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벽에 매달린 사내 (3/50)

2. 벽에 매달린 사내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 끝에 맺혔다. 조금씩, 조금씩 부풀어 오르던 핏방울은 마침내 떨어졌다. 한 번 핏물이 길을 내자, 같은 방향을 따라 계속해서 새로운 핏방울이 맺혔다. 칼리번은 시간의 흐름을 그런 식으로 느꼈다.

“중요하지가 않다니?”

그때, 누군가가 칼리번의 발언을 평가했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에 칼리번은 과거라는 꿈에서 깨어났다.

“이게 썩을 프리드웬과의 첫 만남이 아니라고?”

에어리얼은 칼리번의 머릿속에서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너무나 오래된… 역사적 가치라고는 하나 없는 사소한 기억에 불과했다.

“시간을 좀 들이더라도 아예 처음부터…. 그래, 차라리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하는 게 낫겠어.”

에어리얼의 호수에 손가락을 담그듯 칼리번의 머릿속을, 그의 기억을 헤집었다. 칼리번은 거부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은밀하고 사적인 기억을 꺼내 보이는 일은 알몸이 되는 것보다는… 내장을 보여 주는 쪽에 가까웠다.

“…으….”

“날 거부하지 마, 칼리번. 지금의 너를 만들어 준 건 바로 이 몸이니까 말이야.”

“흐…으, 으….”

에어리얼은 칼리번의 뭉툭해진 코에 입을 맞췄다.

“조금만 더 노력해 보자. 우리 둘이서 해낼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친구고, 형제나 다름없으니까. 그러니 너 자신조차 기억 못 하는 기억까지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어.”

칼리번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에어리얼은 멋대로 결정했다. 칼리번에게는 거절할 수 있는 손도, 발도, 혀도 없었다. 전부 그가 가져갔다.

저 멀리서 포탄 소리가 들렸다. 천둥과도 같은 굉음이었으나 지하에서는 희미하게 땅이 흔들리는 정도에서 그쳤다. 그런데도 칼리번의 살을 파먹기 위해 벽을 타고 올라오는 벌레들이 충격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한편, 칼리번을 썩은 고기 취급하던 자는 두 사람을 지켜보기만 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에어리얼.”

그는 나지막하게 에어리얼에게 경고를 남기고는 등을 돌렸다. 명령받은 대로 지하 감옥의 문을 지키고 섰다.

단 한 명의 침입자조차 용서치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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