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3/11)

#002

그 이후로 2주 동안 이틀에 한 번 꼴로 성지훈네 집에 찾아가 성지훈의 항문을 길들였다. 관장도 매일 하면 건강에 좋지 않고, 내 이기심으로 본의 없이 겪게 된 일인데 짧아도 하루 정도씩은 여러모로 머리를 비울 시간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한 주 동안은 전립선 마사지를 하는 데에 공을 들였고, 2주째 즈음에는 조금씩 넓히는 데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 성지훈의 안이 나름 물러진 것 같아 뿌듯하다. 그렇다고 무언가 과정을 뛰어넘어 내부에서 내 손가락을 빨거나 당기거나 씹을 정도는 아니고 그냥 전보다 내부로 들어가기 수월해지고 안을 누비기 편해졌다.

손가락을 압박하던 힘도 처음보다 덜해지고, 아. 그렇다고 압박이 없는 건 아니다. 표현하자면 장기도 근육으로 이루어졌다더니 여기까지 단련했나 싶었던 게 그냥 근육이구나 싶은 정도.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을 텐데. 어, 있다 그런 미묘한 차이가. 있어. 있다고. 단단했던 내부도 최대한 봐주면 탱탱해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정말 최대한으로. 괜찮아. 처음부터 장기 프로젝트 같은 걸로 잡고 있었어. 졸업 전에는 원하는 얼굴은 보고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고로. 오늘도 트롤링으로 그렇게 욕을 처먹고도 또다시 고급시계를 외치는 선웅이 놈을 버리고 강남에 왔다. 성지훈의 선물을 가장한 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였는데,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이제 항문도 공들여 풀면 손가락 두 개 정도는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 슬슬 쾌감 정도를 높이려 한다. 겨우 2주째지만 하여튼.

기구 같은 경우는 일반 시점으로 보기엔 괴악한 면이 있어 부정적인 시선이나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으니 처음 시작은 쾌감에도 좋고 치료용으로도 사용되는 아네로스로 정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노멀 남자들이 항문 자위를 시작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게 전립선 마사지기도 하고. 최종적으론 회전 딜도를 노리고 있으니까 아네로스부터 시작해 조금씩 단계를 높여 기구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속셈이다.

선물이랍시고 성지훈에게 아네로스를 주는 건 그렇긴 한데. 어차피 앱이 생긴 순간부터 일반적인 관점을 버리고 욕망 사욕을 챙기기로 했다. 게다가 전립선으로 느끼는 성지훈을 제대로 보고 싶다. 할 때마다 얼굴을 주의 깊게 보고 있지만 일단 내 손가락이 성지훈의 안에 들어가 있으니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성적으로가 아닌 기관적, 통적으로서 예민한 부분이 없는지 신경을 쓰면서 움직여야 하니까. 와… 이렇게 보니 진짜 다 내 사리사욕이네. 미안하다 성지훈.

썩을 대로 썩고 작아질 대로 작아졌지만 나름의 양심으로 성지훈에게 홀로 사죄한 뒤 버스에서 내렸다. 보통 성인용품을 구입한다 하면 인터넷을 이용하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엄마가 전업 주부시다 보니 부모님 주민번호를 도용해 주문을 한다 해도 배달 온 택배를 먼저 뜯어 내용물을 보실 확률이 높아 곤란했다. 엄마한테 최면을 건다는 선택지도 있긴 한데. 성인용품을 시키려고 엄마한테 최면을 거는 건 좀 그렇다. 내 바닥을 치는 인성도 사람으로서 도리는 지키라 말하고 있어.

그런 이유로 각종 성인용품 사이트에 들어가 가장 인지도 높고 안전한 사이트에 다양한 물품이 있는 곳을 골라 오프라인 매장이 있는 곳을 찾았다. 그중 위치가 가장 좋은 곳이자 가장 가까운 게 강남에 있는 매장이었다. 이것저것 찾고 조사하고 위치 탐색 같은 게 번거롭긴 했지만 한 번 들리면 오가는 거 외에는 오프라인이 훨씬 편해질 테니까.

강남에 오기 전에 집에서 교복을 갈아입었다. 성인용품점에 교복이 웬 말이겠어. 직원 이름 보기도 전에 쫓겨나겠다. 적어도 직원 얼굴이랑 이름은 확인하고 쫓겨나야 어떻게든 하고 다시 들어가지. 성인용품점은 의외로 번화가 번듯한 건물의 지하도 아닌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게 나름의 신용도를 높여주는 것 같았다. 구석진 곳이나 간이 건물 같은 곳이었으면 확실히 불안한 마음도 들고 이상한 곳과 연루되어 있어 보여 사람들이 잘 안 찾을 것 같으니까. 역시 강남.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로 어느 입구가 어느 건물 건지 헷갈린다.

“어서 오세…! 요오.”

“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다부진 몸과 수려한 인상의 남자 점원과 마찬가지로 다부진 몸의 수려한 인상을 가진 여자 점원이 인사를 하다 말고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날 응시했다. 여성 용품도 파니 여자 점원도 두는구나. 그런데 이상한 놈들이 엮일 수도 있으니 몸이 단련된 사람만 두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점원들을 살펴보는데. 명찰이 없어. 순간 당황했지만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의심하는 눈치인데 당황한 얼굴까지 보이면 생각을 정리할 새도 없이 쫓겨날 테니까.

다짜고짜 이름을 물어봤자 알려주지 않겠지. 성인용품점이니 여자건 남자건 하찮게 보고 개수작을 부리는 생각 없는 또라이들이 있을 테니까. 그런 이유로 명찰도 달지 않은 걸 거고. 잠깐 생각을 하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최면에는 나름 종류라는 게 있었다. 이야기를 좀 하자면 첫 번째로 우리가 많이 아는 특정 인물이나 조건을 정해 이를 충족 시 발동하는 조건 최면. 성지훈과 편의점 직원한테 사용했던 ‘윤계인의 부탁’과 ‘윤계인이 구입하는 물건’도 조건 최면이다. 두 번째는 인식과 생각을 바꾸는 인식 최면. 이것도 흔히들 알 텐데. A를 A라 보지 않고 B로 보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닭고기를 돼지고기라 인식을 하게 만들면 맛도 모양도 닭고기지만 인식은 계속 돼지고기라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흔한 소재로 사용되는 감각 최면. 척하면 척이지. 말 그대로 감각을 조종하는 최면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요소지만 예를 들면 고통을 쾌감으로 바꾸거나 쓰고 비릿하다는 정액을 맛있게 만들거나 쾌감을 더 크게 느끼게 하는 그 최면. 그 외엔 많이들 알고 요소로 써먹는 인격 최면이나 인지 최면 같은 게 있다. 앱에서 이 최면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얼굴과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왜 이렇게 장엄하게 최면에 대해 설명을 하냐면 대상의 이름을 모르면 저 많은 최면들을 사용할 수 없지만, 그래도 걸 수 있는 다른 최면이 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랄까. 일단 최면의 기본은 자극이다. 어떤 식으로든 대상을 자극해 암시를 주어 인위적으로 결과를 끌어내는 것이다. 최면 앱은 이 모든 단계를 뛰어넘어 마치 입력을 시켜 결과를 내는 것처럼 만들어 낸다. 그러니까 사물이나 장소를 통한 최면도 가능하다는 거지.

말 그대도 사물이나 장소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대신 사물이나 장소를 통한 최면으로는 깊은 최면은 걸지 못한다. 감각, 인격, 인지 최면 같은 건 걸지 못한다는 거다. 가볍게 이 물건이 A가 아니라 B로 보인다거나 이 장소에서 무슨 소리가 나든 행동을 하든 인식하지 못한다거나 같은 가벼운 최면들만 가능하다. 저렇게 설명하면 ‘뭐가 가벼운데?’ 싶은데 무관심은 의외로 가볍다. 버스를 탔을 때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역시 무관심이니까.

인식 최면이나 조건 최면과 비슷해 보이겠지만 조금 다른 것 같다. 잘은 모르겠는데 일단 머릿속에 박힌 정보로는 그렇다. 이 최면은 일단 사람에게 거는 최면보다 가벼운. 그래. 착시현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한 그림을 보고 누구는 그 안에서 사슴을 보고 누구는 그 안에서 사람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 다른 점이라면 예에서 든 그림의 경우는 계속 들여다보면 어디서 사슴이 보이며 어떻게 봐야 사람 얼굴이 보이는지 알 수 있게 되지만 이 최면은 처음 본 것만 보게 한다.

사물과 장소 최면은 사물일 경우 반드시 내 물건이어야 한다. 공공재나 남의 물건은 리스트에 아예 뜨지 않는다. 장소는 내가 직접 발을 디뎠던 곳만 가능하다. 적절하지. 남의 물건으로 내가 무얼 하겠어. 장소 역시 내가 못 가는 곳이면 의미 없다. 성인용품점은 뭐 이미 발 디뎠잖아.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꼭 필요한 곳이니 모험을 할 필요가 있었다.

리스트에서 학생증과 성인용품점을 찾아 등록하고 필요한 사항을 입력했다. [본교 관계자 외에 사람들에겐 성인 민증으로 보인다.] [민증(학생증)이 확인된 사람은 확실히 성인으로 보인다.] 모든 걸 막 끝낸 순간 남자 직원이 다가왔다. 타이밍 참 좋다고 해야 하나 아슬아슬했다고 해야 하나.

“저기, 실례지만 민증 좀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지갑에서 학생증을 꺼내 직원한테 내밀었다. 이거 참 긴장이 되네. 내 눈에는 그저 학생증이니까.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는데 직원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학생증을 돌려주었다.

“죄송합니다. 워낙 동안이어서 순간 학생이신 줄 알고.”

“아뇨. 괜찮습니다.”

이 정도면 앱이 만능 같은 기분이네. 학생증을 돌려받아 지갑에 넣자 직원이 꾸벅 인사를 하며 카운터로 돌아갔다.

“올해 딱 만 19세셔.”

“와, 성인 되자마자 온 거야? 패기 쩐다.”

내가 정말 만 19세면 기분이 나쁠 법도 한 말이지만 실제론 미성년에 저 둘을 최면으로 속인 거인 지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미안해요 형, 누나. 여기 자주 올게요. 안도감이 들자 슬슬 가게 안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음, 둘러봐도 인공적인 살색과 용도가 척 보면 보이거나 아니면 기괴한 도구들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나름 처음 온 사람이나 초심자들에게 부담과 거부감이 들지 않게 밝고 깔끔하게 물품들이 진열이 되어 있었다. 슬슬 물품들을 둘러보며 아네로스를 찾았다. 중간에 구슬이 엮인 초심자용 딜도에 눈길이 갔는데. 이건 지금은 좀 그렇겠지? 적어도 전립선뿐만 아니라 내벽으로 느낄 수 있게 되면 그때 시도하자.

아네로스 칸으로 오자 형형색색의 아네로스들이 가득했다. 몇몇 샘플들 아래로 상자에 포장되어 있는 판매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샘플들 뒤에 어떤 제품들이 있는지 리스트가 작성되어 있었다. 살펴보는데 아네로스는 색만 다를 줄 알았더니 무슨 모양도 성능도 천지차이였다. 모터가 달린 것도 있네. 돌기에 회전에. 이게 낫겠지. 회음부랑 엉덩이 골을 자극하는 핫핑크색 아네로스. 그 녀석 흥분하면 혈액 순환이 빨라져 관절부터 불긋불긋 해지니까 핫핑크색 아네로스를 꽂고 있으면 훨씬 야할 것 같다. 전립선을 조금만 건드려도 선액이 뚝뚝 떨어졌는데. 아네로스를 꽂으면 분명 얼마 안 가 아네로스까지 흠뻑 젖겠지. 그리고 남자라면 핫 핑크.

“계산해 주세요.”

“아, 네. 잠시 내용물 상태를 확인해 드리기 위해 상자를 개봉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어…. 네. 확인해 주세요.”

남자 직원에게 아네로스를 내밀자 잠깐 당황하다가 곧 침착한 태도로 아네로스 상자를 열어 내용물의 상태를 확인시켜주고 다시 상자 안에 넣어 완충제와 겉이 보이지 않는 포장지로 포장해 주었다. 그 사이 여자 직원이 계산을 도와주었다. 성인용품답게 저 조그만 녀석 몸값이 무려 6만 7천원이다. 사이트 방칙이자 용품점 방칙대로 구매 금액이 3만원이 넘었다고 과일 향 젤과 콘돔, 작은 진동기를 사은품으로 주었다. 겸사겸사 아까 전 의심한 것에 사죄라고 흥분제가 포함된 젤도 몇 개 챙겨 주려 했는데. 딱히 바라지 않았으므로 보통의 젤로 교체 받았다.

물론 모두 딸기향으로 달라 했다.

아침에 생각 없이 아무도 없는 것을 지각이라 생각하고 허둥지둥 등교를 했건만 교실 문이 잠겨 있다. 대체 이게 무슨 사태지 싶어 준서한테 전화를 했더니.

-“미친놈. 이선웅 닮아가나. 오늘 토요일이야. 집에 가.”

라는 답변이 왔다. 아무리 그래도 이선웅 닮아가냐는 말은 너무 심하지 않나. 게다가 엄마는 왜 자연스럽게 배웅을 해주신 거지. 토요일에는 아침도 안 차려주시는 분이 아침은 물론이고 학교 잘 다녀오라며 배웅까지 해주셨다. 그리고 그 뒤에 누나 잡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는데. 내가 아침부터 교복을 입고 나와서 엄마도 평일이랑 헷갈리셨나. 휴대폰으로 밀린 톡들을 확인하는데 G.Y♥라는 이름으로 톡방이 생성되어 있었다. 사진을 보니 누나다.

-야이 개새끼야.

-니 혼자 지랄하던가.

-아침부터 무슨 봉변이야.

-양심이 있으면 집에 올 때 햄버거 정도는 사 와라.

친구 차단을 하고 톡방을 나갔다. 토요일이니 성지훈네 가기는 글렀네. 오늘이 금요일인 줄 알고 어제 강남까지 갔던 건데. 천천히 복도를 걸어 계단 쪽으로 향하는데 1반 쪽에 누군가 있었다. 익숙한 실루엣인데. 가까이 가보니 성지훈이었다. 그것도 교복을 입은.

“성지훈.”

“…윤계인.”

얘는 또 왜 토요일에 학교에 온 거지. 가방까지 야무지게 매고 왔네. 천천히 성지훈에게 다가가자 성지훈이 반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나와 성지훈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지만 말은 오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관계는 처음부터 내가 억지와 편법으로 이룬 관계니까. 오갈 말이 없는 거다. 그렇다고 무작정 섹스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짝짓기 철 발정 난 짐승도 아니고 상대를 보고 바로 섹스 타령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러면 미친놈이고. 잠깐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오늘 토요일인데.”

“…어쩌라고.”

“그런데 너도 나도 학교에 왔네. 신기하다.”

그렇게 말하니 성지훈이 자신의 뒷목을 쓸고 창밖을 보며 말했다. 화보네. 아니면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 찍을 수 있으면 찍고 싶을 정도였다.

“네가 오늘 우리 집에 온다며.”

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아네로스에 정신이 팔려서 어제가 금요일인 것도 잊고 성지훈에게 오늘 집에 찾아가겠다 이야기했었는데. 그거 때문에 학교에 온 건가. 내가 학교에 없으면 어쩌려고. 그것도 토요일인데. 엄청나네 최면 앱. 잠깐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오늘이 금요일인 줄 알았어.”

내 말에 성지훈은 잠시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기다리는데 녀석은 끝끝내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게 참. 사람이 어중간한 도덕성이란 게 있으면 살기 힘들다니까. 차라리 제대로 된 도덕성을 가졌거나 아예 없거나 하면 좋을 텐데. 그랬다면 지금 이 침묵밖에 흐르지 않는 상황을 유연히 끌고 가거나 아예 무시할 수 있었을 거다. 잠깐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8시가 다 되어 간다. 얼마나 서 있던 거야. 일단 어디 가서 앉는 편이…. 아, 지금 이 시간이면 조조 영화를 볼 수 있겠구나.

“있잖아. 우리 영화 보러 가지 않을래? 지금 시간이면 조조 영화 있으니까. 어때?”

“어.”

이번에도 부탁은 아니었지만 부탁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휴대폰으로 영화를 찾으며 성지훈의 취향을 물었다.

“좋아하는 장르 있어?”

“없어.”

“아무거나 좋다는 하지 말아 주라. 그게 제일 어려워.”

내 말에 잠시 입을 우물거리던 성지훈은 끝이 살짝 떨리는 손으로 영화 한 편을 짚었다. 뭐야 보고 싶었던 거 있었잖아. 확인하니 의외로 요새 유행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이거 ost가 특히 인상적이라고 소문났지. 전부터 시간이 되면 볼까 했던 영화니 나야 좋지만. 정말 의외네. 성지훈이라면 느와르나 추격, 액션 같은 걸 선택할 줄 알았는데. 이래서 사람은 겉으로 봐서 판단하는 게 아니라고들 하는구나.

“좋네. 나도 언제 한 번 봐볼까 했던 거고. 토요일 조조인데 자리 있을까.”

휴대폰으로 영화를 예매하는데 의외로 자리가 많았다. 오늘 의외의 사태 참 많이 일어나네. 이건 당연히 토요일이니까 다들 늦잠 자느라 영화고 조조고 다 버리는 거겠지만. 나랑 성지훈처럼 등교까지 해서 이러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히겠지. 8시 20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예매하고 성지훈에게 바로 시작이니 이동하자 이야기했다.

“어디로 가면 된다고?”

“어… L 타워.”

난 자연스럽게 쟤가 어쨌든 등교를 했으니 운전기사는 이미 돌아가셨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그게 또 아니었다. 운전기사에게 L 타워로 가 달라 말하는 성지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트에 등을 깊숙이 대고 몸의 힘을 풀었다. 편히 가면 좋지. 전철비도 아끼고. 집하고 학교를 오갈 때에는 굉장히 사무적으로 보였던 운전기사님이 무언가 기특하다는 눈을 하고 있는 게 조금 신경 쓰이긴 한데.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고. 적당히 외면할 수 있을 정도.

L 타워에 도착해 바로 영화관으로 올라갔다. 운전기사님이 좀 신경 쓰이긴 했는데. 성지훈이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가만히 있었다. 밑에서 기다리시는 것보다 성지훈네랑 강남을 오가는 게 훨씬 피곤하시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매표 기계에서 영화표를 뽑았다.

“우리 팝콘도 먹자. 좋아하는 맛있어?”

“…캐러멜.”

이번엔 바로 말해주네. 경험은 사람을 성장시킨다더니. 스위트 콤보로 팝콘은 캐러멜과 갈릭 반반으로 시키고 음료수는 간단히 콜라를 시켰다. 팝콘엔 콜라가 진리지. 영화표와 팝콘을 성지훈에게 안겨주고 양손으로 콜라를 들었다. 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영화 시작 시간이 10분은 지나 있었지만 여전히 광고가 재생되고 있었다. 성지훈이 인상을 찌푸린 채 영화표와 휴대폰을 번갈아 보는 걸 보고 의자 손잡이에 콜라를 꽂았다. 그 뒤로도 광고 몇 개가 지나가고 주변이 어두워지며 영화가 시작했다.

단순히 순정 판타지물인 줄 알았는데.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관계라든가. 의외로 많은 걸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연애 라인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잘 이해를 못 하는 건지 연애 포인트가 남들과 다른 것인지. 그냥 왜 갑자기 사랑에 빠진 걸까, 라는 의문은 남았다. 내 시점에서는 영화보다 노래가 더 많은 내용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물론 지극히 내 시점이다. 지극히.

영화관 안을 울리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하나 둘 켜지는 조명에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노래 나중에 다운 받아야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성지훈이 텅 빈 팝콘 통과 콜라를 들었다.

“아, 그거 남았으면 나 주라.”

영화 중반쯤에 콜라를 모두 마셔버렸기에 목이 좀 말랐다. 반쯤 남은 콜라는 얼음이 녹아 밍밍했지만 시원해 목을 축이기에 충분했다.

“영화 어땠어. 재밌었어?”

빈 통들을 정리하고 영화 한 편에 생긴 말거리에 만족하며 물었다.

“나쁘지 않네.”

“그렇지. 난 특히 노래가 좋더라.”

“아아…….”

이 새끼 맥가이버인가. 대화 단절에 재능이 있네. 정확히는 뭔가 대화에 집중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정신이 다른 데에 가 있나. 성지훈을 가만히 바라보니 녀석의 시선이 다른 곳에 향해 있는 것이 보였다. 시선을 따라가니 방금 봤던 영화의 포스터였다. 아, 그렇구나. 나는 영화를 보고 적당히 재미는 느꼈지만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했지만 녀석은 감명 깊게 영화를 본 모양이다. 이런 게 취향이구나. 성지훈을 따라 포스터를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또 볼까?”

“뭐?”

“지금 10시 밖에 안 됐고 바로 30분 뒤에 있는 것 같은데 볼래?”

“마음대로…….”

성지훈은 마치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고 싶다면 그렇겠지. 딱히 뭘 더 붙이지 않고 매표 기계로 가서 영화를 또 예매하며 카드를 투입기에 꽂기 위해 지갑을 꺼내는 순간 내 손보다 훨씬 크고 모양이 잘 잡힌 손이 카드를 투입기에 꽂았다. 뭔가 싶어 성지훈을 바라봤더니 녀석은 시선을 화면에 고정한 채 결제 버튼을 눌렀다. 좀 놀라긴 했지만 출력되어 나오는 표를 뽑았다.

“이거 이따가 돈 줘?”

“…아니.”

“그래. 고마워.”

영화관 안에 배치되어 있는 영화배우 피규어들을 잠시 구경하다가 콜라 하나를 시켜 관 안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보는 영화여도 성지훈은 집중해서 영화를 관람했고 나는 영화보다는 그런 성지훈을 관람했다. 시트에 기댄 몸과 꼰 다리, 팔짱을 낀 채 턱을 괸 손과 진중해 보이는 얼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진지함이 느껴지는 그런 표정이다. 그 안에서도 표정은 계속 변했다. 일단 부분에서는 표정이 유해지고 진지한 부분에서는 입꼬리가 내려가고 절정 부분에서는 마치. 맹수 같은 얼굴을 한다. 그 찰나의 얼굴이 아른거려 나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중에도 성지훈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영화가 끝나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성지훈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도 눈을 마주한 채 말했다.

“밥 먹으러 가자.”

학교에서도 생각한 거지만 성지훈은 의외로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뭔가 재벌 3세라고 하면 고기 하나 입에 넣고 이건 몇 등급이라 육질이 푸석거리고 육즙이 사라져 풍미가 사라졌다 같은 소리 할 줄 알았는데. 만화랑 소설 같은 거 적당히 볼 수 없지만 현실하고 적당히 타협을 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성지훈이 좀 다른 거일 수도 있고. L 타워 안에서 대충 식사를 해결하고 지하로 내려갔다.

중간에 어찌 되었든 나 때문에 토요일에 학교까지 오시고 L 타워에서 영화 두 편의 시간을 기다리시던 기사님께 죄책감이 들어 마실 걸 사다 드렸다. 성지훈이 묘한 눈으로 날 보긴 했지만 덕분에 그나마 홀가분한 마음으로 차에 탈 수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밖으로 나오자 당연하게도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햇살이 좋네. 따끈한 햇볕을 받으며 성지훈네로 향했다.

성지훈네 가정부 아주머니는 생활 가정부이신지 휴일임에도 현관에 나와 성지훈과 나를 반겨 주셨다. 운전기사 아저씨한테 미리 연락을 받으신 건지 식사를 이미 했다는 걸 아시는 아주머니께서는 간식거리를 가져다주겠다며 부엌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하셨고, 이를 말리려던 성지훈은 빠른 걸음으로 저만치 사라지신 아주머니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부터 느낀 건데. 아주머니랑 사이 되게 좋다.”

“시끄러워.”

성지훈의 한껏 낮은 목소리에 난 그저 어깨만 으쓱였다. 틀린 소리도 아닌데 무얼. 성지훈 방으로 들어가 잠시 아주머니가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오늘도 아주머니는 과일을 한아름 담아 주셨다. 아주머니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실한 딸기를 하나 입에 물자 딸기 향이 입안에 향긋이 퍼졌다. 역시 인위적인 향 말고 이렇게 싱싱한 딸기 향이 좋은데 말이야. 아, 그렇다고 해서 성지훈 항문에 딸기를 집어넣는 것 같은 기이한 짓은 하지 않을 거다. 대장균이란 것도 있고, 장이란 곳은 섬세해서 이물질이 들어가 남으면 크게 탈이 날 수도 있으니까.

즙을 몸에 뿌리는 건 괜찮겠다. 성지훈의 몸은 근육으로 다부져 자체로도 눈요기에 좋지만 하얀 피부에 빨간 딸기즙을 뿌리면 분명 미칠 듯이 야할 거다. 성지훈의 근육 사이에 고여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새빨간 딸기 즙을 생각하니 목이 말라와 메마른 것 같은 입술을 핥고 주스로 목을 축였다. 딸기가 참 무서운 과일이네. 분명 성지훈네 집에 막 도착했을 때에는 딱히 뭘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몸보다는 마음과 머릿속이 달아오른 기분이다. 사과로 입가심을 하며 가방으로 손을 뻗자 성지훈은 내가 무얼 하려는지도 모르면서 친히 손을 움직여 내 가방을 건네주었다. 그 친절에 잠시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리가. 가방 안에 포장되어 있는 아네로스를 꺼내려다가 성지훈에게 말했다.

“있잖아. 내가 어제 너한테 줄 선물을 사 왔는데. 그게 선물 같지 않은 거라 네가 화를 낼 수도 있어. 부탁인데. 너무 크게 화내지는 말아줘.”

“어.”

미안한 짓이지만 섹스 프렌드라는 놈이 선물이라고 아네로스를 가져다주면 확실히 기분 나쁠 거다. 개인 만족인 부분인지라 화를 내지 말라는 소리는 못 하겠고, 그냥 너무 크게 화를 내지만 않으면 좋겠다. 포장된 아네로스를 성지훈에게 건네자 녀석은 바로 포장지를 벗겨냈다.

“이거…….”

“뭔지 알아?”

뭔가 아는 눈치라 물었더니 성지훈이 인상을 쓴 채 아네로스를 살펴보며 대답했다.

“…아네로스잖아.”

“응.”

진짜로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전립선 마사지는 에로 만화 소재로 많이 나오고 은근 알음알음 퍼져 있어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네로스까지 아는 사람들은 좀 드물다. 알아도 대부분 이름을 잘 모르는 편이고. 놀라긴 했지만 성지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가만히 지켜보는데. 성지훈은 아네로스를 살펴보며 날 힐끔일 뿐 딱히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미간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지만. 목을 잠깐 쓸다가 성지훈에게 손을 뻗자 아네로스를 내 손에 올려 주었다. 아네로스를 받아 들고 성지훈 쪽으로 다가가 물었다.

“쓰는 법. 알려줘도 돼? 내가 알려주고 싶어.”

“…어, 돼.”

“고마워.”

아네로스를 깨끗이 닦아 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성지훈이 기겁하며 내 팔을 붙잡았다. 이유는 금세 눈치챘다. 이대로 그냥 복도로 나갔다가 가정부 아주머니나 실수라도 다른 식구들하고 만날까 두려운 것이겠지.

“걱정 마. 포장지에 잘 싸서 가져갈게.”

속삭이듯이 말하자 성지훈이 내 시선을 피하며 손을 놓아주었다. 난 성지훈을 난감하게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고. 흔한 소재로 나오는 숨김과 발각으로 이루어진 스릴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네로스를 속이 보이지 않는 포장지로 잘 감싸고 가방에서 항균 비누와 뿌리는 소독제를 꺼내 화장실로 향했다. 처음 사용하는 거니까 세척과 소독은 필수다.

아네로스를 항균 비누로 구석구석 깨끗이 닦고 물기를 싹 닦아 낸 뒤 수건과 아네로스에 소독제를 뿌리고 수건으로 감싼 채 방으로 돌아왔다.

“어.”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잠깐 다른 화장실 갔나. 이 넓은 집에 화장실이 하나일 리는 없을 테니. 그럴 지도. 일단 성지훈을 기다리기로 하고 젤과 아침에 새로 구입했던 장갑을 꺼내고 쓰레기들을 다시 들고 온 포장지 안에 담아 정리했다. 이건 내가 나가면서 버리는 편이 훨씬 낫겠지. 성지훈도 신경을 덜 쓸 거고.

겸사겸사 앱이 깔린 휴대폰을 꺼냈다. 미리 해뒀어야 했는데 여태까지 까먹고 있었네. 리스트에서 성지훈네 집을 선택하려다가 잠시 고민했다. 이걸 집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복도가 완전히 하나하나 나뉜 게 아니니까 집이 낫겠지. 리스트에서 집을 선택하고 입력란에 ‘위급사항, 호출 사항이 아닌 이상 각 방 안에서 나는 소리를 그 누구도 듣지 못한다(윤계인, 성지훈 제외)’라고 입력했다. 성지훈이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게 일부러 성지훈 역시 제외로 해 두었다.

사전 작업들을 마치고 한참을 기다리자 가벼운 옷차림의 성지훈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거 참, 첫날이 떠오르네. 묘한 침묵에 성지훈을 불렀다.

“옷 벗는 거 도와줄까.”

“됐어.”

평소에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인데. 묘하게 이 순간엔 기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성지훈이 옷을 벗고 침대에 눕는 이 순간이 만족스러우면서도 긴장이 된다. 성지훈 허리 밑에 수건을 깔고 성지훈에게 바짝 다가갔다.

“몸 만져도 돼?”

“…어…….”

젤을 듬뿍 짜서 양손으로 비비고 천천히 왼손을 성지훈의 가슴에 올렸다. 손이 피부에 천천히 맞닿고 성지훈이 깊게 숨을 내뱉었다. 왼손으로 진득하게 성지훈의 가슴을 매만지며 장갑을 낀 오른손을 허벅지에 대자 성지훈이 몸을 흠칫 떤다. 유륜을 둥글게 그리고 오른손을 점점 아래로 움직였다. 단단한 허벅지를 따라 깊숙이 내려간 손이 회음부에 닿고 항문으로 내려가는 동안 성지훈은 흠칫흠칫 계속해서 몸을 떨었다. 긴장을 한 건가. 손을 좀 더 느릿하게 진득이 움직이며 성지훈의 얼굴을 살폈다.

“괜찮아?”

“…어. 빨리… 으…….”

유륜을 맴도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진득하게 항문을 맴돌자 성지훈이 낮게 숨을 내뱉는다. 빨리라는 건 빨리 끝내라는 거겠지. 저번에 패기롭게 먼저 옷을 벗어재끼던 성지훈이 잠시 떠올랐다. 유두를 꼬집듯이 잡고 나머지 손가락을 펴 가슴과 함께 주무르며 천천히 중지 손가락을 항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하…….”

“아파?”

“…아니, 후…….”

성지훈이 숨을 내뱉는 거에 맞춰 점점 더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자 처음보다 유들유들 해진 내부가 손가락을 압박했다. 2주 동안 성지훈의 내부가 내 손가락에 나름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처럼 내 손도 나름 성지훈의 안에 익숙해진 터라 손가락을 크게 돌리며 더욱 깊숙이 들어가 전립선의 위치를 찾았다.

“응……!”

전립선에 손가락이 닿자 성지훈이 허리를 떨고 항문을 조였다. 거기에 천천히 손가락을 구부렸다가 펴니 지문과 손끝이 전립선을 스칠 때마다 허리가 움찔거리며 잘게 떨린다. 손가락의 뿌리 마디를 돌려 항문을 조금씩 넓히며 성지훈을 살폈다. 뿌리 마디를 돌리며 손가락 전체가 돌아가니 설핏설핏 스치는 전립선 때문일까 성지훈의 성기가 고개를 들며 까딱거렸다.

“하아…….”

“아파?”

“…아니… 응…….”

성지훈은 그렇게 대답하고 팔로 입을 막았다. 나쁘지는 않다는 건가. 뭔가 자체 해석 능력이 올라가는 기분인데. 기분만이 아닌 것 같고. 생각보다 항문이 풀린 것 같아 진득하게 돌리던 손가락에 속도를 조금 붙이자 성지훈이 허리를 잘게 떨며 목으로 억눌린 신음 소리를 냈다.

“흐으… 읏…….”

가슴을 만지던 손을 떼고 상체를 숙여 성지훈의 항문을 보았다. 손가락으로 휘젓던 항문을 한 방향으로 당겨 보니 처음보다 덜 빡빡해 살짝 공간이 드러났다. 손가락 하나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틈이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야.”

“왜? 어디 아파?”

“…보지 마…….”

고개를 들자 얼굴을 감춘 팔 사이로 눈을 뺀 성지훈이 보였다. 귓가도 눈가도 새빨개진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 팔 사이의 작은 틈을 좁혀 숨어버렸다. 아래로 내려갈 때부터 보고 있던 건가. 중간 마디까지 나왔던 손가락을 다시 뿌리까지 박아 진득하게 돌리며 한 쪽에 두었던 아네로스를 들고 위로 움직이려는데 바짝 선 채 고개를 까딱거리며 선액을 질질 흘리는 성지훈의 성기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식으로든 한 번 빼고 아네로스로 갈까. 후련한 기분은 안 들겠지만. 계속 쌓이는 것보다는 낫겠지.

최종적으로 바라는 모습이 전립선 자극 없이 항문으로만 가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성지훈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단 한 번도 녀석의 성기를 만져 준 적이 없다. 본인이 직접 만지는 것을 막을 생각은 없지만 일단 내가 만지는 일은 절대 없겠지.

“으으으응…! …아…….”

돌리던 손가락으로 전립선을 긁고 지그시 눌러 자극하자 성지훈이 허리를 들며 항문을 꽉 조였다. 조이는 내부에 손가락을 다시 돌리다가 전립선을 누르며 긁자

“응그으……!”

성지훈의 성기가 왈칵 선액을 토해냈다. 들린 허리와 흠뻑 젖어 질척한 복부, 손가락을 끊어 낼 듯이 조이는 항문에 들뜬 숨을 내뱉으며 나는 천천히 손가락을 빼냈다. 탄탄한 가슴이 성지훈이 거친 숨을 내뱉고 마시는 것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장갑을 빼내고 천천히 성지훈에게 다가가 바로 코앞에 아네로스를 보이며 말했다.

“이제 이거 쓰는 방법 알려 줄게.”

성지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네로스든 뭐든 항문이랑 장에 넣을 때는 젤을 바르고 천천히 넣어야 해. 그래야 항문 안으로 들어가기도 수월하고, 천천히 넣어야지 항문이랑 장이 다치지 않아.”

성지훈에게 쉴 텀을 줄 겸 아네로스와 젤을 들고 하나하나 설명을 시작했다. 중간에 그만하라고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자기 몸이 관련되어 있어서 그런 걸까 성지훈은 약간 넋이 나간 얼굴로 간간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 빼서 그런가 보다 하며 설명을 이었다.

“여기 길게 돋은 부분이 회음부. 그러니까. 여기에 닿게 하고.”

“하아…….”

성지훈의 회음부를 꾹 누르자 성지훈이 떨리는 숨을 내뱉는다.

“흐읏…….”

“여기 짧은 부분은 엉덩이 골에 닿게 하는 거야.”

회음부를 누른 손을 내려 항문을 지나 엉덩이 골을 지그시 눌렀다. 아직 민감한지 내가 성지훈 몸을 만질 때마다 비음과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살짝 몸을 뒤틀었다. 허리를 뒤트는 게 제대로 느낀 것 같아 야하다.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고 젤 통을 집어 아네로스에 젤을 부었다. 좀 더 보고 싶어.

“한 번 넣어 볼래? 같이 잡아 줄게.”

“…아…니.”

부탁이 아니라 그런지 성지훈은 거절했다. 딱히 뭘 노리고 이야기한 건 아니었기에 수긍하고 젤에 젖은 아네로스를 성지훈의 항문에 위치를 잡았다.

“아프게 안 해. 손가락보다는 조금 두꺼우니까 천천히 힘 빼고 숨 내쉬어.”

성지훈은 마치 준비라도 하듯이 숨을 급하게 들이마시고 내쉬더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멈추었다 천천히 내쉬었다. 난 그 타이밍에 맞춰 천천히 아네로스를 성지훈의 항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름 안을 풀어주고자 노력했던 덕인지 젤 덕인지 아네로스는 수월하게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으응… 읏…! 움직…여… 응읏……!”

“아네로스는 근육이 움직이는 대로 같이 움직여서 전립선에 자극을 주는 기구야. 혹시 아파?”

“아니… 응… 좋아… …하아… 읏…….”

그렇게 말하며 성지훈은 또 얼굴을 가렸다. 진짜 제대로 느끼게 됐을 때 얼굴을 가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야겠는데. 지금 이 모습도 좋긴 하지만. 역시 기구는 다르긴 다른지 성지훈은 성기를 세운 채 허리를 움찔거리며 억눌린 신음을 흘려 댔다. 어, 다리 벌리네. 이건 무의식인가. 처음 내가 앉아 움직일 만큼 벌려 있던 다리는 어느새 활짝 벌어져 성지훈의 치부를 모두 보여주고 있었다. 야해라. 가슴도 섰어. 그 2주 사이에 몸이 민감해졌나. 뭔가 귀엽다.

“흐으응……!”

손끝으로 벌어진 다리를 따라 안으로 위로 손을 움직였다. 내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성지훈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허리를 움찔거렸다. 종아리에서 허벅지로 허벅지에서 질척하게 젖은 치부로 치부에서 복근을 따라 올라가 종착역은 가슴. 그러고 보니 지금은 양손을 쓸 수 있구나.

다른 한 손을 들어 성지훈에게 뻗는 순간 내가 양손으로 성지훈의 가슴을 주물거리는 걸 3인칭과 성지훈 시점으로 생각해 보았다. 아, 싫은데. 안 그래도 변태 같은데 더 변태 같아 보이잖아. 잠깐 고민하다 슬슬 무릎으로 기어 성지훈의 다리 사이에서 빠져나와 슬슬 상체 쪽으로 이동했다.

“뭐… 흣… 응… 뭐…야… 아… 으……!”

“잠깐만.”

성지훈의 상체를 내 무릎 위에 올려 머리를 내 가슴에 기대게 했다. 나보다 키도 크고 근육질의 몸이라 버거운 감이 있긴 했지만 그게 좋은 거니까. 아네로스 때문인지 성지훈은 반항 없이 반쯤 나한테 기댄 채 여전히 양 팔로 얼굴을 가리고 거친 숨을 내뱉었다. 어, 여기서 보니까 얘 겨드랑이도 깨끗하네. 확실히 없는 게 더 야하고 꼴리긴 한데 아, 재벌 3세니까 이쪽은 제모일지도. 궁금했지만 물으면 기분 나빠 하겠지.

성지훈의 단단한 어깨부터 닿아 천천히 손을 아래로 내려 가슴을 양손으로 매만졌다. 손에 닿는 피부가 부드럽고 탱탱하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유두를 끼고 손을 뭉그적 돌렸다. 자극을 받아서 봉긋 솟은 유두가 귀엽다. 가슴을 쥐고 손 모양 그대로 검지와 중지로 유륜을 긁자 중간중간 유두가 스칠 때마다 성지훈이 몸을 움찔거리며 허리를 잘게 흔들었다. 시선을 아래로 흘려 보니 꼿꼿이 선 성기가 주륵주륵 선액을 흘린다.

성지훈은 가만히 서 있어도 시각적으로 자극을 주는데. 이렇게 알몸으로 색기를 흘리며 억누른 신음을 내뱉고 있으니 존재 자체가 자극으로 느껴졌다. 단단한 피부가 땀으로 번들거리고 자극으로 피가 빨리 돌아 불긋불긋 붉게 닳아 오른 관절부와 털 하나 없이 깨끗한 음부와 겨드랑이. 활짝 벌린 다리 사이로 축축이 젖은 장골과 바짝 선 채 움찔움찔 전립선액을 흘리는 성기. 아래에서 볼 때보다 위에서 보는 게 훨씬 아찔하고 야릇하다.

“응흐…읏…! 으응! 하아…….”

“성지훈 잠깐만 팔 내려주면 안 될까?”

“아… 읏… 알겠… 응… 읏…….”

대답을 다 내뱉지 못한 채 성지훈은 천천히 팔을 내렸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붉다. 눈을 질끈 감고 있던 건지 살짝 눈물이 맺혀 있어 가슴을 만지던 손으로 눈물을 훔쳐 주자 깊게 숨을 내뱉으며 눈을 감는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손을 내리고 동시에 고개도 내렸다.

“…으응…! 읏……!”

얼굴이 가까워지자 성지훈이 몸을 크게 움찔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 싫으면 그냥 기분 나쁘다 하면 될걸. 서로의 숨이 느껴질 만큼 사이를 좁히자 질끈 감은 눈에 힘이 너무 들어가 파들파들 떨렸다. 이렇게 보면 이 새끼가 순한 건지 최면 앱이 영행 미치는 부탁의 범위가 넓은 건지 그냥 병신인 건지 구분이 좀 안 간다.

잠깐 그 자세 그대로 파들파들 떨리는 성지훈의 눈꺼풀을 보다가 얼굴을 좀 더 가까이 해 코를 맞댔다. 성지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에 이번엔 내가 눈을 감고 맞닿은 코를 비볐다.

“흣… 너… 응! 흐응읏……!”

성지훈이 몸을 크게 뒤트는 것에 놀라 눈을 뜨니 뺨에 뜨거운 게 튀었다. 뭐지 싶어 뺨에 튄 것을 닦는 와중에도 성지훈은 몸을 계속 뒤틀며 억눌린 신음을 내뱉었다. 괴롭다는 듯이 이불을 발로 사부작거리고 허리를 뒤틀며 고개를 내 배에 문대는 모습에 나 역시도 열띤 숨을 내뱉었다. 이렇게 빠르게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도 안 했었는데. 바지가 갑갑해져 온다. 열기랑 습기가 가득하지만 입술이 바짝 마른 느낌이 들어 혀로 입술을 적시고 움찔움찔 몸을 떠는 성지훈을 매만지며 도닥였다.

“흐으응… 으읏…! 읏…! 응앗……!”

“괜찮아. 괜찮아.”

성지훈은 허리를 계속 움찔움찔 흔들며 얼굴을 계속 내 배에 비볐다. 말 그대로 발정 난 고양이 같아 묘하게 흥분감이 올라왔다. 네코미미 같은 거 분명 취향이 아닌데 순간 동할 정도로 색스럽다. 어느새 나는 가슴을 토닥이던 손으로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고 귓가를 매만져 내려가 열에 들뜬 뺨을 쓸어내리는 게 마치 내 손이 아닌 것 같았다. 진짜 요망하다 요망해. 어떻게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는데 사람을 순간적으로 홀리냐. 묘한 흥분감과 갑갑한 바지로 열띤 숨을 내뱉자 성지훈이 날 올려 보았다.

“…흐으… 읏…….”

“아네로스 어땠어?”

“…하아… 기분… 좋았…어… 하아…….”

“아프진 않았고?”

“읏, 어…….”

“다행이네. 잠깐만.”

아직 안에 들어 있는 아네로스 때문인지 몸을 비틀면서 성지훈의 성기가 서서히 다시 기립하자 성지훈을 베개에 눕히고 하체 쪽으로 내려갔다. 성지훈은 계속 남은 여운 때문인지 눈만 돌려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벌어진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자 그제야 자기가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짓다가 새빨개진 얼굴을 또다시 두 팔로 가렸다. 덩치랑 얼굴에 안 맞는 행동이 꽤나 귀엽다 이게 갭모에란 건가.

“이제 뺄게.”

“…어… 읏……!”

외설스럽게 움찔거리던 아네로스를 천천히 무리가 가지 않게 잡아당겼다. 항문에서 서서히 밖으로 끌어내지는 아네로스가 또다시 시각적 자극을 준다. 아, 물. 목말라. 아네로스의 두터운 부분이 항문에서 빠져나오며 질척한 소리가 났다.

“하아…….”

“읏…….”

아네로스를 빼내자 틈 없이 오그라든 항문이 옅게 옴칠거렸다. 와, 진짜 미치겠네. 손길이 다급해졌다. 진짜 나 변태긴 더럽게 변태구나. 어떻게 다 끝난 마당에 혼자 흥분하고 있는지. 티슈로 흘러내리는 탁한 액체들을 훔쳐내고 허리 밑에 깔린 수건을 접어 깨끗한 면으로 미끈한 땀들을 닦자 성지훈이 손을 뻗었다. 왜 손을 뻗었는지 생각하다가 수건을 올려 주니 목적이 맞았는지 손을 거뒀다.

“너…….”

“응? 아아… 미안 조금 있으면 가라앉을 거야. 보기 싫어도 좀 참아주라.”

두툼히 부푼 바지 사이에 성지훈이 인상을 쓰는 것을 보고 말했다. 화장실 가서 풀면 되지 않냐 할 수도 있긴 한데. 어차피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사라지고 나면 알아서 사그라들 거고. 지금 당장 화장실에서 그 생생한 모습을 상상하면서 딸치면 뭔가 음.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차라리 집에 가서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은 그런 기분에.

“후우…….”

“…병신 새끼…….”

“그렇지 뭐.”

딱히 부정할 마음이 없어 수긍하고 수건으로 닦은 아네로스를 손에 든 채 성지훈 옆에 엎드렸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성지훈한테 아네로스를 내밀자 성지훈의 손이 잠시 허공을 맴돌다가 머뭇머뭇 아네로스를 받아 들었다. 느릿한 손길로 아네로스를 살펴보는 성지훈에게 바짝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오늘 아네로스 쓰는 법 배웠으니까. 하루에 딱 30분씩만 아네로스 연습해보자. 응?”

속삭이듯이 부탁하는 내 말에 성지훈은 단숨에 귀까지 붉게 물들인 채 고개를 픽 돌렸다. 물론 5초 정도 뒤에 되돌아온 대답은 당연히 Yes였다.

그다음 주에 바로 성지훈한테 홀로 한 항문 자위의 후기를 물으며 좀 더 진도를 빼보려 했는데. 하필이면 모의고사 기간이 돌아왔다. 나야 집에서도 원하는 진로는 스스로 개척하라 주의기에 성적에 그리 관여하지 않지만 성지훈네는 또 어떤지 모르고. 무엇보다 학년 톱이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녀석이기에 신경이 쓰여 모의고사 준비 기간 동안은 쉬는 시간과 하교 후 성지훈에게 찾아가는 것을 자제했다. 물론 점심은 함께 했지만. 그런 고로 모의고사를 치른 다음 날. 성지훈네 반으로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누나가 우리 반으로 찾아왔다. 아침부터 재수 옴 붙었네.

“너 내 이야기 듣고 있어?”

“아니.”

“야!”

어디서 뭘 주워 먹고 탈이 난 것도 아니고 누구랑 대판 싸워서 어디 다친 것도 아니면서 왜 우리 반으로 찾아와 싫다는 사람을 끌고 오는 건지. 계속 뭔가 떠벌떠벌하데. 솔직히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커서 한 귀로 흘리고 있었더니 성을 냈다. 한숨을 푹 내쉬니 좀 들으라며 성을 낸다.

“아, 그래서. 오늘 외박이니까 엄마한테 말해달라고?”

“아니, 외박은 아니고, 그리고 그걸 왜 말해 미쳤어?”

“미친 건 누나지. 내일도 등교하는데 클럽이 뭐야 클럽이.”

오늘 저녁부터 친구들과 클럽에 가게 되었으니 엄마에게 알아서 잘 말을 맞춰달란 부탁 하나 때문에 누나는 3학년 교실이 있는 2층부터 2학년 교실이 있는 3층까지 올라온 것이다. 누나는 생일이 3월이라 진작 민증이 나온 상태인데. 친구 중 한 명이 잘 아는 클럽이 있다고 한다. 자랑이다. 자랑이야. 그럼 그냥 자기가 알아서 하고 알아서 그 책임을 지고 알아서 뒷감당을 하면 될 걸 왜 남을 불러서 이 난리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

“아, 뭐! 다들 가는데 뭐 어때!”

“그럼 엄마한테 그렇게 말해. 나한테 그러지 말고. 다들 가는데 난 왜 못 가냐고. 누나가 말하는 것처럼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동이면 엄마도 뭐라고 안 하겠네.”

“아, 시발 존나 재수 없는 새끼… 야, 그러지 말고 좀. 누나 한 번만 살려주는 셈 치고!”

“위기의 순간에 사람은 언제나 혼자라고들 하더라.”

더불어 딱히 살려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 이제 슬슬 종 칠 것 같은데. 성지훈한테는 다음 쉬는 시간에 가 봐야 하나. 어떻게든 짬이 나지 않을까 싶어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 순간 종이 쳤다. 아, 진짜.

“아, 씨. 야, 이따 다시 올 테니까 교실에서 기다려!”

“내가 왜…….”

행동력 하나는 진짜 삐삐 뺨친다니까. 누나는 대답도 듣지 않고 허겁지겁 교실로 달려갔다. 그것보다 기다리라니. 이다음 쉬는 시간에는 성지훈한테 갈 생각이다. 무슨 이득이 있다고 누나를 기다려. 투덜거리며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자 준서와 선웅이가 앞에 앉았다.

“누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으시네.”

“아냐아냐. 오히려 엄청 진화하셨는데! 뭐 진화의 돌이라도 썼어? 아니면 문장?”

“다 필요 없고 다운그레이드 시키고 싶다. 그때 B버튼을 진짜 죽을 듯이 연타했어야 했는데.”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자리는 자연스럽게 파했다. 이번 쉬는 시간에는 성지훈한테 가 봐야지. 누나는 분명 쉬는 시간까지 꿈속을 헤맬 테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런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윤계인!”

이번 쉬는 시간에도

“계인아!”

그다음 쉬는 시간에도.

“계인 오빠!”

그다음다음 쉬는 시간에도 누나는 찾아왔다.

심지어 최대한 친밀감과 동정심을 유발시키려고 호칭까지 바꾸고 있어. 진짜 온몸에 두드러기가 도는 기분이야. 토할 것 같아. 이타치가 강한 이유를 실천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야. 탈주 닌자의 말로 따위 내 알 바인가. 난 닌자도 아닌데.

“아, 진짜 계인아 딱 한 번만. 나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단 말이야.”

그렇게 말한 누나는 묻지도 않았건만 주절주절 이야기를 풀었다. 약 반년간 썸 단계를 유지하던 학생회장이 슬슬 고백 준비를 하는 것 같고 고백을 한다면 당연 누나는 사귈 마음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그 학생회장이 클럽이나 술 같은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는 건데.

“왜 다 추측이야.”

“아, 척 보면 나오잖아 척 보면! 연우는 정말 그쪽으론 순딩이고! 저번에 내가 슬쩍 떠봤을 때에도 부정적인 반응이었다고!”

“그럼. 미성년에 상대는 학생회장이잖아. 클럽을 반기면 문제인 위치라고.”

“아, 하여튼! 그런 이유로 누나의 자유가 오늘로 마지막이란 말이야. 응? 이번이 진이이이인짜! 마지막이야!”

사정사정하는 누나를 보며 생각했다. 이거 또 거절하면 또 찾아오겠지. 심지어 이 다음은 점심시간이고. 그냥 평소처럼 마지막이네 뭐네 하다가 대충 투덜거리면서 몰래 갈 줄 알았는데 이번엔 정말 절박한 모양이다. 아, 그럼 그냥 처음부터 나한테 유리한 쪽으로 밀어붙일 걸. 괜히 양심 챙겨서 시간에 정신력에 낭비할 대로 낭비하고. 한숨을 깊게 내쉬고 누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5만 원.”

“2, 2만 원!”

“5만.”

“3만!”

“5만.”

“3, 3만 5천!”

“5만.”

“시발, 다 쳐 먹어라 개새끼야!”

누나는 거친 손길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5만원권을 내 손 위에 내려쳤다. 나 역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집어넣는데 누나가 우는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 새끼야 이렇게 누나 등을 쳐 먹으니 좋디? 응? 좋냐고 개새끼야!”

“무슨 소리야. 이건 등쳐먹은 게 아니라 합당한 거래지.”

“그으래? 그럼 네 말대로 합당한 거래니까 엄마한테 말하는 순간 넌 진짜 동생이고 뭐고 내 손에 디질 줄 알아.”

그렇게 말하며 다짜고짜 내 옷깃을 잡고 흔드는 누나의 손길에 그냥 몸을 맡기고 너는 흔들어라 나는 흔들릴 테니. 라는 마음가짐으로 흔들리고 있는데 갑자기 강한 힘이 누나와 나를 떼어 놓았다. 뭐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성지훈이 내 목덜미를 잡아 끌고 있었다.

“어, 성지훈.”

“어, 어. 어! 너 성지훈이랑 친구였어?! 뭐야, 언제부터 친했어?”

“그걸 누나가 알아서 뭐 하는데.”

“누나?”

성지훈의 되물음에 다시 시선을 돌리니 성지훈이 설명이 필요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뭘 설명하란 거지. 잠깐 생각을 하다가 누나 쪽에 힐끗 눈짓을 주니 성지훈이 고개를 까딱였다.

“어, 일단 우리 누나야.”

“어머, 너도 참. 일단이 뭐니 일단이.”

제대로 소개 안 해주냐. 이번엔 누나가 눈으로 말했다. 뭘 소개해. 게다가 이제 와 무슨 내숭인지. 이미 아까 전 흉포하게 방정 떠는 모습을 보였다고. 어깨를 으쓱이며 모르는 척을 하자 누나가 성을 내려다가 성지훈을 보고 호호 웃었다. 호호라니 소오오름. 기가 막혀 숨을 흥 내뱉자 성지훈이 단단히 붙잡고 있던 옷깃을 놓았다.

“하여튼. 말 잘 해. 우리 계인이 잘 부탁할게. 좀 이상한 애인데 못돼 처먹었거든.”

“저게 말이야 막걸리야.”

“너도 참. 당연히 언어지. 그럼 누난 갈게. 호호호호.”

한 손으로 곱게 입을 가린 채 호호 웃는 누나는 정말 꿈에 나올까 무서웠다. 저거 진짜 못생겨서 클럽에서 쫓겨나는 거 아니야?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사라지는 신형에 뭔가 기가 막힌 기분이 들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

“응?”

또 뭔가 싶어 성지훈을 보니 뭔가 평소와 다른 표정을 지은 채 날 바라보고 있다. 이 표정 어디서 많이 봤는데. 묘한 기시감에 성지훈을 가만히 바라보자 고개를 픽 돌렸다. 옆태도 잘 빠졌네. 흡족한 기분을 만끽하며 성지훈이 뭘 이야기하려고 했나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꼭 필요한 말이면 했겠지. 그게 아니니 그냥 넘긴 거일 거고. 게다가 되묻는 것도 좋아하지 않을 거다.

“들어갈까?”

“…….”

성지훈은 뭔가 말하고 싶은지 입만 뻥긋거리다 내 손목을 잡았다. 이제 곧 종도 칠 거고 차라리 점심시간에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은 해야 하는데 뭔가 나만 생각하던 관계에 성지훈이 손을 내밀은 것 같은 느낌이라 이대로 그냥 서 있고 싶다. 음, 손목 하나 잡힌 것만으로 망상의 폭이 넓어지는구나. 그렇게 또 막연히 성지훈의 말만 기다리던 찰나 학교 안 가득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성지훈 역시 급해졌는지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고, 나는 가만히 그런 성지훈을 바라보다 붙잡힌 손을 돌려 손끝으로 성지훈의 손목을 쓸었다.

“너……!”

화들짝 성지훈이 내 손목을 놓으며 파드득 몸을 뒤로 피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이따 점심시간에 마저 이야기하자.”

“…알겠으니까 다음에는…. …됐다…….”

“응?”

그 뒤로는 수업 시간에는 앱을 조작하고 쉬는 시간에는 잠시 3학년 교실 쪽을 배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덕분에 만반의 준비를 끝냈으니 한시름 놓으면서도 동시에 그냥 놓고 싶다. 아, 다 해놓고 나니까 기운 빠져. 그래도 이렇게까지 고생해 놓고 빼는 건 아니겠지. 열심히 조작해 놓은 것들이 몽땅 도루묵에 성지훈한테 이미 시간 빼라고도 했고.

오늘은 오랜만에 학생 신분에서 일탈이란 걸 좀 해보려 한다. 이렇게 말하니 뭔가 크고 비장해 보이는데. 그런 건 아니다. 그냥 가볍게 놀러 나가는 거지 뭐. 보통은 뒤처리나 앞처리가 귀찮아서 피하는 편인데. 뭐, 최면 앱으로 앞처리도 뒤처리도 꽤나 쉬워졌으니까.

고급시계에 이어 소환사의 협곡으로 나를 꼬시는 선우놈을 버리고 성지훈과 시내로 향했다. 일단 교복을 입고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옷가게부터 들어갔는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모든 이의 시선이 성지훈에게 향했다. 선이 굵직굵직하고 딱 남자다운 미남인 덕인지 정말 말 그대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성지훈을 힐끗였다. 아마 성지훈이 입고 있는 것이 교복이란 건 눈에도 안 들어오겠지.

간단하게 입을 티와 바지를 고르고 성지훈은 어떤가 싶어 확인했더니 그 사이에 여직원이 옆에 붙어 이것저것 설명을 하는데. 정말 설명을 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구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태연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저것도 정말 재능이다 재능이야. 슬슬 성지훈에게 다가가니 삐딱하게 선 녀석이 말했다.

“다 골랐냐?”

“넌?”

“뭐?”

“너도 골라야지.”

내 말에 화색이 돈 건 직원이요, 흑색이 도는 건 성지훈이다. 어느새 성지훈 옆에서 혼자 떠들던 직원의 호칭이 손님에서 학생으로 변했다. 이제야 학생인 걸 눈치챈 모양이다. 나는 그런 직원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핏이 잘 빠진 흰색 티를 잡았다. 별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은 주제에 핏이 잘 빠졌어.

“귀찮으면 그냥 흰 티랑 청바지만 입어.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잖아.”

가벼운 말에 녀석은 인상을 쓰더니 심각한 얼굴로 옷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영 탐탁지 않아 보이는 걸 보면 아무래도 흰 티랑 청바지가 최후의 선택을 받아 저 탄탄한 몸에 둘러질 것 같다. 그리고 예상대로 성지훈은 결국 흰 티와 검정에 가까운 군청 바지, 검은색 재킷을 몸에 걸친 채 탈의실 밖으로 나왔다. 이미 말했다시피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대충 걸쳤는데도 녀석은 완벽했다. 모델이 따로 없네.

나 역시 계산한 옷으로 갈아입고 지하철역으로 가 물품 보관함에 지갑을 제외한 모든 집을 집어넣고 성지훈을 바라보자 성지훈이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장담하건대. 성지훈은 오늘 난생처음으로 지하철 물품 보관함을 사용하는 걸 거다. 기념적인 날이네. 내 눈짓에 성지훈은 결국 자신의 물품 역시 지하철 물품 보관함 안에 집어넣었다. 경축 성지훈 처음으로 물품 보관함을 사용하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하고 나니 배가 출출해져 근처 쌀국수 집에서 허기를 달래고 목적지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를 시켜 자리 잡았다. 중간에 머핀이 살짝 눈에 들어왔는데. 카페라테도 시킨 이상 고체가 들어오면 터질 것 같아 참았다. 그나저나 의외로 시간을 이것저것 오래 잡았었구나. 생각보다 일찍 저문 해에 머릿속으로 다음 일정을 정리했다. 뭐, 준비는 완벽했으니까. 좀 걱정인 건 성지훈 쪽인데. 슬쩍 성지훈을 보니 곧장 눈이 마주쳤다. 어, 하는 사이 성지훈이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뭐야 보고 있었나. 하긴, 설명도 없이 여기저기 다녔으니 슬슬 물어볼 때도 되긴 했지. 음, 솔직히 성지훈은 교복을 입지 않는 이상 학생이라고 생각하기 힘드니 괜찮을 거다. 혼자 납득하고 시간을 확인한 후에 결국 머핀을 시켰다. 액체랑 고체는 엄연히 다르더라고. 성지훈에게도 권했지만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먹어 두는 편이 좋을 텐데.

“야.”

“…미쳤냐?”

“왜?”

조금은 먹는 편이 좋지 싶어 호두가 알알이 박힌 머핀을 조금 잘라 내밀자 성지훈이 인상을 쓰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하아… 진짜 또라이 새끼…….”

“왜.”

“됐어. 너나 많이 쳐 먹어.”

“안 먹어?”

“됐다고.”

“그래.”

한국인이라면 세 번은 권해주는 게 예의니 세 번은 물었다. 호두 머핀은 그렇게 내 입속으로 홀랑 사라졌다. 입안에 남은 호두를 씹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음, 밖도 딱 캄캄하고. 시간도 적당하니 슬슬 일어나는 편이 좋겠지. 성지훈 쪽을 보니 이미 아메리카노의 잔재가 남은 컵 속에 뭉그적 얼음조각들만 녹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럼 가도 되겠네.

“가자.”

“어.”

자리에서 일어나 먹고 마신 것들을 정리하고 이동했다. 조금 걷자 목적지가 코앞이다. 간판 아래로 라인을 따라 늘어선 사람들을 보고 줄을 서자 성지훈이 인상을 쓰며 내 뒤에 섰다. 바로 앞에 있던 여자들이 꺄륵거리며 성지훈에게 말을 거네 마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가 해라 내가 한다 하지 마라 해봐라 말들 참 많다 많아. 앞에서 검문이 빨리 이루어지는지 빠르게 줄어드는 줄에 여자들은 계속 눈치만 보다가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신분증 좀 보여주시죠.”

우리 차례가 되자. 문지기가 손을 내밀었다. 성지훈이 보지 못하게 몸을 틀어 시선을 차단하고 학생증을 문지기에게 내밀었다. 그는 무얼 보는지 꼼꼼히 학생증을 살펴보더니 곧 나에게 돌려주며 몸을 비켜섰다.

저번 성인용품점에서 이용했던 최면은 학생증과 성인용품점이란 공간에 사용했지만 나중에 생각을 해보니 그건 효율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나에게 최면을 걸기로 했다. 내용은 ‘신분증(학생증)을 확인한 사람은 윤계인을 의심하지 않는다.’라는 최면으로 내가 최면의 매개체가 되고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이 최면에 걸리는 구조다.

안으로 들어가며 뒤를 보니 예상대로 성지훈은 프리 패스였다. 그래, 오히려 미성년이라 하면 못 믿는 외모지. 잠깐 성지훈을 기다렸다 내부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쿵쿵 들려오던 음악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곧 귀를 찌를 듯이 쿵쾅거리며 온몸을 울렸다. 빨강 파랑 눈을 찌르는 조명들이 하얗게 번쩍거리며 춤을 추고 녹색 레이저와 함께 손을 흔드는 디제이가 리듬을 타며 호응을 이끌고 있었다. 위층은 밀려들어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아래층은 춤을 추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이거 누구 잃어버리면 찾을 수 있으려나.

있다.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기우제를 지내는 누나를 보고 혼자 쪽팔려서 얼굴을 쓸었다.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예상은 하긴 했는데…. 심지어 심취해 있어. 저건 진심으로 자기 춤은 완벽하고 사람들은 그 완벽한 춤 때문에 자길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얼굴이야. 자부심이 넘쳐. 그래, 넘칠 만해. 누나, 그 정성이면 하늘에서도 비를 내려 줄 거야.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 폭우 때문에 집이 잠길 차기 수재민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뭔데.”

“아, 그게. 내일은 비가 오겠다 싶어서.”

“뭐?”

“그것도 미칠 듯한 폭우가.”

“윤계인?”

“아, 진짜 격하게 연 끊고 싶다.”

터져 나오는 깊은 한숨을 차마 막지 못하고 마른 세수를 하며 자아 성찰을 했다. 저건 타인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타인이자 남이다. 왜 내가 저걸 또 확인하러 왔을까. 그냥 바로 성지훈네 가서 예쁘고 좋은 것만 볼걸. 아, 진짜 내 인생 최대 후회다. 충동적으로 성지훈까지 끌고 와서 못 볼 꼴만 봤다. 그 사이 성지훈은 누나를 또 알아봤는지 나랑 누나를 번갈아 보았다.

“저 사람…….”

“아니야. 지금 이 순간부터 타인이야.”

“…그래.”

“오자마자 미안한데 이만 가자. 볼일 끝났어. 못 볼꼴 보여서 미안하다.”

볼일이 끝났지. 끝났어. 저 정도면 오히려 이상한 놈들이 꼬이다가도 도망칠 거다. 오히려 다른 녀석들이 꼬이겠지. 기상청이나 사이비 같은 애들. 어느 쪽이든 적성에 잘 맞는 애들이랑 눈 맞으면 좋겠네. 일탈이라기엔 뭐 하지만 하여튼 우리의 일탈은 여기서 끝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싶어 성지훈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옆에서 익숙한 이름을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미친 저게 뭐야. 푸하하하하! 야, 저거 윤계을 아니냐? 대박 큽!”

창피고 나발이고 일단 어떤 새끼인지 얼굴을 봐두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익숙한 얼굴들이 둘러 모여 누나 쪽으로 삿대질을 하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아, 저 새끼들. 이름은 안 외워도 얼굴은 외우고 있다. 똥폼 잡으면서 지들도 3학년이라고 1학년들한테 괜히 가오 잡는 건 기본이고 질 떨어지는 언행에.

무엇보다 내가 저들을 아는 가장 큰 이유는 작년에 당시 1학년이었던 여학생한테 추파를 던지다 차이고 스토킹을 하며 상대를 괴롭히다 정학 맞고 피해자 여학생은 전학을 갔었기 때문이다. 그 뒤에도 피해자가 학교에서 사라졌기 때문인지 고개를 떳떳이 들고 피해자 여학생에 대해 성적으로 떠들고 다녔었지. 얼굴이 굳어진 것이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인데 지켜보는 사람은 어떠할까. 성지훈이 녀석들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려고 할 때 그를 말렸다. 괜히 눈을 버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였다 그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러게 대박이다.”

많이 들었던 목소리에 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학생회장이 그들 사이에 서서 윤계을을 보고 있었다. 네가 왜 거기 있어?! 거기에 대박이라고? 어울려 놀고 있고? 무언가 정리가 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자 성지훈이 옆에 선다.

“윤계인?”

“어, 어. 미안 잘 안 들려서. 그, 우리 이만 갈까…….”

“얼른 따먹고 버리든가 해야지. 쪽팔려서 어떻게 같이 다녀 저거랑.”

저 새끼가 누굴 따먹고 버리는 년으로 보고 지랄이야. 눈이 돌아가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저 시발 새끼가…….”

“윤계인. 나 봐.”

“어, 잠깐만.”

“나 보라고.”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성지훈이 뭔가 화가 난 것 같은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제야 여태까지 그를 방치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다짜고짜 여기로 끌고 와서 놀랐을 텐데 누나랑 학생회장 때문에 눈 돌아가서 방치해둔 꼴이라니. 후,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쉬었다.

“…미안. 미안. 내가 좀 순간… 화가 나서.”

“…….”

“…일단 나가자. 정신없다. 그냥 여기에 누나가 있어서 좀 확인하러 온 거야.”

그렇게 말하고 성지훈을 이끌고 나가려 하자 성지훈이 잡힌 팔에 힘을 주었다. 뒤를 돌아보니 녀석이 뚱한 얼굴로 있다 입술을 깨물기 시작했다. 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싶어 기다리니 곧 녀석이 물었다.

“…우리 집으로… 갈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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