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이리 와.”
결국 난 뻔뻔하게 나오기로 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침대를 툭툭 치며 말하자 성지훈이 성큼성큼 침대로 다가온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잘 짜인 근육들이 요동을 친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보다가 바로 옆에 온 옆태를 보니 침이 절로 넘어갔다. 특히나 돌출된 가슴 근육을 볼 때는 정말 침이 넘어갔다. 옆에 앉은 성지훈은 날 보지 않은 채 정면만 응시했다. 난 그런 성지훈의 옆태를 마치 핥듯이 훑어본 뒤 슬쩍 성지훈의 손을 잡았다. 성지훈은 내 손을 피하지 않았다. 내 손은 처음 손을 시작해 성지훈의 팔을 지나 목을 스친 뒤 성지훈의 얼굴에 닿았다.
그대로 고개를 들어 성지훈의 코에 코를 맞대 비비자 성지훈의 손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손이 내 뒤통수를 쥐기 전 고개를 틀어 성지훈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맞닿는 말캉한 입술이 좋아 그대로 몇 번 입술을 맞대며 쪽쪽 거리자 성지훈이 내 뒤통수를 잡아 그대로 입술을 눌러 왔다. 그대로 입을 벌려 성지훈의 혀와 내 혀를 얽어 빨았다. 달다. 전부터 느꼈지만 남의 침이 달 리가 없지만 이상하게 성지훈의 입은 달다. 입이 달다 같은 건 성적 판타지인 줄 알았는데. 한참 얽히고 빨리고 물리던 입이 떨어지자 들뜬 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만지고 싶어… 만져도 돼?”
“…어.”
내 부탁에 성지훈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손을 내려 탄탄하고 단단한 복근을 부드럽게 만지며 복근 선을 따라 손가락을 놀렸다. 간지러운 것인지 성지훈이 몸을 움찔거린다. 이에 괜찮다는 듯이 복근을 토닥이자 성지훈이 묘한 얼굴로 날 내려다보았다. 괜찮아 아프게 안 해. 천천히 손을 복근을 타고 갈비뼈를 지나 가슴에 안착했다. 손바닥에 툭 튀어나온 유두가 닿아 기분이 야릇해졌다. 그렇게 뭉그적 가슴을 애무하다 가슴을 쥐어 주무르며 유두를 주무르자 성지훈이 신음을 내뱉는다.
“읏…….”
“아프면 말해야 해?”
“알았…어…….”
바짝 서 있는 유두가 귀엽다. 그대로 유두와 유륜을 함께 긁자 성지훈이 허리를 들며 가슴을 내게 밀착했다. 그 모습에 더욱 꼴린 나는 반대쪽 유두를 검지와 엄지로 꼬집듯이 잡은 뒤 끝을 혀로 핥았다. 몇 번이나 핥아대다 손을 놓고 입으로 완전히 유두를 잡아먹은 뒤 혀로 뭉그적 핥다 입으로 쪽쪽 빨아들이자 성지훈이 허리를 뒤틀었다. 기분 좋은가? 아님 간지러운가? 묘하게 알 수 없는 반응에 혀로 유두를 굴리며 쪽쪽 빨다가 입을 떼자 길게 은색 실이 이어지다 끊긴다.
“하아… 하아…….”
“기분 좋았어?”
“…어…….”
“다행이다.”
기분 좋았다는 성지훈의 반응에 만족감을 느끼며 성지훈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붉게 물든 채 번들거리는 한 쪽 유두와 마찬가지로 붉게 물들어 툭 튀어나온 반대쪽 유두, 흥분감에 울긋불긋해진 몸과 또다시 얼굴을 가린 팔.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은데 부끄러운 것인지 아니면 감추고 싶은 것인지 매번 얼굴을 가린다. 나는 성지훈의 팔을 손끝으로 쓸며 말했다.
“얼굴… 보여주면 안 돼?”
그러자 성지훈이 팔을 내려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약간 울긋불긋해진 얼굴이 귀여워 입가에 입을 맞추며 침대에 누운 성지훈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매번 느끼지만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을 때만큼 야릇한 느낌이 드는 때는 없는 것 같다. 근육 지고 오밀조밀한 몸과 갸름하고 잘생긴 얼굴이 한눈에 보이며 성지훈의 치부와 가장 가깝다. 야한 기분이 드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성지훈의 바지를 잡았다.
“바지 벗겨줘?”
“됐어.”
내 물음에 성지훈이 침대 아래로 내려가 자신의 바지 버클을 풀고 바지를 내렸다. 딱 맞게 만들어진 드로즈 팬티는 이미 앞섶이 두둑하다. 성지훈이 드로즈 팬티를 벗자 성지훈의 성기가 퉁 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거대한 존재감에 잠시 위압감을 느끼긴 하지만 거의 매일 보다 보니 조금은 익숙해졌다. 성지훈은 그대로 뚜벅뚜벅 걸어 침대 위로 올라와 내 앞에 다리를 벌리고 누웠다. 그리고 보니 학교에서도 한 번 섰었는데 풀어주지 않았구나. 성지훈의 쉬는 시간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우리가 같이 있던 시간에 성지훈의 성기가 가라앉았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나는 성지훈의 성기를 부드럽게 잡고 물었다.
“한 번 풀어줄까?”
“…됐…어. 얼른… 넣어…….”
성지훈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성기를 놓은 다음 손가락에 콘돔을 끼우고 젤을 잔뜩 짰다. 아 맞다 성지훈한테 아네로스를 침으로 적시지 말라고 말하는 걸 잊었는데. 질척한 손가락으로 성지훈의 애널을 둥글게 맴돌며 성지훈에게 말했다.
“있잖아. 너 아네로스로 자위할 때 침으로 적셔서 했잖아.”
“하아… 그게… 읏 왜…….”
“그러지 말고 젤로 그냥 푹 적셔서 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신경… 꺼 으읏.”
그렇게 말하며 불시에 애널 주변을 맴돌던 손가락을 애널에 집어넣었다. 여전히 성지훈의 애널은 손가락을 조여 왔고 나는 그 가운데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며 안을 넓히기 시작했다. 애널을 둥글게 굴리며 손끝으로 내벽을 자극하니 성지훈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에 맞춰 두 번째 손가락을 집어넣자 젤이 좀 과했는지 애널 밖으로 흘러내렸다. 번들거리는 애널에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가 질척거리는 것을 보니 절로 입이 마르고 침이 고여 혀로 입을 축이고 손가락을 놀렸다. 손가락이 두 개가 되면 처음엔 전립선을 찾아가는 편이 좋다. 손가락이 늘어난 만큼 성지훈도 버거울 테니 쾌감으로 그것을 풀어주려는 것이다.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내벽을 더듬자 안에서 약간 튀어나온 곳이 느껴진다. 그곳으로 부드럽게 다가가 지그시 눌러주자 성지훈이 허리를 크게 튕겼다.
“하읏……!”
계속해서 전립선을 지그시 누르며 손가락을 꿈틀거리자 성지훈이 자신의 입을 막은 채 억눌린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뭔가 겁탈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성지훈의 입을 막고 있는 손을 잡아 내린 뒤 입을 맞췄다. 가볍게 혀로 입안을 훑고 난 뒤 입을 몇 번 더 맞추고 떼어 내자 성지훈이 달뜬 숨을 내뱉는다.
“입 막지 마.”
“하아… 알았…어… 읏…….”
“착해.”
그렇게 말하며 성지훈의 입술에 몇 번 더 키스를 하고 내벽을 휘젓자 성지훈이 허리를 들며 신음을 내뱉는다. 나는 그대로 천천히 피스톤 질을 하듯이 손을 움직였다. 넘친 젤 덕에 질척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방 안에서 울리고 성지훈의 성기는 바짝 선 채 선액을 줄줄 흘렸다. 여전히 깨끗한 치부가 축축이 젖어 드니 목이 말라 오는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피스톤 질을 하던 것을 조금 속도를 붙이자 성지훈이 허리를 조금씩 떨어왔다. 다행히 기분이 좋은가 보다 생각하며 전립선을 꾹 눌렀다. 그러자 성지훈이 크게 허리를 튕기며 가볍게 가버렸다.
“하아… 하아…….”
“하아…. 이제 아네로스 쓸 건데 괜찮아?”
“괜…찮아…….”
성지훈의 대답에 꺼내 두었던 아네로스를 손에 들어 젤을 듬뿍 묻혀 이번에도 성지훈의 애널 주변을 맴돌다 천천히 내부로 진입했다. 아네로스를 끝까지 밀어 넣고 가만히 기다리면 천천히 아네로스가 근육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움직임을 볼 때마다 성지훈에게 꼬리를 달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니, 그런 매니악 한 걸 해줄 리가 없잖아. 물론 부탁하면 들어주겠지. 하지만 이 이상 더더욱 변태로 찍히는 짓을 하고 싶지 않다. 내적으로 더 멀어질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나니까. 뻣뻣이 선 성지훈의 성기는 아네로스가 움찔거릴 때마다 움찔움찔 움직이며 또다시 찔끔찔끔 선액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나는 역시 한 번쯤은 성지훈의 성기를 풀어줘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성지훈의 성기를 잡았다.
“읏…….”
성기를 잡히자 성지훈이 날 내려 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손을 움직여 성지훈의 성기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입으로 무는 것은 무리여도 손으로 몇 번 풀어주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 천천히 기둥을 잡아 흔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귀두를 잡아 주름을 쓸고 주무르자 성지훈이 천천히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마치 섹스를 하는 모양새에 묘하게 흥분되어 손놀림에 더욱 집중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성지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한 손으로는 내 뒤통수를 잡아당겨 키스를 하고 한 손으로는 기둥을 잡은 내 손과 겹쳐 잡아 마구잡이로 흔들기 시작했다.
“츄웁 읍…….”
몇 번이나 입과 입이 맞닿았다가 떨어지고 마치 내 손이 성지훈에게 범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즈음 성지훈이 내게 깊게 입을 맞추며 사정했다. 내 손은 정액 범벅이 되어 여전히 성지훈의 성기를 잡고 있었고 사정을 한 성지훈은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다시 침대 위에 누웠다. 나는 그런 성지훈의 애널에서 아네로스를 천천히 뽑았다. 그러자 한껏 벌어졌던 애널이 옴칠옴칠 떨며 넓어졌다 좁아지는 모습을 보니 약간 급해지기 시작했다. 몸이 한껏 달아올랐을 때 딜도를 쓰는 편이 좋겠지. 나는 정액이 묻은 손을 티슈로 닦아내고 딜도를 손에 들었다.
핑크색 실리콘으로 된 딜도는 말랑하면서도 단단하고 탄력이 있었다. 아직 딜도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을 것 같아서 수동으로 움직이는 딜도를 샀는데. 그것을 보는 성지훈의 표정은 어마무시했다.
“아, 이거 한 번 세척해서 올게.”
“됐어… 그냥… 넣어…….”
난 그런 성지훈의 입가에 촉촉 입을 맞추고 딜도를 세척하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성지훈의 손에 잡혀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엔 딜도를 세척하지 못 한 채 콘돔을 끼우고 젤을 칠한 뒤 옴칠옴칠 떨고 있는 성지훈의 애널 입구에 딜도를 맞췄다. 천천히 부드럽게 안으로 진입시키니 약간 커진 부피 때문인지 성지훈이 깊게 숨을 내쉬며 약간 버거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버거워? 뺄까?”
“하아… 읏… 괜찮…아…….”
“정말로 괜찮겠어? 힘들면 그냥 이야기해도 괜찮아. 아니, 그냥 이야기해줘. 부탁이야. 너랑 기분이 좋아지고 싶은 거지 널 힘들게 하고 싶은 게 아니야.”
“하아… 알았…으니까…….”
넣어. 성지훈의 말에 천천히 딜도를 더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감각적으로 전립선을 찾았다. 한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생각하며 전립선이 있던 방향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딜도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움찔 성지훈이 어느 부위에서 반응을 보였다. 저 부분이구나. 나는 천천히 딜도를 다시 뒤로 물렸다. 이번엔 전립선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거의 끝까지 딜도를 뺀 뒤에 천천히 다시 딜도를 밀어 넣었다. 그렇게 하기를 몇 번 성지훈이 반응을 보이는 것은 열에 두 번 정도였으며 나머지는 약간 버거운 듯이 숨을 내뱉고 있었다. 이대로 속도를 올려도 되는 걸까. 그렇기엔 너무 성지훈이 못 느끼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무르기엔 성지훈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이 정도면 참을 만한 건가?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성지훈의 성기를 함께 애무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이 처음이니까 확실하게 느껴야지 다음에 거부감이 덜 들지. 그게 내 생각이었다. 천천히 딜도를 안팎으로 오가며 그 속도에 맞춰 성기를 흔들었다. 그러자 성지훈이 점점 들뜬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고 그 들뜬 신음에 나 역시 서서히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읏… 하아… 으응… 윤…계인…….”
“하아… 힘들어? 그만할까?”
“아니… 읏… 기분… 좋아… 좀 더… 하아…….”
성지훈의 요구에 나는 성기를 잡은 손을 좀 더 빠르게 하고 딜도를 넣는 손의 속도를 조금 줄였다. 지금은 느끼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딜도가 열에 두 번 중 두 번째 전립선에 닿았을 때 성지훈은 한 번 더 정액을 내뱉으며 가버렸다.
“기분 좋았어?”
“하아… 읏… 어… 하아… 이제… 네 차례야…….”
성지훈의 말에 난 천천히 딜도를 빼며 속으로 각오를 했다. 역시 이번에 산 것은 딜도구나 하는 생각에 좀 무서웠달까. 그러면서도 내가 성지훈에게 하는 것과 내가 성지훈에게 당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딜도를 완전히 빼내고 세 번 정도 갔지만 숨만 거칠 뿐 쌩쌩한 성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늘 샀던 성인용품 상자를 들고 왔다. 이에 나는 속을 비울 겸 손을 씻고 올 테니 준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 관장약 어디 있어?”
“그건… 읏… 왜… 하아…….”
아직 잔열이 남아 있는지 성지훈이 달뜬 숨을 내뱉으며 물었다. 거기에 난 솔직하게 답변했다.
“그거 쓰려면 속 비우고 와야지.”
“…하.”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날 보는 성지훈에 난 성지훈이 들고 있는 박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거 딜도 아니야?”
“미친 새끼.”
“어… 아니야?”
“…….”
성지훈이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저건 딜도가 아닌 모양이다. 그럼 뭐지? 의아한 눈빛으로 성지훈을 보는데 성지훈이 손이나 씻고 오라며 날 방 밖으로 내쫓았다. 딜도가 아니야? 그럼 대체 뭘 산 거야?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오나홀 쪽에서 서 있긴 했었는데… 오나홀을 샀을 리는 없잖아. 뭐가 모자라서 오나홀을 사? 자기가 쓰려고? 상상을 하려 했지만 뭔가 정신적으로 타격을 받고 말았다. 오나홀로 혼자 자위하는 성지훈이라니 야하긴 하지만 어울리지 않잖아.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내내 성지훈이 무얼 사 왔는지 생각했다. 아니, 성지훈은 성인용품점에서 무얼 사도 어울리지 않아. 그 외모에 성인용품이라니 차라리 여자 하나를 들이는 게 더 어울린다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성지훈은 나와의 성관계를 만족하고 있을까? 잠깐 생각해 보았다. 나와 성지훈은 일방적으로 내 부탁으로 시작해 일방적으로 성지훈이 당하고 있다. …불만이 있을 만한데…. 물 묻은 손을 수건에 닦고 방으로 돌아오자 성지훈이 한 손에 핫 핑크색 오나홀을 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나홀 샀어? 쓸 거야?”
“벗어.”
내가 놀라 묻는데 성지훈이 성큼성큼 다가와 말했다. 음? 하는 사이에 다가온 성지훈이 날 문으로 밀친 상태로 다시 한번 말했다. 벗어. 아니, 벗으라면 일단 벗겠는데 오나홀은 니가 들고 왜 옷은 내가 벗고 있냐. …설마 그걸 나한테 쓰려고? 그러려고 산 거야? 놀란 얼굴로 성지훈을 바라보자 성지훈이 인상을 쓴다. 아, 옷 벗으라고 했지…….
“아니, 나는 괜찮다니까?”
“섰잖아.”
사실이다. 섰다. 성지훈이 아네로스로 갔을 때부터 서 있긴 했다. 그럼 서지 가만히 있겠냐고 그 상황에서. 하지만 난 또다시 이 상황에서 내 성기를 보는 상황을 연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경험은 저번 한 번으로 족했다. 그러나 성지훈 역시 만만치 않았다. 문과 성지훈 사이에 완전히 끼인 나는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설상가상 문은 안에서 당기는 문이었다. 도망갈 구석 하나 없는 상황. 그렇다고 성지훈의 말을 거절하는 것도 힘든 상황. 은근한 대치가 된 상황에서 성지훈이 고개를 숙이더니 내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어, 얘가 진짜 왜 이러지? 나한테 왜 플러팅을 걸고 있어? 하는 사이에 성지훈의 손이 내 셔츠 단추를 풀고 있었다. 나는 성지훈을 말리는 걸 체념했다. 난 결코 성지훈을 이길 수 없으리라.
“알겠어. 내가 벗을게 내가.”
“…….”
내 말에 성지훈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 팔짱을 꼈다. 한번 보자는 식의 그의 모습에 잠깐 위축이 되었으나 곧 당당히 옷을 벗었다. 셔츠를 벗고 바지와 하의를 벗으니 퉁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내 성기가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에 갈 때는 반쯤 시들었었는데 성지훈의 플러팅에 곧바로 정신을 차린 녀석은 감히 성지훈 앞에서 고개를 쳐올리고 있었다. 이런 주인 못 알아보는 녀석. 속으로 내 성기를 타박하고 있을 때. 성지훈이 내 성기를 잡더니 우악스럽게 오나홀 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잠깐만 잠깐만 그렇게 우악스럽게 넣는 거 아니야!”
“시끄러워.”
“시끄러운 게 문제가 아니라… 악, 아파!”
오나홀 속으로 끼어 들어간 성기는 꽉 조이고 뻣뻣한 내부로 인해 고통을 하며 시들었다. 성지훈은 내가 아프다며 오나홀을 잡은 순간 오나홀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오나홀을 뽑아내고 성지훈에게 물었다.
“오나홀 써본 적 없지?”
“…….”
“오늘 한 번 써보자.”
침대로 가서 젤을 찾아 오나홀 속에 듬뿍 짜 넣은 뒤 성지훈의 성기를 잡았다. 성기가 잡힌 성지훈은 잠깐 몸을 움찔 떨었지만 날 피하거나 뿌리치지 않았다. 거기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천천히 성지훈의 성기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본래 목적은 이건 이렇게 만져주지 않고 가게 하는 거였는데. 사람이 살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제야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천천히 기둥을 잡아 흔들고 귀두와 기둥 사이의 주름을 엄지로 문질러 애무하다 손바닥으로 문지른 뒤 바짝 세운 성지훈의 성기를 오나홀 구멍에 맞췄다.
“오나홀은 말이야. 그냥 막 쓰면 그냥 실리콘 덩어리일 뿐이야. 안을 적셔줘야 기분이 좋지.”
그렇게 말하며 단숨에 성지훈의 성기로 오나홀을 뚫자 성지훈이 신음 소리를 내며 허리를 튕겼다. 오나홀은 성지훈의 커다란 성기를 받아 더 이상 늘어날 수 없을 만큼 팽팽히 늘어났으며 그만큼 압박을 받는 성지훈은 숨을 몰아쉬며 내게 기대었다. 아 좀 걱정되는데. 이렇게까지 오나홀이 압박을 가할 줄 몰랐던 나는 성지훈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아파? 너무 조여?”
“으윽… 하아… 하아… 조여…….”
“뺄까? 아파?”
내 물음에 성지훈은 땀을 살짝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압박이 심하면 그만두는 편이 좋을 텐데. 성지훈은 그만둘까? 라고 묻는 내게 계속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참 후 압박에 익숙해졌는지 고개를 들은 성지훈은 날 또다시 문 쪽으로 몰아붙인 채 말했다.
“하아… 꽉 잡아…….”
“어? 어, 응.”
성지훈의 요구에 오나홀을 두 손으로 잡자 성지훈이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뭐지 이 상황은. 어… 유사 성행위 ver.성지훈? 말 그대로였다. 유사 성행위 ver.성지훈. 성지훈은 날 문 쪽으로 밀어붙인 채 천천히 허리를 흔들었고 오나홀 안으로 들락거리는 그의 성기가 보였다. 뭐지 진짜. 생각하는 사이에 성지훈의 허리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한다. 꼭 남의 성행위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에 얼굴이 붉어지자 성지훈이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입을 맞춰 온다.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얽혀 오는 혀를 본능적으로 빨고 핥자 성지훈의 허리 짓이 거세진다. 그 거센 힘을 가볍게 잡은 상태로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손에 힘을 주자 성지훈이 인상을 쓰며 내 혀끝을 깨물었다.
“읏… 하아… 하아…….”
“아파…….”
“혀… 읏, 내밀어…….”
그 말에 혀를 내밀자 성지훈의 혀가 부드럽게 내 혀끝을 핥아 오고 그대로 포개져 성지훈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성지훈은 계속해서 내 혀를 핥아왔고 거기에 나도 질 수 없다는 듯이 성지훈의 혀를 핥자 성지훈의 허리 짓이 조금 더 거세진다. 이거 뫼비우스의 띠 같은 상황 아니야? 성지훈의 거친 허리 짓을 느끼며 그렇게 생각했다. 성지훈의 허리 짓이 거세지면 견딜 수 없는 나는 손에 더욱 힘을 주고 내가 힘을 주면 성지훈이 압박감을 더 느껴 나에게 키스를 해온다. 거기에 응하면 성지훈의 허리 짓이 더 강해지고… 어 네버 엔딩 아니야 이거? 그런 생각에 입술을 떼고 성지훈의 얼굴을 보니. 성지훈이 엄청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흥분으로 목까지 잔뜩 붉어진 얼굴은 흥분으로 잔뜩 인상을 쓴 채 거친 신음 소리를 내뱉고 있었고 열기로 가득한 눈동자는 마치 나를 잡아먹는 것만 같았다. 이게 유사 성행위인가? 아니다. 성지훈은 지금 섹스를 하고 있다. 나를 격하게 탐하며 섹스를 하고 있던 것이다. 목이 말라 오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며 입술이 메말라왔다. 메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오나홀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성지훈의 허리 짓으로 인해 팔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다행히 성지훈의 허리 짓에 팔이 밀리긴 했지만 문에 부딪히지는 않았다. 성지훈은 땀이 범벅이 된 채 나를 내려다보다가 깊게 내 입술을 탐하며 그대로 가버렸다. 오나홀 밖으로 튀어나온 귀두에서 정액이 튀고 그걸 그대로 내가 뒤집어쓰게 되자 성지훈이 격한 숨을 몰아쉬며 손을 뻗어 정액 범벅이 된 내 얼굴을 문질렀다.
“하아… 하아…….”
“하아… 나… 씻고 올게.”
다행히 오늘 몇 번이나 사정한 상태라 묽고 냄새가 옅은 정액을 뒤집어썼다. 하아… 열띤 숨을 내뱉으며 말하자 성지훈이 내 팔을 잡았다.
“하아… 하아… 빼.”
성지훈의 말에 아래를 내려 보니 또다시 뻣뻣이 고개를 선 내 성기가 보였다. 난 성지훈의 입에 옅게 입을 맞추었다.
“씻으면서 빼고 올게.”
“…여기서 빼.”
성지훈이 낮게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 목소리에 반응하듯이 내 성기가 까딱인다. 아, 정말 주인 의도를 모르는 녀석 같으니. 꽉 잡은 팔을 풀 생각 없어 보이는 성지훈의 모습에 난 옅게 한숨을 내쉬며 얼굴과 가슴에 튄 성지훈의 정액을 손에 모았다. 아, 이렇게 하니 진짜 나 변태 같잖아. 아니, 변태가 맞긴 하지. 묘한 흥분감이 다시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성기를 잡았다. 기둥을 잡아 마치 소 젖을 짜내듯 위쪽으로 밀어내며 천천히 흔들어 대는데 성지훈의 시선이 느껴져 제대로 사정할 수가 없었다.
결국 눈을 감은 채 성지훈을 상상하며 자위를 했다. 그것도 방금 전 허리를 흔들며 섹스를 하던 성지훈을 상상하면서. 그런 성지훈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본래는 성지훈의 성기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성지훈의 몸을 길들이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하지만 그러기엔 내 미묘한 양심과 상황이 묘하게 굴러가서… 그렇지만 뭔가… 좋았지. 목까지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이나 흥분해서 목에 솟았던 힘줄, 거기까지 생각하니 상상이 다른 곳으로 뻗어 간다. 마찬가지로 붉어진 얼굴에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자위를 하는 성지훈…….
침대를 비트는 발을 따라 쭉 뻗은 종아리를 타고 올라가 탄탄한 허벅지 사이로 들어가면 내 손가락보다 굵고 탄탄한 손가락이 질척한 젤에 흠뻑 젖은 채 애널 속을 자극한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 바짝 서서 선액을 내뱉는 성지훈의 성기와 선액에 흠뻑 젖은 성지훈의 치부와 복근 복근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발달된 전거근과 돌출된 가슴, 처음보다 약간 커진 유룬과 솟아난 유두를 핥고 올라가면 힘줄이 돋아난 목과 새빨간 얼굴에 뜨거운 숨을 내뱉는 성지훈의 얼굴이 보인다.
“하아… 하아……!”
결국 상상한 성지훈의 얼굴에 잔뜩 느껴 사정했다.
집에서 문뜩 손을 보니 손톱이 조금 자라나 있었다. 손가락을 벗어날 정도는 아니지만 하얗게 자라난 부분이 있어 자르기로 했다. 손톱깎이를 찾아 손톱을 자르고 누나의 네일 파일을 빌려 손톱을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성지훈은 손톱을 따로 정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 좀 위험하지 않나? 아니, 아직 애널 자위하는 버릇은 들지 않았으니 괜찮으려나. 그래도 손톱은 관리하는 편이 좋을 텐데. 잠깐 생각을 하다가 성지훈의 손톱을 정리해주기로 마음먹고 누나한테 네일 파일을 빌리기로 했다.
“누나, 나 이거 좀 내일 빌려…….”
생각 없이 들어간 누나 방은 몰골이 말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나는 뭔가 딱 맞는 바지에 요가 선생님들이 입을 만한 상의를 입은 채 요가 패드 위에서 아령을 든 채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 누나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야 갑자기 들어오면 어떻게 해! 놀랐잖아!”
“나야말로 놀랐어…. 뭐해?”
“뭐 하긴 운동하지.”
“운동은 왜 갑자기?”
“갑자기는 무슨… 그냥 살 빼려고 그러는 거야. 요번 주부터 다이어트 좀 하려고.”
“어, 그건 좀 필요했지.”
“…너 잠깐 일로 와봐. 뭐라고? 그건 좀 뭐?”
결국 누나한테 등짝을 내어 준 뒤 누나 침대에 앉아 본격적으로 누나의 운동을 구경했다. 어디서 본 것은 많은지 가끔 인터넷이나 TV에서 보았던 자세들을 이렇게 저렇게 선보였다. 문제는 그 자세를 얼마나 몇 번이나 하는 줄 몰랐고 결국엔 둘이서 괜찮은 다이어트 운동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짜 왜 갑자기 운동을 시작한 거지? 묘한 궁금증이 들었다. 누나는 뭐랄까… 풀어놓은 한 마리의 야생마 같다. 주체할 수 없는 의욕을 가지고 있어 자신이 원하는 바는 무슨 수단과 방법을 내서라도 이루어 내고 만다고 해야 하나.
저번 클럽 사건 때도 그러했다. 누나는 자기가 클럽을 한 번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상 동생한테 거금 5만 원을 뜯겨도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누나가 다이어트를 한다면 뭔가 원하는 바나 원인이 있을 텐데. 잠깐 누나를 가만히 물어보다가 반쯤 농담으로 말을 던졌다.
“애인이라도 생겼어?”
“…티 나?”
그러다. 애인이었다. 누나한테 애인이 생겼다. 그런데… 그게 누군데. 누나는 2학년 때부터 강연우와 썸을 타왔다. 네 거 인 듯 네 거 아닌 네 거 같은 너라는 관계를 쭉 유지해왔고 둘은 애인과 친구 사이의 중간을 계속 유지해왔었다. 물론 유지해온 이유는 강연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엔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고 하면서 누나하고는 그렇게 붙어먹은…. 생각해보니 이런 놈하고 붙어 있던 누나도 참 신기해. 나 같으면 그런 미묘한 관계 얼른 정리해버렸을 텐데. …어쩌면 누나도 정리하고 싶은데 정리하지 못한 거 일 수도. 한참을 누나를 이해하려다가 누나한테 물었다.
“그럼 강연우랑은 어떻게 되는데.”
“? 뭐가 어떻게 돼. 사귄다니까.”
…왜 걔랑 사귀고 있는 건데. 가만히 누나를 바라보자 누나가 굉장히 쑥스럽다는 듯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니, 원래 연우가 자기 학창시절엔 공부만 하고 싶었다는데 내가 계속 대시를 했거든.”
그 네 거 아닌 네 거 같은 네 거 아닌 너의 원흉은 우리 누나였다. 그럼 그 미묘한 관계가 유지되었던 이유를 좀 알 것 같은데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 왜 누나가 걔랑 사귀고 있는 거야?
“그런데 갑자기 미안하다고 하면서 잠수를 타는 거야. 그래서 내가 다시 잡았지. 난 너 아니면 안 된다고 정말 너 좋아한다고. 그랬더니 연우가 계속 너한테 미안하다고 여태까지 기다려준 건 고마운데 나한테 미안해서 거리를 둬야겠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그 자리에서 내가 딱 각을 잡고 말했지 난 너 아니면 안 된다고.”
“개구라 치시네 무슨 영화야?”
“원래 누나의 삶은 영화 같단다. 그걸 이제 알았니? 하여튼 내가 연우 잡았어 너 아니면 안 된다고.”
“그랬더니 사귀재?”
“딱 한 달만 사귀자고 했어. 그래도 안 되면 그냥 포기한다고.”
누나의 말에 깊게 한숨을 내쉬자 누나가 뭐냐며 성질을 내왔다. 이에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 방으로 돌아왔다. 심각하다. 설마 누나가 강연우한테 더 빠져 있었을 줄이야. 그러니까 사람이 점점 멀어졌어야지 갑자기 확 멀어졌냐고 강연우! 그 정신으로 어떻게 학교생활을 그렇게 완벽하게 하고 다정한 학생회장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누나랑 강연우가 사귀게 되었다. 한 달이지만 강연우가 당했던 걸 생각하면 한 달 뒤면 헤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누나에게 최면을 걸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강연우를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다. 아마 강연우에게 제재를 가해야겠지. 누나한테 차마 있었던 일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강연우를 협박할 수는 있다. 한 달은 꽤나 긴 시간이기에 사람이 마음이 변하고 가벼워지기 충분하다. 애초에 어떻게 누나랑 사귈 생각을 다했지 나 같으면 나 때문에 다가가기도 무서울 것 같은데. 한참을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당연하지 답은 내가 가진 게 아니라 강연우가 가지고 있는 거니까.
다음날 학교에 가자마자 정문에서 강연우를 보았다. 곧바로 다가가 악수를 신청하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 저희 누나랑 사귀신다면서요.”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 앞으로 잘 부탁해 계인아.”
손을 맞잡는 악력에 손이 아려왔다. 그럼에도 나는 내색하지 않고 주변을 살짝 훑은 뒤 강연우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례가 끝난 후에 저번에 그 교실로 와.”
“…너…….”
“그럼 갈게요 선배.”
그대로 강연우를 지나쳐 학교 안으로 들어가니 선웅이 놈이 주인 기다리던 개처럼 달려와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경기 일으킨 얼굴로 녀석을 보며 자리에 앉아 준서가 선웅이 놈이 왜 저러는지 알려 주었다. 누나와 강연우가 사귄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졌다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하루아침에 그런 소문이 돌고 애들은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궁금해하는 상황이 펼쳐지는지. 심지어 아닌 척 우리 쪽을 힐끔이는 녀석들도 보였다. 진짜 윤계을 사람 속도 모르고 무슨 짓을 해 놓은 건지.
“그게 알 바야?”
“아니, 궁금하잖아. 계인씨- 알려줘용!”
“징그러워.”
“아 시발 내 귀. 이거 안 들은 귀 삽니다.”
“아니, 이렇게 깜찍한데 징그럽다니 너무한 거 아니냐!”
“그거 영어지? Ggamgik이라고 쓰는.”
“야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새끼야.”
“하나도 안 부러워 병신아.”
“야 냅둬, 냅둬 그래서 어떻다고?”
준서의 되물음에 한숨을 내쉬며 학교가 언제부터 사교의 장이었냐 물으니 원래 학교는 사교의 장이란다. 아니꼬움에 한숨을 내쉬자 눈치 빠른 준서가 이야기를 축구로 돌렸다. 그러자 축구라면 환장을 하는 선웅이 놈이 바로 반응을 해서 주야장천 거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어느 선수가 어떻게 골을 넣었고 우리나라가 어떻게 골을 먹혔고 어느 선수가 어떻게 실수를 했는지 장대하게 풀어내던 녀석은 어느새 다른 자리에 가서 다른 녀석들과 축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와 준서는 서로를 보며 저걸 어째야 하나 하는 사이 선생님이 들어와 제일 크게 떠들고 있는 선웅이 녀석 머리를 출석부로 내려치고 장내를 정리하셨다.
조례에서 선생님이 제일 처음 말씀하신 것은 누나와 강연우의 연애담이었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불분명한 소문으로 교내가 떠들썩하니 자중하고 공부에 집중하라는 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꽤나 이야기가 크게 터진 것 같았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학교 안에 이렇게까지 소문이 나는 걸까.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 조례가 끝난 뒤 선생님이 날 부르시려다가 곧 혼자 무언가 생각하시더니 되었다며 손을 저으셨다. 그래요 연애는 그 두 사람이 하지 제가 하는 게 아닙니다. 저한테 말씀을 하셔도 나오는 게 없어요.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똥?”
“초딩이냐 똥똥 거리게.”
“내가 초딩처럼 귀여워?”
“아니, 왜 귀여운 거에 그렇게 집착을 하는데.”
“요새 귀여운 남자가 대세래.”
“넌 아닌 듯.”
“맞아 넌 확실히 아닌 듯.”
“아 왜 나도 귀여워!”
“그래 너 Ggamgik해.”
“나 다녀올 테니까 쟤 먹이 주지 말고 있어.”
“너 요새 좀 바쁘다?”
준서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교실 밖으로 나오자 여기저기서 시선과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소문을 듣고 진상을 알고 싶어 하는 녀석들이 우리 반 근처에 몰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나는 나를 붙잡으려 하거나 소문이 진짜냐 묻는 녀석들을 보고 잠깐 고민했다. 이거 이대로 가면 강연우랑 만나는 몰골을 누가 볼 것 같은데. 멀리 돌아갈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우리 학교 애들은 진짜 이상한 데에서 끈질기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휴대폰을 꺼내 앱을 실행했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최면이 하나 있지. 범위를 학교로 지정한 뒤 대상을 나로 정하고 걸 최면을 적었다. ‘윤계인과 윤계인이 들고 있는 사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최면을 걸자 주변에서 말을 걸어오는 것이 사그리 사라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로 옆에 있던 여자애 바로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았지만 그녀는 옆에 있는 친구에게 소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논하기만 할 뿐 나를 인식하지는 못했다. 나는 그대로 애들 사이를 벗어나 수학 심화반으로 향했다. 수학 심화반은 방과 후에 운영되기에 정시 수업이 진행되는 시가에는 언제나 빈 교실이다. 한마디로 밀회를 나누기에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다는 거지. 교실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강연우가 문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문을 닫고 잠근 뒤 최면을 해제했다.
“너 어디서…….”
“그건 알 바 아니시고. 선배. 우리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내 말에 강연우는 입을 다물더니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니, 눈치를 볼 거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지. 아니면 처리를 잘 하던가 왜 일을 키워서 꼴을 이렇게 만드는가. 생각해보니 짜증이 밀려와 숨을 깊게 내쉬고 강연우를 노려보았다. 어디 변명이라도 해보라는 뜻이었는데 강연우는 입을 다문 채 꿈쩍을 하지 않는다. 아 속이야. 결국 갑갑해진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할 말 없어요?”
“나는 확실히 피하려고 했어.”
“피하려고 한 게 그 모양이면 안 되죠 선배. 평소엔 그렇게 잘 하면서 이번에도 저번에도 대체 왜 그래? 아, 혹시 나 때문인가?”
내 말에 강연우는 몸을 흠칫 떨었다. 후우… 그래서 그 완벽함을 버리고 다급하게 누나를 정리하려 했다가 결국엔 코가 꿰었다? 참 잘하는 짓이다.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강연우를 바라보고 있자 내 시선을 피하던 강연우가 말했다.
“난 최대한 계을이를 배려하려고 했어. 그런데 계을이가 계속…….”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남 탓만 하지 말고…….”
“니가 그 기세를 봤어야 했어. 남 탓? 학생들 모두가 보는 복도에서 사람을 붙잡고 고백을 한 게 누군데.”
설마 누나가 그렇게까지 막 나갔을 줄은 몰랐던 나는 말이 턱 막혔다. 설마 진짜로 복도에서 고백을 한 것인가? …누나 성격상 고백만 하지 않았을 거고. 왜 자기를 피하냐는 질문부터 구구절절했을 텐데… 아마 강연우는 장소를 이동하려고 했을 텐데 알다시피 누나는 야생마와 같다. 한 번 무언가를 시작하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 성격. 강연우가 계속해서 장소를 옮기자고 해도 왜? 라며 계속 그 자리에 있었겠지. 그럼 소문이 안 날 리가 있냐.
“…하아… 시발 윤계을…….”
“나도 엄연히 따지면 피해자라고.”
“그렇다고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니니까 좀 조용히 해봐요 선배.”
어우 골치야. 이걸 어떻게 뒷수습해야 해? 한참 골치를 앓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뒷수습할 필요가 있나? 사람이 살면 소문이 좀 날 수도 있고 자신의 흑역사를 쓸 수도 있지. 어차피 이것도 한 달이 지나고 두 사람이 헤어진 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누나의 흑역사로 남을 일일뿐이다. 그러니까 이번 일은 두 사람이 알아서 대처를 하게 하는 편이 좋겠지.
“그래서. 앞으로 어쩔 거예요?”
“앞으로… 뭐?”
“앞으로 어쩔 거냐고요. 한 달 동안 윤계을하고 사귀고?”
“그걸 내버려 두겠다고?”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주길 바라요? 솔직히 누나가 사귀는 게 선배라 문제인데. 역으로 생각하면 선배라 다행이네요. 만약의 사태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잖아.”
“최정민은 어쩌고.”
“내가 전에도 말한 것 같은데 최정민은 내가 신경 쓸 게 아니고 선배가 신경 써야 할 거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내가 최정민의 목줄을 쥔 게 아니라……!”
“하물며 선배가 최정민한테 목줄이 잡혀 있다 해도 내가 알 바는 아니잖아요. 아니야?”
그래서 최정민이 여자 친구를 건들게 둘 거야? 내 말에 강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두게? 다시 물었다. 강연우는 고개를 젓는다. 거기에 내가 배시시 웃음을 짓고 말했다. 잘 됐네. 이제 내가 신경 쓸게 없어졌잖아. 내 말에 강연우의 얼굴은 썩어 들어갔다. 하지만 난 생각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 최정민은 속내는 모르지만 겉으로는 강연우의 말을 잘 듣는 편이기 때문이다.
“아 혹시 그런 거야? 윤계을하고 사귀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 최정민의 일을 도와줄 거라는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받아 준 거?”
내 물음에 강연우는 뭐라 대답하지 못 한 채 입만 벙끗 거리다 입을 다물었다. 이에 나는 한껏 빈정거리며 말했다.
“솔직히 처음엔 그럴까 했는데 말이에요 선배. 생각보다 소문이 크게 났더라고. 이대로면 따먹고 버리는 거. 불가능하잖아?”
“너……!”
“그럼, 우리 누나 잘 부탁드려요 선배.”
최대한 활짝 웃으며 말한 뒤 교실 밖으로 나오자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화풀이라도 하는 모양이지. 그럴 시간이 없을 텐데 얼마나 속이 돌아갔으면 저럴까 하는 마음으로 우리 반으로 돌아갔다. 이미 수업은 시작됐고 준서가 뭐라고 말을 해준 모양인지 선생님은 괜찮냐는 소리를 하며 자리에 앉게 해주셨다. 자리에 앉아 책과 공책을 꺼내 펼치고 멍하니 앉아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한 귀로 흘러냈다. 과연 내가 했던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까? 분명 있었을 거다. 내가 한 건 결국 떠넘기기였으니까.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꼭 내가 나서야 하는 일일까? 물론 내 누나는 모르는 누나의 일이니 내가 나서야 하는 것이 맞긴 하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하면 누나의 연애 사정이니 내가 나서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어렵다. 상대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면 축하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좀 더 좋은 사람을 연기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랬다면 괜찮았을 텐데. 좋은 사람인 척 연기를 하다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수업이 끝나고 곧장 책상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러자 선웅이 놈이 또 농담 따먹기나 하려고 자리로 오다가 준서의 말림에 다른 자리로 가버린다. 나는 거기에 고마움을 표하고 팔을 포개 시야를 차단했다. 더 이상 생각하는 것도 누군가를 상대하는 것도 지쳐버린 기분이다. 그렇게 한참 있으니 누군가가 머리를 쓰다듬는 느낌에 팔을 들어 상대방 손을 잡고 안 떠지는 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텅 빈 교실 안에서 내 앞자리에 앉은 성지훈이 내게 손을 잡힌 채 날 내려 보고 있었다. 어, 지금 몇 시지?
시간을 보니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점심시간이 되어서 우리 반으로 왔고 내가 혼자 자고 있으니까 앞에 자리 잡아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 앞까지는 괜찮은데 뒤에 오니까 굉장히 이상하다. 날 기다린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왜 쓰다듬었지? 그러고 보니 성지훈은 묘하게 나에 대한 관심이 없는 듯 많았다. 섹스할 때도 내가 기분 좋은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질 않나. 저번에 가슴 만질래? 사건 때도 그렇지 않나. 키스도 성지훈이 먼저 했었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면 은근히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왜지?
난 계속 손이 잡혀 있는 성지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금 같은 경우만 해도. 자기가 손을 뺄 수 있는데 빼지 않고 있잖아.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나한테 흥미를 느꼈을까. 나 같으면 좀 꼴 보기 싫을 것도 같은데. 다짜고짜 섹스 프렌드가 되자고 선언해놓고 이상한 짓만 부탁하고 하물며 남자인데 성기를 써서 성행위를 하는 것도 아닌 애널을 사용해서 성행위를 한다. 보통 이런 변태 꼴도 보기 싫어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며 성지훈의 손을 보는데 손톱이 길어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 누나 네일 파일 그대로 들고 왔었지.
“손톱 정리해 줄까?”
내 말에 성지훈은 이건 또 뭐냐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니, 그런 의미로 한 소리는… 반쯤 맞고 반쯤 틀리나… 성지훈의 손톱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성지훈에게 말했다.
“그냥, 많이 길었으니까. 정리해주고 싶어서.”
“…알아서 해.”
“그래.”
성지훈의 대답에 가방에서 네일 파일을 꺼냈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로 성지훈의 엄지손가락을 잡는데. 역시 손이 커서 그런 가 내 손톱의 1.5배는 되어 보이는 엄지 손톱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손톱이 크네.”
“…….”
“모양이 예쁘다.”
내 말에 성지훈이 고개를 돌렸다. 진심이었는데. 성지훈의 손톱을 갈며 중간중간 모난 곳이 없는지 엄지손가락으로 훑으며 확인했다. 성지훈한테는 일자 손톱이 어울리기는 하는데. 그럼 좀 긁히기 쉬우니까 둥글게 갈아 모난 곳이 없게 마무리하고 다른 손가락으로 넘어가 똑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계속 그러고 있으니 성지훈의 시선이 다시 느껴졌다. 힐끔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마주치는 눈. 눈이 마주쳐 배시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성지훈이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잡았다. 어 이거 웃으면 얼굴을 찢어버리겠다는 경고인가.
“웃지 마.”
“넵.”
맞나 보다. 웃으면 얼굴을 찢어버리겠다는 경고가. 나는 다시 성지훈의 손톱에 집중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엔 성지훈에게 뭔가 부탁한 적이 별로 없구나. 무언가 하면 순순히 따라와 주다 보니 부탁할 일이 별로 없었다. 언제부터 그랬더라?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어느새 자연스럽게 성지훈이 곁에 있는 것이 익숙해졌을 때 어느 순간부터 성지훈은 날 따라오고 있었다. 어, 이거 생각의 연장선인데.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괜히 납득 안 되는 걸 생각해 봤자 납득 안 되기밖에 더 하나. 성지훈의 오른손을 깔끔히 정리한 나는 손을 뻗어 성지훈의 왼손을 잡았다.
“이쪽 손톱도 예쁘네.”
“…….”
손가락이 굵직하며 길게 예쁘게 뻗은 성지훈의 손가락은 손톱도 참 예뻤다. 어디서 손 모델해도 될 것 같아. 내 말에 성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놀렸다. 동글동글 손톱 끝이 둥그레진 손은 그래도 참 예뻤다. 거스러미까지 모두 제거하고 난 뒤에 심심해진 나는 나와 성지훈의 손 크기를 비교해보았다. 내 손보다 월등히 큰 손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성지훈의 손을 살펴보았다. 커다란 손은 중지에 약간의 굳은살이 박여 있고 힘줄이 돋아나 있었다. 부럽다 난 힘줄은 없는데. 그렇게 속삭이자 성지훈이 픽 웃음을 흘리며 내 손을 놓았다.
“밥 먹으러 가자.”
“어.”
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먹으러 가자는 내 말에 성지훈은 순순히 응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쯤이면 준서랑 선웅이가 앞쪽에 자리를 잡았겠지. 하며 급식 줄로 향하자 몇몇의 애들이 아는 척을 해왔다. 거기에 대충 응해주며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막 급식실로 들어가기 직전의 선웅이와 준서가 보였다.
“어, 왔다.”
“아, 버리고 갈 수 있었는데.”
선웅이의 말에 바로 무릎을 발로 차 주었다. 괜한 소리 하기는. 안으로 들어가며 찡찡거리는 선웅이를 무시하고 식판을 잡았다.
“그럼 식판으로 맞을래?”
“쟁반 노래방도 아니고 식판이라니 악덕이다.”
“무슨 악덕인데.”
“헛소리 죽이네. 얼른 식판이나 집어 애들 밀리잖아.”
“내 편 하나도 없네! 아, 지훈쓰! 지훈쓰는 내 편이지?!”
그 순간 우리들 사이에서는 말이 싹 사라졌다. 야 이 미친 또라이 새끼야 성지훈 보고 뭐라고? 지훈쓰? 너 언제부터 그렇게 내적 친밀감을 쌓은 거야 하는 사이 성지훈은 그런 선웅이놈을 무시하고 식판을 들고 가버렸다. 선웅이 놈이 그 뒤를 따르며 ‘내 편이지?’를 반복했지만 성지훈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끝까지 선웅이 놈을 무시했다. 나와 준서는 그냥 그 사이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조용히 한 사람씩 맡아 서로를 떨어트렸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나와 준서는 서로 관리담당인 애들을 이끌고 흩어졌다. 아마 선웅이 놈이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 이끌고 축구라도 하러 가겠지. 난 성지훈을 이끌고 뒤뜰로 왔다. 해가 점점 길어지는 만큼 날씨는 점점 좋아져 이제는 완연한 봄 날씨가 되었다. 이를 따라 뒤뜰에는 분홍 노랑꽃들이 가득 펴 시선을 강탈했다. 나는 꽃내음을 맡으며 성지훈의 상태를 체크했다. 다행히 기분이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아 보이는데. 소개는 어떨지 모르겠다. 아마도 성지훈의 표정을 표로 그리면 다 똑같은데 언짢음과 짜증과 분노만 다를 것이다. 난 성지훈 옆에서 떨어지는 꽃잎을 털어내며 물었다.
“아까 선웅이가 지훈쓰라고 해서 기분 나빴어?”
내 물음에 성지훈은 날 가만히 보더니 손을 뻗어 내 머리를 탈탈 털어냈다. 뭐지 싶어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더니 자기 손을 툭툭 털은 성지훈이 날 바라보며 물었다.
“친하냐.”
“친하지. 중학교 때부터 쭉 친구였어.”
“그래.”
내 친구여서 봐준다는 걸까. 묘하게 그런 삘이 드는 성지훈의 어투에 확 꽂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 뭔가 엄청 귀엽네.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것이 갑갑할 정도로 귀엽다. 혹시나 입 밖으로 귀엽다는 소리가 튀어나올까 성지훈 옆에 바짝 붙었다. 이러면 만약 입 밖으로 소리가 나와도 성지훈밖에 들리지 않겠지. 그렇게 혼자 뿌듯해하며 성지훈을 이끌고 천천히 뒤뜰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자 슬슬 나와 성지훈이 같이 다니는 것에 익숙해진 여자애들이 하나 둘 나에게 말을 건네 왔고 거기에 대충 대꾸를 해줬더니 슬금슬금 곁으로 다가와 대놓고 성지훈을 보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늘 날씨 좋지?”
“어, 좋아.”
“너희 내일 뭐해? 우리는 내일 꽃놀이 가려고 하거든.”
그렇게 이야기하며 시선은 성지훈에게 머물러 있는 게 기분이 나빠졌다. 물론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성지훈은 곁 눈짓으로 보아도 미남형이라 말을 걸기 힘들지만 평범 그 자체에 성지훈 옆에 있으면 평범함에서 더욱 내려가는 나에게는 벽이 사라지니 나를 핑계로 성지훈을 노리는 것은.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성지훈만 훑어보며 말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학교 안에서는 작은 일도 소문이 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애는 없었는데 말이야…. 이 묘한 감정을 어떻게 하면 좋지? 생각하며 이 미묘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성지훈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여자애를 무시한 채 내게 다가와 내 팔을 잡았다. 뭐지 싶어 성지훈을 바라보자 성지훈이 학교 안쪽으로 고개를 까딱인다.
“미안 ‘우리’는 바빠서.”
난 그대로 성지훈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옛날 같으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될 텐데. 성지훈에게 미안해졌다. 나와 어울리니 턱이 좀 낮아졌다고 여기는 애들이 꽤나 있어 보이니… 교실 안에서는 어떻지? 나는 그대로 성지훈을 따라 성지훈의 반으로 들어가 성지훈 앞에 자리 잡았다. 성지훈은 삐딱하게 자리 잡아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를 열심히 보는 듯해 나는 나대로 성지훈의 책상에 엎어져 성지훈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그러고 있기를 한참 슬슬 종도 치겠다 싶어 교실로 돌아가려는 찰나 어떤 남자애가 쭈뼛쭈뼛 내게 다가왔다.
“저기… 윤계인 너 이거 알아?”
“어… 어? 아니.”
척 보아도 복잡해 보이는 수학 공식에 바로 칼같이 고개를 돌렸음에도 그는 떠나지 않은 채 내 바로 앞에 수학 공식을 내려놓았다. 이런 걸 봐도 머리 아프기만 하는데. 애초에 모른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안 가? 아, 아. 이거 자리에서 일어나자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은 힐끔힐끔 성지훈을 흘겨보고 있었다. 나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녀석이 움찔 몸을 떠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 눈치 보이면 그냥 돌아가라고. 하지만 녀석은 목표가 생기면 없던 깡다구도 생기는 스타일인지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거는 척 성지훈에게 잘 보이게 공책을 펴 들었다. 이걸 어떻게 할까 한마디 쏘아붙일까 생각하는 찰나. 쿵 하고 책상이 크게 흔들렸다.
“치워.”
성지훈의 한마디에 교실이 얼어붙었다. 나는 천천히 상황 파악을 했다. 어, 지금 성지훈이 책상을 발로 찬 거지? 그리고 치우라고…. 아, 공책을 치우라고. 난 또 쟬 치우라는 줄. 아니, 그게 그거구나 지금 공책 들고 꺼지란 소리구나. 나는 쭈뼛쭈뼛 움직이지 못하는 녀석을 가만히 보다가 한숨을 내뱉고 친절하게 공책을 덮어 품 안으로 밀어 넣어줬다. 그러자 쭈뼛쭈뼛거리며 녀석은 고맙다고 울 것 같이 내뱉고 쭈뼛거리던 게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야 괜찮아?”
“와, 성지훈 성질 대박…….”
“그러게 왜 성지훈한테 가서…….”
“아니, 난 윤계인이랑 잘 지내기에…….”
결론은 또 나였다. 아니, 나랑 성지훈이 잘 지내는 거랑 자기들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네. 그런다고 사람이 달라지냐? 그렇게 생각하자 곧 선웅이 놈이 친하냐고 물었던 성지훈이 생각난다. 아니,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른 거지…. 성지훈이 그랬잖아 싫어하는 사람이랑 섹스하냐고 적어도 나는 싫어하는 것도 거슬린 것도 아니란 거잖아. 좋아한다고 여기기엔 내 자신감이 떨어진다. 여태까지 한 행적들이 있다 보니…. 그래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할까. 아니, 할 것도 없지 않나. 물론 성지훈과의 관계가 끝나면 모두 원래대로 돌려놓을 것이다. 이기적이지만 그때까지만 참아줘 성지훈.
“성지훈.”
“…….”
“이기적이라 미안해.”
“…하?”
“그냥 그렇다고.”
내 말에 성지훈이 날 바라보았다. 나는 그저 웃었다. 단순한 미안하다는 사과지만 숨기는 점이 너무 많아 심장이 두근거린다. 꼭 거짓말하는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다. 아니, 비슷하지. 결국 내 속내는 다 숨기고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성지훈에게 더더욱 미안해졌다. 음, 내가 더 잘할게. 뭔가 헤어지려는 연인 같은 말이지만 진심이다. 마침 종이 쳐 성지훈에게 이따 보자는 말을 남기고 반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책상에 엎어져 거의 죽어가는 선웅이와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준서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쟤는 반에 매점 음식 반입 금지인데 그걸 또 들고 들어왔어. 분명 저거 선웅이 놈한테서 뜯었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자 선웅이 놈이 개처럼 달려왔다.
“야야, 들어봐! 준서가! 준서가!”
“시끄러 안 들어도 비디오니까 암말 하지 마.”
“아니, 지훈쓰한테 지훈쓰라고 하지 말라잖아!”
“어, 그건 하지 마.”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콕 집어 해준 준서한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 뒤 선웅이 놈한테 집중했다.
“아니, 왜, 우리가 며칠이나 같이 밥을 먹었는데 좀 친해지면 안 되냐?”
“미친놈아 상대를 보고 까불어라. 그렇지 않아도 걔네 반에서 나 때문에 성지훈 만만히 보고 접근했다가 까인 새끼 있어.”
“아, 그거 들었어. 성지훈이 책상 발로 깠다며.”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인데 어떻게 아냐.”
“성지훈이잖아.”
역시 학교 안은 좁고 소문은 빠르다 그 사이에 성지훈이 책상을 발로 찬 게 소문이 나다니. 아니… 책상 좀 찬 거 가지고 소문이 나다니 사스가 성지훈이라는 건가. 그러고 보니 성지훈에 대한 소문은 성지훈에게 관심이 없었을 때에도 꽤 들려왔다.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들은 적은 없었지만 대충 뭔갈 했다는 식이 많았었는데. 특히나 인상 깊었던 소문은 지금은 전학 간 1반 현태웅이 성지훈 때문에 전학 갔다는 소문이었는데 이게 왜 인상 깊었냐면 녀석이 성지훈에게 학교에서 야한 잡지를 던져 줬다가 개처럼 맞았다는 소문이 함께 돌아서였다. 당시 1반 아이들 대부분이 목격했다는 이 소문을 나는 믿지 않고 있는데 이유는 상식이 박힌 새끼라면 학교에 그딴 걸 들고 오지 않았을 테니까. 들고 왔다면… 걔도 걔대로 이상한 애인데.
“아, 그런데 성지훈 걔 우리랑 밥 먹어도 암말 안 하잖아. 그럼 나름 친한 거 아니야?”
“그건 무슨 신종 개 논리냐.”
“야, 암말 안 하는데 뭐가 친해. 난 아직도 어색해 죽겠어.”
“아니, 외계인이랑은 말 안 해도 잘 지내잖아 같이 댕기고 그러니까 우리도…….”
“안 친해. 야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는 거랑 말 안 해도 서로 통하는 거랑은 엄연히 다르거든? 애초에 너랑 성지훈이 어디가 통했는데 병신아.”
“어… 마음이?”
“미친 새끼 지랄한다.”
준서의 일침에 선웅이 놈은 끝까지 포기하지 못 한 채 찡찡거렸다. 그 몰골을 질린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을 때 즈음 준서가 쓰레기통에 나무 막대기를 버리고 타이밍 좋게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안으로 들어오신 선생님도 눈치채지 못 한 채 찡찡거리는 선웅이를 가만히 바라보시던 선생님은 어디 어디까지 하나 보려는 듯이 교탁에 가만히 서서 그 몰골을 바라보셨다. 주변이 하나 둘 자리에 앉고 조용하기까지 하자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선웅이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선생님을 발견하고 파드득 놀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하다.”
“네 그럼…….”
“왜 더 안 하고.”
“아뇨… 죄송합니다…….”
“앉아라.”
“넵.”
재도 참 명줄이 길다면 길다. 나였다면 분명 깜지였을 텐데. 선웅이 놈이 자리에 앉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자 바로 다음 달부터 시험인 거 알지? 오늘부터 유출 문제가 많이 나오니까 멍 때리지 말고 잘 따라와라.”
모의고사 다음은 바로 중간고사 구만. 책과 공책을 펼치고 칠판의 내용을 옮겨 적다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지훈은 수업 시간에 어떻게 있을까. 수업을 들을까 아니면 다른 걸 할까. 그러고 보니 날씨가 좋던데 그 여자애들은 꽃놀이를 간다고 했었지 성지훈하고 꽃놀이를 가는 건 어떨까. 꽃놀이를 가면 뭘 해야 하지? 보통 먹고 마시고 사진 찍고 인파에 휩쓸리고… 딱히 안 좋아할 것 같은데. 하지만 보고 싶다. 벚꽃 아래에 있는 성지훈. 분명 그만큼의 가치는 있을 텐데. 수업이 모두 끝나고. 종례의 주된 내용은 곧 있을 중간고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윤계인.”
종례가 끝나고 성지훈의 부름에 다른 녀석들과 가볍게 작별하고 주차장 쪽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가서…….”
“타.”
오늘은 성지훈의 몸을 쉬게 해주는 날이라 성지훈을 배웅하려는데 성지훈이 내 팔을 잡고 날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 너 이거 무슨 뜻인지 알고 있잖아? 성지훈의 얼굴을 보는데 성지훈은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고 기사님은 성지훈이 문을 닫은 것을 확인한 뒤 곧장 차를 출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