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아무리 보아도 인간의 기술로 설명이 되지 않는 최면 앱이란 걸 얻게 되고 사용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하면 일단 실험을 해봐야지, 라고 생각한다.
이미 눈치챘을 것 같지만 난 쾌락주의자에, 기회주의자이며, 흥미를 따라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물론 그러면서 법과 규칙, 인간성은 다 지키고 사는 모범적인 쾌락주의자다. 그런 내가 이런 상황을 놓칠 순 없지.
“엄마, 나 다녀올게.”
“응, 다녀와 아들! 공부 잘하고!”
“엄마, 쟤가 퍽이나 공부를 하겠다.”
엄마의 말씀에 아직까지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누나가 말했다. 저러다 맘스터치나 당하지. 그리고 예상대로 누나는 곧장 엄마에게 등짝을 찰지게 맞았다.
“니가 할 얘기냐, 이 가시나야. 넌 학교 갈 마음이나 있어? 고 3이 이 시간에 교복도 안 갈아입고 뭐하는 짓이야?”
“아, 쫌! 왜 나만 가지고 그래!”
“그럼 지금 여기서 잔소리 들을 사람이 너 밖에 더 있어? 너 빤스만 입고 밥 먹고 있는데 계인이는 진작 일어나서 옷 갈아입고 학교 가는 거 봐라.”
“나 진짜 가요.”
다시 한번 소리치고 이번에는 뒷말을 듣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왔다. 엄마랑 누나는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때때로 잘 모르겠다. 싸울 때는 진짜 인연을 끊을 것처럼 싸운다니까. 게다가 곧 있으면 지각인데. 나중에 엄마 탓이네 네 탓이네 하겠구나. 잠깐 현관을 보고 곧장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문 앞에는 학생회와 선도부가 일렬로 줄을 선 채 복장 검사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잡힐 만한 녀석들은 등교 전인지 선도부 옆에는 꽤 긴 줄이 서 있었는데 그중 몇몇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기에 대충 고개를 흔들어 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 계인아, 안녕. 계을이는?”
“모르겠습니다.”
“어? 자, 잠깐만 집에는 있는 거지?”
“예.”
누나랑 썸을 타고 있는 학생회장이 내 대답에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뺐다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동시에 나한테 뭔가 열렬한 눈빛을 보내는데, 의미를 알 수가 없어 어깨만 대충 으쓱이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에 학생회장이 다시 부른 것 같은데, 무시했다. 미안하지만 난 누나랑 현실의 동생 누나 사이입니다. 선도부가 앞에 있다고 친절히 ‘누나, 얼른 와!’ 같은 말을 해주는 그런 따뜻하고 현실 단계를 뛰어넘은 사이가 아니에요. 그리고 안부 인사 같은 걸 전해줄 정도로 댁이랑도 안 친해요.
“오, 외계인 왔다.”
“외계인!”
“어. 안녕.”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징글징글한 선웅이와 준서가 손을 흔들고 지들끼리 놀고 있던 놈들 몇몇도 대충 인사를 해주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선웅이 놈이 쪼르르 쫓아와 휴대폰을 들이밀며 자기 신기록이네 뭐네 떠들었다. 슬쩍 준서를 보니 이걸로 꽤나 시달렸는지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휴대폰만 들여 보고 있다. 와, 이거 좀 길고 지루하구나? 그치? 슬쩍 시간을 보니 조금 있으면 조회시간이다. 이야기가 중간에 끊기겠네 싶어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씨. 야, 외계인. 너네 별하고 통신하지 말고 좀 들으라고.”
“급한 메시지라는데 어떻게 그만둘 수가 있어?”
“와, 급한 메시지래. 신박한 놈. 왜, 지구 멸망 날짜라도 알려 주냐?”
“이미 멸망 중인데 정확한 날짜까지 알 필요 있냐고 하는데.”
“시발 개 소름. 이미 멸망 중이었다니. 야! 지구 멸망한데!”
선웅이 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소리쳤다. 또 시작이구만 저거. 라는 눈으로 보다가 준서랑 눈이 마주쳤더니 준서가 입모양으로 말했다. 프로 어그로꾼. 실제로 선웅이 놈이 어그로를 끌자 다른 놈들도 똑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뭐? 멸망이라고? 하고 있다. 하하. 녀석들 요새 삶의 낙이 지지리도 없는 모양이다. 녀석들의 지구 멸망 찬양은 약 5분 정도 이어졌다. 왜 5분밖에 되지 않냐면 한참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때 조례시간에 맞춰 들어오신 선생님이 주도자인 선웅이의 뒤통수를 출석부로 후려쳐 어그로꾼의 도발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조례는 늘 같다. 다른 점은 이번 달부터 이사들이 학교를 둘러보니 복장과 행동에 유의하라는 것과 같은 이유로 지구 멸망 타령은 다른 반에서 하라는 거였다. 고향과도 같은 교실을 떠날 수 없다 외친 선웅이는 자업자득으로 교무실 호출령을 받았다.
“하, 계인아. 내 사랑하는 친구야.”
“미안한데 내가 지구어가 좀 미숙해.”
“준서야!”
“얘랑 나랑 같은 행성 출신임.”
“됐어 배신자들! 이타치가 강한 이유를 알고 있냐!”
“이타치 결국 죽었어, 병신아.”
선웅이 놈은 그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뒷문으로 뛰쳐나갔다. 멍청한 놈, 탈주 닌자의 말로를 기억하지 못하다니. 준서가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딱히 맞장구쳐줄 말이 생각이 안 나 대충 어깨를 으쓱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잠깐 어디 좀 다녀옴.”
“똥?”
“올 때 멜론바.”
“지랄 마라.”
복도로 나온 나는 망설임 없이 1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말했다시피 이런저런 추정으로 최면 앱이 생겼으니 일단 테스트를 해봐야지.
전부터 관심이 있거나 흥미로운 녀석이 있는 건 아니다. 이래저래 생각을 해 본 결과 일단 얼굴이랑 몸은 솔직히 잘생기면 좋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자주 만날 수 있어야 할 테니 같은 학교. 그렇다고 같은 반이면 좀 껄끄러울 것 같으니 다른 반으로. 나중에라도 내가 그만두어야 할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도 서로 거리감이 좀 있고, 무엇보다 친구가 없는 녀석. 전과 다른 점을 느껴 의심하고 수상한 시선을 던지는 놈이 있으면 성가시다.
그런 조건에 맞는 녀석은 우리 학교에 딱 한 명 있다. 같은 학년 1반의 성지훈. SG기업 회장의 막내 손자인 성지훈은 재벌 3세답게 미남에 각종 스포츠 만능, 공부도 상위권. 단점은 자신의 주변으로 다가오는 놈들은 모두 물어뜯는다는 것. 상대가 호감을 품든 질투를 품든 모든 이들에게 이를 보이며 위협한다. 이로 인해 문제도 몇 번 일으켜 정학도 몇 번 받았지만 역시 재벌 3세. 모든 뒷일을 해결하고 번번이 학교로 돌아왔다.
눈에는 띄겠지만 조건이 가장 좋으니까. 게다가 상대가 성지훈이라면 섣불리 다가오는 놈들은 없을 거다.
“어, 외계인이다.”
“외계인?”
“어, 정말이다.”
“왜 외계인인데?”
“외계인이니까 외계인이지. 그런데 쟤 왜 저리 가냐?”
“미친 외계인 새끼.”
1반에 들어가자마자 맨 뒷자리에서 엎드려 있는 성지훈에게 다가가자 기겁하는 소리가 한가득이다. 그 소리에 성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안녕.”
성지훈은 대답 대신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다시 엎드리거나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그저 꺼지란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을 뿐이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런데 잠깐 따라와 주라.”
내 말에 주변에서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1반 애들도 공감능력이 뛰어난 애들이 많은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당사자는 나인데 왜 자기들이 더 떨고 있겠어. 미쳤네, 돌았네, 외계인이네 떠드는 소리는 성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뚝 멈추었다.
“빨리 끝내라.”
성지훈은 자기가 먼저 복도로 나갔다. 나는 더 이상 무어라 말하지 못하는 1반 애들한테 손을 흔들어 주고 그 뒤를 따랐다. 마치 약속된 장소라도 있는 것처럼 걸어가던 성지훈은 사람들이 잘 오가지 않는 미술실 앞 복도에서 멈춰 삐딱한 자세로 날 바라보았다. 부탁이 무엇인지 얼른 말하라는 눈빛이 살벌하다. 눈에 힘을 조금만 덜 주면 좀 더 잘생겼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다고 못생겼다는 건 아니지만. 나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성지훈에게 내밀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이 녀석, 얼굴로 말하는 걸 참 잘하는 것 같다.
“야.”
“미안한데. 이거 가지고 매점에서 빵이랑 우유 좀 사다주라. 부탁할게.”
내 말에 성지훈은 한숨을 폭 내쉬고 지갑을 거의 빼앗듯이 받아 매점 쪽으로 향했다. 빵 셔틀이 얼마나 좆같은 일인지 알고 있긴 하지만. 그것만큼 빠르고 확실한 테스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앱의 기본적 사용법. 상대의 이름과 얼굴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상대의 얼굴과 이름만 정확히 알고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앱에 상대를 입력하고 원하는 최면을 걸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성지훈에게 걸어 둔 최면은 단 하나다. ‘윤계인의 부탁은 반드시 들어준다.’
나는 무슨 동인지나 에로 소설에 나오는 전형적인 최면물처럼 말 한마디에 행동 하나에 상대가 요부처럼 변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럼 ‘최면 앱 따위 필요 없잖아, 내놔!’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생각해봐라. 제대로 섹스를 하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무슨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사람처럼 같은 성별의 남자가 당신의 후장을 서서히 개발해서 최종적으로 당신이 후장으로만 메챠쿠챠 가버리는 걸 보고 싶어요, 라고 하면 어울려 줄 거냐? 솔직히 나 같아도 미친놈이라고 피할 거다. 내가 당사자여도 옳은 소리는 해야지.
“야.”
“아, 고마워.”
성지훈이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받아서 안을 확인하니 부탁했던 빵과 우유, 내 지갑이 들어 있었다. 친절하게 영수증도 넣어줬네. 의외의 세심함에 살짝 놀라 성지훈을 바라보니 녀석은 특유의 삐딱한 자세로 이제 돌아가도 되냐고 눈으로 대답을 강요하고 있었다. 쟤는 말을 못하게 돼도 얼굴로 의사소통 다 하고 살 것 같아.
“이거 사다 줘서 고마워. 너도 먹을 거야?”
“필요 없어.”
“그럼 말고. 너 점심 같이 먹는 사람 있어?”
꺼냈던 우유를 도로 집어넣으며 묻자 더 구겨지기도 힘들어 보이던 성지훈의 인상이 한층 더 험해졌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뻗어 올 것만 같은 성지훈의 기세에 답변을 쉽게 유추해 낼 수 있었다. 그래, 솔직히 반쯤 빈말로 물은 거다. 성지훈이 점심시간에 급식실에 나타나지도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오늘부터 나랑 같이 먹자. 응?”
“알겠어.”
당연히 부탁이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아도 부탁을 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성지훈은 들어준다. 성지훈은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 정도면 테스트는 괜찮겠다 싶었다. 나는 점심시간에 우리 반으로 와 달라고 부탁하는 것으로 성지훈과의 볼일을 끝냈다. 교실로 들어가도 괜찮다 말했다.
“그럼 점심시간에 봐.”
성지훈은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교실로 돌아갔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점심시간에 분명 우리 반에 찾아올 것이다. 무엇보다 굳이 따지자면 본의가 아닌 행동을 하게 만들어 놓고 태도가 어떠네 뭐네 불평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지. 시간을 슬쩍 확인해 보니 1교시 시작까지 5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내가 먹는 시간을 대충 생각하면, 먹고 교실로 올라가면 망하겠네. 봉지 안에서 지갑을 꺼내 주머니에 쑤셔 넣고 곧장 교실로 향했다.
“오, 멜론바.”
“빵상?”
기다렸다는 듯이 봉지로 두 손을 내미는 준서한테 말하자 선웅이 놈이 기겁하며 말했다.
“시발. 언제 적 드립을. 아니. 아니야! 가능해! 께랑꼬랑꼴린!”
“쟤 미쳤나 봐. 언제 적 드립을 치고 있어.”
봉지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자 곧장 태도를 바꾸는 선웅이 새끼를 보며 했던 말을 똑같이 해주자 녀석은 분하다는 듯이 책상을 두드렸다. 그러다 다시 교무실로 호출되지. 자기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선웅이 놈을 보는데 준서가 손을 뻗어 빈 봉지를 들고 가더니 그걸 뒤집어 탈탈 털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내가 빵을 뜯자 자신은 행복해질 수 없다며 부르짖던 선웅이 놈이 달려온다.
“야, 멜론바는.”
“아.”
“아.”
있지도 않은 멜론바를 찾는 준서 녀석 입을 막기 위해 빵을 들이밀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빵을 크게 베어 먹었다. 먹이 기다리는 개처럼 빵만 바라보는 선웅이 놈에게도 한 입 먹이고 두 사람이 빵을 삼키고 난 뒤에 말했다.
“오늘부터 1반 성지훈 우리랑 밥 먹음.”
“왜죠.”
“돌았나.”
과연 성지훈 효과. 기겁한 얼굴의 두 녀석들은 입안에 빵이 남아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뱉어낼 기세로 되물었다. 나는 손에 들린 빵을 흔들며 대답했다.
“빵 사다 줬거든.”
“…삥 뜯겼냐?”
“이야, 살다 살다 외계인이 빵 셔틀을 하는 날이 오다니.”
“아니, 성지훈이 사다 줬어.”
내 말에 준서랑 선웅이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는데. 와, 진심으로 못생겼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못생겼다. 중요하니 두 번 말했다.
“성지훈이? 성지훈이 너한테 빵을 사다 줬다고? 1반 성지훈? 다른 반에 성지훈이 누구 있지?”
“없지.”
“비슷한 이름은?”
“없지.”
“쟤가 꿈을 꿨을 확률은?”
“한 50%? 나머지 25%가 쟤가 낚인 거고 23%가 헛소리고 2%가 저놈이 본 모습을 들어낸 거다.”
“들었지? 다 꿈이고 낚인 거고 헛소리야. 그리고 본모습은 우리한테 먼저 밝혀.”
“너희 이따 점심시간에는 무슨 반응을 보여주려고 그러냐. 지금보다 더한 반응 없을 것 같은데.”
있었다. 더한 반응.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 우리 반으로 찾아온 성지훈의 모습에 두 녀석들은 마치 만화 속 캐릭터처럼 입을 헤 벌린 채 어버버 거렸다. 성지훈이 빵을 사다 줬다는 말에 지었던 표정이 제일 못생긴 줄 알았더니 지금 표정이 훨씬 더 못생겼네. 두 사람은 나에게 설명을 바란다는 눈빛을 전해왔고 난 그걸 무시한 채 성지훈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서 와.”
“안 가?”
“가야지. 가자. 아, 너 내 이름 모르지? 난 윤계인이야.”
여전히 대답이 없는 성지훈한테 준서랑 선웅이 이름까지 알려 주며 성지훈을 따라 급식실 쪽으로 가니 준서랑 선웅이가 약간 다급한 걸음으로 뒤쫓아온다. 줄을 서고 있는 내내 딱히 할 말이 없으면 말을 하지 않는 나와 본인이 원해서 온 것이 아닌지라 말이 없는 성지훈으로 준서랑 선웅이 놈은 자리에 앉을 때까지 나한테 뭐라고 말 좀 하라 눈치를 주었다. 글쎄. 따지고 보면 난 성지훈의 몸이 목적이지 성지훈이 목적인 건 아니어서. 같이 점심 먹고 하는 건 다른 반이니까 점심시간이 가장 만나기 편하고 말 전하기도 편하니까 미리 밑작업을 해둔 것뿐이고.
힐끔 성지훈을 훑어보니 먹을 땐 개도 얌전하다고 그대로 박제될 것만 같았던 미간도 풀린 채 꽤나 복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는 나름 명문고 타이틀을 달고 있는지라 급식이 맛있는 편이긴 하지만 확실히 가리는 거 없이 잘 먹는구나.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눈치를 보느라 깨작깨작 밥을 먹는 두 녀석들에게 말했다.
“나 얘랑 할 이야기 있으니까. 다 먹으면 니들 먼저 교실에 올라가.”
“자악……!”
“알겠어. 빨리 와라.”
준서에게 옆구리가 찔려 끙끙거리던 선웅이 놈은 준서가 밥 먹는 속도를 올리자 허겁지겁 손을 놀렸다. 꽤나 노골적이구나. 혼자 남겨지기 싫다는 의지가 보여. 둘은 평소 같으면 한 번씩 더 받았을 밥을 거의 마시다시피 섭취하고-저건 정말 먹는 게 아니라 섭취다-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식판을 갖다 놓고 친절하게도 물을 떠다 준 뒤 저들끼리 후다닥 교실로 올라갔다. 반쯤 날 살려 보내 달라는 뇌물이 아닐까. 성지훈 앞에 놓인 물 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 그래서 이래저래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런데. 잠깐 시간 내주면 안 될까? 점심시간을 다 쓰지는 않을게.”
물론 거부하지 않을 거다.
“어.”
“고마워.”
그래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되겠지. 식판을 정리하고 성지훈은 사람이 별로 없는 미술실 복도로 가려 했지만, 나는 햇살이 좋은 김에 산책을 하고 싶어 성지훈을 이끌고 학교 산책로에 왔다. 우리 학교 산책로는 운동장과 거리가 있어 이용하는 건 대부분 선생님들이고, 학생들은 거의 오가지 않는다. 게다가 점심시간엔 선생님들은 대부분 카페에 가시니까. 거의 독점이나 다름이 없는 모양새다. 다행이네. 이걸로 사람 스트레스는 덜 받겠지.
“있잖아. 질문 몇 개 해도 돼?”
“어.”
성지훈은 이쪽은 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평소에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집에 누구누구 있어?”
“없어.”
“그럼 부모님이나 형 누나는 몇 시쯤 들어오셔?”
성지훈에게는 형과 누나가 한 명씩 있다. 따로 조사 같은 걸 한 건 아니고 둘 다 유명인인 지라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SG기업 최연소 이사로 유명한 장남 성지한,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보여주는 천재 음악가 장녀 성지연. 천재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 만큼 각각의 분야에서 여러모로 큰 획을 그은 사람들인지라 별로 찾아보지 않아도 각종 뉴스와 유튜브 영상, SNS 등으로 소식들이 들려온다.
“그건 왜.”
“왜냐니. 너희 집에 놀러 가고 싶으니까. 너희 부모님이나 형, 누나 있으면 좀 그렇잖아.”
이것저것 하기 양심에 찔려지니까. 뒷말은 당연히 삼키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나 너희 집에 놀러 가도 될까? 당장은 곤란할 테니까 한 내일쯤. 내일 식구들 일찍 오셔?”
“…아니…….”
아니라는 건 뒷말에 대한 대답이겠지. 그래도 확실히 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다시 물었다. 괜히 이상함을 느끼면 안 되니까.
“그럼 내일 너희 집에 가도 돼?”
“어.”
딱 거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후 느낀 점들이 있다. 아, 동인지나 소설, 영상 같은 데에 나오는 놈들은 상당히 정신머리가 대단한 놈들이란 것.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던 놈들이 어느 날 최면, 세뇌, 조종 같은 능력을 얻자마자 언제 어디서든 사람을 조종하고 미친 듯이 섹스하고 여러 가지 언어 유린을 하더니. 그것도 다 여러 법칙 무시하고 정신적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 아니면 원래 그런 취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기회로 개화한 것일 지도.
하지만 아무리 이런저런 생각을 버리고 행동하고 싶어도. 역시 나는 나대로 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성적 테스트보다는 제대로 최면이 먹히는지 테스트부터. 다짜고짜 섹스하고 빨고 쑤시는 것보다는 천천히 상대가 최면이나 세뇌 같은 것이 아닌 제대로 된 자신의 감각으로 쾌감을 느낄 수 있게 공을 들이고 싶다.
어쩌면 지금 내 상황이 흔한 게이 소설이나 동인지였다면 사람이 보는 사람들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은 최면으로 많은 상대를 마구잡이로 범하고 하드한 플레이를 하길 바라는 경우가 많으니까. 하지만 걔네는 활자랑 그림 속 인물들이니까 섹스하다 어딘가 다치고 찢어지고 너덜너덜하게 되어도 한 페이지만 넘어가면 멀쩡하고 낫고 죽었다가도 살아나잖아? 심지어 감기에 걸리면 쾌감이 올라간다는 소리는 공식처럼 사용하고 또 감기에 걸린 얼굴이 섹시하다고 키스부터 하는 애들이다.
그러니까 만화 속 캐릭터나 소설 속 인물과는 엄연히 다르다. 성지훈은 제대로 살아있는 사람이고. 후장으로 섹스를 하기 전에 관장을 해야 하고, 후장이나 항문에 상처가 나면 낫는데 며칠이나 걸리며 중간에 덧날 수도 있고, 젤이나 로션을 잘못 사용하면 장에 알레르기 반응도 일어날 수 있으며, 어디든 찢어지고 너덜너덜하게 되면 큰일이다. 일단 병원부터 가야 하는 큰일. 비상상황이라고. 그걸 알면서도 난 내 쾌감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녀석을 가지고 노는 거다. 그러니 상대가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위험을 감수해 주는 게 많으니 나도 나대로 배려를 해주는 게 좋다고 난 생각한다. 생각은.
어쩌겠어. 나도 기본 섹스 상식은 비디오랑 책이랑 동인지에서밖에 못 얻은 평범한 남고생인데. 분명 중간에 실수한다. 입 밖으론 못 하겠지만 속으로 미리 사과한다 성지훈. 일단 난 최선을 다할게. 나 자신의 만족과 너의 쾌감을 위해.
“야야야, 오늘 끝나고 콜?”
“용신의 검을 받아라!”
“용이여 나의 적을 먹어라!”
“미친. 용가리 형제라니 난 여길 빠져나가야겠어.”
이틀 연속으로 이루어진 성지훈과의 점심식사와 7교시라는 악몽 같은 시간으로 녀석들은 심적으로든 신적으로든 피폐해졌는지 피시방과 고급 시계를 외치며 의기투합을 했다. 아니, 그런데 진짜로 세다고 용가리 형제는. 말만 들어도 심하다고. 니들 겐트위한 장인도 아니면서 왜 그러냐.
“아, 왜! 친구들이 용가리 형제를 픽했으면 윈도우나 트레이싱 정도는 가 줘야 할 거 아니야!”
“겐트위한 몰라? 겐트위한!”
“다 필요 없고 오늘 니들이랑 같은 팀 할 사람들이 불쌍하다. 무슨 죄냐 그 사람들은.”
“7교시를 끝마친 고교생을 만난 죄.”
“세상에서 중2가 제일 겁이 없고. 중2가 커서 고2가 된다.”
“나 못 가. 오늘 성지훈네 감.”
“왜죠.”
“왜죠.”
생각보다 반응이 격하다. 준서랑 선웅이는 내 어깨까지 붙들고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그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땅에 묻히고 실종 처리가 된다면서 제정신이냐 물었다. 땅에 묻혀도 뼛조각은 찾아야 하지 않겠냐 말하는 놈들이 너무 심각해서 그 흔한 거짓말인 ‘아냐, 걔 소문만 그렇지 착해’ 같은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딱히 변명할 말도 없고, 솔직히 말하면 범죄자가 될 것 같고. 그전에 사이가 멀어지겠구나 싶어서 그냥 대충 말하기로 했다.
“걔랑 친해지고 싶으니까.”
정확히는 성지훈의 몸이랑.
“너 돌았어?! 걔랑 친해지고 싶다고?! 그래서 집까지 가? 니가 초딩이냐! 아니, 그것보다 성지훈이 와도 된대? 너 지금 막 쳐들어가서 문 두들긴다는 걸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와도 된대. 학교 끝나고 같이 가기로 했어.”
“성지훈 뭐 잘못 먹었냐?! 병 걸렸어?! 아, 그래. 드디어 니가 니 정체를 제대로 드러냈구나! 외계인! 니가 외계 기술로 성지훈을 조종하는 거지? 그렇지?!”
쟤는 왜 저렇게 좋은 감을 시험엔 사용하지 못 할까. 성웅이 놈은 대답을 바라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고, 난 턱을 괜 채 선웅이 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답 없이 계속해서 눈만 마주치자 결국 백기를 든 것은 선웅이 놈이었다.
“아, 알겠어. 알겠다고. 그런데 진짜 괜찮은 거야?”
“안 괜찮을 건 또 뭔데.”
“야,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쓰레기 같잖아.”
“몰랐어? 넌 쓰레기야.”
다행히 준서의 말에 선웅이 놈이 불붙기 전에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괜한 소리로 종례를 길게 끌면 다른 녀석들한테 척살 당한다는 것을 몸소 겪어 잘 아는 선웅이는 그대로 자기 자리에 앉아 매너 모드를 시전했다. 하지만 소리 없이 온몸으로 언어를 표현하는 녀석이 시끄러웠는지 선생님이 선웅이 놈에게 주의를 주며 종례가 조금 길어졌다. 참된 프로 어그로꾼의 자세가 아닐까 저건. 7교시의 여파로 하교에 특히 민감한 청소 당번들한테 청소 도구로 몰매를 맞는 선웅이 놈을 보며 박수를 쳐줬다.
“윤계인.”
성지훈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자 박수 소리도 휘파람 소리도 환호 소리도 모두 서서히 사라지고 교실 안은 작은 웅성거림만 맴돌기 시작했다. 이래서 성지훈을 고른 거긴 한데. 니들 진짜 노골적이구나. 난 다급하게 가방을 메고 성지훈을 이끌었다.
“미안. 기다렸어?”
“…….”
그래 이쯤 되면 슬슬 질문에 대한 대답은 원하지 않는다. 나는 대충 알아서 납득하고 말했다.
“다음부터는 바로 나올게. 아, 너희 집 어떻게 가? 버스?”
“밑에 차 있어.”
사스가 재벌 3세. 터무니없이 그래도 고교생인데 버스나 택시 타고 다니겠지 한 내가 멍청했다. 나도 타도 돼? 라고 묻자 성지훈은 망설임 없이 ‘어.’ 라고 대답했다. 이거, 부탁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질문이었는데. 뭐, 편해지면 나야 좋지. 성지훈을 따라 학교 주차장으로 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새카만 세단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꼭 개별 자리처럼 되어 있는 뒷좌석에 타니 운전기사님이 성지훈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시고 나에 대한 별다른 언급 하나 없이 바로 앞을 보며 운전에 집중하셨다.
“도련님 다녀오셨어요. 옆은 친구분이신가 보네!”
“아, 안녕하세요. 윤계인이라고 합니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한 아주머니가 앞치마를 두른 채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다며. 아무래도 이 녀석 고용인은 인원수로 쳐주지 않나 보다. 내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아주머니는 도련님의 친구분이 예의 바르다고 이야기하시다 성지훈의 낮은 부름에 호호 입을 가리고 웃으셨다.
“도련님. 오늘도 식사 준비하지 말까요?”
“예.”
“그럼 친구분 혹시 가리는 음료나 과일 있으신가요?”
“아뇨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예, 그럼 쉬고 계세요.”
그렇게 말씀하신 아주머니는 안쪽으로 총총 사라지셨고, 성지훈은 한숨을 내쉬며 신발장에서 실내화를 꺼내 내 앞에 툭 내려놓았다.
“신발은 어디에 둬?”
“내버려 둬.”
그런가 보다. 신발을 가지런히 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왠지 방은 2층일 것 같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2층이었다. 사람의 심리란. 정확히 2층 왼쪽 첫 번째 방. 성지훈이 문을 여는 걸 보고 녀석의 방인 걸 확신한 뒤 말했다.
“나 화장실 좀.”
“저쪽.”
이쪽 라인 안쪽인가. 좋아. 가방을 벗어서 성지훈에게 내밀었다.
“내 가방 좀 부탁할게.”
“어.”
성지훈이 내 가방을 받아 들자마자 난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문은 총 3개였다. 일단 바로 보이는 문을 여니 바로 책이 가득한 책장이 보였다. 더 안쪽이네. 문을 닫고. 다른 문을 여니 이번엔 정답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세면대와 수납장이 보였고 바로 옆의 문을 열자 변기가 있었다. 아무래도 욕실은 또 따로 있는 모양이다. 손만 씻고 물기를 탈탈 털며 나오자 커다란 쟁반에 이것저것 담아 온 가정부 아주머니가 성지훈 방 앞에 서 계셨다. 마주친 시선에 아주머니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학생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일단 이것저것 들고 와 봤는데…….”
딸기부터 시작해 체리까지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고 대중적인 과일들이 어떻게 저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균형 잡은 채 쟁반에 담겨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한테서 쟁반을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그럼 다행이네요. 학생. 저기… 잘 놀다 가세요.”
“네.”
아주머니는 꾸벅 인사를 하시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셨다. 좋은 사람이네. 나는 팔꿈치로 문을 열고 성지훈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앉아 있던 성지훈은 내가 들어오자 바닥에 놓인 빈백에 눈짓을 줬다. 쟤는 학교 공식 미친개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서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은 영 아닌 것 같아.
“아주머니가 과일 주셨어.”
“내려둬.”
“바닥에 놓을 건데 괜찮아?”
“어.”
그렇다고 대답은 하니 일단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고 빈백 소파에 몸을 기댔다. 아, 편하다. 우리 집에도 이런 거 하나 있으면 좋겠네. 몸을 들썩이며 편한 자세를 찾은 후 앞에 있는 과일을 집어먹자 성지훈도 딸기를 집어 제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그러면서 시선으로는 날 계속 훑어보며 눈치를 살피는 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수북했던 과일들이 동날 때까지 성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많이 혼란스러운 거겠지. 그럼 역시 내가 먼저 입을 여는 게 좋겠다 싶어 물었다.
“하고 싶은 말 있어?”
“…너… 원하는 게 뭐야?”
꽤나 조심스러운 어투였다. 하지만 내용은 꽤나 날카롭다.
“뭐가? 너희 집에 온 거?”
“…….”
성지훈은 애꿎은 입술만 씹으며 날 바라보았다. 좋은 타이밍이긴 하다. 언제쯤 말을 꺼내면 좋을까 싶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있긴 하지. 사실 나 말이야. 너랑 섹스 프렌드가 되고 싶어.”
“뭐라……!”
“그래서 말이야 부탁이야. 기분 좋게 해 줄 테니까. 나랑 섹스 프렌드가 되지 않을래?”
성지훈의 말을 끊고 빠르게 말을 잇자 성지훈의 온몸이 새빨개졌다. 특히나 붉어진 귀 끝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귀를 한 번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성지훈이 대답했다.
“알겠어.”
그렇게 대답하는 성지훈은 내가 혼자 그렇게 느끼는 거일 수도 있겠지만 사뭇 진지해 보였다.
❖ ❖ ❖
“엄마. 손톱깎이 어디 있어요?”
“거기 서랍에.”
서랍을 열자 한참 찾고 있던 손톱깎이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이런 작은 것들은 왜 직접 찾으면 보이지 않는 건지. 손톱을 짧게 자르고 꺼슬거리는 끄트머리를 다듬었다. 짧고 둥글둥글한 손톱에 기분이 좋아졌다. 맨들맨들한 손톱 끝을 만지다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오늘은 일찍 가네. 아침은?”
“매점에서 때울게요. 오늘은 일찍 가야 해서.”
“그래, 그럼. 아들, 오늘 하루도 힘내.”
“네.”
내 등을 두드려 주신 엄마는 바로 누나 방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뒤에 찾아올 폭풍을 피해 바로 밖으로 나왔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누나의 기상 시간을 당겨 준 것 같다. 미안 누나. 고의는 아닌 내 마음을 모르겠지만 알아줬으면 좋겠어. 오늘은 아침부터 들를 곳이 있다. 거창한 거 아니고 그냥 편의점. 어제 마트에 들렀었다면 이렇게 아침 댓바람부터 아침도 건너뛰고 나올 필요는 없었는데. 어찌되었든 원하던 바를 이루어 냈다는 성취감 때문에 까먹어 버렸었다. 절대로 저녁 반찬이 갈비찜이라 잊어버렸던 게 아니야.
기왕이면 큰 편의점이 나을 것 같아서 시내 편의점으로 왔다. 겸사겸사 아침도 해결할 겸 주먹밥 두 개랑 콜라 하나를 들고 대충 눈으로 젤을 찾아봤는데 보이지 않는다. 없는 건 아니겠지. 겉으로 내놓기 그러니까 카운터에 문의하면 점원이 꺼내주나. 슬쩍 주변을 살피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지금은 점원과 나밖에 없다. 그럼 얼른 끝내야지.
카운터에 가까이 가면서 점원의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고 최면 앱이 깔린 휴대폰을 꺼냈다. 보통 최면 앱 같은 거 이런 데에 쓰지 않을 텐데. 너도 널 제대로 사용하는 주인을 고르지 어쩌다 나 같은 놈에게 오게 돼서는. 인물 입력란에 들어가 점원을 찾아 목록에 집어넣고 인식 란에 들어가 점원에게 걸 최면을 입력했다. [윤계인이 찾고 구입하는 것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3천 2백원입니다.”
“저기, 러브젤은 어디에 있나요? 찾아도 보이지 않아서.”
“아… 러브젤이요? 잠시만요…. 그, 찾으시는 제품 있으세요?”
“일단 사람들이 많이 사 가는 걸로 주세요.”
“네, 네…….”
“그리고 수술 장갑이랑 비슷한 장갑도 있으면 좀.”
“네, 네.”
점원은 약간 허둥지둥 카운터 밑으로 허리를 숙였다. 거기 있구나. 그럼 그냥은 못 찾지. 잠깐 기다리니 알바생이 러브젤 몇 개랑 봉지에 포장된 흰색 라텍스 장갑을 카운터에 늘어트렸다. 그런데 수술용 장갑은 왜 거기 있어. 확인만 해 보려고 말했던 건데 정말 꺼내 줘서 살짝 놀랐다. 덕분에 성지훈에게 다짜고짜 콘돔을 들이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러브젤들을 살펴보니 같은 제품인데 향만 다 다른 것 같다.
하나를 들어서 성분을 대충 살펴봤다. 아는 게 없긴 한데. 그래도 딱 하나 아는 게 있긴 하다. 성분과 설명을 살펴보니 다행히 최음 성분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그런 거 노리고 사는 거 아니니까 그런 건 됐다. 편의점에서 파는 거니 당연하기도 하겠지만 만일이 있으니까. 이건 딸기향인가. 겉에 그려진 딸기 그림을 보니 어제 과일을 먹을 때 딸기부터 집던 성지훈이 생각났다. 딸기향으로 해야지.
“이렇게 계산해 주세요.”
“아, 네.”
계산을 마치고 젤과 장갑을 가방 속에 잘 갈무리하고 주먹밥을 까먹으며 편의점을 나섰다. 학교에 도착하면 하이에나 떼가 몰려올 테니까. 부실한 아침이었지만 속은 무언가 잔뜩 먹은 것처럼 든든했다. 음, 역시 헛배를 채우는 데에는 콜라지. 콜라 만세.
점심시간에 만난 성지훈은 선웅이 놈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사냥감을 지켜보는 짐승의 기세로 날 바라보았다. 그 기세에 오늘 또 성지훈네 간다는 나의 말에 준서와 선웅이가 이번엔 정말로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면서 날 말렸었다. 솔직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오늘도 피시방 퇴짜 맞아서 떼를 쓰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덕분에 죄책감 없이 녀석들을 무시하고 하교 후 성지훈네 집으로 갔다.
학교, 차 안, 성지훈의 방에 들어올 때까지 성지훈은 계속 날 지켜보고 바라봤는데, 이게 또 묘한 게 그렇게 노골적이면서 내가 고개만 돌리면 자기도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부렸다. 저건 긴장을 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경계를 하는 걸까. 언제까지 그러고 있으려나 싶어서 나도 그냥 쭉 녀석을 바라보니 성지훈이 고개를 돌린 채 힐끔힐끔 날 훔쳐보기 시작하더니 꼭 무언가 각오하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정말 소리가 날 정도로 침을 삼키고 날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왜.”
“네가 아까부터 이렇게 보니까. 이렇게 보면 뭐가 나오나 싶어서.”
“…….”
아무리 못 쓸 발언을 했다고 그렇게까지 인상을 쓰면 아무리 나라도 상처받는데. 그래도 얼굴은 제대로 맞댈 수 있게 돼서 다행인가. 어깨에 힘은 빠지지 않았지만. 그런데 이게 또 가만 생각해보니 저게 또 맞는 반응인 것 같다. 노골적으로 섹스 프렌드가 되자고 했고, 나랑 저 녀석이 친했던 사이도 아니고, 단둘이 있으면 뭘 하겠어. 변덕스러워 보이겠지만 깨닫고 나니까 그렇다. 뭐, 어쩌면 핑계가 필요한 거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성지훈은 옅게 몸을 움찔거렸다.
“화장실 가자.”
“…뭐?”
“성지훈. 화장실 같이 가주라.”
내 부탁하는 어조에 성지훈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지훈은 말 그대로 터덜거리는 모양새로 내 뒤를 따랐다. 남의 집이지만 잠시 실례합니다. 입 밖으론 내진 않고 속으로 열심히 양해를 구한 뒤 수납장을 마음대로 열어젖히자 거울 너머로 성지훈이 인상을 쓰는 것이 보였다.
“야… 뭐 찾아.”
“면도 크림이랑 면도기.”
성지훈 미간의 주름이 한층 깊어졌다. 거기에 무어라 말하기 전에 뒷말을 덧붙였다.
“엮여서 같이 들어가거나 당기면 아프니까 그냥 항문이랑 회음부 털만 밀고 음모는 살짝 정리만 하자. 응?”
“변태 새끼.”
섹스 프렌드 소리 나왔을 때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던 성지훈이 변태 새끼라고 말할 정도면 이건 좀 많이 심했던 모양이다. 확실히 이건 내 욕심이긴 하지. 개인적으로 GV에서 얼굴이랑 신음만 그럴듯한 놈들이 지저분한 하반신으로 섹스를 하는 게 별로였다. 엉덩이인지 털 뭉치인지 구분이 안 가는 부위로 섹스를 하며 중간에 털이 엉키면 그걸 또 빼내고 하는데…. 더불어 지저분하게 성기를 덮고 있던 음모도 별로였다. 털을 아예 밀란 게 아니라 좀 깔끔하게 다듬고 살자고. 남들이 안 볼 때면 모를까 볼 때면 좀 다듬어라. 그게 내 심정이긴 한데.
“싫으면…….”
“알아서 할 테니까. 방에 가 있어.”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부탁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찰나에 이를 악문 성지훈이 그렇게 말했다. 어? 하는 사이 성지훈이 나가. 라며 날 화장실에서 밀어내고 문을 닫았다. 잠금 장치가 걸리는 소리까지 들리자 아득한 정신이 돌아왔다. 어, 알아서 한다는 건. 알아서 그러니까 항문이랑 회음부 털을 밀고 온다는 건데. 말이 왜 이렇게 야하게 느껴지지? 말뿐이지만 뭔가 야했다.
“아, 맞다. 미안한데. 방으로 돌아올 때 수건 한 장만 가지고 와 주라.”
수건은 뭐 들었으면 가져오고 못 들었으면 안 가져오겠지. 대답이 들려오기 전에 성지훈의 방으로 돌아왔다. 성지훈의 가방과 나란히 누워 있던 가방에서 젤과 장갑을 꺼내고 빈백에 몸을 기댄 채 성지훈을 기다렸다. 성지훈을 기다린 지 15분 째이자 그 사이에 전화가 와 선웅이 놈의 트롤링에 대한 논리적 토론을 들어준 지 10분째. 성지훈이 방으로 돌아왔다. 정신이 없었을 텐데도 수건을 가져오란 말을 들었는지 한 손엔 수건을 들고 있다.
“수건 가져왔네.”
“가져오라며.”
“응, 고마워.”
손을 뻗어 수건을 받는데 갑자기 성지훈이 몸을 움찔거렸다. 뭐지? 얼굴을 빤히 보니 뭘 보고 있어 같은 곳을 보니. 아, 젤. 너 인마 젤 같은 걸로 일일이 놀라고 굳으면 나중에 콘돔이나 딜도 같은 걸 보면 얼마나 기겁할 건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성지훈이 갑자기 상의를 벗었다. 어, 몸 좋다. 야무진 가슴과 척 보아도 매끈해 보이는 피부, 탄탄한 복근 근육을 나도 모르게 훑어보는 사이에 바지는 물론 속옷까지 모두 탈의한 성지훈이 새빨개진 얼굴로 날 바라보다 그대로 침대 위로 올라갔다.
“성지훈?”
“…….”
뭔가 KTX 뺨치는 속도로 진행되는 기분에 성지훈을 부르자 성지훈의 얼굴이 새빨갛다 못해 톡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만 같이 붉어졌다. 내 눈은 절로 성지훈의 몸을 훑어보았다. 얼굴이 붉어진 여파인지 다부진 몸 구석구석 피가 활발히 돌아 여기저기 울긋불긋 붉게 달아올라 야해 보이고 쭉 뻗은 다리와 라인이 잡힌 엉덩이가 예쁘다. 말끔하게 밀린 음모 털이…….
“음모 털도 밀었어?”
“네가… 정리하라며…….”
그래서 변태 새끼라고 했던 건가. 뭔가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해를 푼다고 이야기하면 성지훈이 지금보다 더 창피해하고 어색해할 것 같아 보여 고개를 끄덕이고 대충 고맙다고 했다. 일단 절경이고 꼴렸던 건 사실이니까. 내 말에 성지훈은 자기 입술을 씹으며 초조함을 보였다. 그러다 훅 침대에 누웠다.
“할 거면 빨리 끝내.”
그렇게 말하고 그대로 자신의 다리를 벌리며 팔로 얼굴을 가렸다. 나 최면 하나밖에 안 걸지 않았어? 분명 그것도 부탁을 들어준다는 거였지 섹스할 때 적극적이 된다는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분명 최면 건 것도 섹스 프렌드가 되자고 했던 것도 난데 왜 성지훈이 리드하고 있는 상황이 됐지? 순간적으로 들었던 생각들이 동시에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누가 리드하고 예상과 다르면 어때. 결론은 같잖아. 옛말에 모로 가도 서울로 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잠깐만. 밑에 수건 깔게 잠깐 허리 좀 들어주라.”
“어…….”
무드 깨는 소리지만 중요했다. 내 이불도 아니고 내가 덮을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습관이란 건 미리미리 들여야지. 성지훈의 허리 아래 수건을 넓게 깔고 젤과 장갑을 든 채 침대 위로 올라왔다. 말끔한 회음부와 항문이 야하다. 다 야해. 벗은 몸도 깨끗해진 생식 부위들도 다 야해. 젤과 장갑의 껍질을 벗기고 오른손에만 장갑을 낀 뒤 젤을 짜내 양손으로 비볐다.
“성지훈. 나 네 몸 만져도 돼? 만지고 싶어.”
“…어…….”
젤로 범벅이 된 왼손으로 천천히 성지훈의 복부에 손을 올리자 성지훈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예상했던 것보다 탄탄하고 촘촘한 근육과 매끈한 피부가 젤 때문인지 손에 착착 감기는 것만 같다. 손가락 끝으로 근육 라인을 따라가 보거나 손을 펼쳐 느릿하게 복부를 쓸다 천천히 손을 위로 옮겼다. 손이 닿았던 부위에 남는 젤들에 내 손이 달팽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손에 달팽이를 빙의시켜 점점 더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손이 느려지자 성지훈의 숨이 덩달아 깊어졌다.
손을 쭉 펴 한 손 가득 성지훈의 가슴을 쥔 채 천천히 주무르자 왜인지 모르겠지만 입에 침이 고였다. 침을 꼴깍 삼키며 손에 닿는 감촉을 느꼈다. 이런 표현 써도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탱탱하고 부드럽고. 야들야들해. 그렇지 않은데 그런 기분이었다. 가슴을 쥔 손을 펴 천천히 진득하게 손으로 원을 그리며 가슴을 지분거리자 딱 손바닥으로 중심이 되어 눌리는 부분이 유두라 자극을 받은 유두가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성지훈이 약하게 떨리는 숨을 입으로 내뱉었다. 아, 얼굴. 지금은 조금 보고 싶을 지도. 하지만 오늘 첫날이고. 봐도 내가 원하는 그런 얼굴은 아닐 테니까.
“있잖아. 성지훈 내가 부탁이 있어.”
“…하아… 뭔데…….”
“나 말이야. 섹스에 대한 지식은 있는데. 직접 하는 건 처음이거든. 너도 그렇잖아?”
내 질문에 성지훈이 팔로 가려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처음이니까 성감대네 뭐네 하는 걸 찾는 건 무리니까 전립선 마사지하는 느낌으로 갈 거야. 그런데 그러면서도 다른 델 만지긴 할 건데. 그때 기분 좋은 부분이나 아픈 부분은 꼭 말해주면 좋겠어. 네가 기분 좋으면 좋겠으니까 부탁할게.”
“…어…….”
노말 남자들이 애널 자위에 맛을 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들었던 계기가 병원에서 전립선 마사지를 받다가 맛이 들어서였다. 이게 좋은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왼손으로 가슴을 부드럽게 쥐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천천히 오른손을 성지훈의 깨끗한 회음부로 움직였다. 손끝이 천천히 회음부에 닿으며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자 성지훈이 몸을 움찔거렸다.
“조금 갑갑한 느낌 들 수도 있어. 아프지는 않을 거야.”
천천히 항문에 닿은 중지 손가락으로 주변을 맴돌며 주름을 매만지다가 서서히 항문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윽…….”
“아파?”
“…아니…….”
보통 만화나 소설에서는 상대방에 안이 습하고, 좁고, 조인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뭐랄까. 조인다라는 느낌은 항문 부분이고 장 부분은 조이는 것보다는 탄탄한 느낌이었다. 성지훈이라 이런 건가. 근육만 아니라 장까지 단련된 몸인가. 아니면 이게 성 드립으로 많이 말하는 길들여지지 않은 몸 같은 건가. 젤로 충분히 젖은 손은 탄탄한 성지훈의 안을 꽤나 유려하게 움직였다. 내벽을 더듬거리며 조금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성지훈의 몸이 움찔댄다.
“흐읍……!”
손끝이 다른 곳보다 좀 단단하다 생각되는 부분 쪽에 닿자 성지훈이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며 항문을 조였다. 전립선이란 게 초심자가 할 때에는 바로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에 열심히 해부학도 보고 관련 영상도 찾아봤었는데, 다행히 찾았네. 손가락을 좀 더 깊숙이 넣어 손가락 끝이 아닌 지문 부분으로 단단한 부분을 천천히 꾸욱 누르자 성지훈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파?”
“아니… 아니… 흐…….”
손가락에 힘을 줘 압박을 주며 전립선을 꾹꾹 눌러대자 성지훈의 허리가 움찔거리며 전립선을 누르는 대로 항문에 힘을 주고 성지훈의 성기가 움찔움찔 고개를 흔든다. 목 안으로 소리를 삼키는지 윽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는 윽윽이 아니라 제대로 느끼는 소리가 나면 좋겠는데 말이야. AV 배우 같은 신음은 바라지 않지만 제대로 느껴서 나는 높은 신음은 듣고 싶다. 좁은 내부에서 손가락을 돌려 원을 그리고 전립선을 꾹꾹 누르고 손끝으로 꾹 누른 채 아래로 끌고 그대로 마치 천천히 추삽질하는 것처럼 끌어올리고 하며 자극을 주니 움찔거리던 성지훈의 성기가 고개를 들고 선액을 질질 흘렸다.
“하아… 흐…….”
“기분 나빠?”
“…아니… 후…읏… 좋아…….”
사람에 따라 전립선 마사지로 자극을 받아 오르가즘에 도달할 수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데. 다행히 성지훈은 자극을 받는 편인 듯했다. 그럼 잘 하면 오늘 가는 것까지 볼 수 있으려나. 마치 뺄 것처럼 손가락의 앞마디만 남을 만큼 손가락을 뺀 뒤 그대로 힘을 줘 손끝으로 전립선을 들이박았다.
“흐응……!”
성지훈의 허리가 튀고 성기가 왈칵 선액을 내뱉었다. 떨리는 허벅지에 힘이 들어간 항문이 이번 자극으로 꽤나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아, 꼴린다. 착실히 느껴 까딱거리는 성기와 움찔거리는 성지훈의 몸이 주는 시각적 반응이 만족스럽다. 이대로 더 느껴라.
“아파?”
“…아… 아니… 응……!”
거의 추삽질을 하던 손가락을 다시 진득하게 돌리며 계속된 지분거림에 꼿꼿이 선 성지훈의 유두를 손가락으로 까닥거리다 집게손으로 집어 주물거리고 살짝 비틀었다. 아직은 여기는 무리인가 보네. 계속 자극을 주다 보면 언젠가 느껴 주려나. 손톱으로 유륜을 빙글빙글 따라가며 유두를 굴리다가 다시 집게손으로 유두를 잡아 주물렀다.
“기분 좋아?”
“하아… 앗… 좋아… 읏… 좋아… 흡…….”
나는 성지훈의 전립선을 꾹꾹 누르며 다시 물었다. 성기에서 줄줄 흐르는 선액으로 회음부와 음부가 질척하게 젖은 게 야하다. 특히 털이 모두 밀려 선액이 살짝 고인 음부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갈증이 나는 기분이 들어 혀로 입술을 적시고 침을 삼켰다. 천천히 전립선을 누르는 손가락에 힘을 주고 조금씩 속도를 높였다. 움찔움찔거리는 허리와 거친 숨소리, 억눌린 신음 소리가 점점 빨라진다. 유두를 주무르던 손으로 유두를 비틀며 자극을 주고, 손목을 이용해 강하게 박자.
“흐으으응!”
신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깊게 숙인 채 벌렸던 다리를 오므리고 항문으로 내 손가락을 끊어 낼 듯이 조였다. 아, 갔구나. 질척하다 못해 흥건히 젖은 성지훈의 하복부에 만족감을 느끼며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 움찔거리는 성지훈의 몸을 왼손으로 가볍게 쓸었다. 성지훈이 파르르 떨며 거친 숨을 내뱉는다.
“하아… 하아…….”
“기분 좋았어?”
“흐읏… 읏… 응… 하아…….”
성지훈은 얼굴을 가린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