과서 빌려야겠다. 생각하며 형광펜을 꺼내 들어 막 선생님이 밑줄을 치라고 했던 지문을 칠했다. 공책에 지문 풀이를 몇 개나 적어 내려갔을까. 종이 치고 선생님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라며 교실 안을 살피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넌 언제 들어왔냐.”

“어… 꽤 됐는데요.”

“왔는데 왜 말을 안 해.”

“죄송합니다.”

“하여튼 간에. 이번에는 지각으로 넘어가 주는데. 다음에는 국물도 없을 줄 알아.”

“감사합니다.”

이미 개근상은 날아갔으니 출석 일수가 모자라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선생님 시점은 또 다르니까. 잠시 후 준서와 선웅이가 앞자리로 와서 말을 걸었다.

“야 진짜 언제 들어왔냐? 소리도 못 들었는데.”

“자던 새끼가 입만 살아서.”

“자고 있어도 다 듣거든!”

“지랄한다. 아, 준서야 나 이따 책 좀 빌려주라. 필기 놓친 것 좀 하게.”

“이제 좀 여유 생겼나 보다? 필기를 다 챙기고.”

“형이 좀 바빴다.”

“그러고 보니 웬 파스냐 아침엔 없었잖아.”

“아 좀 확 돌렸다가 삐었어.”

“쯔쯔 조심 좀 하지.”

“밥은 먹었어?”

“…아…….”

깜빡했다. 내 말에 둘은 까먹을게 따로 있다네 뭐네 하더니 매점을 가자며 날 이끌었다. 성지훈도 굶었는데… 매점에 도착하자 나름 한산한 매점 안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시간 직후니까. 대부분 자고 있겠지. 대충 안을 둘러보다가 인기 많은 모카번과 햄버거가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냉큼 집었다. 어느 쪽을 더 좋아하려나. 음, 역시 대중의 맛인 모카번일까. 햄버거는… 잘못 먹으면 두드러기도 나니까. 그런 생각에 햄버거를 내려놓고 대신 우유와 사과주스를 하나 사고 아이스크림을 아작아작 씹어 먹고 있는 둘에게 먼저 간다 이야기하고 냉큼 위로 올라왔다.

성지훈 교실 문을 드르륵 여니 무언가 언짢아 보이는 성지훈과 얼어붙은 교실 안이 보였다. 뭐야 이거 성지훈과 얼어붙은 교실? 가만히 그 몰골을 보다가 성지훈에게 다가갔다.

“왜.”

“아, 배고플 것 같아서 빵 사 왔어.”

모카번을 성지훈에게 넘겨주고 우유와 사과주스 중에 뭘 마실 거냐 물으니 우유라는 대답이 나와 우유를 까서 성지훈 손에 쥐여준 뒤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켜주는 성지훈 앞자리에게 고맙다 인사를 한 뒤 자리에 앉아 모카번 껍질을 벗겼다.

“원래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더 맛있는데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왔어.”

“…어.”

떨떠름하게 반응한 성지훈은 나와 똑같이 모카번을 벗겼다. 그 모습이 마치 베이커리 광고 같아 잠깐 멍하니 있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 정신을 차리고 모카번을 입에 물었다. 바삭한 윗부분에 이를 박아 넣으면 부드러운 속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걸 입으로 찢어 입안에 넣어 우물우물 씹으면 향긋한 커피향과 부드러운 빵의 식감이 느껴진다.

“맛 어때?”

나름 괜찮은 맛에 성지훈에게 물었다. 그러자 성지훈은 텅 빈 봉지를 구기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괜찮다는 뜻이겠지 뭐. 난 녀석의 손에서 구겨진 봉지를 들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성지훈 앞에 앉아 사과주스를 빨았다. 부드러운 사과향이 입안을 맴돈다. 그것이 기분 좋아 가만히 사과주스만 빨고 있자 성지훈이 목이 탄다는 듯이 목을 꺾어 우유를 벌컥벌컥 마셨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사과주스를 깊게 삼켰다. 목을 꺾으며 드러나는 아담의 사과가 섹시하다. 남자의 목젖이 섹시하다고 생각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상대가 성지훈이 되니 느낌이 이렇게나 달라지는구나. 쪼르륵 소리가 날 때까지 깊게 빨대를 빨자 우유를 모두 마신 성지훈이 가만히 날 바라보았다. 나는 빨대를 입에서 빼냈다.

“이리 줘 버리게.”

“…어.”

우유갑을 야무지게 접어서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성지훈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아 주물렀다. 단단한 어깨를 내가 용을 써도 끄떡없었지만 어차피 안마의 의미로 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상관없었다. 어깨를 주물거리며 성지훈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기분 풀어.”

“…하.”

성지훈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나는 살짝 긴장했다. 손을 뿌리치려나.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놓쳤나. 한참을 고민해 보아도 나오는 것은 없었고 결국 종이 쳐서 교실로 돌아가려고 성지훈의 어깨에서 손을 떼자 성지훈이 내 손을 잡았다.

“어?”

“…끝나고 바로 와.”

“오키.”

교실로 돌아오자 내 자리에 있는 선웅이와 준서가 보였다. 뭐들 하나 싶어서 소리 없이 다가가 책상 앞으로 가니 둘은 무언가 영상을 보고 있었다. 무슨 영상이지 싶어 슬쩍 보았는데. 인간의 한계로 할 수 있는 축구 기술들을 보고 있었다. 좀 묘한 기분에 가만히 선웅이 놈을 내려 보자 내가 온 것을 느낀 준서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녀석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내고 선웅이 놈이 언제쯤 날 눈치챌까 가만히 지켜보았다.

“야야 이것 봐 여기서 말이야… 우와아악?!”

“언제 눈치채나 했다.”

“그러게 말이야. 그것보다 진짜 축구에 미친놈 같으니 또 축구냐.”

“엉 나 축구선수 될 거니까.”

그래 너 잘났다. 선웅이 녀석을 옆으로 치우고 자리에 앉아 선생님이 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 후 교실로 들어오신 선생님은 옆으로 치워졌음에도 꿋꿋이 휴대폰을 보고 있던 선웅이 놈을 발견하시고 손수 휴대폰을 압수해 가셨다. 선웅이 놈은 처절하게 반항해 보았지만 선생님 앞에선 무력한 한 마리의 학생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에 녀석은 자신은 행복해질 수 없다고 훌쩍이다 결국 교실 뒤로 나가 기마 자세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수업이 끝나고 하품을 길게 하며 책상에 늘어졌다. 이제 종례만 남았구나. 그럼 이제 성지훈네 가서… 음,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오늘 성지훈네서 잘까…? 어… 자도 되나?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혼자 생각하는 동안 담임선생님이 들어오고 종례가 시작되었다. 주된 이야기는 연애 이야기. 아, 누나랑 강연우가 헤어진 게 이미 퍼졌구나. 남녀 간의 건전한 연애를 하고 연애를 할 때는 나름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끝으로 종례는 끝이 났다.

“오늘 뭐 할 거임? 불금인데 피시방 고?”

“넌 축구 아니면 피시방이냐.”

“훗, 오늘은 피시방에서 축구를 할 거다!”

“피파네.”

“피파네.”

“아니면 고급시계 할래?”

“됐어 인마. 난 집에 갈 거임.”

“난 놀러 간다.”

“헐 둘 다 날 버렸어.”

“야, 이선웅! 롤 할래?”

“할래!”

선웅이 놈은 롤을 하자는 다른 녀석의 말에 냉큼 달려갔다. 그 꼴을 보고 나랑 준서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게 우릴 버리네.”

“야 버려버려. 인생에서 지우자.”

“콜.”

“야 준서야! 가자!”

“나 집에 간다고 병신아.”

“얼른 와!”

“저 새끼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거야 뭐야. 나 간다.”

“어 잘 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준서는 선웅이 녀석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바라보다 교실 밖으로 나왔다. 아직 종례가 끝나지 않을 걸까. 성지훈네 반으로 가 보았다. 그러자 아직 종례를 진행 중인 선생님과 앞으로 나와서 벌받는 자세를 한 몇 명이 보였다. 벌받는 건가. 성지훈이 걱정되어서 성지훈 쪽을 바라보자 줄곧 나를 보고 있던 것인지 성지훈과 눈이 마주쳤다. 아, 언제 끝나? 입으로 뻐끔거리자 드륵 소리를 내며 성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그래도 돼? 라는 생각을 할 때 앞에 계시던 선생님이 성지훈 쪽으로 무어라 이야기했고 성지훈은 무시한 채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성지훈에게 물었다.

“종례 안 끝난 거 아니야? 나와도 돼?”

“돼.”

그렇게 말한 성지훈은 내 손을 잡고 주차장을 향했다.

성지훈의 거친 손길에 약간 다급히 차에 올라탔다. 기사님은 자연스럽게 목적지를 묻지 않은 채 출발하셨고 성지훈은 옆에 앉아 날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 오늘 자고 가도 되냐고 물어봐야지.

“있잖아.”

“…….”

“오늘 자고 가도 돼?”

“…하?”

“어… 안 돼?”

내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는 성지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아니, 자고 가는 건 안 되는 거였나. 어, 생각해보니 그럴지도 어쩌면 들킬 수도 있잖아. 성지훈 방이야 소음이 들리지 않도록 하고 성지훈이 먼저 들어오라고 하기 전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어 놓긴 했는데. 성지훈은 잘 모르잖아. 그럼 들킬까 걱정할 지도. 라고 생각하고 생각이 짧았다고 이야기하려는데 성지훈이 내 얼굴을 잡아당기며 으르렁거렸다.

“집에 가려고?”

“어… 그게 아니라 자고 가고 싶은데. 네가 불편하면 그냥 돌아간다고.”

“…안 불편해.”

그렇게 말한 성지훈은 내 얼굴을 놓아주었다. 약간 얼굴이 당기는 느낌이 들어 손을 들어 턱을 매만질 때 성지훈이 날 가만히 바라보다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며 이야기했다.

“자고 가.”

“응.”

성지훈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자 성지훈이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잠옷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성지훈 옷을 빌릴까. 지금 집에 가자고 하면 화낼 것 같은데. 음, 그냥 빌리자. 그러고 보니 성지훈네에서 저녁까지 먹는 건가. 혼자 이것저것 생각하는 새 가까이 다가온 성지훈으로 인해 놀라 화들짝 멀어지자 성지훈이 내 머리를 커다란 손으로 잡았다. 뭐지 싶어 두 눈을 깜빡이는데 그대로 머리를 흔들고 놔버리는 성지훈. 아니, 뭔데. 자기 혼자 뭔가 만족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를 몰라 가만히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씩 미소 짓는 성지훈.

하, 그깟 미소로 내가 넘어가지. 아니, 솔직히 평소에는 미소의 미 자도 보여주지 않는 녀석이 만족스러운 사자 같은 미소이긴 하지만 저렇게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건 반칙 아냐? 호선을 긋는 부드러운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림과 동시에 타이밍 좋게 밖의 풍경이 성지훈네 동네로 들어섰다. 길게 늘어선 담벼락을 따라 왼쪽으로 쭉 꺾어 들어가면 성지훈네 집 대문이 보인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차의 움직임에 맞춰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 주차장으로 차가 주차하면 기사님이 내려 문을 열어 주시려 하는데. 그전에 먼저 일어난 성지훈이 문을 열고 나와 나에게 손을 내민다. 마치 에스코트라도 하는 모양새가 웃겨 하하 웃음을 흘리며 그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자 그대로 손을 잡은 성지훈이 나를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어, 이거 그대로 잡고 가게? 약간 당황한 내가 기사님과 지나가는 다른 사용인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모두 성지훈에게 고개를 숙인 채였다. 아니, 너 무슨 독재자냐 가는 곳마다 고개를 숙여. 성지훈이 이끄는 대로 안으로 들어가자 늘 우리를 반겨 주시는 아주머니가 나와 우리를 맞아 주셨다.

“어머나, 계인 학생 오래간만이네요! 에구머니나 나도 참, 도련님 어서 오세요.”

“이 녀석 자고 갈 거야.”

“어머, 그럼 손님방을 준비해야겠네요!”

“그럴 필요 없어. 내 방에서 잘 거야.”

“네? 도련님 방에서요? 어… 도련님 그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주머니가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성지훈은 척척 발 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현관에 올라서서 내가 신발을 벗기를 잠시 기다렸다가 신발을 벗으면 나를 이끌고 올라간다. 그런 일방적인 행동에 내가 절로 죄송해서 어색한 웃음소리만 내고 있는데 뒤에서 아주머니가 따라오시며 손님방을 치워 둘 거라는 둥 손님에 대한 예우는 해야 한다는 둥 말씀하셨지만 성지훈은 모든 것을 한 귀로 흘린 채 방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잠갔다.

“니네 집 굉장하다. 친구나 손님이 오면 묵는 손님방도 있어?”

“사업 파트너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만 사용하는 곳이야.”

한마디로 친구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친한 집안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런 사람들은 안 오나.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할 때에 아직 붙잡혀 있던 손이 당겨졌다. 뭐지 싶어 고개를 드니 성지훈이 뜨거운 눈빛으로 날 내려 보고 있었다. 내가 그런 성지훈을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슥 피하니 성지훈이 비어 있는 손을 뻗어 볼을 쓸었다.

“날 봐야지.”

그 한마디가 사람을 이렇게 설레게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와 한순간 심장이 철렁거렸어. 나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키며 성지훈과 눈을 마주하자 성지훈이 잘했다는 듯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볼에서 서서히 손이 내려가 목에 붙은 파스를 매만지다 더 아래로 내려가 목덜미에 접힌 칼라를 펼쳐준 뒤 천천히 움직여 싸구려 넥타이를 잡아 그대로 쭉 잡아당겨 넥타이를 풀었다.

“유혹하는 거야?”

“하, 이게?”

그렇게 이야기한 성지훈은 자신의 넥타이를 잡아 끌어내 내던진 뒤 조끼를 벗어 던지고 단번에 셔츠 단추를 풀었다. 어떻게 손이 그렇게까지 빠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손놀림으로 셔츠를 거의 벗어 던진 녀석은 그대로 나에게 다가와 입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고개를 마주한 뒤 이야기했다.

“널 유혹하려면 이래야지.”

입술과 입술 사이의 틈이 이렇게 간질간질할 수가 없었다. 시야를 어디에 둬야 할까. 시선을 바로 하면 성지훈의 얼굴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탄탄한 근육들이 오밀조밀 짜인 성지훈의 몸이 보이는. 어디에 둬도 눈이 호강하는 호강 지옥에 어찌할 줄 모르니 성지훈이 씩 미소를 지으며 나를 지켜본다. 거기에 에라 모르겠다. 입을 쪽 맞춘 뒤 성지훈의 목에 팔을 걸치며 물었다.

“너희 집 저녁식사 시간 언제야.”

“7시.”

이에 나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어느새 5시 30분이었고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1시간 30분. 이거 애매한데… 한번 불이 붙으면 2시간 3시간은 너끈히 지나가기에 시간이 애매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욕망이 사그라질 성지훈도 아닌데.

“앞으로 1시간 30분 남았어.”

“어.”

“그 안에 가능할까?”

“…아니.”

어떻게 하지 그럼… 물러날래? 라고 물어보면 물릴 것 같다. 으음, 어쩌면 좋지. 고민하는데 성지훈이 내 코를 앙 물었다. 아야 하고 통증을 표하자 성지훈이 입을 떼고 코를 핥는다.

“네 맘대로 해.”

“응?”

“아니면 전처럼 해봐.”

“뭘.”

“부탁.”

“어… 너한테 부탁하라고?”

“어.”

뭘?! 아니, 얜 또 뭘 부탁할 줄 알고 이런 소리를 한대. 너 혹시 그런 취향이야?! 그런 내용을 담은 얼굴로 성지훈을 바라보니 성지훈은 또다시 만족스러운 사자처럼 미소를 짓는다. 마치 그래 이런 얼굴을 보고 싶었어. 같은 느낌으로. 아니…….

“굳이?”

“굳이.”

“전부터 느끼는 건데… 내가 뭘 부탁할 줄 알고 이러는 거야?”

“네가 뭘 부탁하든 상관없어.”

“뭐?”

내 말에 성지훈은 내가 한 것과 똑같이 두 팔로 나를 감싸며 이야기한다.

“네가 뭘 부탁하든 그걸 들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고 그럴수록 너는 나한테 집착하게 되겠지.”

“…….”

“그러니까 뭐든지 부탁해. 들어줄 테니까.”

“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네 하고 너한테 부탁을 하겠냐. 존나 날 너무 잘 아네.”

쪽쪽 가벼운 입맞춤이 오가고 그것이 깊은 입맞춤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비열을 탐하는 혀를 가볍게 깨물고 빨아 당긴 뒤 혀로 얽히며 비볐다. 츄룹 하는 소리와 함께 서로의 입이 떨어지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끊어지는 은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가볍게 입술을 몇 번 더 부딪히고 말했다.

“그럼 내가 뭘 부탁할지 알아?”

“…….”

“내가 예전에 부탁했던 것들 기억해?”

“어…….”

“그래, 옛날에 부탁했던 걸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해도 될까? 그러고 싶은데. 괜찮아?”

속삭이듯이 성지훈에게 이야기하자 성지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천천히 발을 옮겼다. 마치 스텝을 밟듯이 내가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면 성지훈은 한 발 뒤로 물러난다. 그렇게 앞으로 뒤로 움직이며 나는 성지훈은 천천히 침대 쪽으로 이끌었다. 성지훈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나를 완전히 신용하는 것인지 아무런 대꾸 없이 내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여 침대 쪽으로 향한다. 그 모습에 알게 모르게 만족감이 피어나고 침대에 성지훈의 발이 걸리자 나는 그대로 녀석을 밀어 침대에 앉혔다. 침대에 앉아 나를 올려 보는 성지훈을 바라보다 책상으로 다가가 서랍을 열었다. 익숙한 서랍 안에는 익숙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콘돔과 아네로스, 오나홀과 딜도 그리고 젤. 그 안에서 아네로스를 집자 성지훈이 말했다.

“그거 말고…….”

“그럼 딜도?”

“…….”

침묵은 곧 긍정이라 나는 아네로스를 내려놓고 딜도를 손에 들었다. 손가락 두 개 반 정도의 한 뼘 정도 오는 핑크색 실리콘 딜도. 뭐 한 뼘이라고 해 봤자 손잡이가 있어 그렇게 긴 편은 아니지만. 이걸로 꽤나 즐겼다 이거지? 그런 성지훈을 상상하니 야릇한 감각이 찌르르 척추뼈를 타고 올라온다. 하아 들뜬 숨을 내뱉으며 손에 들려 있던 딜도를 성지훈 손에 쥐여주었다.

“하던 대로 보여줘.”

“…알겠어…….”

방안의 공기가 끈적끈적 해지기 시작했다. 성지훈은 거의 걸치고 있던 셔츠를 벗어 던지고 나와 시선을 마주한 채 천천히 허리를 들어 달칵 소리와 함께 바지 버클을 풀었다. 스륵 살과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탄탄한 대퇴를 지나 무릎을 스쳐 종아리를 걸치고 발목을 빠져나오는 것을 보며 마른입을 혀로 축였다. 풀썩 소리와 함께 바지가 침대 아래로 떨어지고 얇은 브리프만이 성지훈의 몸에 남았다. 나는 그 모습을 홀린 듯이 지켜보다 따가운 시선에 눈동자를 돌렸다. 그러자 나보다 몇 배는 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성지훈이 있었다. 성지훈은 마치 잘 훈련된 맹수처럼 내 행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너는 그만큼 나를 원하는구나. 나는 천천히 움직여 성지훈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똑똑.

저 노크 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화들짝 성지훈에게서 멀어지자 밖에서 아주머니가 말씀하시는 게 들린다.

“쯧.”

성지훈이 몸을 일으키며 혀를 찾고 나는 들리지 않을 대답을 하며 허겁지겁 문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반색하시며 나에게 과일이 몇 개 든 쟁반을 건네주셨다. 다행히 아주머니는 성지훈을 찾지 않고 저녁이 평소보다 늦어질 것 같다고 말씀하신 뒤 아래로 내려가셨다. 나는 네 네 거리다 어색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덜그럭 쟁반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성지훈에게 다가갔다. 분위기가 깨진 탓인가 부루퉁한 얼굴을 한 성지훈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손을 뻗었다. 그 손에 기꺼이 얼굴을 맞대며 성지훈의 손바닥에 가볍게 입을 맞추자 뻗어왔던 손이 뒤통수를 잡아 얼굴 쪽으로 당겼다. 난폭하게 입술이 맞닿고 입술을 핥는 매끄러운 혀에 입을 벌리면 입속으로 다급한 몸짓의 혀가 파고들어 온다. 입속으로 침투해온 혀는 치열을 한번 훑은 뒤 뭉툭한 송곳니를 지긋이 매만지다 입속 깊이 들어와 원을 그리며 입천장을 자극한다. 그 야릇한 감각에 신음 소리를 내자 성지훈이 꿀꺽 침을 삼키는 것이 느껴졌다.

“하아… 하아…….”

“…하아… 윤계인…….”

입이 떨어지고 숨을 고르며 성지훈은 낮게 읊조리듯이 날 불렀다. 거기에 성지훈의 입에 가볍게 입을 몇 번 더 맞추며 부름에 응하자 성지훈이 내 손을 잡아 천천히 아름다운 몸에 오롯이 홀로 남아 있는 브리프에 올렸다. 그 손길에 담긴 뜻을 알아챈 나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야하면서 귀엽기는. 나는 두 손을 뻗어 성지훈의 브리프를 잡아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브리프가 벗겨지며 깨끗한 성지훈의 치부가 모습을 드러내고 퉁 반쯤 선 커다란 성기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커다란 성기에 흠칫 손이 멈추었다. 아 순간적으로 만지고 싶다고 생각했어. 성지훈의 성기는 그 위용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주인에 걸맞게 모양도 고르고 아주 예뻤다. 성기가 예뻐도 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는데 직접 보면 놀라울 정도로 성기가 위압적인데 예쁘다. 하아… 참자, 아직은 참아야 해. 다시 손을 놀려 성지훈의 브리프를 천천히 벗겨 내렸다.

온전히 나체가 된 성지훈은 그대로 유혹하는 몸짓으로 날 바라보았다. 거기에 한번 홀릴 뻔했지만 마음을 다잡은 나는 딜도를 손에 들어 성지훈에게 내밀다가 다시 빼앗았다. 아 맞다 콘돔을 깜빡했어. 성지훈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나는 꿋꿋했다. 서랍에서 콘돔을 꺼내 껍질을 찢어 내용물을 꺼내 천천히 딜도에 씌웠다. 그러다 문뜩 든 생각에 성지훈에게 물었다.

“평소에 할 때도 콘돔 끼웠었어?”

그런 거 치고는 콘돔 양이 많은데 평소에 잘 안 했나?

“…아니…….”

그 대답에 나는 가만히 성지훈을 내려 보았다. 성지훈이 드물게 내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나는 성지훈의 얼굴을 잡아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세척은 잘 하면서 했지?”

소독까지는 안 바란다. 내가 유별난 것이니까. 성지훈이 아픈 게 싫으니까. 내 물음에 성지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난 그럼 됐다고 대답하고 손을 놓아주었다. 세척이라도 잘 했으면 되었지 무얼. 그렇게 생각하며 딜도를 성지훈 손에 쥐여주고 젤을 꺼내 내 두 손에 듬뿍 짜내었다. 그리고 젤 범벅인 손으로 딜도를 잡았다. 마치 성기를 애무하듯이 천천히 손을 움직여 딜도의 귀두 부분을 한 손으로 문지르며 다른 한 손으론 기둥을 추삽질했다. 그 행위에 성지훈이 하아 들뜬 숨을 내뱉었다.

“자 이제 됐다. 젤이 고르게 잘 묻었어.”

“하아…….”

들뜬 숨을 내뱉는 성지훈의 코에 코를 비비며 말한다.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알지? 부탁할게.”

“…어.”

성지훈의 새빨간 혀가 제 입술을 훑고 사라진다. 그 야시시한 느낌에 꿀꺽 침을 삼킨 때 성지훈이 잠깐 머뭇거리다가 손가락 두 개를 입가로 가져간다. 아, 손가락을 적셔서 넓히려는 건가. 나는 그런 성지훈의 손을 잡아 아직 젤로 축축한 손으로 성지훈의 손을 적셔 주었다. 그러자 가볍게 내 손등에 코를 비빈 성지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자세를 바꿔 내 쪽으로 엉덩이를 들은 성지훈이 축축하게 젖은 손가락으로 항문 주위에 원을 덧그린다. 마치 주름 하나하나를 세듯이 그렇게 원을 그리던 손가락은 천천히 내부로 들어가 모습을 감춘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았지만 관절의 움직임으로 손가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낌이 왔다. 안에서 원을 그리며 주름을 하나하나 펴던 손가락은 내부가 조금씩 풀어지며 두 개로 늘어났고.

두 개로 늘어난 손가락은 더 크게 주름을 늘리며 내부를 넓히다 중간중간 내벽을 긁으며 쾌감을 찾는 듯했다. 그렇게 손가락은 세 개로 늘어났고 세 개로 늘어난 손가락은 내부를 넓히는 것보다는 쾌감을 찾아 움직이는 듯했다. 손가락이 한 마디만 남긴 채 밖으로 나왔다가 자시 내부로 쑥 들어가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하아… 읏… 으응…….”

“성지훈… 이거로만 갈 거야?”

내 질문에 성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직 미련이 있는지 내부에서 손가락은 나오지 않았고 그대로 뿌리까지 손가락을 박아 안을 휘저은 뒤 천천히 손가락을 빼내었다. 질척한 소리와 함께 항문 밖으로 손가락이 나오고 핑크색 딜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젤이 채 마르지 않아 번들거리는 딜도가 벌름벌름 거리는 성지훈의 항문에 맞닿았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임을 멈추며 딜도를 환영했다. 서서히 항문이 벌어지고 딜도가 천천히 내부로 진입해 들어간다. 부드럽게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딜도를 보며 하아 들뜬 숨을 내뱉으니 읏하는 소리와 함께 성지훈이 부르르 떨었다. 뭐지 싶어 보니 바짝 선 성지훈의 성기에서 주르륵 하얀 액체가 떨어지고 있었다. 넣는 것만으로 가볍게 가버린 건가. 이렇게 야해 빠진 몸이 되었구나.

“예뻐 성지훈.”

“하아… 읏…….”

“예뻐.”

“하으읏……!”

그런 성지훈이 너무너무 예뻐 보여 이야기하자 딜도를 끝까지 집어넣은 성지훈이 그대로 한 번 더 옅게 가버렸다. 약간의 정액이 실크같이 부드러운 침대보로 후드득 떨어진다. 하아, 하아. 성지훈이 들뜬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자세를 바꾸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가 치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상체는 아래로 숙이고 하체는 바짝 세운 상태로 있었지만 지금은 몸을 돌려 얼굴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하고 치부가 잘 보이도록 다리를 벌렸다. 이 자세가 더 부끄러울 텐데. 라고 생각하는데 성지훈이 들뜬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가슴…….”

“응?”

“만져…줫…하읏…….”

“음… 먼저… 보여주면.”

어떻게 만지는지 보여줄 수 있어? 내 물음에 성지훈은 딜도를 잡지 않은 손을 들어 올렸다. 치부에서부터 천천히 올라가는 손을 따라 성지훈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치부 배 배꼽 명치, 가슴. 가슴에 도달한 손은 검지손가락을 뻗어 유두에 붙어 있는 밴드를 건드린다. 가에부터 틱틱 손으로 건드리고 그것을 손으로 잡아 천천히 뜯어내는 모습을 보니 마치 입맛이 돋는 것처럼 입안에 침이 고인다. 이윽고 새빨간 유두가 성이 잔뜩 난 채 모습을 보이고 성지훈은 더듬더듬 손을 움직여 유두를 만지려 했다. 거기에 나는 반대쪽도 뜯어야지. 라며 주위를 끌었고 성지훈은 들뜬 숨을 내뱉으며 더듬더듬 반대쪽 밴드에 손을 뻗는다.

“못 뜯겠으면 뜯어 줄까?”

내 말에 성지훈은 멍하니 날 바라보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에 나는 성지훈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여 입을 벌렸다. 앙. 유두를 덮고 있는 밴드를 입으로 물어 그대로 뜯어낸다.

“흐응……!”

“퉤. 유두가 볼록 튀어나온 게 귀엽다.”

“시끄러…….”

내 말에 반박한 성지훈은 곧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검지손가락으로 유륜에 원을 그리며 자극한다. 그러다 집게손가락으로 유두를 잡아 돌리며 자극하다 유두를 잡아당긴다. 아픈 게 더 좋은 걸까 생각하다가 딜도가 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딜도도 움직여야지.”

“읏… 하아… 응으…….”

유두를 잡아당기며 애무하던 성지훈은 딜도를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딜도를 빼다가 퍽 소리와 함께 딜도를 박아버리는 것을 보며 후우 숨을 내뱉자 성지훈이 허리를 튕긴다.

“흐응……!”

“하아…….”

성기가 선 것이 느껴진다. 옷 때문에 성기가 갑갑하다. 그럼에도 난 내 성기를 꺼내거나 하지 않았다. 지금은 성지훈에게 집중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지훈은 다시 천천히 딜도를 꺼내고 퍽 소리 나게 딜도를 박았다. 나갈 때는 부드러운 걸 좋아하지만 박을 때는 거칠게 하는 걸 좋아하나? 그런 것치고는 많이 느끼는 것 같은데.

“읏… 흐응… 하아… 읏… 뭔가… 이상해…….”

“왜? 어디 아파? 너무 세게 박았어?”

“너…읏… 무슨 짓… 아앙… 한…거야… 응……!”

딜도로 내벽을 휘젓던 성지훈이 무언가 이상하다며 잔뜩 들뜬 상태로 내게 물었다. 그러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는 것을 보니 어딘가 아프다든가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무슨 짓이라니?

“나 아무 짓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응… 핫… 어프으을!”

“앱? 너한테는 아무것도 안 걸려 있어.”

내 말에 성지훈은 날 가만히 바라보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들뜬 숨을 내뱉던 성지훈이 말했다.

“그럼… 하아… 왜 이렇게… 읏 좋은 건데…….”

“뭐?”

“좋아… 읏…….”

한마디로 혼자 했을 때 보다 지금이 더 기분 좋아서 내가 앱을 사용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 어? 보는 거에 느끼는 스타일? 아니 아니, 이게 아닌가. 그런데 왜 지금이 더 기분 좋다고 생각하는 거지 정말로 보는 거에 느끼는 건가. 성지훈은 날 바라보며 딜도를 천천히 빼다가 퍽 소리와 함께 다시 박았다. 읏 소리와 함께 성지훈이 가볍게 갔는지 성기가 꺼떡거리며 하얗고 불투명한 액체를 내뱉었고 성지훈은 계속 허리를 튕기며 오르가즘을 느꼈다. 나는 그런 성지훈을 가만히 바라보다 성지훈에게 다가갔다.

“혹시 말이야.”

“하아… 읏… 흐응…….”

“자위하면서 날 대입해서 그런 거 아닐까?”

내 말에 성지훈은 가만히 날 바라보더니 곧 얼굴이 새빨개졌다. 귀까지 새빨개진 얼굴에 약간 당황하는데 성지훈이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어, 어 뭐지 싶은데 내 한마디로 뭔가 더 느끼게 된 것인지 아니면 내벽이 수축하면서 딜도가 좋은 곳을 찌른 것인지 허리를 몇 번 더 튕기던 성지훈은 그대로 세차게 가버렸다. 이번엔 훨씬 더 묽고 많은 양을 뿜어냈는데. 그 양이 꽤나 많아서 내 얼굴에도 좀 튀었다. 내 모습을 본 성지훈은 훨씬 더 거친 숨을 내뱉었다.

“하아… 하앗… 윤계인… 읏… 너…….”

얼굴에 튄 정액을 손으로 훑었다. 약간 묽지만 찐득한 감이 있어 손에 모인 정액에 잠깐 무얼 할까 고민한 나는 지난번 내 성기를 입에 물었던 성지훈이 떠올랐다. 분명 그때 내 정액을 그대로 삼켰었지? 어떤 맛이려나.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지체 없이 입안으로 그걸 집어넣었다. 비릿함이 입 안을 가득 메우고 정액 특유의 냄새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걸 그대로 혀로 끌어모아 숨을 쉬지 않은 채 꿀꺽 삼켰다. 용케도 이런 걸 한가득 삼켰었잖아. 그러고 보니 그다음에 분명 포도 에이드로 입안을 헹궜었지 나도 입안을 헹굴 만한 게… 있다. 아주머니가 가져다주신 멜론을 생각해 냈을 때는 이미 성지훈이 먼저 나를 향해 손을 뻗은 뒤였다. 나는 그대로 성지훈 위에 엎어졌다.

“성지훈?”

몸을 일으키며 성지훈을 부르자 성지훈이 들뜬 숨을 몇 번 내뱉더니 항문에 꽂혀 있던 딜도를 천천히 빼내었다. 딜도가 빠져나가고 아직 아쉬운 것인지 자극의 탓인지 벌름벌름 거리는 성지훈의 항문이 야해 빠졌다. 딜도를 한 쪽에 치워버리는 성지훈의 행동에 이제 끝났나 싶었는데 성지훈이 두 손으로 자신의 항문을 벌렸다. 옴칠옴칠거리는 구멍이 시선을 강탈한다. 억지로 시선을 떨궈 성지훈의 얼굴을 바라보자 성지훈이 말한다.

“박아…줘…….”

얘가 지금 뭐라고 했지? 잠깐 서버가 다운된 것 같은 아득함을 느끼고 있는데 성지훈이 들뜬 숨을 내뱉으며 자신의 항문이 나에게 훤히 더 잘 보이도록 벌린 뒤 다시 이야기했다.

“박아줘.”

“아니 아니, 잠깐… 너…….”

“너랑 하고 싶어.”

“아니… 그게… 그러니까…….”

“나랑 하기 싫어?”

“아니! 그럴 리가 있어? 나도 너하고 하고 싶어!”

“그런데 뭐가 문제야.”

뭐가 문제냐니 이제 곧 우리는… 저녁 식사를…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저녁식사를 해야 하긴 하지 그런데? 나 자신의 준비? 그딴 걸 생각하면 백 년 만년 생각만 하고 살게 될 것이다. 그럼? 문제될 게 뭐가 있어? 나는 홀린 듯이 서서히 성지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성지훈의 다리를 잡은 순간.

똑똑.

또다시 노크 소리가 우리를 방해했다.

“…그냥 저녁 안 먹는다고 하면 안 돼?”

“도련님, 계인 학생. 사장님과 사모님께서 오셨어요.”

“…안 돼.”

“젠장…….”

결국 나는 성지훈에게서 비켜섰고 성지훈은 비척비척 일어나 깊게 숨을 내뱉더니 바닥에 떨어진 속옷을 집어 들어 주섬주섬 다시 입었다. 나는 나대로 성지훈의 부모님을 뵙는 자리니 옷을 좀 더 신경 썼다. 넥타이 넥타이가 어디로 갔지. 바닥을 살필 때에 성지훈이 브리프만 입은 채로 내게 다가와 넥타이를 매 주었다.

“아, 고마워”

쪽─ 고맙다는 말에 되돌아온 것은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때에 성지훈은 옷장에서 옷을 꺼내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나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심플하게 검은 바지에 하얀 티셔츠 감색 카디건을 걸친 성지훈은 어딜 보아도 모델 같아 보였다. 분명 하나하나 뜯어보면 심플하다 못해 평범한데… 딱 달라붙는 바지와 가슴 라인이 비치는 흰 티셔츠, 그리고 알게 모르게 시선을 강탈하는 감색 카디건…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하더니 성지훈은 얼굴뿐만 아니라 몸매까지 갖춘 녀석이었지.

“주의할 거 있어? 뭐 부모님 앞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소리라든가.”

“딱히.”

“있지 않아?”

“없어.”

성지훈의 막힘없는 대답에 나는 성지훈을 가만히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성지훈은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지 말라며 머리를 흩뜨렸다. 아니, 보통 그렇잖아. 이런 집안이면 보통 집안을 묻는다던가 아니면 성적을 묻거나 하지 않아? 나 어느 쪽도 자신 없는데? 약간 불안한 안색으로 성지훈을 바라보았지만 성지훈은 딱히 별말 하지 않고 방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주머니가 말만 전달하고 가신 모양이네. 휴, 안도의 한숨을 옅게 내쉬자 성지훈이 생각이 많다며 혀를 찼다.

“걱정할 거 없어.”

그렇게 말하는 성지훈이 너무 믿음직해서 그렇다고 믿고 싶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하고 소설은 다르지. 성지훈네 부모님한테. 최면을 거는 일이 생길지도. 그렇게 생각하며 성지훈을 따라갔다. 성지훈을 따라 도착한 식당은 꽤나 넓었다. 보통은 거실하고 가깝거나 부엌이 바로 옆에 있거나 할 텐데 여기는 아예 식당만 존재했다. 바로 옆에는 넓은 창들이 있었는데 밖으로 약간의 담벼락과 나무들이 보였다. 식탁은 길고 넓은 형으로 상석에는 성지훈의 아버지로 추정되시는 분이 앉아 계셨고 그 옆으로 성지훈의 어머니로 보이시는 분 한 분과 성지훈의 형 성지한과 누나인 성지연이 앉아 있었다.

“어서 오렴.”

어머님의 맞이와 함께 성지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날 대놓고 에스코트했다. 야, 여기서 이러면 곤란한 거 너 아니야? 내가 그렇게 생각하건 말건 성지훈은 미리 세팅 되어 있는 자리로 날 안내하고 친절히 의자까지 빼주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꽤나 놀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상할 만하지 친구라는 애 의자를 빼주고 있는 이 상황이! 그러건 말건 성지훈은 내 옆에 앉았다.

“술은 할 줄 아니?”

“예? 아, 아니요 아직 미성년자라…….”

“이런, 규율이 엄격한 집안이구나.”

아버님의 말에 더듬더듬 대답하자 옆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들고 계시던 와인병을 내려놓으시고 다른 병을 들어서 내 잔에 따라주셨다. 오렌지 주스인가. 내용물을 짐작하는 새에 성지훈에게도 잔을 따라 주시는데 들고 계신 병이 와인병이다. 음, 짐작은 했지만 이미 술은 섭렵했구나. 오렌지 주스를 홀짝이며 주변을 살폈다. 모두 유전자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닮고 잘생기고 예뻤다. 성지훈은 어머님을 닮았네. 아버님에 비해 선이 굵직한 어머님을 보다가 얇은 선을 가진 아버님을 바라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치자 눈을 곱게 접으시며 웃으시는데 와, 사람 주변에 꽃이 핀다는 소리가 이런 뜻이구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허겁지겁 시선을 피하자 이번에 시선을 마주한 것은 성지한이었다. 아버님을 똑 닮은 성지한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흥미롭다는 눈치를 숨기지 않은 채 그대로 날 응시했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눈빛에 슥 시선을 피하자 성지연이 있었다. 아주 골고루 보는구나 나. 이러다 아주 사용인들하고도 일일이 눈을 마주치고 다니겠다? 응? 성지연은 어머님의 분위기에 아버님을 닮으면 나올 만한 상이었는데. 참 다행인지 몰라도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먼저 눈빛을 피하셨다.

“뭘 그렇게 살펴봐.”

“어? 아니, 그게 좀… 하하하…….”

성지훈의 타박에 어색한 웃음소리만 내었다.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슨 소릴 들을 지도 모르겠고 그런 상황에 성지훈은 태평하기만 하고 나보고 어쩌란 거냐 이 자식아. 그런 생각을 할 때에 달그락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이 정도로 들린 거면 일부러 낸 거 맞지? 그런 생각에 시선을 돌리니 어머님께서 날 바라보고 계셨다.

“어색해하지 않아도 된단다. 이름이 계인이… 맞지?”

“아, 네 맞습니다.”

“많이 긴장했네. 괜찮으니까 긴장 풀렴. 겨우 친구 부모님일 뿐이야.”

아니, 겨우 친구 부모님이 아니지 말입니다. 보통 친구 부모님이랑은 다르잖아. 레벨이 다르다고. 어머님과 아버님의 말씀에 어버버거리고만 있자 성지훈이 컵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놀리지 마.”

“얘도 참, 그렇게 무식하게 잔을 내려놓으면 예의에 어긋나잖니.”

그게 문제입니까. 놀린다는 말에 부정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성지훈의 태도를 지적하신 아버님은 그 뒤 깔끔한 미소를 보이시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마치 동조를 바라는 것만 같아 부담되어 슥 시선을 피하자 하하 소리 내어 웃으셨다. 나 알게 모르게 놀림 받고 있는 건가. 성지훈 쪽을 슥 보니 무언가 불만 어린 얼굴로 아버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놀림 받고 있는 거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혹시 성지훈 친구는 처음이라 성지훈 반응을 보고 싶으신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애피타이저로 나온 훈제 연어를 찍어 먹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니?”

연어를 씹고 있던 입이 뚝 멈췄다. 지금… 뭐라고 하신 거지? 한 손으로 입을 가진 채 눈을 또르르 굴려 어머님을 본 나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계시는 어머님을 발견했다. 거기에 예의에 어긋나지만 손을 들어 나와 성지훈을 번갈아 가리키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꿀꺽 입안에 있던 연어를 삼킨 채 눈치만 보고 있자 성지훈이 와락 성을 냈다.

“그딴 걸 왜 물어!”

“궁금할 수도 있지 무얼 그러니. 그래서 어디까지 나갔니?”

“묻지 마!”

너도 대답하지 마. 성지훈이 손에 주스를 쥐여주며 으르렁거리듯이 이야기한다. 그러자 그때를 노렸다는 듯이 성지한이 말했다.

“그렇게 밀어붙이다가는 도망갈걸.”

“안 가. 이 녀석은. 나한테 푹 빠졌거든.”

“아니, 어딜 봐도 빠진 건 너 같은데…….”

성지훈의 당당한 대답에 태클을 거는 것은 성지연이었다.

“다들 봤지? 의자 빼주고 마실 거 챙겨 주고 그 성지훈이 말이야…….”

“내 거 챙기는 게 뭐가 나빠?”

“와… 내 거래… 내 거라니… 천하의 성지훈이……!”

천하의 성지훈… 너 집에서도 이런 취급이냐. 심지어 옆에서 성지한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 약간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성지훈을 바라보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완전 코스요리 같네. 약간의 채소가 곁들여진 맑은 콩소메를 보며 생각했다. 보통 식사할 때에는 가장이 먼저 숟가락을 들어야 식사를 하는데 이 집은 어떤지 모르겠네. 주변을 살피니 모두 스푼을 들고 있었다. 자유롭나 보다. 하지만 버릇처럼 아버님과 어머님이 먼저 한 스푼 뜰 때까지 기다렸다가 스푼을 들었다. 어떻게 먹어야 하더라. 어떻게 떠먹더라? 밖으로? 안으로? 음, 모르겠다. 그냥 한 방향으로만 먹으면 되겠지 뭐.

“맛은 어떠니?”

“네? 아주 맛있습니다.”

“입에 맞다니 다행이구나.”

순순한 답변에 아버님은 빙긋 웃으시며 콩소메를 떠드셨다. 아 저 웃음 뭔지 알아 배부른 사자 미소. 성지훈이 자주 짓는 미소야. 나 뭐 했나? 궁금한 마음에 슥 성지훈을 바라보자 얘는 또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콩소메를 떠먹었다. 뭘까… 이 묘하게 내가 포함되어 있지만 소외된 느낌은.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오가는 그런 기분인데. 그러고 보니 아까 아버님이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냐고… …성지훈도 대놓고 내 거라고… …이미 사이를 다 까발린 거야?! 화들짝 성지훈을 바라보자 성지훈이 왜 그러냐고 묻는다.

“아니… 그게… 어… 잠깐만…….”

버퍼링이 좀 생겨버렸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한 거야 이 녀석은. 잠깐 내가 숨을 돌리는 듯하자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비어 버린 잔에 다시 주스를 따라주셨다. 정신이 없어 감사하다는 말도 못한 채 주스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자 상황을 지켜보던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지훈이 너 설마 우리한테 들켰다고 말 안 했니?”

“…….”

“너도 참. 이런 중요한 일은 이야기해야지. 어쩐지 너무 빠르게 자리가 마련되었다 했더니. 미안하다 계인아. 우리 애가 좀 무신경한 부분이 있어서 말이야.”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죠. 들킨 거였냐고. 심지어 나랑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하셨었어. 이래서 물어봤었잖아 주의할 거 있냐고. 있었잖아. 들켰다는 중요한 사항이 있었잖아.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꾹꾹 눌러 담아 삼켰다.

“그래서 고백은 누가 먼저 했니?”

“아버지. 요새 그런 거 함부로 물어보면 애들한테 인기 없어요.”

“어, 그러니?”

“그렇지. 일단 프라이버시 침해기도 하고… 진도 이야기도 말이야.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빠 엄마 잘못하면 성희롱으로 고소당해. 그런 거 함부로 묻고 다니지 마.”

“그렇구나… 미안하구나. 아줌마 아저씨가 좀 주책이었지?”

“…네.”

“그, 그랬구나… 미안하다.”

나도 이제 모르겠다 막 나가련다. 아버님의 사과를 들으며 나는 콩소메의 버섯을 떠먹었다. 아… 피곤한 기분이다.

“그럼 뭘 물어봐야 하나…….”

“여보, 말이 걸고 싶으면 그냥 말을 걸어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음, 역시 달링. 그래, 사실 계인이 너한테 일방적으로 말을 걸어보고 싶은 거란다.”

“걸지 마.”

“지훈이는 아직도 사춘기인 것 같아서 말이야.”

“누가 사춘기라는 거야.”

아버님의 말씀에 일일이 대꾸하는 성지훈을 바라보다가 스푼을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스푼을 내려놓는 것을 보니 슬슬 다른 요리가 나올 때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짐작이 맞다는 듯이 주방으로 추정되는 문이 열리고 카트를 끌고 아주머니가 들어오셨다. 여러 소스들 위에 작은 생선살이 올려져 있는 생선 요리가 나왔다. 겨자색 소스와 아이보리색 소스 그리고 초록색 묽은 소스가 곁들여진 생선살은 굉장히 부드러웠다.

“아… 맛있다…….”

겨자색 소스와 함께 먹은 생선살은 입안에서 부드럽게 부서졌다. 겨자는 아닌 것 같은데 달달 짭조름한 소스 맛이 좋아 입맛을 다시자 어디서 반 토막 난 생선살이 내 그릇 위로 올라왔다. 방향을 보니 성지훈이 제 생선살을 덜어 나에게 준 것이었다.

“더 먹어.”

“어… 괜찮아.”

“먹어.”

아무래도 도로 가져갈 생각은 없어 보여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니 성지훈은 배부른 사자 같은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어머님 바로 옆에 있던 성지연이 소곤거리며 모두에게 들리게 이야기했다.

“엄마, 쟤 좀 봐. 성지훈 맞아? 닭살 돋아.”

“지훈이가 아빠를 좀 닮았잖니.”

“아닌데. 쟤는 엄마 똑 닮았는데.”

그게 무슨 의미냐는 어머니의 말씀에 성지연은 ‘아 맛있다 오늘 주방장이 신경 많이 썼네.’ 같은 소리만 할 뿐이었다. 성지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머님 눈치를 살피고 조용히 식사를 한다. 그 가운데에서 아버님만 홀로 해맑게 웃으며 너희 엄마 성격이 왜? 라고 말할 뿐이다. 나는 조용히 서열을 파악하고 성지훈이 넘겨준 생선살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는 편이 좋을까… 음… 역시 결혼 이야기는 이르니 약혼식부터 하는 편이 좋겠지?”

“네?”

“혹시 약혼도 이른 사이니?”

“네?”

“설마… 내 아들이 이렇게 매력이 없는 애가 아닐 텐데…….”

어디까지가 농담이고 어디까지가 진담인지 알 수 없는데 일단 내 아들이 매력 없는 애가 아니라는 말은 진담인 것 같다. 엄청 심각한 얼굴로 어머님을 바라보며 우리 달링을 닮은 아이인데 매력이 없을 리 없는데 같은 소리를 하고 계신 걸 보아하니 진담이다.

“저기…….”

“약혼식은 됐어. 강세월 때문에 시끄러웠는데 괜히 일을 더 만들고 싶지 않아.”

“그랬지… 세월이 약혼식이 얼마 전이었지 참…….”

약혼했냐고 그 사람. 게이라고 했으니 상대는 남자겠지. 이 집안 괜찮은 건가. 남자랑 남자가 약혼을 했는데 아무 말도 없다니 굉장한데. 아니면 원래 부잣집은 이런 일들이 빈번한 건가? 생각을 했지만 아무리 상상해도 부잣집 하면 가문과 가문끼리 연을 맺는 정략혼 같은 것들 박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약혼 같은 것도 그런 거 보면서 하지 않나?

“여보, 계인이가 이야기하려고 하잖아.”

“아, 이런. 미안하구나. 정신이 팔려 버려서. 이야기하렴.”

“아, 아뇨 시답지 않은 소리였습니다.”

“네가 하는 말 중에 시답지 않은 소리는 없단다. 편안하게 이야기하렴.”

“아, 네. 그게, SG기업 정도면 약혼같이 커다란 건 기업을 보면서 하지 않습니까?”

“아아, 우리 집안은 자유연애 파라서 말이다. 선대들이 원치 않은 결혼으로 고생을 많이 했거든.”

보통 그러면 후대에도 강요하지 않나. 선대도 다 이렇게 했어! 라는 식으로. 음, 사상이 많이 열려있구나. 그래서 그렇게 큰 거부감이 없던 건가.

“그래서 우리 아래로는 자유롭게 연애하고 결혼시키기로 했단다.”

“그렇군요…….”

“더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도 된단다. 얼마든지 물어보렴.”

“아빠도 참. 아빠만 대화할 기회 독차지하지 마. 분명 나중에 성지훈 쟤가 말도 못 붙이게 할 게 뻔하단 말이야.”

“지훈이가 얌전해 보여도 자기 거엔 집착이 심하지.”

얌전해 보인다고요? 난 쟤 처음 본 날에 쟤가 누구 한 대 치는 거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너무 잘생겨서 잘생긴 값을 크게 할 줄 알았지. 실제로 보니까 그러더만. 애들이 다 피해. 집 안에서는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건가 싶어서 성지훈을 슥 바라보자 성지훈이 ‘왜?’하고 묻는다. 아니, 아니야. 이따가 말할게. 괜히 너희 가족이 가진 이미지와 네가 쌓아 올린 이미지들을 망치기 싫어서 그래.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계인이는 평소엔 뭘 하고 지내?”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니?”

“아, 그게…….”

“쓸데없는 거 물어보지 마.”

성지연과 성지한의 물음에 성지훈이 인상을 쓴 채 질문을 막아버린다. 거기에 성지연과 성지한이 궁금해할 수도 있지 않냐며 투덜거리다 성지훈이 까득 포크로 접시를 긁으니 조용해진다. 큼큼 거기에 어머님이 헛기침을 하자 성지훈이 혀를 차며 포크를 내려놓는다. 정말 쌓아 올린 이미지들이 있을까…….

“지훈이하고는 어쩌다가 만났니?”

“네? 어… 어쩌다 보니…….”

더 난감한 질문에 내가 얼버무리며 시선을 슥 피하자 어머나 내가 예민한 질문을 했구나 하며 어머님이 나를 배려해주셨다. 그 사이 코스가 바뀌고 이번에 나온 것은 고기였다. 정확히는 스테이크라고 해야 하나 위에는 하얀 튀김과 익힌 채소가 올려져 있었다. 이 튀김은 뭐지. 포크를 대자 파사삭 부서지는 게 꾸밈용으로 올려놓은 건가 싶은데. 그냥 채소만 올려져 있으면 그냥 썰어 먹겠는데 이렇게 꾸며져 있으니 어떻게 먹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다른 사람들이 먹는 걸 보면 되려나 하고 시선을 돌리는데 다들 나만 바라보고 있다. 그것도 매우 즐거운 기세로. 나 또 놀림 받나? 생각하는데 성지훈이 손을 뻗어 내 접시를 들고 갔다.

“이런 것도 못 써냐.”

“아니…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그냥 먹어.”

“이 튀김은 뭐야?”

“라이스페이퍼 장식용이야.”

의외로 친절하게 알려주는 성지훈의 자세에 나름 놀라움을 표하고 있었는데 어째 주변이 더 놀라워한다. 내 접시를 들고 가 예쁘게 소리 없이 잘라 준 성지훈은 접시를 도로 돌려준 뒤 자신의 접시에 집중했다. 장식용이긴 해도 식감을 살려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라이스페이퍼를 부셔 채소 위에 올려 먹으니 독특한 식감이 났다. 고기와 채소와 라이스페이퍼라. 나쁘지 않아. 그렇게 스테이크를 포크로 찍어 먹는데 옆에서 시선이 느껴져 옆을 보니 성지훈이 뭔가 불만 어린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런 얼굴 함부로 하지 마.”

“어떤 얼굴인지 모르겠는데…….”

“지훈이 너도 참… 걱정 마렴. 계인아 귀여워.”

“맞아! 난 깜짝 놀랐다니까? 성지훈이 이렇게 귀여운 애를 데려와서!”

“그렇지… 솔직히 지훈이 애인이라고 해서 걱정했었는데…….”

“걱정은 무슨. 지훈이가 알아서 다 하잖니. 너희보다 지훈이가 똑바른 거 알면서들.”

“어… 감사합니다?”

어머님, 성지연, 성지한, 아버님의 말에 나는 의문형이지만 감사를 표했다. 일단 좋게 봐주고 있다는 거니까 뭐. 스테이크를 먹는데 뭔가 양이 줄지가 않는다. 그래서 옆을 보니 성지훈이 또 자신의 스테이크를 나눠주고 있었다. 아니, 얘가 오늘따라 왜 이래. 아니, 이제 배불러 그만 줘. 성지훈에게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 보이자 그제야 성지훈은 내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을 멈추었다. 그다음 코스로 나온 것은 오렌지 셔벗이었다. 디저트인가. 가볍게 먹고 있는데 그다음 나오는 게 또 있었다. 치즈? 치즈를 따로 줘? 보통 스테이크에 얹어 나오거나 하지 않나 하는데. 디저트가 또 나왔다. 아까 그 셔벗은 디저트가 아니라 그냥 코스였던 것이다. 여기까지 먹으니까 너무 배가 불러서 디저트는 괜찮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온 가족이 난리가 났다.

“우, 우리가 뭐 불편하게 한 거 있니?”

“불편한 점 있으면 참지 않고 말해도 된단다.”

“역시 아까 귀엽다고 해서 기분 나빴어? 미안 역시 남자애한테 귀엽다는 소리는 좀 그랬지?”

“그래. 지훈이 애인이라 걱정한 건 상대가 지훈이라서 걱정한 거지 상대를 걱정하고 한 말이 아니었어…….”

“아뇨! 진짜 배가 불러서 그래요 정말로 배가 불러요!”

나는 거의 배가 부르다고 사정했고 결국 상황을 정리해준 것은 성지훈이었다. 자기랑 나눠 먹을 테니 걱정 말라는 녀석의 말에 다들 안도한다. 아니, 배부른데. 다행스럽게도 성지훈이 나눠 준 것은 몇 입 되지 않았다. 와 살면서 먹는 게 풍족해서 난감한 경험을 하다니. 커피와 티 중 티를 선택하자 잠시 후 홍차 한 잔이 내 앞에 놓였다. 대충 상황을 보니 이것만 마시면 식사가 끝나는 것 같았다. 완전 코스식이네. 집에서도 이렇게 먹다니 굉장하다 진짜.

“사실 말이야…….”

“네? 네.”

“더 좋게 대접하고 싶었는데 지훈이가 너무 크게 대접하면 도망갈 거라고 하더구나.”

“더 크게요? 어… 이것도 충분히 큰데요?”

“그래도 이왕 먹일 거면 좋은 걸 먹이고 싶었는데 말이야.”

“아뇨. 아뇨. 괜찮아요.”

좋은 거라니. 뭔가 상상 간다. 3대 진미라든가 한 뿌리에 천만 원 상당의 버섯이라든가 아니면 금가루가 뿌려진 음식이라든가. 분명 부담스러워 체했을 거다. 소리 없이 차를 마시자 약간 더부룩했던 속이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여전히 미친 듯이 배는 불렀지만 하여튼. 달그락. 바로 옆에서 성지훈이 텅 빈 잔을 내려놓았다.

“우리 들어가 볼게.”

“들었어? 우리래. 우리!”

“그만해 성지연.”

“내가 뭐.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그랬니. 안 그랬으면 내가 이렇게 놀라는 일도 없었잖아.”

“내가 널 왜 신경 써야 하는데?”

“이봐 이봐. 맨날 이런다니까. 그러니까 계인아? 얘가 원래 이렇다니까! 남은 하나도 신경 안 쓰고 말이야…….”

“시끄러워. 가자 윤계인.”

성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고 이미 될 대로 되라지 상태인 나는 성지훈을 따라 일어나며 주변 분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앞에서 잠깐 기다린 성지훈은 내 손을 덥석 잡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어머 어머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성지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이끌었고 나는 그런 성지훈을 따랐다. 성지훈은 멈추지 않고 곧장 방으로 향했다. 덜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성지훈은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곧장 거칠게 문을 닫고 나를 문에 바짝 기대게 만든 채 나에게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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