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성지훈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척 보아도 탈색 꽤나 한 것 같은 화려한 금발에 검은 앞치마를 멘 덩치가 커다란 미남형의 남자가 우릴 반겼다.
“지훈아 어서 와. 옆에는 친구야?”
“룸 비어 있어?”
뭐냐 이 동문서답은. 가족한테까지 자신의 볼일만 말하는 성지훈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 꾸벅 남자한테 인사해 보았다. 정황상 이 사람이 세월이라는 사람 같으니까.
“안녕하세요. 지훈이 친구인 윤계인입니다.”
“예의 바른 친구네. 난 지훈이 친척 형인 강세월이라고 해.”
잘 부탁한다며 내밀어진 손은 남자답게 굵직하고 동시에 고왔다. 다시 한번 꾸벅 인사하며 손을 마주 잡자 가벼운 손길로 두어 번 흔든다.
“네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친구까지 데리고 왔어? 이런 적 한 번도 없잖아.”
애초에 얘한테 친구가 있는지 궁금하다. 학교에서는 다른 애들은 자기가 따돌림 시키는 아싸인데. 아니, 어쩌면 가문끼리 친한 친구가 있을 수도 있지. 그래서 학교 애들이 수준이 안 맞아서… 그렇기엔 우리 학교 나름 명문 아니야? 성지훈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어깨를 나란히 설 수 있는 녀석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성지훈이 내 팔을 이끌었다.
“룸 쓴다.”
“그래, 그래 써라 써. 아, 밥은 먹고 왔어?”
그렇게 묻는 세월형의 얼굴은 나를 향해 있었다. 아, 사스가 성씨 집안 유전자 어떻게 가볍게 안부를 묻는 얼굴까지 화보를 찍는 것 같은가. 세상사 불공평하다더니 성지훈과 함께 있으면 특히나 느끼는 것 같다. 뭘 물으셨지? 아 밥은 먹었냐고 물으셨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간단한 요깃거리 갖다 줄게. 안에서 대화들 하고 있어.”
“네? 아뇨, 괜찮은데요…….”
“아냐 지훈이 돈 많아. 걱정 마.”
그런 걱정이 전혀 아니었다. 애초에 성지훈한테 돈 받는 거냐고. 재벌집은 원래 이런 건가. 아니 애초에 왜 재벌이 이런 곳에서 펍을 하고 있어. 하는 생각을 하다 문뜩 생각났다. 이곳은. 강남이라는 것을. 어, 강남에 2층짜리 이만한 크기의 펍이면… 재벌이 운영할 만한데? 내가 고개를 내려가는 세월형 쪽으로 휙 돌리니 성지훈이 내 손을 잡아당겼다.
“왜.”
“어?”
“…….”
성지훈의 물음에 되물으니 성지훈이 가만히 날 바라본다. 뭔가 대답을 원하고 있다. 문제는 내가 그 대답이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뭐지? 내가 뭘 했지? 눈동자를 데굴 굴려 세월형이 내려간 곳을 바라보니 성지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아니, 강남 한복판에 2층짜리 가게면 가겟세를 얼마나 받나 싶어서.”
“자기 건물이야.”
괜히 생각을 이야기했다 씁쓸한 현실을 들었다. 재벌은 역시 재벌이구나. 그대로 성지훈의 뒤를 따라 룸 안으로 들어갔다. 룸 안은 널찍하고 모던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천장은 노출 천장으로 훨씬 룸 안이 넓게 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사 차선과 강남의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오오 이렇게 강남을 보는 건 또 처음인데.”
내가 창밖을 보며 말하자 성지훈이 자리에 앉아 날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마치 재촉을 하는 것만 같아서 몇 번 더 창밖을 구경하다 자리에 앉았다. 성지훈은 날 보더니 다리를 꼬며 턱짓을 했다. 저런 모습도 참 잘 빠졌구나. 꼰 다리가 길쭉하게 빠지고 깍지를 낀 손은 크고 두껍다. 교복이 마치 정장으로 보이는 광경을 따라 올라가면 굵은 턱선과 오뚝한 콧날 두툼하고 붉은 입술 또렷한 눈매가 눈에 들어온다. 괜스레 입술이 말라 혀로 입술을 축이고 천천히 상체를 의자에 기댔다.
“그냥… 뭐랄까. 우린 육체적으로 대화를 많이 하지 정서적으로는 대화를 많이 안 했구나 싶어서.”
“…….”
“난 뭐랄까… 그냥 섹스 프렌드보다는 너랑 이렇게 정서적으로도 나눌 수 있는 그런 섹스 프렌드가 되었으면 해서.”
말을 막 마쳤을 때 가벼운 노크 소리가 나더니 세월형이 안으로 들어왔다.
“많이 출출할 것 같아서 금방 되는 것들로만 가져왔어.”
“아 네, 감사합니다. 어, 이건 뭐예요?”
“연어 아보카도 샐러드.”
아보카도를 몰라 물어보자 세월형은 메뉴 이름을 그대로 말해주고 빵과 스프를 세팅해 준 뒤 말했다.
“우리 지훈이가 말이 좀 없지?”
“그게 매력이죠 뭐.”
“매력? 푸하하, 그래. 매력이긴 매력이지?”
그렇게 웃던 형은 갑자기 성지훈에게 가까이 가더니 무어라 속삭였다.
“시끄러워 가.”
“에이 맞네 뭘.”
“시끄러워.”
“그럼 재밌게 놀다가 계인아.”
“이름 부르지 말라고.”
“어휴 성질하고는 알겠어 알겠어. 그럼 이따 보자.”
그렇게 세월형이 폭풍같이 나가고 난 뒤에 성지훈은 이를 갈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손을 내밀어 입술을 톡 쳤다.
“이상해.”
“…….”
성지훈이 고개를 피하며 창밖을 보았다. 아, 이거 부끄러워하는 거 같은데. 귀가 빨개진 걸 보니 확실히 부끄러워하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성지훈의 감정 표현은 너무 섬세해서 천천히 살펴봐야지 알 수가 있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성지훈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주친 눈동자에 배시시 미소를 지으니 인상 쓴 얼굴로 내게 묻는다.
“그래서.”
“아… 그리고 묻고 싶은 게 생겨서.”
“뭔데.”
“있잖아… 솔직하게 말해줘. 내가 부탁한 거 들어줄 때… 어떤 기분이었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으니 성지훈이 잠시 말이 없어졌다.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엇일까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리는 때에 성지훈이 천천히 입을 연다.
“…처음엔 병신인가 싶었어.”
“그다음엔?”
“…그냥… 생각 없었어.”
“그럼. 그다음에는?”
“…네가…귀여웠어.”
…내가 뭐? 그렇게 말한 성지훈은 다시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아니, 내가 뭐? 그렇게 귀까지 붉어지지 말고 날 봐봐 내가 뭐 어쨌다고? …얘 취향 괜찮은 거야? 아니, 모든 취향을 존중하는 나이지만… 내가 귀엽다고?
“내가 귀여워?”
“…….”
“야 니가 귀엽지 내가 왜 귀여워!”
“…하?”
성지훈이 놀란 얼굴로 날 보든 말든 난 계속해서 말했다. 아니, 어떻게 내가 귀여울 수 있어? 야 생각해봐 난 여태까지 널 희롱하고 가지고 논(?) 인간에 얼굴이 완전히 못난 건 아니어도 보통 수준의 사내놈이다 이런 내가 귀엽겠냐 네가 귀엽겠냐. 어? 한참 그렇게 떠들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려 입이 뚝 멈췄다.
“어 음, 신경 쓰지 말고 말하던 거 계속해. 그래, 우리 지훈이가 귀엽긴 하지 어린 시절에는 얼마나 귀여웠는데.”
“닥치고 꺼져 강세월!”
“지금 다 조져서 그렇지. 미안하던 거 계속하렴 난 나갈게.”
‘그리고 희롱하고 가지고 논 게 지훈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 시발 망했다. 난 얼굴을 가린 채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하 시발 내가 지금 최면 하나도 안 건 방 안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시발. 난 망했어. 망했다고 성지훈 인생에 금 하나 안 가게 해주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크게 걸려서… 어쩔 수 없다. 이건 집으로 돌아가서 작업을 꼭 해야겠다. 이름이 강세월이라고 했던가. 형 미안해요 만나서 반가웠지만 형 기억 속에서 저는 사라질 거랍니다. 바이바이 사요나라 짜이찌엔!
아니, 애초에 평범한 가게를 생각하고 앉아 있던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그냥 단순한 친척 형 정도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자주 들어오실 줄은 몰랐다고. 그 와중에 강세월씨가 두고 간 스테이크는 먹음직스럽다. 하아. 마른세수를 하며 심호흡을 했다. 이제 어떡하지.
“저, 그게… 미안 소리치고 막 그래서. 설마 형님이 들으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 진짜 미안해.”
“됐어.”
“아니야 이건 진짜 사과해야 한다. 미안하다.”
“사과하지 마.”
“그렇지만…….”
“어차피 강세월도 다 알아서 이쪽으로 온 거니까.”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강세월씨가 다 안다니 의아한 얼굴로 성지훈을 바라보니 성지훈이 인상을 더 쓰며 말했다.
“그 새끼도 게이라고.”
“아, 아아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에서도 노시는 분이시구나. 다행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둘 수는 없다. 내 목표 중 하나는 성지훈을 멀쩡한 모습으로 멀쩡한 세상에 돌려주는 것도 있으니까. 나와 그의 관계는 내가 만족하는 순간 끝이다. 다시 한번 그렇게 정했다. 지금이야 귀엽다네 뭐네 하는 소리들이 나왔지만 앞으로의 행동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은 곧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을 즐기자. 스테이크를 썰어 입안에 넣자 성지훈이 자신의 몫을 내게 밀어주었다. 그런 그의 친절을 받아들이고 뇸뇸 스테이크를 마저 입안에 넣었다.
“다녀왔습니다.”
“계인쓰! 어서왓!”
성지훈과의 대화는 거기서 끝을 맺고 왔다. 앞으로의 방향도 행동도 정했고, 나름 가벼운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니 누나가 의외로 날 반겼다. 뭐지 싶어 누나를 멀뚱히 바라보니 뭘 그리 가만히 서 있냐고 얼른 자기 방으로 들어오라며 타박한다. 아니, 또 뭔데. 신발을 정리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누나가 휴대폰을 꺼내 왔다.
“이것 봐 연우가 보낸 카톡.”
“어…….”
대화의 주제는 강연우였다. 절로 터져 나올 것 같은 한숨을 삼킨 뒤 카톡을 보니 미안하다는 말이 딸랑 보내져 있고 그다음엔 방을 나간 뒤 누나가 보낸 카톡은 보지도 않는다. 이 새끼가 처신 잘하라고 했더니 밑도 끝도 없이 뭐하는 짓거리야. ‘이게 뭐 하는 것 같아?’ 라는 누나의 질문에 나는 잘 모르겠다 대답하고 계속해서 남자의 심리는 남자가 아는 것이 아니냐며 매달려 오는 누나를 뒤로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일단 강세월…….”
…어째야 할까. 성지훈이 하는 행동을 보아하니 성지훈은 여러모로 강세월에게 상담을 받았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뭔가 나를 아는 눈치 같은 걸 보면 게이 섹스에 대해서 유사 심문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 그럼 이걸 지우는 편이 좋을까 아니면 지우지 않는 편이 좋을까. 잠깐 생각하다 곧 좋은 생각이 났다. 성지훈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된다. 나와 있는 순간에 나를 기억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평소엔 잊어버리고 그 순간에만 기억이 나면 되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휴대폰을 꺼내 앱을 작동시켰다. 강세월 ‘성지훈이나 윤계인이 있을 때만 윤계인이 생각난다.’
“이거로 하나는 해결… 남은 건…….”
강연우. 얘를 어쩌면 좋을까. 함부로 건드리기에는 꽤 크게 건드려 놔서 어째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독을 독으로 다스려 놓은 상태. 어떻게 행동할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아 어떻게 행동을 잡아 놔야 할지 원… 일단 아직 몸은 내 명령에 복종하게 되어 있는 상태. 다른 건 다 풀었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이거 하나는 풀지 않았다. 앱으로 생각까지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니, 아니야. 앱의 힘을 너무 믿고 나대면 안 돼.
그렇다고 강연우를 내버려 두기는 위험하다. 경고를 해놓은 상태라 해도 강연우는 만일 학교를 작은 사교계라 한다고 하면 사교계의 큰손 정도는 되는 녀석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머리까지 좋으니 이게 어떻게 될지 예상 못 하겠다. 어쩌면 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는 내가 알던 모든 이들이 내 적이 되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상황에서 참아야 했는가? 미쳤냐 걔는 말로 안 끝나지. 어떻게든 제대로 기를 잡아 놔야 승산이 잡힌단 말이다.
“일단 지금 최면은 풀지 않는 거로…….”
하지만 당장은 최소한의 대비책만 남겨 놓을 수밖에 없다. 아직 강연우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며 놈이 무슨 수를 둘지 내가 알 수 없는 상황이니까. 만약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학교 전체에 최면을 거는 미친 짓을 행할 수밖에. 그렇게 결정하고 이를 닦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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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계인이 여기 있니?”
등교 후 성지훈에게 가보려는 찰나 아침부터 나를 찾는 사람이 있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강연우였다. 와 바로 어제 그런 짓을 당해 놓고 날 찾다니 쟤도 쟤대로 상 또라이임이 분명하다. 나 같으면 꼴도 보기 싫어서 최대한 피해 다녔을 텐데. 물론 피해자가 피해 다니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리지만. 하여튼. 자리에서 일어나며 준서한테 선생님한테는 대충 둘러 달라고 했다. 준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강연우를 따라 나갔다. 강연우는 날 이끌어 텅 빈 교실을 찾아갔다. 수학 심화반. 가볍게 흔들리는 팻말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강연우가 거칠게 문을 닫는다.
“그러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선배?”
“…수작 부리지 마 윤계인.”
“수작은 내가 부렸나 선배가 부렸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꼼꼼히 확인한 뒤 본색을 내보이는 강연우의 모습에 그대로 받아 쳤더니 거칠게 자신의 앞머리를 쓸어 올린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 책상에 앉아 삐딱하게 강연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볼일?”
“…….”
“아, 그러고 보니 누나한테 보낸 카톡 가관이더라. 미안하고 그냥 씹기? 머리 제대로 안 돌아가요? 그럴 거면 그냥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연기라도 하든가 갑자기 분위기 싸하게. 미안? 하. 참 어이없어서.”
“…….”
내 빈정거림에도 강연우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잘난 머리 가지고 공부만 한 것도 아니잖아. 왜 대답을 못 해?’ 다시 한 번 더 어그로를 끌었지만 강연우는 자신의 팔을 쓸며 바닥을 바라만 볼 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럴 거면 뭐 하러 부른 것인지.
“…너, 그 능력.”
“뭔지 안 알려 줄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도 쓸 수 있지?”
갑작스럽게 앱에 대해서 묻는 강연우의 모습에 인상을 쓰며 네가 알아서 무얼 하냐 말을 했더니 강연우는 입을 벙긋거리며 한참을 또다시 침묵으로 일관한다. 뭔지 몰라도 내 능력이 필요해져서 날 찾아온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고는 머리가 너무 뻣뻣해서 들어줄 마음도 들지 않고, 애초에 독은 독으로 다스려야 되는 것처럼 막아둔 녀석이라 무언갈 해주고 싶은 생각 역시 없다. 그리고 내가 강연우를 희롱했던 이유를 생각하면 결국 또 강연우 본인 때문이 아닌가.
“…나 좀… 도와…줘.”
“내가 왜?”
“네가 날 도와주면… 윤계을하고 제대로 멀어질게.”
“하, 참… 나랑 장난쳐요? 아니면 또 발정 나고 싶어? 이번엔 더러운 게이한테 더럽혀져 볼래? 지금 갑과 을을 가르면 선배가 을이고 내가 갑이냐. 왜냐고? 선배 아직 모르죠? 차렷. 열중 쉬엇.”
내 말에 강연우의 몸은 재깍재깍 반응했다. 몸은 차렷 자세를 했다가 뒷짐을 졌고 난 그대로 강연우를 한 바퀴 돌리기까지 한 뒤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데 뭐라고? 윤계을하고 제대로 멀어져주신다고요? 아 그거에 내가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면서 도움을 줄 것 같아? 안 그래. 그냥 내가 너한테 명령하면 그만이야.”
“…이 능력. 알려지기 싫은 것 같은데…….”
“알려지기 싫지. 그냥 네 머릿속에서 지우면 되는 거야. 그런데 왜 안 그러고 있는 줄 알아? 기억하라고. 두고두고 치욕적으로 기억하고 기억해서 두 번 다신 윤계을 곁에 오지 말라고. 그래서 기억하게 두는 거예요 선배.”
그런데 윤계을 가지고 딜을 해? 나랑 장난쳐? 덧붙이는 말에 튀어나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렇게 또 한참을 기다렸을까 휴대폰이 울려서 확인하니 선생님이 들어오셨다는 준서의 카톡이었다. 이제 슬슬 들어가 봐야지 싶어 강연우에게 쐐기를 박기로 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최정민이 윤계을한테 관심이 있어.”
“내가 말했잖아. 최정민 관리 잘 하라고. 윤계을이나 나한테 뭔 일 생기면 선배부터 무슨 일이 생기신다니까요? 목줄 단단히 쥐어요. 그걸 날뛰게 둘 거야?”
“내가 아니야.”
“뭐가.”
“내가 최정민 목줄을 쥔 게 아니라고.”
그 말에 뭔가 싶어 강연우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는 사실이 맞다면 강연우의 아버지가 최정민의 뒤를 봐주어 최정민이 고개를 떳떳이 들고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연우의 말만큼은 최정민이 듣는 것이고. 그렇게 보여도 여기저기서 듣고 오는 게 많은 선웅이 놈이 뒤에서 슬쩍 알려 준 사실이니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최정민이 내 목줄을 쥐었지 내가 최정민의 목줄을 쥔 게 아니란 말이야.”
“…아… 아아…! 설마… 너였냐? 최정민이 아니라?”
“…….”
그렇다 강연우였던 것이다. 강연우 아버지가 최정민을 두둔했던 이유는. 강연우가 1학년 여자아이를 스토킹 했고, 그게 어떤 식으로든 평소 행실이 더러웠던 최정민이 뒤집어쓰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강연우의 아버지가 최정민의 뒤를 봐주게 된 것이다. 뒤가 구리다 했더니만 이렇게 구렸구나. 하지만 작년 최정민의 행동을 생각하면.
“아무리 봐도 최정민이 여자앨 스토킹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반은 맞고. 반은 아니야. …그냥… 우연의 일치였어…….”
정리를 좀 해보자면 그런 것이다. 윤계을과는 겉으로 썸을 타고 속으로는 1학년생과 썸을 타다 1학년생이 정신을 차리고 자기에게서 벗어나려 하자 뒤에서 은근한 압박과 함께 다른 사람이 꾸민 것 같은 협박문 등을 보내며 스토킹 및 협박을 해왔고, 그 와중에 최정민이 그 1학년생을 노골적으로 괴롭히기 시작. 그리고 결론적으로 1학년생에겐 스토킹과 협박의 범인이 들키고 그것을 최정민에게 뒤집어씌움으로써 마무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최정민 역시 그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쓰레기는 쓰레기를 알아본다더니 딱 그 짝이 아닌가.
“그래서 어쩌라고요.”
“최정민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줘.”
“그러니까. 내가 왜요. 말 진짜 안 통하네. 최정민이 윤계을한테 무슨 짓을 하지 않도록 막을 생각을 해야지 되려 역으로 이용해서 최정민을 떼어놓겠다? 장난쳐요? 머리 참 잘 돌아가는 선배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이 그렇게 안 돌아가? 다시 말해줘요? 선배가 을 내가 갑.”
그럼 갑은 떠납니다. 하고 반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이 미친놈이 자기 옷을 마구 벗기 시작했다. 하도 어이없어 보고만 있자 한다는 말이 가관이다.
“어차피 네 목표는 내 몸 아니야? 좋아 대줄게. 얼마든지 대줄 테니까. 최정민은 떼어줘.”
“허 참. 어디서 뭘 보고 왔는지 모르겠는데 선배.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애초에 선배 몸이 목적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선배 몸 하나 생각 안 하고 따먹었지 이렇게 길게 말도 안 해. 그리고 내가 뭘 시킬 줄 알고 그렇게 무방비하게 거래를 해요? 정말 이 대가리로 전교 1등은 어떻게 하는지 진짜 궁금하네. 가해자면서 피해자인 척 도망치지 마. 네가 한 짓에 제대로 책임을 져.”
“…그럼 넌. 너도 나 강간했잖아. 내가 너희 누나를 건드렸어? 뭘 했어?”
“그대로 뒀으면 건드렸겠지.”
“그건 내가 아니라 최정민이……!”
“최정민 최정민 더럽게 시끄럽네. 그래서 그 말을 니가 했어 최정민이 했어 니가 했잖아 시발 새끼야. 최정민이랑 어울리느라 그딴 소리 했다고? 그럼 네가 처음부터 네 처신을 제대로 했어야지. 왜 이제 와서 지랄이야.”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없어. 아니면 넌 내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덥석 널 도와줄 줄 알았어?”
“윽…….”
“그럴 줄 알았어? 미안하네 난 극 이기적인 인간이라서 말이야. 특별한 능력이 생기면 내 이기심부터 채우자는 주의거든. 그러니까 딴 데 가서 다시 알아봐.”
강연우의 개논리 때문에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뒤로하고 그대로 강연우를 내버려 둔 채 교실을 빠져나왔다. 시간을 보니 이미 한참 1교시가 시작할 시간. 시발 이건 이대로 망했구나. 머리는 뒤숭숭하고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 에라 시발 세상 다 멸망해버려라.
결국 수업에 늦게 들어가 복도로 쫓겨나고 말았다. 망할 풀리는 게 없네. 복도에 서서 멍하니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강연우의 요구를 거부한 것은 당연한 거야. 그런 거야. 내가 강연우한테 가지고 있는 죄책감과 강연우가 원하는 요구 사항은 막연히 다른 것이다. 내가 죄책감이 든다 해서 녀석의 잘못을 덮어줄 필요는 없으며, 강연우는 내게 보복을 당했다 해서 나에게 요구할 순 없었다. 물론 그 보복의 정도가 심했어도…. 그래, 이게 걸린다. 내 행동은 과연 타당한 결과물인가.
그럴 리가 있겠냐. 그렇다고 해서 강연우가 타당하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냥 둘 다 문제인 것이다. 아, 모르겠다. 머리를 헤집으니 앞문이 드르륵 열렸다.
“깜지 5장. 오늘 학교 끝나기 전에 검사 맡아라. 다음부터는 제시간에 들어오고.”
“네…….”
다음부터는 벌서면서 딴짓하지 마. 그렇게 말씀하신 선생님이 교무실로 내려가시고 난 교실로 들어왔다.
“뭐래.”
“깜지 5장.”
“그런데 왜 늦었냐? 교신?”
“윤계을 파워.”
“미친 CP 터지겠네.”
“뭐 이벤트라도 한대? 왜 널 불러?”
“나도 몰라.”
대충 그렇게 말하니 눈치 빠른 두 녀석들은 말해주지 않을 것을 눈치채고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그 사이 국어 책을 꺼냈다. 깜지를 쓸 거면 국어지. 지문만 줄줄 쓰면 되니까. 그리고 열심히 쓴 깜지 두 장은 그다음 수업 시간에 몰래 하다가 수학 선생님한테 빼앗기고 깜지 두 장을 더 선사받았다. 결국 이번 시간에도 성지훈한테 못 가겠구나 하고 열심히 깜지를 썼더니 공책을 제출하는 것을 잊어 감정되고 그다음 영어 시간에는 읽기 담당으로 뽑혀 고생을 했다. 하아. 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자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다.
“어째 오늘 되는 일이 없네. 아침엔 학생회장이 데려가 하루 종일 깜지 써 공책은 잊어버려 영어시간에 독문해.”
“야, 독문이 뭐냐.”
“그러게 말이다. 아, 내가 학생회장한테 불려 갔다고 말씀드렸어?”
“독문이 뭐냐니까.”
“설마 그 시간까지 잡혀 있을 줄 알았냐. 그냥 모른다고 했지.”
“독문이 뭐냐고!”
“독문 독해 병신아.”
“독해는 뭔데?”
선웅이 놈의 행동이 짜증 나서 준서한테 턱짓했다. ‘데리고 꺼져.’ 그러자 준서가 가볍게 가운뎃손가락을 꺼내 보였다. 아 그럼 저 폭탄을 너 외에 누가 맡아 주는데. 투덜거리며 국어 교과서를 다시 꺼냈다.
“깜지 쓰고 있게?”
“어. 너희 먼저 내려가.”
“이응이응.”
“성지훈은?”
“먼저 내려보낼게.”
“아냐 나 폭탄은 이선웅으로 충분해.”
“그래.”
그렇게 선웅이와 준서가 먼저 아래로 내려가고 남은 나는 깜지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은 성지훈과 함께 성지훈네 집으로 갈 생각이기에 학교에 남게 되면 곤란하다. 심지어 오늘 아침부터 일진이 좋지 않았다. 뭐가 이렇게 꼬였지? 아침은… 그래, 아침엔 강연우 때문이었다. 강연우… 하아… 시발 강연우.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숨을 깊게 내뱉으며 머리를 감싸고 있는데 갑자기 손목이 확 잡혔다. 고개를 드니 성지훈이 인상을 쓴 채로 날 내려보고 있었다.
“왔어?”
“…어디 아프냐.”
“아니. 그건 아닌데 골치가 좀 아파서. 먼저 내려가 나 깜지 써야 해서 좀 기다려야 해.”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성지훈은 내 앞자리에 앉아 날 바라보았다. 이거 내가 움직일 때까지 가만히 있을 삘인데. 얼른 끝내야겠다 싶어서 집중해서 깜지를 쓰기 시작했다. 한참 인상을 쓴 채 깜지에 집중하고 있을 때에 성지훈이 톡톡 내 책상을 두드렸다.
“왜?”
“…….”
고개를 들어 성지훈을 바라보자 성지훈이 입을 벙긋거리기를 반복하는 것이 보였다. 뭐지? 싶어 가만히 바라보는데 자기 혼자 마른세수를 하더니 곧 고개를 들고 한다는 소리가
“…가…슴… 만질… 거냐.”
“…….”
어? 되묻자 성지훈이 휙 고개를 돌린다. 어, 지금 그러니까 성지훈네 집도 아닌 학교에서 성지훈이 내 앞자리에 앉아서 한다는 소리가 가슴 만질…….
“어, 어!”
“…….”
“만질래!”
“…시끄러워.”
성지훈의 말에 나는 냉큼 내 입을 막은 뒤에 생각해 보았다. 교실 안에서는 안 된다. 누가 볼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어디가 좋지? 일단 점심시간인 지금 비어 있는 교실은 없을 것이다. 아니, 있다 해도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할 거니까…. 그리고 내가 아무 교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 같은 곳은 너무 지저분하고 빈 교실은 성지훈이 자리 잡고 앉기 힘들다. 그럼 어디가 좋지? 양호실? …내 생에 양호실이 이렇게 문란하게 들리기는 처음인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성지훈 역시 더불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와는 다르게 내가 성지훈의 팔을 잡고 끌기 시작하니 성지훈이 힘을 주지 않은 채 날 따라 나온다. 난 앞서가며 휴대폰을 꺼내 조작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길게 급식 줄을 선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순간만. 그다음엔 바로 양호실 쪽으로 몸을 틀어갔다. 양호실 문은 다행스럽게도 열려 있었고 선생님은 양호실 화장실에서 양치질하는 중이셨다.
“누구니? 잠깐만 기다려!”
기다릴 수가 없다. 인생은 한순간이라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지. 나는 놀란 듯이 몸이 굳은 성지훈을 이끌고 양호실 침대로 다가가 성지훈을 앉힌 뒤 커튼을 쳤다.
“잠깐 선생이…….”
“괜찮아. 이제부터 여긴 아무도 없어.”
“그게 무슨…….”
“나 믿지?”
나 믿지? 한마디에 반쯤 발버둥 치던 성지훈의 행동이 멈추었다. 다행이다 나 신용 가는 변태였어. 그대로 성지훈의 옆에 앉아 일단 흥분을 가라앉혔다. 진정하자 진정해 가슴만이랬어. 가슴 만질래? 아니, 가슴만 만질 거냐고 물었다고 나 자신아.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펼쳐지는 19금 동인지에 정신이 아찔해질 때에 성지훈이 물었다.
“…안… 만질…거냐?”
“아니아니, 만질 거야 만질 건데. 5분만. 5분만 기다려줘. 나 지금 너무 흥분해서……!”
두 손을 모아 입을 가린 채 끙끙거리고 있자 성지훈이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끌어당겨 자기 가슴에… 진짜? 리얼로? 아니, 성지훈이 정말로 내 손을 끌어서 자기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고. 아니, 진정하자 진정해 진정하고 소수를 세는 거다 2, 3, 5, 7, 11, 13, 17, 19… 후우… 숨을 깊게 내쉬고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이성을 불러왔다. 갑갑한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지훈을 막 대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이성을 끌어올렸다. 내가 여기서 막 대한다면 여태까지의 노력이 어디로 가겠어. 더불어 내가 여기서 막 대하면 나만 만족하지 성지훈이 만족할 수 있겠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성이 훅 돌아왔다.
내가 아무리 성지훈의 몸을 만지는 것에 만족감을 느껴도 성지훈이 느끼는 것을 보는 것에 비할까. 애초에 이 짓을 시작한 이유 역시 성지훈이 마구 느껴 가버리는 것을 보기 위함이었잖아. 이제 와 성지훈을 막 대한다고? 말도 안 되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신 뒤에 천천히 손을 내렸다.
“…….”
“미안 순간적으로 널 막 대할 뻔했어.”
“…쯧.”
내 말에 성지훈이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귀가 빨개진 것을 보니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여 무리를 했던 것 같다. 대체 가슴 만질래는 어디서 알아 온 것인지. 다시 생각하니 뭔가 어이가 없어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기분 안 좋아 보이는 애한테 가슴 만질 거냐고 묻는 애나 그 한마디에 정신 나가 양호실까지 끌고 온 애나.
“만져도 돼?”
“…어.”
성지훈의 앞으로 가서 가슴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그러자 두근두근거리는 성지훈의 심장 고동이 느껴졌다. 그 심장 고동에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되어 실웃음이 나왔다.
“겉옷 벗어 주라.”
내 말에 성지훈은 입고 있던 마이를 벗어 옆에 던져 놓았다. 나는 그걸 다시 들어 제대로 갠 다음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다음 성지훈 앞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아 다시 손을 들어 성지훈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그대로 천천히 원을 그리다가 손끝으로 가슴을 쓸었다. 근육이 가득 찬 가슴은 단단하고 동시에 탱탱했다. 스치는 옷깃에 아프지는 않을까 약간 걱정이 들어 성지훈의 얼굴을 살피자 성지훈은 얼굴이 잔뜩 붉어진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마주친 눈동자에 절로 고개가 성지훈 쪽으로 넘어갔다. 가까워진 거리에 성지훈이 눈을 감자 그대로 코를 비볐다.
“하아… 호구 새끼.”
그렇게 말한 성지훈은 그대로 고개를 비틀어 입술을 비볐다. 맞닿은 입술이 허락을 내린 것 같아서 그대로 한 번 더 고개를 비틀어 입술을 부딪히고 또다시 비틀어 이번엔 입술을 앙 물었다. 그러자 성지훈이 입을 열어 주었다. 입이 열린 틈으로 혀를 밀어 넣자 성지훈의 혀가 되려 침투해 내 혀를 옮아 매고 빨아 당겼다. 츕, 츄릅 거리는 소리가 양호실 안에 울리고 입술을 뗀 뒤 코를 다시 비빈 뒤 셔츠 위로 성지훈의 유두를 원 그리듯이 희롱했다.
“읏…….”
그대로 점점 원을 크게 한 다음 성지훈의 가슴을 잡아 주무르니 탱탱 감촉이 절실히 느껴졌다. 가슴 전체를 주무르며 검지와 엄지로는 유두를 쥐어짜듯이 잡아당겼다 놓았다를 반복하다 유두만 잡아 주무르니 성지훈이 달뜬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런 성지훈의 입에 키스를 날리다 성지훈의 셔츠 단추를 하나 둘 풀어냈다. 그러자 셔츠에 비벼져 붉게 달아오른 피부와 솟아오른 유두가 보였다.
“빨아도 돼? 빨고 싶어.”
“읏… 돼…….”
성지훈의 허락과 동시에 성지훈의 유두를 입에 물고 쭉쭉 빨아들였다. 응 읏 거리는 신음소리가 가슴에서 울려 들린다. 이 사이로 유두를 잡아당기다가 아프게 한 것이 미안해 혀로 유두를 핥고 그대로 빨면서 혀로 유두를 굴리면 성지훈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쭙쭙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성지훈의 유두가 퉁퉁 부었을 때 즈음 입을 떼고 성지훈의 얼굴을 보니 성지훈이 새빨개진 얼굴로 잔뜩 인상을 쓴 채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 그런 성지훈에게 다시 키스했다.
가슴을 만지고 물고 빤 뒤엔 성지훈의 성기가 서 있었다. 본래 목적은 성지훈의 성기는 만져주지 않는 것이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날 위해 무리해준 성지훈을 생각하면 한발 정도는 빼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성지훈에게 빼주겠다고 이야기하니 성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왜? 괴롭잖아 빼줄게.”
“…신경 꺼.”
뭐 그렇다면야 내가 할 소리는 없지만…. 문제는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는 유두였다. 한쪽은 만져서 한쪽은 물고 빨고 핥아 대서 셔츠를 입으니 그 존재감이 더 확실해서 문제였다. 그렇다고 성지훈 성격상 마이를 채우고 다닐 놈도 아니어서… 아, 여기 양호실이지. 설마 이런 동인지 같은 전개를 내가 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얼마나 흥분했던 건지 생각하며 양호선생님 자리로 갔다. 선생님은 일지를 정리하시고 커피를 한잔하고 계셨다. 난 그 앞에 가서 손을 두어 번 흔들었다. 다행이다. 급하게 갈겨쓴 ‘윤계인, 성지훈 외 다른 사람은 양호실에 들어오지 못한다’와 ‘윤계인 성지훈을 인식하지 못한다’가 제대로 걸려들어 있었다. 난 양호 선생님 앞에서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양호 선생님. 그래도 그 이상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리고 약물과 밴드가 들어 있는 서랍에서 밴드 두 개를 꺼내 성지훈에게 다가갔다.
“어… 음, 뭔지 알지?”
“변태 새끼…….”
“아니, 그렇지만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냥 갈 순 없잖아.”
“…….”
성지훈은 질색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긴 했지만 순순히 셔츠를 다시 벗어 주었다. 밴드 껍질을 까고 성지훈의 유두에 맞춰 밴드를 붙이자 성지훈이 인상을 쓰며 날 노려보았다. 그렇게 보지 마 내가 미안해지잖아. 아니, 이렇게 될 걸 몰랐던 건 아닌데. 미안하다는 얼굴로 성지훈을 바라보자 성지훈이 셔츠를 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이제 슬슬 5교시가 시작할 시간이구나. 5교시는 아마 미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오늘은 이론을 하는 날이니 깜지를 쓸 시간이 있겠지. 그럼 깜지를 5교시에 쓴 다음 6교시가 되기 전에 검사를 다 맡고 종례가 끝난 다음엔 성지훈네 가서 아네로스를… 그러고 보니 그 아네로스 꽤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지. 젤도 사용하지 않고 입으로만… 다시 생각하니 그때 그 당시가 생각나서 다시 동하려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슬슬 다음 진도를 나가도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 물건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럼 오늘 성지훈네는 못 가는 건가? 난 성지훈의 몸을 면밀히 살폈다. 오늘은 한 번… 음 빼주긴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진도 빼는 것을 늦추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어쩌지… 음,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성지훈에게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성지훈.”
“왜.”
“오늘 어쩔까? 너희 집 갈까? 말까?”
“뭐 하게.”
눈치 참 빠르다. 그 물음에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고 말했다.
“그게, 아네로스 꽤 썼잖아. 그래서 슬슬 작은 딜도를 써도 될 것 같아서.”
“…….”
내 말에 성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 하기도 곤란하지. 자기 몸에 또 새로운 기구를 사용해 보겠다는 거니까. 성지훈이 속으로 또 나를 변태 새끼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앱을 다시 실행해 양호실에 걸어 두었던 최면을 하나 둘 해제하는데 성지훈이 내 팔을 잡았다. 약간 붉어진 얼굴에 무언가 다짐한 것 같은 얼굴에 나도 모르게 각오를 하고 있었더니 몇 번이나 망설이며 성지훈이 말을 내뱉는다.
“나도 가.”
“…어?”
“그렇게 알아.”
뭘 그렇게 알아야. 나 그런 거 몰라. 성지훈의 뒤를 따르며 성지훈에게 말했다. 내가 가는 곳은 여상 마트가 아니고 성인용품을 파는 성인용품샵이라고 보통은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며, 그곳에 있는 물건을 보고 견딜 수 있겠냐고 성지훈을 졸졸 따라다니며 이야기했다. 물론 다른 애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노력하며 말이다. 내 말에도 성지훈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나에게 넌 어떻게 가냐고 반박하는 것을 보아 오늘 아주 끝장을 보겠다는 기세를 보였다. 결국 모두 알다시피 진 것은 나였다.
“하아…….”
“그렇게 한숨 쉬면 땅이 꺼지겠냐.”
“넌 그냥 꺼져주면 좋겠다.”
반 안에서 또 다른 골치로 속을 썩이고 있자 선웅이 놈이 올라와 깐죽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성지훈도 결국 굶고 올라왔네. 뭐라도 사다 줘야 하나. 생각하는 사이에 종이 쳐버렸다. 어휴 시발 깜지나 쓰자 하고 국어 교과서를 다시 꺼냈다. 그런데 뭘 사다 준다면 뭐가 좋지? 성지훈이 학교 매점 빵을 먹는 걸 상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분명 안 먹을 거야. 그럼 햄버거? 햄버거나 빵이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럼 차라리 마실 거라도 사다 주는 편이 좋겠다. 마지막 깜지 한 장을 남겨 둔 채 수업이 끝나고 나는 곧장 매점으로 내려갔다.
“어 외계인이다.”
“외계인 어디 가냐.”
“매점!”
주변에서 부르는 소리들을 모두 쌩까고 매점으로 내려갔다. 점심시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라 그런지 매점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난 바로 우유 매대 쪽으로 가서 우유들을 살폈다. 빈속에는 우유가 낫겠지. 속도 적당히 차고 위도 아프지 않고. 단지 항아리 우유부터 종류대로 있는 우유들 중에 무얼 살까 고민하다 딸기 우유를 집어 들었다. 성지훈하면 딸기지. 작게 키득거리고 계산을 한 뒤 시간을 확인했다. 음 아직 여유가 있다. 그럼 성지훈네 반에 가서 조금 노닥거리고 와야지.
3층으로 올라와 곧장 2학년 1반으로 가자 아는 얼굴 몇몇이 인사를 해왔다.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성지훈 자리로 가자 내가 들어올 때부터 쭉 날 보고 있던 녀석이 날 마주 보았다. 어떻게 앉아 있어도 서 있는 나와 시선이 비슷한지. 또다시 우월한 유전자에 감탄을 할 때에 성지훈이 인상을 쓴다.
“아, 이거 먹으라고.”
“…됐어.”
“어… 혹시 유당 불내증 있어?”
“…없어.”
“그럼 그냥 마셔. 빈속으로 있으면 안 좋아.”
아무래도 내가 계속 있으면 마시지 않을 것 같아서 우유만 주고 냉큼 가려 하자 성지훈이 내 팔을 잡았다. 와 악력 봐라. 평소에 잡던 건 진짜 봐주고 있던 거구나. 얼얼한 팔에 절로 자리에 멈추자 성지훈이 묻는다.
“넌.”
“나? 난 우유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러면서 나한텐 우유를 준다?”
“아니, 보통은 우유로 속을 든든하게 하는 편이 좋잖아. 그래서야. 다른 의미는 없어. 그리고 난 지금부터 깜지 써야 해서 가봐야 돼. 마실 시간이 없다고.”
깜지는 한 장 밖에 남지 않았지만. 댈 수 있는 핑계가 이것밖에 없었다. 내가 깜지 핑계를 대자 성지훈이 눈빛으로 묻는다. 그런 걸 왜 해. 그러게 왜 할까. 깜지 따위 사라져 버려라.
“아침에 지각했거든. 그래서 써야 돼. 아, 그리고 우리 외출할 때에 버스로 가자. 내가 버스 길밖에 기억을 못 해서.”
“…알았어.”
“고마워.”
붙잡힌 팔로 성지훈의 팔을 잡아 두어 번 흔드니 성지훈이 팔을 놓았다. 그럼 이따가 보자. 가볍게 말하고 교실로 돌아갔다. 그래도 기사 아저씨한테 어디 가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에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교실로 돌아와 국어 책을 편 순간 온몸이 무거워졌다. 깜지 따위 사라져라. 아슬아슬하게 선생님 눈치를 보며 마지막 깜지를 다 쓴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교무실로 찾아가 나의 무거운 짐들을 해결했다.
종례까지 끝나고 성지훈이 우리 반으로 오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익숙해진 선웅이는 더 이상 나를 잡지 않았다. 그냥 준서와 둘이 어딜 갈지 이야기를 나누며 내게 인사를 할 뿐이었다. 미안하다 준서야 그 미친놈 혼자 감당 잘 해라. 속으로 준서에게 심심치 않은 사죄를 한 뒤에 성지훈과 함께 버스 정류소로 향했다.
“아, 버스카드 있어?”
“있어.”
아 요새는 신용카드로 다 되는구나. 혼자 서울 촌놈이 된 기분에 뒷머리를 긁적이고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인원을 보니 오늘은 힘겨운 이동이 될 듯한데. 성지훈은 괜찮을까 하는 마음에 고개를 들어 성지훈을 바라보았다. 마주친 눈동자에 괜찮겠어? 라고 다시 묻자 성지훈이 고개를 돌렸다. 뭐, 괜찮겠지. 이것도 사람이 타는 건데. 음, 그런데 부딪히는 거에 기분 나빠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사이에 버스가 도착했다. 미리 서 있는 줄을 따라 버스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더 미어터지는 사람에 내가 성지훈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뭐야. 성지훈이다.”
“쟤가 왜 버스를 타? 자가용 있잖아.”
“헐…….”
버스를 타는 성지훈의 모습에 수군거림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주된 내용은 성지훈이 왜 버스에 탔는가 하는 것이었다. 음, 미안 나 때문이야. 그냥 무시하고 자리에들 서 있으면 안 되겠니. 옅게 한숨을 내쉬며 버스 손잡이를 잡자 성지훈이 내 옆에 서서 버스 봉을 잡았다. 키가 크니까 저기까지 닿는구나. 약간 놀라운 눈으로 성지훈을 올려 보니 성지훈이 내 눈길을 피한다. 이런 눈에 약한가? 선망하는 눈? 아니, 널 선망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눈에. 하는 순간 버스가 급출발을 했다. 딴 생각을 하던 몸이 휘청하며 뒤로 쏠리자 단단한 팔이 내 허리를 잡았다. 성지훈이었다. 내 허리를 잡은 건. 놀라서 어버버거리고 있자 성지훈이 인상을 가득 쓴 채 말했다.
“병신.”
“어, 어… 응. 미안. 고마워…….”
허리를 감싸고 있는 팔이 크고 단단하다. 게다가 그 순간 힘을 얼마나 준 것인지 허리가 약간 얼얼하다. 와, 그 한순간에 정신적으로 덮쳐진 것 같다 생각할 때에 성지훈이 팔을 풀지 않은 채 날 잡아당겨 자기 앞에 날 세웠다. 뭐지 이거 하는데 단단한 육체가 바로 등 뒤로 느껴졌다. 어, 뭐지 이거. 기분이 묘한데. 내가 갸웃거리자 성지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손잡이.”
“어, 응 잡을게.”
나는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내쉬었다. 무언가 놀란 가슴이라 그런지 심장이 쿵쿵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무슨 말이라도 할까 힐끔 성지훈을 보다 마주친 시선에 푸더덕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그렇게 성지훈은 바로 내 뒤에 난 성지훈 바로 앞에 서서 우리 둘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성인용품점에 가면서 가장 크게 들었던 걱정은 성지훈이 과연 성인용품점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였다. 사람의 시야는 다양하고 그중 대중이 혐하는 것을 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중이 호하는 것에 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중 성인용품이라면 대중이 꺼리는 것이며 개중에는 더럽다 여기는 인물들도 있다. 나야 성인물을 많이 접해서 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거다! 하고 반가워하지만 성지훈은 아니란 말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발걸음을 늦추며 성지훈에게 말했다.
“저기, 오늘은 다른 데에 갈까?”
“아니.”
그리고 단칼에 거절당했다. 아, 이거 무조건 성인용품점에 간다는 기세야. 내가 가지 않으면 혼자라도 찾아갈 기세다. 오늘로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한숨을 내쉰 뒤 성지훈에게 말했다.
“일단 옷부터 새로 사자. 교복을 입고 갈 순 없잖아.”
저번엔 급해서 교복을 그대로 입고 갔었지만 둘인 이상 이대로 들어가기엔 양심이 벅차다 느껴 성지훈에게 제의했다. 다행히 그 생각은 동의하는 것인지 성지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성지훈과 나의 쇼핑 2탄이 시작되었다. 사봤자 저번하고 비슷할 것 같지만. 하여튼. 성지훈을 이끌고 아무 옷가게로 들어갔다. 뭘 입어도 옷태가 사는 녀석이니 무얼 사도 상관없겠지.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고 들어간 가게에서 성지훈의 옷은 샀지만 내 옷은 사지 못 한 상황이 발생했다. 여차하면 청바지와 흰 티를 사라고 성지훈에게 이야기했었지만 그건 성지훈이여야 가능한 비책이었을 뿐 나 같은 평범남에겐 통하지 않았다.
“후우…. 다른 곳에 가자. 일단 그거 계단하고.”
남색 무지 티에 검은 바지를 입은 성지훈은 누가 보아도 피팅 모델 같았다. 그에 비해 나는… 아니, 성지훈하고 비교하지 말자. 나도 엄마가 예쁘게 낳아 준 자식이다.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네 젠장. 결국 가게를 네 번 정도 돌아서야 내가 입을 만한 옷을 살 수 있었다. 가게와 가게를 이동하는 동안 성지훈이 묘한 얼굴을 했지만 난 꿋꿋했다. 회색 프린팅이 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나는 교복을 가방 안에 넣은 뒤 휴대폰을 들어 앱을 확인했다. 아직 클럽에서 사용했던 ‘신분증(학생증)을 확인한 사람은 윤계인을 의심하지 않는다.’와 신분증에 걸린 ‘본교 관계자 외에 사람들에겐 성인 민증으로 보인다.’가 제대로 걸려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성지훈을 살폈다.
음, 잘났다. 아니, 이게 아니라 저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성지훈은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몇 개 걸어 둘까. 뭐라고 걸어두면 좋지? 윤계인의 동행자를 의심하지 않는다? 아니면 성지훈을 성인으로 본다? 잠깐 고민하던 나는 ‘성지훈을 성인으로 본다’는 최면을 걸었다. 이제 성지훈을 보는 사람들은 성지훈을 성인으로 보게 될 것이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성인용품점 안으로 들어가자 붉은 조명에 여러 성인용품들이 즐비한 내부가 보였다. 카운터에 있던 점원들은 우리 둘이 들어오자 흠칫했지만 곧 자리에 앉았다. 내부에는 몇 명의 커플로 보이는 남녀나 남자들이 있었다. 저번엔 오전에 와서 사람이 별로 없었구나. 생각하며 성지훈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아 안색이 좀 안 좋은 것… 같나? 좀 딱딱해 보이긴 하다. 조금 긴장했나? 아니면 역시 혐오스러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성지훈을 바라보자 성지훈이 고개를 까딱이며 얼른 살 것을 재촉했다. 난 이에 얼른 딜도 자리로 가서 딜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단 아네로스보다는 길고 두꺼운 거로 지금 성지훈 안에 내 손가락이 두 개 정도 들어가니 적어도 손가락 두 개 반 정도 되는 사이즈를 고르자. 몇 개 흥미로워 보이는 모양의 딜도들이 있었지만 성지훈이 뒤에 있어 시선을 고정한 채 꼼꼼히 사이즈를 비교했다. 이건 손가락 세 개만 하고 이건 색과 모양이 너무 노골적이다. 그리고 이건 플라스틱이라 너무 단단하다. 그렇게 추려서 최대한 성지훈에게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심사숙고해서 고른 것은 핑크색의 손가락 두 개 반만 한 사이즈의 한 뼘 정도 오는 실리콘 딜도였다. 혼자 왔다면 다음에 사용할 것 역시 좀 살펴보았을 텐데 성지훈이 같이 왔으니 이것만 사자. 하고 뒤를 돌은 순간 뒤가 텅 비어 있었다. 어, 얘 어디 갔어? 주변을 살피자 저 멀리 불쑥 커다란 키의 성지훈이 보였다. 저긴 오나홀이 있는 곳인데.
“뭐 봐? 어…….”
성지훈에게 다가가자 성지훈이 그대로 내 얼굴을 잡았다. 덕분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성지훈이 보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았다. 아, 보여주기 싫은 거구나. 어쩌지 이미 오나홀을 보고 있다는 건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성지훈이 묻는다.
“골랐냐.”
“응, 지루했지? 그냥 이대로 뒤돌 테니까 놔줘라.”
“…….”
내 말에 성지훈이 손을 놓자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뒤로 돈 뒤 다시 눈을 떠서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안의 내용물을 확인해준 뒤 보이지 않는 박스로 밀봉을 해주고 사은품을 받는데 옆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서서 계산을 하는 것이 얼핏 보였다. 옆을 보니 성지훈이 무언가 사고 있었다. 어, 마주친 눈동자는 꽤나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저 눈빛을 보아하니 나한테 써먹을 것을 산 것 같은데… 얘도 딜도 샀나? 어? 나 뒤 뚫리는 거야?
눈을 또륵 굴려 성지훈이 산 물건을 확인하려 했지만 이미 밀봉되어 포장된 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성지훈에게 물어보는 것이 있는데… …정말로 날 뚫으려고 하는 거면 어떻게 하지? 아니, 그래,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나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나도 언젠가 성지훈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아니, 그럴 수도 있긴 한데… 그것보다 너 그거 사도 되는 거냐. 카드 내역 같은 거 밝혀져도 괜찮은 거냐고.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할 때에 계산을 마친 딜도가 내 손에 쥐어졌다.
“아, 감사합니다.”
“서비스로 콘돔 몇 개 더 넣어 드렸어요.”
아 딜도는 콘돔이 필요하구나. 물론 콘돔이 없어도 상관없긴 하지만 지속적인 위생을 생각하면 콘돔이 있는 편이 나았다. 그러고 보니 아네로스는… 성지훈은 아네로스를 입으로 애무해 사용했었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애널에 집어넣었었지. 흐트러진 얼굴로 아네로스를 빨아대던 성지훈을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털어 생각을 날렸다. 애무 꼴리고 좋았지. 그런데 그게 바로 장내에 들어가는 건 좀…. 사람의 입속이 제일 더럽다고 하고. 물론 그렇게 따지면 키스도 안 좋긴 한데 그래도 장내에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
오늘 조금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생각하며 콘돔을 몇 개 더 집고 사는 김에 젤도 몇 개 더 샀다. 그 모습에 성지훈이 질린 듯이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이런 반응이 정상적이긴 하지. 그런데 왜 여태까지는 반응이 달랐지? 달랐던 반응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하자 성지훈이 고개를 까딱인다. 성지훈에게 다가가 물었다.
“뭐 샀어?”
“…….”
성지훈은 답변해주지 않았다. 답변해주기 싫은 것인지 아니면 말하기 민망한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 뒤 성지훈과 나는 택시를 타고 성지훈네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성지훈을 성인으로 본다’는 최면을 해제하고 잠깐 고민을 했다. 성지훈이 정말로 내 뒤를 뚫어 버리려고 딜도를 산 거면 어떻게 하지? 성지훈이… 성지훈이 내 뒤를… 어… 묘하게 그림은 이게 맞긴 한데… 아니, 이게 아니라. 내 목표는 늘 말하지만 성지훈이 뒤로만 느껴 질척질척하게 가버리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그걸 목표로 잡고 느긋이 성지훈의 속을 길들였다. 그러던 와중에 성지훈이 내 뒤에 관심이 생겼다? 어… 이런 경우 나는 어째야 하지?
그냥 평범하게 이야기한다면 난 애널을 뚫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어떻지? 성지훈은 최면으로 내 부탁을 무엇이든 들어주고 있고 애매한 양심을 가진 나 역시 성지훈의 부탁을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내가 애널을 뚫리기 싫은 이유를 생각하면 솔직히 자존심 때문인 것 같다. 과연 이 관계에서 내가 자존심을 부려도 될까? …부릴 자존심도 없지 않나 나… 솔직히 지금도 성지훈한테 섹스해달라고 부탁이나 해대고 있는 주제에. 에이 그까짓 애널 뚫리자. 이런 거 자존심 세워서 뭐 하냐.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젤 듬뿍 칠하면 괜찮겠지. 여차하면 내가 리드하면 돼.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성지훈네 도착했다. 내가 카드를 내려는 것을 무시한 성지훈이 계산을 마치고 커다란 대문 앞에 서니 무언가 위압감이 느껴졌다. 이제 곧 나는… 애널이 뚫린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은근 무겁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벼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뭔가 성지훈한테 무거웠던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 기분이랄까… 아니, 무거운 마음으로 임해야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 커다란 앞마당을 지나 현관에 도착하자 아주머니가 날 반겨 주셨다.
“도련님 오셨어요. 계인 학생도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꽤 늦으셨네요. 두 분 다 식사는 하고 오셨어요?”
“아니.”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성지훈의 대답에 아주머니는 빠른 스피드로 점심 겸 저녁 식사를 차려 주셨다. 재벌 집 식탁은 다를 것 같아 살짝 기대했었는데. 음, 한 끼에 9첩 반상이 나온다는 것 빼고는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였다. 그래 보였다. 맛부터 질까지 다르더라. 이 정도면 입맛이 까다로울 법도 한데. 의외로 막 입인지 뭔지 우리랑 잘도 어울려 식사를 했구나. 점심도 굶은 탓에 꽤나 배가 고팠기에 밥을 두 그릇이나 해치우고 성지훈의 방으로 올라갔다.
성지훈의 방으로 올라오니 내심 긴장이 되었다. 오늘 내 목표는 아네로스로 시작해 딜도로 끝을 내는 것인데. 성지훈에게 계획이 있다면 중간에 애널을 개통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절로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있어.”
“어? 어디 가?”
“…….”
내 물음에 성지훈은 날 가만히 노려보다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혹시 화가 난 건가 싶어 뒤를 따라 방 밖으로 나오니 성지훈이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 준비하러 들어갔구나. 아마 속을 비우고 오려는 듯하다. 어, 나는 준비 안 해도 되나? 성지훈이 산 게 딜도가 맞다면 나도 속을 비우는 편이 좋을 텐데. 음, 뭐 타이밍이 되면 속을 비우고 온다고 이야기하면 되겠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겸사겸사 무슨 약으로 속을 비우는지 알아야겠다.
물론 성지훈이 구하는 약이 내가 구할 수 있는 약품들보다 훨씬 질 좋고 몸에 괜찮은 것들 일 것이다. 그래도 성분은 알아 두는 편이 더 좋겠지. 게다가 잦은 장 비움은 몸에 좋지 않다고 하고. 성지훈의 책상 서랍에서 아네로스와 꽤 용량이 줄어든 젤, 그리고 오늘 사온 용품들을 늘어트리며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했다. 일단 아네로스로 속을 가볍게 푼 뒤에 딜도를 이용해 전립선을 자극하며 딜도가 들락거리는 것으로 느끼는 것을 연습한다. 진도가 잘 나가면 느끼는 부위를 기억하며 며칠간 딜도 자위를 연습시키자 하면서 성지훈을 기다리는데 10분이 지나도록 녀석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문이 열리고 상체를 벗고 있는 성지훈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움직일 때마다 요동치는 근육들이 마치 조각된 조각상과 같았다. 유두에 붙여 놓았던 밴드는 뗀 것인지 붉은 유두가 약간 돌출되어 자신의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나도 모르게 성지훈의 몸을 꼼꼼히 훑어보고 있자 성지훈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뭐 하냐.”
“어… 너 기다리고 있었어.”
내 말에 성지훈은 천천히 방 안 풍경을 눈으로 훑었다. 침대 위 노골적으로 올려져 있는 아네로스와 딜도, 콘돔과 젤. 더불어 너무나 노골적인 눈빛.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뒷목을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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