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벽에 매달린 사내
“더 이상은 위험합니다, 에어리얼.”
오랜 기다림 끝에, 그가 말했다.
“어서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그가 다시 한번 경고했다. 에어리얼이 칼리번의 기억을 헤집는 동안, 그는 두 손으로 묵중한 검을 쥔 채 지하 감옥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 단 한 명의 침입자도 난입할 수 없도록. 에어리얼을 보호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그’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간단명료했으며 동시에 복잡다단했다.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에 검은 철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그랬기에 간단하게 ‘검은 갑옷’으로 불렸다. 그러나 에어리얼 외에는 아무도 갑옷 안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 탓에 본 모습을 수만 가지의 추측하곤 했으니, 또 어떤 의미에서는 복잡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아……. 응, 걱정 마. 지금 막 끝났으니까.”
잠시 후, 에어리얼이 대답했다. 그는 비틀거리며 벽에 매달린 사내에게서 물러섰다. 반쯤 감긴 붉은 눈동자는 현실이 아니라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흐릿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어리얼의 몸이 휘청였다.
“에어리얼.”
검은 갑옷은 단번에 다가와 에어리얼을 한 손으로 받쳤다. 철컹, 육중한 쇠붙이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뭘. 이 정도는 괜찮아…. 아스터.”
에어리얼이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검은 갑옷의 이름은 아스터였다. 벽에 매달린 칼리번의 몸이 순간 움찔, 떨렸다.
“다 끝난 겁니까?”
아스터가 물었다.
“응. 확실해졌어.”
“그렇습니까.”
“하지만… 아직 마무리가 덜 됐거든.”
에어리얼은 비틀거리며 아스터의 품에서 물러났다.
“…그러니 먼저 가겠어? 마무리를 짓고 합류할게.”
“……그건 안 됩니다.”
“감히 내 말을 거역하는 거야?”
에어리얼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작게 웃었다.
“…아닙니다.”
“그럼?”
“아버님께서는 반드시 제가 당신을 데리고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흐음, 아버님이라…. 누굴 말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네.”
에어리얼은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는 듯, 일부러 캐물었다.
“장난은 그만두십시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곧 인간들이 몰려올 겁니다.”
“장난이라니? 나는 정말로 궁금해서 그래.”
아스터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검은 갑옷을 둘러쓰고 있어 표정을 알 수 없건만, 그 순간만은 에어리얼이 한심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알테르 프리드웬. 그분 말고 더 있겠습니까?”
아스터의 대답에 에어리얼이 활짝 웃었다.
“맞아, 그랬지. 그러기로 했었지.”
에어리얼은 목 안쪽으로 큭큭 웃었다.
“오메가는 하나인데 알파는 너무 많다 보니 종종 헷갈리거든.”
에어리얼의 시선이 벽에 걸린 사내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아스터는 더 이상 그쪽을 보지 않았다.
“그럼… 아스터.”
에어리얼은 전과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먼저 가 있어. 곧 따라갈 테니까.”
“…….”
“착하지?”
웃음기가 사라진 에어리얼의 얼굴은 마물처럼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시체처럼 서늘했다. 햇빛이 닿지 않는 지하 감옥이었으나 붉은 두 눈은 루비처럼 사악한 빛으로 번뜩였다. 장난기 많은 청년 같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물의 왕이라 불리던 위엄마저 느껴졌다. 아스터의 태도도 훨씬 경직되었다.
“…알겠습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결국, 굴복한 것은 검은 갑옷 쪽이었다. 곧이어 그가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남은 것은 정적이었다.
“…….”
에어리얼은 아스터가 완전히 떠나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땅 위의 흙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렇듯, 지상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여파는 지하로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이제 우리 둘뿐인가?”
그제야 에어리얼은 칼리번을 마주 보고 물었다.
“흐, 윽….”
그러나 칼리번에게는 대답할 혀가 없었다.
“그 후로 8년…. 긴 시간이었지.”
“…으…….”
“그때 내가 말했었지? 너한테 가장 긴밀한 친구는 아마도 나일 거라고. 우리는 같으니까.”
“허… 허억….”
“그래. 우리는 둘이서 잘해 왔어. 친구를 넘어 형제나 다름없이 지냈잖아?”
에어리얼은 작게 웃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함께 지내는 것도 오늘로 끝이야.”
딱, 손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지하 감옥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칼리번의 몸을 단단히 고정하던 쇠사슬과 못이 사라졌다.
“—!”
칼리번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에게는 손발이 없었기에 얼굴이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억……. 크, 흐…….”
온몸으로 땅에 부딪힌 충격은 잠시였다. 칼리번은 고개를 땅에 박은 채 꿈틀거렸다. 만약 누군가 몸을 뒤집어 주지 않는다면, 이대로 질식해서 죽을 수도 있었다. 목 안쪽에서 거친 호흡이 튀어나올 때마다, 입 안으로 흙이 밀려 들어왔다.
혼자서는 숨을 쉬는 것조차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
그것이 지금의 칼리번이었다.
“꼴사납네.”
질식하기 직전, 에어리얼은 칼리번의 몸을 걷어찼다. 그의 몸이 간신히 뒤집혔다.
“헉, 허어, 허…….”
칼리번은 에어리얼이 베푼 자비에 감사해하며 거친 숨을 힘겹게 몰아쉬었다.
“칼리번, 에레즈 프리드웬이 오고 있다.”
가엾은 칼리번의 꼬락서니를 보며, 에어리얼이 읊조렸다.
“하아, 하, 하아…….”
그러나 칼리번은 그 말의 의미를 헤아리지 못했다. 극도로 둔화된 두뇌는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사고하지 못했다. 이래서야 몸뚱이만 남은 수퇘지나 다를 바가 없었다.
“짜증 나지만,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을 것 같아.”
늘 그랬듯이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정도였으면 가르쳐 주지도 않았을 테니까. 에어리얼이 한 단어, 단어를 짓씹으며 말했다.
“…8년이라. 지칠 법도 한데, 그 꼬맹이도 지독하네.”
“흐, 으어어…….”
“부러워, 칼리번. 잊지 않고 구하러 와 주는 사람이 있어서.”
“허억, 허…….”
칼리번은 남 일을 듣듯이 헐떡이기에 바빴다. 에어리얼에게 붙잡힌 후로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에 너무나 많은 사연이 있었다. 칼리번의 절반을 차지하는 인간의 피는 전부 땅에 흘려 버린 지 오래였다. 영특하지는 않아도 적당하기는 했던 이성과 논리는 멈춘 지 오래였다. 지금의 그는 숨만 쉬는 장식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널 죽일 수 있는데.”
“커헉!”
에어리얼은 칼리번의 목을 잘근잘근 짓밟았다.
“아하하! 네 몸은 내 것이야. 너도, 혼자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걸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겠지?”
“으, 흐어, 어…….”
“그래! 내가 널 살게 하는 거야…. 에레즈 프리드웬이 아닌, 이 내가!”
에어리얼의 음성에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칼리번은 온몸을 꿈틀거렸다. 그러나 몸을 일으킬 수도, 돌릴 수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숨통이 짓눌려 죽을 것이다.
“내가 우리 사이의 연결을 끊는다면, 에레즈가 백번을 이긴들 이곳 지하 계단을 내려오는 사이에 넌 죽어 있겠지.”
“크, 흐…….”
“안타까운 일이야, 기껏 8년을 버텨서… 여기까지 왔는데, 만나지 못하게 된다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야기겠어? 응?”
칼리번의 목을 짓누르던 에어리얼이 발을 치웠다.
“…하지만 기껏 살아 있어도 이런 몸으로 만나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 차라리 죽은 것으로 치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너한테도, 그 왕자한테도…. 그렇지 않아?”
딱히 자비를 보였다기보다는, 칼리번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는 기분이 누그러진 것에 가까웠다.
“있지, 칼리번. 지금 네 모습 어떤지 알아?”
“……흐, 으…….”
“왕자의 반응이 궁금해서라도 널 죽이지 않고 살려 두고 싶어져. 지금의 널 보면, 알아볼 수나 있을까?”
“으… 어…….”
“못 알아보는 거 아냐?”
에어리얼은 혀도, 이도 없는 칼리번의 빈 입 안에 제 발을 밀어 넣었다.
“…발을 덥히는 용도의 마물인 줄 알 것 같은데?”
에어리얼은 결국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칼리번의 절실한 숨결이, 에어리얼의 발을 적시고 데웠다.
“…….”
웃음소리가 지하 감옥 안에 울려 퍼졌다. 메아리인지, 환청인지, 아니면 8년 동안 누적된 기억인지, 계속해서….
그 한마디에, 칼리번은 눈은 없지만 처참한 자신의 꼴이 훤히 볼 수 있었다.
그랬다. 시간이 흘렀다. 나약한 소년이 어른으로 자라나고, 젊고 강했던 청년이 고물로 전락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칼리번은 젊고 튼튼한 시절, 전성기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였다. 젠과 에레즈를 보내고 그는 죽지 못했다. 에어리얼과 알테르에게 끌려간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칼리번은 알 수 있었다. 설령 자신이 기적처럼 이곳을 탈출한다 해도 더는 예전과 같은 삶을 살아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1년이 지나자, 칼리번은 인간의 모습을 잃었다. 용병으로 지낼 적, 그는 몸을 마물로 변형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마물이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 되었다. 3년이 지나고 나서는 몸이 더는 생물로써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마물을 생산하는 도구로만 이용된 탓이었다.
에어리얼의 말처럼, 이제 더는 혼자서 살 수 없었다. 에어리얼은 칼리번의 몸을 변형시키고, 그 부족한 자리를 자신의 마력으로 채웠다. 겉으로 보기에 두 사람은 따로 존재했지만, 근본적인 부분은 이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칼리번은 살았다. 죽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편에 가깝지만, 칼리번은 한 번도 목숨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건…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계속 버텨서 살아남는다면 그도 죽지 않을 것이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비정한 세상에서 이루어질 리 없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성 밖으로 나가 확인할 수 없으니 그저 우직하게 믿는 수밖에.
그 후로 더 시간이 흘러, 칼리번은 결국 그 약속마저도 잊게 되었다. 과거도, 약속도, 모든 것을 잊은 그는 끊임없이 형벌을 받을 뿐이었다. 언젠가 오메가로서의 기능이 다 해, 쓸모가 없어져 죽을 수 있게 될 때까지. 바위가 신념이 있어서 비바람을 홀로 버티고 조금씩 살이 깎여 나가는 것이 아니듯이.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마침내 그가 자신을 구하러 왔다고, 에어리얼은 말했다. 가라앉은 기억은 에어리얼이 들추어 낱낱이 살펴본 탓에,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수면으로 떠 올랐다.
<나의 첫, 꽃은 그대에게 바치겠어.>
눈이 없어도 떠오르는 그 모습. 연약하고 여려서 항상 울기만 하던 꿈속의 소년이, 마침내 돌아온다고.
“으…….”
칼리번의 몸이 눈에 띌 만큼 크게 떨렸다. 두려웠다. 다시 만나기 전에 에어리얼의 손에 죽을 것이, 그리고 다시 만나고 나서 누추하고 인간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
어느 쪽이 더 피하고 싶은지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친구이자 형제로서, 떠나기 전에 마지막 소원 하나 정도는 들어줄게.”
그리고 칼리번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고 부숴 버린 당사자가, 달콤한 목소리로 말한다.
“살아서 에레즈 프리드웬을 만날지, 아니면 여기서 죽을지. 네가 스스로 정해.”
칼리번은 떨리는 숨결을 뱉었다. 용병으로 지내던 시절, 그는 마물에게 굴복하거나 순응한 인간 사내들을 통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압도적으로 강력한 힘에 맞서 싸우는 것보다, 몸을 숙이고 노예가 되는 편이 덜 두렵다는 것을. 그래서 칼리번은 에어리얼을 증오하면서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다. 지난 8년 동안 에어리얼은 칼리번의 친구이자, 형제이자… 신이었다.
지금 여기서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에어리얼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 주고 떠난다고 한들, 평생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게 될 테니까. 이런 모습을 보이느니, ‘칼리번은 에레즈의 마지막 방어전을 치르고 죽었다.’라는 영광을 안고 모두의 기억에 좋은 모습으로만 남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나의 첫, 꽃은 그대에게 바치겠어.>
분명, 그럴 것이다….
<나의 첫 꽃은…….>
그러니까….
“그래, 결정했구나.”
에어리얼이 칼리번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마치 진짜 피를 나눈 형제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에어리얼은 칼리번의 몸을 난도질 내고 수많은 마물과 접을 붙이다가도, 함께 잠들며 한없이 다정하게 대해 주기도 했다. 칼리번을 나락으로 떨어뜨렸으나, 동시에 미치지는 않게 해 준 기묘한 인물이었다.
“결정은 네가 한 거야. 뭐,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내게 좋은 걸 넘겨줬으니, 그 정도 보답은 해야지.”
에어리얼은 살며시 칼리번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허, 커헉!”
그와 동시에, 칼리번의 몸이 크게 뒤틀렸다. 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터져 나와 에어리얼의 손등을 적셨다.
“아, 아아— 아아아!”
칼리번의 몸이 펄떡거렸다.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미친 듯이 발작했다. 힘을 나눠 준 에어리얼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칼리번의 결정을 지켜보았다.
“내가 예전에 말했었지. 넌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난 ‘유령’이라고.”
에어리얼은 땅 위에서 발버둥을 치는 칼리번을 내려다보며 덧없이 중얼거렸다.
“이제는 너도, 나랑 똑같아졌으니까 이해할 거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칼리번의 모습은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건만, 에어리얼은 더없이 침착했다.
“그래. 그 사람이 만나고 싶은 거겠지. 시체인 채로 지하에서 기어 올라갈 정도로.”
에어리얼의 붉은 눈에는 더 없는 전우애와 형제애가 서려 있었다.
“으, 크허, 으아아악! 아아아악!”
칼리번은 마물 혼혈로, 신체 일부가 잘려도 재생이 가능했다. 비록 마물만큼 빠르게 재생하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지속되는 고문은 그의 재생 능력을 아예 중단시켜 버렸다. 신체가 본능적으로, 재생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영원히 타들어 가는 불꽃 속에서 몇 달을 구른 이후부터 확연히 그렇게 변해 버렸다.
“흐…으, 으, 으아아아아!”
그랬던 육체가 지금,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치 끔찍한 고통이었다. 고깃덩어리 위로 불쑥 뼈가 자라나고, 살과 근육이 늘어난다. 일반적인 재생은 성녀의 도움이 없는 이상 적어도 열흘은 걸려야 정상이었다.
8년을 멈춘 재생이 한순간에 이루어지니, 그 고통과 괴로움 또한 곱절이 되었다.
“크으, 으, 아……. 아, 아아…악!”
어느샌가 생겨난 혀가, 비죽거리며 솟아나기 시작한 이에 씹혀 뭉클한 감촉을 느끼게 한다. 그 감각이 이상했다. 정렬되지 않는 이가 계속해서 혀를 씹었다. 칼리번은 몸속에서 몇 번이나 핏덩어리를 토해 냈다.
벗겨져 내부가 훤히 보이던 피부가 살로 덮이고, 비어 있던 눈두덩이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푹 꺼진 두 눈이 불룩불룩 부풀어 올랐다. 눈꺼풀이 들리자, 초점이 없는 검은자위가 온갖 방향으로 흔들렸다.
뼈가 먼저 생기고, 그 위로 근육이 덮이고, 핏줄이 그것을 깁고 살이 감싼다. 몸 안의 혈관과 신경이 팽창하며 끊어지기 직전까지 거세게 당겨졌다.
“크, 흐으윽…. 끄윽, 아…아악!”
아직 뼈만 갖추어진 손이 바닥을 휘저으며 긁었다. 붉은 근육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몸을 덮었다. 칼리번은 불구덩이에서 구르는 사람처럼 고통스러워했다. 마치 몸이 썩어 가는 과정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보통 사람이라면 구토를 할 만큼 끔찍한 변신의 과정이었다. 칼리번은 기절조차 하지 못하고 온몸이 재생되는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 냈다. 그 과정에서, 칼리번의 귀속에 메아리치는 것은 자신의 비명과 에어리얼의 끝없는 웃음소리뿐이었다.
“아…… 아….”
깜박, 깜박….
없었던 눈이 생겨나며, 본능적으로 눈을 깜박였다. 아직 신경이 전부 이어지지 않은 탓인지 시야가 흐릿했다. 그러나 그 흐릿한 풍경조차도 자극적이어서, 칼리번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뼈가 시큰할 만큼 두 눈이 시렸다.
“허윽, 으….”
재생된 손이 의지와는 다르게 따로 움직인다. 칼리번은 얼굴을 만지려고 했으나 손은 멋대로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두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이쪽은 아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벽에 매달려 있던 그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두 다리가 무거워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정도로….
“아….”
칼리번은 폐가 짓눌린 사람처럼 천천히 숨을 내쉬며 입을 뻐끔거렸다. 딱, 딱 부딪치는 가지런한 이— 믿기지 않는 감각이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혀를 쓰는 것이 오랜만이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법조차 잊어 목구멍으로 말려들어 간 탓이었다.
“……흐으…!”
신체 대부분이 재생된 뒤, 가장 마지막으로 매끄러운 살 위로 손톱과 발톱이 솟아올랐다. 뼈나 신경, 근육이나 살이 비하자면 그 감각은 간지러워서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칼리번은 제 몸을 벅벅 긁었다. 아직도 몸을 잘 가누질 못해 긁는다기보다는 퍽, 퍽 치는 것에 가까웠다.
시간이 조금 지나가 간신히 ‘긁는다’는 행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정교해졌다. 처음에는 뭉툭한 살과 피부가 닿았는데, 어느샌가 딱딱한 손톱이 피부를 긁어 피를 흘리게 했다.
“아, 아아….”
마침내 모든 재생이 끝났다. 칼리번은 차가운 감옥 바닥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온몸의 뼈가 시리고 근육과 살은 제 것이 아닌 듯 축 늘어져만 있었다.
조금씩, 두 눈에 초점이 맞춰진다. 칼리번은 지난 8년간 흘린 피로 인해 붉어진 흙바닥에 뺨을 기댄 채 두 눈을 껌벅거리기만 했다.
그가 처음으로 본 것은, 자신의 손이었다.
“……?”
그리고 칼리번은, 자신이 결국 미쳐 버렸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는 눈앞에서 흔들리는 손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시력은 점점 또렷해졌지, 퇴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눈을 아무리 감았다가 떠도 바뀌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눈앞에 흔들리는 손이… 하얗고 가늘었다. 칼리번은 의지를 담아 손을 흔들었다. 힘없이 움직이는 하얀 손도, 그가 생각한 방향대로 흔들렸다.
“으, 하아, 윽……!”
칼리번은 그 손으로 땅을 짚었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이, 어딘지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훨씬 높고… 얇은 목소리였다. 칼리번은 손으로 얼굴을 쥐었다. 머리카락이 땀에 젖은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아….”
손가락에 긴 머리카락이 감긴다. 그의 머리카락은 원래 짧았다. 8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탓에, 머리카락도 길어진 것일까…. 칼리번은 머리카락을 잡아 눈앞으로 끌어당겼다.
길고… 붉은 머리카락.
“……으, 흐…?”
현기증이 일었다. 칼리번은 눈앞이 핑 돌았지만, 이를 악물고 고개를 쳐들었다.
“—?!”
두 눈을 의심했다. 그곳에는 에어리얼이 서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사라지고, 전혀 다른 사람이 있었다. 훤칠한 키. 단단하고 튼튼한 체격. 짙은 갈색의 피부와 짧고 검은 머리… 마찬가지로 검은 눈동자. 무표정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과거의 자신.
꿈속에서 보았던… 젊은 시절의 자신이 지금, 눈앞에 에어리얼 대신 서 있었다.
칼리번은 꿈을 꾸는 것처럼, 아니, 유령을 보는 것처럼 과거를 고스란히 박제한 사내를 넋을 놓고 올려다보았다.
“…….”
과거의 칼리번도 마찬가지로 지금의 칼리번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칼리번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리고….
“이제 이 몸은 내 거야.”
검은 눈 위로 붉은 안광이 스쳤다. 그는 이를 드러내며, ‘칼리번’이 한 번도 지은 적 없었던 짐승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에레즈 프리드웬의 손에 죽어라, 칼리번.”
<1부>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